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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의 불교 수용에 관한 연구

        조남욱 ( Nam Uk Cho ) 한국윤리교육학회 2011 윤리교육연구 Vol.0 No.24

        조선왕조실록에 전하는 세종의 ``薨記``에는 ``말년에 그를 불교로 말하는 이가 있으나 해동의 요순으로 칭송될 만큼 오직 바른 모습만 보였다``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실록에 나타난 그의 모습을 살펴보면, 어릴 때부터 불교의식에 참여하였고 임금이 되어서는 각종 救病祈禱의식을 설행하며 왕자들의 寫經事業을 비호하였을 뿐만 아니라 말년에는 내불당을 건립하고 승려를 침실에까지 초치하여 특별히 예대하는 모습까지 보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세종 훙기에서의 평가는 사실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면 그에게서 불교는 어떻게 수용되는 것이었으며 그 정신적 기반은 무엇이었을까? 이점이 이 글에서 살피려는 핵심 내용이다. 숭유억불의 정치 노선은 태종 때에 강화되었지만 세종에 이르러서는 다소 완화되는 모습을 띤다. 왜냐하면 선왕들도 불교의식을 존숭하던 실제적 상황과 불교를 높이는 명나라와의 국제적 분위기 및 연비의식과 같은 자신의 종교체험이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세종 자신에 있어서 불교의 因果應報說과 함께 信心을 더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세종이 불교를 수용하는 구체적인 사실은 왕실에서의 구병기도 행사와 혼령 위안의 추모행사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와 같은 불교의식을 수용하는 경우에는 언제나 儒臣의 비판론이 나타났지만 세종은 넓은 지식과 군주의 권위로 의연히 대응하면서 信佛의 태도를 견지해 갔다. 세종의 불교 수용에는 특유의 정신적 기반이 깔려있었으니, 그것은 유교와 불교는 대립관계가 아닌 공존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보는 사고체계이다. 그리하여 그는 구병의 기도를 올릴 때는 종묘·사직이나 불당을 구별하지 않았고, 조상의 혼령을 위안할 때는 사당이나 불당이 함께 있어 좋다는 판단을 낳게 하였다. 이 후자로 말미암아 수개월간의 거국적 반대론에 맞서서 세종은 문소전에 불당을 재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유불공존의 사고방식은 숭조의식과 효성의식, 그리고 가족애와 애민정신에 상합하여 생활문화를 발전시키는 동인으로 확인되었다. 즉 불교에 대한 세종의 긍정과 수용적 태도는, 다양한 측면에서 소통과 공존 및 화해의 의미를 낳고 있었다. This thesis was written for the purpose of grasp the Buddhistic mind point of King Sejong(世 宗)-YiDao(李도, 1397∼1450)who was the fourth king of the Joseon Dynasty. In the early years of the Joseon dynasty, the government maintained the policy of pro-Confucianism and anti-Buddhism. But King Sejong and Confucian government officials had different point of view on the traditional Buddhist culture. Therefore They argued heatedly every time of planning of Buddhistic ceremony at Court. Sejong`s thought system kept an open mind with composure. Then he planned to bring reconciliation between Confucianism and Buddhism. In the side of establishing moral society he accented on the theory of Confucianism, and In the side of relief awareness he accented on the Buddhistic ceremony. Especially on the filial piety he always performed the two religious style. And for a prayer for one`s restoration he maintained the ceremony of Buddhistic temple in his soul of souls. In the Sejong`s life, many separations by death made him more believing in Buddhism with age as well. At last he rebuilded a Buddhist temple at Court, and he summoned a Buddhist monk-SinMi(信眉) to his sleeping room for a Buddhist service. Sejong`s Acceptance of Buddhism was a hard nut to crack. But his mind was a abundance of moral culture in Joseon Dynasty. I think that King Sejong`s religious amicable consciousness could make a contribution to overcome religious conflicts in our moder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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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화랑도 관점에서 본 김응렴(경문왕)의 화랑정신

        조남욱(CHO NAM-UK) 한국도덕윤리과교육학회 2016 도덕윤리과교육 Vol.- No.51

        필자는 2년 전 「신라 화랑도에 내재한 유교사상」이라는 주제의 연구 논문을 발표한 바 있는데, 그 외연은 신라말기까지 넓혀가지 못한 상태였다. 이번의 연구는 그 후속적 의 미를 가진다. 여기서 주목된 부분은, 9세기 중엽 최고의 화랑이던 국선(國仙) 김응렴(金膺 廉, ?∼875)이 천명하던 겸손·검소·관용의 덕목 즉 ‘삼선(三善)’의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높 이 평가되고 마침내 왕위에까지 오르게 되던 일련의 특별 상황이다. 이를 중심으로 파악한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진흥왕 화랑수련의 핵심인 ‘서로 도의로써 연마함(相磨以道義)’ 에서의 ‘도의(道義)’의 뜻하는 바가 임전무퇴(臨戰無退) 정신도 포용하는 성격에서 벗어나 평화공존사회의 요건을 제일로 여기는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김응 렴 화랑정신으로서의 ‘삼선’ 추구는, ‘골품제’와 같은 신라의 신분제도가 낳은 차별적 적폐 현상을 직시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존중됨’을 높이 여기도록 하는 진취적 의미를 가진다 는 점이다. 셋째는, 그 ‘삼선’의 도덕적 가치 추구는 비록 1천백여년 전 신라의 최고 지도층 에서 칭송되는 것이었으나 오늘날의 민주시민인 우리들에게도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보편성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의 전통윤리 교육의 저변에서는 이러한 덕 성 중시 부분을 적극 반영시켜 ‘신라의 화랑은 통일 과업을 완수한 임전무퇴의 용병들이었 다.’라는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In the period of Silla, Hwarng(花郞) is a youth group for the purpose of training desirable government officials. The system was formed in the mid 6th century(in the reign of King Jinheung). And the group of Hwarngs was armed with the spirit of knowing no retreat at a battlefield to leading the unification. But be a peace time, don't need such a spirit. A morality for peaceful coexistence was emphasized. These cases can be seen on the action of Eunglyum Kim(金膺廉) the middle of the 9th century. He was a royal family and also the captain of the Hwarangdo (花郞徒). He was asked from the king Heunan in the royal party. “What is this a good thing in an excursion during that time?” About this question, Eunglyum Kim pointed out the humility, frugality, tolerance in the people living. These views are respected in the King’s political line. Because the King think that he can overcome the negative effects arising from a caste system of long time. And then finally he was 48 units of Silla king Gyungmoon. Through this consideration, we find that the thought of Hwarng(花郞道) is based on the human morals and the elements of social leade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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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중(時中)에 이르는 능력 함양론

        조남욱 ( Nam Uk Cho ) 한국윤리교육학회 2005 윤리교육연구 Vol.0 No.7

        이 글은 도덕교육계에서 중시되고 있는 ``바람직한 삶의 태도``와 관련하여 동양전통에서 이상적 행동양식으로 중시된 ``時中``의 관련 내용을 살펴본 것이다. 이 ``時中``이란 인간의 도리에 적중되는 삶의 모습으로 이른바 ``中庸``의 길에 이르는 時宜의 도덕적 행위로서 예나 지금이나 인격 함양의 요체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앎과 행위의 이원화 현상을 낳기도 하는 도덕교육의 개선을 위하여, 그리고 급변하는 현실 속의 도덕적 실천성 제고를 위하여 이에 대한 논의의 확장이 요구된다.이 시중을 향한 능력 함양의 요지로는, 첫째 인간으로서의 각 개인은 자기 스스로가 진리적 존재임을 깊이 자각해야 한다는 점, 둘째 현실의 주변 상황에 대한 통찰력을 적극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셋째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방안을 수립하되 항상 가변적 대안까지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넷째 스스로 속이지 않는다는 지성적 의지로서 이미 구상한 것을 적극 실천하되 항상 반성과 평가의 태도를 견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그리고 時中行에 있어서는 權道論에서 나타나는 바와 비록 행동 양상은 상황변화에 따라 여러 가지로 가능한 것이지만 언제나 최고선을 향한 선악시비의 가치가 일관적으로 견지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즉 부도덕한 시류의 행태도 시중으로 오인될 수 있음을 경계한 것이다. 나아가 시중론의 기본이 되는 현실 상황에 대한 관점의 설정 부분에 있어서 그 영역이 넓으면 넓을수록 가치 추구의 심도가 깊어지게 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참된 시중이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른바 ``실천적 지혜(phronesis)``와 성격을 같이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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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화랑도에 내재한 유교사상

        조남욱 ( Nam Uk Cho ) 한국윤리교육학회 2014 윤리교육연구 Vol.0 No.35

        이 글은, 6세기 신라 진흥왕 때부터 비롯한 화랑제도의 시행과 그 전개과정을 밝혀주는 사료들을 활용하여 화랑 수련의 내면적 측면을 고찰해 보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 내면적 정신 세계를 형성하는 사상적 요인으로는 흔히 유.불.도 삼교를 말하고 있으나, 화랑 교화의 공식적인 핵심 용어나 그들이 공부한 교재 및 언행상의 인용문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볼 때에, 그 속에는 유교사상이 주맥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점을 논제에 반영하면서 그 구체적 인 내용을 고찰해 본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사용한 ‘화랑도’의 한자표기는 ‘花郞道’의 경우에 해당 한다. 이 연구에서 활용한 기본 자료는, 화랑의 모습을 총론하고 있는 .삼국사기. 진흥왕 37년 조의 내용을 비롯하여 그 열전 부분과 .삼국유사.에 전하는 주요 사료 및 ‘임신서기석’이라는 유물속 의 문구와 최근까지 학계에 보고된 여러 연구내용 등이다. 이 연구에서 필자는 주로 화랑들의 심신수양이나 삶의 현장에서는 충성ㆍ효도ㆍ의리ㆍ용감ㆍ검소ㆍ겸손ㆍ생명존중 등의 유교 덕목이 견지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3백여 년간 지속 된 화랑 세계에서는 ① 화랑도의 기본에서는 ‘도의(道義)’와 ‘아름다움(美)’으로 표현되는 인간 보편 의 가치가 추구되고 있었다는 점, ② 화랑제도 시행의 애초 목적대로 훌륭한 문관.무관이 배출되었 을 뿐만 아니라 문무겸전의식이 제고되었다는점, ③ 충효양전(忠孝兩全)의 병행의식과 더불어 공 명심 초월의 결의가 다져지고 있었다는 점 등을 밝혔다. Hwarang(花郞) was a youth group for the purpose of training desirable government officials in Silla Dynasty. The members of Hwarang are known for building a foundation for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Goguryeo, Baekje and Silla. The system of Hwarang lasted for many centuries since the mid-sixth century. And the system had turned out many excellent soldiers and officials. For example, Sadaham(斯多含), Kimyusih (金庾信), Byryungza(丕寧子), Kimheumchum(金歆春), Jukjuk(竹竹), Gwanchang(官昌), Hyojongnang(孝宗郞), Kimeungnyeom(金鷹廉) etc. They made an effort to establish the moral and stable nation. Especially, virtue was taken very seriously in their mind as follows - morality, loyalty, filial piety, integrity, community spirit. These virtues were elementally based on Confucian ideas. Therefore, they were play in the study of Confucian canon and found the motto of life there. For example, the Analects of Confucius in the following phrases. The scholar, trained for public duty, seeing threatening danger, is prepared to sacrifice his life. And when the year becomes cold, then we know how the pine and the cypress are the last to lose their leaves. In this study, I found that Confucian ideas contributed greatly to the cultivation of the mind in the training of Hwa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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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가(儒家)의 간쟁론(諫諍論) 전개(展開)에 관한 고찰(考察)

        趙南旭 ( Cho Nam-uk ) 한국유교학회 2010 유교사상문화연구 Vol.42 No.-

        근래 모 방송사에서는 유교 소개의 특집을 방영하는 서두에서 유가의 효는 부모의 부정에 대해서도 순종하는 것으로만 소개하여 오해를 낳게 한 일이 있었다. 실제 『논어』에서는 아비의 부정행위를 사직당국에 고발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정직을 말하는 공자의 발언이 전한다. 그 내재적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집밖에 알리지 않으면서 아비의 부정을 묵인하고 순종하는 것이 정직함이요 효도인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곧 사회적 정의의 가치추구와 상충되는 모순을 낳는다. 유가에서는 개인과 가정 및 사회 국가의 경계를 따라 도덕적 가치관을 달리 말하는 경우는 없다. 그렇다면 그러한 공자의 발언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 것인가? 이것은 경전에서 두로 언급되는 간쟁의 이론을 주목하여 해결될 수 있다. 諫이란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잘못을 지적하여 고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는 효행론에서 ‘幾諫’을 말했을 뿐만 아니라 ‘爭子’의 역할을 중시하였다. 또 『書經』에서는 “임금이 간언을 따르면 성스럽게 된다.[侯從諫則聖]”고 하였으니, 성군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도 신하의 간쟁은 긴요한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맹자와 순자도 그와 같은 성격의 간쟁론을 부단히 전개하였으며 유현들은 그 실천에 남달리 노력했고, 나아가 조선의 유교국가에서는 司諫院과 같은 기구를 설치하여 간쟁 활동을 정식으로 수용하는 형태를 취했다. 유가에서는 부자와 군신 관계에서 공경과 순응의 태도를 중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윗분에 대하여 시비를 논하는 간쟁의 모습이 중시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답으로서는, 인간이란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신념과 더불어 진리 공유에의 사명감이 매우 높았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간쟁은 현재에서 미래를 보며 더욱 바람직한 방향의 실천적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따라서 간쟁의 전개는 삶의 현장에서 정의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이요, 구성원들로 하여금 도덕적 긴장감 속에 상호 보완의 화목한 분위기를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간쟁이 발전적인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에 대한 존경심과 신뢰성이 견지되어야 하며 특히 諫者에게는 정당성을 담보할 높은 지혜가 요구되고 聽者에게는 간언을 기꺼이 수용할 관용적 태도가 요구된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소통의 확장과 공정한 사회 구현의 기반을 확충하는 데에 적극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The duke of Sheh[葉公] informed Confucius(孔子), saying, 'Among us here there are those who may be styled upright in their conduct. If their father have stolen a sheep, they will bear witness to the fact.' Confucius said, 'Among us, in our part of the country those who are upright are different from this. The father conceals the misconduct of the son, and the son conceals the misconduct of the father. Uprightness is to be found in this.' In the view point of Confucius, they must take all remonstrance for the maintaining of uprightness in their home life. Therefore Confucius said as follows. 'In serving his parents, a son may remonstrate with them but gently, and when he sees that they do not incline to follow his advice, he shows an increased degree of reverence, but dos not abandon his purpose.' The Confucian expostulation depend on the human dignity, benevolence, and social justice. So, the way of direct remonstrance in a soft tone is attached importance to the filial son and the faithful subject. And to be really effective, they must be able to take part in the dispensation of justice. Especially, the parents and the monarchs must not be repressive in dealing with their subordin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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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퇴계의 인생철학과 그 현대적 수용

        조남욱 ( Cho Nam-uk ) 퇴계학부산연구원 2017 퇴계학논총 Vol.30 No.-

        이 글은, 조선시대의 큰 유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에 있어서 인생의 방향타인 인생철학의 핵심은 무엇이었으며 그것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어떻게 수용될 수 있겠는가 하는 적극적인 관점에서 시작한다. 현대사회는 문화의 다양성과 환경의 편의성이 심화된 상태이므로 전통적 인생관 그대로를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삶의 주체는 인간 자신이며, 정신과 물질의 양자관계에서 인간다움의 문제는 여전히 중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맥락을 살려나갈 수 있다고 보았다. 이퇴계의 인생철학에 대한 담론은 주로 여러 제자들에 의하여 집성된 『퇴계언행록(退溪言行錄)』에서 쉽게 확인된다. 이러한 자료를 논거삼아 살펴본 그 인생철학의 기본요소로서는 ‘성인 지향성’과 ‘지행합일의 진실성’ 추구 및 ‘유기체적 자아의식’ 등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이에 있어서는 공통적으로 계왕개래(繼往開來)적 맥락이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도 파악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요소들의 실천궁행의 저변에 있어서는 항상 ‘감성의 방치’와 ‘심기의 불안 상태’ 및 ‘경솔한 언행’ 등이 문제시되고 있었다는 점을 밝혔다. 따라서 이와 같은 퇴계 인생철학의 가치는 오늘날에도 유의미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그 수용의 적극적 방안으로 ① 항상 ‘인간답고 나다운 삶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가지는 습성 키우기, ② 과도하게 물질적 풍요로움을 즐기려하기에 앞서 현실상황에 자족하는 여유도 누려보도록 할 것, ③ 마음의 평정과 자기성찰의 능력을 견지하는 태도 등을 제시해 보았다. The basic element of the philosophy of life on Toe-Gye(退溪) Lee Hwang (李滉, 1501∼1570) is as follows. Firstly, to identify the order of life through a Confucian classic study. Secondly, uniting knowledge and conduct for the purpose of the pursuit of truth. Thirdly, cultivating his self-consciousness as a organic body. And, those problems were for the realization of the his philosophy of life as follows. The problem of self-control on the feeling and desire, the problem of the mind setting of respect, and the problem of thoughtless words and actions. In the point of improving the quality of life, Toe-Gye’s philosophy of life are respected in the modern society. And in order to take embracement of it, the following attitude is needed. ① Always thinking about ‘what is human being?’ ② Before the pursuit of material pleasures, we should have the habits to try with real situations. ③ To ability to reflect the sense of self in the peace of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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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논문 : 우리사회의 생명경시 풍조와 그 극복 방향

        조남욱 ( Nam Uk Cho ) 한국윤리교육학회 2013 윤리교육연구 Vol.0 No.31

        우리의 전통사회에서는 비록 경제적으로는 빈궁했어도 인간의 생명에 대한 가치는 중시되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고 정치 사회가 조직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자살률 세계 상위권에 오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타살과 폭행 사건이 빈번하여 동방의 예의국가라는 이름은 고사하고 패륜국가의 오명을 낳게 할 정도가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인 스스로에게는 삶의 공존 기반이 미약하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요, 밖의 세계인들에게는 부끄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윤리교육계의 우리들에게는 이러한 문제가 결코 간과될 수 없다는 시대적 과제로 다가왔다. 그리하여 지난 5월 한국윤리교육학회 춘계학술행사에서는 이른바 ‘생명경시 풍조’의 극복을 위하여 여러 관점에서 심층적 대안을 모색해 보았다. 이 글 역시 그러한 맥락의 기조에서 발표한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그동안 연구 논문으로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수정 보완 요소들이 많지만, 전체적인 개요는 다음과 같다. 본론으로서의 첫 부분에서는 논제에서 명시한 ‘생명경시 풍조’의 실제를 확인하기 위하여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목숨이 쉽게 버려지는 자살·타살의 경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특히 청소년의 경우도 주목해 보았다. 그 다음 부분으로서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논의로서, 사람들 각 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경우와 사람들의 상호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경우의 두 영역으로 나누어 살폈다. 전자에서는 유가사상에서 중시되던 생명유기체적 사고방식과 삶의 가치를 높이는 호생(好生)의 인생관 정립이 긴요한 것임을 서술하고, 후자에서는 자타의 공존 안정을 위한 공동체의식 제고와 다양한 사회 안전망 구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 실효를 거두기 위한 방안으로 우선 생명경시의 행태를 보일 수 있는 증후군 그 자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예방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은밀히 자행되는 생명 위해상황에 적극 대처할 수 있는 조직이 입체적으로 작동되어야 한다는 점 등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는 것이 이 글의 특징이다. In the traditional society, the act of taking one`s life was beyond comprehension to a mentally balanced person. But, It`s not shocking that Korea has recorded the world`s highest suicide rate. The cheapening of human life is a widespread trend in Korean modern society. Therefore, Koreans have to overcome the problem of the trend to make light of human life. I think that the way of breaking the back of it may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we have to realize that Humans are social animals that require close relationships with the family members and the other many people. Thus, we have to establish strong belief that the life of human being is not only belong to ourself. Life can be difficult, but you who suffer are not alone. Parents have affection for their children. So, we need to learn to enjoy life. Second, we have to create a sense of community and to expand social safety networks. The former is involved with human love in our modern society, and the latter is connected with the nation`s policies of government and the citizen`s campaign of social groups. Recently, the suicide rate shows few signs of going down despite a set of government measures to prevent people from yielding to the temptation of killing themselves. Therefore we all have to take countermeasures against the trend to make light of human life in the various point of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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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과내용학》 : 세종시대 노인공경의 실제와 의의

        조남욱 ( Nam Uk Cho ) 한국윤리교육학회 2014 윤리교육연구 Vol.0 No.34

        우리사회가 고령화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경제발전에 역행하듯 노인들은 불안과 소외감 속에 자살까지 감행하여 노인자살률 최고국가의 오명을 낳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사회에서는 물질에 앞서 인간을 중시하는 유교문화의 흐름 속에 정치 지도층에서부터 노인공경의 태도를 중시하여 인생의 안정적 기조를 강화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특히 세종시대를 통하여 뚜렷이 규명될 수 있다· 그리하여 이 글에서는 주로 『세종실록『을 근거로 당대 노인공경 부분과 관련된 사안들을 면밀히 고찰하면서 그에 내재한 여러 가지 의의를 파악하여, 오늘날의 노인공경 정신문화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시사점을 찾아보고자 했다. 1418년 태종이 단행한 세자교체를 계기로 22세의 나이에 갑자기 군주가 된 세종에 있어서 창의적 정책을 보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즉 기로의식이나 기영회수용 및 궤장하사 등과 같은 고령 대신을 향한 경로행위는 세종초기에도 이어지는 것이었으나, 남녀의 고령자에 대한 관작 수여나 거국적 양로연 거행의 일은 그 중기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나타났던 것이다. 그와 같은 주요 경로의례에 관한 발의는 유신들에게서 시작되었지만 그 이후의 정립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세종의 지혜가 지속적으로 작용하였다. 세종시대 노인공경의 특징적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고령 대신들에 대한 세종의 공경의식에는 경험중시의 실용주의적 태도가 병행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계에서 70세 치사를 정당화시키는 데에는 임금이 지켜야 할 ``노인공경의 뜻``이 어필되기도 했지만, 세종은 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학덕과 능력을 겸비한 대신들에 대해서는 그간의 경험을 살려 국가발전에 기여해야만할 것임을 강조했다. 둘째는 백성을 향한 노인공경 정책에는 인간존중의 평등정신이 작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서민을 거쳐 천민에까지 이르는 고령자 관작 수여 조치나 양로연 거행 논의과정에서 확인된다. 특히 관료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기준`` ``천민도 하늘의 백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인간평등의 가치관을 추구하던 세종의 모습이 주목된다. 셋째는 그 노인공경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을 일으킬 정도의 진실성이 견지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세종이 노인공경을 ``숭고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에서부터 여성 양로연 거행문제를 ``의(義)에 어긋남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 또 자리에서 일어나 노인들을 맞이하거나 배례의식은 생략시키는 것 등은 그 인간존중에의 진실성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로 인하여 양로연 마무리에서는 ``참으로 기쁘다.`` 라는 말이 나올 수 있었다. 그 기쁨은 세종 자신뿐만 아니라 사람들 모두가 느끼게 된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지대한 것이다. 그러한 기쁨은 80세 이상의 모든 고령자에 대한 관작 수여의 방식으로도 계속 누리게 했다. 이상의 내용 중에서 가장 큰 인상을 주는 것은, 임금이 주관하는 거국적 규모의 경로잔치, 즉 차별 없는 양로연의 정규적 거행 장면이다. 노인에 대한 안팎의 대우가 미진한 오늘날, 세종시대와 같이 최고 지도자가 진지하고 겸손하게 매년 거국적 경로잔치를 주관해 간다면, 노인들에게는 감사와 기쁨을 느끼게 할 것이요, 국민들에게는 삶과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우는 계기로 작용하여 생활현장의 안정성 제고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In the mid-15th century, the political mind of King Sejong was influenced by the ancient Confucian culture. And King Sejong believed that the respecting for the aged was a noble cause. Therefore, he was taking the lead to love human life and implementing various policies to enhance the aged`s position. In the government of King Sejong, the action of respecting may be summarized as follows. Granting honorary office to all the people over the age of 80. Having a party in honor of the aged as a yearly event in the central and local governments. Emphasizing that everybody should respect older people in the point of transcending social position. Accepting desire of for longevity by way of exemption from national obligation. Making clear that all the people are equal before the old age. These attitudes contributed to realize society of respecting for people`s life and dignity in that time. I think that the mind of respecting the aged in the King Sejong`s governance make old men and women happy, and make a great contribution to improve the morality in moder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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