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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DN에서의 UNET의 설치에 관한 연구

        정성권,차의영,홍봉희,김명철 한국정보과학회 1983 한국정보과학회 학술발표논문집 Vol.10 No.1

        이 논문에서는 System Development Network에 UNET을 설치하는 방법과 이때 발생하는 문제점과 해결책, 그리고 UNET의 사용법을 설명한다. We present the installation of UNET in System Development Network and describe the problems and solutions of UNET installation. And also this paper explains the usage of UNET in SDN.

      • KCI등재

        龍仁地域 石造佛像의 特性과 意義

        정성권 한국문화사학회 2020 文化史學 Vol.0 No.53

        In Yongin city there are 9 stone Buddhist statues that are Munsu Mt. Bodhisattva image carved on rock surface, Mipyeong-ri Stone Buddha statue, Moksin-ri Buddha statue, Moksin-ri Bodhisattva statue, Yongduk temple Buddha statue, Mabuk-ri Bodhisattva statue, Dongdo temple Buddha statue, Gongsedong Buddha statue and Gachang-ri Bodhisattva statue. Except last two statues, 7 stone Buddhist statues are Registered as a designated cultural property. In this article, I studied the style characteristics and the time of creation of all Buddhist images. Most of the statues were made during the Goryeo Dynasty. Only Mabuk-ri Bodhisattva statue and Gachang-ri Bodhisattva statue were built in the early Joseon Dynasty. The characteristic of Buddha statue in Yongin area is that there is no central style. Outside the north and south of Yongin, there are central style Buddhas. For example, Masan-ri Bodhisattva statue in Ansung Bongup temple site which statue was reflected the idea that the king is Buddha and Iron Buddha Statue in Hanam Hasachang-dong which is the biggist Iron Buddha Statue in Korea. Why is there no central style Buddha in Yongin? This study suggests three reasons. The first is environmental factors. Yongin is mountainous and there is no river for ships. In ancient society, the river was the one of the important transportation routes. The second is the cultural factor. Yongin is located outside of the Unified Silla Culture. The northern limit of Silla culture is the line connecting Sokcho to Wonju and Anseong. For this reason, Yongin did not develop Buddhist culture in the Unified Silla Period. The third reason is that Yongin did not have any important sponsors. For this reason, Yongin mainly made local style Buddha statues. The central style Buddha statues in Anseong Bongupsa templ site had a great influence on the creation of Buddha statues in Yongin . 본 논문은 문화재로 지정된 용인의 석조불상을 대상으로 그 특성과 의의에 대해 살펴본 연구이다. 구체적인 고찰대상은 문수산 마애보살입상, 미평리 약사여래입상, 목신리 석조여래입상, 목신리 석조보살입상, 용덕사 석조여래입상, 마북리 석조보살입상, 동도사 석조여래좌상 등이며 비지정 문화재인 공세동 석조여래좌상, 가창리 석조보살입상 등도 논의에 포함시켰다. 본문에서는 먼저 개별 불상의 현상과 양식적 특징을 파악하였으며 구체적인 조성시기를 추정하였다. 용인지역 석조불상의 특징은 대부분이 교통로를 따라 조성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으며 중앙양식 불상은 찾아 볼 수 없고 지방양식 위주의 불상이 조성되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용인지역을 벗어난 주변 인접지역에서는 중앙양식이라 부를 수 있는 통일신라~고려시대의 우수한 불상이 존재한다. 그러나 용인지역 일대에서는 석조불상뿐만 아니라 다른 석조미술에서도 통일신라 작품은 확인할 수 없었다. 불상의 경우 고려시대 이후 조성된 지방양식 위주의 불상만이 제작되었다. 본문에서는 용인지역에 지방양식 불상만이 조성된 이유를 분석하였다. 용인지역에 지방양식 불상이 주로 조성된 구체적인 이유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그 이유로는 환경적ㆍ지리적 요인, 통일신라문화권의 외곽에 위치하게 된 문화권적 요인, 주요 호족세력이 부재한 요인 등을 제시하였다. 용인지역 석조불상은 대표적인 지방양식 불상으로 분류할 수 있다. 본문에서는 분류기준으로 ‘모방성’을 제시하였다. 용인지역 석조불상은 고려시대 불교조각의 특성을 논의할 때 지방양식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미술사적 의의를 갖고 있다. 이밖에 여래상 없이 두 보살상이 병립한 문수산 마애보살입상을 통해 나말여초기 불교조각의 흐름이 매우 다양하고 역동적이었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 KCI등재후보

        惠陰院址 出土 막새기와에 대한 考察

        丁晟權 한국문화사학회 2003 文化史學 Vol.0 No.19

        이 글에서는 파주 혜음원지에서 출토된 막새를 그 유형에 따라 형식분류를 시도하였다. 이후 이를 바탕으로 출토막새의 편년과 고고미술사적 의의에 대해 검토하였고, 유형별로 막새의 사용 건물지에 대해서도 고찰하였다. 혜음원 출토 귀목문 막새는 막새 자체에 제작시기를 알 수 있는 간지 등이 새겨져 있지 않지만 창건에 대한 문헌기록이 남아있어 막새 성형 시기의 절대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이 글에서 형식 분류한 막새중 수막새 A-1과 암막새 A-2로 명명한 막새는 12세기 초반 이미 표준형이 확립되어 황룡사 등 중요 사찰에 쓰여지고 있는 형식임을 알 수 있었다. 이밖에 수막새 B-1·2, C-1·2 암막새 A-1, B·C 등으로 명명한 막새에서 보이는 귀목문 문양은 1120년대에 제작되어 사용된 유형임을 알 수 있다. 앞으로 논의 되어야할 귀목문 막새의 등장배경과 변화과정에 있어 혜음원 출토 귀목문 막새는 정확한 편년을 제시하는 중요한 자료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This study analyzes roof-end tilles which were excavated in Haeeumwon site at Paju city. Haeeumwon was a temple and a kind of government-run post-stage of Goryeo Dynasty. It was built from 1120 to 1122. Haeeumwon has historical recode because of that the remains can be standards to make the basic period of other historical materials. In this article, 10 male(convex) roof-end tiles and 7 female (concave) roof end-tiles are examined. Most of them are monster eye design roof tiles. Especially, the male roof-end tiles which were named A-1 and A-2, were found in Hwangryong temple at Kyunju city. It is meaning that roof tiles which were used in Haeeumwon became stand roof tiles modle in the middle of Goryo Dynasty. In the future roof tile study, Haeeumwon's roof tiles can be a fiducial point.

      • KCI등재
      • KCI등재

        천안 봉선홍경사(奉先弘慶寺)의 건립 배경

        정성권 한국중세사학회 2022 한국중세사연구 Vol.- No.68

        Bongseon Honggyeongsa Temple was built on the plain between Anseongcheon and Seonghwan. In this article, the background of the construction of Bongseon Honggyeongsa was examined. It can be seen that Bongseon Honggyeongsa Temple is closely related to the change process of the traffic route. This is the border between Baekje and Silla after the late 6th century. During this period, frequent battles took place between Baekje and Silla. For this reason, it was difficult to establish a major transportation route in the Honggyeongsaji area.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the main transportation routes were Gyeryyeong-ro and Jukryeong-ro. The Anseong Bongeopsaji site was also an important transportation route during the Unified Silla era. Except for the Bongeopsaji area, Gyeonggi-do was the outskirts of Silla. The Honggyeongsaji area, which is connected to the southern part of Gyeonggi-do, also did not have the conditions for major transportation routes to occur. In the later Three Kingdoms era, Cheonanbu was established and transportation routes in the Cheonan area became important. However, at that time, the transportation route connecting Anseong and Cheonan was mainly used. The background of the establishment of Bongseon Honggyeongsa Temple can be said to be a part of the national management strategy of King Hyeonjong of Goryeo. King Hyeonjong adjusted the tax system to strengthen the centralized system and reorganized major transportation routes. Hyeonjong, who was even threatened with death before ascending to the throne, felt the need to strengthen his power and sought to expand the forces that supported him. Kim Eun-bu was one of the people who could respond to the policy necessity of Hyeonjong. Kim Eun-bu and his wife are from present-day western Gyeonggi-do and Incheon. After the middle of the 10th century, the pottery industry began to develop in their hometown, and the economy began to revitalize. The foundation of Bongseon Honggyeongsa Temple can be thought of as a result of the harmony between King Hyeonjong’s national management strategy and the interests of the powers in the western part of Gyeonggi Province. 봉선홍경사는 안성천과 성환역 사이의 벌판에 건립된 사원이다. 봉선홍경사는 봉선홍경사갈기비의 기록을 통해 조성시기, 조성주체, 건립과정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는 사원이다. 기존의 연구는 이 기록에 주목하여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고려 현종이 왜 현재의 자리에 객관을 구비한 사찰을 창건했는지 그 이유는 밝히지 못하였다. 본 글에서는 현종이 봉선홍경사를 창건한 조성배경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찰하였다. 홍경사의 건립은 교통로의 변천과정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홍경사지의 위치는 6세기 후반 이후 백제와 신라의 국경선에 해당된다. 이 시기 백제와 신라 사이에는 빈번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홍경사지가 위치한 사산성 부근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러한 이유로 삼국시대에는 홍경사지 일대에 주요 교통로가 조성되기 어려웠다. 통일신라시대 주요교통로는 중부지역 동쪽 일대의 경우 계립령로와 죽령로가 주로 이용되었다. 중부지역 서쪽 일대는 안성 봉업사지 일대가 교통의 결절지 역할을 하였다. 봉업사지 일대를 제외한다면 삼국시대 산성이 밀집해 있었던 한강유역을 비롯한 경기도 일원은 신라의 변방으로 변해갔다. 경기도 남부지역과 연계된 홍경사지 일대 역시 신라의 변방으로 변해간 경기남부지역의 상황에 따라 주요 교통로가 발생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후삼국시대 들어와 천안부가 성립되며 천안지역의 교통로가 중요시되었으나 삼국시대 이래 중요 교통로였던 봉업사지 – 안성 – 천안으로 연결된 교통로가 고려 건국 초기까지 주로 활용되었다. 홍경사가 건립된 배경은 현종의 국가운영전략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현종은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수취체제를 조정하였으며 주요 교통로를 정비하였다. 이러한 결과 12조창제가 실시되었으며 천흥사와 법천사를 비롯한 많은 사찰이 중창되거나 창건되었다. 왕위에 오르기 전 살해위협까지 당했던 현종은 왕권강화의 필요성을 느꼈으며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의 확장을 꾀하였다. 이러한 현종의 정책정 필요성에 부응할 수 있는 인물이 김은부였다. 김은부와 그의 부인은 현재의 경기 서부와 인천 출신이다. 이들의 출신지역은 통일신라이래 고려초기까지 변방지역이었으나 10세기 중반이후 요업이 발달하기 시작하며 경제가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던 곳이다. 봉선홍경사의 창건은 이들의 경제활동이 크게 비약할 수 있는 기반이 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봉선홍경사의 창건은 현종의 국가경영전략과 경기 서부 및 인천 지역 세력의 이해관계가 합치되어 건립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국가가 사찰과 더불어 객관을 함께 건립한 것은 물류와 사람의 원활한 소통을 보장하겠다는 국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종이 봉선홍경사를 건립한 경험은 이후 현종말년 12조창제를 실시하고 흥원창 부근의 법천사를 대대적으로 중창하여 12조창제를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만드는데 큰 영감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점에서 천안 봉선홍경사의 건립 의의를 찾을 수 있다.

      • KCI등재

        홍천 물걸리사지 불교조각의 복원과 조성의의

        정성권 동악미술사학회 2018 東岳美術史學 Vol.0 No.23

        홍천 물걸리사지에는 현재 1기의 삼층석탑과 4기의 석조대좌, 2기의 석조광배, 2구의 석불좌상이 있다. 물걸리사지 삼층석탑은 보물 제54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2층 기단을 구비한 평면 방향의 일반형 석탑이다. 보물 541·542호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과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대좌와 석불로 구성되어 있다. 보물 제533·544호는 각각 석불대좌 및 광배로 구성되어 있다. 물걸리사지에는 9세기 후반 경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542호)이 건립된 이후 9세기 말에 이르러 다시 석조불상 두 구(보물 제541호, 제543호)가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9세기 말에 물걸리사지에 조성된 석조불상과 유사한 불상은 인제 한계사지에도 거의 동시기에 조성되었다. 이는 대좌 하대석의 가릉빈가와 광배가 유사한 점을 통해 알 수 있다. 홍천 물걸리사지에 조성된 석조대좌 2기는 한계사지 석조대좌와 매우 유사하다. 두 사찰의 불상이 동시기에 조성되었으며 그 형태가 유사한 이유는 9세기 말기의 사회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보물 제544호의 조성시기는 9세기 말에 조성된 대좌를 모방하고 있는 점을 들어 고려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보물 제544호가 고려 초 제작된 다른 근거로는 고려초 강원지역에 유행하였던 육각건물지와 금강산 정양사 약사전 불상대좌를 비교하여 근거를 제시 하였다. 보물 제542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앉아 있는 대좌 상대석은 광배가 올라갈 수 없는 크기로 인하여 별도의 불상 대좌 상대석으로 추정하였다. 이를 고려한다면 물걸리사지에는 현재 보호각 안에 봉안된 4기의 대좌 이외에 별도의 대좌 1기가 더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본 연구를 통해 물걸리사지에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대좌 한 짝이 가장 먼저 조성되었음을 밝혔다. 이후 보물 제541호 대좌와 불상 및 보물 제544호 광배를 한 짝으로 한 석조 불상이 조성되었다. 이와 동시에 비슷한 형태의 보물 제543호 대좌가 조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보물 제543호 대좌 상면에는 보물 제541호 불상과 유사한 석조불좌상이 봉안되었을 것이다. 물걸리사지에는 2개체의 철불편이 출토되었다. 보물 제544호 대좌는 출토된 철불편 중 크기가 작은 철불의 대좌일 가능성이 있다. 보물 제542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의 대좌는 현재 파악된 불상의 개체수를 고려한다면 출토된 철불편 중 크기가 큰 철불좌상의 대좌 상대석으로 추정 할 수 있다물걸리사지에 9세기 후반부터 고려초까지 다양한 불교조각과 석조미술이 조성된 배경은 교통로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언급하였다. 물걸리사지는 명주지역의 주요 사찰인 한계사지, 선림원지와 원주지역을 연결시켜주는 징검다리 같은 장소라는 점을 본문에서 언급하였다. 결론적으로 물걸리사지는 통일신라시대뿐만 아니라 고려왕조의 성립 이후에도 교통로의 안전한 확보를 통해 중앙정부의 지방통제를 원활하게 수행 할 수 있게 하였던 중요한 사찰이라 할 수 있다. This was the site of Hongyangsa(洪陽寺) Temple. Some segments of iron Buddhist images, porcelain debris, convex end-tiles, concave end-tiles, concave tiles, pieces of celadon porcelain, pieces of earthenware, pieces of Joseon ceramics, and a Unified Shilla period gold-plated bronze standing Buddha were found in April, 1967. These items suggest that the temple was maintained during the unified Shilla Kingdom and Joseon Dynasty periods. Five treasures are stored within this site. A sitting Buddha made of stone(Treasure No. 541). A seated figure of vairocana made of stone(Treasure No. 542). A Buddhist pedestal(Treasure No. 543). A Buddhist pedestal. A mandorla(Treasure No. 544). A three storied stone pagoda(Treasure No. 545). No other site in Gangwon Province holds more treasures, so a new building was constructed in 1982 to store them. The four great Buddhist images held within these temple grounds indicate that it was a very important and large religious site. This 4 meter high pagoda possesses the characteristics and style of the shilla Kingdom period. It has a podium made of two layers of stones, and prop and corner pillars are carved on the face stone. The roof stone props of the first and second story have five steps each and those on the third story have four this enabled the builders to use less porp stones. The eaves of the roof stones are slightly uplifted at the ends. The body stone on the first story is a little higher than those on the second and third stories, but the overall feel remains one of harmony. Remains of Buddhist Saints are enshrined in sarira holes, and such a cavit can been seen in the body stone of the third floor. This article studied about four treasures(Treasur No. 541~544). Each treasure is composed many stone parts. Some of them are mixed. This study showed that correct composition of each treasure. Also this article studied about importance of Temple stie’s location.

      • KCI등재

        영월 무릉리 마애여래좌상과 청석탑의 조성시기와 배경

        정성권 동악미술사학회 2017 東岳美術史學 Vol.0 No.21

        영월 무릉리 마애여래좌상은 흥녕선원 초입에 위치한 마애불이다. 이 마애불이 위치한 곳에는 20세기 초 건립된 요선정이 있으며 요선정 앞에는 고려시대 청석탑이 있다. 본 논문에서는 마애불 과 청석탑의 조성시기를 파악하고자 하였으며 마애불의 조성배경도 유추하였다. 무릉리 마애여래좌상의 조성시기를 파악하기 위해 먼저 흥녕선원 발굴성과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흥녕선원은 10세기 중·후반경에 중창되었으며 이후 11세기 후반경과 12세기경에 사찰의 중 창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통일신라시기에도 사찰은 존속하였으나 발굴조사 분석결과 사세는 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무릉리 마애여래좌상의 조성시기를 파악하기 위해 인접한 흥녕선원 의 발굴조사결과와 더불어 마애불의 형식적 특징을 분석하였다. 마애불의 형식적 특징은 두광, 발 바닥이 정면을 향한 결가부좌 모양, 마애불의 상호 비례, 보개 착용 방법, 착의 법 등을 분석하였 다. 마애불 두광의 경우 흥녕선원에서 10세기 중·후반 경 사용한 막새와 화판의 모양이 유사하였 다. 마애불의 독특한 발 모양은 985년에 조성된 고령 개포동 마애보살좌상의 발과 닮았다. 마애불 의 상호는 코를 중심으로 발제선과 턱의 길이 비율이 1:1이었다. 이러한 상호 분할 비율은 10세기 강원도 불상의 상호에서 유행한 형태이다. 마애불의 머리 윗부분을 다듬어 보개를 올리는 형식은 981년 제작된 이천 태평흥국명 마애보살좌상에서도 찾을 수 있다. 무릉리 마애여래좌상의 착의법 은 10세기경 원주를 중심으로 강원도 지역에서 유행한 형식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무릉리 마애여래좌상 옆에 세워져 있는 청석탑의 경우 본문에서는 14세기경 조성된 탑으로 추 정하였다. 그 근거로는 청석탑의 화강암 기단부가 고려 후기 영월지역에 조성된 무릉리 삼층석탑, 주천리 삼층석탑과 유사한 점을 들었다. 이와 함께 석탑 탑신부 표면에 원문을 만들고 범어문자를 새겨놓은 점 역시 시대 하강의 요인으로 파악하였다. 최근에 실시된 무릉리 마애여래좌상 지역 발 굴조사 결과를 통해서도 입증되었다. 무릉리 마애여래좌상의 미술사적 의의는 태봉시기와 고려 초기에 중앙정부에 소속되어 활동하 였던 명주출신 석장들의 활약상을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통일신라 전통을 계 승한 무릉리 마애여래좌상은 흥녕선원의 중창과 더불어 사세가 확장되면서 흥녕선원 입구, 절경의 자리에 사찰의 지원을 받아 10세기 후반 경 건립된 것이라 할 수 있다. This sitting Buddha is 3.5m high. It is engraved in high relief of the rock wall. The round face has big eyes, short nose. The clothes of the carving are thick. The lap of the Buddha is wide when compared whit the upper part of the body and the torso is disproportionately long. The hands are in an unusual position with the right hand raised up to the breast exposing the back of the hand, and the left hand also raised up the breast but exposing the palm of the hand. The pedestal is in proportion to the width of the lap. This statue is brimming with energy but it is not at all proportioned and the folds of clothes and each part of the body are formalized. Local artisans probably made it during late 10th century in Goryeo Dynasty period. Although the stonemasons were local artisans, they had worked for central government. When the Goryo Dynasty founded by Wanggun in 918, most of the stonemasons who worked for the government originated form east side of Gangwon Province. Because of that, the Sitting Buddha image has various style of the Buddha image which had been fashioned all around Goryeo for the 10th century. Images engraved on rock walls are very rare in Gangwon Province, so this Buddha statue is highly valued. This article also studied that the Blue-stone stupa which located in front of the sitting Buddha image in Mureungri was made around 14th century.

      • KCI등재

        여래형 복식착용 보살상의 등장과 전개 - 청담사지 자씨각 보살상을 중심으로 -

        정성권 동악미술사학회 2017 東岳美術史學 Vol.0 No.22

        불상은 크게 여래상과 보살상으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여래상은 착용하고 있는 복식 이외에보관이나 장신구 등을 갖추지 않는다. 이에 반해 보살상은 화려한 보관과 천의, 영락을 비롯한 각종장신구로 신체를 치장한다. 불교미술에서 보관과 장신구를 착용한 여래상이 존재하나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유행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말여초이후 여래형 복식을 착용한 보살상이 등장하고 있어 주목된다. 여래형 복식착용 보살상에 대해서는 일부 작품을 제외한 경우 구체적인 조성시기와 조성배경등이 알려지지 않았다. 본 논문에서는 고려 초 등장하는 여래형 복식착용 보살상의 제작시기와 배경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여래형 복식착용 보살상은 크게 머리에 방형의 보개를 착용한 보살상과 그렇지 않은 보살상으로나누어진다. 본고에서는 여래형 복식을 착용 보살상을 면류관형 보개착용 석조보살상과 여래형 대의착용 석조보살상으로 분류해 고찰하였다. 면류관형 보개착용 보살상으로는 안성 매산리 석조보살입상, 논산 관촉사 석조보살입상, 부여 대조사 석조보살입상, 포천 구읍리 석조보살입상, 당진 안국사지 석조보살입상 등이 있다. 여래형 대의착용 석조보살상은 원주 매지리 석조보살입상, 우리 옛돌박물관 석조보살입상, 원주 봉산동 신선암 석조보살입상, 서울 광진구 상부암 석조보살입상, 황해도 금천군 영파리 석조보살입상, 서울 은평구 청담사지 자씨각 석조보살입상 등이 있다. 면류관형 보개착용 보살상은 고려 광종대 처음 등장한 불상이다. 이러한 형태의 보살상에 대한연구는 비교적 많이 축적되어 있다. 본문에서는 면류관형 보개착용 보살상의 조성시기와 조성배경등을 검토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여래형 대의착용 보살상의 조성시기를 유추하였다. 960년 경 조성된 안성 매산리 석조보살입상이 여래형 복식착용 보살상 중 가장 먼저 등장하는 불상이다. 본문에서는 원주 매지리 석조보살입상과 옛돌 박물관 석조보살입상의 조성시기 역시 이와 비슷한 때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원주 봉산동 신선암 석조보살입상과 광진구 상부암 석조보살입상은 조성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청양 석조삼존불입상과의 비교를 통해 10세기 후반 경에 건립된 것으로 보았다. 영파리 석조보살입상과 자씨각 석조보살입상은 서로 매우 닮은 모습이다. 이 두 불상의 조성시기는 11세기 전반기로 추정하였다. 자씨각 석조보살입상의 조성시기를 파악하는데 있어 황해도 금천군 영파리 석조보살입상의 존재가 주목되었다. 두 불상이 서 있는 장소는 개성에 진입하는 개성 북쪽과 남쪽의 교통로가 수도 진입 직전 모두 모이는 장소에 건립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 보살상과면류관형 보개착용 보살상 등을 통해 여래형 복식착용 보살상은 중앙정부의 관심 하에 조성된 불상으로 파악하였다. 면류관형 보개착용 보살상은 10세기 중·후반 경에 유행하다 11세기 들어와 거의제작되지 않았다. 반면 여래형 대의 착용 보살상은 11세기경부터 주로 건립되었는데 그 이유는 요와의 외교관계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Buddha is the religious teacher and founder of Buddhism. Buddha statue usually wear Buddha costume which doesn't have any ornament. On the contrary, Bodhisattva statue have many ornateness. This article studied about Bodhisattva which wear Buddha costume in early Goryo dynasty. This kind of Bodhisattva divided into two type. One is the Bodhisattva that wear square holy hat. The other is the Bodhisattva which wear Buddha costume without square holy hat. The first type Bodhisattva are Ansung maesanri standing stone Bodhisattva, Nonsan Kwonchoksa standing stone Bodhisattva, Buyeo Daejosa standing stone Bodhisattva and Pocheon gueumni standing stone Bodhisattva. All of them wear Buddha costume and square hat. The second type bodhisattva are Wonju maejiri standing stone Bodhisattva, Wori stone museum standing stone Bodhisattva, Wonju bongsandong standing stone Bodhisattva. Kwangjingu Sangbuam standing stone Bodhisattva, Hwanghaedo geumcheongun yeongpari standing stone Bodhisattva and Eunpyonggu Cheongdamsaji standing stone Bodhisattva. Those two type standing stone Bodhisattva wear Buddha costume and located near important traffic routes. It means that When those Bodhisattva made, the central government support the making of Bodhisattva. Around late 10th century the first type Bodhisattva were made, after 11th century the second type Bodhisattva were made. This article studied that why wearing square hat Bodhisattva didn’t made after 11th century. This study presumed the reason. It had diplomatic relations with Liao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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