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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북장로회 해외선교본부의 동아시아 인식과 105인 사건
이성전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12 한국기독교와 역사 Vol.36 No.-
본 논문은 선교사가 관여됨으로 인해 국제적 사건으로 주목을 받았던 ‘105인 사건’(데라우치총독암살미수사건, 1911년) 당시 미국북장로회 해외선교본부의 동아시아인식, 그리고 당시 그들의 문명관을 해명해보고자 하였다. 미국북장로회 해외선교본부에서 동아시아를 담당하던 브라운(A. J. Brown)과 스피어(R. Speer) 총무의 동아시아인식을 그들의 문명관을 중심으로 검토하고, 제국주의, 식민지주의에 대해 그들이 얼마나 근접한 생각을 지녔는지를 살펴보며, 함께 ‘정치불개입 원칙’에 입각하여 일본제국주의에 대해 결과적으로 동조했던 점을 지적하였다. 나아가 ‘한국병합’의 상황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지배를 인정한 것을 전제로 ‘한국선교부’와 ‘일본선교부’의 병합을 시도했는데, 이 과정에서 선교본부와 현지 선교부 간의 갈등이 발생한 것도 밝히고자 하였다. 또한 105인 사건 연구에서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와타나베[渡?暢], 즉 당시 기독교인이며 조선고등법원장이던 그와 ‘미션 네트워크’ 간의 관계도 해명하고자 했다. 이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장로교사료보관소의 자로들과 WCC도서관 소장 자료철을 통해 새롭게 밝혀진 사실인 바, 선교사 연루를 둘러싼 미국과 유럽 기독교계의 여론이 반영되어 한국주재 선교사들을 불기소처분 하게 되는 과정에서 와타나베가 일정한 역할을 한 사실을 밝히고자한 것이다.
이성전 한국종교교육학회 2007 宗敎敎育學硏究 Vol.24 No.-
정산은 원불교의 교조인 박중빈의 사상을 계승하여 원불교의 교법과 교단의 체제를 정비하였다. 그는 소태산의 사상을 체계화하고 재해석해 감에 있어 불법을 주체로 하면서도 성리학의 사상을 폭넓게 활용하였다. 그는 특히 인도상 요법을 주체로 결함 없는 문명세계를 건설한다는 이상의 실현에 깊은 관심을 지녔다. 그는 세상을 바르게 인도한다는 의미를 지닌 치교를 중시하고 그 실천방향에 관해 도치와 덕치와 정치의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세 가지는 그의 전체사상을 파악하는데 매우 유용한 개념적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에 관한 그의 관점은 건국론에 주로 나타나는데 정의의 이념에 바탕하여 자유와 평등, 평화의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 내용은 근대 서구의 사회사상의 영향이 반영되어 있다. 덕치에 관해 그는 성리학적 이념을 수용하여 예와 악을 통한 교화를 중시하였으나 그 한계를 지적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하였다. 도치의 이념은 주로 불교적 세계주의의 이념에 바탕한 것으로서 삼동윤리란 개념으로 구체화되었다. 삼동윤리는 동원도리 동기연계 동척사업으로서 이를 통해 갈등과 대립이 극복된 대동사회를 건설하자는 것이 그 지향방향이다. 대동사회란 표현은 유교사상에서 유래되었으나 그가 불교적 이념에 바탕하여 내용을 확장한 것이다. 그 외에도 유․불․도 등의 전통사상에 대한 섭렵뿐 아니라 근대 서구의 사회사상에 대한 독자적 해석과 수용의 과정도 작용하고 있다. 사회를 바르게 다스려 바람직한 이상사회를 건설한다는 경세론적 관심이 보다 구체적인 형태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미국 북장로회 해외선교본부의 동아시아 인식과 105인 사건 -미국 필라델피아 장로교사료보관소 자료와 일본의 연구를 중심으로-
이성전 한국기독교역사학회 2012 한국기독교와 역사 Vol.36 No.-
본 논문은 선교사가 관여됨으로 인해 국제적 사건으로 주목을 받았던 ‘105인 사건’(데라우치총독암살미수사건, 1911년) 당시 미국북장로회 해외선교본부의 동아시아인식, 그리고 당시 그들의 문명관을 해명해보고자 하였다. 미국북장로회 해외선교본부에서 동아시아를 담당하던 브라운(A. J. Brown)과 스피어(R. Speer) 총무의 동아시아인식을 그들의 문명관을 중심으로 검토하고, 제국주의, 식민지주의에 대해 그들이 얼마나 근접한 생각을 지녔는지를 살펴보며, 함께 ‘정치불개입 원칙’에 입각하여 일본제국주의에 대해 결과적으로 동조했던 점을 지적하였다. 나아가 ‘한국병합’의 상황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지배를 인정한 것을 전제로 ‘한국선교부’와 ‘일본선교부’의 병합을 시도했는데, 이 과정에서 선교본부와 현지 선교부 간의 갈등이 발생한 것도 밝히고자 하였다. 또한 105인 사건 연구에서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와타나베[渡辺暢], 즉 당시 기독교인이며 조선고등법원장이던 그와 ‘미션 네트워크’ 간의 관계도 해명하고자 했다. 이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장로교사료보관소의 자료들과 WCC도서관 소장 자료철을 통해 새롭게 밝혀진 사실인 바, 선교사 연루를 둘러싼 미국과 유럽 기독교계의 여론이 반영되어 한국주재 선교사들을 불기소처분 하게 되는 과정에서 와타나베가 일정한 역할을 한 사실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