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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利用厚生學派의 成立과 李喜經의 『雪岫外史』

        오수경(Oh Soo-kyeong) 대동한문학회 2003 大東漢文學 Vol.19 No.-

        『Seolsuoisa』 of Lee, Hee-kyung has not yet been known well in the country, the contents of this book are almost identical with that of 『Yeolhailgi』 or 『Bukhakui』 of Leeyonghusaeng school. However, there is a little difference in that two writers of these books usually have the so-called mercantilism thought which acts for the interests of municipal merchants·handicraftsmen, while this 『Seolsuoisa』 lays its theoretical foundation on physiocratism thought which takes an interest in the income enlargement for peasants through technical innovation in agriculture. Lee, Hee-kyung also has emphasized the life-ization of Leeyonghusaeng' science on the basis of the scientific cause 'Simmyungmulri', that is, “let's make the laws of things clear and then the life of the people abundant”, which shows a fragment of scientific thought by Yeonam et al. He went to China as many as 5 times with the intention of realizing this Leeyonghusaeng science, that is, to confirm its advanced civilization(institutions) in person, learn the principles and rules, and then to apply it to our actual life. The fact, that he wrote 『Nonggido』 or manufactured Yongmicha in person and put it to the test-running, seems to be a practice of Leeyonghusaeng will. Especially, while several agriculture-related theories written in 『Yeolhailgi』 or 『Bukhakui』 which contains the highest level theories of Leeyonghusaeng science are mostly empirical contents in China or the introduction of related writings in China and they were realized through practical farming experience in our country, 『Seolsuoisa』 of Lee, Hee-kyung has introduced his own agricultural theories obtained after purchasing paddy and dry field at Hongchon in Kangwon-do and tilling in person - through practical experiment of 『Gugeonbup』 or presentation of vivid agricultural theory in the field of life - which seems to be the fruits of making up for the theoretical vulnerability in 『Yeolhailgi』 or 『Bukhakui』. It can be confirmed from the fact that a theory about 'Gugeonbup' in 『Bukhakui』 or articles about farming tools mostly accepted the logic in Seolsuoisa of Lee, Hee-kyung as it was. This point is the characteristic aspect of the very 『Seolsuoisa』. Therefore, it seems that this book has succeeded to the scientific fruit of Leeyonghusaeng already achieved by Yeonam et al. to a certain extent, further developed it all the more in terms of theory. In addition, these characteristics have shown empirically that several practical schemes concerning Leeyonghusaeng science of Yeonam school group come to the one conclusion after going through joint discussion and work debate among the figures within the group. Finally it is confirmed that the 『Nonggidoseo』 of Lee, Hee-kyung has played the role of clearly carving, in the Korean Chinese literature history, the formation of Leeyonghusaeng school and the school succession of Yeonam school vein in the practical science thought history in the later Chosun period. 이희경(李喜經)의 『설수외사(雪岫外史)』는 그 동안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것으로 이 책의 내용은 이용후생학파(利用厚生學派)의 『열하일기(熱河日記)』나 『북학의(北學議)』와 대동소이하다. 다만 앞선 두 저서가 대개 도시의 상인·수공업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른바 중상적 사상(重商的思想)을 띠고 있음에 반하여, 이 『설수외사』는 농업의 기술혁신을 통한 농민의 소득증대에 관심을 둔 중농적 사상(重農的思想)에 그 이론적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 조금 다를 뿐이다. 이희경 역시 '심명물리(深明物理)' 곧 “사물의 이법을 널리 밝게 연구하여 국민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자”는 과학적 사유를 그 근간으로 삼아 '이용후생'의 학문을 생활화할 것을 강조한 바, 이는 연암그룹의 과학적 사고의 일단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이용후생의 학문을 실현하기 위해 무려 다섯 차례나 중국에 들어갔다. 이는 그곳의 진보된 문물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그 이법을 배워 우리나라의 실생활에 직접 응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농기도(農器圖)』를 저술한 것이나 용미차(龍尾車)를 직접 제작하여 손수 시험운행한 사실은 이용후생의 정신을 그 실천에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이용후생학의 최고의 이론수준을 담은 『열하일기』나 『북학의』에 기술된 농업에 관련된 여러 이론들이 대부분 중국에서 견문한 내용이나 중국측의 관련저술을 소개한 것이고 우리나라의 실제 영농경험을 통해 이루어지지 못했던 데 반하여, 이희경의 『설수외사』는 그 자신이 직접 강원도 홍천협에다 몇 뙈기의 논밭을 장만하여 이곳에서 자신의 농업이론-예컨대 구전법(區田法) 같은 것을 실제로 실험하기도 하여, 생활현장에서 경험한 생생한 농업이론을 제시한 것은,『열하일기』나 『북학의』의 이론적 취약성을 보완하는 성과를 거둔 것이라 할 수 있다. 『북학의』의 '구전법'에 관한 이론이나 농기구에 관한 조목들이 대개 이희경의 『설수외사』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한 것은 바로 이와같은 면을 반영한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설수외사』의 특징적 면모다. 따라서 이 저서는 연암그룹이 기존에 성취한 이용후생의 학문성과를 일정하게 계승하면서 아울러 이론적인 면을 더욱 발전시켜 놓았다는 사실을 여기저기 찾아볼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특징은 연암그룹의 이용후생학에 관한 여러가지 실천방안들이 그룹내의 인물들 상호간에 공동의 논의와 연구·토론을 거쳐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결국 조선후기 실학사상사(實學思想史)에서 이용후생학파의 성립과 연암학맥(燕巖學脈)의 학파적 계승을 한국한문학사에 뚜렷이 각인하는 역할을 이희경의 『농기도서』는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증강현실(AR)을 이용한 가상 피팅 시스템의 설계 및 구현

        오수경(Soo-Kyeong Oh),오정아(Jeong-Ah Oh),박구만(Goo-Man Park) 한국방송·미디어공학회 2020 한국방송공학회 학술발표대회 논문집 Vol.2020 No.11

        현대인들의 인터넷 사용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소비자들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의류를 구매하기보다 인터넷 쇼핑을 통한 구매를 선호하게 되었다. 그러나 온라인 구매로 인해 정확한 스타일 확인 불가 및 확신할 수 없는 사이즈로 큰 불편함을 겪고 있다. 따라서 최근 가장 떠오르는 기술 중 하나인 AR을 실생활에 적용하여 사용자가 매장에 가지 않고 집에서도 편하게 자신의 스타일링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AR 피팅룸을 구현하여 솔루션을 제안하고자 한다. 본 프로젝트에서는 3D 표현을 위해 Kinect Xbox 카메라를 사용하여 사용자의 신체정보를 추출한 후 unity와의 연동을 통해 사용자에게 편리함을 제공할 수 있는 AR-fitting 시스템을 설계하였다. 선택한 옷을 가상으로 입어 볼 수 있는 쇼룸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제스처 인식을 통해 보다 편리한 의류 선택 및 사이즈 조절 등을 가능하게 하였다. 또한, 사용자의 입력 정보에 따른 사이즈 측정 결과를 제공함으로써 사용자의 의류 구매를 보다 효과적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 Kinect를 이용한 AR 가상 피팅룸 설계 및 구현

        김율곤 ( Yul-gon Kim ),오수경 ( Soo-kyeong Oh ),오정아 ( Jeong-ah Oh ) 한국정보처리학회 2020 한국정보처리학회 학술대회논문집 Vol.27 No.2

        요즘 대한민국은 코로나 19로 인하여 외출이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의류를 구매하기보다는 인터넷 쇼핑으로의 구매를 선호하게 되었으며 온라인 구매로 인해 정확한 스타일 확인 불가 및 확신할 수 없는 사이즈로 큰 불편함을 겪고 있다. 따라서 최근 가장 떠오르는 기술 중 하나인 AR을 실생활에 적용하여, 사용자가 의류 매장에 가지 않고 집에서도 편하게 자신의 스타일링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AR 쇼룸을 구현하여 솔루션을 제안하고자 한다. 본 프로젝트에서는 3D로의 표현을 위해 Kinect Xbox 카메라를 사용하여 사용자의 신체정보를 추출한 후 unity와의 연동을 통해 사용자에게 편리함을 제공할 수 있는 AR-fitting 시스템을 설계하였다. 또한, 우리는 선택한 옷을 가상으로 입어 볼 수 있는 쇼룸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제스처 인식을 통해 보다 편리한 의류 선택 및 사이즈 조절 등을 가능하게 하였고, 이러한 시스템은 사용자의 의류 구매를 보다 효과적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 KCI등재
      • KCI등재
      • KCI등재
      • 靑溪 金璡의 선비의식과 書堂敎育

        오수경 안동대학교 1995 退溪學 Vol.7 No.1

        청계 김진의 이러한 강학활동은 물론 안동의 선비문화 형성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짐작된다. 왜냐하면 안동의 순수처사들은 현실정치에 직접 참여한 인물들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중앙의 정계에 참여한 관인들과는 그 생활방식이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의 양반사대부는 과거를 통해 입신출세하여 經世濟民하는 일을 학문하는 궁극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과 가문의 명성을 유지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이들의 기본적인 생활방식이었던 셈이다. 그런점에서 청계의 손자인 雲川 金涌(1557-1620)이 자손들에게 "한 가문의 흥망성쇠는 그 자손을 보면 알 수 있는 바/가문을 높이는 일은 자손들의 현부에 달려있다"라고 경계한 말은 시사하는바 크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운천은 자신의 선조들이 입신양명한 것은 우연의 일이 아니고 바로 돈독한 '가정교육의 힘'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와같은 생각은 결국 운천으로 하여금, 但供飮食非純孝, 음식 공양 잘하는 일 만이 효도하는 일 아닌 바, 願繼先人再起門。선조의 유업 계승하여 우리 가문 다시 일으키세。 라는 戒言을 후손들에게 남기게 하였다. 선조들의 유업을 계승하여 '가문을 부흥시키는 일'은 자신의 의무일 뿐 아니라 자기 자손들의 책무라고 규정한 것이다. 운천의 이와같은 가문의식은 청계의 교학정신이 그의 자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와같은 가문의식은 오늘의 안동사람들에게 면면히 내려오는 특성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운천의 부친이며 청계의 둘째 아들인 龜峯 金守一(1528~1583)의 처사적 행동양식은 역시 청계의 교학정신을 면면히 계승한 것이라 할 만하다. 당시 구봉은 부암의 白雲亭자에서 아버지의 유업을 그대로 이어받아 집안의 자질이나 향리의 자제들을 교육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뿐만 아니라 청계의 넷째 아들인 鶴峰 金誠一(1538~1583)은 임하현 동쪽의 원곡에다 새로 농장을 개설하여 수백주의 소나무를 심어 자손들의 경제적 기반을 삼도록 만들었고, 45세 이후는 처가를 따라 안동부의 서쪽인 西後面 金溪里로 이주하여 청성산 아래에다 石門精舍를 건립하여 이곳에서 역시 강학의 뜻을 펴려고 한 바 있다. 이때 그는 권호문과 함께 석문정사를 건립하고 정사 부근의 전답을 확보하여 역시 서당을 유지하는 경제적인 기반으로 삼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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