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원문제공처
          펼치기
        • 등재정보
        • 학술지명
          펼치기
        • 주제분류
          펼치기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唐代 制書式 復元의 재검토 ― 制授告身式과 制授告身의 분석을 중심으로 ―

        양진성 중국고중세사학회 2019 중국고중세사연구 Vol.52 No.-

        制书式是针对唐皇帝为实现自身意志而使用的命令文书即制书的格式及书写做出的规定。该制书式在唐的律令中被归类为《公式令》项目中,但唐代的律令现今已不再传承。但可以20世纪初在敦煌发现的《公式令残卷》的制授告身式和唐令为范本的日本的《养老公式令》诏书式为根据来复原唐开元年刊的制书式。《唐令拾遗补》的制书式是首次复原,也是以此后追加的经确认的实际资料为基础补充的《唐令拾遗补》的制书式。因此,《唐令拾遗补》的制书式堪称制书复原的终结版。尽管取得了这样成果,但《唐令拾遗补》的制书式并未准确体现《公式令残卷》的制授告身式中明示的字体大小和行的排列及有关常用句的注记等内容。制授告身式中中书令、中书侍郎、中书舍人的官封臣姓名和侍中、黃门侍郎及给事中的官封臣名部分为小字体。本稿通过对所有至今可进行确认的唐代制授告身资料进行探讨结果,确认了中书省官员的官封臣姓名与门下省官员的官封臣名部分均标注为小字。此外,《公式令残卷》的制授告身式中也存在错误记载。《公式令残卷》的制授告身式中“等言、制书如右请奉、制付外施行谨言”等字句中只有“等言”才是大字,而“制书如右请奉、制付外施行谨言”等则为小字。但通过确认唐代的制授告身资料等发现,“等言、制书如右请奉、制付外施行谨言”等均标注为大字。下面制授告身式的“制可”一行实际上是由侍中临摹的皇帝的御画也就是即“可”,该字句则位于制授告身式中的第1列。但在唐代制授告身资料中发现该字句并非位于第1列而可在行的中间发现。最后,在《唐令拾遗补》的制书式中称“可御画”,并未将“可和作为其注记的“御画”进行区分。也就是将正文和注解全部使用同样大小的字体来体现。但从《公式令残卷》的奏授告身式中称为“闻御画”来看,将制书式的“可御画”实际上也使用“可御画”标注应该的正确的。通过与上述实际文书资料进行比较和对照,在本稿对至今复原的制书式进行了部分修改。 同时,在本稿中还对构成制书文书的常用句标注方式的缘由及其制度性依据进行了考证。参与制书的书写和成文的中书省和门下省官员的官品一致。尽管如此,中书令、中书侍郎和中书舍人等希望以“臣姓名”的方式标注自身的身分,而侍中、黃门侍郎和给事中只按“臣名”来称呼,并不称谓自己的“姓”。这一差异源于制书的书写和成文中中书省和门下省所执行的职掌的差异。中书省官员亲自受皇帝之命书写制书草稿,并将其转达给门下省。因这些官员直接奉行皇帝的命令,从而出于对其礼敬而称为“臣姓名”。另外,门下省对制书进行审议而上呈执行请求的覆奏文,此时因覆奏文属于奏事的一种,从而按照奏事的格式只称为“臣名”。根据唐制规定,五品以上的官员在奏事时不称呼姓氏,因为书写覆奏文的门下省的三官均为五品以上。再有,这一门下省的覆奏文形式在唐代整个時期与通用表文格式大致一致。也就是,门下省的覆奏文其实就是采用表文形式的覆奏文。此外,可确认侍中将皇帝的御画即“可”改为“制可”并非源于汉代的“制曰可”,而是源于南北朝时代侍中替代皇帝的裁可进行宣告时称其为“制曰可”的这一事实。

      • KCI등재

        흉부 데스모이드 종양에 대한 수술적 치험 − 2예 보고 −

        양진성,원용순,허균,오홍철,신화균 대한흉부외과학회 2010 Journal of Chest Surgery (J Chest Surg) Vol.43 No.2

        데스모이드 종양은 조직학적으로 양성이지만 임상적으로는 악성으로 취급된다. 완전절제가 최선이고재발 시에도 재절제를 시행하는 것이 권장된다. 본원에서는 흉부에 발생한 데스모이드 종양에 대한 재발 2예를 경험하였고 재수술로써 완전히 절제하였다. 두 환자 모두 수술 후 양호한 경과를 보여 퇴원하였고, 현재는 특이 합병증 및 재발 없이 외래 관찰 중이다. 이에 문헌 고찰과 함께 보고하는 바이다. Desmoid tumor is histologically benign, but this tumor is clinically considered to be malignant. Surgical resection is one of the most effective therapeutic options for patients with this tumor and resection is the best choice for cases of recurrence. We experienced two cases of recurrence of thoracic desmoid tumor, and the patients were repeatedly treated by surgical resection. The patients were discharged without any complications, and careful follow up has been performed periodically. Therefore, we report on these cases of recurrent desmoid tumor along with a review of the related literature.

      • KCI등재

        네일 건(nail gun) 사고에 의해 전경부 기도 손상은 있었으나 식도 손상 없이 장 내로 유입된 못에 대한 치험 −1예 보고−

        양진성,신화균,이재욱,원용순,박영우 대한흉부외과학회 2008 Journal of Chest Surgery (J Chest Surg) Vol.41 No.5

        A 42-year-old male was admitted because of an anterior neck injury due to accidental firing of a nail gun. On chest X-ray, the nail was stuck in the anterior neck, migrated to the chest, and then to the abdomen. Only the trachea was damaged, leaving no injury in the esophagus. The nail in the intestine was removed by colonoscopy. The patient showed complete recovery without complications after fasting and conservative treatment. We report this case with a literature review.

      • SCOPUSKCI등재
      • KCI등재

        량대(梁代) 봉칙찬묘지(奉勅撰墓誌)를 통해 본 묘지명(墓誌銘)의 정형화(定型化)-묘지(墓誌)에 등장하는 왕언문서(王言文書) 운영방식(運營方式)의 분석(分析)을 겸(兼)하여-

        양진성 중국사학회 2016 中國史硏究 Vol.105 No.-

        現存的南朝時期墓誌中, 標注爲“奉勅撰”的共有3個. 具體來說就是《梁天監元年(502)蕭融墓誌》ㆍ《梁普通元年(520)蕭敷墓誌》和《梁普通元年(520)蕭敷妻王氏墓誌》等. 通過墓誌中標注的“奉勅撰”這個詞語可了解到這些文章也就是墓誌銘是受皇帝之命而制作的. 但“奉勅撰”中的“勅”字幷非代表皇帝命令的常用的說法. 也就是說, “勅”幷非“詔勅”的簡略語. 這裏的“勅”是與“詔”所不同系統和用途的?一種王言文書. 在南朝時期, 皇帝的文書行政方面作爲體現自身的意志的手段使用了詔與勅這兩個系統的王言文書. 詔就是詔書, ?是在中書書寫原案後經門下的審核後再傳達到尙書來執行, 而其使用在全國性公告以及需要執行的“大事”方面. 而與此相反, 勅是用於面向臣僚的皇帝個人私下的囑托或意見的交換, 器物的賜與以及詩文的撰述等這些“小事”中. 此外, 其傳送過程也是不經過門下的審核或尙書的執行, 而是由中書書寫後直接被執行. 因墓誌銘的制作也屬於詩文的撰述範疇, 皇帝通過勅來命令制作墓誌銘應符合當時勅的用途. 同時, 本稿中探討的3篇墓誌銘中詔與勅是嚴格區分開來的. 因而從以上事實來看, 墓誌銘中標注的“奉勅撰”的“勅”幷非對皇帝命令的總稱, 而指的是當時行政中使用的被稱爲飭的王言文書. 也就是說“奉勅撰”指的就是皇帝通過被稱爲“勅”的王言來發出制作墓誌銘的命令. 但皇帝發出飭來命令制作墓誌銘這件事從當時墓誌銘的制作慣例方面來看是相當破格的事情. 因爲, 一般此前的墓誌銘是由與亡者有著直接或間接關系的人們自發性制作的. 更何況本稿中列擧的蕭敷夫婦的墓誌銘雖均通過飭來制作, 但蕭融夫婦中只有丈夫蕭融獨自通過勅來制作墓誌銘, 而起妻子的《王纂韶墓誌銘》却幷非如此. 蕭敷與蕭融均在死後得到王的追封, 同時蕭敷的妻王氏與蕭融的妻王氏均在生前被冊封爲太妃, 從而?們二人的地位相同. 盡管如此, 從只有蕭敷夫妻與蕭融的墓誌銘通過勅制作來看, 可知勅撰的墓誌銘幷非因規定的制度而制作, 而是根據皇帝的本意來制作的. 換而言之, 勅撰的墓誌銘是需要皇帝特別的關心和關照才可以的. 從而可知, 墓主的家人正是爲了强調這一點而在墓誌銘中添加“奉勅撰”這個詞語. 而這一處理方式自然而然地使墓誌銘形式與此前的方式有所不同. 在“奉勅撰”這個詞語前列擧了撰者的官職和姓名. 這是在此前的墓誌銘中未得到確認的敍述方式. 記錄制作墓誌銘的人的官職和姓名, 幷標注其制作是經皇帝的飭所爲是在梁代首次得以確認的. 因此, 梁的奉勅撰墓誌從起制作經過與形式來看, ?在當時是屬於想到特殊的情況. 盡管如此, 也需要關注這一類型的墓誌銘幷未隨著梁的消失一同消失. 在墓誌銘的冒頭標注文章撰寫者的方式在此後陳的墓誌銘中也得到確認. 而唐的奉勅撰墓誌的形式與用途方面也與梁的奉勅撰墓誌類似. 墓誌銘的主人公主要局限於皇室的成員, “`奉勅撰”這個詞語的標注方式(標注撰寫者的官職及姓名以後, 按奉勅撰的順序列擧)等方面梁與唐是一致的. 因而, 可推斷出梁的奉勅撰墓誌是延續到唐朝, 給唐的奉勅撰墓誌的形成帶來了一定的影響. 從這一點來看, 可認爲梁的奉勅撰墓誌對中國墓誌銘的定型化起到了重要的作用. 與此相反, 至今未發現北朝的奉勅撰墓誌. 而且也未發現在北朝時期有皇帝命令朝臣制作墓誌銘的事例, 幷且在現存的宗室諸王的墓誌中幷無與奉勅撰墓誌形式類似的墓誌. 從而, 根據至今可確認的文物和記錄可知在梁首次出現的奉勅撰墓誌是越過北朝在唐再現的. 因此, 探究南朝奉勅撰墓誌是否對北朝有直接影響以及從北朝到唐的具體繼承關系將是今後的課題.

      • KCI등재

        南朝의 王言 敕의 정립과 그 운영

        양진성 중국고중세사학회 2012 중국고중세사연구 Vol.27 No.-

        中國南朝時期皇帝下達旨令形式有“詔”和“敕”. “敕”可以分爲‘戒敕’和‘敕’. ‘戒敕’是訓戒臣子, 鼓勵官僚時發布的文書. 這是跟漢朝的戒敕一樣. 可是後者‘敕’是南朝獨特的文書. 這種文書形式在漢朝歷史上不能找同樣的實例. 這“敕”是皇帝對臣僚的安慰,賜與, 或者私人通信等比較簡單的文件形式. 例如;大赦, 開元, 救恤, 征伐, 稅收減免等施行國家大事時用詔書. 這些事都屬於全國性的大事. 發布小事的敕是從南北朝到唐朝一直用過. 唐朝的慰勞制書(慰勞詔書),論事敕書和南朝時期的敕, 其用途很相似. 所以唐朝的文書行政慣例來源於南朝的制度而南朝的律令條文不流傳後世. 因此, 與慰勞制書相似的南朝敕的具體名稱還不詳. 所以本論文, 將這一用法的一些敕統稱爲‘敕’而硏究. 漢魏時期,除了戒敕以外, 皇帝的命令都是通過詔書發布. 可是南朝時期皇帝的旨令很嚴格地分爲詔和敕. 這樣的習慣是南朝時期開始的. 這是因爲到南朝時期才確立律令體制. 漢朝時雖然制定一些律令, 可是南朝時期正式化. 這時候除了律令以外, 還制定‘條,格,科’等細則. 因此, 效力不同的法律的出現影響到文書行政. 這樣的慣例通過南北朝, 到唐朝時期確定了公式令.

      • KCI등재

        『十六國春秋輯補』 所收 「後秦錄」의 史的 考察(1): 後秦 前史 - 『十六國春秋輯補』 卷49, 「後秦錄」1 註解 -

        양진성 중국사학회 2023 中國史硏究 Vol.- No.144

        隴西지역의 羌 집단을 대대로 지배했던 姚氏 일족의 수장 姚弋仲은 西晉 永嘉시기에 羌人들을 이끌고 關中지역으로 들어와 세력화를 도모했다. 그는 前趙에서 後趙로의 교체기에 後趙에 협력했고 後趙의 군주 石虎와 그의 아들 石祉를 위해 여러 차례 큰 戰功을 세워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리하여 그는 後趙로부터 높은 官爵을 수여 받고 일정한 명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後趙 정권이 붕괴된 후에도 姚弋仲과 姚襄이 여전히 직할의 군단을 보유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後趙 정권 내에서 姚弋仲의 羌 집단은 상당한 수준의 자립을 유지했음을 알 수 있다. 後趙 정권이 붕괴된 후, 그는 다른 北族係 국가들에 속하는 것을 거부하고 강남의 東晉과 제휴를 시도했는데 본의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후 아들 姚襄이 東晉으로부터 官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동진을 침공하는 한편 중원의 許昌, 洛陽 방면을 점령하여 독자적인 정권을 수립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姚襄의 계획은 동진의 반격으로 좌절되었다. 그는 최후로 다시 關中에 들어가 재기를 노렸으나 당시 關中지역을 장악했던 신흥 강국 前秦과의 대결에서 패하였으며 그 당시 前秦의 지휘관인 苻堅에게 사로 잡혀 죽임을 당했다. 다만 그의 동생 姚萇을 비롯한 형제들과 일족 및 휘하의 羌人들은 별다른 보복을 당하지 않고 그대로 前秦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 이들은 苻堅의 배려 하에 세력을 유지하다가 前秦의 붕괴 이후 姚萇을 중심으로 재결집하여 後秦을 건국하게 된다. 다음으로 본고의 작업을 통해 資治通鑑 「晉紀」의 정확성과 사료적 가치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十六國春秋輯補 는 그 내용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중대한 결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원문 내에 각 사건의 발생 시점에 대한 구체적 紀年이 상당수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 내용만으로는 사건들의 시점을 특정하는데 한계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에 결정적인 도움이 된 것이 바로 資治通鑑 이었다. 資治通鑑 「晉紀」에는 본론에서 검토한 바 있는 「後秦錄」 기사의 상당수가 수록되어 있고, 그 기사에서 언급된 사건들의 시점이 특정되어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資治通鑑 의 편년에 의거하여 十六國春秋輯補 「後秦錄」 기사의 시점을 확정할 수 있었다.

      • KCI등재

        하지정맥류의 외래수술을 위한 저용량 척추마취

        양진성,박영우,이재욱,원용순,신화균,이동기 대한흉부외과학회 2009 Journal of Chest Surgery (J Chest Surg) Vol.42 No.2

        Background: Bupivacaine with fentanyl might be suitable as the spinal anesthesia for performing ambulatory surgery to treat varicose vein. Material and Method: Thirty patients who underwent spinal anesthesia for a varicose vein operation were enrolled in this study. They were classified into 2 groups of either fentanyl 25 ug mixed with bupivacaine 4 mg (group FB4) or bupivacaine 8 mg (group B8). We compared the groups for the success of the analgesia, the recovery time from sensory and motor block, the side effects and the postoperative complications. Result: The groups did not differ significantly regarding the success of analgesia (13 of 15 [group FB4], 15 of 15 [group B8]). None of the patients were converted to general anesthesia due to surgical pain. None of the patients required medication for hypotension and/or bradycardia. The operative and nonoperative side effects of motor block (tested for by using a modified Bromage scale) was significantly lower in group FB4 than that in group B8, as checked at 2 hours after spinal anesthesia (p<0.05). Recovery from spinal block was significantly quicker in group FB4 than that in group B8 (p<0.05). The first voluntary micturition time did not differ significantly (6.5 hours v 4.5 hours [p=0.143]) between the groups, but a nelatone catheter was inserted into 2 of the group B8 patients due to dysuria. Conclusion: Adequate intraoperative analgesia and hemodynamic stability and faster mobilization were achieved using bupivacaine 4 mg with fentanyl 25 ug. Low dose spinal anesthesia with fentanyl is suitable for performing ambulatory surgery to treat varicose vein. 배경: 하지정맥류의 외래수술을 위한 마취로 Bupivacaine에 fentanyl을 첨가하여 시행한 척추마취가 적당한지 알아보고자 하였다. 대상 및 방법: 척추마취를 이용하여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은 30명을 대상으로 하였다. 척추마취제로 bupivacaine 4 mg과 fentanyl 25 ug을 사용한 군(FB4군)과 bupivacaine 8 mg을 사용한 군(B8군)으로 분류하였다. 두 군 간 적정한 마취유지, 수술중 심혈관계 합병증, 감각 및 운동차단회복시간, 수술 후 합병증을 비교 분석하였다. 결과: 마취성공은 두 군 간 통계적으로 차이가 없었다(13 of 15 [FB4군], 15 of 15 [B8군]). 두 군 모두 수술 중 통증 때문에 전신마취로 전환은 없었다. 수술 중 치료가 필요한 심혈관계 합병증은 두 군 모두에서 없었다. Modified Bromage scale로 측정한 척추마취 후 두 시간째 수술측과 비수술측 운동차단정도는 FB4군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낮았다(p<0.05). 척추마취로부터 감각 및 운동차단회복은 FB4군이 B8군보다 유의하게 빨랐다(p<0.05). 맘대로소변보기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는 없었으나(6.5시간 대 4.5시간 [p=0.143]) 배뇨장애로 넬라톤 카테터를 삽입한 경우는 B8군에서는 2예 있었고 FB4군에서는 없었다. 결론: bupivacaine 4 mg과 fentanyl 25 ug을 이용한 척추마취는 수술 중 심혈관계의 안정성이 유지되고 적당한 감각차단이 이루어지고 수술 후 운동차단 시간을 감소시켜 빠른 보행이 가능하여 하지정맥류 외래수술에 적당한 마취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