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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대(歡待)로서의 책 또는 행위로서의 철학

        박준상(Joon-Sang Park) 한국현상학회 2002 철학과 현상학 연구 Vol.19 No.-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타인으로서의 타자가 초월적임을, 즉 의식 바깥에서 주제화(thematisation)를 넘어서 언어적 표현을 초과하면서 현현(apparition)한다는 점을 되풀이 해 강조하였다. 이러한 초월적 타자에 대한 증거를 자신의 첫 번째 과제로 삼은 레비나스의 철학은 따라서 어떤 초월성을 말하는 철학, 일종의 초월성의 철학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타자의 초월성은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모순 없이, 수월하게 주장될 수 없다. 왜냐하면, 철학을 언제나 예외 없이 존재자(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도 하나의 존재자일 것이다)를 주제화하는 명제들의 집합, 존재자의 의미를 의식에 전달하는 명제들의 집합이라고 본다면, 철학은 원칙적으로 타자의 초월성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자크 데리다는 그 점을 간파하였고, 초월적 타자가 근본적으로 철학의 언어에 기입될 수 없다는, 또는 철학의 언어 안에서 자체모순을 불러일으킨다는 비판을 레비나스에게 제출하였다. 그러나 레비나스는 데리다의 그러한 비판 이후에도 자신의 〈철학〉 내에서 타자의 초월성에 대한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다. 동시에 그는 의식 너머에 관념적으로 실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전-근원적(pre-originel)으로, 의식 이전에, 감수성에 기입되기 때문에 초월적인 타자의 흔적을 철학의 언어 가운데에서 찾아내고자 한다. 결국 여기서의 문제는 철학의 언어의 또 다른 측면을 밝히는 데에, 더 정확히, 존재자의 규정 바깥에서, 의식 너머에서(au-dela) (동시에 의식 이하에서(en deca)에서 - 감수성 내에서, 감각적인 것 가운데 - 철학의 언어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살펴보는 데에 있다.

      • KCI등재
      • KCI등재

        문학의 종언에 대한 물음

        박준상(Park, Joon-Sang) 새한철학회 2016 哲學論叢 Vol.86 No.4

        문학의 종말이라는 문제는 오래전부터 제기되고 논의되어왔고, 특히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에 의해 강력하게 표명되었다. 가라타니에게 그 문제는 단순히 문학 내부의 문제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며, 정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자본주의의 문화적 상황과 연관되어 있고, 근대에서의 인간에 대한 역사적 이해와 결부되어 있고, 마지막으로 현재의 가능한 동시에 유효한 정치적 실천이라는 물음과 이어져 있다. ‘근대문학의 종언’(가라타니의 표현)이라는 그 문제는 또한 20세기 중반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가 문학을 인간주체성을 사회적 주체성으로 승격시키는 탁월한 계기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면서 여전히 확신했던 문학의 가능성이라는 결론에 대한 하나의 이의제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기서 가라타니와 그가 참조하는 사르트르가 제시한 문학의 가능성 또는 불가능성에 대한 논의들을 따라가면서 여기저기서 여전히 받아들여지거나 의문에 부쳐지는 문학의 종말이라는 문제를 다시 한 번 되돌려보고자 한다. 그러나 여기서의 가장 중요한 관건은 가라타니와 사르트르의 논의들을 반복하고 해석하고 비판하는 데에 있지 않고, 문학이 끝에 이르렀다는 판단이 논란이 되는 현재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그리고 문학적 상황 가운데로 들어가는 데에, 또한 그 상황이 암시하고 있는 귀결점에 다가가는 데에 있다. From long time ago, the issue which is the end of literature is widely proposed and discussed. And specially it was strongly expressed by japanese critic Karatani Kojin. This issue is not simply inside the literary issues. It is relating with the cultural situation of the capitalism which is headed to the summit, with the historical understanding of the human being in modern era, and finally with the question, "what could be a possible and effective political practice in the present situation?" This issue, "the end of modern literature" (expression of Kojin), is a objection of the possibility of the litterature which was still believed firmly by Jean-Paul Sartre who thought of the litterature as one of moments by which the human subjectivity can be promoted to the social subjectivity. But the most important point of our thesis is not in repeat, discussion and critic of Kojin and Sartre"s themes. We would like to enter in the present cultural political situation where the judgement by which the literature reached in an end arouse controversy, and also to approache to a suggestive conclusion of that situation.

      • KCI등재

        언어와 정념

        박준상(Park, Joon Sang) 새한철학회 2018 哲學論叢 Vol.94 No.4

        이 논문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많이 다루어지지는 않은 주제인 언어와 느낌의 상관관계에 대해 살펴보고자 했다. 역사에서 그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룬 사상가들 중 하나는 장-자크 루소이다. 우리는 그 주제를 루소를 중심으로, 니체와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언어에 대한 현대적 사유를 참조해서 고찰해보고자 했다. 그 주제와 결부된 물음들은 다음과 같다. 언어와 사회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기원적인가? 언어가 관념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느낌을 만들어낸다면, 관념과 느낌은 어떠한 상호 작용을 갖는가? 언어가 만들어낸 느낌들 가운데 관념 이전 또는 이후에 주어지는 정념이 있고 관념과 매개되어 주어지는 감정이 있다면, 정념과 감정은 어떠한 점에서 다른가? 언어가 불평등의 기원인 가치의 일반관념들을 만들어낸다면, 언어의 기원이자 지향점으로 제시된 정념은 어떻게 일반 관념들에 작용하는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이 논문에서 마지막으로 조명하고자 했던 점은, 언어와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는 정념이 사회 내에서 어떤 정치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In this study, we have reflected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language and the emotion which is a subject little studied up to now. This issue is covered in-depth in Jean-Jacques Rousseau. With Rousseau, in the context of the contemporary thoughts of the language in Nietzsche and Maurice Merleau-Ponty we ask these questions. Does the language precede at the society, or vice versa? If the language causes the emotion at the same time as with the idea, in which report are they? There are two types of emotion, the passon which is presented before or after the constitution of an idea of value on the one hand, and the feeling which is always given with an idea of value on the other hand. In what they are distinguished the one from the other? If the language causes the ideas of value which are considered like origin of the inequality, is the passion which is as well the origin of the language as the destination of the language, how done it with these ideas? By putting these questions in consideration, we clarified the fact that the passion always going with the language can assume a political role in the society.

      • KCI등재

        침묵의 목소리 : 말라르메, 블랑쇼, 데리다

        박준상(Park Joon-Sang) 새한철학회 2007 哲學論叢 Vol.4 No.50

        문학적 언어(시적 언어)란 무엇인가? 그것은 두운이나 각운이 살아 있는 언어가 아니고 아름다운 수사들로 장식된 언어도 아니다. 그것은 철학적·형이상학적 의미들을 감추고 있는 언어도 아니다. 그것은 흰 종이 위에 있는 검은 글자들을 기반으로 눈에 보이는 언어가 아니며, 따라서 궁극적으로 분석이나 해석의 대상으로 남지 않는다. 문학적 언어는 텍스트 내에 객관적으로 주어져 있지 않으며 오직 글쓰기와 독서가 만들어내는 효과(작용)일 뿐이다. 그것은 단어들 사이에서, 텍스트 바깥에서 솟아나는 익명의 정념이며, 개념적으로 정식화할 수 없는 야생적 몸의 현전이다.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언어가 단순히 사고를 전달하는 수단이기는커녕 몸의 연장(몸짓)이며 어떤 인간의 표현이자 어떤 존재(실존) 자체라고 강조하였다. 문학적 언어는 그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이며, 스테판 말라르메, 모리스 블랑쇼, 자크 데리다는 그 사실에 대한 철학적 반성을 보여준다. 이 논문에서 우리는 문학적 언어에서 현전하는 언어의 몸(또는 몸의 언어)이 정치적 지평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핵심적인 물음으로 선택하였다.

      • KCI등재

        예술비평과 공공 우리시대의 탁월함(Arete)과 범속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숭고

        박준상 ( Joon Sang Park ) 한국비교문학회 2013 比較文學 Vol.0 No.61

        `Le sublime(ou ``sublime``) est un mot qui apparait de temps en temps dans l`ceuvre de Nietzsche, mais non pas un concept auquel ce dernier ne s`est jamais efforce de donner une nouvelle signification. Mais dans La Naissance de la tragedie ou s`affirme au premier plan ``le grandiose``, ``le barbare`` ou ``l``exces de la nature``, en un mot, ``le dionysiaque``, ce que nous pouvons appeler ``sublime`` sans difficulte y regne en etant souvent suggere. Nous essayerons de reflechir sur ce fait, sur sa consequence. Mais quelque chose de sublime chez Nietzsche, non pas une pure nature qui n`ait aucun rapport avec la culture, se presente dans le conflit ou le differend avec le langage comme fondement de la culture. Nous porterons attention aussi sur cette scene.

      • KCI등재

        메를로-퐁티에 비추어 본 미적 경험과 예술

        박준상(Park Joon-Sang) 대한철학회 2007 哲學硏究 Vol.104 No.-

        서양 철학의 역사에서 감각적인 것과 지성적인 것은 현상과 실체, 감각과 오성, 수동과 능동 등의 명칭들 아래서 구분되어왔으며, 그 구분으로부터 서양 철학의 이원론적 세계관이 구축되었다. 이 논문에서 우리는 칸트와 라이프니쯔를 참조해서 그 구분의 기준이 개념 또는 언어에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했다. 그들에게 개념들로 구성 가능한 것 또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지성적인 것이며, 그럴 수 없는 것은 감각적인 것이다. 또한 그들은 서양 철학의 전통에 따라 지성적인 것을 감각적인 것의 우위에 두었다. 그러나 메를로-풍티는 그러한 입장에 반대하면서 우리의 모든 경험을 떠받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성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음악적 또는 감각적 관념에 대해 말한다. 마지막으로 감각적인 것으로서의 음악적 또는 감각적 관념들로 구성된 세계(살)가 모든 경험의 뿌리에 있으며 모든 예술이 근거하고 있는 공간임을 밝히고자 했다.

      • KCI등재

        몸의 언어로서의 문학적 언어

        박준상(Park Joon-Sang) 새한철학회 2014 哲學論叢 Vol.76 No.2

        이 글은 ‘신자유주의적’이라고 불리는 이 시대에 문학이 가능한가라는 물음 아래에서 씌어졌다. 그러나 그 물음은 제도적 차원이나 역사적 차원에서 문학이라는 예술이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라기보다는 어떠한 형태의 언어가 이 시대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인 신자유주의에 저항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신자유주의는 모든 이데올로기들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가 확산되고 광범위하고 확고한 힘을 갖게 되는 데에 필요한 경제적?정치적 권력은 말할 것도 없고 이론적 권력도 보유하고 있다. 어떤 중심 이데올로기가 군림하는 모든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지배적 사고는 지배계급(즉 자본의 귀족들)의 사고이다. 신자유주의는 지금까지 융성했던 모든 이데올로기의 적나라한 실상과 최종 귀착점을 보여준다. 지금까지의 모든 이데올로기가 겉으로는 어떤 고상하거나 숭고한 이상(理想)을 표방했을지라도 궁극적으로 한 지배 계급의 부와 권력을 창출하고 유지시키는 데에로 귀결되었다면, 신자유주의는 사실상 어떤 이상의 신비화에?적어도 ‘자유’라는 이상에 전면적으로?의존하지 않고,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계급적 부와 권력을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이다. 그것은 모든 이데올로기의 결론이었던 것을 향해 치장하지 않고 곧장 달려간다. 그러나 모든 이데올로기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는 오직 사회적이자 개인적인 의식들만을 지배할 수 있으며, 여전히 의식 이전 또는 이후의, 의식 안에 완전히 갇혀 있지 않은 언어의 원천으로서의 몸의 언어가 있다. 우리는 이 글에서 그러한 몸의 언어가 어떻게 문학적인지 묻고자 했고 또한 어떻게 신자유주의의 지배적 언어에 저항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했다.

      • KCI등재

        문자가 담고 있는 목소리

        박준상(Park Joon-sang) 대한철학회 2006 哲學硏究 Vol.100 No.-

          이 논문에서 우리는 자크 데리다가 제출한 목소리의 문제를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을 참조해 살펴보았다.   데리다의 목소리에 대한 분석은 언어에 매개되지 않은 순수 사유는 없고, 의미는 목소리에 그 기원을 두고 있지 않으며 필연적으로 언어를 거쳐야만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그것은 의미가 언어에 각인되자마자 1인칭의 주체에 고유한 것으로 남지 못하고 공동의 장으로, 타인 앞으로 나오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목소리의 경험 또는 환원의 경험은 없는 것인가? 데리다는 그것이 있을 수 없다고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목소리의 경험이란 “정신의 살”을 만지는 체험이며, 일상적인 ‘나’에 숨결을 불어넣는 체험이고 존재를 영화靈化하는 체험이다. 다만 데리다는 목소리의 경험(환원의 경험)과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어떤 초월적 정신작용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로, 공간으로, 어떤 곳 또는 어떤 것으로 열리는 경험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말하자면 그 것은 ‘내’안으로 닫히는―말리는― 경험이 아니라 바깥으로 열리는―펼쳐지는, 뒤집어지는― 탈존脫存Ex-sistenz의 경험이다. 이는 목소리가 필연적으로 언어에 붙들려 있다는, 즉 언어만이 목소리를 전달한다는 사실로 증명된다. 왜냐하면 언어는 ‘내’ 신체나 표정?몸짓과 마찬가지로 ‘나’ 아닌 공간을 향해 열려 있으며 ‘내’ 존재를 바깥의 존재로 전환시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언어 덕분에 ‘나’는 ‘내’가 아닌 공간과 사물들과 타인과의 관계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목소리를 체험한다. 다만 ‘나’와 ‘내자신’의 닫힌 관계 내에서가 아니라 ‘내’ 바깥의 공간과의 관계 내에서,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 내에서, 또한 언어의 도움을 힘입어. 그 관계 내에서의 목소리, 관계를 전제하고서만 들릴 수 있는 목소리는 언어 너머의 의식 또는 정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언제나 기호에 의해 침입 당해 있는 목소리, 즉 문자에 담겨 있는 목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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