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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대(歡待)로서의 책 또는 행위로서의 철학

        박준상(Joon-Sang Park) 한국현상학회 2002 철학과 현상학 연구 Vol.19 No.-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타인으로서의 타자가 초월적임을, 즉 의식 바깥에서 주제화(thematisation)를 넘어서 언어적 표현을 초과하면서 현현(apparition)한다는 점을 되풀이 해 강조하였다. 이러한 초월적 타자에 대한 증거를 자신의 첫 번째 과제로 삼은 레비나스의 철학은 따라서 어떤 초월성을 말하는 철학, 일종의 초월성의 철학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타자의 초월성은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모순 없이, 수월하게 주장될 수 없다. 왜냐하면, 철학을 언제나 예외 없이 존재자(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도 하나의 존재자일 것이다)를 주제화하는 명제들의 집합, 존재자의 의미를 의식에 전달하는 명제들의 집합이라고 본다면, 철학은 원칙적으로 타자의 초월성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자크 데리다는 그 점을 간파하였고, 초월적 타자가 근본적으로 철학의 언어에 기입될 수 없다는, 또는 철학의 언어 안에서 자체모순을 불러일으킨다는 비판을 레비나스에게 제출하였다. 그러나 레비나스는 데리다의 그러한 비판 이후에도 자신의 〈철학〉 내에서 타자의 초월성에 대한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다. 동시에 그는 의식 너머에 관념적으로 실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전-근원적(pre-originel)으로, 의식 이전에, 감수성에 기입되기 때문에 초월적인 타자의 흔적을 철학의 언어 가운데에서 찾아내고자 한다. 결국 여기서의 문제는 철학의 언어의 또 다른 측면을 밝히는 데에, 더 정확히, 존재자의 규정 바깥에서, 의식 너머에서(au-dela) (동시에 의식 이하에서(en deca)에서 - 감수성 내에서, 감각적인 것 가운데 - 철학의 언어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살펴보는 데에 있다.

      • KCI등재

        행위로서의 외존(外存)

        박준상(Joon-Sang Park) 한국현상학회 2005 철학과 현상학 연구 Vol.27 No.-

        이 논문은 다음과 같은 논제들에 따라 씌어졌다. 1) 여기서 먼저 문제는 레비나스의 존재론(있음l'il y a의 존재론)과 윤리학(타자의 윤리학) 사이의 관계를, 또한 전자에서 후자로 넘어가게 되는 맥락과 근거를 밝히는 데에 있다. 2) 레비나스의 사상은 일종의 경험론, 보다 정확히, 한계경험론(존재론적·윤리적 관점에서의 한계사건들에 대한 경험론)이다. 그 사상은 우리의 경험의 장에서 해명되고 검증되기를 기다리는 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그 사상이 우리의 경험의 장에서 전개되는 과정의 장면에 주목하였다. 3) 레비나스에 의하면, '나'는 모든 다른 타인들과는 달리 선택받은 유일무이한 자로서 타자를 환대하고 타자가 지은 죄까지 짊어져야 할 위치에 있다. 그러나 레비나스의 그러한 윤리적 주체에 대한 관점에서 따라 나올 수 있는 난제는, 본질적으로 보았을 때, '나'는 타인을 절대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자인가, 또는 '나'는 과연 윤리에서 부과되는 모든 무게를 홀로 짊어질 수 있는가라는 것이 아니다. 보다 결정적인 문제는 레비나스가 타자를 책임지는 유일한 자로 주체를 과도하게 부각시키면서 그 주체를 타인(들)과의 관계 바깥으로 이끌고 나간다는 데에 있다. 레비나스의 타자의 철학은 분명 유아론은 아니다. 그러나 그 철학이 타자와의 관계와 소통에 대한 주목에서 출발했을지는 모르나 결국 관계 자체보다는 주체라는 관계의 하나의 항을 부각시키는 데에서 마감되지 않는가라는 물음이 남는다.

      • KCI등재

        예술비평과 공공 우리시대의 탁월함(Arete)과 범속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숭고

        박준상 ( Joon Sang Park ) 한국비교문학회 2013 比較文學 Vol.0 No.61

        `Le sublime(ou ``sublime``) est un mot qui apparait de temps en temps dans l`ceuvre de Nietzsche, mais non pas un concept auquel ce dernier ne s`est jamais efforce de donner une nouvelle signification. Mais dans La Naissance de la tragedie ou s`affirme au premier plan ``le grandiose``, ``le barbare`` ou ``l``exces de la nature``, en un mot, ``le dionysiaque``, ce que nous pouvons appeler ``sublime`` sans difficulte y regne en etant souvent suggere. Nous essayerons de reflechir sur ce fait, sur sa consequence. Mais quelque chose de sublime chez Nietzsche, non pas une pure nature qui n`ait aucun rapport avec la culture, se presente dans le conflit ou le differend avec le langage comme fondement de la culture. Nous porterons attention aussi sur cette scene.

      • KCI등재

        메를로-퐁티에 비추어 본 미적 경험과 예술

        박준상(Park Joon-Sang) 대한철학회 2007 哲學硏究 Vol.104 No.-

        서양 철학의 역사에서 감각적인 것과 지성적인 것은 현상과 실체, 감각과 오성, 수동과 능동 등의 명칭들 아래서 구분되어왔으며, 그 구분으로부터 서양 철학의 이원론적 세계관이 구축되었다. 이 논문에서 우리는 칸트와 라이프니쯔를 참조해서 그 구분의 기준이 개념 또는 언어에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했다. 그들에게 개념들로 구성 가능한 것 또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지성적인 것이며, 그럴 수 없는 것은 감각적인 것이다. 또한 그들은 서양 철학의 전통에 따라 지성적인 것을 감각적인 것의 우위에 두었다. 그러나 메를로-풍티는 그러한 입장에 반대하면서 우리의 모든 경험을 떠받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성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음악적 또는 감각적 관념에 대해 말한다. 마지막으로 감각적인 것으로서의 음악적 또는 감각적 관념들로 구성된 세계(살)가 모든 경험의 뿌리에 있으며 모든 예술이 근거하고 있는 공간임을 밝히고자 했다.

      • KCI등재

        침묵의 목소리 : 말라르메, 블랑쇼, 데리다

        박준상(Park Joon-Sang) 새한철학회 2007 哲學論叢 Vol.4 No.50

        문학적 언어(시적 언어)란 무엇인가? 그것은 두운이나 각운이 살아 있는 언어가 아니고 아름다운 수사들로 장식된 언어도 아니다. 그것은 철학적·형이상학적 의미들을 감추고 있는 언어도 아니다. 그것은 흰 종이 위에 있는 검은 글자들을 기반으로 눈에 보이는 언어가 아니며, 따라서 궁극적으로 분석이나 해석의 대상으로 남지 않는다. 문학적 언어는 텍스트 내에 객관적으로 주어져 있지 않으며 오직 글쓰기와 독서가 만들어내는 효과(작용)일 뿐이다. 그것은 단어들 사이에서, 텍스트 바깥에서 솟아나는 익명의 정념이며, 개념적으로 정식화할 수 없는 야생적 몸의 현전이다.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언어가 단순히 사고를 전달하는 수단이기는커녕 몸의 연장(몸짓)이며 어떤 인간의 표현이자 어떤 존재(실존) 자체라고 강조하였다. 문학적 언어는 그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이며, 스테판 말라르메, 모리스 블랑쇼, 자크 데리다는 그 사실에 대한 철학적 반성을 보여준다. 이 논문에서 우리는 문학적 언어에서 현전하는 언어의 몸(또는 몸의 언어)이 정치적 지평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핵심적인 물음으로 선택하였다.

      • KCI등재

        기술과 마주한 느낌

        박준상 ( Joon-sang Park ) 한국하이데거학회 2021 현대유럽철학연구 Vol.- No.62

        현재의 첨단기술들 가운데 하나인 인공지능의 발전 추이를 본다면, 이 기술이 모방하기 어려운 인간 능력은 지성이 아니라 느낌이다. 안토니오다마지오와 같은 과학자는 인공지능이 여러 분야에서 인간 지성을 뛰어넘었다는 증거는 많지만, 느낌을 갖거나 만들어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고 단언한다. 인간이 갖고 있는 어떤 능력이 모방되기 어렵다는 것은, 그 능력이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라는 사실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이 대두되기 이전에, 마르틴 하이데거는 느낌이 인간을 세계와 사물들로 열리게 하는, 지성 이전의 원초적인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 점에서 하이데거의 새롭고 선구적인 사상적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는 현재의 첨단 기술들(인터넷·인공지능·데이터 공학)이 우리에게 지금처럼 강력한 힘을 행사하기 이전에 기술 자체가 갖는 문제점을 추적했고, 그 문제점과 마주하고 맞설 수 있는 가능성을 어떤 느낌에서, 시적이고 예술적인 파토스에서 찾았다. 이 논문에서 우리는 기술 일반의 문제에, 느낌에 대한 하이데거 사유의 변천을 따라가면서 접근해보고자 했다. Looking at the development of artificial intelligence, one of the current high-tech technologies, it has emerged that the human ability that this technology struggles to imitate is not intelligence, but feeling. Scientists like Antonio Damasio assert that while there is much evidence that artificial intelligence has surpassed human intelligence in many fields, there is no evidence that it has or created feelings. The fact that a certain human ability is difficult to imitate can be seen as proving the fact that this ability is unique to humans. Before the advent of the technology of artificial intelligence, Martin Heidegger revealed that feeling is a primordial human ability for opening human beings into Being. In that respect, it is evident that there is a new and pioneering aspect of Heidegger's thought. Additionally, he traced the problem of technology itself before the current advanced technologies (digital, internet, artificial intelligence) exerted such strong power on us. He also looked at the possibility of facing that problem by way of a poetic and artistic Pathos. In this paper, we tried to approach the problem of technology in general, following the transition of Heidegger's thoughts on feeling.

      • KCI등재

        정치적 `행위`와 공동체

        박준상(Park, Joon-Sang) 새한철학회 2014 哲學論叢 Vol.78 No.4

        장-뤽 낭시가 자신의 공동체론을 중심으로 전개한 정치적 사유는 그 새로움으로 인해 주목을 끌었지만, 정작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모호하거나 분명하지 않은 채로 남았다. ‘무위(無爲)의 공동체’, 어떠한 조직도 어떠한 기관도 어떠한 확정된 정치적 프로그램도 없이 긍정되는 공동체, 그러나 그러한 모든 것들 이전이나 이후(사실 낭시가 그 모든 것을 전적으로 부정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에 정치적 경험의 중심에 자리 잡는 공동체, 규정적 정치를 의문에 부치는 그의 정치적 사유는 새롭기는 했지만, 비현실적인 것이거나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것으로 오해되거나 이해되었다. 이 논문은 어쨌든 그 핵심을 포착하기 쉽지 않은 낭시의 정치적 사유를 가능한 한 명확하게 이해하려는 목적하에 씌어졌다. 우리는 그의 정치적 사유의 고유한 특징이 그이 고유한 글쓰기에 투영되어 있다고 보았고, 그의 글쓰기를 살펴봄으로서 그의 정치적 사유에서 암시되었던 고유한 어떤 것에 다가가보고자 했다. 결론적으로, 정치적인 모든 장(場)에서 이론 이전 또는 이후에 어떤 행위(행동 이전의 행위)가 중요하다는 전제하에, 그의 글쓰기는 이론의 구성과 제시 이전 또는 이후에 행위를 그 자체 내에서 직접적으로 촉발시킨다는 점을 밝히고자 했다.

      • KCI등재

        인터넷 문화와 타인과의 관계

        박준상(Park, Joon-sang) 한국비평문학회 2020 批評文學 Vol.- No.75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의 공동이자 각 개인의 일상 일반에서 일어났던 가장 큰 변화는, 누구나 인터넷과 스마트폰(핸드폰)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 기간 동안 우리 평범한 사람들 대부분은 남들이 컴퓨터에 인터넷을 설치하고 사용하는 것을 보고, 하고 싶거나 하지 않을 수 없어서 따라 했을 뿐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블로그를 하고, 카카오톡으로 소통하며, 페이스 북과 인스타그램으로 자신들을 표현하고, 스마트폰의 여러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니까 우리는 많은 경우 자발적으로, 적지 않은 경우 자의반 타의반으로 인터넷에 매달려 왔을 뿐이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분명해진 사실은, 남들을 따라 무심코 사용했던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인터넷이 이 사회의 중심 매체로 등극하면서 정치‧경제‧사회‧교육 그리고 문화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이 논문에서 우리는, 인터넷이 가져온 그러한 엄청난 변화가 우리의 인간관계("나"와 타인의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라는 물음에 집중하고자 했다. 또한 그러한 물음과 더불어서 인터넷이라는 매체는 왜,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진 최초의 중독을 가져오는 매체가 되었는가라는 물음을 제출하고자 했다. 또한 인터넷과 인간관계 그리고 자본주의의 관계에 대한 물음에 마지막으로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The biggest change that has happened in our common and individual everyday lives over the past three decades may be the fact that everyone has come to use the Internet and smart phones (hand phones). During that time, most of us ordinary people saw other peoples install and use the Internet on their computers, only to copy because we couldn"t help but want to. With countless people blogging, communicating via Kakao Talk, expressing themselves through Facebook and Instagram, and using various applications on smart phones, we have only voluntarily in many cases, or sometimes self-contradictory. But what has become clear at this point is that the Internet of computers and smart phones that have been inadvertently used along others has become a central medium in this society, exerting enormous influence on politics, economy, society, education and culture. Accordingly, in this paper, we wanted to focus on the question of how such a huge change in the Internet affected our human relation(relation between ‘I’ and other). In addition to that question, the Internet media wanted to submit a question about why and how it became the media that, for the first time, brought us addiction. Finally it also wanted to focus on the question of the relation between the Interne, human relation and capitalism.

      • 환원 불가능한 (빈) 중심, 사이 또는 관계 -타자에 대하여-

        박준상 ( Joon Sang Park ) 한국해석학회 2007 해석학연구 Vol.19 No.-

        이 논문은 엠마누엘 레비나스의 타자의 철학이 갖는 의의와 한계를 동시에 밝히기 위해 씌어졌다. 레비나스는 20세기를 뒤흔들었던 정치적·전체주의적 동일화 작용에 저항하고 그 맹점을 지적하는 타자의 윤리적 전망을 부각시켰다. 그는 윤리(타자를 위한 윤리)가 정치와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후자의 근거가 전자에 놓여 있어야 한다는 점을 증명했다. 거기에 20세기 전체주의의 역사 이후에 레비나스의 철학이 갖는 중요성이 있다. 그러나 그의 철학은 극단적 순수주의와 윤리적·종교적 ``성스러움``에 따라 방향 지워졌으며, 그에 따라 타인과 나의 분리와 절대적 차이를, 즉 일방적 비대칭성을 강조하게 된다. 우리는 이 논문에서 레비나스가 말하는 윤리의 모든 성스럽고 종교적인 요소들을 제거하고, 어떻게 타자가 타인에게 고유한 것이 아니라 인간 공동의 자연성·동물성에, 즉 우리 모두에 귀속되는가를 밝히고자 했다. 즉 이 논문에서 우리는 레비나스와 함께 또한 그를 거슬러서 타자란 누구인가(또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다시 생각해보고자 했다. Ce texte a ete ecrit dans le but de montrer a la fois l`importance et la limite de la philosophie de l`autre proposee par Emmanuel Levinas. Levinas a mis en relief la perspective ethique de l`autre qui, lui, resiste au processus politique ou totalitaire, et qui en montre l`aporie. Il a prouve que l`ethique(l`ethique au service de l`autre) et la politique ne sont jamais separable, et que celle-ci appelle celle-la pour se justifier. Cependant sa philosophie est peut-etre orientee par une sorte l`angelisme, par une saintete ethico-religieuse. Elle met en accent la separation et la difference absolue entre l`un et l`autre, c`est-a-dire leur asymetrie. Nous avons essaye ici de supprimer tous les elements religieux ou saints de l`ethique levinassienne, et de montrer comment l`autre n`est pas prore a autrui, mais a la naturalite ou l`animalite commune a tous, donc a nous tous. Ce texte se propose de penser a nouveaux avec Levinas et contre lui la question: qui est l`autre ou qu`est-ce qu`est l`au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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