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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全南地域 城郭硏究의 現況와 課題

        고용규 호남고고학회 1999 湖南考古學報 Vol.10 No.-

        성곽은 국가가 군사적인 목적을 갖고 국방이나 교통의 요지에 설치했던 군사 시설물이다. 따라서 해당 지역의 역사나 지리적인 특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축성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의 역사 전반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일제시기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성곽의 조사와 연구는 오랜 침체기를 지나 근래 화기를 띄어 가고 있다. 그러나 다른 분야에 비하면 부진한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고 전남지역의 경우는 훨씬 심각한 상걸음마 단계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다행히 최근 몇 년간 그 동안의 지표조사에서 발굴조사로 조사분야를 점차 넓혀가고 있는 추세에 있다. 특히, 순천 검단산성과 여수 고락산성의 조사결과 6세기말에 축조된 백제의 석축산성으로 밝혀짐에 따라 백제 성곽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또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밝혀진 광주 무진고성과 완도 청해진 유적도 통일신라시대의 성곽을 이해하는데 지표가 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시·군 단위의 지표조사가 다른 지역에 비하여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그 동안 전남지역에서 조사된 성곽을 시·군별 지표조사, 정밀지표조사, 발굴조사, 연구성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시·군별 지표조사에서는 조사된 성곽을 유형별로 분류하여 보았다. 그 결과 산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정밀지표조사에서는 보고된 내용을 토대로 입지, 형식, 축성재료, 축조연대를 살펴보았다. 발굴조사에서는 조사에서 밝혀진 내용을 간략하게 제시하고, 편년 등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하였다. 따라서 앞으로는 전남의 모든 성곽에 대한 분포조사를 실시하여 시대, 유형, 축성법, 축성재료 등으로 분류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고, 고분 등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주변 유적과의 종합적인 연구도 필요함을 언급하였다. 이를 통해서만이 다른 지역 성곽과의 비교연구가 가능하고 공통점과 특색도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성곽의 정비와 복원이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지적하였다.

      • 麗水 石倉城의 保存 整備 및 活用 方案

        고용규 한국성곽학회 2012 한국성곽학보 Vol.22 No.-

        麗水は、城郭の地域といわれるほど石倉城を含めて多くの城郭資源を保有している。ともに、海が提供 する豊富な文化観光資源及び食べ物が豊富な故障からも広く知られている。この文は麗水が持つ歴史と文化の所産である石倉城を対象に何を保存して整備復元するのか、そしてこれをどう活用するのかについて簡単にその方向を模索してみようというものだった。麗水石倉城の整備復元の基準は軍事的な機能の麗水ソクボ性に合わせられなければならず、これをもとに保存することと整備復元するものに分けてみた。保存対象は麗水石倉城の體性部の中で残存状態が良好な南門地西区間の體性部も適合したと判断した。この区間は、地代石と石をはじめとする外壁の様相が比較的原型を維持しており、石倉城の築造技法を理解するのに役立つためだ。具體的に一部は原型を保全して、一部は、既存の城壁上部のみが保守する形で推進しなければならない。整備復元対象は南門地西区間の保存対象を除いた残りの区間の城壁をはじめ、東·西·南門など3カ所の城門地、敵対、垓字、客舎、東軒·內衙どの主要建物跡などである。麗水石倉城の文化財環境を考慮して保護区域、緩衝区域、展示及び駐車空間に分けて整備復元していくべきと判断した。 여수는 성곽의 고장이라 할 만큼 석창(석보)성을 포함하여 많은 성곽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더불어 바다가 제공하는 풍부한 문화관광자원 및 먹거리가 풍부한 고장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글은 여수가 가진 역사와 문화의 소산인 석창성을 대상으로 무엇을 보존하고 정비복원할 것인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간략하게 그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여수 석창성의 정비복원의 기준은 군사적인 기능의 여수석보성에 맞추어져야 하며, 이를 토대로 보존할 것과 정비복원할 것으로 나누어 보았다. 보존대상은 여수 석창성의 체성부 가운데 잔존 상태가 가장 양호한 남문지 서쪽구간의 체성부가 가장 적합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 구간은 지대석과 면석을 비롯한 외벽의 양상이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석창(석보)성의 축조기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일부는 원형을 보전하고, 일부는 기존의 성벽 상부만 보수하는 형태로 추진하여야 한다. 정비복원 대상은 남문지 서쪽구간의 보존대상을 제외한 나머지 구간의 성벽을 비롯하여 동·서·남문 등 3개소의 성문지, 적대, 해자, 객사·동헌·내아 등의 주요건물지 등 이다. 여수 석창성의 문화재환경을 고려하여 보호구역, 완충구역, 전시 및 주차공간으로 나누어 정비복원해 나가야 할 것으로 판단하였다.

      • KCI등재
      • KCI등재

        진도(珍島) 용장성(龍藏城)의 구조와 성격

        고용규(Ko Youngkyu) 한국중세고고학회 2018 한국중세고고학 Vol.- No.3

        진도 용장성(龍藏城)은 13세기 말 삼별초군이 여몽연합군을 상대로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였던 대표적인 항몽유적지로 알려져 있다. 고산자 김정호(金正浩)가 삼별초군이 진도에 도착한 후 궁전과 성곽을 축조하였다는 견해를 밝힌 이래 지금까지도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통용되어 왔다. 진도 용장성은 1985년 지표조사를 통해 대략적인 분포현황이 파악된데 이어 1989~2017년 본격적인 학술발굴조사를 통해 土壘로 축조한 내성(宮城·宮牆)과 다양한 기능을 가진 건물지를 비롯하여 석성(石城)으로 된 외성(羅城)과 제사유적 등이 확인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유구(遺構)와 출토유물 등 고고자료의 분석을 통해 용장성의 축조시기와 사용 시기를 검토하고, 각 시기별 기능과 구조에 대해 살펴보았다. 내성(宮城·宮牆)은 외성 남벽구간의 협소한 곡간지(해발 57~90m)에 둘레 425m, 높이 1.5~2m 규모로 둘러싸고 있는 석심토축(石心土築)의 토루(土壘)와 3m 높이의 축대로 구성되어 있다. 평면 장장형의 내부는 남고북저형의 곡간지를 18단의 계단식으로 정지하여 구획한 후 건물을 배치하였다. 본래 9세기 말~10세기 초의 나말여초기에 창건하여 운영되어 온 금사사(金沙寺) 또는 대사(大寺)의 산지가람(D·E·F·P·G·H·I·M지구 하층)을 1270년(원종 10) 삼별초군의 진도 입거 이전에 폐쇄하거나 일부를 개조하고, 공간을 대규모로 확장하여 59개소의 건물을 배치하였던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들 건물지는 사전기획에 따라 왕의 거주공간(A지구)과 회랑(B지구), 제사를 지내던 의례공간(P지구), 숙소공간(K·L·G지구), 취사공간, 기타 건물지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진 건물들이 체계적인 배수 및 동선체계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외성(羅城)에 해당하는 산성(山城)은 문헌을 근거로 복원한 규모는 둘레 38,741자(18.1km), 높이 5자(2.3m)이다. 그러나 바다와 접하고 있는 북벽과 서벽 및 동벽의 일부는 만을 제외한 곶(串)지형에만 축조한 까닭에 실제 규모는 13km이다. 협축법(夾築法)으로 축조된 석성으로 동벽과 북벽, 제2서문지에서 출토된 「계묘삼월대장혜인(癸卯三月大匠惠印」명(銘) 기와와 공반유물로 보아 1243년(고종 30) 무렵에 축조되어 해도입보(海島入保用) 산성으로 활용되다가, 삼별초군의 진도 입거와 더불어 용장성의 외성으로 기능이 변화하였다. 따라서 진도 용장성은 내·외성으로 이루어진 2중 구조의 도성체제(都城體制)를 갖추었으며, 이듬해 5월 여몽연합군의 공격에 의해 폐쇄되면서 기능을 다한 것으로 보았다. Jin-do(珍島) Yong-jang-seong(龍藏城) is known the famous remain from the battle between Sam-byul-cho and Koryeo-Mongolian combined forces. Since Kim Jeong-ho said his opinion, (That Sam-byul-cho built the palace and castle after they arrive Jin-do) it has accepted to present days. The distribution status of Jin-do Yong-jang-seong was found by field survey in 1985. And also from excavations in 1989~2017, they have found inner castle(內城) made with to-roo(土壘), various building relics, the outer castle(外城) with form of stone fortress and ritual site. This thesis will go over the time that Yong-jang-seong has build and used, with the archeological relics and structure of the castle. The inner castle(內城, 宮城, 宮牆) is built in valley areas in southern wall of outer castle. It consists of to-roo(土壘) with 425m in circumference, 1.5 to 2m in height, 3m high embankment. The buildings are arranged in a terraced way on south high north low type valley. Originally, it was the mountain located temple(山地伽藍)(The low layers of district D·E·F·P·G·H·I·M) of kum-sa-sa(金沙寺) or dae-sa(大寺). And it has already closed or remodeled some parts, and expanded the space and built 59 buildings. These building relics such as the living space of the King(district A), the corridor(district B), the space for rituals(district P), the space for lodgings(district K·L·G), and the space for cooking are organically connected by advanced planning. The outer castle(外城) or mountain fortress(山城), is restored based on the books. The size of restored outer castle is 18.1km in circumference and 2.3m in height. But, the castle is only built on cape, excluding the bay in northern, western and eastern wall. So the actual size of castle is 13km. Also can see this castle was build about 1243, from the stone fortress in eastern, northern walls are constructed by the form of Hyubchuk-bup(夾築法) And 「kye-myo-sam-wol-dae-jang-hye-in」(癸卯三月大匠惠印) roof tile, found in the site of second west gate. Originally, this castle was build as stone fortress for resettlements in island(海島入保用 山城), but after Sam-byul-cho entered, it used as the outer castle of Yong-jang-seong. So Jin-do Yong-jang-seong has form of capital city, composed with two castles. Yong-jang-seong has ended it’s facility by the attack of Koryeo-Mongolian combined fo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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