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추천석사논문] 음경과 근대 한국의 남성성 -1920~30년대 대중매체의 과학ㆍ의학 담론을 중심으로
최장락 상허학회 2021 상허학보 Vol.63 No.-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analysis the male body discourse and the formation of masculinity as the effect of that discourse focusing on the mass media of colonial Korea in 1920s and 30s. In particular, this paper focuses on the aspect that the norm of masculinity was organized around the normality of sexual ability in scientific and medical discourse, and the relations between this norm and the identity of Korean men. The sexual ability represented by penis was the measure of masculinity in colonial Korea in 1920s and 30s. Men’s reproductive ability defined what a male body is, men’s sexual ability is the energy that could be administered to the public space. Productivity of the male body is the resource of society, and the male body was considered to constitute a biological foundation of society directly. The desires of Korean men in the 1930s newspaper medical counseling section reveal that they internalized the body with sexual ability and productivity as the norm of their male identity. Meanwhile, men’s desire for sexual ability was also directed to the “production of sexual pleasure” that was not mentioned within the norm. This desire reflected the idea of securing masculinity through relationships with women under the condition that there is no country that could guarantee their male identity. 본 논문은 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의 대중매체를 중심으로 남성 신체의 담론화 양상과, 그 효과로서 남성성의 형성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본 논문은 대중매체를 통해 유통된 과학ㆍ의학 담론 내부에서 ‘성적 능력’이라는 정상성을 중심으로 남성성의 규범이 조직되는 양상과, 이 규범과 조선인 남성의 정체성이 맺는 관계에 주목한다. 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음경으로 대표되는 남성의 성적 능력은 남성성의 척도로 간주되었다. 남성의 신체는 그의 생식 능력을 중심으로 정의되었으며, 남성의 성적 능력은 재생산 뿐만 아니라 공적 영역에 투여될 수 있는 에너지였다. 이러한 남성 신체의 생산성은 사회의 유지ㆍ존속을 위해 투여될 수 있는 자원이었으며, 이때 남성의 신체는 사회의 생물학적 토대를 직접적으로 구성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1930년대 신문 의학 상담란에서 나타난 조선인 남성들의 욕망은 그들이 성적 능력, 생산성을 갖춘 신체를 자기 정체성의 규범으로 내면화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한편 성적 능력에 대한 남성들의 욕망은 규범의 외부에 놓인 ‘성적 쾌락의 생산’으로 기울기도 했다. 여기에는 사회적 정체성으로서 자신의 남성 정체성을 보장해줄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식민 상황에서, 여성과의 관계를 통해 남성성을 확보하고자 한 목적이 존재했다.
최장락 한국여성사학회 2022 여성과 역사 Vol.- No.37
이 글은 근대 한국의 신문 의학 상담란에서 목격되는 ‘수치스러운 몸’에 대한 남성들의 고백을 타자성의 경험이라는 차원에서 역사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신체와 섹슈얼리티의 새로운 규범이 형성되던 근대 한국에서 남성성이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이탈하는 남성들은 무엇을 경험했는지가 이 글의 관심사이다. 이 글은 특히 남성성을 정의하는 데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던 성과학의 외부에 있던 성적 쾌락의 문제에 주목한다. ‘연애’와 같은 근대적 섹슈얼리티가 조선에 도입됨에 따라 일어난 변화중 하나는 여성 성욕의 (재)발견이다. 여성의 성욕은 더 이상 부정될 수 없었으며 이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담론이 부상하였다. 근대적 일부일처제는 여성의 성욕을 적절히 관리하기 위한 제도적 수단이었다. ‘삽입 중심주의’ 와 ‘질 오르가즘의 신화’가 혼합된 성차별적 담론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었지만, 이는 여성의 성적 쾌락을 가시화하는 효과를 보였다. 그리고 남성 중심성 이데올로기의 반작용으로서 남성들은 성적 쾌락을 생산할 수 없는 자기 신체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남성 역시 성차별적 신체 규범을 내면화함에 따라 ‘남성성’의 척도를 벗어나는 타자화를 경험한 것이다. 이 남성들이 주로 느끼는 감정은 수치심이었다. 수치심은 자기 신체를 바라보는 타인의 존재를 의식함으로써 유발된다. 수치심은 자기 외부의 규범을 내면화한 자신의 시선과 자기 바깥에 존재하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계기를 동시에 갖는다. 개인의 사생활이 대중매체를 통해 하나의 오락으로 변모하는 시대였기에 남성들은 자신의 비밀이 폭로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속에 놓이게 되었다. 남성의 성적 불능은 ‘이혼 소송’과 같은 사건의 서사화로서 사적 공간을 벗어나 공개되었다. 구경거리가 된다는 것은 타자화된 신체의 증명과 다름없었으며, 결국 남성들의 수치심이란 정상성에 동일시할 수 없는 자기 신체에 관한 의식으로부터 솟아 나오는 감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