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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윤경의 "The Space" for Woodwind Quintet 분석 연구

        김윤경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2006 국내석사

        RANK : 247679

        김윤경의 “The Space” for Woodwind Quintet은 무조성을 바탕에 두고 작곡된 곡이다. 이 곡은 3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점’, ‘선’, ‘면’이라는 부제를 지니고 있다. 또한 현대적 색채를 지닌 선율, 리듬,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 특수주법 등의 다양한 음악적 표현이 이 곡에 사용되었다. “The Space” for Woodwind Quintet은 각 악장이 통일된 음악적 재료들을 바탕으로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형식에 있어서 3개의 악장은 모두 세 부분 형식(Ternary Form)으로 구성되었지만 각기 다른 세부 구조를 갖는다. 6개의 동기들은 서로 다른 음정 관계와 리듬 구조를 지니며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각각의 동기들은 독립적으로 구분지어지기 보다는 다른 동기로부터 파생된 음정과 리듬을 이용하여 생성되기 때문에 모두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결국 각 악장이 서로 다른 특징들 속에서 구분되고 있지만 각 악장을 연결시켜주고 있는 공통의 음악적 재료들 속에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본 논문은 “The Space” for Woodwind Quintet의 형식, 음정, 리듬을 각 section별로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각 악장을 표현하고 있는 음악적 재료들의 특징을 알아보고자 한다. “The Space” for Woodwind Quintet, composed by Kim Yun Kyoung, is a work featuring atonality. Its three movements are entitled ‘dot’, ‘line’, and ‘plane’ respectively. This piece features a variety of musical expressions which denotes a modern character in its melodies, rhythm, articulation, and special playing techniques. The movements for “The Space" for Woodwind Quintet are unified in developing a common musical material. They are identical in employing a ternary form, yet are different in their sub-structures. The six motives are developed using different tone intervals and rhythmic structures. However, each motive is not independent but rather created based on the intervals and rhythms from the other motives, thus maintaining a connection with one another. This recalls one to the fact that although each movement is unique in its own way, all three movements are united based on a common musical material. Present study analyzes each section of “The Space” for Woodwind Quintet, with regard to its form, interval, and rhythm. It aims to understand the characteristics of musical materials that each movement is trying to express.

      • 택시 교대근무자의 피로, 수면장애 및 직무스트레스와의 관계

        김윤경 전남대학교 대학원 2008 국내석사

        RANK : 247647

        Objective: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investigate the relationships between fatigue, sleep disturbance and job stress among taxi drivers in shift work in G city. Methods: The subjects were 72 taxi drivers in shift work from eleven taxi companies where cardiovascular demonstration project has been conducting by Korean Association of Occupational Health Nurses funded by Ministry of Labor since 2004. Study instrument to test fatigue was Checklist Individual Strength (CIS): 7-point, 20-items scale (α = .863); that to test sleep disturbance was revised version of the scale which developed for psychiatric patients Wonjin Hospital at Yongin: 4-point 5-items scale (α = .728 in day shift; α = .721 in night shift); and that to test job stress was also revised version (α = .702) of Korean version (Yoon, 2005) of Energy Reward Imbalance developed by Johannes Siegrist (1996). Data were collected by self-reported from July 2 to August 21 2007, and analyzed with frequency, percentage, χ2-test, t-test, ANOVA, Duncan's multiple range test, and Pearson's correlation coefficient using SPSS-PC win-12 program, Results: 1. Average score of fatigue was 3.98±1.12 out of 7-point; that of sleep disturbance in day shift was 2.08±.56, and in night shift was 2.18±.57 out of 4-point; and that of job stress was 3.31±.50 out of 5-point. 2. According to the demographics, sleep disturbance was milder in married group than in others (t = 2.196, p = .031) in only day shift. On the other hand, it was more severe in heavier drinking group both in day (F = 4.677, p = .012) and night (F = 4.105, p = .021) shift, and was also more severe in more frequent drinking group in day (F = 3.188, p = .047) and night (F = 4.276, p = .018) shift. Job stress was significant different according to the amount of daily income from taxi driving (F = 3.592, p = .035); and it was also more severe in the group of heavier smoking (F = 3.264, p = .032) and of much more drinking (F = 3.709, p = .030) groups. 3. According to job-related characteristics, sleep disturbance was more severe in the group who could not earn their daily due in seven days a month or more than the others in day (F = 3.766, p = .015) and in night shift (F = 3.569, p = .019). And it was also more severe in the shorter career group as driver than the others in only night shift (F = 3.727, p = .029). Job stress was also more severe in the group who could not earn their daily due in seven days or more per month (F = 4.312, p = .008) and who earned less than ₩10,000/day net income than the others (F = 4.712, p = .012). But fatigue did not show any differences according to the demographics and job-related characteristics. 4. Relationships among fatigue, sleep disturbance in both shifts and job stress showed all positive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sleep disturbance of day and that of night shift showed highest correlated (r = .895, p = .001). Conclusion: Based on the above findings, authors recommend feasible, practical measures to make sure regular working hours for taxi drivers in shift work, and some break to reduce fatigue, sleepiness and stress. And also recommend methodological research to develop appropriate study instruments to examine fatigue, sleep disturbance and job stress of taxi drivers in shift work. 본 연구는 택시 교대근무자들의 피로, 수면장애 및 직무스트레스와의 관계를 알아보기 위하여 G 광역시에서 한국산업간호협회가 한국산업안전공단 용역으로 실시하는 뇌?심혈관계질환 예방사업장 11곳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연구대상자는 전체 정규직 교대근무자 587명중 연구 참여에 구두로 동의한 교대근무자 72명을 대상으로 하였고, 자료수집은 2007년 7월 2일 부터 8월 21일 까지 실시하였다. 연구도구로 피로정도는 Checklist Individual Strength(CIS)를 이용하였고, 수면장애도구는 원진 녹색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사용한 수면장애 측정도구를 택시 교대근무자에 맞게 수정?보완하였다. 직무 스트레스 정도는 Johannes Siegrist가 개발한 Effort-Reward Imbalance(ERI)의 한국형 도구(임상혁, 윤간우, 2005)를 연구자가 택시 교대근무자의 특성에 맞게 수정?보완하였다. 수집한 자료는 SPSS win 12.0을 이용하여 실수, 백분율, 평균, 표준편차를 구하였고, 일반적 특성과 직업적 특성에 따른 피로, 수면장애와 직무스트레스는 t-test, ANOVA, Duncan's multiple range test를 하였으며, 변수 간 상관관계는 Pearson's correlation coefficient로 분석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연구 대상자의 피로정도는 총 7점 만점에 평균 3.98±1.12점 이었고, 주간근무 시 수면장애는 총 4점 만점에 평균 2.08±0.56점, 야간근무 시 수면장애는 총 4점 만점에 평균 2.18±0.57점, 직무스트레스는 총 5점 만점에 평균 3.31±0.50점이었다. 2. 수면장애는 주간근무 시 배우자와 함께 사는 기혼 군이(1.99±0.52점) 그렇지 않은 기타 군(2.31±0.63점)보다 덜 겪었으며(t = 2.196, p = .031), 주 평균 1병 이상 마시는 군이(2.49±0.64점) 반병 미만인 군(1.90±0.44점)보다 심했으나(F = 4.677, p = .012), 음주빈도에 따라서는 유의한 차이만 나타냈다(F = 3.188, p = .047). 야간근무 시 수면장애는 주 평균 1병 이상 마시는 군이(2.56±0.57점) 반병 미만인 군(2.00±0.47점)보다 (F = 4.105, p = .021), 주 3회 이상 마시는 군이(2.41±0.59점) 1회 이하로 마시는 군(2.00±0.45점)보다 심했다(F = 4.276, p = .018). 직무스트레스는 택시 교대근무자 개인의 월 평균 수입이 적을수록 더 유의한 차이를 보였고 (F = 3.519, p = .035), 하루 평균 1갑 이상 피우는 군이(3.57±0.47점) 1갑 미만인 군(3.22±0.43점)보다 (F = 3.264, p = .032), 매주 1병 이상 마시는 군이(3.57±0.55점) 반병 이하로 마시는 군(3.14±0.52점)보다 직무스트레스 정도가 높았다(F = 3.709, p = .030). 3. 주간근무 시 수면장애는 사납금을 못 채우는 일수가 7일 이상인 군이(2.40±0.60점) 사납금을 못 채운 날이 없는 군 즉, 매일 정해진 사납금을 채우는 군(1.95±0.52점)보다 수면장애가 심했다(F = 3.766, p = .015). 야간근무 시 수면장애는 운전경력이 5년 이하인 군이(2.33±0.53점) 11년 이상인 군(1.91±0.44점)보다 (F = 3.727, p = .029), 사납금을 못 채우는 일수가 7일 이상인 군이(2.50±0.62점) 사납금을 못 채운 날이 없는 군(2.05±0.43점)보다 심했다(F = 3.569, p = .019). 직무스트레스는 사납금을 지급한 후 남은 수입이 1만원 미만인 군이(3.41±0.44점) 3만원 이상인 군(2.90±0.58점)보다 (F = 4.712, p = .012), 사납금을 못 채우는 일수가 7일 이상인 군(3.56±0.43점)이 사납금을 못 채우는 날이 없는 군(2.99±0.56점)보다 높았다(F = 4.312, p = .008). 그러나 피로정도는 일반적 제 특성과 직업적 특성에 따라 유의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4. 연구 대상자의 피로정도, 주?야간 수면장애 및 직무스트레스간의 상관관계에서 상관성이 가장 높은 것은 주?야간근무 시 수면장애였고(r = .895, p = .001), 다음으로 피로정도와 야간근무 시 수면장애(r = .652, p = .001), 피로정도와 주간근무 시 수면장애(r = .645, p = .001), 그리고 피로정도와 직무스트레스(r = .506(p = .001) 순이었다. 이상에서 택시 교대근무자들은 평균근무시간이 상대적으로 길고 실제 수입정도도 낮은 편이었으며, 교대근무로 인해 피로, 수면장애 및 직무스트레스를 겪는 것으로 나타나 산업장 간호사들의 이들에 대한 적절한 관리가 필요함을 알 수 있었다. 이상의 연구결과를 근거로 다음과 같이 제언하고자 한다. 1. 택시 교대근무자들의 건강문제 해결 및 완화를 위한 법정 근로시간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2. 택시 교대근무자들의 피로, 수면장애 및 직무스트레스 완화를 위한 유급 휴게시간의 마련이 필요하다. 3. 택시 교대근무자들의 고유한 직무특성을 반영한 피로, 수면장애 및 직무스트레스의 측정도구 개발 연구가 필요하다.

      • 진보당 사건 관련자 양이섭의 실체에 대한 연구

        김윤경 서울시립대학교 2011 국내석사

        RANK : 247647

        이 논문은 1958년 ‘조봉암 진보당 사건’에서 간첩 혐의로 재판을 받고 1959년 7월 29일 사형에 처해진 ‘북한간첩’ 梁利涉(梁履涉, 일명 양명산)의 實體를 규명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양이섭의 公訴 혐의는 1955년 5월 중순경 미군 첩보기관 공작원 김동혁과 함께 월북하여 북한노동당 정보위원회 부위원장 朴日英을 만나 북한의 지령사업을 수행할 것을 승낙함으로써 간첩으로 포섭된 후 1955년 6월 중순경부터 1957년 9월 중순경까지 12차례 월북하여 위 박일영 등으로부터 북한의 지령 및 금품을 수수하여 조봉암에게 전달함으로써 간첩예비 및 간첩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조봉암의 간첩죄는 양이섭을 통해 북한의 자금 및 지령을 받아 대통령선거에 입후보하고, 진보당을 창당하고, 기관지 󰡔중앙정치󰡕 발간을 통해 북에서 주장하는 평화통일 노선을 선전함으로써 국가변란을 꾀했다는 것이다. 2011년 1월 20일 대법원은 조봉암 자녀들이 청구한 재심재판에서 조봉암의 간첩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판결 이유는 조봉암의 간첩죄에 대한 유죄 증거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를 기록상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즉 과거 판결과정에서 양이섭 진술의 내용을 그대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취지이다. 그러나 양이섭의 간첩죄 판결은 별도로 확정되었기 때문에 조봉암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판결에도 불구하고 양이섭의 간첩죄는 법률적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그렇다면 양이섭은 간첩이었을까. 지금까지 양이섭의 실체에 대해서는 변론적 수준의 해석만이 존재했다. 특히 과거의 이력과 활동은 수사 및 공판과정에서 그 자신이 진술한 내용으로만 알려졌다. 본 연구에서는 당시의 수사·공판기록뿐 아니라 법정에 제출되지 않은 특무대의 미행 내사기록(국군기무사령부 존안 특무대의 기록), 일제시기 양이섭의 행적을 알 수 있는 日警 체포 보도 및 高麗共靑 기록과 신분장, 국방경비법 위반 판결사례 및 대북공작원 김동혁 사건 판결 등 새로 발굴한 자료들을 두루 활용하여 양이섭이 어떤 사람이었고, 조봉암과는 어떤 관계에 있었으며, 어떻게 간첩이 되었는지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먼저 양이섭은 신의주우체국 집배원으로 근무하던 중 1925년 9월 거액의 현금이 든 우편행랑을 들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는 중국 上海로 망명했다. 그는 臨政과 학교에 큰돈을 희사하는 한편, 高麗共靑에도 일정 금액을 기부하고 후보회원으로 入會했다. 그 무렵 조봉암을 알게 되었고, 조봉암이 주도하던 上海 한인청년동맹, 유호한국독립운동자동맹과 중국공산당 한국지부에서 활동하다가 1931년 4월 日警에 체포되었다. 재판결과 치안유지법 위반(업무횡령)으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34년 7월 가출옥했다. 양이섭은 과거 조봉암과 같은 독립운동 노선에서 활동한 사상적 동지였다. 다음, 1950년대의 남북교역 사실을 확인했다. 1948년 분단정권 수립 후 남북간의 공식 교역은 금지되었지만, 1950년대에도 남과 북 양측 첩보기관들에 의해 비공식적인 교역이 행해지고 있었다. 양측 첩보기관들은 민간인을 고용하여 교역을 假裝한 첩보공작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북교역은 ‘敵地’를 드나들어야 하는 만큼 위험부담이 있었으나, 양측 첩보기관의 보증하에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비교적 안전하고 2~5배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고수익 사업’이었다. 교역수익금의 상당액은 첩보기관 운영기금으로 충당되었다. 양이섭은 HID측 교역상인으로서 북한을 내왕했고, 교역수익금 5,000만환의 1/3에 상당하는 금액을 HID에 제공했다. 마지막으로 양이섭의 신분이 공작원인가, 이중간첩인가, 아니면 단순한 남북교역 상인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당시 첩보기관의 공작원으로는 정식 등록된 공작원 신분과 첩보기관의 공작책임자가 개별적으로 고용한 민간인이 있었다. 후자가 이른바 남북교역 상인이다. 교역상인 자신의 내심은 장사에 목적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장사 행위는 첩보기관의 공작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므로, 이들도 첩보 임무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또, 교역의 성격상 ‘敵側’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다른 군부대나 경찰 등 수사당국에 발각, 체포될 경우 완전히 면책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첩보기관의 공작 차원에서 행해지는 교역이라 하더라도 이북지역을 내왕한 것은 사실이므로 ‘이중첩자’로서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양이섭의 경우 ‘이중첩자’가 아니라 북한의 일방적인 첩자로 규정되었는데, 조봉암과 만나고 그에게 재정지원을 했기 때문이다. 양이섭은 남북교역에 참여한 이래 첩보기관 및 특무대의 미행감시를 통해 일거일동이 파악되고 있었음에도 조봉암과 만나는 것이 전혀 문제시되지 않았는데, 진보당 사건이 발생하자 특무대의 검거대상이 되었다. 특무대는 진보당 간부들이 체포되던 날 1958년 1월 13일에 양이섭의 행방을 찾아나섰다. 양이섭은 2월 8일 특무대에 자진출두한 이래 3월 17일 검찰 송청시까지 40일 동안 특무대 근처 여관에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 재판과정에서는 특무대 조사시 양이섭이 자살을 시도하고 재산헌납을 강요당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그런데 그 재산헌납은 자살시도 실패 후 3일 동안에 행해진 것으로 ‘관대 처우에 대한 감사의 징의’로 약정된 것이었다. 2심 재판부는 양이섭의 진술번복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진술에 대한 증거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이에 더하여 2심 재판의 사실심리가 끝난 직후 1958년 10월 13일에는 뒤늦게 양이섭의 처와 그 자녀들의 가정교사 처가 간첩방조 및 간첩 혐의로 체포되었다. 양이섭에 대한 심리적 겁박이었다. 양이섭은 최후진술에서 사후 조봉암 옆에 묻히기를 희망했다. 그는 조봉암이 대통령이 되면 고아원이나 하면서 지내고 싶다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과거 독립운동의 동지였던 조봉암이 해방된 조국의 정치인으로서 “평화통일과 피해대중을 위한 정치”를 주장하자 깊은 관심을 가졌고, 자신의 힘이 닿는 한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목숨을 건 남북교역에서 얻은 수익금의 1/3을 기꺼이 제공했던 것이다. 조봉암에게 있어 그는 헌신적인 후원자였으며, 죽어서도 옆에 묻히기를 희구한 존경하는 동지였다. 일찍이 조봉암에 대해서는 이승만정권에 의한 피해자이자 한국사회 반공냉전체제의 희생자라는 평가가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양이섭 역시 이승만정권의 정치적 음모사건의 희생양이자 분단된 한국 현대사의 피해자로 규정하고자 한다. 양이섭의 公訴 혐의는 1955년 5월 중순경 미군 첩보기관 공작원 김동혁과 함께 월북하여 북한노동당 정보위원회 부위원장 朴日英을 만나 북한의 지령사업을 수행할 것을 승낙함으로써 간첩으로 포섭된 후 1955년 6월 중순경부터 1957년 9월 중순경까지 12차례 월북하여 위 박일영 등으로부터 북한의 지령 및 금품을 수수하여 조봉암에게 전달함으로써 간첩예비 및 간첩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조봉암의 간첩죄는 양이섭을 통해 북한의 자금 및 지령을 받아 대통령선거에 입후보하고, 진보당을 창당하고, 기관지 󰡔중앙정치󰡕 발간을 통해 북에서 주장하는 평화통일 노선을 선전함으로써 국가변란을 꾀했다는 것이다. 2011년 1월 20일 대법원은 조봉암 자녀들이 청구한 재심재판에서 조봉암의 간첩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판결 이유는 조봉암의 간첩죄에 대한 유죄 증거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를 기록상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즉 과거 판결과정에서 양이섭 진술의 내용을 그대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취지이다. 그러나 양이섭의 간첩죄 판결은 별도로 확정되었기 때문에 조봉암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판결에도 불구하고 양이섭의 간첩죄는 법률적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그렇다면 양이섭은 간첩이었을까. 지금까지 양이섭의 실체에 대해서는 변론적 수준의 해석만이 존재했다. 특히 과거의 이력과 활동은 수사 및 공판과정에서 그 자신이 진술한 내용으로만 알려졌다. 본 연구에서는 당시의 수사·공판기록뿐 아니라 법정에 제출되지 않은 특무대의 미행 내사기록(국군기무사령부 존안 특무대의 기록), 일제시기 양이섭의 행적을 알 수 있는 日警 체포 보도 및 高麗共靑 기록과 신분장, 국방경비법 위반 판결사례 및 대북공작원 김동혁 사건 판결 등 새로 발굴한 자료들을 두루 활용하여 양이섭이 어떤 사람이었고, 조봉암과는 어떤 관계에 있었으며, 어떻게 간첩이 되었는지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먼저 양이섭은 신의주우체국 집배원으로 근무하던 중 1925년 9월 거액의 현금이 든 우편행랑을 들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는 중국 上海로 망명했다. 그는 臨政과 학교에 큰돈을 희사하는 한편, 高麗共靑에도 일정 금액을 기부하고 후보회원으로 入會했다. 그 무렵 조봉암을 알게 되었고, 조봉암이 주도하던 上海 한인청년동맹, 유호한국독립운동자동맹과 중국공산당 한국지부에서 활동하다가 1931년 4월 日警에 체포되었다. 재판결과 치안유지법 위반(업무횡령)으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34년 7월 가출옥했다. 양이섭은 과거 조봉암과 같은 독립운동 노선에서 활동한 사상적 동지였다. 다음, 1950년대의 남북교역 사실을 확인했다. 1948년 분단정권 수립 후 남북간의 공식 교역은 금지되었지만, 1950년대에도 남과 북 양측 첩보기관들에 의해 비공식적인 교역이 행해지고 있었다. 양측 첩보기관들은 민간인을 고용하여 교역을 假裝한 첩보공작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북교역은 ‘敵地’를 드나들어야 하는 만큼 위험부담이 있었으나, 양측 첩보기관의 보증하에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비교적 안전하고 2~5배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고수익 사업’이었다. 교역수익금의 상당액은 첩보기관 운영기금으로 충당되었다. 양이섭은 HID측 교역상인으로서 북한을 내왕했고, 교역수익금 5,000만환의 1/3에 상당하는 금액을 HID에 제공했다. 마지막으로 양이섭의 신분이 공작원인가, 이중간첩인가, 아니면 단순한 남북교역 상인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당시 첩보기관의 공작원으로는 정식 등록된 공작원 신분과 첩보기관의 공작책임자가 개별적으로 고용한 민간인이 있었다. 후자가 이른바 남북교역 상인이다. 교역상인 자신의 내심은 장사에 목적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장사 행위는 첩보기관의 공작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므로, 이들도 첩보 임무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또, 교역의 성격상 ‘敵側’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다른 군부대나 경찰 등 수사당국에 발각, 체포될 경우 완전히 면책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첩보기관의 공작 차원에서 행해지는 교역이라 하더라도 이북지역을 내왕한 것은 사실이므로 ‘이중첩자’로서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양이섭의 경우 ‘이중첩자’가 아니라 북한의 일방적인 첩자로 규정되었는데, 조봉암과 만나고 그에게 재정지원을 했기 때문이다. 양이섭은 남북교역에 참여한 이래 첩보기관 및 특무대의 미행감시를 통해 일거일동이 파악되고 있었음에도 조봉암과 만나는 것이 전혀 문제시되지 않았는데, 진보당 사건이 발생하자 특무대의 검거대상이 되었다. 특무대는 진보당 간부들이 체포되던 날 1958년 1월 13일에 양이섭의 행방을 찾아나섰다. 양이섭은 2월 8일 특무대에 자진출두한 이래 3월 17일 검찰 송청시까지 40일 동안 특무대 근처 여관에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 재판과정에서는 특무대 조사시 양이섭이 자살을 시도하고 재산헌납을 강요당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그런데 그 재산헌납은 자살시도 실패 후 3일 동안에 행해진 것으로 ‘관대 처우에 대한 감사의 징의’로 약정된 것이었다. 2심 재판부는 양이섭의 진술번복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진술에 대한 증거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이에 더하여 2심 재판의 사실심리가 끝난 직후 1958년 10월 13일에는 뒤늦게 양이섭의 처와 그 자녀들의 가정교사 처가 간첩방조 및 간첩 혐의로 체포되었다. 양이섭에 대한 심리적 겁박이었다. 양이섭은 최후진술에서 사후 조봉암 옆에 묻히기를 희망했다. 그는 조봉암이 대통령이 되면 고아원이나 하면서 지내고 싶다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과거 독립운동의 동지였던 조봉암이 해방된 조국의 정치인으로서 “평화통일과 피해대중을 위한 정치”를 주장하자 깊은 관심을 가졌고, 자신의 힘이 닿는 한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목숨을 건 남북교역에서 얻은 수익금의 1/3을 기꺼이 제공했던 것이다. 조봉암에게 있어 그는 헌신적인 후원자였으며, 죽어서도 옆에 묻히기를 희구한 존경하는 동지였다. 일찍이 조봉암에 대해서는 이승만정권에 의한 피해자이자 한국사회 반공냉전체제의 희생자라는 평가가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양이섭 역시 이승만정권의 정치적 음모사건의 희생양이자 분단된 한국 현대사의 피해자로 규정하고자 한다. This study is a trial to investigate the truth of Yang Eseop, a North Korean spy, who was brought to trial on suspicion of spying in Jo Bongam-Jinbo Party Case in 1958, sentenced to death, and was executed on July 1959. Yang Eseop was thought that he had spied by going to North Korea 12 times from June, 1955 to the middle of September, 1957, getting orders, money and valuables, and passing them to Jo Bongam. Jo Bongam-Jinbo Party's spy crime was seemed that it attempted the national rebellion by receiving money and orders from North Korea through Yang Eseop, creating Jinbo Party, promoting peaceful unification which was suggested by North Korea through publishing Jungang Jungchi(Metro Politics). On January 20, 2011, the Supreme Court overturned the original conviction in retrial of Jo Bongam' case, declaring him not guilty for spying and violating national security law. The reasons of a judgment of acquittal were as follows: (1) it was hard to see that guilty evidences for spying was proved without sensible curiosity (2) There were no other evidences found on the record. That is, there was illegality of juridical misunderstanding, so the spy quilt for Yang Eseop remains. Therefore, was Yang Eseop a spy? So far Yang Eseop was known by his statements made during investigations and trial processes. This study utilized newly found materials - (a) records of investigations and trial processes (2) records of secreat internal investigation of Defense Security Command (3) report on Yang Eseop arrested by the Japanese polic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4) records of attending Korean Communist Party (5) personal records of the prison (6) judgement cases of violating National Defense Guard Act (7) case of Kim, Donghyuk, a South Korean Spy - and examined (1) who was Yang Eseop (2) What kind of relations he had with Jo Bongam (3) who he became a spy. First of all, Yang Eseop sought asylum in Shanghai, China where there was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in September, 1925 while working as a postman in Shineuiju Post Office. He contributed a lot of money to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donated money to Korean Communist Party, and gave and joined as a candidate member. He got to know Jo Bongam in those days, worked in Jo Bongam's community group, and was arrested by the Japanese police in April, 1931. Yang Eseop was an ideological comrade with Jo Bongam who worked on the same line of independence movement in the past. Second, the trades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were verified. The official trade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was prohibited, but unofficial trades were made in both Koreas by intelligence agencies in 1950's. Intelligence agencies in both Koreas hired civilians and carried out spy businesses, disguising trades. Trades between North & South were dangerous because they needed to go to enemy territories, but these trades were made under guarantee of both intelligence agencies, so they were high-return businesses with 2~5 times of profits. a very large sum of money of trade profits were used for operation of intelligence agencies. Yang Eseop provided about 1/3 amount of trade profits to HID (Headquarters Intelligence Department) as a trade merchant of HID side. Lastly, it is a matter that Yang Eseop was a spy. He was considered as a spy because he met with Jo Bongam and provided financial aid to him. Though all his activities were observed and followed by HID and Defense Security Command while participating in trades between both Koreas, it was not a crime to meet with Jo Bongam, but Yang Eseop suddenly became an apprehension target of Defense Security Command. Defense Security Command tried to locate Yang Eseop on the day of arresting. He was investigated under illegal detention at the inn near by Defense Security Command for 40 days till March 17, since he appeared in Defense Security Command voluntarily on February 8. The fact that Yang Eseop tried to kill himself and was threatened to donate his fortune by Defense Security Command was revealed during the trial processes. That donation of his fortune was made in 3 days after he tried to commit suicide and it was agreed as a token of appreciation for generous treatment. The judge panel of his retrial didn't check his new evidences, though Yang Eseop changed his testimonies. But in hindsight his wife and the wife of kids' tutor were arrested on the charge of aiding spies and spying, so that Yang Eseop could get more psychological pressures. Yang Eseop wished he would be buried besides Jo Bongam after his death. He used to say that he wanted to run an orphanage, if Jo Bongam would become a president. He took a keen interest in Jo Bongam when he insisted "Politics of peaceful unification and the damaged public and did his best to support Jo Bongam financially. Yang Eseop was willing to provide about 1/3 amount of profits that he gained from the life-and-death trades between both Koreas. Yang Eseop was a dedicated supporter and respectful comrade who wanted to be buried besides Jo Bongam after his death. Earlier there was a appraisal that Jo Bongam was an undeserved victim of the Rhee Syngman government and the cold war system against communism of both Koreas. This study provides that Yang Eseop was also a victim of the political plot of the Rhee Syngman government and the modern history of divided Koreas. Key Words : Jinbo Party Case, Retrial, a spy, the Rhee Syngman government,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in Shanghai, Korean Communist Party, the Maintenance of the Public Order Act, Defense Security Command, HID(Headquarters Intelligence Department), Trade between North & South Kroea, National Defense Security Act

      • 대학생을 위한 진로탐색 집단상담 프로그램 효과 분석

        김윤경 대전대학교 경영행정·사회복지대학원 2004 국내석사

        RANK : 247631

        본 연구는 대학생들에게 자신과 직업세계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탐색하게 하고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진로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집단 프로그램을 수정보완하고 적용해서 그 효과를 검증해보고자 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적용 및 효과 검증은 학생들의 진로미결정 문제에 대한 개입방법을 구체화하는 기회가 될 것이며, 본 연구의 결과는 집단적으로 진로상담을 실시할 때, 집단 진로지도 자료와 프로그램으로 효율적인 진로지도를 위해 많이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본 연구를 위해 대전대 재학생을 대상으로 진로탐색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실시한 후 자신에게 적합한 직업을 탐색해 보고 직업세계에 대한 계속적인 관심과 탐색을 유지하게 하여 자신의 진로성숙과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도록 도와주고자 하였다. 본 연구의 대상은 대전대학교 재학생들로서 연령, 학년, 성별을 제한하지 않고 진로탐색 집단상담을 자발적으로 신청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모집하였고 집단상담의 실시는 2003년 10월 2일부터 11월 27일 까지 총 8회가 실시되었으며 매 회기의 시간은 120분이었다. 본 연구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실시한 측정도구는 의사결정유형 검사지와 진로성숙도 검사지이며 이를 통해 실험집단과 통제집단간의 효과를 비교하였다. 그 결과 실험집단은 통제집단에 비해 진로성숙도가 높아졌고, 합리적 의사결정이 증가했으며 의존적, 직관적 의사결정은 감소하였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에서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다음과 같이 제언하였다. 첫째, 본 집단상담 구성원 변인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본 프로그램에서는 학년제한 없이 집단을 구성하였지만 대학생은 학년별로 진로문제가 많이 다를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 본 프로그램의 효과가 지속되는지에 대한 추후연구와 본 프로그램이 이후 집단원의 진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후속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셋째, 본 연구에서 프로그램 중도탈락자는 10명 중에 3명이었는데 이는 프로그램 진행중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프로그램에 참여한 다른 집단원들에게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학기 중 동일한 시간대에 계속 결석 없이 출석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좀 더 공식화되고 학점과 관련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이 제시된다면, 다른 외적 요인들로 인한 탈락율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집단 프로그램 참가 신청자의 비율이 여학생들이 많아 집단 구성시 상대적으로 여학생들이 많아진 것에 대한 원인을 살펴 볼 필요가 제기되었다. 여학생들이 특히 진로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것인지에 대한 탐색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진로발달의 문제를 가진 다양한 내담자들에게 보다 적절한 도움을 제공하여야 한다. 개인상담의 경우에는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지도가 쉽게 적용 가능한 반면, 집단상담의 경우 동일한 프로그램이 동시에 실시되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성격 및 방향성이 내담자들의 요구와 수준에 맞추어져 다양하게 개발될 필요성이 절실하다.

      • 코치닐에 의한 천연염색성과 항균성

        김윤경 대구대학교 대학원 2005 국내석사

        RANK : 247631

        천연염색의 기원은 4대 신석기 문명 발상지역중의 하나인 인도 모헨조다로 유적지에서 발견된 꼭두서니로 염색된 붉은 면직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지위의 높고 낮음을 관복의 색으로 구분하였는데 자-적-황 순으로 지위의 높낮이를 표시하였다. 자색은 지치, 적색은 잇꽃과 소방목, 황색은 치자, 황백 등에서 얻었다. 식물에서 얻어진 색소는 옷감의 염색뿐만 아니라 음식의 색상을 내는데도 사용되었다. 이러한 천염염색은 1956년 영국의 퍼킨스가 합성염료를 발명한 이후 천연염재가 지닌 시간적 제약과 재연성의 불확실성 등의 단점으로 인하여 점차 줄어들다가 합성염료로 염색할 때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 때문에 근래에 들어 천연염료의 단점들을 보완하고, 명확한 성질을 규명한 연구보고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본 실험논문에서 사용한 천연염료는 중남미 사막지대의 샤보텐이라는 선인장에서 기생하는 연지충에서 얻어진 코치닐이란 염료로 매염제에 따라 적색, 적자색, 회적색으로 색상이 변화하는 다색성 동물성 염료로 학명은 Coccus Cacti L. 이고, 주성분을 Carminic acid이며 수산기(-OH)와 초산기(COOH)를 가진다. 또 pH에 매우 민감하여 전형적인 할로크로미즘 현상을 보여 정색용지시약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본 시험에서는 정제된 코치닐 분말을 시중에서 구입하여 사용하였으며, 섬유에 대한 천연염색성을 알아보기 위하여 KS K 0905에 규정된 염색 견뢰도 시험용 백색 표준 견, 양모, 나일론, 면, 레이온 직물을 이용하였고, 색차와 염색성의 측정은 Computer Color Matching System(Color Quest XE, Hunterlab, USA)를 이용하였다. 최적염색조건을 알아보기 위해 염액농도변화, 시간변화, 온도변화 등의 실험을 행하였으며, 그 결과 견, 양모, 나일론 직물은 1.5%(o.w.f), 30분, 60℃가 최적 조건으로 나타났으며, 면, 레이온 직물은 2.5%(o.w.f), 30분, 60℃로 나타났다. 최적 매염조건을 알아보기 위하여 매염제 종류별 각 섬유에 대한 농도변화와 매염방법의 변화 실험을 행하였으며, 그 결과 섬유와 매염제 종류에 관계없이 0.5%, 30분, 60℃, 선매염법으로 최적매염조건이 나타났다. 이렇게 알아본 결과들로 염색을 실시한 시료들로 염색견뢰도와 항균성을 측정하였다. 견뢰도는 최적조건에서 염색된 시료를 이용하여 일광, 마찰, 땀, 드라이클리닝, 세탁 견뢰도를 알아보았으며, 항균성은 공시균인 황색포도상구균을 이용하여 KS K 0693에 규정된 균수 측정법으로 측정하였다. 각 섬유에 대한 코치닐 염액의 pH 변화에 따른 염색성의 변화에 대한 실험 결과 코치닐 원액의 pH는 4.5로 산성으로 나타났으며 섬유에 대해서는 산성일 때의 염색성이 염기성일 때의 염색성보다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견뢰도 측정 결과 매염제의 종류에 상관없이 매염실시는 견뢰도 향상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견섬유를 제외한 다른 섬유들에서는 일광견뢰도가 매염제 사용유무에 상관없이 1, 2급의 낮은 등급의 견뢰도를 보였고, 견섬유는 3등급의 비교적 높은 등급의 일광견뢰도를 보였다. 또 일광견뢰도를 제외한 땀, 마찰, 드라이클리닝, 세탁 견뢰도들에서는 매염을 실시하지 않은 무매염 시료의 견뢰도 등급이 대체로 높게 나타나 코치닐에 대한 매염제의 사용은 견뢰도의 향상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황색포도상구균을 이용한 항균성 측정은 면섬유를 제외한 다른 섬유들에서 Sn 매염을 실시한 시료가 90%이상의 높은 항균성을 보였고, 면섬유에서는 Cu, Fe매염을 실시한 시료가 90%이상의 높은 항균성을 보였다. 이것은 금속이온으로 이루어진 이들 매염제에 의해 세균의 생육저지가 이루어져 균수가 감소한 것으로 생각된다. The Origin of a natural dyeing is known as the ‘Red cotton fabric dyed with a Madder'. This was discovered in the Mohenjo-Daro archaeological site known as one of the four cradles of the Neolithic Age. Many years ago in Korea, the social status of an officer was classified by the color of his garb: purple, red, and yellow. Purple was made from gromwell, red was made from a safflower and a sappanwood, and yellow was made from gardenia seeds and a cork tree. The pigments from the plants were used for dyeing not only the fabrics but also the food. In 1956 when a Synthesis Dyestuff was invented by Perkins, this natural dyeing had seemed to be dissipate due to some disadvantages it had such as the restriction of time and the uncertainty of reproduction. Nevertheless, this situation has been reversed recently trial and error due to some problems that have incurred over the past years with the production of a Synthesis Dye. As a result and recently, a lot of research and treatises have gone into problem solving in order to identify the weak points and the quality of a natural dyeing. A dyestuff experimented with on this project is known as ‘Cochineal' which is extracted from a cochineal insect. It is a pleochroic animal dyestuff that changes its color from red, madder lake, and grayish red according to the use of different mordant. The scientific name of ‘Cochineal’ is ‘Coccus Cacti L.', which mostly consists of Carminic acid, but also has -OH and -COOH. It is also used as Color reaction indicator because it is very sensitive to pH and it shows halochromism phenomenon. The refined ‘Cochineal’ powder was used for this experiment. To find out its natural dyeing properties on a fabric, we used a white standard dyeing fastness tester which is stipulated in KS K 0905, such as silk, wool, nylon, cotton, and rayon. The chrominance and dyeing properties are measured by a ‘Computer Color Matching System’ (Color Quest XE, Hunterlab, USA). To figure out the most appropriate atmospheric dyeing condition, the changes of density of a dyeing liquor, the changes of time, and the changes of temperature have been offered. As a result, the most practical dyeing condition for silk, wool, and nylon was identified as 1.5%(o.w.f), for 30minutes at 60℃. Whereas the best dyeing condition for cotton, rayon was identified as 2.5%(o.w.f), for 30minutes at 60℃. To discover the most appropriate mordant condition, the changes of density of the various kinds of a mordant, and the treatment of the different method of a mordant have been experimented. As a result, it was found that the best mordant condition is the pre-mordanting regardless of the kind of a mordant concentration at 0.5%, for 30minutes at 60℃. Based on all of the results from the above experiments, the dyeing fastness and the antibiosis were measured by dyeing fabrics. Fastness was measured in the terms of the sunlight, friction, sweat, dry clean, and laundry. The antibiosis was measured by the method of ‘Counting of Bacteria' which is specified on the KS K 0693 using a ‘Staphylococcus Aureus' which is an ‘Announcement Official Bacterium'. The measurement of the change of dyeing property on a fabric according to the change of pH of cochineal shows that an undiluted cochineal solution indicates a pH balance of 4.5 in acidity. The dyeing property is higher on acidity than on alkali. The measurement of fastness shows that there is no correlation between improving fastness and the kind of mordant used. Especially, all of the fabrics except silk showed a low degree of 1-2 in fastness regardless of using any kind of mordanting, and silk showed a degree of 3 which is comparatively high in light fastness. Also, fastness of sweat, friction, dry clean, and laundry except sunlight showed even higher readings without a mordanting. Therefore, there is no effect on fastness improvement by using a mordanting on cochineal. The measurement of an antibiosis by staphylococcus aureus showed more than 90% antibiosis with the use of a Sn mordanting except with cotton. In the case of cotton, it showed the same degree of an antibiosis with the use of Cu, and Fe mordanting. It is considered that these metallic iron mordanting obstructed the spreading of bacteria and reduced their numbers.

      • 송사소설에 나타난 여성의 사건대응 양상 연구

        김윤경 울산대학교 대학원 2013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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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초록 송사소설에 나타난 여성의 사건대응 양상 연구 본 연구는 송사소설에서 사건의 발생 및 해결 과정에 치중함으로써 대립자와 당사자 간의 갈등을 부각시키고 이를 통해 여성 주인공 개인의 삶과 사회의 제반 문제점을 고찰해 보고자 하는 의도로 시도된 연구다. 그래서 송사소설에 나타난 여성 주인공의 사건발생 유형과 사건대응 양상을 살펴봄으로써 조선후기에 이르러 변모된 여성상을 알아보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여성주인공 송사소설의 소설사적 의의를 알아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송사소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조선후기이다. 조선후기는 임병양란을 겪으면서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다. 여성들의 의식 변화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성리학적 명분론에 입각한 유교이념이 지배하던 사회에서 여성들은 늘 약자였다. 하지만 조선후기에 이르러 일부 여성들은 주체의 구현으로 여성 억압적인 봉건사회의 틀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문학은 이러한 여성들의 의식변화를 적절히 수용하여 형상화하고 있는데,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이 여성주인공 송사소설이다. 송사소설은 송사사건의 시말을 작품의 구조 원리로 하여 전개되는 일련의 고전소설 작품들을 말한다. 송사소설의 제재적 근원은 실사와 설화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실사를 모태로 하여 소설적인 변용으로 나아간 작품을 ‘실사형 송사소설’이라고 하며, 그 중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실사형 여성주인공 송사소설’이라 칭한다. 본고에서는 실사형 여성주인공 송사소설인 <은애전>, <열녀홍씨전>, <박효랑전>, <김씨남정기>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 여성의 시각으로 사건 발생유형과 대응양상을 살펴보았다. 먼저 사건발생유형을 살펴보면, 크게 ‘정조모함형’과 ‘가장횡사형’으로 나눌 수 있다. ‘정조모함형’은 적대적 인물이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여성주인공의 정조를 모해하는 것으로 <열녀홍씨전>과 <은애전> 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가장횡사형’은 사건발생의 주요한 이유가 가장의 횡사로 권력가의 투장에 대항하던 아버지가 억울하게 옥사함으로써 사건이 발생한 <박효랑전>과 추노 간 남편이 노비들에게 죽임을 당함으로써 사건이 발생하는 <김씨남정기>가 여기에 속한다. 다음으로 사건 대응양상을 살펴보면, <열녀홍씨전>은 정조모함이라는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자결 대신 적극적인 해명으로 사건의 전모를 밝혀 징죄하고 자결하며, <은애전>은 정조를 모함한 상대에 대해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맞서고 있다. <박효랑전>은 투장이라는 권력자의 횡포로 인해 억울하게 죽은 아비의 원수를 갚기 위해 두 딸이 불굴의 투쟁을 벌이며, <김씨남정기>는 여성주인공이 남편을 살해하고 도망친 노비를 끝까지 추적하여 심판을 받게 한다. 실사형 여성주인공 송사소설의 소설사적 의의는 먼저 조선후기 여성 문학의 또 다른 흐름인 사실주의적 문학의 형성에서 찾을 수 있다. 송사소설은 현실의 제반 문제에 대한 관심의 방향 및 이에 대처하는 태도 등을 보여줌으로써 개인의 내면세계는 물론 시대상황까지도 효과적으로 반영하거나 비판할 수 있다. 여성주인공 송사소설은 사건의 발생과정이 당시의 사회 환경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로 현실적 주요 관심사를 소재로 수용함으로써 리얼리티가 강화되고 있다. 다음은 여성주인공 송사소설은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준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여성주인공 송사소설 속의 여성들은 이전의 여성들과는 다르게 현실적 고난에 대해 매우 능동적이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열녀홍씨전>은 자신에 닥친 수난에 무조건 자결보다 ‘효’와 ‘열’을 바탕으로 자의식과 적극적인 사고로 자신을 찾고자 한다. <은애전>은 자신의 명예를 죽음을 걸고 지키고자 하며, <박효랑전>은 남녀의 경계를 뛰어넘어 스스로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김씨남정기> 또한 적극적인 삶의 행동으로 탐관오리들의 전횡 속에 사건이 옳게 처리되지 못함을 알고 끝까지 추적하여 심판을 받게 한다. 다음은 작자들의 여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이에 따른 서술의식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여성주인공 송사소설의 창작 동기는 경계와 교훈 통한 유교이념의 구현이다. 그래서 작자들은 수범적 인물을 드러내어 밝히는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변화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인식변화가 서술의식의 변화로 이어져 송사라는 첨예화된 갈등과 대립구조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서술중심에서 벗어나 대화와 심리묘사로 긴장감을 획득함으로써 실사를 한 편의 흥미로운 소설로 재구성했다.

      • 대학 태권도 선수들의 멘토링경험이 스포츠자신감과 스포츠몰입에 미치는 영향 : 대학 태권도 선수의

        김윤경 강원대학교 교육대학원 2013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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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대학 태권도 선수들의 멘토링경험이 스포츠자신감과 스포츠몰입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는데 있으며, 멘토링에 대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그로 인하여 운동수행능력과 심리적 함양을 향상시키기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와 같은 연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2013년 현재 대한태권도협회에 등록된 대학 태권도선수를 모집단으로 설정한 후, 편의표본추출법(convenience sampling method)을 이용, 총 400명을 표집하였으며, 설문조사 후 305부의 설문지를 실제분석에 사용하였다. 측정도구의 타당도 검증 및 연구 변인의 적합도를 검증하기 위하여 탐색적 요인분석(Exploratory Factory Analysis : EFA)을 실시하였고 설정한 변인의 신뢰성 검증을 위하여 Cronbach's a 계수를 산출하였다. 연구의 가설을 검증하기 위하여 SPSS Windows ver. 18.0을 이용하여 빈도분석(Frequency analysis)과 t-test, 일원변량분석(One-wey ANOVA), 상관관계분석(Correlation analysis), 다중회귀분석(Multiple Regression Analysis)을 실시하였다. 본 연구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인구사회학적특성 변인에 따른 멘토링경험은 성별, 학년, 입상경력에서 유의한 차이가 있었으며, 선수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따라 멘토링경험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둘째, 인구사회학적특성 변인에 따른 스포츠자신감은 성별에 따른 차이는 나타나지 않았으나, 학년, 운동경력, 입상경력에서 유의한 차이가 있었으며, 성별에 상관없이 운동경력이 높을수록 스포츠자신감 또한 향상되어 입상성적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셋째, 인구사회학적특성 변인에 따른 스포츠몰입은 성별, 학년, 운동경력, 입상경력에서 유의한 차이가 있었으며, 남학생이 여학생 보다 몰입감이 더 높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운동수행에 있어서 숙련된 자들은 초보자 보다 상대적으로 심리적 부담감을 적게 가지며 우수한 선수들은 몰입감을 높게 인식하여 입상성적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넷째, 멘토링경험은 스포츠자신감 및 스포츠몰입 각각의 변인 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멘토링기능은 운동선수들의 경기력 및 자존감을 향상시키고 몰입감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대학 태권도 선수들에게 멘토링경험은 스포츠자신감과 스포츠몰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침에 따라 향후 대학 태권도선수 외에 다양한 종목의 선수들에게도 멘토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The purposes of this research are to investigate effects of university taekwondo players' mentoring experience on sports confidence and sports commitment, emphasize necessaries for mentoring and provide basic data for improving exercise performance ability and psychological cultivation. To achieve the purposes, it set university taekwondo players registered to Korean Taekwondo Association in 2013 as parent population and selected total 400 players with convenience sampling method. After the survey, 305 questionnaires were used for actual analysis. To verify validity of measuring tool and goodness-of-fit of research variables, Exploratory Factory Analysis (EFA) was conducted. To verify validity of set variables, Cronbach's a coefficient was calculated. To verify research's hypothesis, Frequency analysis, t-test, One-wey ANOVA, Correlation analysis and Multiple Regression Analysis were conducted with SPSS Windows ver. 18.0. Through this research, following conclusions could be obtained. First, mentoring experience by sociodemographic characteristic variables showed significant differences in gender, grade and awards and awareness for mentoring experience was different according to the characteristics of individual player. Second, sports confidence by sociodemographic characteristic variables didn't show differences by genders, but there were significant differences in grade, exercise career and awards. Regardless of genders, sports confidence was also improved and effects were made on awards as exercise career was higher. Third, sports commitment by sociodemographic characteristic variables showed significant differences in gender, grade, exercise career and awards and male students showed higher commitment than female students. Also, people who are skillful in exercise performance showed lower psychological burden than beginner and excellent players recognized high sense of commitment. So, there were effects made on awards. Fourth, mentoring experience made positive effects between sports confidence variables and sports commitment variables. And, mentoring function improved playing ability, self-regard and sense of commitment of exercise players.

      • 초등학교 텃밭 운영 실태 분석 및 활성화 방안

        김윤경 서울교육대학교 교육전문대학원 2014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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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의 목적은 초등학교 텃밭 운영 실태를 분석하여 학교 텃밭 활성화 방안을 제시하는데 있다. 본 연구를 위해 서울특별시 강남교육지원청과 북부교육지원청 관내 학교 텃밭을 보유한 86개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때, 설문지는 강기오(2012), 김성희(2012)의 검사 문항을 초등학교 교사에게 적합하게 수정․보완하여 사용하였다. 그 결과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학교에는 노지텃밭의 형태가 많으며, 교과와 연계하여 수업시간에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과정에 제시된 작물을 선택하여 재배하고 있었으며 학생들의 주된 활동은 관찰이었다. 둘째, 학교 텃밭 연수 경험이 없는 교사가 88.16%였으며, 68.42%의 교사가 텃밭 관련 연수를 필요로 하였다. 교사들은 인성교육과 인성교육을 위해 텃밭 활동이 필요하며, 학교 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텃밭 활동의 어려움으로는 활동 시간 및 텃밭 공간 확보를 들었다. 또한 교사들은 65㎡∼130㎡ 미만 규모의 노지텃밭 형태를 희망학급이 배정받아 관리하는 방법을 선호하였다.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초등학교 학교 텃밭 활성화를 위해 다음과 같은 활성화 및 활용방안을 제안하였다. 첫째, 교과 수업 시간 활용이다. 교육과정에서 교과 수업 시간의 비중이 가장 높은 것을 감안하여 교육과정을 분석하고 수업과 연계하는 방안을 마련하여 활용하는 것이다. 둘째, 창의적 체험활동을 확대한 텃밭 동아리 조직이다. 학생과 교사가 자발적으로 구성한 동아리는 작물 선택 및 재배의 전 과정을 창의적이고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셋째, 교과 시간 외, 수업 전·점심·방과 후 시간의 효율적으로 활용한다. 넷째, 교사의 전문성 향상을 위해 연수 및 교육 기회를 확대한다. 텃밭 활성화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교사의 전문성 향상이므로 학교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관련 연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교내·외 공간의 활용이다. 상자텃밭으로 교내 공간을 이용하고, 각 기관의 텃밭 분양 기회를 활용하여 교외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본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텃밭 가꾸기 활동은 교육적 효과가 높아 학교 교육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텃밭 가꾸기 활동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관련 연구의 폭을 확대하고 교사의 관심과 긍정적인 인식변화가 필요하다. 또한 각 학교의 개별성과 특수성을 고려한 다양한 시도가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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