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 동북아시아의 시간 질서는 역법적 질서와 역일적 질서가 분리 공존되어 있었다. 曆은 시간 질서의 발현 장치이다. 시간 질서의 주재자인 제왕은 역을 통해 정치‧사회적 통합을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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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동북아시아의 시간 질서는 역법적 질서와 역일적 질서가 분리 공존되어 있었다. 曆은 시간 질서의 발현 장치이다. 시간 질서의 주재자인 제왕은 역을 통해 정치‧사회적 통합을 기도...
전근대 동북아시아의 시간 질서는 역법적 질서와 역일적 질서가 분리 공존되어 있었다. 曆은 시간 질서의 발현 장치이다. 시간 질서의 주재자인 제왕은 역을 통해 정치‧사회적 통합을 기도했다. 역법적 질서의 외향은 천문 역법 편찬의 종주국인 중국이 국제 질서를 주도하면서 주변국에게 頒曆하는 행위로 관례화되었다. 흔히 조공과 책봉 과정 중에 이루어졌던 역의 頒賜는 역법적 질서와 관련되어 있었다. 역법 질서를 자국 중심 위주로 공고히 다지고자 주도하는 정치 세력은 이와 같은 형식적인 의례를 보다 더 관습화시켜 나갔다.
반면, 역일적 질서는 각국이 자국의 사정에 맞게 독자적인 자체력을 만들어 국가 운영을 도모하는 것으로 체계화되었다. 동북아시아 국제 사회에서 역일적 질서는 일원적 제국의 등장이 있기 전까지 단위 주체들의 공동 견인을 필요로 했다. 고려는 국제 질서를 이끈 주체 중 하나였다. 당연히 고려의 시간 질서도 국제 사회와 연동되어 있었다. 이로써 고려는 선명력 체계를 반영하면서도 거란·송·금의 역을 수용하고 변용시켜 실상에 맞는 독자적인 역일을 제작하여 운영했다.
고려의 역법 운용은 수용과 변용이라는 독특한 특징을 지녔다. 고려는 역법적 질서와 역일적 질서 유지에 충실했다. 이를 통해 고려는 국제 사회의 일원이면서도 자국의 시간 질서 주재자라는 이중의 목적을 실현시켰다. 그 선상에서 고려는 독자적으로 역일을 제작하고 반포했다. 고려 역일은 용도에 있어서는 常用曆이었으며, 또한 그것은 역법 추산에 의해 제작된 氣朔曆이기도 했다. 아울러 고려 역일은 형식면에서 전통적인 역일의 모습을 갖춘 具注曆日이었다
본고는 고려를 비롯한 주변국이 자국의 역일을 이웃 국가의 것과 비교함으로써 역일 제작에 반영시켰음을 확인했으며, 고려 역일의 특성을 드러내보고자 역일의 복원을 시도했다. 고려 구주역일은 아직까지 발굴되지 않았지만, 최근 발견된 深源寺 소장 13세기 「吉凶逐月橫看 高麗木板」은 고려 역일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일단의 정보를 예시해 주었다.
본 논문은 크게 3부분으로 구분하며, 여기에 각각의 내용에 맞춰 각 장을 세분화시켜 논지를 전개했다. 이로써 고려의 역법과 역일에 대한 추이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노의 결과를 도출하게 되었다.
Ⅰ장에서는 고려사 「역지」 서문에 언급된 찬자의 시각에 주목했다. 이에 서문의 입장을 비판적으로 접근하여 고려 역법 추이와 고려 역일의 성격을 밝히고자 했다. 고려사 「역지」 찬자는 조선의 역법인 칠정산 제작에 공헌한 정인지였다. 그는 고려사 「역지」에서 고려가 주변국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역법을 수용한 사례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며, 「역지」에 오직 선명력과 수시력만을 수록했다. 정인지는 서문에서 “고려는 별도로 曆을 만들지 않았다.”라고 하면서, 고려가 중국의 改曆에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이것은 그가 「역지」에 선명력과 수시력만을 실었던 것에 대한 합리화였던 셈이다. 「역지」 서문의 찬자인 정인지는 중국 역법의 세계관을 통해 역법적 질서를 바라보았지만, 정작 그는 고려의 역일적 질서를 외면했다.
이러한 문제 인식 속에서 고려의 역법 수용과 역일의 양상을 확인하기 위해, 본 장에서는 중세 동북아시아에서 보편적으로 지켜졌던 역법의 추이와 고려의 독자적인 역일 질서를 살폈다. 거란·송·금 그리고 원과 명의 교체 시기에도 이들 국가는 고려에 曆을 반사하거나 반포했다. 고려도 이를 으레 수용해 왔다.
일찍이 선행 연구는 문종대에 편찬된 5曆을 僞曆으로 보거나, 혹은 5曆의 편찬을 계기로 고려의 역산술을 논증하고자 했다. 그러나 선학들의 이러한 주장은 고려 역일에 대한 성격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결과로 이해된다. 고려의 서운관이 특히 음양오행의 조화로 발생하는 지변이나 기후에 대한 업무·卜筮·卜日 등을 관장하면서 여러 灾祥을 살폈던 점을 감안해 볼 때, 5曆은 당연히 각종 灾祥이 기재되어 ‘來歲’에 대처하는 데 활용되었을 것이다. 이를 통해 각종 길흉일과 같은 술수적인 모습은 왕실에서 특정한 목적을 위해 제작한 역일에서도 재현되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헤아릴 수 있다. 역법이 讖緯的 요소와 결합되었던 사례는 漢代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전통 사회에서 曆이 택일적 기능을 수행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고려의 자체력은 본질적으로 중국의 역과 비교 가능했으며, 택일과 같은 길흉의 내용을 具注해 놓은 생활력의 모습을 동시에 갖췄다. 또한 고려의 역일은 월령류를 흡수해 상용력의 기능을 지녔음이 확인되었다. 즉, 고려 역일은 역법의 氣朔은 물론 망·현·일월식과 72절후 그리고 각종 절일 및 월령류와 음양서의 택일류 등을 포함하여 고려의 실상에 맞도록 만들어져 다양한 부류에서 행용되었던 상용력이었다.
Ⅱ장에서는 고려를 비롯한 주변국 역법의 氣朔術에 대한 논의에 집중했다. 역일은 역법의 기삭술에 의거해 제작된 氣朔曆이었다. 따라서 기삭술의 복원은 주변국의 역일과 비교하여 그것의 상관성을 입증하는 데 선행적으로 요구되는 연구 주제이다.
고려의 역일은 국제 사회에서 주변국의 것과 서로 연동하고 있었다. 역산가와 역일 제작자는 바로 이 점을 참작하고 역일을 제작했다. 고려뿐만 아니라 주변국이 서로의 역일을 비교했던 것은 역법 제정과 또 다른 차원에서 역일 제작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미 고려는 선명력 체제와 역법 수용에 익숙해져 있었고, 선명력의 상수 값 중 일부를 변용할 수 있었다. 즉, 고려는 역법의 수용과 변용의 단계에서 역산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따라서 새로운 상수 값 제정으로 잦은 개력을 시도한 중국의 역법사와는 다른 범주에서 고려의 선명력 체계와 역법 운영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고려는 역법의 수용과 변용을 통해 독자적인 역일 제작이 가능함으로써 주변국이었던 거란·송·금과 함께 시간 질서를 견인했던 주체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강력한 정복국가 몽골 제국에 의해 일원적 지배체계로 세계 질서가 재편되기 이전에, 고려는 역일적 시간 질서를 유지하면서 보편적 국제 질서에 동참했다.
고대 역산가들은 소수점 계산 방식에 대해 보다 철저했다. 좀 더 부연하면, 각종 역법 산술에서 구해진 소여의 값은 소수점으로 나타나지만, 이 소수점을 다시 치환하면 정수 값으로 떨어져야 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본 장에서는 소수점을 철저히 보완하여 기재했다. 따라서 고대 역법을 접할 때 소수점 이하의 값에 대한 치밀한 관심이 요구되는 바, 이를 입증하기 위해 보다 많은 사례를 제시했다. 이에 이 분야는 다분히 기술적인 산술의 반복을 필요로 했다. 논의의 전개를 위해 Ⅱ장을 세 부분으로 나눈 까닭이 여기에 있다.
1절에서는 고려사 「역지」의 선명력과 요사 「역상지」에 실린 대명력 그리고 금사 「역지의 중수대명력 기삭술의 복원뿐만 아니라 송사에 실린 改曆 역법의 기삭술을 망라하여 복원했다. 2절에서는 복원된 기삭술을 활용하여 고려의 삭일을 거란·송‧금력의 것과 비교했다. 그리고 3절에서는 고려 역일의 운영 실태를 주변국 역일과의 비교 분석을 통해 확인했다. 이와 같은 작업은 고려와 주변국의 역일을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이로써 고려 역일이 주변국의 것과 함께 연동하여 동조화되어 갔음을 입증했다.
Ⅲ장에서는 고려의 시간 질서 체계에 주목했다. 고려는 해시계와 물시계를 비롯한 시측의기를 통해서 시간을 측정하고, 이를 정확히 시보했다. 시측과 시보는 모든 사람들의 사회‧경제 활동에 기여했다. 또한 역일에서 각종 절일의 표기는 짧게는 하루에서 한 달, 길게는 1년을 단위로 국가의 운영뿐만 아니라 가정생활의 지침이 되었다. 그리고 역일에 기재된 시절별 자연의 물후와 주기는 농경 활동의 간격과 일정을 체험토록 했다.
본 장 또한 3절로 구성했는데, 먼저 1절에서는 고려의 시보와 시각 체계를 확인했으며, 2절에서는 고려의 역일이 주변국의 역일과 같이 具注曆日이었음을 염두에 두고, 역일의 형식과 내용을 구분해 그 체계를 살폈다. 3절에서는 고려의 구주역일을 복원했다. 복원된 역일은 ‘문종 36년(1082)의 壬戌年曆日’이다.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시측의기의 유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신라의 것으로 추정하는 돌 파편 하나가 유일하다. 아쉽게도 고려의 시측의기는 공식적으로 남아 있지 않다. 그렇지만 고려사 「예지」에 언급된 “晝漏上水五刻”이라는 단서에서 고려의 시측과 시보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송의 국신사과 함께 고려에 왔던 서긍이 돌아가 편찬한 고려도경의 「설호」편 기사를 통해 고려의 시보체계를 읽어 낼 수 있었다. 고려와 조선은 물시계 시각에 맞춰 궁중의 각종 의례를 진행했다. 이 또한 시간의 측정과 시보라는 관점에서 시측의기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고려의 물시계 이름은 宮漏‧禁漏‧銀漏 등으로 불렸다. 이는 궁중의 물시계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들이다. 궁중이 아닌, 절이나 군사 요충지 혹은 주·목‧현 등에서는 ‘漏’ 혹은 ‘漏刻[刻漏]’ 등으로 불렸을 것으로 여겨진다.
아울러 “晝漏上水五刻”에서 고려의 시각 체계를 확인했다. 시측의기에 의해 측정되는 하루 시각은 100각이었으며, 역일을 제작하기 위한 선명력의 계산 체계는 하루를 8400분으로 구분했다. 이를 기준한 고려사 「역지」의 선명력에 의해, ‘절기별 入氣 時刻’과 ‘日出入時’를 계산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弦·望 주기 일자’ 그리고 ‘절기별 晝夜의 시각’을 각각 계산해 냈으며, 이를 복원된 역일에 표기했다. 이것들의 일자와 입기 시각은 역일 제작에 앞서 측정되고 계산되었던 사항들이다.
2절에서는 역일 복원을 위해 역일의 구성과 내용을 확인했다. 고려의 구주역일은 아직 발견된 바 없다. 따라서 발굴된 주변국의 역일을 참고하고, 고려 후기 공민왕대에 전래된 明의 대통력 체계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7~9세기의 당과 일본의 역일뿐만 아니라 토번에서 발굴된 송 雍熙 3년(986)의 구주역일도 고려 역일 복원에 참고했다.
당력(7세기)과 일본 역일(9세기)은 역일의 형식면에서 대동소이했다. 즉, 그것들은 ‘월+大小+숫자일+干支+納音五行+12直+절기+吉凶具注’로 구성되어 있었다. 넓은 의미에서 ‘具注’는 年·月·日(간지 포함)를 제외한 모든 注記 내용을 포함한다. 각종 物候의 기록은 당나라 嘉祥 元年(848) 구주역일에서 보이지 않다가 唐 大中 12年 戊寅歲(858) 구주역일에서 보이므로, 물후는 唐代 후기부터 역일에 표기되었다고 하겠다. 또 唐 乾符 4年 丁酉歲(877) 구주역일을 검토한 결과, 종래의 陰陽大·小會 기록이 사라졌음을 확인하였다. 이로써 역일의 내용도 시대에 따라 소멸과 생성을 반복했음을 알 수 있다.
송 雍熙 3년(986)의 구주역일은 온전한 1년분의 역일이다. 이 역일의 맨 상단에 표기된 ‘密’자는 7일마다 반복적으로 朱記됨으로써 중요한 週期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었다. ‘密’자는 이미 당의 구주역일에서도 보이는 현상이며, 12직 아래에 표기되었던 것인데, 咸通 5년(864) 구주역일은 역일의 상단에 기재되어 있다. 이후 송력 초기 역일도 이 형식을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의 대통력에는 ‘密’자가 보이지 않았다. 본 논문에서 복원한 고려 문종 36년의 壬戌年曆日에서 ‘密’자의 표기는 제외했으며, 대신 弦‧望 주기일과 伏日 및 社日 그리고 臘日을 역일의 최상단에 기재했다. 이러한 순서는 대통력의 구성을 참고한 것이다.
복원된 고려의 역일은 크게 單曆과 本曆으로 나누었다. 먼저 單曆은 年神方位圖와 각 月의 大小 및 節氣의 입기시각 등을 기록했다. 그리고 本曆에 해당하는 각각의 月曆은 최상단에, ‘弦‧望日+伏日+社日+臘日’ 등을 표기하고, 日曆인 ‘숫자일 ⇒ 干支日’ 순으로 시작했다. 그 다음은 具注 내역인, ‘納音五行 ⇒ 12직 ⇒ 각종 고려 절일+ 給暇日 ⇒ 날짜별 吉凶 具注 ⇒ 人神在日 ⇒ 日遊在日’의 순으로 나열했다. 당력에서 보이지 않던 ‘人神在日’과 ‘日遊在日’이 송 雍熙 3년의 역일에서 나타나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이 두 가지 사항은 조선의 대통력에서도 설명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俗信이 강한 내용으로써 긴 생명력을 지녔다고 하겠다. 이를 고려의 역일에 포함하여 표기했다.
송력과 조선 대통력의 차이 가운데 하나는 28宿의 유무다. 28수는 송 초기(雍熙 2년) 역일에 보이지 않다가 대통력에 등장한다. 아마도 송 중기 이후나 수시력과 대통력 역일 체계에서 새로이 추가된 사항인 듯하다. 고대 별자리인 28수는 중요한 천문학적 의미를 지녔지만, 역일에서 28수의 비정은 전적으로 작위성에 입각했다. 역일에 배치된 28수는 납음오행과 마찬가지로 별들에 대한 오래된 술수적 관념이 동원되어 역일 내용에 삽입된 것이다. 즉, 역일에 표현된 28수는 실제 별들의 동태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천문학적인 관점에서의 관찰 대상인 하늘의 별자리 28수와 역일에 배열된 28수는 서로 상관되지 않으며, 28수의 이름만 차용하여 역일의 구색을 갖춘 것으로 이해된다.
고려의 역일 내용에는 국왕의 생일절일뿐만 아니라, 고려사 「형법지」 官吏給暇 조의 급가일 및 속절 그리고 「예지」의 정기 의례일 등이 포함되었다. 이 절일들을 역일 일정에 각각 배정했다. 72절후에 대해서는 고려사 「역지」 선명력과 조선 대통력의 절후 내용을 참고했다. 또 九星圖와 납음오행 및 12직의 원리를 밝혀 월별 또는 일자에 따라 각각 배치시켰다. 전통 역일은 매년 ‘연신방위도’를 그려 그 안에 九星을 각각 안배했으며, 또 매 月曆에 구성도를 선두에 비치시켰다. 九星은 漢代부터 비롯하여 당·송을 거쳐 명·청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역에 표기되었던 술수적 기능의 하나였다.
그리고 납음오행을 날짜에 따라 나열했다. 이로써 납음오행이 철저한 원리에 의해 역일에 표기되었음을 확인했다. 역일에서 납음오행의 배치는 오행을 골고루 확보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오행을 時令的 질서에 조응시킴으로써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의 안정을 꾀하고자 했던 이념이 오래도록 투영되어 만들어낸 소산물이었다.
역일의 구주 내용 중 많은 부분은 천체의 주기성과 관련이 없었지만 오직 12直은 日辰인 12지지에 각각 배치되어 天上 시계의 역할을 대신하도록 했음을 확인했다. 고대인들은 역일의 12직을 이용해 지상의 방위 결정에 이용했으며, 하늘에서 북극성을 중심으로 주변을 12직으로 구획해 별들의 동태를 관찰하여 시절과 시각을 파악했다. 특히 그들은 북극성 주위를 돌고 있는 북두칠성에 주목했다. 곧 북두칠성의 斗柄은 時針이 된 셈이다. 북두칠성은 四時 계절에 보이는 별들이다. 한마디로 북극성을 중심에 둔 12직의 구획은 하늘에 떠 있는 천체 시계의 時盤이 되어 주었다. 이를 통해 고대인들은 계절을 읽어내 농경생활의 지침으로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야반의 시간도 계절에 따라 읽어냈으며, 12직을 역일에 배치시켜 四時 節月을 확인했다.
그리고 전통 역일에는 구주 내용 중, 土王用事日이 표기되어 있었다. 이것은 천문학적인 의미라기보다 오행을 4계절에 배정시키고자 했던 인식이 낳은 전통적 관념의 하나였다. 토용사일은 선명력의 ‘五行用事日’ 추산에 따랐으며, 이를 계산해 내어 해당 날짜에 입력했다.
이상의 작업 결과 본 장에서 고려의 ‘문종 36년 壬戌年曆日’을 복원하게 되었다. 복원된 고려 역일은 앞에서 확인된 각종 절일과 함께 역법 산술에 의해 계산해 낸 각종 수치를 월별과 일별로 세별하여 배치했다. 또 각각의 역일 날짜에 길흉을 예고한 내역을 具注해 나열함으로써 당시 일상의 관심사에 주목했다. 특히 송 옹희 3년의 역일과 조선의 대통력 내용에서 공통적인 길흉 내역을 분리해 내어 고려 역일 복원에 활용했다. 두 역일 간의 제작과 행용 연도에 현저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공통 요소를 선택한 것이다.
고려의 실제 역일에서 날짜별로 길흉을 제시한 사항은 훨씬 많았을 것이다. 본 장에서 정리한 공통된 길흉 내역이 조선의 대통력에까지 남아 있었다는 것은 고려인에게도 그 내용이 중요한 일상사였음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관혼상제와 건강, 경제활동은 물론 학업과 이동의 선택, 그리고 건물 개보수 등의 일상의 판단을 길흉일로 나누어 판단했다는 점만 다를 뿐, 그 선택 사항에 내재된 관심사는 현재의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따라서 전근대사회에서도 이처럼 삶의 보편적 가치인 의‧식‧주 분야에서 철저한 관리와 통제적 인식이 작동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그들은 질서화된 생활을 요구받았고 역일을 통해 이를 실현시키고자 했다. 관혼상제뿐만 아니라 방아와 맷돌을 수선하고[修碓磑], 우물을 보수하고[修井], 벌목[伐木]과 사냥을 하고[獵], 씨를 뿌리고[種蒔], 흙을 돋우고[起土], 도랑을 내고[通渠], 담을 쌓고[壤垣], 옷을 재단[裁衣]하고, 가구(침상)를 마련하고[安床], 시장이 열리면 물건을 사고[市買], 집을 허물어[破屋], 건물을 짓는 기둥을 올리고[立柱], 지붕의 들보를 올리고[上梁], 이사하고[移徙], 부엌을 수선하고[修竈], 집안을 청소하고[掃舍], 목욕하고[沐浴], 머리를 씻고[洗頭], 침이나 뜸을 맞고[經絡], 병을 치료하고[療病], 입학하고[入學], 집 밖으로 나가는 것[出行] 등의 모든 활동이 빠짐없이 역일에 표기되어 있었다.
역일에서 길흉의 내역은 속신의 기능으로만 치부되기에 앞서, 일상적인 일들을 정형화시켜 동시성을 발현시킴으로써 농경사회에서 노동생산성을 집약시키는 데 익숙하게 했을 것이다. 동시에 이를 효율화시켜 생산력을 끌어올리려는 의도까지 엿보인다. 한편 역일은 국가가 民人의 생활 질서에까지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통치의 기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처럼 역일은 어떠한 규율보다도 효과적으로 실행되어 범국가적인 통치망이 될 수 있었다. 표준화되고 동질화된 사회일수록 역일은 다중의 지배 기능을 수행하는 도구가 되어 주었다. 역일적 질서에 의한 일상의 수칙은 질서 정연한 생활 과정과 실현을 유도했으며, 이는 획일적 질서 유지에 효과적인 장치가 되었을 것이다.
시간 질서 체계 유지를 위한 최고의 보루였던 역일에 이와 같은 내역들이 길흉일과 함께 촘촘히 기재되었던 점은, 역일의 제작권자인 제왕에게 시간의 장치가 통합과 통치의 도구로써 얼마나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는지를 확인시켜 준다. 이것이 고려가 자체적으로 갖췄던 시간 질서의 한 모습이었다.
목차 (Table of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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