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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동구조의 언어문화와 수동구조의 언어문화 : 비교언어문화학에서 본 한국어와 일본어

        安增煥(An Jeong-whan) 한국일본문화학회 2001 日本文化學報 Vol.10 No.-

        본고는 마키노 세이이치(牧野成一、 1996)의 언어문화학이라는 관점에서 한국어와 일본어의 구조적 특징을 비교하고 있다. 언어문화학이라는 학문은 언어가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는 가설에서 출발한 언어와 문화의 관계학이다. 즉 문화적특징을 통해 언어현상을 해석하려는 것인데, 필자 역시 한국어와 일본어 사이에 존재하는 구조적인 차이점 중 중요한 것 몇 개는 한국문화와 일본문화의 차이로부터 규명될 수 있다는 확신에서 본고를 시작했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거의 모든 통사범주에서 유사하나, 수동범주에서만은 놀랄 정도로 커다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 점에 착목해서 필자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각각 능동구조의 언어와 수동구조의 언어로 유형화시켰고, 이렇게 언어유형이 다른 배경을 한국과 일본이 각각 구상의 문화와 추상의 문화라는 상반된 문화구조를 갖고 있다는 데에서 찾았다, 한편, 능동구조의 언어와 수동구조의 언어라는 언어유형에서는 두 언어의 상이한 구조적 차이를 규명하는 데에 유효한 하위의 언어 유형 몇 개가 파생되고 있음을 본고는 명백히 했다. 즉 한국어와 일본어를 각각 시점이 고정적인 언어와 유동적인 언어, 통사중심의 언어와 명사중심의 언어, 결과 중심의 언어와 과정중심의 언어로 하는 대립된 언어유형이 그것이다. 이러한 언어유형은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두 언어의 구조적인 차이를 설명하는 데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This study compares the structural characteristics of Korean and Japanese in view of linguistic culturology by Makinoseiich (1996), Linguistic culturology is the study of a relation between language and culture, which originates form the hypothesis suggesting that language is influenced by culture. That is. through cultural characteristics language phenomena are to be explicated. I have started this study with a conviction that some important things of structural differences which exist between Korean and Japanese can be clarified from differences between Korean the two countries' culture. Korean and Japanese are similar in almost all syntactic categories, but show remarkably big differences in a passive category. Noticing this, I have embodied Korean and Japanese in their respective language of active structure and that passive structure, and find out that this different background of types of language is attributed to the opposite cultural structure in which Korea has concrete culture and Japan has abstract culture. Meantime I make it clear that some effective sub-types of language are derived in this study in clarifying dissimilar structural differences between the two languages in types of language of passive structural language and active structural language. That is, the two languages are contrary types of language in that in a point of time Korean is fixed and Japanese is fluid, Korean is verb-centric and Japanese is noun-centric, and Korean is result-centric and Japanese is process-centric. These types of language are very meaningful to explain structural differences of the two languages in an organic relation.

      • KCI등재

        대학 교양수업에서의 일본문화 관심도 경향분석 및 교육방안 모색

        김선희 한국일본언어문화학회 2021 일본언어문화 Vol.57 No.-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objective data of interest in Japan, reveal its trend, and seek the direction of education through a survey on the frequency of expression of associated words related to society and culture in Japan. In fact, the emphasis on culture in university language education is due to the globalization and information age and the reorganization of curriculum, and this is why the number of lectures on social culture in universities is increasing. The need for cultural education, which was neglected in language education in the past, has been emphasized, but it is undeniable that it is a transitional situation that is recognized as a basic knowledge to develop language skills. Through the observation of the frequency of expression of culture-related words in this study, it can be recognized that university students are interested in Japanese society and culture in various fields. In general, other cultures were mainly delivered in the form of knowledge through media, newspapers, books, and magazines, but in the recent information age, a large amount of cultural items are delivered quickly and directly through various media such as the Internet. In addition, the spread of the Internet, YouTube, and SNS has led individuals to actively and selectively interact with and learn about culture at their own discretion.In addition, the number of ways to travel in person and experience socializing is increasing. Through this study, it can be assumed that the direction of cultural education should be changed, as there are perception gap of culture between generations, individual experiences and education, and the utilization of media, etc. In future university education, various IT technologies such as virtual reality space (Metaverse) should be combined to provide Japanese culture education through SHEEF experiences.

      • 교키와 일본의 오대산문수신앙

        최복희(崔福姫,)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2011 일본불교문화연구 Vol.- No.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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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行基に対する研究、すなわち'行基論' とも言える研究はかなり進んでいる。 戦前における行基研究は、大正初期に書かれた梅原末治の「行基舎利瓶記にみえたるその姓氏と享年について」が早い例である。 戦後の行基研究の出発点ともいうべき北山茂夫の「行基論」は、戦後の研究史の起点的意味合いのみで重要な位置を占めているのではない。この研究の重要性は、働く民衆の側、つまり当時の律令班田農民の立場に立って行った古代政治研究の一環として行基を研究対象に設定きれた、その問題意識にこそあるといえよう。 井上薫の『行基』は、行基に関する全てといってよいほどの問題が論ぜられ、多方面にわたって精緻な分析と、旦つゆきとどいた実証作業に支えられて、行基の生涯が跡づけられている。今日この研究をきして'行基研究上の基礎文献'と呼ばれている。 行基が仏教のみでなく、各方両の分野において、所謂、政治ㆍ日本古代史ㆍ仏教文化ㆍ社会福祉、きらには国文学までも研究されていることは、行基は日本の肯代において重要な人物からである。 さて、この論文において何よりも重要な行基研究の一つは、行基と五台山文殊信仰との関連である。それは、五台山文殊信仰の伝来は、行基の文殊化身説や婆羅門僧正文殊値遇説の中にその教理と共に具体的な説話の型として踏襲されているのを見る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まず、『日本霊異記』には、行基に関する説話が、他の僧侶との記述より比較的に多く記されている。『日本霊異記』での行基にまつわる説話は、彼の死後に形成されたと考えられていることが一般的である。ここで、大事なのは、行基のなした説法が説話ではなく、その事蹟が説話になっていることである。しかし、朝枝善照はII 「日本霊異記』の行基説話は、「続日本紀』に記載される行基伝に影響をうけていない、全く別の所伝によるものである点、行基研究上からも参考すべきものである。"と述べている。 『日本霊異記』の中で「三宝を信敬し、現報を得る縁」が、行基の文殊化身に関する説話である。朝枝善照は"この説話は大伴氏に伝承された大部屋栖野古に関する史料を参照し、聖武天皇、東大寺建立、行基の仏教伝道などを結び付けているが、景戒の時代には、このように、日本に、五台山仏教文化、すなわち文殊信仰が伝来し多くの民衆に理解きれていてはじめて、行基の「文殊反化」説が成立することになる。韓国の五台山との関連性も検討すべきであろう。"と言っている。 行本の五台山説話、ここにはすでに聖徳太子一聖武天皇、五台山文殊行主主の一連の伝説が完成している。これは、『三国仏法伝通縁起』に東大寺を中心に久しく信じ伝えた伝説に連繋するものである。 行基は'行基菩薩'とも呼ばれた。この背景には、8世紀の日本では、僧名に菩薩号を付した呼び方が盛行していた、つまり、民宋利益の利他行をもって、「菩薩」や「化主」と|序称され、白称した一群の僧尼が存在していたのである。 『続日本記』と『日本霊異記』の記録を検討してみると、行基に対する称号は、'行基菩薩'と呼ばれはじめてから、'文殊菩薩の化身'というように変化していったと考えられる。 最後に、『三宝絵』に初見する行基と婆羅門僧正との交流の説話の成立について米山孝子は、"行基、婆羅門僧正の交流事実、行基文殊化身説や五台山信仰の流布、婆羅門僧正の高僧伝化など、様々な要素が接合して『菩提伝来記』の説話が『三宝絵』に遡って成立していたのである。"という。 行基の文殊化身説には古田靖雄氏の指摘されるように、経典等による文殊の宗教的役割が大きく影響していると思われるが、それに対応して作られた新たな婆羅門僧正来朝説は、思想というよりも、『仏頂尊勝陀羅尼経』序文などで、広く知られた五台山での文殊値遇の説話の「型」に従って、来朝日的がはめ込まれたような形になっていることが分かる。 교커에 대한 연구, 즉 '교키론(行基論)'이라고 일컬어지는 연구는 매우 많은 성과물들이 축척되어 있다. 전전(戰前)의 교카연구로는 다이쇼초기에 씌어진 우메하라스에지(梅原末治)의 「교키사리병기(行基舎利甁記)에 보이는 그 성씨와 향년에 대해서」 대표적이다. 한편, 전후(前後)의 교키연구의 출발점이라고 해야 할 기타야마시게오(北山茂夫)의 「교키론」은 전후 연구사에 기점적(起点的) 의미로 서만 그 중요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이 연구는 이른바 '민중'의 입장, 즉 당시 율령반전민(律令班田農民)의 입장에서 행한 고대정치연구의 일환으로서 교키를 연구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그 문제의식이야 말로 더욱 중요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노우에카오루(井上薰)의 『교키(行基)』는 교키에 관한 모든 것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다양한 방면에서의 접근은 물론, 치밀하면서도 폭넓은 실증작엽을 통해 교키의 생애를 구체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 이 연구는 '교키연구의 기초문헌'으로 불리고 있다. 교키는 불교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 즉 정치ㆍ일본고대사ㆍ불교문화ㆍ사회복지ㆍ국문학 방면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교키라는 인물의 중요성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교키연구는 교키와 오대산문수신앙과의 관련이다. 그것은 오대산문수신앙의 일본전래가 교키의 문수화산설(文殊化身說)이나 바라문승정문수치우설(婆羅門僧正文殊値遇説) 속에 그 교리와 함께 구체적인 설화의 형태로서 답습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먼저, 『일본영이기(日本靈異記)』에는 교키관한 설화가 다른 승려들의 기술보다 많다' 『일본영이기』의 교키관련 설화는 교키 사후에 형성되었다는 관점이 일반적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키가 행한 설법이 설화가 아니라 그 사적(별원)이 설화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사에다젠쇼우(朝枝善照)는 "『일본영이기』의 교기설화는 『속일본기(續日本記)』에 기제된 교키전(行基傳)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전혀 다른 소전에 의한 것이라는 점, 교키연구에서 참고해야할 점이다."라고 술하고 있다. 『일본영이기』 중에 「삼보를 믿고 공경하여 현보를 얻은 이야기」가 교키의 문수화신(文殊化身)에 관한 설화이다. 아사에다젠쇼우는 "이 설화는 오오토모(大伴)씨에 전승된 야스노코에 관한 자료를 참조해, 성무 천황, 동대사건립, 교키의 불교포교 등을 연결하고 있지만, 교우카이가 살았던 시대에는, 이와 같이 일본에 오대산 불교문화, 즉 문수신앙이 전래되어 민중에 이해되기 시작해, 교카의 '문수반신설'이 성립하게 되었다. 한국의 오대산과의 관련성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교키의 오대산설화, 여기에는 이미 성덕태자-성무천황, 오대산문수-교키의 일련의 전설이 완성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삼국불법전통연기(三國佛法傳統縁起)』의 동대사를 중심으로 믿어온 전설에 연계하는 것이다. 교키는 '교키보살'로도 불렸다. 이에 대한 시대적 배경으로, 8세기 일본에는 승명(僧名)에 보살칭호를 더하여 불렀던 것이 성행하였던 것이다. 또 민중을 위해서 이타행을 행하는 승려들은 자신들을 '보살' 또는 '화주(化主)'라고 자칭하고 집단을 이루기도 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속일본기(續日本記)』와 『일본영이기』의 기록을 검토해 보면, 교키에 대 한 칭호는 '교키보살'로 불리 기 시 작하다가 차차'문수보살의 화신'으로 바꿔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삼보회(三宝絵)』에 처음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교키와 바라문승정과의 교류에 대한 설화의 성립에 관하여 코네야마다카코(米미孝子)는 "교거, 바라문승정의 교류사실 교키문수화신설이나 오대산신앙의 유포, 바라문승정의 고승전화 등 다양한 요소가 접합하여 『보살전래기(菩薩傳來記)』 설화가 『삼보회』로 거슬러 올라가 성립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교키의 문수화신설은 요사다야스오(吉田靖雄)도 지적한 바와 같이, 경전 등에 의한 문수의 종교적 역할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보이는 데, 그것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바라문승정래조설(婆羅門僧正來朝說)은 사상이라기보다는 『불정존승타라니경(仏頂尊勝陀羅尼経)」 서문 등으로 널리 알려진 오대산 문수치우(文殊値遇)의 설화의 「형(型)」에 따라 본조목적(本朝目的)이 가미된 형태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겨울의 유산」에 나타난 한‧일불교

        김호성,金浩星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2009 일본불교문화연구 Vol.-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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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으로 태어났으나 일본인으로 귀화한 일본작가 다치하라 마사 아키(立原正秋, 1926〜80)는 그의 체험을 토대로 자전적 소설 「겨울의 유산(冬のかたみに)」을 남기고 있다. 특히 한국의 무량사와 일본의 건각사에서의 선 체험을 작품 속에 녹여내고 있다는 점에서, 선소설(禪 小說)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작품 속에 한국불교에 대한 묘사와 일본불교에 대한 묘사가 공존하면서, 한국의 선과 일본의 선이 교류하는 모습에 주목하여 한, 일불교의 소통이라는 문제에 천착해 보았다. 그러면서 이상적인 불교의 모습이 이 작품 속에 그려지고 있다고 보아서, 그것을 ‘상상의 불교’라고 이름 하여 보았다. 우선「겨울의 유산」유산 속에는 1930년대 중반 무렵의 한국불교에 대한 묘사가 행해지고 있다. 여기에는 이미 작가가 일본불교에 충분히 습윤 (濕潤)된 뒤에 작품이 씌어졌다는 점에서 일본불교적인 영향이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러면서도 스승들의 묘사나 조선시대 선승들의 선시를 인 용하는 등 우리 불교에 대한 올바른 묘사 역시 존재한다. 이런 예비적 고찰을 행한 뒤에, 작품 속에서 한국과 일본의 선은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또 왜 그는 돌아가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이기고서 돌아오지 않고 일본에서 살아가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고찰해 보았다. 작가는 일본의 선이 자칫 알음알이에 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경계하면서, 주인공이 임제선과 조동선의 어록을 함께 읽는 모습을 통하여 우리 불교와는 다른 일본불교의 모습을 제시한다. 또한 선승 세끼링 (碩林)의 존재를 통하여 스승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나라(奈良)의 고사 (古寺)에서 일본 안에서도 무량사가 존재함을 자각하게 된다. 이러한 작품의 결론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역사적 업연의 한계를 벗어나서, 불교 안에서 하나로 어우러지며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평가하고 싶다. 一体どうして私は日本仏教を語ろうとするのか。この問いの答えは即ち我々が日本仏教に関して話すことを忌む所以と表裏を成して いると思う。もともと仏教を伝えあげた方は我々だったとの一種の歴史的な優越感と言うか、または源泉指向意識によるインドや中国への関心の重々しさに比べられる相対的な疎外などとを挙げよう。いや、おそらくそれより帝国主義時代の日本にやられた植民地体験、別けても仏教に対して加えられた弾圧の記憶が未だ生々しく 残っている所以かもしれない。その理由は如何であろうと、我々にとって日本仏教とはあまり度外視するべき存在であったのが事実で ある。もちろん近世․近代の不幸な歴史から目を背けることはできない である。そうではあるが我々の中の憎みや怨みなどの呪縛を断ち切 れ、束縛からもトラウマからも自らを束縛から、トラウマから開放 できればそれより大した自由があろうか。その一方法で私は、仏教 を通じる韓国・日本お互いの実体と存在を認めて理解していくによっ て相互間に会通/疎通ができようはずであると信じている。こうし た訳で「日本仏教を勉強しましょう」という旗じるしを掲げてき た。そのうちに一人物が目についてきた。彼は立原正秋(1926-80)という作家であり、彼の作品の『冬のかたみに』のためである。この作品は「少ししかない自力門/聖道門の小説の代表作」として評価されているだけでなく、いろいろな面で問題作になってきた。別けても私が着目したのはこの作品に描かれている韓国仏教と日本仏教の有様の断面であった。 作家の自伝小説として、或いは自伝に準じるものとして知られているこの『冬のかたみに』の第1部と第2部には1920,30年代の韓国仏教が描かれている。それは当時の純な韓国仏教の有様もあるし、また作家の理想としてのあらざるをえない韓国仏教の像もあ る。また日本仏教風とうか日本仏教的要素が混じて塗られている韓国仏教の様子もある。その上で作品の第3部「建覚寺山門前」には主 人公の渡日後の日本生活とともに仏教体験が述べている。即ち日本仏教の姿がうかがえる。たとえ文学的に形象化されている形にしてもこの作品『冬のかた みに』を検討していく際、私は韓・日仏教の疎通の光というか一すじ の希望のようなものを感じられた。作品に描かれている韓・日仏教の有様や面影、また両者の間の相違というか対立的または区別される 様子[二相]を越えて義相(625-702)の「法性円融無二相」という語 句まで浮かばせるようになった。即ち主人公の梵海禅文はそんなに 長いあいだ懐かしんでいた無量寺に、いつかはきっと戻るべき所として思っていた無量寺についに帰れない。その代わりに奈良の唐招提寺の金堂の瓦葺き屋根の曲線美から、また鎌倉の建覚寺(建長寺と 円覚寺の合称であるか)の居士林での修行などから、『徒然草』や『方丈記』などの日本中世の古典から、無量寺または韓国仏教の風土を見つけ出している。それは一生を通して彼(作品の主人公または 作家自身)を日本にいられるようにする力であり、また韓・日仏教の 疎通であった。従って仏教的な立場から見ると彼が住するところが 韓国であっても日本であっても、それは非本質的なものに過ぎないと言える。彼の居所は何処でも良い。なぜなら彼は、もはや「仏教 の内」、「仏教の中」で生きていられる所以である。自分の姿を映してみるには鏡が必要である。それは他者という鏡であろう。すなわち他者という鏡に自分を映して自らを省みることは基本的に自分と他者をの比較であり、融合でもある。そうした他者という名の存在は多様すればするほどもっと多面的な自分の面目が見つけよう。我々の仏教の現実を映し、融合させる鏡になってく れる対象は実に色々ある。チベット仏教もあり、ヴィパッサナー(Vipassana)修行に関わる南方仏教もあり、書物の翻&#

      • 교키와 일본의 오대산문수신앙

        최복희(崔福姬)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2011 일본불교문화연구 Vol.- N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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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커에 대한 연구, 즉 '교키론(行基論)'이라고 일컬어지는 연구는 매우 많은 성과물들이 축척되어 있다. 전전(戰前)의 교카연구로는 다이쇼초기에 씌어진 우메하라스에지(梅原末治)의 「교키사리병기(行基舎利甁記)에 보이는 그 성씨와 향년에 대해서」 대표적이다. 한편, 전후(前後)의 교키연구의 출발점이라고 해야 할 기타야마시게오(北山茂夫) 의 「교카론」은 전후 연구사에 기점적(起点的) 의미로서만 그 중요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이 연구는 이른바 '민중'의 입장, 즉 당시 율령반전민(律令班田農民)의 입장에서 행한 고대정치연구의 일환으로서 교키를 연구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그 문제의식이야 말로 더욱 중요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노우에카오루(井上薰)의 『교키(行基)』는 교키에 관한 모든 것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다양한 방면에서의 접근은 물론, 치밀하면서도 폭넓은 실증작업을 통해 교키의 생애를 구체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 이 연구는 '교키연구의 기초문헌'으로 불리고 있다. 교키는 불교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 즉 정치ㆍ일본고대사ㆍ불교문화ㆍ사회복지ㆍ국문학 방면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교키라는 인물의 중요성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교키연구는 교카와 오대산문수신앙과의 관련이다. 그것은 오대산문수신앙의 일본잔래가 교키의 문수화산설(文殊化身說)이나 바라문승정문수치우설(婆羅門僧正文殊値遇説) 속에 그 교리와 함께 구체적인 설화의 형태로서 답습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먼저, 『일본영이기(日本靈異記)』에는 교키관한 설화가 다른 승려들의 기술보다 많다' 『일본영이기』의 교키관련 설화는 교키 사후에 형성되었다는 관점이 일반적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키가 행한 설법이 설화가 아니라 그 사적(事蹟)이 설화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사에다젠쇼우(朝枝善照)는 "『일본영이기』의 교기설화는 『속일본기(續)日本記』에 기제된 교키전(行記傳)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전혀다른 소전에 의한 것이라는 점, 교키연구에서 참고해야할 점이다."라고 술하고 있다. 『일본영이기』 중에 「삼보를 믿고 공경하여 현보를 얻은 이야기」가 교키의 문수화신(文殊化身)에 관한 설화이다. 아사에다젠쇼우는 "이 설화는 오오토모(大伴)씨에 전승된 야스노코에 관한 자료를 참조해, 성무 천황, 동대사건립, 교키의 불교포교 등을 연결하고 있지만, 교우카이가 살았딘 시대에는, 이와 같이 일본에 오대산 불교문화, 즉 문수신앙이 전래되어 민중에 이해되기 시작해, 교카의 '문수반신설'이 성립하게 되었다 한국의 오대산과의 관련성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교키의 오대산설화, 여기에는 이미 성덕태자 성무천황, 오대산문수-교키의 일련의 전설이 완성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삼국불법전통연기(三國佛法傳統緣起)』의 동대사를 중심으로 믿어온 전설에 연계하는 것이다. 교키는 '교키보살'로도 불렸다. 이에 대한 시대적 배경으로, 8 세기 일본에는 승명(僧名)에 보살칭호를 더하여 불렀던 것이 성행하였던 것이다 또 민중을 위해서 이타행을 행하는 승려들은 자신들을 '보살' 또는 '화주(化主)' 라고 자칭하고 집단을 이루기도 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속일본기(續日本記)』와 『일본영이기』의 기록을 검토해 보면, 교키에 대 한 칭호는 '교키보살'로 불리 기 시 작하다가 차차'문수보살의 화신'으로 바꿔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삼보회(三宝絵)』에 처음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교카와 바라문승정과의 교류에 대한 설화의 성립에 관하여 코네야마다카코(米山孝子)는 "교카, 바라문승정의 교류사실 교키문수화신설이나 오대산신앙의 유포, 바라문승정의 고승전화 등 다양한 요소가 접합하여 『보살전래기(菩薩傳來記)』 설화가 『삼보회』로 거슬러 올라가 성립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교키의 문수화신섣은 요사다야스오(吉田靖雄)도 지적한 바와 같이, 경전 등에 의한 문수의 종교적 역할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보이는 데, 그것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바라문승정래조설(婆羅門僧正文殊値遇説)은 사상이라기보다는 『불정존승타라니경(仏頂尊勝陀羅尼經)」 서문 등으로 널리 알려진 오대산 문수치우(文殊値遇)의 설화의 「형(型)」에 따라 본조목적(本朝目的)이 가미된 형태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行基に対する研究、すなわち'行基論' とも言える研究はかなり進んでいる。 戦前における行基研究は、大正初期に書かれた梅原末治の「行基舎利瓶記にみえたるその姓氏と享年について」が早い例である。 戦後の行基研究の出発点ともいうべき北山茂夫の「行基論」は、戦後の研究史の起点的意味合いのみで重要な位置を占めているのではない。この研究の重要性は、働く民衆の側、つまり当時の律令班田農民の立場に立って行った古代政治研究の一環として行基を研究対象に設定きれた、その問題意識にこそあるといえよう。 井上薫の『行基』は、行基に関する全てといってよいほどの問題が論ぜられ、多方面にわたって精緻な分析と、旦つゆきとどいた実証作業に支えられて、行基の生涯が跡づけられている。今日この研究をきして'行基研究上の基礎文献'と呼ばれている。 行基が仏教のみでなく、各方両の分野において、所謂、政治ㆍ日本古代史ㆍ仏教文化ㆍ社会ff1副止、きらには国文学までも研究されていることは、行基は日本の肯代において重要な人物からである。 きて、この論文において何よりも重要な行基研究の一つは、行基と五台山文殊信仰との関連である。それは、五台山文妹信仰の伝来は、行基の文殊化身説や婆羅門僧正文殊値遇説の中にその教理と共に具体的な説話の型として踏襲されているのを見る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まず、『日本霊異記』には、行基に関する説話が、他の僧侶との記述より比較的に多く記されている。『日木霊異記』での行基にまつわる説話は、彼の死後に形成されたと考えられていることが一般的である。ここで大事なのは、行基のなした説法が説話ではなく、その事蹟が説話になっていることである。しかし、朝枝善照は" 「日本霊異記』の行基説話は、「続日本紀』に記載される行基伝に影響をうけていない、全く別の所伝によるものである点、行基研究上からも参考すべきものである。"と述べている。 『日本霊異記』の中で「三宝を信敬し、現報を得る紘一」が、行基の文殊化身に関する説話である。朝枝善照は"この説話は大伴氏に伝承された大部屋栖野占に閲する史料を参照し、聖武天皇、東大寺建立、行基の仏教伝道などを結び付けているが、景戒の時代には、このように、日本に、五台山仏教文化、すなわち文殊信仰が伝来し多くの民衆に理解きれていてはじめて、行基の「文殊反化」説が成立することになる。韓国の五台山との関連性も検討すべきであろう。"と言っている。 行本の五台山説話、ここにはすでに甲徳、太子一聖武天皇、五台山文殊一行基の一連の伝説が完成している。これは、『三国仏法伝通縁起』に東大寺を中心に久しく信じ伝えた伝説に連繋するものである。 行基は'行基菩薩'とも呼は、れた。この背景には、8世紀の日本では、僧名に菩薩号を付した呼び方が盛行していた、つまり、民宋利益の利他行をもって、「菩薩」や「化主」と呼称され、自称した一群の僧尼が存在していたのである。 『続日本記』と『日本霊異記』の記録を検討してみると、行基に対する称号は、'行基菩薩'と呼ばれはじめてから、'文殊菩薩の化身'というように変化していったと考えられる。 最後に、『三宝絵』に初見する行基と婆羅門僧正との交流の説話の成立について米山孝子は、"行基、婆羅門僧正の交流事実、行基文殊化身説や五台山信仰の流布、婆羅門僧正の高僧伝化など、様々な要素が長合して「菩提伝来記」の説話が『三宝絵』に遡って成立していたのである。"という。 行基の文妹化身説には古同靖雄氏の指摘されるように、経典等による文殊の宗教的役割が大きく影響していると思われるが、それに対応して作られた新たな婆羅門僧正来朝説は、思想というよりも、「仏頂尊勝陀羅尼経』序文などで、広く知られた五台山での文殊値遇の説話の「型」に従って、来朝日的がはめ込まれたような形になっていることが分かる。

      • 일본불교의 영향을 받은 근대불교의 다면성

        김광식(金光植)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2013 일본불교문화연구 Vol.- No.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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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찰은 한국 근대불교를 연구함에 있어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대상주제인 일본불교에 대한 시각을 재인식하려는 글이다. 근대불교에 영향을 준 일본불교에 대한 연구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미약하였다. 이는 근현대 불교 연구의 부진, 정치적인 영향, 근대불교에 대한 성찰의식의 나약, 기존의 편협한 사관 등이 중첩된 결과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일본불교가 끼친 영향, 일본불교가 한국에 건너와서 행하였던 실상과 본질 일본불교에 대한 인식 등을 다면적 관점에서 살펴야 한다고 본디. 필자는 실사구시적인 입장에서 일본불교의 모든 것을 바라보자고 제언한다. 그리하여 기존 연구 시각이었던 단면성, 일방성, 일국성, 주관성에서 벗어나 이제는 다면성, 보편성, 객관성으로 나가자는 것이다. 이런 전제하에서 본고에서는 필자가 일본불교를 재인식할 수 있는 주제를 선별하여 그에 담긴 개요 성격 등을 요약하고자 한다. 필자가 선택한 그 주제는 첫째 불교 근대화, 둘째 근대적인 관리조직인 법, 셋째 재일 불교유학생과 근대불교학, 넷째 한국불교 전통의 이완, 세속화의 가속 등이다. 필자의 이 글이 일본불교 연구의 재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겠지만 이 분야 연구의 지평을 심화시키는데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부연할 것은 일본불교와 연관된 자료의 발굴, 자료집 발간에도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초적인 작업, 토양하에서 연구가 촉발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에서의 근대불교 연구 동향의 파악, 관련 저술 및 논문의 입수, 근대불교를 주제로 하는 한일 양국의 학문적ㆍ문화적 교류 등도 유의해야 한다, 本考察は、韓国近代仏教を研究するに当たって決して見過ごすことのできないテーマで、ある日本仏教に対する視角を再認識しようとしたものである。近代仏教に影響を与えた日本仏教に対する研究は、その重要性にも関わらずいまだ微弱であるといえる。これは、近現代仏教研究の不進、政治的な影響、近代仏教に対する省察意識の懦弱、既存の偏狭な史観などが重疊された結果である。 しかし、これからは日本仏教が及ぽした影響、日本仏教が韓国に渡ってきてしていたことの実像と本質、日本仏教に対する認識などを多面的な観点から研究すべきであると思う。筆者は質事求是的な立場で、日本仏教のすべてをみていこうと提言する。そして、既存の研究視角であった断面性、一方性、一国性、主観性から脱皮し、これからは多而性、普遍性、客観性に向かうへきであろう。 こうした前提のもとで、本稿で筆者は日本仏教を再認識できるテーマを選別し、それに含まれた概要、性格などを要約してみたいと思う。筆者が選んだテーマは、第一に仏教近代化、第二に近代的管理組織である法、第三に在日仏教留学生と近代仏教学、第四に韓国仏教伝統の弛緩、世俗化の加速などである。筆者のこの考察で日本仏教研究の再認識を基本的に変えることはできないかも知れないが、この分野研究の地平を深化するところに役に立つことを期待する。 敷衍すべきことは、日本仏教と関連する資料の発掘、資料集発刊などもにてを急ぐべきであるということである。このような基礎的な作業、土壌のもとで研究が觸發するはずである。また、日本で、の近代仏教研究の動向の把握、関連著作や論文の入手、近代仏教を主題をする韓日両国の学問的ㆍ文化的な交流なども深め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

      • 韓國 近代佛敎 ‘帶妻食肉’의 二元的 路線

        김광식(Kim Gwang sik)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2015 일본불교문화연구 Vol.- No.13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9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본 고찰은 한국 근대불교에 큰 영향을 끼친 일본불교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기 위하여, 일본불교의 상징으로 지칭되었던 이른바 ‘帶妻食肉’의 문제를 정리한 논고이다. 근대기 불교의 대처식육에 대한 문제는 근대불교의 본질 이해의 단서로 인식한 연구가 일부 있었다. 그러나 한국 내부의 대처식육의 인식 및 수용에 대한 이념, 한국불교내부의 대처식육에 대한 찬반양론의 흐름은 정리되지 않았다. 특히 한국에 영향을 미친 일본의 대처식육에 대한 성격까지는 연구가 미치지 못하였다. 대처식육의 문제는 한국의 근현대 불교를 설명하는 가장 본질적인 주제이다. 이를 통하여 韓日 불교의 교류, 이질적인 불교문화 등에 대한 다양한 연구 과제를 도출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지금까지 연구는 연구 관점의 단순성, 민족 감정의 문제, 일본에서의 연구 성과를 수용하지 않은 한계 등이 복합적으로 개재되어 심화되지 못했다. 필자는 이와 같은 연구 성과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이 고찰에서는 대처식육이 한국 근대불교에 수용되었던 제반 흐름을 몇 개의 시기로 구분하여 개괄적으로 살폈다. 그러면서 대처식육에 대한 수용을 긍정(善)과 부정(惡)으로 대별하면서 그에 내재한 인식을 분석하였다. 본고가 한일불 교 문화의 이해, 교류 등에 일조가 되길 기대한다. 本考察は、韓国近代佛教に大きな影響を及ぼした日本佛教に対する本質を理解するために、日本佛教の象徴ともいわれている'帶妻食肉'の問題を整理した論考である。近代期佛教の帶妻食肉に対する問題は、近代佛教の本質理解の手掛かりとして認識している研究がいくつなされている。しかし、韓国内部の帶妻食肉の認識やその受容に対する理念、韓国仏 教内部の帶妻食肉にたいする賛否両論の流れは整理されていない。特に韓国に影響を及ぼした日本の帶妻食肉に対する性格までは研究が進んでいない。帶妻食肉の問題は、韓国の近現代仏教を説明する最も本質的な主題であるといえる。それにも関わらず、韓国での今までの研究はその観点の単純性、民族感情の問題、日本での研究成果を反映していない限界などが複合的に関わり、研究が深まらない原因になっていると思われる。筆者は、このような研究上の限界を認識しながら、この考察では帶妻食肉が韓国近代佛教に受容されてきた流れを幾つかの時期に区分して概括的に論究した。また、帶妻食肉の受容を肯定(善)と否定(悪)として大別し、それに内在している認識を分析した。本稿が韓日佛教文化の理解、交流などに少しでも役に立つことを期待する。

      • KCI등재

        일본의 다문화와 인본주의에 기초한 한국형 다문화정책 모형

        박성호 한국일본언어문화학회 2013 일본언어문화 Vol.25 No.-

        With increasing married immigrant women and migrant workers, Korean societyis rapidly moving towards becoming a multicultural society these days. However, The problem of Korean multicultural society, discrimination against themigrant workers, difficulties of adapting for Korea of married immigrant women,the dissolution of a married immigrants family, dropping out of school of migrantyouth, make the prospects for Korea's multicultural society are dim. The differential exclusionary model is not conform to the spirit of a multiculturalsociety and the Assimilation model does not help with social integration, theMulticulturalism, the system itself matches the intent of a multicultural society mostclosely, but the limitations of multiculturalism is far from a reality in Korea. To meet the needs of a multicultural society, Government departments of Koreaperform variety of policy is implemented without Uniform principles. then, Duplicateof the policy and efficiency decrease have occurred. The concentration of multiculturalpolicies to the central government has resulted in the limited participationof a local government or civil society. Japan in particular uses 'multicultural coexistance' as a key concept for developingboth discourse and policies on them. The multicultural policy of Japan presents meaningful points of comparison andlearning to the multicultural policy in Korea that has only recently begun to seekfor the aims and ways of multicultural policy from the perspective of social integration. In this paper, As an alternative, argues to the implementation of Korean typemulticultural policy based on the a humanism. Korean multicultural policy model based on humanism can overcome the limitationsof existing multicultural policy, can to be based on the reality of the Korea and alsocan be harmonized with the ideology of multiculturalism. First priority of Korean humanism is on the human dignity. and members of the Korea multicultural society can enjoys a unique cultural traditions, can be securedequal individuals of their status based on the ideals of multicultural.

      • 初期朝鮮国釜山開教

        다이토 사토시(大東仁),원영상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2013 일본불교문화연구 Vol.- No.9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9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일본근대사는 아시아 침략의 역사였다. 그것은 군사뿐만 아니라 정치ㆍ경제ㆍ사회ㆍ교육 등, 다양한 분야가 상호 보완하며 계속된 것이었다. 당연히 종교계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일본사연구의 현장에서는 근대일본종교와 아시아 침략에 관한 연구는 아직도 확산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불교의 해외진출은 1873년 7월 17일 淨土眞宗 大谷派 小栗栖香頂가 청나라 북경에 유학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오구르스(小栗栖)는 청나라 승려 本然에게 사사하며, 일 년간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귀국 후인 1876년 5월에는 청나라 표교용 책자인 『眞宗敎旨』를 저술하였다. 오구르스에 의해 「開敎」 준비가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1876년 5월 26일, 진종 대곡파는 오구르수를 비롯한 승려 4명에게 청나라 상해로의 출장을 명한다. 오구르스는 7월 13일 상해에 도착한다. 일본불교의 「朝鮮開敎」도 정토진종 대곡파에 의해 시작되고 있다. 조선의 경우 1877년 8월 16일, 오쿠무라 엔신(奥村円心)이 조선국 출장을 명령받면서 시작된다. 이는 1876년 내무경 太久保利通와 외무경 寺島宗則가 정토진종 대곡파 「法主」였던 厳如에게 조선개교를 요청한 것에 응답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는 같은 해 2월 26 일 일본과 조선간에 조인된 수호조규에 따른 구체적인 행동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타 종파보다도 앞선 외국 「開敎]의 경험이 인정된 것일 것이다. 즉, 청나라 개교가 오구르스의 의사에 기초한 것에 비해 조선의 경우 일본국가의 의사가 기초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오구르스가 현지의 언어를 배우고 포교책자를 준비한 것에 비해, 오쿠무라는 언어능력은 물론 포교책자도 오구르스의 『진종교지』를 지참했던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행연구에서는 「조선인의 전도를 가장 우선시 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평가를 재점토하고자 한다. 본고에서는 일본불고(真宗大谷派)의 초기 부산개교에 한정한 것이지만, 그것은 개교지의 차이, 시간의 차이, 그리고 종파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자하는 작업의 일환이라고 해도 좋다.

      • KCI등재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일본관 : 申維翰의『海游録』을 중심으로

        鄭応洙(Chung Eung-soo) 한국일본문화학회 2001 日本文化學報 Vol.11 No.-

        이 글은 신유한의 『海游録』을 텍스트로 하여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일본관을 살펴 본 것이다. 그는 일본을 여행하면서 일본 산천의 아름다움과 경제적 부, 그리고 군사력에 놀라면서 나름대로 일본의 장점이라 생각되는 점들을 관찰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일본의 제도에 유교 문명적 요소가 결락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이러한 나라가 어찌하여 부국강병을 누리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유교 문명으로 일본을 교화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신유한으로서는 문화적 후진국인 일본이 조선보다 더 부강하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껏 일본의 장점들을 발견했지만 그것이 일본이 부강하게 된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당시로서는 일본을 직접 체험하는 매우 귀중한 기회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문화적 우월주의라는 선입견 때문에 일본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는데 실패했던 것이다. Based on Shin Yu-han's writing Haeyurok, this paper discusses how the Korean shcolars viewed Japan in the 18th century. Traveling across the country, he tried to find Japan's strengths and merits. He was surprised at her beauty of landscape, wealthiness and strong military power. On the other hand, he also found lack of Confuscian culture in the Japanese society. He couldn't really understand how such a country could enjoy and keep such a wealthy and powerful status. He strongly believed that Japan was inferior to Korea in terms of culture and that Japan should be enlightened by Confuscian culture. Though he succeeded to find Japan's strengths, he failed to relate them to the country's success in wealth and military power. In other words, in spite of his golden opportunities to experience Japan, his prejudiced sense of cultural superiority hindered him from looking at the real picture of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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