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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상(韓國思想)(사학(史學)) :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고대(古代) "불교사(佛敎史)" 서술 검토

        박미선 ( Mi Sun Park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1 韓國思想과 文化 Vol.59 No.-

        2009년 교육과정 개정안과 2010년 부분 개정안에 따라 2011년부터 기존의 國定 「국사」교과서 대신 6종의 檢定 「한국사」교과서가 고등학교에서 사용되고 있다. 본래 2009년 개정안에서는 국사와 세계사를 결합한 「역사」과목과 교과서를 계획했으며, 이 「역사」는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그러나 2010년 「역사」를 「한국사」로 급히 변경하였고, 그로 인해 전근대사를 추가적으로 서술해야 했다. 결국 기존 「국사」교과서에 서술된 전근대사 내용을 요약·정리하여 「한국사」 교과서에 수록하게 되었고, 이로써 새 교과서는 근현대사와 전근대사의 불균형, 체제의 비통일성 등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새 교과서에서 고대 불교에 대해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 기존 교과서와는 어떤 차별점이 있으며, 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불교는 한국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키워드로, 특히 불교를 수용하여 한국문화의 한 축으로 형성한 때가 바로 고대이므로 불교문화를 제외하고 고대사를 설명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먼저 6종의 검정 교과서를 비교·검토하고, 이를 기존의 국정 국사 교과사와 비교해 보았다. 기존 「국사」는 정치·경제·사회·문화분야로 나누어 서술된 데 비해, 검정 교과서들은 개설적인 서술 방식으로 정치사와 문화사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고대 불교에 대한 서술을 비교해 본 결과, 6종의 교과서는 서술 분량에서 차이가 있었고, 그 원인은 불교미술에 대한 서술 분량의 차이에 있었다. 공통적으로 삼국시대에 비해 남북국시대의 불교 서술이 매우 소략하며, 남북국시대 불교를 다루지 않은 교과서도 있었다. 최근에 신라 말 ``禪宗``에 대한 연구가 늘어나고 있는 경향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 결과 새 교과서 또한 삼국의 ``불교 수용``만 집중적으로 서술하는 태도를 답습하고 있다. 또한 「국사」교과서의 내용을 요약하여 새 교과서에 싣다보니, ``불교문화가 발전했다``와 같은 결론만 서술하거나 불교미술의 종류와 명칭을 ``나열``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서술 방식으로는 학습자들이 역사적 지식을 ``이해``하기란 어려우며, 이해할 수 없는 경우 ``암기``로 이어지게 되고, ``암기``는 곧 학습 부담이 된다. 따라서 내용의 많고 적음을 떠나 ``역사적 판단력 함양``을 역사교육의 목표로 한다면,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나 불교미술의 나열이 아닌 시대적·사상적 배경과 因果관계 등 좀더 ``친절한`` 서술 방식이 필요하다. According to the 2009 National Curriculum Amendment and 2010 Partial Amendment, six authorized ``HANKUKSA: Korean History`` textbooks have been used in high school instead of the existing ``KUKSA: National History`` textbook. The original 2009 Amendment had a plan of making ``YUKSA: History`` subject and textbooks by combining the national and world history, centered on the modern and contemporary history. But in 2010, ``YUKSA`` was changed by ``HANKUKSA`` urgently, which made additional description of premodern history inevitable. As a result, the descriptions on premodern history in the existing ``KUKSA`` were summarized and organized to be included in the new ``HANKUKSA``; therefore, the new textbook showed many problems such as the imbalance between premodern and modern-contemporary history and lack of formation-unity. The present study was performed to investigate how the new textbooks describes the Ancient Buddhism, what kinds of difference they show and what kinds of problem they include. Buddhism is the keyword in understanding Korean history and culture, and it was the Ancient Era when the Buddhism was accepted and became the axis of Korean culture. So, we can neither explain nor understand the ancient history except the Buddhist culture, and that is the reason why Buddhism should be centered on. First, six kinds of authorized textbooks were compared one another and then with the existing national Korean history textbooks. Contents of the existing ``KUKSA`` were described by political, economical, social and cultural aspects, but, on the contrary, authorized textbooks were done by centering on the political and cultural history with the method of introductory description. Comparing the description of Ancient Buddhism, quantitative differences were found in six textbooks, especially, those of Buddhist arts. Commonly, the Buddhism descriptions of North and South States Period were rougher and more negligent than the Era of Three States, and even some textbook has no part of North and South States Period Buddhism. It did not match the recent trend that investigating the Zen of late Shilla is steadily increasing. As a result, the new textbooks followed the old trend again which were concentrated on the intensive descriptions of Buddhism embracement in the Era of Three States. Also, because the contents of ``KUKSA`` were summarized and included in the new textbooks, we could find only the conclusion like ``Buddhist arts were developed`` or the lists of categories and names of Buddhist arts. Such descriptions cannot make learners` understood the historical knowledge. If learners cannot understand the knowledge, they will try to ``memorize`` it, which will burden them. So, if the aim of history education is to ``foster the historical judgement`` regardless of the quantity, more ``kind`` method of description is needed by providing the background of the time and ideology and the causal relationship, instead of the lists of simple facts or Buddhist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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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암 이을호의 탈주자학,탈중국적 자주성과 한국사상연구의 시각

        김형찬 ( Hyoung Chan Kim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0 韓國思想과 文化 Vol.54 No.-

        현암 이을호는 중국사상의 기준으로 볼 때 한국사상이 어떤 가치를 가졌는지, 나아가 그러한 기준에서 중국사상의 발전에 기여한 한국사상이 어떤 것인지를 찾아 드러내려 하기보다는, 근본적으로 한국사상이 중국과 어떻게 다른지를 밝히려 하였고, 그 독자적 특성을 기반으로 평가의 기준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한민족의 뿌리인 동이문화가 중국문화에 뒤질 것이 없다는 당당한 자부심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러하기에 그는 중국의 수직적 문화와 다른 한국의 수평적 문화, 중국의 도일분수적(道一分殊的) 사유방식과 대조가 되는 한국의 회삼귀일적(會三歸一的) 사유방식을 그 특징으로 제시하였다. 나아가 그러한 한국의 수평적 호혜 문화가 중국의 수직적 종속 문화보다 앞선 것이며, 회삼귀일?이이일(二而一)적 묘합(妙合)의 문화가 서구의 논리적 사고를 넘어서는 차원의 사유방식이라고 자신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을 기반으로 한국 고유의 사상을 `한사상’으로 정의하고, `한사상’의 기준으로 한국사상사를 재평가하였다. 현암의 이러한 평가는 다소 지나친 감이 없지 않지만, 한국사상사의 큰 맥락에서 한국사상의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생각해 볼 때 참고할 만한 좋은 선례가 된다. Hyeonam Yi Eulho tried to reveal how much Korean Thought is fundamentally different from Chinese Thought and suggest the criteria of evaluation on the basis of the independent property of Korean Thought. That was a great contrast to the other scholars that have found the value of Korean Thought by the standard of Chinese Thought and have disclosed which of Korean Thoughts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Chinese Thought by the same criteria. His attempt like this was on the basis of the confident pride that the culture of Dong-I, as the root of the Korean race, is never inferior to the Chinese culture. Therefore, he presented the horizontal culture of Korea that was deferent from the vertical culture of China and the Korean way of thinking uniting the three vehicles into one (會三歸一) that contrasted with the Chinese way of thinking dividing one way to a great number of individuals (道一分殊) as the characteristics. Moreover, he was confident on the idea that the Korean culture of the horizontal reciprocity was one step ahead of the Chinese culture of vertical subordination and the Korean culture of the mysterious combination was the way of thinking that went beyond the logical thinking of the West. Then on the base of these characteristics, he defined the original Korean thought as `One Thought` and revaluated the history of Korean Thought on the standard of `One Thought`. Hyeonam`s assessment like this would be hard to escape from the excessiveness, however it could be a good precedent to refer if we think what should be the criteria of Korean Thought in the grand context of the history of Korean 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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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國思想(한국사상)(文學(문학)) : 진각국사 혜심의 “선다일여” 의 시적 미학

        안광민 ( Kwang Min Ahn ),백원기 ( Won Gi Baek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5 韓國思想과 文化 Vol.77 No.-

        본 논문의 목적은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의 간화선을 이어받은 진 각국사 혜심(1178∼1234)이 그 자신의 독특한 간화선을 정립하여 구도와 깨달음의 과정에 있어 ‘선다일여’의 시적 미학을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데 있다. 헤심은 고려 불교의 중흥의 기틀을 마련한 지눌 의 의발을 이어 받아 조계산 수선사 제2세가 되었다. 그는 지눌의 간화 선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독자적인 간화선풍을 펼침으로써 조사로서의 전범을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간결하고도 함축적인 언어를 중요시 하는 선시를 창작하여 자신의 깨달음의 경지를 담아냄으로써 우리의 선시문학 발전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마음이 모든 것의 근본임을 내세우며 관념보다 지관(止觀)을 통하여 본래 모습을 찾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관조하고 그 진여의 세계를 형상화 하여 격조높은 시적 미학으로 승화시키고자 하였다. 따라서 혜심의 시적 세계의 특징은 자연에서 진여의 세계를 관조하는 선적 직관과 시적 상상력이조화를 이루어 빚어낸 물아일여의 깨달음의 세계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특히 한 잔의 차를 마심으로써 집중과 통찰을 높이며 마음을 비우고자신을 관조하며 깨달음에 이르렀던 혜심의 내려놓기와 비움의 지혜를 제공하고 있는 점이다. 따라서 혜심의 자연과의 조화로운 수행에서 깊어지는 ‘법향’과 ‘다향’의 향기로움이 담긴 시편들은 혼탁해진 우리의 심신을 맑히고 깨어있도록 하기에 더 없이 좋은 깨침과 치유 미학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할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look into the poetic aesthetics of "Seon and Tea are the Same One" of Jingak Hyesim(1178∼1234), focusing particularly on the relationship of his Seon thought and Tea poems. Hyesim, a disciple of Bojo Jinul(1158~1210), set up his own unique Seon thought by expanding and deepening Ganhwaseon of his master. Hyesim was a role model among Korean Seon masters and took a leading role in the development of Korean Seon literature. He also expressed seeking the Truth and attaining Enlightenment by writing many excellent Seon poems in brief and condensed poetic dictions or in different metaphors and symbols based on Seon intuition and poetic imagination. He stressed that the mind is the basis of everything and tried to find the original face through Samatha-vipassana rather than an idea. Furthermore, he attempted to contemplate things as they are and to enhance poetic aesthetic by embodying the world of Thus-ness as well. In particular, to Hyesim, Seon and Tea is not two but one; the taste of tea and meditation is the same one. He thought that Seon delight indwells in a cup of tea, which implies that 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tea ceremony and Seon practice. Originated and deepened in the course of the cultivation harmonized with nature, Hyesim``s poems include both dharma fragrance and tea one. Consequently, reading and appreciating Hyesim``s poems can be an alternative to purify our mind and to keep it awake. Here is Hyesim``s poetic aesthetic of enlightenment and hea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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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상(韓國思想)철학(哲學) : 우리 고유의 국학(國學)을 계승한 공자의 효사상과 인성교육의 정향(Ⅰ)

        김익수 ( Ir Soo Kim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4 韓國思想과 文化 Vol.74 No.-

        동북아의 역사와 교육은 우리겨레의 조상인 삼성(三聖)에 의하여 정초가 세워졌다고 주장할만하다. 여기에서 말하는 삼성은 환국(桓國)시대의 환인천제(桓仁天帝),배달국의 환웅천왕(桓雄天王), 고조선의 단군왕검을 말한다. 그런데 삼성의 사상은 인효사상이 골격인데 일관되게 계승되었다. 동이인이요, 성인으로 널리 알려진 공자는 원천적으로 삼성의 인효사상을 계승하여 儒學의 뿌리로 삼아서 六經 을 통해 유교를 창립하였다. 공자는 철학,역사, 문학, 정치등 폭낣게 학문을 하였지만 특히 교육에기여한 공적이 커서 인류위 스승이요, 만세의 사표로 존경받고 있다. 유학은 곧 인간학이요, 윤리학이며 교육학이라 할수있는데 중국에서 발전하다가 우리나라의 고구려 소수림왕2년에 공식적으로 전래되어 바로 그 해에 太學이 창설되어 국책교육이 비롯되었는데 오경이 중심이 되었다. 이러한 교육이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와 조선조까지 일관되어 사실상 우리나라는 공자의 효상과 인성교육의 원리가 한국교육의 정맥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한말에 이르면서 서구사상의 비판없는 수용은 교육의 본질과 인성교육이 실종되고 말았다. 이제 우리나라의 국정과제는 효사상과 복지정착을 위하여 삼성의 인성교육의 原論을 계승한 공자의 효사상과 인성교육의 원리가 한국교육사상의 정맥임을 재인식하고 재정착시키는 일이 전 세계적으로 산업사회의 후유증으로 도덕과 교육의본질이 실종되고 이기주의가 만연한 이때에 우리 나라가 도덕종주국이 되는 길이요, 인성교육의 대국이 되는 길이라고 단정한다. It can be argued that the solid foundation of the history and education of the Northeast Asia was established by the three Sagas of Korea. The three sagas are Hwanin Heavenly Emperor of Hwanguk Era, Hwanung Heavenly King of Baidalguk and Dangun Wanggeom of Old Joseon. The basic frame of their thoughts is the thought of benevolence and filial piety that is constantly inherited and maintained. Confucius who was well known saint and an ancient Korean fundamentally inherited the thought of benevolence and filial piety of the three Sagas and develop Confucianism through six manuscripts. Although Confucius dealt with various fields such as philosophy, history, literature, politics, and so on, he is respected as the symbol of a teacher of mankind throughout the history because of his achievement in education.Confucianism is a study of humanity, ethics and education that developed in China. Confucianism was officially introduced to Korea during the second reign year of King Sosurim of Goguryeo by establishing Taehak as the national education policy with the Five Classics of Confucianism. This tradition continued during the Three Kingdom period and continued through Kingdom of Goryeo and even Joseon. This is why the Confucius thought of filial piety and personality education are the main frame of the Korean education. However, the adaptation of the Western thoughts without criticism at the end of Joseon caused the confusion and destruction of the essence of Korean education and personality education. This is why it is the time to set up the national policy recognizing the fact that Korea is the origin of the Northeast Asia civilization and Confucius` thought of filial piety and personality education are the main frame of the thought of Korean education that is inherited from the Korean ancient tradition of world class thought of filial piety and personality education. This is the task of Korea to become the Power of personality education and center of the ethics when the world is suffering from the lack of ethics and foundation of education as the results of industria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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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상(韓國思想)문학(文學) : 주시경의 삶과 학문의 세계

        백낙천 ( Nak Cheon Baek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3 韓國思想과 文化 Vol.69 No.-

        1873년 대원군의 실권(失權) 후, 이른바 운양호 사건이 빌미가 되어 1876년 조선은 개항을 요구하는 일본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강화도 조약을 맺게 되었다. 이에 부산, 원산, 인천이 개항되었으며 국내 정치 상황은 개화 세력과 수구 세력이 맞서는 혼란스러운 정국이었고, 조선의 국운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상황으로 치달아 국권이 흔들리고 민족의 자존심이 훼손되는 어지러운 상황이었다. 이러한 때, 주시경은 1876년 황해도 봉산에서 태어나 1914년 선생의 나이 불과 39세에 안타깝게도 생을 마감할 때까지 평생을 국어 연구와 민족어 보급 및 계몽에 힘을 썼던 학자였다. 주시경은 일찍이 민족의 계몽을 위해 신학문을 배웠는데, 당시는 국어학 연구가 서양의 문법 이론의 틀에 맞추어 기술되던 시기였다. 그런데 주시경은 분명한 언어 의식과 독창적인 이론을 토대로 국어 문법을 기술한 독보적인 학자였으며, 지금도 국어학사에서 상징적인 존재로 남아 있다. 더욱이 주시경이 제시한 문법 체계가 현대 국어 문법의 이론적 틀을 마련하는 데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에서 주시경은 그 자체가 국어 연구의 시작점이며 국어 문법 연구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주시경은 1894년인 19세의 나이에 큰 뜻을 품고 배재학당에 입학하여 1900년인 25세의 나이에 배재학당을 졸업하였는데, 배재학당 재학 5년 동안, 그는 영문법을 공부하면서 언어의 특징과 공통성을 깨우치고 언어학의 이론을 정립하면서 국어 문법의 기틀을 세워나갔다. 주시경은 배재학당을 졸업한 1900년부터 한글을 가르치는 데 더욱 박차를 가하였는데, 상동교회 청년학원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정규의 교과목으로 국어문법을 가르치면서 수많은 후학을 길러냈다. 또한, 국어 연구도 지속적으로 하였는데, 주시경의 학문은 크게 보아 문자론과 맞춤법, 음성학과 문법론, 사전 편찬의 노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주시경의 이러한 학문적 성과는 <대한국어문법>(1906), <國語文典音學>(1908), <國語文法>(1910), <말의소리>(1914) 등의 저서에 잘 나타나 있다. 주시경은 구한말 민족의 언어와 민족의 혼을 일깨우고 평생을 우리말 연구와 보급에 힘쓴 애국 계몽운동가요 국어학자이다. 주시경의 나라 사랑과 국어 사랑의 열정은 오늘날 우리에게 교훈이 되기에 마땅하며, 우리 모두는 우리말과 우리글을 후세에 물려줄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The aim of this paper is an attempt to revalue life and outlook on the linguistic study of Ju, Si-Gyeong, and he was the initiator and leader of the standardization movement of the Korean language and orthography systems. Also His original ideas set out in his various works have not been fully evaluated by his followers. His linguistic theory interested in phonology, morphology and syntax. However, He is most impressive in his scholarly attainments is his creative efforts to set up his own phonological and theories. Ju, Si-Gyeong was the scholar who established a certain theoretical system about the Korean grammar in the earliest period. His linguistic study is related to the concept of linguistic theory or description on the comtemporary Korean grammar, and his theory has still become the subject for examination from various points of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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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상(韓國思想)(문학(文學)) : 김승희 시에 나타난 욕망과 이데올로기의 문제

        이유정 ( Yu Jeong Lee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6 韓國思想과 文化 Vol.82 No.-

        들뢰즈·과타리의 욕망론은 주체의 욕망이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가능성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본고는 들뢰즈·과타리의 욕망이론을 수용하여 1980년대 김승희 시에 나타난 주체, 이데올로기, 욕망의 연관 관계를 분석하고자 했다. 1980년대 김승희의 시는 억압하는 힘과 벗어나려는 힘 사이의 긴장관계에 주목하며 타자적 삶을 살아가는 주체들의 비판적 성찰을 담고 있다. 본고는 시인이 욕망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상반된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고, 그의 시에 나타난 주체의 욕망에 대한 상징계의 작동에 주목하고자 했다. 우선 시인은 욕망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무수한 코드화의 작용이 벌어짐을 보여준다. ``국가-자본-가족``이라는 초코드화의 메커니즘은 시적 주체의 욕망을 상징계의 요구에 부합하도록 만든다. 이에 시적 주체들은 억압적 상징계가 절대적인 힘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도 권력에 대한 반항력을 무의식 속에 감추거나 권력의 규율에 자발적으로 순응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주체들이 갖고 있는 비동일성의 의식은 기존의 상징계로부터 발생된 구조의 효과에 불과하기에 저항의 힘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한편, 김승희는 기존의 상징계와 상이한 코드의 시공간으로 탈주하는 시적 주체를 그려 내어 모든 인간이 지배담론의 이데올로기에 종속되기만 하는 존재는 아님을 반증한다. 시적 주체의 욕망이 만들어 내는 탈주의 공간들은 상징계들 간의 권력관계에 있어 열세에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무력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상징계란 이질적이고 차이적인 힘들이 함께 공존해야 할 공간임을 말하고 있다. 김승희가 시적 주체의 욕망과 이데올로기의 관계를 그려내는 상반된 방법들은 우리 사회에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주체의 유형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한편, 1980년대 한국여성시의 표현면의 혁신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This study analyzes the subject, ideology, the desire of Kim Seung-hee`s poetry. Kim Seung-hee`s poetry has contained critical reflection on the life of others. The poet recognizes the practical requirements to prevent the success of the subject. This time Kim Seung-hee has an interest in the strength and power of resistance. Desires and ideology appears to be contradictory in 1980s Kim Seung-hee`s poetry. This desire will arise in the process of producing the action of countless coded. overcoding mechanism is suppressed desire of the poetic subject. Poetic subject conceal the rebel forces to power in the unconscious. The poetic subject is adapted to power. Subject have the non-identity consciousness. But this is just the effect of the structure. Therefore, no power of resistance. Meanwhile, Kim Seung-hee writes poetic subject that escaped from the symbolic. This is the meaning of every human being does not depend on ideology. The disadvantage of breakout space than a symbolic one. So there is no real possibility of a breakout space. This means that not the absolute symbolic. It is a symbolic space of coexistence with the forces of heterogeneous and differences. This will help to understand the type of a variety of subjects. The innovative aspect of the expression of the 1980s female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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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의 효문화 사상에서 큰 가치인 공자의 효문화 사상을 계승한 율곡의 효문화 사상과 이를 전개한 사계의 효정신(1)

        김익수 ( Kim Ik-soo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9 韓國思想과 文化 Vol.96 No.-

        동북아에서 처음으로 건국한 환국(桓國)의 환인천제(桓仁天帝)는 환인오훈(桓仁五訓)을 폈는데 제3훈에 ‘효순(孝順)’이 들어 있다. 그 외의 1, 2, 4훈, 5훈도 모두 인(仁)사상의 범주에 들어간다. 이는 동북아역사상 효문화의 원초 문헌이라고 하는데 이의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공자의 학문은 우리 겨레의 스승이며 성인인 ‘삼성조(三聖朝)’의 인효(仁孝)의 문화사상의 골격을 계승했다고 연구자는 주장한다. 이미 연구자는 그 동안 ‘삼성조의 효문화사상’과 ‘공자의 효문화사상’관계를 연구하여 왔지만 분명히 동북아의 큰 가치로 공인되고 있음이 확실하다. 이에 본 연구에서 율곡 이이는 동양의 큰 스승이고 성인인 공자의 효문화사상과 인성교육의 원론을 계승하였음이 확실하다고 판단되어 이를 논증하는 것이 본 연구의 본지(本旨)다. 근세에 접어들면서 과학과 산업의 발달, 그리고 경제제일주의식사고와 한국교육의 진보주의 추종경향은 더욱 도덕·윤리의 꽃이요, 기반인 효문화교육을 소홀히 한 탓으로 인하여 이미 인성교육은 실종되었으며 교육위기시대를 여지없이 초래시켰다. 우리의 교육문화를 바로 세우는 것이 어느 국가정책보다도 급선무이어야 할 이때에 한국사상의 터전을 이룬 율곡의 효문화사상은 공자의 효문화사상이 연원이 되고 있음도 인식시키고 율곡의 효문화사상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세계문화의 높은 수준으로 인식케 하여 한류(韓流)로 도도히 흐르게 하려고 한다. 한편으로는 미래지향적인 한국 문화의 초석을 굳히고 동시에 인간성회복과 우리 교육문화의 정향이 천박한 서구문화사상으로 얼룩진 현실을 바로 세우고 국가경쟁이기도 한 세계적인 한국의 효문화의 재정립으로 우리나라가 도덕종주국임을 재확인시키고 ‘한국교육의 혁신’ 발전으로 절대적인 역할을 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본 연구의 주된 목적이며 세계화 하려는 원대한 의도가 여기에 있다. Korea is special for it's long history and unique culture. Therefore, many countries in the world are developing their interests and demands for Korean experiences. Among many culture, the most outstanding achievement of Korea is the filial piety culture that is the final stage of human ethics. As an example, the filial piety culture of dolmen of Baedalguk is already listed as a World Cultural Heritage of UNESCO. This is a symbol of the high level of Korean culture and national pride. Confucius who inherited the thought of benevolence-filial piety of Korean people's teachers and saint, Three Sagas, framed his thought based on this benevolence-filial piety. Already this author has been researching this relationship, it is clear that it is the great value of East Asia. With Togye(1501~1570), Yulgok(1536~1584) as the two-pilar of Korean Neo-Confucianism shows he inherited the Confucius' thought of filial piety culture. Therefore, this study tries to demonstrate this relationship between Yulgok(栗谷, 李珥) and Confucius' thought of filial piety. Today, economy-first tendency with the developments of science and industries neglects the education of filial piety culture of the foundation of ethics. It causes the crisis on education by emphasizing the western style education. To reset the education culture is more important than any other policies. Yulgok's thought of filial piety culture of the foundation of Korean thought must be emphasized at this point and shows the world its significances. It must be the main stream of the Korean Wave. Yulgok's thought has to be developed as a future-oriented filial piety culture of Korean culture as well as the Korea's education culture by the value to recover the humanity to overcome the ills of the western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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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상(韓國思想) 문학(文學) : 설죽(雪竹) 한시(漢詩)에 나타난 내면의식의 제양상(諸樣相) 연구

        이정화 ( Jeong Hwa Lee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4 韓國思想과 文化 Vol.72 No.-

        설죽의 한시에는 성찰적(省察的) 시인의 형상이 자주 등장하며, 작품 곳곳에서 대인(大人)의 기품을 찾을 수 있다. 자유자재(自由自在)한 마음으로 살기를 원하였던 설죽은 신선을 형상화하는 것으로 자신을 위무하였으며, 대자연 속에서 우주 만물과의 조화로운 삶을 희구하게 된다. 설죽은 추상적 개념인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구체적인 실상인 ‘건곤적기(乾坤積氣)’로 형상화하여 명쾌하게 보인 바 있다. 그에게는 사대부 명문장가(名文章家)가 지닌 기상과 동일한 시정신이 내재되어 있었다. 이는 다른 여류시인들의 시세계와는 변별되는 것으로, 관조적(觀照的) 지성(知性)의 미의식(美意識)을 실현한 설죽 한시의 특징이다. 설죽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위무하며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자 하는 긍정적인 사유 태도를 견지하였으므로, 자존(自存)의 삶을 완성하려는 의지로 스스로를 단련하기도 하였다. 특히 설중매(雪中梅)는 시련에 굴하지 않는 자존(自存)의 표상이다. 설죽은 덧없는 인생을 절감 할수록 자존(自存)의 마음을 시화하며 자신을 추스르는 시인이었다. 설죽의 한시에는 궁핍한 백성들의 삶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표출함으로써 그들과 심정적으로 애환(哀歡)을 함께 하려는 의지를 형상화한 작품이 발견된다. 이러한 작품에 나타난 설죽의 시정신은 곤궁한 사람의 심정을 진심으로 헤아리는 포용력(包容力)의 발로(發露)와도 무관하지 않다. This thesis aims to investigate the excellence of Seol Juk`s poetry. This paper is an attempt to illustrate the thought configuration in the poetry of her. Seol Juk was the elegant poetess the middle part of the Joseon Dynasty period. Seol Juk is a poetess of genius and a great personality. She was a desire to live free mind. Therefore Seol Juk was a legendary hermit with miraculous powers to describe. Describe her a legendary hermit with miraculous powers was also her own. The poetry written by Seol Juk was revealed the sincerity and devotion. The Aspects of Consciousness in Seol Juk`s poetry are the reason, intelligence, self-respect, inclusion. Her spirit is excellent, and her mind is clear and tidy. She wrote poetry in order to be happy. Seol Juk was described the poor and the unfortunate man`s life. Her poetry is an element of friendship and humanity and personality involved. Her poetry is realism, and her poetry is love for human be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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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상(韓國思想)(사학(史學)) : 조선시대 사찰 기록 비교를 통한 『가람고』 편찬의 의의

        류명환 ( Myung Hwan Ryu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5 韓國思想과 文化 Vol.79 No.-

        조선시대에는 사찰 관련 기록이 국가의 운영과 통치 자료로 편찬된 지리지의 주요 항목으로 구성된다. 현전하는 최초의 기록은 『경상도지리지』의 불우 항목에서 출발한다. 이어 『세종실록지리지』의 사찰 기록, 『경상도속찬지리지』의 승사 항목,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불우 항목, 『동국여지지』의 사찰 항목, 『여지도서』의 사찰 또는 불우 항목 등으로 세종대에서 영조대까지 사찰은 지리지의 한 항목을 구성하였다. 그러나 1770년에 편찬된 『동국문헌비고』 중 『여지고』부터 사찰 항목이 전국지리지에서 제외되면서 신경준에 의해 『가람고』라는 독립된 사찰지가 완성된다. 현재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필사본 『가람고』는 영조대 1,459개의 사찰을 기록하고 있다. 신경준은 『가람고』를 저술하면서 기존의 지리지에서 사용되던 승사, 불우, 사찰이라는 용어를 인용하지 않고 지리지로부터 독립된 분야로서의 정체성 내지 독자성을 내세우기 위해 산스크리트어에서 가람이라는 용어를 차용한다. 신경준은 영조대에 진작되는 국학 연구의 분위기 속에서 기존의 지리지 혹은 백과전서 속에 묻혀있던 지리학 영역의 ‘강계’, ‘도로’, ‘산천’, ‘사찰’을 독립시켜 고증학적 방법을 통해 『강계고』, 『도로고』, 『산수고』, 『사연고』, 『가람고』 등 독자적인 지리서를 저술한다. 더욱이 『가람고』는 사찰을 대상으로 한 책이 단일본으로 처음 편찬되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따라서 영조대 학문의 종합화와 전문화가 함께 일어나는 시기에 『가람고』 편찬은 학문의 전문화 경향을 반영하며, 신경준은 이 시기에 지리학이 독자성을 가지는 계기를 만들면서 조선 지리학의 분류사를 체계화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The records of Buddhist temples was the one of the main category in the Joseon dynasty. Gyeongsangdojiriji(慶尙道地理志) is the oldest record. And then, Buddhist temples had held an important part between King Sejong and King Youngjo in Sejongsilokjiriji(世宗實錄地理志), Gyengsangdosokchanjiriji(慶尙道續撰地理誌), Sinjeungdonggukyeojiseungram(新增東國輿地勝覽), Donggukyeojiji(東國輿地志), and Yeojidoseo(輿地圖書). However, Garamgo(伽藍考), which is the geography book focused on the Buddhist temples, was completed by Shin Kyoung-Jun(申景濬), because the Yeojigo(輿地考), part of the Donggukmunheonbigo(東國文獻備考), did not include the section of the Buddhist temples. In King Youngjo’s reign, synthesisation and specialisation of the study, and the compliation of Garamgo (伽藍考) is the one of the evidence to reflect the trend. In addition, Shin Kyung-Jun(申景濬) can be evaluated the scholar who systetized the classification of geography in Joseon dynasty with furnishing the opportunity for geograhy to have origi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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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상(韓國思想)(사학(史學)) : 조선의 월남에 대한 인식 -월남에 대한 『조선왕조실록』의 기술을 중심으로-

        김택중 ( Taek Joong Kim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1 韓國思想과 文化 Vol.59 No.-

        21세기 현재 한국과 월남 양국은 물적 교류와 인적 교류 상 아시아에서 매우 중요한 경제적 파트너이며 전략적 동반자 관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리적, 역사적 관계로 근대 이전 한월 양국 간의 교류는 활발하지 못하였다. 특히 조선시대 한국과 월남은 직접적인 교류가 거의 없었다. 때문에 본 논문 주제에 관련된 자료 역시 매우 희소한 편이다. 본문은 주로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나는 조선사행의 보고서를 근거자료로 근대이전 조선의 월남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았다. 본문에서 검토한 결과를 토대로 조선시대 월남에 대한 인식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시대 한국과 월남 간에는 오늘날처럼 직접 상대국을 오고가는 인적 교류와 물적 교류가 없었다. 때문에 조선의 월남에 대한 정보 혹은 인식은 주로 양국 사신들이 만나는 중국의 수도 북경에서 간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 방법에 있어서는 대체로 한국사신이 중국에서 중국정부로부터 월남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경우, 중국정부가 조선정부에 조서 등을 통해 월남에 대해 알려주는 경우, 한국사신이나 통역관이 중국에서 월남의 사신이나 통역관을 직접 만나 상호 간의 정보를 주고받는 경우 등이 있다. 둘째, 조선시대 월남에 대한 인식의 범위는 월남내부의 큰 정치변동에서부터 대중국 외교정책과 공물내용, 천주교 탄압, 국호 변경, 의관 풍습 등 매우 다양하다. 특히 정치방면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인물의 이름과 행적 등과 같이 정보의 내용이 매우 상세하다. 시대는 어느 한 시대에 국한되지 않고 월남의 호(胡) 왕조로부터 후기의 완(阮) 왕조에 이르기까지 근대이전 월남의 각 시대를 망라하고 있다. 셋째, 조선시대 조선은 다른 무엇보다 월남의 정치적 변동과 그에 대한 중국의 대응과 월남정책 및 월남의 대중국 사대정책이나 조공관계 등에 대해 지대한 관심과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조선 역시 중국 중심의 중화질서 속에서 월남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자신의 안위와 존립을 지키고자 하는 관심에서 나타난 현상일 것이다. 넷째, 조선시대 월남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중국을 통해서 얻는 정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때문에 정보의 내용이 객관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 중국의 대월남관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로 인해 조선의 월남에 대한 인식 역시 부정확한 면이 있음과 동시에 중국의 월남에 대한 관점이 많이 작용하고 있다. 다섯째, 조선시대 조선은 중국 중심의 아시아 국가 중에서 중국을 제외한 가장 뛰어난 문화국가라는 자부심과 우월감을 지닌 채, 의관 풍습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상대적으로 월남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경시하고 무시하려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요컨대 조선시대 한국은 월남과 직접적인 교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양국 사신들의 학문교류와 정보교환, 혹은 중국의 조서나 대외발표문 등과 같은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예상외로 월남의 각 상황에 대해 많은 정보를 확보하고 또한 그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現在韓越兩國在經濟和戰略上흔重要關係.可是因地理和歷史的背景,20世紀以前韓越兩國之間흔少人和物的往來或交流.尤其是朝鮮時代幾乎沒有韓越兩國之間直接交流.從而也흔少有關本論文的資料.因此本文主要根據朝鮮王朝實錄所記述朝鮮使行的報告文,探索朝鮮對越南的認識.其結果如下.第一,朝鮮時代在韓越兩國之間從未有像現在的直接交流.因而朝鮮要獲得對越南的情報,主要依據在中國首都北京所進行的資料.在其資料有幾種,一.朝鮮使臣由於中國政府的報告書得到越南的狀況,二,中國政府通過詔書等告訴朝鮮政府對越南的情況,三,朝鮮使臣和通譯官與越南使臣和通譯官在北京面對而互相交換情報.第二,朝鮮時代對越南的理解範圍有廣範而多樣,如從越南內部的政治變動至越南對中國外交政策和供物內容,天主敎彈壓,國號變更,衣冠風習等.特別朝鮮在對越南的政治方面認識흔詳細,如對人物的姓名和行爲等比較具體的了知.此外,時代範圍也是不局限於特定時代而網羅近代以前的全越南時代如從胡王朝至阮王朝.第三,朝鮮關於越南的政治變遷,越南對中國的事大主義和朝貢政策等持有至大的關心和敏感的反應.此目的是朝鮮亦在中國中心的中華秩序上,以越南當作他山之石,爲了保持朝鮮自身的安危和存立.第四,朝鮮時代對越南的情報,大部分是從通過中國而獲得.所以其情報的內容不但不客觀,而且多包含中國的觀點.從而在朝鮮對越南的認識上難免有不正確的部分,同時在其認識內多作用於中國的對越南觀.第五,近代以前以中國爲中心的亞細亞國家中,朝鮮以爲除了中國以外朝鮮具有最優秀的文化,持有此種自負和優越感的朝鮮相對越南具有輕視和無視的傾向.總而言之,雖然朝鮮時代朝鮮與越南從未有直接交流,但是朝鮮通過像韓越兩國使臣的學問交流和情報交換,或中國的詔書和對外發表文等間接交流方式,得到多方面的越南情況而據此了解越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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