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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冶隱 吉再에 對한 歷代 讚詠詩 檢討(Ⅰ)

        남재철(Nam Jae cheol 南在澈) 대동한문학회 2015 大東漢文學 Vol.42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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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15세기 前期 太宗朝 朝野 諸賢의 吉再 讚詠詩 작품을 중심으로 하여, 朝鮮朝 역대 제현의 吉再에 대한 讚詠詩 양상을 검토한 것이다. 太宗朝 조야 제현의 吉再 讚詠詩 창작은 경상도관찰사 南在의 주도 하에 이루어졌다. 즉 南在가 吉再의 臣節과 孝行을 칭송하는 讚詠詩 몇 수를 짓고, 權近 등을 비롯한 조야의 제현이 이에 화답하여 詩卷을 완성하게 된다. 현재 남아 있는 자료를 통해 살펴볼 때, 이 詩卷에는 南在, 權近을 위시한 30분가량의 작가들이 참여하여 총 53수의 讚詠詩를 남겨놓고 있다. 太宗朝에 이르러 南在, 權近 등이 앞장서고 조야 제현이 뒤를 이어 吉再 讚詠詩 창작에 나섰던 것은 일면 정치적 의도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태종이 吉再에 대해 우호적 태도를 취하고 權近 등에 의해 吉再에 대한 국가 차원의 포상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면서도, 명분의 부족으로 인해 국가적 포상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吉再에 대한 국가 차원의 포상을 이끌어 내기 위한 효과적 輿論 형성의 수단으로 吉再 讚詠詩 창작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This essay is to study on some panegyrical poems about Gil Jae created by men of distinction of many generations living in Joseon Dynasty era, focusing on some panegyrical poems about Gil Jae made by men of distinction both in and out of government in Taejong Era, the early 15th century. Some panegyrical poems about Gil Jae was written by men of distinction both in and out of government with the lead of Nam Jae, the governor of Gyeongsang Provinces in Taejong Era. In the process, Nam Jae made some works which eulogize the loyalty to his king and the filial piety towards his parents and then men of distinction both in and out of government including Kwon Geun finished the collection of poem following the creation of Nam Jae. Looking over the existing materials, I found that about 30 poets including Nam Jae and Kwon Geun participated in the creating the collection of poem and 53 panegyrical poems about Gil Jae remain today. It may be the result of political intention to men of distinction both in and out of government including Kwon Geun finished the collection of poem following the creation of Nam Jae. In that period, the king Taejong could not give Gil Jae the national accolade although the king had the amicable attitude toward Gil Jae and some people including Kwon Geun profound the need of national accolade. Some panegyrical poems about Gil Jae was created to make public opinion effectively with the intention to make Gil Jae national accolade.

      • KCI등재후보

        심상건 가야금 산조 연구

        문재숙(Moon, Jae-suk) 한국국악교육학회 2014 국악교육 Vol.38 No.38

        심상건(沈相健, 1889~1965) 은 심창래의 아들로 1889년 충청남도 서산에서 출생하였다. 심상건이 조실부모 하여, 작은아버지인 심정순(沈正淳, 1873~1937)의 영향을 받았다. 그 예로는 심상건의 독특한 5괘 조현법을 들을 수 있는데, 이는 중고제의 대가 심정순의 5괘 조현법과 같은 것이다. 김창조계 중심의 전남제와 심상건 중심의 중고제 가야금 산조를 비교하여 보면, 심상건 산조의 특징은 “우조로 시작 해서 우조로 끝낸다”는 김창조계 산조의 법통과 달리 심상건의 진양조는 저음역에서 시작하며, 평조의 선율로 시작하는 것이 독특하다고 볼 수 있다. 전남제의 경우 4괘법을 사용하며, 주로 g본청을 사용하는데에 반해 중고제는 5괘법을 사용하고, 제 1현에 ?을 사용하여 저음음역을 확대하여 연주하였으며, g본청에서 d본청으로 이동하는 변청도 사용 하였다. 또한, 전남제는 계면조를 중심으로 하는데에 반해 중고제는 평·우조, 계면조가 중심이 되며 진계면조가 없다는 것이 그 차이점이다. 심상건의 진양조는 독특하고 즉흥적인 선율이 많아 다른 산조와 유사한 선율이 거의 없으며, 심상건이 동일한 악장을 연주해도 동일 선율이 거의 없었다. 심상건은 즉흥적이며, 독주 시나위 성격을 가진 가야금 산조를 연주 해왔으며,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연주 되었던 김창조계 가야금 산조와 관계없이 독자적인 중고제 산조를 만들었다. 즉흥적인 연주를 하였기에 제자를 양성하고, 꾸준히 계승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심상건 가야금산조 연구에서는 심상건의 sp음반과 김기수가 채보한 심상건 가야금 산조, 릴 테이프, 유성기 음반 등 현재 남아 있는 자료를 토대로 타 산조와의 진양조 악장 구성의 비교, 타 산조들과의 조현법에 관한 차이점, 1950년 전후로 변화된 심상건류 가야금 산조의 변화 등에 관해 연구 하였다. Sang-gun Sim (심상건 沈相健, 1889~1965) is Chang-lae Sim's son, born in Chungcheongnam-do Province Seosan in 1889. He was influenced by his uncle Jung-soon Sim(심정순 沈正淳, 1873~1937) because he lost his parents early in his life. For example, there is a unique 5 Gue tuning system(5괘 조현법), which is the same tuning system as Jung-soon Sim, the master of Jung-go Jae (중고제). Comparing Chang-jo Kim's style oriented Jeon-nam Jae and Sang-gun Sim's style oriented Jung-go Jae, the major characteristic of style Chang-jo Kim's style sanjo is “starting with Ujo, end with Ujo.” However, Sang-gun Sim's style sanjo is starting with the lower register and melody of Pyungjo. The difference between Junnam Jae and Jung-go Jae is that Jun-nam Jae uses 4 Gue method(4괘법) and mainly uses G tonic, but Jung-go Jae uses 5 Gue method (5괘법)and uses ? as a first string in order to play a wide range of lower scale and uses modulated melodies, which changed the G tonic into D tonic. In addition, unlike Junnam Jae; mostly based on Kyemyeonjo, Jung-go Jae is mostly based on Pyung-Ujo and Kyemyeonjo except Jin-Kyemyeonjo. Because Sang-gun Sim's jinyangjo has unique and improvisatory, it has no similar melodies from other sanjo, and even when Sang-gun Sim plays the same movement, it rarely has a same melody. Sang-gun Sim played sanjo, which is improvisatory and has a nature of sole Sinawi. Regardless of Chang-jo Kim's gayageum sanjo which was played mostly in Junnam province, Sang-gun Sim made his own unique Jung-go jae sanjo. He had trouble of fostering pupils and steady successionof his sanjo. Based on Sang-gun Sim's SP record, Gi-sy Kim's transcription of gayageum sanjo, reel tape, a gramophone record, and etc, the study of Sang-gun Sim's gayageum sanjo researched the difference of jinyangjo and tuning system between other sanjos and the difference made in Sang-gun Sim's gayageum sanjo before and after 1950s.

      • SCOPUSKCI등재
      • 전통사회와 왜래종교의 문화충돌

        박재영(Park, Jae-young) 경주사학회 2012 경주사학 Vol.36 No.-

        19세기 말 조선은 전국적으로 봉건지배체제에 항거하는 민란이 줄을 이어 발생했다. 이는 제주도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이재수의 난'은 그 규모가 전례 없이 컸다는 점, 특히 천주교라는 외래종교와의 갈등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1901년 일어난 ‘속측의 난'은 정부의 조세수탈, 천주교의 교세확장과 이에 따른 폐단 등이 원인이 되어 일어났기 때문이다. 필자가 제기하고자 하는 의문은 어떻게 ‘이재수의 난'이라는 하나의 사건이 다양한 명칭으로 불려 질 수밖에 없고, 연구자의 시각도 현저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필자는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이재수의 난'을 전통사회와 외래종교의 문화충돌이라는 측면에서 재구성 하였으며, 현기영의 역사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와 이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 〈이재수의 난〉에 묘사된 이 사건에 대한 작가와 감독의 해석을 살펴보고, 끝으로 1901년에 발생했던 ‘이재수의 난'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In Chosun, the end of the 19th century, Uprisings against the feudal ruling system throughout the country are followed. Jeju Island was even. The scale of ‘the riot of Lee Jae-Soo' was unprecedented, and the riot was especially very unique why the conflict came up with the Catholic as a foreign religion. Because ‘the riot of Lee Jae-Soo' in 1901 was happened government's tax exploitation and abuses consequent on the expansion of the Catholic Church. I wish to raise the question of how ‘the riot of Lee Jae-Soo' must be called various names and visual points of Researchers had a lot of difference. On the basis of such recognition, first, I reconstructed ‘the riot of Lee Jae-Soo' as a point of a Clash of Cultures bet ween Traditional Society and Foreign Religion. And Second, I observed this event through viewpoints of the writer, Hyun Gye- Young's novel ‘The crying bird at the frontier'. and the director of the film ‘the riot of Lee Jae-Soo', Third, what ‘the riot of Lee Jae-Soo' that happened hundred years ago means of these days.

      • KCI등재

        야은(冶隱) 길재(吉再)에 대(對)한 력대(歷代) 찬영시(讚詠詩) 검토(檢討)(Ⅲ) -숙종(肅宗) 어제시(御製詩) 및 갱진(?進)·차운시(次韻詩) 중심(中心)으로-

        남재철 ( Nam Jae-cheol ) 근역한문학회 2016 漢文學論集 Vol.45 No.-

        본고는 15세기 전기 태종조 조야 제현의 야은 찬영시 및 15세기 후기에서 17세기 전기 사이 야은 유적지 방문 사림들의 야은 찬영시에 대한 검토에 이어, 국왕의 입장에서 야은의 충절이 크게 추숭되었던 17세기 말엽 이후의 야은 찬영시의 양상에 대해 검토한 것이다. 국왕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 야은 찬영시 창작은 18세기 초기 숙종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점을 밝히면서, 먼저 숙종 어제 야은 찬영시의 존재 양상과 그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어 숙종 어제시에 대한 당대 신하들의 갱진시 및 후대에 산출된 차운시의 양상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야은의 절의가, 야은 생전의 양촌의 기록 및 야은 사후 국가적 추숭의 결과물인 『삼강행실도』의 내용에서는 주로 백이·숙제와 같은 불사이군의 충절의 측면에서 강조되어 왔는데, 숙종의 어제시에서는 공명에 아무런 욕심이 없는 엄광과도 같은 은사의 청아한 풍도의 측면에서 강조되고 있다. 국왕의 입장에서 야은의 청아한 은사로서의 절의를 새롭게 부각시켜 칭송함으로써, 벼슬에서 밀려나 은거하고 있거나 은거할게 될지도 모르는 당대 사대부들의 삶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의미를 적극 부여해줌으로써 그들의 충성심을 고취시키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숙종의 어제시에 대해 명곡과 동강은 갱진시를 통해서 자신들을 비롯한 당대 및 후대의 모든 사대부들이 태종·세종·숙종 등의 임금이 야은의 은사로서의 맑은 절의를 포상해준 사실을 듣고서 은사로서의 절의를 절로 흥기하게 될 것이라고 화답하고 있다. 후대에는 순조와 역천, 사미헌과 한주가 숙종 어제시에 차운시로 화답하였다. 숙종·순조, 명곡·동강은 야은의 은사로서의 측면에 주목하고 있는데, 역천·사미헌·한주는 야은의 백이·숙제에 비견되는 불사이군의 충신으로서의 측면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숙종·순조, 명곡·동강은 국왕 또는 조정의 관료이지만, 역천·사미헌·한주는 재야의 학자라는 점이 이러한 차이를 가져온 것으로 추정이 된다. This essay is to study on some panegyrical poems about Yaeun Gil Jae created by other persons from the late 17th century when the loyalty of Yaeun Gil Jae was eulogized by the lead of a sovereign ruler. At first I examined the aspect and meaning of panegyrical poems made by King Sukjong in 1707, the early of 18th century. In the earlier records of Joseon Dynasty in the 15th century, the fidelity of Gil Jae was emphasized in the aspect of Baeki and Sukje, the loyal brothers of Chinese lore, refusing to serve two dynasties. On the other hands, in the panegyrical poems by King Sukjong, the integrity spirit of Gil Jae was emphasized in the aspect of elegant attitude of a recluse, Eomgwang who was a representative recluse in Chinese history and was disinterested in a successful career. And then I studied the aspect and meaning of panegyrical poems made by high-ranking official, Myeonggok Choe Seokjjeong and Donggang Cho Sangwoo who composed a verse in response to Sukjong`s poems following the rhymes of Sukjong in the same generation and the responding poetry which was created by King Sunjo, Yeokcheon Song Myeongheum, Samyhun Jang Bokchu and Hanju Lee Jinsang in the later generations. They pledged themselves to practice the integrity spirit of recluse influenced by the fact that some kings including Sukjong eulogized Yaeun Gil J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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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전기 재추(宰樞)의 출신과 국정회의에서의 위상

        박재우 ( Jae Woo Park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5 동방학지 Vol.0 No.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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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정치제도사 연구는 고려를 귀족사회로보는 관점에서 연구를 진행해 왔고, 그래서 재추가 귀족의 대표적 존재이며 그들이 정치를 이끌어 갔으므로 왕권이 제약을 받았다고 이해해 왔다. 본 연구는 이러한 견해를 검토하려는 것이다. 고려의 재추는 중서문하성의 재신과 중추원의 추밀은 말한다. 그러므로 재신은 중서문하성의 관료로서, 추밀은 중추원의 관료로서 각각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고려 관료제도에서 지위가 가장 높았으므로 議政에서 함께 활동할 여지가 있었다. 처음에는 재신과 추밀이 각각 議政에 참여하였으나 예종대부터 둘이 합쳐 재추로서 議政에 참여하였다. 이렇게 되면서 재추는 兩府, 大臣, 재상으로 불리면서 국정운영에서 비중이 더욱 높아졌다. 이러한 재추는 귀족의 대표적 존재로 알려져있으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귀족은 신분적 혈연적으로 배타적 특권을 세습하면서 군주의 권력이나 관료제적 질서로부터 자율적인 위상을 구축하고 있는 존재이다. 그런데 골품제가 몰락한 이후에 성립한 고려에는 그러한 특권층이 없었다. 이른바 고려 귀족의 특권은 모두 관료로서 받는 특권이었고, 그러한 관료의 특권을 활용하여 누대에 걸쳐 재추를 배출하면 문벌이 되었다. 고려전기의 재추는 가계 내에서 본인이 처음으로 재추가 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국정회의에서 문벌출신 재추의 입장이 일방적으로 관철되지 못했다. 본인을 포함하여 2명 이상의 재추를 배출한 경우는 문벌의 영향력이 커지는 예종~의 종대에 숫자가 늘어났으나 그들이 국정회의를 주도한 것은 아니었다. 고려전기의 국정회의에는 재신회의, 輔臣회의, 式目都監使가 참여하는 회의, 群臣회의와 예종 이후에 생겨난 재추회의가 있었다. 이들 회의에서 재추가 문벌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논의를 주도하고 그로 인해 국왕의 최종 결정권이 제약되는 경우는 없었다. 이러한 점은 예종 이후의 회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고려전기에 재추가 귀족의 대표적 존재이며 그들이 정치를 이끌었으므로 왕권이 제약을 받았다는 견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Studies of Goryeo political institutions have held that aristocratic Jae/Chu (宰 樞) figures were at the helm of the nation``s general governance and seriously restricted the king``s leadership and power. This study examines the validity of this theory. Historically, aristocratic figures have usually held exclusive privileges according to their social rank and bloodline. Yet Goryeo featured no such privileged class. The ruling classes' rights were bestowed upon them as vassals of the king, and they became Munbeol houses after producing prominent officials for several generations. In the first half of the Goryeo period, Jae/Chu figures`` voices carried a very limited amount of weight in official gatherings. Even in the middle of the Goryeo period, which witnessed the advent of several powerful Munbeol houses that produced more than a few Jae/Chu figures, their voices were still not strong enough to allow them to dominate the gatherings for discussions of dynastic governance. There was no instance of Jae/Chu figures being able to lead the discussions solely for being from Munbeol houses and restricting the king``s ultimate authority to issue a final decision. The situation was the same in the following years. The previous theory therefore needs to be reconsidered.

      • KCI등재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의 체육사상과 활동에 관한 연구

        최흥희 ( Choi Heung-hee ), 김재우 ( Kim Jae-woo ) 한국체육사학회 2017 체육사학회지 Vol.22 No.4

        본 연구는 이상재의 체육사상과 활동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상재는 YMCA의 전인적 인간론과 전인교육사상에 입각하여, 체(體)를 천시하였던 당시의 사회적 폐습을 비판하면서 체(體)를 덕(德)과 지(智)와 같이 동등한 입장으로 인식하였다. 그리고 이상재는 체는 덕과 지를 빛내기 위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그릇으로 생각하였고, 교육의 한 영역으로서 덕육, 지육과 함께 체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상재는 YMCA 체육사업을 통하여 청년들의 정신적·신체적 능력을 배양함으로써 서구 열강들의 위협에 대항하고, 주권 확보를 위한 기초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특히, 이상재는 해외 동포와의 야구경기라는 스포츠 이벤트를 통하여 해외 민족운동 세력의 자금을 마련하는 한편, 국내 민족운동 세력과의 유대적인 관계를 구축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그가 전개하였던 체육 사업들이 민족주의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This study intended to examine the ideas on sports and activities of Lee Sang-jae. Based on the holistic theory of mankind and holistic education idea of YMCA, Lee Sang-jae criticized evil social practices of the time which despised sports(體) and recognized sports(體) at the same level as virtue(德) and wisdom(智). In addition, Lee Sang-jae regarded sports as a necessary foundation for raising virtue and wisdom, and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sports along with virtue and wisdom as one pillar of education. Lee Sang-jae tried to resist the threat of western powers and prepare the basis for securing sovereignty by cultivating mental and physical abilities of the youths through YMCA sports programs. Especially, in that Lee Sang-jae tried to raise fund for overseas nationalism activists and establish friendly relationship with nationalism activists at home through sports events like baseball games with overseas Koreans, the sports programs he promoted are deemed to have nationalistic characteristics.

      • KCI등재

        冶隱 吉再와 그 後孫들의 錦山, 善山 地域과의 關係에 對한 檢討

        南在澈(Nam, Jae-cheol) 대동한문학회 2018 大東漢文學 Vol.56 No.1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본고는 조선조 역대 제현의 冶隱 吉再에 대한 顯揚 사업 및 讚詠詩 창작이, 경상도 善山 뿐만 아니라 전라도 錦山, 즉 현재의 충청남도 錦山 지역에 서도 이루어져 왔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현재의 충남 錦山 지역에서 이루어진 조선조에서의 冶隱에 대한 현양 사업 및 찬영시 창작에 대한 연구를 심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冶隱과 그 후손들의 錦山 및 善山 지 역과의 관계 양상에 대한 이해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이에 본고는 冶隱과 그 후손들의 錦山 및 善山 지역과의 관계 양상에 대한 연구를 우선적인 목적으로 삼았다. 이를 위해 현재의 충남 錦山 지역과의 인연을 중심으로 하는 冶隱의 삶의 과정을 먼저 들여다보았다. 이어 冶 隱 후손들이 현재의 충남 錦山 지역에 자리를 잡고 세거하게 된 내력을 살펴보고, 冶隱 후손들의 錦山 지역과 善山 지역 간 이주 양상과 冶隱 종손 가의 錦山에서 善山으로의 이주 이유 등에 대해서도 검토해보았다. 본고의 이러한 연구를 통해 현재의 충남 錦山 지역에서 조선조에 이루어진 冶隱에 대한 현양 및 찬영시 창작의 양상에 대한 검토의 초석이 탄탄하게 놓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경상도 善山 지역과 관련한 조선조 역대 제현의 冶隱에 대한 현양 사업 및 찬영시 창작의 양상 또한 한층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 I pay attention that undertaking for adoration and creation of some panegyrical poems about Yaeun Gil-Jae by men of distinction of many generations living in Joseon Dynasty era has been done not only in Seonsan of Gyeongsang-do but also in Geumsan of Jeolla-do, called as Geumsan of Chungcheongnam-do in present. To process the research about the topic I pay attention in depth, it is necessary to investigate the aspect about the relation between Yaeun Gil-Jae and His Scion and Geumsan and Seonsan Area at first. Therefore I make it the first objective to research the aspect about the relation between Yaeun Gil-Jae and His Scion and Geumsan and Seonsan Area. I investigate the process of the his life focusing on the relation between him and Geumsan of Jeolla-do at first. And then I overlook that the pedigree in which his scion has settled down and resided in a place for generations in Geumsan. And then I research the aspect of movement of some of his scion from Geumsan to Seonsan and from Seonsan to Geumsan. Finally I investigate the reason why the senior branch of the Yaeun Gil-Jae family moved from Geumsan to Seonsan.

      • KCI등재후보

        박재삼의 시에 나타난 가난 인식 고찰

        맹문재(Maeng, Mun-jae) 한국비평문학회 2013 批評文學 Vol.- No.48

        이 논문은 박재삼의 시에 나타난 가난 인식을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 형과 두 누이동생, 아내와 아이들 등의 가족을 통해 살펴본 것이다. 가족을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로 전제하고 그의 가난 문제를 고찰한 것이다. 지금까지 박재삼의 시 세계에 대한 지배적인 평가는 한(恨)의 정서를 바탕으로 전통적인 서정시를 계승시켰다는 것이다. 시인이 자연과 인간 세계의 면들을 아름답고도 섬세한 시어와 운율로써 그려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시 세계에 대한 연구는 주로 작품의 운율, 이미지, 문체, 상징, 사랑, 죽음 등에 대해서였다. 그렇지만 박재삼의 시 세계를 전통 서정시의 영역으로 국한시킨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의 시작품 전체가 아니라 부분적인 면만을 고찰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 세계에서 사회의식이 없다거나 심지어 반사회적이라고 평가한 것은 재고되어야 한다. 이 논문에서는 기존의 연구들을 극복하기 위해 박재삼의 전체 작품을 대상으로 삼고, 그의 시 세계에 나타난 가난의 문제를 현실 인식 차원에서 조명했다. 박재삼의 가난 인식은 격동적인 한국의 현대사가 요구한 기준에 비추어보면 다소 약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 나름대로 사회 인식을 갖는 것으로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Park Jae-Sam is a well known poet, but he has lived in poverty through his lifetime. This is deeply due to the situation of his hometown, Samchoenpo, where he spent his childhood. Furthermore he has suffered from severe pains and diseases because of his high blood pressure, which made him become to have a desperate and alienated character. Being written from these painful experiences, his poems are full of sorrow and sadness towards life. Nevertheless, he tries to overcome all of these pains and sadness through his will to write poems. Park Jae-Sam is valued as a poet who succeed lyricism of Korean tradition poems. But this paper aims at the studying on social consciousness of Park, Jae―Sam's poems. In order to this purpose, this article is concentrated on analysis of poverty consciousness resulted from the poor state of family members, including his mother and father, an older brother and two sisters, and his wife and sons as well as daughters. This article considers his whole poetic books and his whole essay books from the First Poetic Book, 「Choonhyangee's mind」 (1962) to 15th Poetic Book 「Again to yearning」(1996) including the First Essay Book, 「Beautiful tales by sadness」(1977) to the 7th Essay Book, 「A beautiful present other name」(1994). After this last book, he passed away in 1997. In 1950s, when he started his career as a poet, this nation was desolated and disordered and poor because of the Korean War. A great number of contemporary poets wrote both lyric and modernistic poems. After the 4·19 Revolution(1960) and the 5·16 Military Coup(1961) cast the nation into confusion, a lot of poets also wrote both kind of poems. But after the 1970s and 1980s, many contemporary poets wrote poems on people and labour with the hope of achieving the political democratization and economic development. Nevertheless, this poet, Park Jae-Sam, consistently had been written lyric poems. His concern for the social circumstances is expressed with his poverty consciousness.

      • 眞一齋의 思想과 學問

        李鑛宰 순천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1992 社會科學硏究 Vol.4 No.-

        Jin Il-Jae Yoo Soong-Jo(1452-1512) was The first Neoconfuciant Who tried to Apply the "song-li-hak", Which is the Chinese dualistic Philosophy, to the Political Principles of the Yi dynasty in the 16th century. But there has not been much studies about how he lived and what Kind of ideas he hand as a Neo-Confucinist and bureaucrat serving the Seven Kings From king Moon-Jong to king Joong-Jong especially during the politically changeable period of the yi dynasty. Accordingly the presnt Inesis is an attempt to see into Jin Il Jae's life and aims basically of elucidating his phiosophy in lerms of his Neo-confucianism. What the writer has found out in this paper can he summarized as follows. Ⅰ. Jin Il-Jae lived aclean life as a bureaucrat and belived that politics should be based on confucianism. But he did not look upon the "Sung-li-hak" merely as a Political method but a target of his study. Ⅱ. Jin Il-Jae belived that the univers was based on Ki(energy) not "yi(principle)". Ⅲ. Jin Il-Jae asserted that a Politician should be able to mange his household well before governing a country this was his applied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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