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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冊板의 현황과 특징

        권기석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7 규장각 Vol.50 No.-

        This study tried to investigate the wooden printing blocks of the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KIKS), and to analyze the catalogs of the wooden blocks in 18~19th centuries and the books printed by the KIKS blocks. According to the publishing office, there were different characteristics in the appearance of the blocks, and based on this, it was possible to estimate the publication information of the blocks without colophon. In addition, I compared the catalogs of the wooden blocks with the current status of the KIKS blocks, and obtained more information about publishing place and storage place of the blocks. I then examined how much books printed using the KIKS blocks were included in the archives of KIKS, what ownership seals(印記) were stamped on them, and what records of royal bestowal(內賜記) were written. As a result, it was found that the blocks made in the central offices mainly satisfied the demands of the central government and the royal family. The blocks of the local government were used relatively more to print books for private holders, but the central government also actively used them. Based on the above findings, the blocks of Kyujanggak can be divided into two groups according to the time and purpose of making. The first group consisted of Confucian scriptures, history books, and learning materials published during the 19th century, while the second group consisted of the books written by the King himself during the reign of King Yeongjo in the 18th century. Although the publishing place and time of these blocks are very diverse, we can confirm that blocks were made, used for printing, and distributed to people in close connection with the central and the local areas. 본고는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책판의 현황과 특징을 더욱 상세히 파악하기 위해, 규장각 서고에 있는 책판 실물에 대한 조사와 아울러, 18~19세기 책판 목록들과 규장각 소장 책판을 활용한 인출본에 대한 분석 등을 병행하였다. 책판의 실물 조사 결과 간행기관(內閣, 春坊, 芸閣, 嶺營, 寧邊府 등) 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책판의 외형상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일부 刊記의 미확인으로 부족했던 간행 정보에 대한 보완이 가능했다. 책판 목록과의 대조를 통해 규장각 소장 책판의 간행처들이 동일 서적의 책판들을 장기간에 걸쳐 보관해 왔음을 알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전국적인 범위의 책판 관리 체계를 부분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인출본에 대한 분석은 규장각 소장 도서에 국한하였는데, 인출본에서 확인되는 印記와 內賜記에 대한 분석을 병행하였다. 그 결과 중앙 관서에서 간행한 책판의 인출본은 주로 중앙정부에서 수집되어 활용된 도서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지방 책판의 인출본은 개인 소장본이 많았지만, 중앙 관서의 수요를 위해서 활용되는 비중이 컸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규장각 소장 책판은 여러 기준으로 분류하고 그에 따른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는 19세기 순조~고종대와 18세기 영조대로 구분되는데, 전자는 대체로 경전, 성리서, 역사서, 학습서 등 중앙정부와 왕실의 講學을 위한 책들이고, 후자는 국왕의 정치적 의지나 교훈을 담은 御製書라는 점에서 내용상으로 구별된다. 규장각 소장 책판의 간행처와 시기는 매우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지만, 중앙과 外方 사이의 통합적인 체계 속에서 책판의 간행과 인출, 보급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고 그 구체적인 양상에 대해서는 계속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 KCI등재

        규장각 소장 집부(集部) 도서에 대한 조사와 그 결과 -1 - 『규장각도서한국본종합목록』(1994)의 재정비를 중심으로 -

        오세현,김수진,김하라,이경근,유정열,김대중,최천식,박민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5 규장각 Vol.47 No.-

        It’s been a long time since scholars and researchers said there was something wrong or improper in the contents of Catalogue of Korean Books and Manuscripts in The Kyujang-gak Collection(1994). So it was necessary of modifying the contents of the book. For the purpose of doing this, a survey began at 2013, Survey of Valuable Books in the Kyujanggak Collection. Basically, this paper is grounded on the results of this survey. To modify the contents, first, the errors in the name of the authors and books should be amended. and the names of the author unknown found. Second, the year of transcription or publication should be properly estimated. Last, the standard of classification of books should be readjusted. Through this work, the errors of this book were found, corrected, and updated. so it is expected that more reliable database would be built, and it could be helpful to anyone who wants to have correct information of the Kyujanggak Collection.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1994년에 발간한 『규장각도서한국본종합목록』이 소장 자료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학계의 지적을 받아온 지 오래되었다. 2013년부터 시작된 규장각 소장 귀중본도서 조사사업의 목표 중 하나가 바로 목록의 재정비였던 이유이기도 하다. 목록집의 재정비 외에도 귀중본사업은 1980년대 이후 중단된 귀중본 도서의 선정과 관리, 결본목록에 의거한 규장각 자료의 체계적 확충, ‘선본(善本) 문집 총서’(가칭)의 발간, ‘규장각 장서인(藏書印) 자료집’(가칭)의 발간을 주된 사업 목표로 한다. 본 논문이 지향하는 목록의 재정비에 대한 큰 얼개는 첫째 서명(書名)과 저자(著者)의 오류를 수정하거나 미상을 밝히는 것, 둘째 간사년(刊寫年) 추정, 셋째 분류체계의 재조정이다. 서명과 저자명은 단순 오류를 비롯해 주변 문헌들과의 연계를 통해 저자명 미상을 밝힐 수 있는 사례들인데, 특히 원전 자료에 대한 전수조사와 귀중본으로 분류된 도서에 대한 심층조사, 그리고 귀중본 해제 원고라는 여러 결과물을 토대로 가능했다. 간사년을 추정하는 작업은 서발문 정보에 대한 누락을 바로잡고, 이를 토대로 문집의 간사년을 추정하는 것으로서 문집의 성격을 밝혀줄 수 있는 매우 유의미할 뿐만 아니라 동일본과 이본의 구분에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분류체계의 재조정은 특히 학문적․정치적으로 중요한 인물의 경우 문집이 언제 간행된 것이냐에 따라 수록 내용이 다르고, 문집의 성격도 상당히 다르다는 점에서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동일본과 이본의 구분, 나아가 중국본(中國本)의 재편집과 누락 문헌 등록을 통해 더욱 정확한 규장각의 소장 자료에 대한 정보를 구축하는 일이 가능하다.

      • KCI등재

        대한제국 말기 學部의 규장각 도서 관리

        민회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22 규장각 Vol.61 No.-

        The Hidden task of the Ministry of Education(學部; Hakbu) of the Korean Empire was the transfer and management of the Kyujanggak(奎章閣) books, found in the Catalogue of Kyujanggak Books(奎章閣書目; Kyujanggak Seomok). The Kyujanggak books seems to have been moved to Hakbu in around 1909, meaning a part of the process of dismantling the Imperial House by Japanese. Observing the move of the books, two kinds of ownership stamps of Hakbu are found in Kyujanggak books now, with the tendency to intentionally avoid the seal in the case where the stamps of the traditional royal family or government office of Chosun was sealed. This implies that there still remained some respect for Royal House. The Catalogue of the Books from the Editorial Department in the Ministry of Education(學部編輯局書冊目錄; Hakbu-Pyeonjipguk-Seochaek-Mokrok) was made after the transfer of the books. It made separate sort item for Royal books, also showing respect for Royal House. And its classification items take the form of awkwardly yet exquisitely tying the traditional academic classification system and the modern one through the medium of the history department. 대한제국 學部의 기원은 전통시대의 禮曹를 계승한 갑오개혁기의 學務衙門으로, 1895년 <學部官制>의 공포와 함께 학부로 개편되었다. 주요 부서는 編輯局과 學務局이었고, 주 업무는 각급 학교의 설치․관리, 교과서 발행 및 외국 유학생 지원 등이었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은 관할 업무가 바로 규장각 도서의 이관·관리로, 이 내용은 『奎章閣書目』(奎11670)에 기재되어 있다. 그 이관 도서가 정리된 『學部編輯局書冊目錄』(奎11554)은 1909년 이전의 멀지 않은 시점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도서 이관 역시 이 시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그 배경을 살펴보면, 1908년 <학부관제>가 개정되면서 학부의 업무는 ‘학술’과 관련하여 ‘도서 일반’ 관련 사무로 확장되었는데, 규장각 도서의 이관 역시 표면적으로 이러한 도서 관할권 행사를 명분으로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당시 전 정부 부처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관제 개정의 결과 통감부의 황실 재산 처분이 가능해짐으로써 사실상 대한제국 황실의 해체 과정이 시작되었으며, 규장각 도서의 재배치 역시 그 과정의 일환이라는 사실이 존재한다. 이는 당시 <丁未條約>(1907)을 계기로 시작된 ‘次官政治’로 인해 학부 역시 일본인 차관이 실권을 행사하는 상황을 배경으로 가능하였다. 다만 비슷한 시기 여러 규장각 도서들을 ‘帝室圖書’로 통합하는 과정이 진행 중이었는데, 별도의 장서인을 날인한 점으로 볼 때 학부로의 도서 이관은 이와는 별개의 작업으로 보인다. 규장각서목 에서 학부로의 도서 이관 현황을 살펴보면, 여러 복본 중 1부를 보내는 형식이 많았고, 조선본 수장고인 西庫에서의 이동이 비율상 압도적이었다. 이는 도서 이관이 장기적으로 일본 통감부의 조선 지배를 위한 활용의 용도를 염두에 두고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장서인은 ‘學部圖書’와 ‘編輯局保管’의 2종을 날인했는데, 이관 기록이 있는 도서 중 현재 이들의 날인이 확인되는 경우는 일부에 불과하며 날인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날인한 경우도 다른 장서인 없이 이들 둘만 찍힌 경우가 다수고, 특히 조선의 전통적인 왕실·관서 장서인이 날인된 경우 의도적으로 날인을 피하는 경향이 다소 존재했던 것 같다. 이는 학부 도서 이관이 대한제국 황실의 해체와 맥을 같이하는 점과는 달리 아직 왕실에 대한 일정 수준의 존중이 반영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학부 장서인은 ‘帝室圖書之章’과 같이 날인된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서 제실도서의 구성과 학부 이관은 별개였음이 다시 한번 확인된다. 이러한 작업 결과 작성된 학부편집국서책목록 은 그 분류 체계에서 전통 서목에 있던 왕실 관련 도서용 별도 항목의 설정을 계승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장서인 날인 시 기존 왕실 장서인 회피 경향까지 감안한다면, 애당초 학부로의 도서 이관 의도와는 달리 장서인 날인이나 서목 작성 등 실무 영역에서는 아직 왕실 존중의 관성이 남아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비슷한 시기 비슷한 의도로 작성된 『帝室圖書目錄』이 최초로 왕실 관련 항목을 삭제함으로써 이후 서목 내 왕실 도서군 해체 과정의 시발점이 된 점과는 대조적이다. 한편 이 서목의 분류 항목은 ‘歷史部’를 매개로 전통적인 학문 분류 체계와 근대적인 그것이 어색하면서도 절묘하게 묶여있는 형태인데, 이는 원 규장각에서 이관받은 전통 도서와 ...

      • KCI등재

        규장각 소장 經部 자료 목록․해제 정리사업의 경과(1) - 2018년도 사업결과를 중심으로

        구슬아,우나영,김은슬,서진원,조성열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9 규장각 Vol.54 No.-

        This paper is the result of analyzing the main characteristics of the Confucian classics in the Kyujanggak. ‘The project on the rearrangement of catalogue and description books in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conducted a comprehensive survey of the Confucian classics in the Kyujanggak. As a result, information errors such as titles(書名), authors’ names(著者), printing information(版事項), publish information(發行事項), and classification criteria(四部分類) were significantly revised. We also uncovered new information. Based on the above survey, we conducted an intensive investigation to discover the value of Kyujanggak books. As a result, the following two main achievements were derived. First, we fou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Kyujanggak Book, which contained information that led to publishing in the country. Therefore, the annotation information such as the sentence and the proverb, which are described in the book, are described in detail and the relevant contents are listed. Second, we deepen the information of Chinese book. In addition, specific research policies were established and important information related to the original order of the books was listed. In order to prepare for the description project, which is the second stage of the project, important documents were listed. Through such investigation and cataloging, it is expected that it will be possible to provide accurate information about users and to efficiently manage and utilize the collection data of Kyujanggak books. ‘규장각 소장 자료 목록․해제 정리사업’은 규장각 소장 經部 자료의 전수조사와 개별 상세서지조사카드 작성을 통해 『규장각도서한국본종합목록』(수정판, 1994) 및 『규장각도서중국본종합목록』(1982)의 정보 오류, 중복․合帙․누락 사항 등을 전면 수정하고 가칭 『규장각 소장 經部 자료 종합목록』을 발간하는 데 1차 목표를 둔다. 동시에 수정을 긴급히 요하는 기해제도서에 대한 수정과 우선해제대상서에 대한 해제 작성을 통해 규장각 소장 경부 자료의 가치를 제고하고 이용과 관리 양측면에 정확성․전문성을 기하는 데 2차 목표를 둔다. 이 논문에서는 목록 오류 수정의 기준 등 주요 사업 방법을 소개하고 2018년도 사업대상인 詩類․春秋類․禮類․樂類․孝經類․四書類 도서 약 1,200여 건에 대한 상세서지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오류 수정의 주요 성과를 제시하였다. 조사 결과 서명․편저자․판사항․발행사항․동판본 및 사부분류 등 주요 항목에서 未詳의 정보를 새롭게 밝혀내거나 정보 오류를 수정하였다. 나아가 규장각 소장 경부 자료의 가치를 발굴하기 위한 심화조사를 새롭게 수행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주요 성과를 도출하였다. 첫째, 규장각 자료에 국가나 官署 주도의 경서 향유 양상을 드러내는 정보가 많다는 점을 부각하였다. 자료에 기재된 口訣, 諺解 등의 항목을 ‘비고’란에 기술하고 관련 내용을 목록화 하는 한편, 經筵에서 교재로 활용되었음을 증명하는 標識는 심화 조사하여 내용 서지를 대폭 보완하였다. 둘째, 형태서지 및 내용서지에 대한 기술이 미비한 중국본 경부 자료의 특징을 드러낼 수 있는 기술규칙을 수립하고 추후 목록집에 중복 수록을 방지할 수 있는 조사방법을 구체화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古刊本, 희귀본 擧業書 등이 규장각에 다수 소장되어 있음을 새롭게 밝히고, 한국본 경부 자료의 底本이 된 중국본 경부 자료의 구체적 활용 양상을 실증하였다. 이와 같은 심화조사 및 목록화를 통해 이용자들을 위한 정확한 서지 정보 제공, 규장각 소장 자료의 효율적 보존 관리 및 활용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 日帝强占期 京城帝國大學의 奎章閣 관리와 所藏 資料 활용

        김태웅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08 규장각 Vol.33 No.-

        Imperial Japan tried to carry out the cultural policy strongly in the colonial Joseon to control the national movement of Korean and assimilate the Koreans to the Japanese. Namely, it attempted to take the national consciousness of Koreans into the colonial system after 1919, while to press or exclude the Joseon culture before this time. The department of law-literature in Keijo Imperial University(京城帝国大学) founded in 1926 showed this purpose of Imperial Japan. Therefore, the direction of Joseon study placed emphasis on the explaining of the mixed and dependent color of Joseon culture rather than of it’s original and independent one. Imperial Japan transferred the Kyujanggak archives of education and management office(학무과) to the Keijo Imperial University library from 1928 to 1930 in order to arrange and applicate them. Also it printed some Kyujanggak archives(for example, Joseon Dynasty Sillok) to promote the research activity of Japanese official scholars and displayed them to reduce the complaints of many Koreans about the difficulty of perusal. But these efforts of Imperial Japan didn't place emphasis on the clarifying the universality and individuality of Joseon culture but on the embossing it's dependency to justify their colonial rule. Therefore, Korean scholars had to correct the management system of Kyujanggak archives in order to build the national culture after 1945. 일제는 1910년 8월 대한제국을 강점한 뒤 漸進的 同化主義를 내세워 이른바 舊慣制度調査事業을 본격화하였다. 그리고 이를 문헌상에서 뒷받침하기 위해 규장각 도서정리작업에 착수하였다. 이후 추진 기관의 잦은 변경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작업은 지속적으로 추진되었으며 1910년대 후반에 이르면 미흡하나마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일제가 수립한 식민지배정책의 궁극적인 목표가 內鮮融和와 內鮮一體를 구실로 한민족의 말살에 있었으므로 이러한 조사사업의 일종이라 할 규장각 도서정리작업은 일제의 식민지 문화정책과 연계하여 새로운 단계로 진입해야 했다. 특히 3‧1 운동이 일어나고 이어서 조선인들의 민족운동이 활발해짐으로써 일제는 문화의식 방면에서 적극적인 학술문화정책을 강구해야 했다. 즉 종전까지는 조선 문화를 탄압하거나 배제하는 전략을 고수했다면 이제는 조선문화를 일제의 통치 의도에 맞추어 정리하는 방침으로 전환해야 했다.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의 설치는 일제의 이러한 방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조치였다. 이 중 법문학부의 조선연구 방향은 조선 고유의 독자적인 문화를 해명하기보다는 동양 문화 연구를 전제로 하여 中國‧滿蒙 및 日本에 부수되는 조선 문화의 地政學的 關係를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이는 조선 문화를 단지 대륙 문화와 일본 문화에 부속된 문화로 치부함을 의미하였다. 따라서 1928년부터 1930년에 걸쳐 학무국 학무과 분실에서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으로 이관된 규장각 자료는 일제의 이러한 학술문화정책과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교수의 연구 방향에 부응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어디까지나 일본인 관학자들의 연구 방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졌을 뿐이다. 이 중 법문학부가 진력하였던 奎章閣叢書의 간행과 『朝鮮王朝實錄』의 영인은 주로 동양 문화 연구 또는 일본 문화 연구와 관련되어 시도되었다는 점에서 식민지 학술연구과정의 대표적인 산물이라 하겠다. 나아가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의 조선=동양 연구는 이러한 학술 문화 기반 위에서 관련 전공자의 연구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규장각 자료가 근대적 도서관의 형태를 갖춘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으로 이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인 연구자들에게는 열람의 기회가 오히려 제한되었을뿐더러 심지어 규장각 자료가 신간 도서에 밀려 이른바 소사실에 방치되기도 하였다. 이는 조선 문화를 대륙 문화와 일본 문화에 부속적인 존재로 파악하는 가운데 규장각 자료를 이등국민의 문화잔재로 치부했기 때문이다.

      • KCI등재

        규장각본 『篆韻』에 대한 고찰

        서한용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22 규장각 Vol.60 No.-

        In Kyujanggak, Zhuan Yun is stored as a material related to Zhuan Shu. The introductory remark mentioned that this is a book in which Yun Zi and the characters corresponding to each Yun are recorded as Zhuan Shu, and also revealed that the date of the editor and compilation is unknown. Although not disclosed in the introductory remark, the second part of the Kyujanggak collection of Zhuan Yun is written with the title 'Guang Jin Shi Yun Fu Chao' as a Zhuan Shu. It can be seen that most of the contents of this book are copied from Guang Jin Shi Yun Fu. This study focuses on the fact that Guang Jin Shi Yun Fu is the original version of the Kyujanggak collection of Zhuan Yun, and clarify the characteristics of the composition and content of the Kyujanggak collection of Zhuan Yun through comparative study with Guang Jin Shi Yun Fu. Looking at Guang Jin Shi Yun Fu, written by the Kyujanggak collection of Zhuan Yun, the index of Yun Zi is presented first. And then it can be seen that the Zhuan Zi is listed according to each Yun Zi. However, the Kyujanggak collection of Zhuan Yun does not distinguish the characters according to the Yun Zi, but writes the characters at the top. If you look at the Yun Mu of Guang Jin Shi Yun Fu, it can be seen that there are a total of 195 Yun, including 28 Yun of Shang Ping Sheng, 30 Yun of Xian Ping Sheng, 51 Yun of Shang Sheng, 52 Yun of Qu Sheng, and 34 Yun of Ru Sheng. However, if you look at the Yun Zi written at the top of the Kyujanggak collection of Zhuan Yun, it can be seen that there are 105 characters written in it. The National Library of Korea holds another Zhuan Yun that is different with the Kyujanggak collection of Zhuan Yun. According to this, it can be seen that the National Library collection of Zhuan Yun is a book composed of 106 Yun, which are Ping Shui Yun. Comparing the letters written at the top of the Kyujanggak collection of Zhuan Yun with those of the National Library collection of Zhuan Yun, it can be seen that there is only a difference between ‘Yu’ and ‘Ji’ without the character 'Tai'. The Kyujanggak collection of Zhuan Yun did not transcribe the characters of Guang Jin Shi Yun Fu as it is, but instead transcribed them by writing or revising them. The total number of characters in the book was 2,732 characters, 229 out of 2,937 characters contained in Guang Jin Shi Yun Fu. It can be seen that 24 characters of Guang Jin Shi Yun Fu were added. It can be seen that the Kyujanggak collection of Zhuan Yun relied heavily on Shuo Wen. Also, considering the addition of Yi Shan Bei, a representative Bei Wen that records Xiao Zhuan, it can be seen that the Kyujanggak collection of Zhuan Yun placed great importance on Xiao Zhuan. 규장각에는 篆書 관련 자료로 篆韻 이 소장되어 있는데, 강문식은 해제를 통해 이 책이 韻字 및 각 韻에 해당하는 글자들을 篆書로 기록해 놓은 책으로‚ 편자와 편찬 연대는 미상이라고 밝히고 있다. 해제에서 밝히고 있지 않지만, 규장각본 篆韻 의 두 번째 부분은 ‘廣金石韻府抄’라는 제목을 篆書로 표기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용이 廣金石韻府 를 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일찍이 조선 중기의 유학자 眉叟 許穆이 金石韻府 를 抄하였는데, 金石韻府 를 증보하여 편찬한 책이 廣金石韻府 이다. 따라서 廣金石韻府 를 抄한 규장각본 篆韻 에 대한 연구는 중국의 대표적 고문자 자료인 金石韻府 와 廣金石韻府 가 조선시대 우리나라에서 수용되는 양상을 비교 고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본고에서는 규장각본 篆韻 의 韻字에 대해 살펴보고, 廣金石韻府 와의 비교 고찰을 통해 규장각본 篆韻 의 구성 및 내용의 특징에 대해 밝히고자 하였다. 규장각본 篆韻 이 抄한 廣金石韻府 를 살펴보면, 韻字의 目次가 먼저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이어서 각 韻字에 따라 篆字를 나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규장각본 篆韻 은 韻字에 따라 篆字를 구분하지 않고 상단에 韻字를 표기하고 있다. 廣金石韻府 의 韻目을 살펴보면 上平聲 28韻, 下平聲 30韻, 上聲 51韻, 去聲 52韻, 入聲 34韻으로 총 195韻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규장각본 篆韻 의 상단에 표기되어 있는 韻字를 살펴보면 105개의 韻字가 표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는 규장각본과 다른 篆韻 이 소장되어 있다. 나종면은 이 책을 쓴 사람이 前行副護軍 申汝櫂라 밝히고 각 韻의 韻字에 대해 소개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국립중앙도서관본 篆韻 이 平水韻인 106韻으로 이루어진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규장각본 篆韻 의 상단에 표기되어 있는 韻字를 국립중앙도서관본 篆韻 의 운자와 비교해보면 ‘遇’와 ‘霽’ 사이에 ‘泰’자가 없는 차이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규장각본 篆韻 의 실제 韻目이 廣金石韻府 와 같은 上平聲 28韻, 下平聲 30韻, 上聲 51韻, 去聲 52韻, 入聲 34韻으로 총 195韻이지만 그 상단에 표기되어 있는 韻字로 인해 106韻의 平水韻 체제와 같이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규장각본 篆韻 은 廣金石韻府 의 글자를 그대로 抄하지 않고, 생략하거나 증보하여 抄하였는데, 그 수록 글자가 총 2,732字로 廣金石韻府 에서 수록하고 있는 2,932字 중 229字를 생략하고 廣金石韻府 없는 24字를 증보하여 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규장각본 篆韻 은 說文 의 小篆 자형을 주로 抄하였으며, 그 注解 역시 說文 에 많이 의존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小篆을 기록하고 있는 대표적인 碑文인 繹山碑 를 새로 추가한 것으로도 볼 때 규장각본 篆韻 이 小篆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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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朝鮮前期 總集類 書籍과 서지학적 가치

        옥영정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5 규장각 Vol.46 No.-

        This study was conducted to aid the project on rare books in Kyujanggak and revolved around documents printed during the earlier period of Chosun Dynasty. Bibliographic value of the books was approached with two view point which are history of printing and books exchange according to purport of the project. Surveyed 27 kinds of Collective Anthologies printed by woodcut and type during the earlier period of Chosun and examined a few items that can add value on rare books in the bibliography. Although there are the different criteria for adding precious value on the research about numerous old documents in Kyujanggak, the worth of the books have survived until now despite of looting and loss due to the big war should be given the highest priority. In the study searched Collective Anthologies first because comprehensive organization by specific subject sector is not done. This approach will be helpful in continuous studying rare books on each topic selection. 이 연구는 규장각의 귀중본 조사사업에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된 것이다. 규장각의 귀중본도서 조사사업의 취지에 맞추어 서지학적 가치를 인쇄기술사, 서적교류사 라는 두 가지 관점으로 접근하였으며, 조선전기의 간본에 중점을 두고 진행하였다. 이를 위하여 규장각의 소장된 고문헌 중에서 조선전기에 목판이나 활자로 간행된 총집류 서적 27종을 대상으로 삼고 서지학적인 측면에서 귀중본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몇 가지 항목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규장각의 수많은 고문헌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서 귀중한 가치를 부여하는 여러 유형의 기준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큰 전쟁으로 인한 약탈, 소실에도 불구하고 책이 현재까지 살아남은 것에 대한 가치는 가장 우선적으로 부여해야할 것이다. 또한 특정 주제분야별로 종합적인 정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본고에서는 우선 총집류를 대상으로 살펴보았다. 이러한 방식은 각 주제 단위로 귀중본을 조사선정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기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고문헌의 이력을 확인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 KCI등재후보

        奎章閣再生本 <坤輿萬國全圖>(2010)의 原本은 옛 奉先寺藏本이다

        정기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1 규장각 Vol.38 No.-

        이는, 한 장의 寫眞에서 8幅의 屛風으로 再生된 奎章閣本 <坤輿萬國全圖>의 原本을 追跡하여 確認하기까지의 過程을 記錄한 글이다. 이 追跡過程을 통하여, 奎章閣再生本 <坤輿萬國全圖>의 原本이 奉先寺本이라는, “理性的 의심의 여지가 없는 證據”(evidence beyond reasonable doubt)가 얻어졌다고 본다.

      • KCI등재

        조선 후기 閣臣敎旨와 春坊敎旨의 시행과 제도

        노인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21 규장각 Vol.58 No.-

        Gakshin gyoji and Chunbang gyoji are the documents of appointment of Gyujanggak and Crown Prince Educational Institution that were implemented during the period of King Jeongjo and King Gojong during the Joseon Dynasty. In the process of expanding the authority and function of Gyujanggak, King Jeongjo implemented the Gaksin Gyoji in consideration of Song (宋)’s institution. After that, King Gojong implemented the Chunbang Gyoji in consideration of each Gakushin Gyoji implemented by King Jeongjo in order to strengthen the authority and function of the Crown Prince Educational Institution. The implementation period of Gakushin Gyoji and Chunbang Gyoji were short and there's limited number of officers who received them. Also, they were issued when the Gyujanggak and Crown Prince Educational Institution were first appointed, so there were very few existing documents. The document format reflected both the Goshin(告身), document of appointment, and Gyoseo(敎書), document of instruction. In the first line of the document, the word ‘Gyoji (敎旨)’ was written, and in the next line, it began with ‘王若曰’. The body includes the importance of Gyujanggak and Crown Prince Educational Institution officials and duties, the reason for their appointment, and the contents requested by the king by writing in Byunryomun (騈麗文). At the end of the text, the officials that appointed for Gyujanggak and Crown Prince Educational Institution ended with ‘以某階某職某爲某階某職者’. In the next line of the body, the date of issuance was written with the era name and the date of 淸. Gakshin Gyoji stamped on the Juncheol Jibo, and the Chunbanggyoji on the Junmyeong Jibo respectively. The issuance process was writing (製述), modification (正書), and stamping (安寶), and during that time, the king's approval was received twice. In the case of Chunbang Gyoji, the process in which the crown prince approves the draft Gyoji in advance was added. The receiving process was carried out during in the process of bowing to the king by officers appointed to Gyujanggak and Crown Prince Educational Institution. These Gakshin Gyoji and Chunbang Gyoji can be seen as a document system implemented by the king to strengthen the authority and function of Gyujanggak and Crown Prince Educational Institution, and to extend a favor to officials. 조선 후기 각신교지와 춘방교지는 정조와 고종 연간에 시행된 규장각과 세자시강원 관원의 임명문서이다. 정조는 규장각의 권한과 기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宋의 제도를 참고하여 각신교지를 시행하였다. 이후 고종은 세자시강원의 권한과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정조가 시행한 각신교지를 참고하여 춘방교지를 시행하였다. 각신교지와 춘방교지는 시행된 기간이 짧고 수취하는 관원도 제한적이며 규장각과 세자시강원에 처음 임명될 때에 발급되었기 때문에 현전하는 문서가 매우 적었다. 문서 양식은 국왕의 임명문서인 告身과 명령문서인 敎書를 함께 반영하였다. 문서의 1행에 ‘敎旨’를 기재하고 2행에 ‘王若曰’로 시작하였다. 본문은 규장각․세자시강원 관직과 업무의 중요성, 임명한 이유, 국왕이 당부하는 내용 등을 騈麗文으로 제술하여 수록하였다. 본문의 끝부분은 규장각과 세자시강원에 임명된 관직을 ‘以某階某職某爲某階某職者’로 끝맺고 있다. 본문의 다음 행에는 淸의 연호와 월일로 발급일자를 기재하였다. 각신교지는 濬哲之寶를, 춘방교지는 濬明之寶를 각각 安寶하였다. 각신교지와 춘방교지의 발급은 製述과 正書·安寶의 과정을 거치면서 국왕의 결재를 2차례 받았다. 춘방교지의 경우에는 제술된 敎旨草件을 왕세자가 먼저 결재하는 과정이 추가되었다. 각신교지와 춘방교지의 수취는 규장각과 세자시강원에 임명된 관원이 국왕에게 謝恩肅拜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각신교지와 춘방교지는 국왕이 규장각과 세자시강원의 권한과 기능을 강화하고 관원을 우대하기 위해 시행된 문서 제도로 볼 수 있다.

      • KCI등재

        『詩經諺解』(「권 11」~「권 20」)(1613)의 국어 한자음 반영 양상과 성격에 대하여

        이준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22 규장각 Vol.61 No.-

        In this article, I tried to examine the reflection patterns of Sino-Korean in the first edition, Sigyeongeonhae(Volume 11~20) (1613), housed in Kyujanggak,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to examine the characteristics of individual Sino-Korean belonging to each pattern. As a result, I could see that there were many new Sino-Korean that were not seen in the Sino-Korean of the Middle-Korean period, and that there were many differences from the Sino-Korean seen in the Middle-Korean period. Among these Sino-Korean, there were far more cases in number that matched the usual response pattern between used Middle-Chinese and Middle Sino-Korean. However, there are many things that are difficult to explain. Therefore, it can be seen that the variety of Sino-Korean appears. In this article, the discussion was developed by paying attention to only Sino-Korean that were not seen in the previous data. The fact that most of the Sino-Korean in Volume 11~20 are suitable for the usual correspondence between Middle-Chinese and Middle Sino-Korean are considered to be the result of faithfully maintaining the early form of reading, given the position of the scriptures. The results of this review show that it is generally based on Middle-Chinese. However, some of the things that are difficult to find a negative basis with Gwangyun(廣韻) and Jiyun(集韻) are also observed, and many of them can be understood as information contained in other records. And among them, quite a few of them seem to reflect the Modern Chinese hierarchy. Among the Sino-Korean that appeared in this way, when considering the meaning of the phrase of Sigyeong in which the Chinese character was written in both single and plural Sino-Korean, most of them were presented that matched the meaning of the original connection relationship. However, some things did not match this. In the case of single Sino-Korean, the sound inferred from sound indicator or molder is presented. In the case of plural Sino-Korean, the sounds are the same as each other or simplified by the similarity of the meaning corresponding to each sound. In addition, Sino-Korean appears formed by analogy to sound indicator or molder. 이 글에서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원간본 『시경언해』(「권 11」~「권 20」) (1613)에 실린 국어 한자음의 반영 양상을 유형별로 나누어 살펴보고 각 유형에 속하는 개별 한자음의 성격을 살펴보았다. 『시경언해』에 실린 한자음 속에는 중세 국어 한자음에서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한자음이 많고, 중세 국어 한자음과는 차이를 보이는 것이 많다. 수적으로 중고 한음과 중세 국어 한자음과의 통상적 대응 양상에 맞는 음인 경우가 월등하였으나 이로써 설명하기 어려운 것도 적지 않다. 이처럼 대개의 음이 중고 한어와 중세 국어 사이의 통상적 대응 관계에 부합하는 것은 경전으로서 지닌 『시경』의 위치를 감안할 때 일찍이 형성된 독법을 충실히 유지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광운』과 『집운』으로는 근거를 찾기가 어려운 음도 꽤 보이는데 이들도 다른 전적에 실린 음운 정보로 이해되는 것이 대다수이며, 이에는 근대 한음적 층위를 보이는 것이 꽤 있다. 한자음들은 단일음자와 복수음자 모두에서 해당 한자가 쓰인 『시경』 구절의 의미를 생각할 때, 본래의 음과 의미 사이의 대응 관계에 부합하는 것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이에 걸맞지 않은 것도 꽤 보였는데, 이들은 단일음자의 경우는 성부 또는 형성자에 유추된 음이 제시된 양상이 보이며, 복수음자의 경우는 성부 또는 형성자에 유추된 음이 보이는 것과 더불어 각 음에 대응하는 의미가 지닌 유사성에 의해서 음이 서로 통하여 쓰이게 되었거나 단순화된 것을 반영한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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