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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명학에서 윤리주체의 건립과 그 실현의 문제

        한정길(韓正吉) 한국양명학회 2001 陽明學 Vol.- No.5

        송명유학은 우주원리와 상통하는 인간의 본성실현을 통하여 인륜세계를 건립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특정적이다. 그럼에도 그 내부에는 본성실현의 방법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들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주자와 양명의 견해이다. 주자는 본성실현을 위해서 사물의 이치에 대한 탐구가 필수적이라고 본 반면에 양명은 마음에서의 공부만으로도 가능하다고 본다. 양명은 용장에서 심체가 우주와 인생의 대본임을 체득한다. 그 마음은 하나의 도덕적 자각능력으로서의 양지이다. 양지는 도덕정감과 도덕의식의 통일체이며, 천리와 명각의 통일체이다. 그것은 사물에 감통하여 그에 적합한 행위양식을 창출해낸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자사와 물욕을 지니고 있으며, 양지는 이들 사욕에 의하여 가리워질 수 있다. 따라서 내 마음의 양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욕을 제거하고 천리를 보존해야 한다. 양명은 치양지를 인욕을 제거하고 천리를 보존하는 방법으로 제출한다. 양명은 격물ㆍ치지ㆍ성의ㆍ정심을 모두 치양지 공부로 통일시키며, 의념이 연관되어 있는 구체적인 사물에서 내 마음의 양지를 실현할 것을 주장한다. 이것은 곧 자기의 본성실현과 구체사물의 특수성에 맞는 행위양식이 실현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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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王守仁의 中和說 연구

        한정길(韓正吉) 한국양명학회 2007 陽明學 Vol.0 No.18

        이 글은 陽明 王守仁이 중화문제를 처리하는데 나타난 그 특성과 사상사적 의의를 밝힌 것이다. 양명은 감정의 未發과 已發을 마음 작용의 前後ㆍ內外의 서로 다른 상태나 단계로 이해하는 기존의 견해를 부정하고, 끊임없이 유행하는 마음의 본체와 그 작용을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것은 미발과 이발을 마음의 본체인 未發之中과 그 작용인 中節之和, 즉 ‘中和’로 이해한 것이다. 그런데 양명에게서 마음의 본체는 바로 良知이다. 따라서 ‘중화’문제는 곧 양지의 본체와 작용의 문제로 환원된다. 이 中和가 마음의 全體大用이 되는 것이 바로 大本과 達道이다. 양명은 미발이발과 중화를 양지의 체용으로 바꾸어 논의함으로써, 주자학에서와 같은 靜養動察의 공부가 필요 없이 오직 마음이 유행하는데 나아가 사욕을 제거하고 그 본체를 실현하는 ‘心上工夫’만으로도 致中和가 가능한 이론체계를 갖추게 된다. 양명은 계신공구와 신독을 모두 사욕을 제거하고 본체를 실현하는 공부로 통일시키고, 그것을 다시 致中和와 致良知의 공부로 요약한다. 中和를 하나로 파악하는 양명은 戒愼恐懼를 致中공부로, 愼獨을 致和공부로 이해하는 주자학적 관점을 비판하고, 그것들을 모두 致良知의 공부로 통일시킨다. 치양지는 양지본체가 유행하는 과정에서 자사와 물욕 등에 의해 가려진 것을 제거하여 본래의 밝은 상태를 회복하는 공부이다. 뿐만 아니라 그 것은 天性을 실현하는 공부이기도 하다. 본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항상 자신을 밝게 드러내고 있는 양지에 따라 행위하기만 하면 된다. 이것은 본 성실현의 문제가 완전히 致良知의 문제로 전환된 것이다. 양명은 치중화를 통해서 도달하게 되는 지점인 천지가 제자리를 잡고 만물이 생육되는 경지에 대한 풀이에서도 심학적 특징을 드러낸다. 그는 ‘天地位’와 ‘萬物育’을 하나의 일로 파악하고 그것들을 모두 내 마음 가운데의 일로 간주한다. 여기에는 마음의 본체인 양지의 감응으로 말미암아 천지만물이 일체가 된다고 보는 그의 철학적 관점이 내재되어 있다. 중화 의 실현은 곧 본성실현이다. 양명은 본성실현을 통하여 열리는 성인의 경계를 자기완성과 타자완성이 이루어지는 경계로 이해한다.

      • KCI등재

        王陽明의 ‘未發’觀과 良知體用論

        한정길(韓正吉) 한국양명학회 2009 陽明學 Vol.0 No.23

        이 글에서는 송명리학의 주요 논제인 ‘未發’ 문제에 대한 王陽明의 견해를 살펴보았다. 구체적으로 왕양명이 ‘주자의 미발설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주자가 미발 탐구를 통하여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왕양명의 미발관의 특징은 무엇인지’, ‘미발 문제에 대한 왕양명의 해결 방식이 지닌 의의는 무엇인지’ 등의 문제들을 다루었다. 주자의 미발설에 대한 왕양명의 비판은 크게 두 가지 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思慮未萌?知覺不昧’의 미발상태를 ‘자기 중심성이 탈락한 순일한 의식의 상태’인 ‘未發之中’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미발상태는 자기중심적으로 흐를 수 있는 氣가 아직 작용하지 않은 상태에 불과할 뿐, 사욕이 없는 순수한 도덕본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발시의 존양공부를 통해서는 已發之和를 확보하기 어렵다. 또 하나는 ‘미발시에 지각자는 있지만 지각되는 것은 없다’고 봄으로써 미발시의 본체체인이나 성찰공부를 근본적으로 막아버렸다는 점이다. 미발시에 도덕본체에 대한 체인이나 성찰공부가 없다면 도덕실천 역량이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주자의 미발설은 도덕본체[본성]를 실현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가 되기에는 문제가 있다. 주자학의 미발규정과 미발시의 존양공부에 대한 양명의 비판이 가능한 것은 그가 미발을 주자학에서와는 전혀 달리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명은 ‘미발’과 ‘이발’을 주자학에서와 같이 마음의 어떤 상태나 국면을 지시하는 개념으로 사용하지 않고, ‘마음의 본체[心體]’와 ‘마음의 작용[心用]’을 지시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양명은 끊임없이 활동하면서 만물을 창생하고 주재하는 本性[理]을 ‘마음의 본체[心體]’로 삼고, 그것을 ‘未發之中’으로 규정한다. 心體는 私欲이 없는 순수한 천리[心卽理]이기 때문에 어디에도 치우치거나 의지함이 없는 ‘未發之中’ 일 수 있다. 그 心體[未發之中]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부여받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일반인들은 私欲이 심체를 가리고 있기 때문에 미발지중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다. 따라서 사욕을 제거하는 공부가 요구된다. 이 공부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心體가 스스로 자신을 체인하고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양명은 心體가 이러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그 능력이 바로 良知이다. 양명은 天性이 스스로를 환하게 드러내는 밝은 능력[明覺]을 ‘良知’로 규정한다. 양지는 바로 ‘天性과 明覺’의 통일체이다. 이것은 심체 자체가 스스로를 환하게 드러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본 것으로서, 良知를 心體로 규정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良知가 未發之中으로 규정되기에 이른다. 마음의 본체인 양지가 미발지중으로 규정됨으로 해서 양명은 양지 체용일원의 틀로 미발이발에 관한 기존의 다양한 언급들을 통일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본성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그 이론적 토대를 良知論을 통해서 마련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① 사려 발생의 시간적 선후를 의미하는 未發?已發의 개념과 心體로서의 未發=未發之中=良知의 맥락을 구분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 ② 未發之中이 본체 곧 양지로서 의미되는 맥락과 수행의 결과로서 도달되는 심의 경계로서 의미되는 맥락을 구분해 주었다는 점, ③ 心體와 心의 動靜사이의 관계를 명확히 드러내주었다는 점, ④ 未發之中과 已發之和의 관계를 양지의 체용 관계로 설명한다는 점, ⑤ 中和를 실현하는 공부를 致良知 공부로 통일시킬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 등의 이론사적 의의를 지닌다. 왕양명의 미발론이나 중화론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가 드문 이유도, 왕양명철학에서는 그것들이 모두 양지론으로 전환되어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 KCI등재

        張載와 程顥의 ‘定性說’에 관한 비교 연구

        한정길(韓正吉) 한국양명학회 2002 陽明學 Vol.- No.8

        이 글은 본성을 안정시키는 문제에 대한 張載와 程顥의 해법과 그에 나타난 양자의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이해의 동이점은 무엇인지를 탐색한 것이다. 定性의 문제에 관한 논의는 ‘본성이 표현될 때 어떻게 하면 외물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가’ 라는 장재의 물음에서 촉발되었다. 장재에게서 정성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은 마음이 見聞知에 매여서 외물에 이끌림으로 말미암아 본성이 자신의 본래적인 感通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마음이 외물에 이끌리지 않기 위해서는 견문을 통하여 형성된 物象을 마음으로 간주하지 말고 有無와 內外의 대립이 해소된 太虛가 마음의 본원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存象之心이나 習心 등을 덜어내는 虛心의 공부가 요구된다. 장재의 이러한 해법은 인간의 일체 사려작용이나 정감을 끊고 마음을 안으로 수렴함으로써 본성의 안정을 구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체계에서는 현실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已發의 情感이 어떻게 中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을 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정호는 장재가 본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정성의 문제가 발생했다고 본다. 정호에 따르면 본성은 내외의 구분이 없으며, 움직이건 고요하건 늘 안정되어 있다. 이것은 본성을 마음의 동정을 관통하는 하나의 형이상학적 본체로 파악한 것이다. 이는 본성의 본래상태를 未發時의 至靜體로 고정시킨 장재의 견해와 구별된다. 정호는 마음과 우주의 본체인 天理를 體認하면 萬事에 감응하면서도 항상 마음의 안정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경지가 곧 ‘廓然大公’과 ‘物來順應’이다. 그리고 이에 이르기 위해서는 ‘自私’와 ‘用智’를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자사’와 ‘용지’를 없애기 위해서 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본성에 본래 내외의 구분이 없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우주의 본체인 천리를 실제로 자기 마음 가운데 있게 하는 것이다. 천리를 체인하는 공부는 마음의 已發, 未發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러한 명도의 공부법은 기존의 수양법이 主靜에 머물러 있던 것을 넘어섰다는 의미를 지닌다. 장재와 정호는 우주와 인간을 하나의 유기적 整體로 파악하는 중국적 세계관을 잇고 있다. 그런데 장재는 우주와 인간의 본원을 순수한 하나의 至靜體로 파악한 반면에 정호는 우주의 본체가 펼쳐내는 생명성을 마음의 본체로 직관해 낸다. 장재와 정호는 각자의 세계인식에 기초하여 본성을 안정시키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 KCI등재

        다산 정약용의 『대학』 이해와 그 정치사상적 의미

        한정길(HAN Jeonggil)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20 泰東古典硏究 Vol.44 No.-

        이 연구는 다산 『대학』관의 특징과 그 정치사상적 의미를 고찰한 것이다. 그 연구 방법으로는 다산 『대학』관의 정치사상적 의미를 주자학이나 양명학의 그것과 비교하여 고찰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를 통해 다산의 『대학』관이 경학사상사에서 지니는 의의도 함께 살펴보고자 했다. 다산은 ‘대학’을 ‘태학’으로 풀이한다. 그리고 『대학』을 최고 통치자 집단을 양성하는 목민학의 기본 교재로 여긴다. 이것은 다산이 군주를 중심으로 한 관료정치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산은 ‘명덕’을 효·제·자로 풀이하고, 천하에 명덕을 밝히는 방법을 ‘친민’에서 찾는다. 그는 ‘친민’을 천자가 태학에서 효·제·자의 예를 실천하여 모범을 보임으로써 ‘백성들이 그것을 본받아 서로 친하는 것’으로 풀이한다. 이것은 다산이 유가의 인륜가치가 실현되는 세상을 지향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산은 ‘격물치지’를 ‘물’의 본말을 헤아리고, ‘일’의 종시를 아는 것으로 풀이한다. 이것은 기존 주자나 왕양명의 ‘궁리’와 ‘치양지’의 정치사상을 부정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다산은 ‘성의장’을 하나의 독립된 장으로 봄으로써 ‘성의’를 ‘치국·평천하’를 실현하는 근본 공부로 설정할 수 있었다. 다산은 ‘평천하장’을 『대학』의 중심으로 여기고, 그로부터 정치이념과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 및 정사의 두 가지 강령을 도출해 낸다. 그는 입현공치와 안민정치를 통해 백성들의 원욕(願慾)을 구현하고자 했다. 이것들은 주자학이나 양명학의 『대학』관과 비교할 때 다산만의 독자성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그 경학사상사적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This study discusses the characteristics of Dasan Jeong Yak-yong’s understanding of the Great Learning and its significance as political thought. It examines Dasan’s political thought reflected in his understanding of the Great Learning in comparison with that of Zhuzi studies or Yangming studies. It also assesses the importance of Dasan’s understanding of the Great Learning in the history of thoughts on Confucian classics. Dasan interprets daxue 大學 as taixue 太學 (Imperial Academy) and regards the Great Learning as the basic textbook of ‘the study of governing the people’ (mumin xue 牧民學) that educates a group of supreme rulers-to-be. This shows that Dasan was pursuing a centralized bureaucracy with the king as its nucleus. Dasan understands mingde 明德 (illustrious virtue) as xiao 孝 (filial duty), ti 悌(politeness) and ci 慈 (benevolence), and find the way to manifest illustrious virtue in qinmin 親民, which, in his interpretation, means that people come to love each other by following the example of the monarch’s practicing xiao, ti and ci in the Imperial Academy. This reveals that Dasan aims for a world where Confucian morality is realized. Dasan interprets gewu zhizhi 格物致知 as discerning the root and branches of ‘the thing’ and knowing the beginning and end of ‘the work.’ This interpretation is worth noting since it shows that Dasan’s political thought follows neither Zhu Xi’s theory of ‘exploring the principles of things’ nor Wang Yangming’s theory of ‘extending innate knowledge.’ Dasan deems the “Chengyi” 誠意 (making the will sincere) chapter an independent chapter, which enables him to present ‘making the will sincere’ as a fundamental study for ‘ruling the country and making the world at peace.’ Dasan regards the “Ping Tianxia” 平天下 (making the world at peace) chapter as the core of the Great Learning, and derives political thought and the method of realizing it from this chapter. He also formulates two political measures based on this chapter: employing talented and virtuous men and caring the people. By implementing these measures, he is intent on fulfilling the desires of the people. This political thought endows Dasan with scholarly originality in interpreting the Great Learning, distinguished from Zhuzi studies and Yangming studies. In this regard, Dasan’s political thought derived from the Great Learning has considerable significance in the history of thoughts on Confucian classics.

      • KCI등재후보

        儒學에서의 正統과 異端 -朱子學的 道統論에 대한 陽明學의 대응을 중심으로-

        한정길 (사)율곡학회 2010 율곡학연구 Vol.21 No.-

        This writing is what discussed about how Confucianism proceeds with securing its identity and legitimacy. Confucianism proceeds with securing its identity and legitimacy with a method of establishing the theory of Dao-tong(道統論: the legitimate transmission of the Orthodoxy) and of criticizing heterodoxy(異端). By the way, the controversy occurs in Confucianism surrounding a problem about legitimacy in this process. What is typical in the middle of it is just the controversy between Zhuxi Studies (朱子學) and Yangming Studies(陽明學). This writing examined the coping aspect in Yangming Studies with the assertion of legitimacy in Zhuxi Studies. Zhuxi newly confirms genealogy in Dao-tong by critically succeeding to the existing theory of Dao-tong. Zhuxi summarizes the contents of its Dao-tong as 'what clarifies the Principle of Nature(天理) and removes selfish human desires.' It is what the Principle of Nature(天理), which penetrates nature and human being, internal and external, became the core content of moral philosophy(道學). Zhuxi's Studies criticizes heterodoxy based on this Principle of Nature(天理). In the theory of Dao-tong of Zhuxi Studies, the studies of Liuxiangshan(陸象山) and Wangyangming(王陽明)are criticized as the doctrine of the Zensect(禪學). Wangyangming(王陽明) prescribes the Doctrine of the Sage(聖人之學) as the Learning of Mind(心學). According to him, the essentials in the Doctrine of the Sage is the mind of regarding Heaven, Earth, and the myriad things as one body, and its mind is just the mean(中), the moral mind(道心), and innate knowledge of good(良知). Wangyangming newly establishes the theory of Dao-tong from the position of the Learning of Mind, thereby squarely coping with the legitimacy of Zhuxi Studies. In Yangming's theory of Dao-tong(道統論), Zhuxi's method of the investigation of thing(格物法),which devises Yi(理) in the external object, is excluded from the context of Dao-tong. Xiangshan Studies(象山學), which emphasizes what clarifies mind, is included. By the way, Yangming discovers that Zhuxi turned to the Learning of Mind with perceiving the tediousness in investigating the principle of things at late in his life, and complies it as 「Zhuxi's final conclusions arrived at late in life(朱子晩年定論)」. Owing to this work, Yangming came to possibly take Zhuxi again to the middle of genealogy in Dao-tong. By the way, in the meantime, this work becomes the ground for criticizing scholars of Zhuxi Studies, who are absorbed in Zhuxi's tentative conclusions of his middle age(中年未定說) as heterodoxy. The scholars of Zhuxi Studies come to be driven to the state of resulting in being rather heterodoxy given not criticizing Yangming Studies as heterodoxy. Here is just even the ideological background that scholars of Zhuxi Studies centering on Tuixi(退溪) couldn't help criticizing Yangming Studies. 이 글은 유학이 자신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어떻게 확보해 가는지를 논의한 것이다. 유학은 道統論을 정립하고 異端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확보해나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정통성의 문제를 둘러싸고 유학 내부에서 논쟁이 일어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주자학과 양명학 사이의 논쟁이다. 이 글에서는 주자학의정통성 주장에 대한 양명학의 대응 양상을 살펴보았다. 주자는 孟子와 韓愈, 北宋代 道學의 道統論을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도통의 계보를새롭게 확정한다. 주자는 그 도통의 내용을 ‘천리를 밝히고, 인욕을 제거하는 것’으로요약한다. 天·人과 內·外를 관통하는 천리가 도학의 핵심내용이 된 것이다. 이 점은 송대 이전의 도통론이 仁義로 대표되는 인륜성을 道의 주요 내용으로 본 것과 비교할때 특징적이다. 주자학은 천리를 중심으로 한 이론체계를 정립하고, 그에 근거하여 異端을 비판한다. 주자학의 도통론에서 陸象山과 王陽明의 학문은 禪學으로 비판된다. 왕양명은 聖人之學을 心學이라고 규정한다. 그에 의하면 성인지학의 요체는 ‘천지만물을 一體로 간주하는 마음’이며, 그 마음이 바로 中이고, 道心이고, 良知이다. 왕양명은 심학의 입장에서 도통론을 새롭게 정립함으로써 주자학의 정통성에 정면으로 대응한다. 양명의 도통론에서는 외부사물의 理를 궁구하는 주자의 格物法이 도통의 맥락에서 배제되고, 마음을 밝힐 것을 강조하는 상산학이 포함된다. 그런데 양명은 주자가 말년에 窮理學의 支離함을 자각하고 심학으로 전향하였음을발견하고, 그것을 「朱子晩年定論」으로 엮어 낸다. 이 작업으로 인해 양명은 주자를 다시 도통의 계보 가운데 끌어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작업은 주자의中年未定說에 빠져 있는 주자학자들을 異端으로 비판하는 근거가 된다. 주자학자들은양명학을 이단으로 비판하지 않으면 자신이 도리어 이단이 되어버리는 지경으로 몰리게 된 것이다. 退溪를 중심으로 한 조선의 주자학자들이 양명학을 비판하지 않을 수없었던 그 사상사적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다.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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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강화학파 학자들의 현실 인식과 대응 논리 ― 이시원(李是遠)과 이건창(李建昌)을 중심으로

        한정길 ( Han Jeong-gil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8 大東文化硏究 Vol.104 No.-

        한국의 근대는 커다란 곡절을 겪는 매 시기마다 특별한 사정들을 지니고 있다. 한국 근대 강화학파 양명학자들의 시대 인식과 대응 논리도 그 구체적인 시기마다 달라지지 않을 수 없었다. 19세기 병인양요 당시에는 이시원의 절의정신이 대변하듯이 서양을 오랑캐로 인식하고 배척하는 태도를 보인다. ‘成仁取義’의 절의정신은 孔孟으로부터 내려오는 유학의 고유한 정신이다. 따라서 이시원의 절의정신의 근원을 양명학으로만 제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치의 중심부에서 밀려난 소론 계통의 강화학자, 그것도 양명학을 가학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이시원이 유학의 생명인 절의정신을 몸소 구현 했다는 점이다. 이제 이시원으로 인하여 강화학은 다른 어떤 유파의 학문에도 위축됨이 없이 떳떳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이건창에 이르면 ‘실심에 입각하여 실사에서 실천을 통해 실효를 거두는’ 강화학파의 정신이 보다 명료하게 나타난다. 그에게서 實心은 誠=實理=眞心으로 이해된다. 실심으로 실사에서 실천을 통해 실효를 거두고자 하는 강화학파의 정신은 이건창의 학문 활동과 경세사상의 근본원리로 작용한다. 이 원리에 따라 그는 경세방면에서 보수적 위정척사론을 거부함과 아울러 외세 의존적인 개화파를 비판하고, 자주적 개혁론을 주장한다. 그리고 학문 활동에서는 다양한 학문을 비판적으로 흡수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학문세계를 건립한다. This paper examines how Yi Si-won and Yi Geon-chang, representative scholars of the Ganghwa School in late 19th century Joseon Korea, perceived their time and how they coped with reality. The Ganghwa School establishes a theoretical base from Yangming Studies. Therefore, what this research investigates is also related to the role of Yangming Studies in resolving the difficulties faced by Joseon in its closing period. Yi Si-won protested against injustice by taking his own life when the Ganghwa fortress was seized by the French army in 1866. Yi dismissed the West as barbarians and took an averse attitude to them. His faithful mind is the unique spirit of Confucianism descended from Confucius and Mencius; therefore, we can not say Yi Si-won's faithful mind was solely influenced by Yangming Studies. What deserves to be emphasized regarding Yi Si-won is that, as a Ganghwa School scholar in the line of the Young Doctrine who had been withdrawn from mainstream politics, he put his faithful mind of Confucianism into practice in person. Indebted to Yi Si-won, the Ganghwa School was able to firmly secure their academic position among other schools of thought. Yi Geon-chang more clearly reveals the spirit of the Ganghwa School, which is based on the Sincere Mind and values actual effects produced by practice in real-life situations. He understands the Sincere Mind as sincerity(誠,) real principle(實理), and true heart(眞心). This spirit of the Ganghwa School serves as a fundamental principle of Yi Geon-chang's academic activities and thoughts on governance. Adhering to this principle, he refutes the conservative stance of Defending Orthodoxy and Rejecting Heterodoxy(衛正斥邪). In addition, he criticizes the Enlightenment party for depending on foreign powers and upholds independent reform. Furthermore, in his academic activities, he absorbs various thoughts critically and builds his own intellectual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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