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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헤겔역사철학에 있어서 미래문제와 행동철학

        조항구 새한철학회 2000 哲學論叢 Vol.22 No.-

        이 글은 헤겔역사철학에 대한 그의 후계자들의 비판을 다루고 결론적으로 그들의 비판의 성과를 검토하고자 한다. 치에스꼬프스키와 헤쓰는 헤겔역사철학이 과거의 철학일 뿐 미래에 대한 인식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헤겔역사철학비판은 두 가지 입장에서 출발한다. 첫째는 헤겔역사철학은 정신을 내면성의 영역에만 제한시킨다. 따라서 헤겔은 역사에서 어떤 의식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의 창조행위를 보지 못했다. 두 번째로 헤겔은 주어진 현실에 단지 관조적인 태도를 취했으며 또 그 현실을 이상화했다. 따라서 그의 철학은 "과거의 철학"이다. 주어진 것으로서의 현실은 과거로부터 유래하고 헤겔은 이 과거만 철학적으로 관조함으로써 결국 과거와 현대만을 알고 있을 뿐 미래는 알지 못한다. 올바른 역사철학의 과제는 미래에 대한 인식을 과거에 대한 인식만큼 구체적으로 구경하는 것이어야 한다. 미래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헤겔의 기본적인 철학적 입장, 즉 마르크스적인 관점에서 보면 관념론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우선 그들은 헤겔과 마찬가지로 역사를 여전히 정신의 발전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다. 미래의 사회주의사회를 역사적인 필연성으로 제시하려고 함으로써 보다 세심한 사회분석이나 자본주의경제의 연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주로 철학적인 탐구를 통해 그의 이론을 제시했기 때문에 공상적 사회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었다. 또 그들은 행동의 주체를 설정함에 있어서도 추상적, 정신적인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치에스꼬프스키는 행동의 주체로서 '역사의 집행자'를 언급하지만 그의 구체적 성격에 대해 언급하지 못했으며 헤쓰는 포이어바하의 영향하에 처음에는 비역사적, 추상적 '인간'개념을, 후에는 "민족"개념을 제시한다. 더구나 미래사회의 실현과 행동의 주체간의 관계에 대해서 어떤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못했다. Es handelt sich bei dieser Arbeit um die Kritik der Hegelschen Geschichts-philsophie durch Philosophie der Tat. Die Vertreter der Philosophie der Tat sind August von Cieszkowski und Moses Hess. Nach ihnen ist es im Prinzip unmöglich, die Zukunft in der Hegelschen Geschichts-philosophie zu erkennen. Erstens, Hegel habe eine freie, bewuβte Schöpfung des Menschen in der Geschichte nicht gesehen. Zweitens, Hegel habe sich der gegebenen Wirklichkeit nur kontemplativ zugewandt und sie nur idealisiert. Deshalb nenne man die Hegelsche Philosophie eine Philosophie der Vergangenheit. Die Aufgabe der neuen Geschichtsphilosophie müsse ihr Wissen von der Zukunft ebenso konktet gestalten als ihr Wissen von der Vergangenheit. Die Philosophie musse um Positives zu erringen, über sich selbst hinaus zur Tat fortschreiten. Trotzdem ist die Geschichtsphilosophie von beiden ebenso idelistisch wie die Hegelsche. Sie betrachtet auch die Geschichte als einen Prozeβ des Geistes. Dies beruht darauf, daβ sie sich nicht auf keine tiefe Analyse der kapitalistischen Gesellschaft, sondern hauptsächlcih auf die philosophische Untersuchung stützten. Was die Subjeckte der Tat betrifft, sie sind noch idealistisch. Die Vollstrecker der Geschichte bei Cieskowski und der 'Mensch', das 'Volk' bei Hess wurden sehr abstract charaktersiert. Das Verhältnis der Subjekte der Tat zu Zukunft wurde nicht klar erklärt. In diesem Sinne ist es bedeutsam, die Marxsche Theorie mit beiden zu vergleichen.

      • KCI등재

        ⌈독일이데올로기⌋의 개정판과 ‘사적유물론’에 대한 재해석

        조항구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2014 철학논집 Vol.38 No.-

        잠정판 ⌈독일이데올로기⌋ 초안1의 분석으로부터 드러난 것은, a) 사적유물 론이 ⌈독일이데올로기⌋에서 비로소 ‘시작’한 것이지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다. ⌈독일이데올로기⌋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처음부터 사적유물론을 확립하기 위 한 의도로 저술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비판한 브루노 바우어의 저서에 대한 반 박이었다. 이 과정에서 역사를 유물론적으로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b) 초 안1에 사적유물론의 주요 기본개념들이 사용되었으나 1859년 이후에 비해 체계적 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상부구조’ 개념은 초안1에서는 사용되지 않아 ‘토대-상부구 조’ 이론을 전개할 수 없었고, 그 결과 ‘사회구성체’ 개념도 제시할 수 없었다. ‘교 류형태’는 ‘생산관계’ 의미에서 사용되었다. 생산력과 생산관계 간의 모순은 필연적 으로 새로운 사회구성체로의 이행을 야기한다는 견해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따라서 저자들은 후기처럼 공산주의사회의 도래가 ‘역사적 필연성’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c) 초안1의 사적유물론은 일종의 ‘소외론’으로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초 안1은 초두가 ‘인간소외의 극복 과정 내지 그 상태’를 의미하는 ‘인간해방’으로 시 작해서, 소외된 역사적 사실을 제시함으로써, ‘인간해방’이 실현되는 공산주의사회 에 대한 당위적 요구로 끝나기 때문이다. ‘역사발전법칙’을 다루는 ‘과학’이라고 해 석되는 ‘역사발전단계론’이 초안1에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초안1의 사적유물론이 ‘철학’이 되는데 문제가 없다. ‘소외’ 용어가 드물게 사용되었고 어떤 맥락에서는 ‘분업’이 소외 용어를 대신하기도 했다.

      • KCI등재

        프랑스 유물론과 마르크스 ― 마르크스의 해석과 양자간의 관계

        조항구,문장수 대동철학회 2003 大同哲學 Vol.23 No.-

        이 글은 프랑스 유물론과 마르크스와의 관계를 해명하는 작업이다. 일반적으로 프랑스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의 사상의 3대 원천의 하나로서 인정되고 있지만 프랑스 유물론과 마르크스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는 편이다. <포이어바하에 관한 테제>에서 그가 포이어바하의 유물론을 포함해 모든 유물론을 비판, 결별하고 사적 유물론을 정립한 것은 잘 알려진 테제이다. 그러나 <포이어바하에 관한 테제> 직전의 <신성가족>에서 그는 프랑스 유물론이 프랑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기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프랑스 유물론이 사적 유물론의 기원이라는 테제 가 성랍하게 된다. 이 모순된 테제를 해명하기 위해 1장에서는 <신성가족>의 프랑스 유물론에 대한 견해와 <포이어바하에 관한 테제>의 프랑스 유물론 비판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프랑스 유물론에는 두 가지 계보, 즉 데까르트로부터 시작하는 기계적 유물론과 영국의 로크로부터 시작해 프랑스에서 발전한 유물론이 있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는 바로 두 번째 유물론이 프랑스 사회주의의 기원이라고 설명한다. <테제>에서 마르크스는 종전의 모든 유물론이 실 천적이지 못하고 관조적이라고 비판하지만 두 번째 프랑스 유물론에 대한 비판은 <신성가족>의 평가로 보았을 때 정당한 비판이 아니다. 그 자신이 포이어바하의 유물론을 이론적인 유물론이며 두 번째 프랑스 유물론을 실천적 프랑스 사회주의의 기원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2장에서는 프랑스 유물론과 마르크스와의 관계를 다루었다. 마르크스는 이미 1843년 상반기에 프랑스 사회주의, 특히 생시몽의 역사철학과 포이어바하 유물론을 수용해 동년 12월 경에 사회주의자, 유물론자가 되었다. 이어지는 경제학 학습의 결과 비변증법적, 비실천적, 관조적인 포이어바하 유물론은 생시몽의 변증법적 역사철학과 통일될 수 없었고 실천적인 프랑스 유물론이 생시몽의 역사철학의 논리적인 토대로서 인정받게 된다. 따라서 프랑스 유물론이 마르크스에게 미친 영향은 직접적인 영향이 아니라 프랑스 사회주의, 특히 생시몽을 통한 간접적인 영향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신성가족>의 프랑스 유물론과 프랑스 사회주의와의 관계에 대한 마르크스의 기술은 프랑스 유물론과 바로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Diese Arbeit beschäftigt sich damit, das Verhältnis zwischen dem französischen Materialismus und Marx zu untersuchen. Der französische Sozialismus ist als eine Quelle des Marxschen Denkens anerkannt. Aber das Verhältnis zwischen dem französischen Materialismus und Marx wurde fast nicht untersucht. Zur Erklärung unseres Themas können zwei These vorläufig gestellt werden. 1. Marx hat 1845 in den <Thesen über Feuerbach> den französischen Materialismus stark kritisiert und dann sich davon verabschiedet. 2. In der <Heiligen Familie> des Jahres 1844 hat Marx den französischen Materialismus als eine Quelle des französischen Sozialismus bezeichnet. Daher ist der französische Materialismus auch eine Quelle des Marxschen Denkens. Das Ergebnis der Untersuchung ist folgendes: 1. Nach Marx gibt es zwei Richtungen in dem französischen Materialismus. Die eine davon sei der mechanische Materialismus, die andere sei die Richtung, die aus dem Empirismus von Locke stamme. Die zweite Richtung sei die Quelle des französischen Sozialismus. 2. Marx wurde von der zweiten Richtung nicht direkt, sondern indirekt beeinflußt. Der Grund dafür liegt darin, daß Marx bereits 1843 die wichtigen Inhalte der Geschichtsphilosophie des französischen Sozialisten, Saint-Simon, übernommen habe, der auch das Grundprinzip des französischen Materialismus übernommen habe. Es ist daher festzustellen, daß die Marxsche Beschreibung in der <Heiligen Familie> eine Bestätigung seines engen Beziehung mit dem französischen Materialismus ist.

      • KCI등재

        마르크스에 있어서 ‘철학과 세계’의 문제 - ‘철학의 실현과 지양’ 테제를 중심으로 -

        조항구 범한철학회 2015 汎韓哲學 Vol.79 No.4

        Dieser Artikel behandlete, wie Marx die Einheit zwischen Philosophie und Welt zu vollbringen versuchte. Dieses Thema untersuchte dieser Artikel auf Grund der These ‘Verwirklichung und Aufhebung der Philosophie.’ Der Gegenstand der Untersuchung war die Werke, die von 1841 bis Dez. 1843 geschrieben wurden. Diese sind a) die Marxsche Dissertation(1841) und b) ‘Zur Kritik der Hegelschen Rechtsphilosophie. Einleitung’(1843). In a) gibt es die These ‘Philosophisch-Werden der Welt und Weltlich-Werden der Philosophie’, während es in b) zwei Thesen: (i) ‘Verwirklichung und Aufhebung der Philosophie.’ und (ii) ‘Aufhebung des Proletariats und Verwirklichung der Philosophie’. Aus der Untersuchung resultierten sich die folgenden: 1. In ‘a)’ bedeutete das Wort ‘Philosophie’ den Begriff ‘Vernunft’, während das Wort ‘Welt’ den Königreich Preussen unter der absoluten Monarchie mit der Politik des christlichen Staats bedeutet. Deswegen wurde nur die theoretische Kritik an der Theorie wie z.B. die christlichen Lehren als die angemessene Methode für die Verwirklichung der Philosophie angesehen. Marx erzälte die Struktur auf der Grundlage der Philosophie des Selbstbewußtseins von Bruno Bauer. 2. In b) bedeutete das Wort ‘Philosophie’ die verschiedenen Bedeutungen je nach Kontext, während das Wort ‘Welt’ immer noch die absolute Monarchie bedeutete. Mit (i) wurde die Vereinigung zwischen Theorie und Praxis behauptet. Jedoch war das Mittel zur Vereinheitlichung der Theorie und Praxis immer noch die Kritik. In der These ‘Proletariat’ bedeutete das Wort ‘Philosophie’ den ‘Humanismus’ von Feuerbach, während die Welt die kapitalistische Gesellschaft war. Die Philosophie erscheint nun als geistige Waffen des Proletariats. 이 글은 마르크스가 철학과 세계(현실) 간의 통일을 어떤 식으로 성취하려 했는지를 다룬다. 본고는 이 문제를 철학의 실현과 지양 테제를 중심으로 연구했다. 연구의 대상은 1841년부터 1843년 12월까지 마르크스의 저작이다. 구체적으로는 a) 마르크스의 박사논문(1841)과 b) 헤겔법철학비판서설(이하 「서설」, 1843)이다. a)에는 ‘세계의 철학화와 철학의 세속화’ 테제가 쓰여 있고, b)에는 i) ‘철학의 실현과 지양’ 테제와 ii)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양과 철학의 실현’ 테제가 쓰여 있다. 연구의 결과, 1) ‘철학’은 a)의 테제에서 ‘이성’을 의미하고, 현실은 비이성적인 절대군주정의 프로이센이었다. 프로이센은 기독교국가정책을 표방하고 있었다. 따라서 기독교교리 같은 이론을 이론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철학을 실현하는 방법이었다. 마르크스는 브루노 바우어의 ‘자기의식의 철학’을 토대로 이 철학화 구조를 설명했다. 2) 철학은 b)의 테제에서 문맥에 따라 다양한 철학들을 의미했고 ‘현실’은 여전히 절대군주정이었다. 마르크스는 ‘철학의 실현’ 테제를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설명하는데 사용했다. 그러나 이론과 실천을 통일하는 수단은 여전히 ‘비판’이었다. ‘프롤레타리아트’ 테제에서 철학은 포이어바흐의 ‘휴머니즘’을 의미했다. ‘현실’은 자본주의사회였다. 이제 철학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신적 무기로 나타난다. 그러나 1845년 중반에 철학은 이제 마르크스 자신의 실천적 유물론으로 바뀐다.

      • KCI등재

        모제스 헤쓰에 있어서 ‘결정론과 의지자유’ 문제와 청년 마르크스

        조항구 인문사회 21 2019 인문사회 21 Vol.10 No.2

        이 논문은 마르크스연구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마르크스 역사이론에서의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양립 문제의 기원을 규명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 연구 방법은 마르크스의 동료 모제스 헤쓰(Moses Hess)에 있어서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양립론’을 분석하고 청년 마르크스의 저작에서 그 흔적을 발견하는 것이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한편으로는, 헤쓰는 그의 저작들(1837-1843)에서 역사발전의 합법칙성에 근거해 자본주의 사회는 망하고 사회주의 사회가 필연적으로 온다고 말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헤쓰는 자본주의 사회보다 사회주의 사회가 더 좋은 사회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실현해야 된다고 말한다. 이 ‘약한 결정론’은 1843-1844년의 청년 마르크스의 ‘약한 결정론’에 영향을 주었다. 1845년부터 역사적 유물론자로서 마르크스는 헤쓰의 윤리적 사회주의를 비판하지만 약한 결정론은 계속 주장한다. 이것이 가능한 지를 알기 위해서는 추가적 논의가 필요하다. This paper aims to clarify the origin of the problem of compatibility between determinism and free will in the Marxian theory of history. This issue is controversial among Marxists. The method of study is to analyze ‘the theory of compatibility between determinism and free will’ in Marx’s colleague Moses Hess and to discover the traces in the work of young Marx. On the one hand, Hess says in his writings (1837-1843), that, according to the law of historical development, the capitalist society collapses and a socialist society inevitably come. On the other hand, he says that because the socialist society is a better society than the capitalist society, people have to realize it consciously. This ‘soft determinism’ influenced the young Marx of 1843-1844. Since 1845, Marx as a historical materialist criticizes Hess’s ethical socialism, but continues to argue for the soft determinism. Further discussion is needed to see if this is poss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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