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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전이 생쥐에 이식된 L1210 세포의 증식에 미치는 영향
전용근,임재윤,송정모,은재순,Jeon Yong Keun,Leem Jae Yoon,Song Jung Mo,Eun Jae Soon 대한동의생리학회 2005 동의생리병리학회지 Vol.19 No.3
We studied effects of Samreungjeon water extract (SE) on the proliferation of transplanted-L1210 cells to mice. Samreungjeon is composed of Scirpi Tuber, Zedoariae Rhizoma, Aurantii immaturi Pericarpium, Pinelliae Tuber and Hordei Fructus Germinatus. When SE (500 mg/kg) was administered orally once a day for 7 days after transplantation of L1210 cells to mice, the proliferation of transplanted-L1210 cells was decreased and DNA fragmentation of transplanted-L1210 cells was induced. Also, DNA fragmentation of L1210 cells was enhanced by co-culture with the peritoneal macrophages obtained from SE-administered mice and was partly inhibited by L-NMMA in vitro. SE enhanced the production of nitric oxide from murine peritoneal macrophages in vitro and in vivo. These results suggest that SE partly induces apoptosis of transplanted-L1210 cells via production of nitric oxide from macrophages.
전용근(Yong-Keun Jeon) 한국신학정보연구원 2013 Canon&Culture Vol.7 No.2
인자가 천사들과 함께 영광 가운데 와서 모든 민족을 심판할 것이라는 최후의 심판 이야기(마 25:31-46)는 마태복음에만 등장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도입부에는 인자가 모든 민족을 둘로 갈라놓는 것을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오른편과 왼편으로 각각 나누는 것으로 묘사하는 아주 짧은 비유가 나온다(32절하-33절). 그런데 이 비유는 전체 심판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본 소고는 이 비유를 중심으로 비유의 진성성과 양과 염소를 각각 좌우로 나누는 행위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이 비유의 진정성과 관련해서는 역사적 예수의 상황에서 특히 역사적 개연성의 기준(Historische Wirkungsplausibilitätskriterium)과 일관성의 기준(Kohärenzkriterium)을 근거로 진정성이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이유와 목적과 관련해서는 J. 예레미아스(양과 염소의 분리: 서로 다른 성질 때문에), J. 그닐카(숫염소로부터 암양을 부리: 젖을 짜개 위해), U. 루츠(가축 떼에서 새끼 염소를 분리: 식용이나 제사를 위해) 세 학자의 연구를 비판적으로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상의 설명들은 특히 전체 심판 이야기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 당시의 갈릴리의 목축 상황을 토대로 이 비유에서 목자가 염소들로부터 양들을 나누는 장면은 때가 되어서 직업적인 목자가 위탁받은 양과 염소들을 구분하여 주인에게 돌려주는 상황임을 추론해 보았다. 여기서 핵심은 바로 마지막 때와 갈라냄이다. 목자가 주인에게 가축을 돌려주기 전 양과 염소로 나누어 정확히 세는 것이고, 목자(주인과 함께)만이 가축 무리에서 양과 염소를 정확히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는 이를 통해 인자만이 모든 민족 가운데서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음을 강조한다. 결국 예수는 이 비유를 통해 최후의 심판, 구원과 저주는 지금 여기서 사람들이 미리 알 수 없고, 마지막 그때에 오직 심판주만이 판단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