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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氏聯珠集』 硏究

        이명희(Lee Myoung hee) 어문연구학회 2015 어문연구 Vol.86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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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氏聯珠集』은 李廷龜로부터 李明漢과 李昭漢 , 다시 八相으로 이어지는 가계구도에서 그 문학적 전통이 충실히 전승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선집으로 주목을 요한다. 李廷龜ㆍ李明漢ㆍ李昭漢ㆍ八相이 지닌 천부적인 자질은 그들의 문학적 표출이나 경향과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 그들은 단련과 인위적인 수사를 통한 시구의 선택보다는 감성을 기반으로 한 자연스러운 표출이 많았으며 구점과 구호가 그러한 일례이다. 그래서 이정구가계의 문학은 唐風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八相의 시를 논하는 다양한 평어에 다소 표현의 차이가 있으나 상당히 유사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豪放과 飄逸로 일컬어지는 이정구ㆍ이명한ㆍ이일상 3대의 평어가 가장 유사하다. 이 유사성은 가계문학의 전승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정구와 김창협은 진정성 추구라는 측면에서 동일한 목표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농암 김창협은 이정구의 단점으로 체재에 엄격함이 부족하고 격조에 古雅함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八相은 선대의 문학경향을 계승하면서 몰개성적으로 지어지던 당풍이 가진 한계와 이정구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였다. 八相은 이러한 점을 어느 정도 극복하여, 수사에 있어서 진전을 보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남용익이 이정구가계의 문학에서 이명한을 가장 높이 평가한 부분에서 알 수 있듯 八相이 선대의 문학을 뛰어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八相이 명암 이해조와 진암 이천보로 이어지는 가계의 문학 계승에서 중심에 위치하며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한 점은 분명하다. 『李氏聯珠集』은 바로 이 八相의 문학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정구가계인 명암 이해조과 진암 이천보의 문학에 있어서도 농암 김창협과 삼연 김창흡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시를 선대의 문학과 비교해볼 때 심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선대의 평어와 유사한 '豪放'이라든지 '淸曠'과 '雋逸' 같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가계의 시풍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입증한다. 이정구가계의 문학과 그 경향은 주로 시대적 동인이나 교유의 측면에서 문학적 영향관계를 구명하는 기존 연구와 달리, 가계문학의 전승이라는 측면에서 연구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Leessiryeonjujip』 requires attention as an important anthology of poetry showing that the literary tradition has been handed down faithfully in the family structure leading from Lee Jeong-gu to Lee Myeong-han and Lee So-han, Pal Sang again. The natural qualities of Lee Jeong-guㆍLee Myeong-hanㆍLee So-hanㆍPal Sang are significantly associated with their literary expression or trends. Rather than selecting poetic phrases through training and artificial rhetorics, they usually expressed their emotions naturally and punctuations and mottos are the examples. So the literature of Lee Jeong-gu family line is generally evaluated to be the Tang style. Despite somewhat differences in expression, various comments that discuss Pal Sang's poems have significantly similar characteristics. In particular, the comments of three generations of Lee Jeong-guㆍLee Myeong-hanㆍLee Il-sang called as broadness and excellence are the most similar. It is difficult to deny that this similarity originated from the transmission of household literature. Lee Jeong-gu and Kim Chang-hyeop had the same goal in terms of the pursuit of authenticity. However, Nongam Kim Chang-hyeop pointed out Lee Jeong-gu's disadvantage that rigor is lacking in the system and there is no elegance. While inheriting the literary trend of previous generations, Pal Sang constantly tried to escape the limits of the Tang style made de-individually and the limits of Lee Jeong-gu. By overcoming these points to some degree, Pal Sang showed progress in rhetorics. However, as can be seen from the fact that Nam Yong-ik evaluated Lee Myeong-han the most highly in the literature of Lee Jeong-gu family line, it is difficult to see that Pal Sang exceeded the literature of previous generation. But it is obvious that Pal Sang is located in the center in the literary inheritance of the household leading to Myeongam Lee Hae-jo and Jinam Lee Cheon-bo and played an important link role. 『Leessiryeonjujip』 can be said to be quite valuable in terms of containing the literature of Pal Sang. The fact is that Nongam Kim Chang-hyeop and Samyeon Kim Changheup's influence also acted on the literature of Myeongam Lee Hae-jo and Jinam Lee Cheon-bo in Lee Jeong-gu family line. Comparing their poems with the literature of previous generations, however, despite a difference in depth, they are evaluated to be 'broad' or 'clear' and 'excellent' similar to comments of previous generations. This proves that the poetical style of the family line has been inherited continuously. Unlike existing research investigating the literary influence relationship mainly in terms of contemporary drivers or social intercourse, the literature and trend of Lee Jeong-gu family line is a good example showing the need for research in terms of inheritance of family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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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리(東里) 이은상(李殷相) 한시(漢詩) 연구(硏究) -이정귀 가계문학의 특성과 차이를 중심으로-

        이명희 ( Lee Myoung-hee ) 근역한문학회 2020 漢文學論集 Vol.55 No.-

        본고는 당대 문단의 중심에 있었던 月沙 李廷龜(1564~1635) 가계의 일원인 東里 李殷相(1617~1678)의 詩文學을 고구하였다. 그의 시에 드러나는 중요한 특성들은 그만의 것이 아니라 이정귀 가계의 문학이 공유하는 것들이다. 본고는 이 점에 유의하면서 가계문학의 특성과 그만이 지녔던 차별성을 살펴보았다. 이정귀 가계는 산수 자연에 대한 갈망과 탐닉이 남달랐다. 이은상은 선대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금강산 유람을 시도하였으며, 이정귀가 그랬던 것처럼 악공을 대동하여 산에 올랐다. 장문의 시 제목을 통하여 운문과 산문을 복합적으로 활용하는 가계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또한, 윗세대와 달리 다양한 詞牌를 활용하는 詞를 창작해 문학적 역량을 과시하였다. 그의 이러한 행보는 그만의 특성이 아니라 가계문학의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때 온전한 이해가 가능하다. 이정귀 가계문학은 ‘學唐'의 범주 안에 있었으며, 구성원의 시풍도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평어에 개별적 차이가 있지만, 이정귀의 ‘豪放' ‘飄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은상의 경우 ‘豪健'이라는 평을 받았는데, 이정귀의 ‘豪放'보다 좀 더 정제된 면모에서 나온 평가이다. 16세기에서 17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의 시단은 ‘學唐'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시적 수준을 높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은상의 시문학에서 ‘漢魏盛唐'을 주창한 鄭斗卿이나 金得臣처럼 적극적인 변화의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가계문학의 전승속에서 이은상이 詞를 창작하고 시 구성의 치밀성 등 다양한 변화를 추구하려는 모습은 발견되었다. 김창협은 이은상의 시문학에 대하여 “율시에 뛰어나서 입을 열면 문장이 되었다”며 천부적인 재능에서 나온 口占과 口號를 높이 평가하였다. 이것은 즉흥적 감성을 담보로 한 문학의 진정성이 기반이 된 것으로 즉 백악시단의 ‘眞詩 追求'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본고는 가계문학이라는 범주의 부여가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 詩語를 통하여 자카드 분석을 시도한 결과, 그 유사성을 확인하였다. 이는 이정귀에서 이은상이 활동하던 시기까지 이정귀의 가계문학에 큰 변화가 일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題材의 측면에서 논한다면 이은상의 시문학은 당대의 시인들과 다른 어떤 특수성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당대 문단의 중심인물로 활약한 이정귀 가계문학의 성향을 확인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가 물색의 탐닉에 몰두하여 ‘物色分留'라는 시어를 애호한 점은 현장체험을 중시하였던 가계의 전통을 계승하고 윗세대에서 표현하지 못한 새로운 시의 창작을 추구하였다는 실례이다. 처참했던 壬丙兩亂의 고통 속에서 헤어지는 한을 시에 담았던 윗세대와 달리 이별의 순간을 ‘浮生聚散'의 관점으로 詩想을 써내려간 이은상에게서 세상을 대하는 세대 간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내재된 감성의 표현으로 達觀의 境地를 보여주는 시가 많은 것도 그의 차별적인 지점이다. 아울러 이은상의 시문학은 김상헌 가계와의 문학적 교류와 상호 영향을 고려해 볼 때, 18세기 문학의 새로운 면모를 만들고자 활약한 백악시단의 탄생에 일조했으리라 가늠할 수 있다. This paper studied the poetic literature of Dong-ri(東里) Lee Eun-sang(李殷相). He is a member of the Li Jung-gul family. The Li Jung-gu family shares literary characteristics. their literature transmits literary tradition faithfully and it should be focused that they have similar tendency. Lee Jung-gui's family had a longing and indulgence for arithmetic. Lee attempted to tour Mt. Kumgangsan to share the experiences of his ancestors. The family tradition was inherited through the title of the long sentence, which is a combination of verse and prose. Unlike the older generation, he also created Sa(詞) that utilize various Sa(詞) to show off their literary capabilities. His behavior is fully understood in terms of inheritance of family literature. Lee Jung-Gui's family literature has a similar style. Although there are individual differences in flatfish, they do not deviate significantly from Lee Jung-Gui's ‘Ho bang(豪放)' and ‘飄逸(Pyoil)'. Lee Eun Sang received the reputation of ‘豪健(Ho geon)', which comes from a more refined aspect than Lee's free style. In the transition from the 16th to the 17th centuries, poetical circles endeavored to raise the poetic level without leaving the borders of ‘Hakdang(學唐)'. In the poetry of Lee Eun-sang, it is difficult to find positive changes such as Jeong, Du-gyeong(鄭斗卿) and Kim, Deuk-sin(金得臣) which advocated ‘Han-Wi-Seongdang(漢魏盛唐)'. However, even in the tradition of family literature, the movement of change to raise the level through the creation of a book and pursuing the preciseness of the composition of poetry is sensed. Kim Chang-hyup said that Lee Sang-sang's poetry is “excellent and bizarre unless he intentions.” The authenticity of improvised sentiment was highly valued because it touched spirit of the Baekaksidan(白岳詩壇). Compared with other members of Lee Jung-gui's family through the poetic diction, it is clear that they are in an influence relationship, but his distinctiveness can be seen in the words of his own particular favorite, ‘scenery(物色)' and ‘transient life(浮生)'. According to the jacquard analysis, Lee Eun-sang and Lee Myung-han are the most similar. However, there is little variation except Lee Seok-hyung, which has a big difference in time. It is clear that there is a similarity in the use of Shea. This proves that the changes in Family literature were not significant until at least Lee's time. Lee's poetry is hardly considered to have any specificity different from the poets of his time. However, there is a clear significance in that it shows the propensity of the Lee Jung-gui family that was at the center of the passage. And his devotion to the indulgence of nature and his love of the ‘mulsaegbunlyu(物色分留)' is an example of his pursuit of a new poetic attempt that the older generation did not express. Unlike the poems of the older generations, who suffered through the experience of Im Byung-ran, being optimistic even in the moment of parting from the perspective of ‘busaengchwisan(浮生聚散)' reveals a difference in the gaze for the world. Many poems that show the stage of ‘dalgwan(達觀)' are also different points from those of family literature. Lee's poetry is intact in the category of Lee Jung-gui's family literature. His traits are mostly influenced by family literature. However, it also reveals the attempts of differentiation, such as the creation of her own poem and poem. Lee Jung-gui's family literature favored improvisation and sincerity rather than hanging on the table. I valued the inspiration that comes directly from the landscape. This is in line with the spirit of ‘jinsichugu(眞詩追求)' as mentioned earlier. The Lee Jung-Gwi family grew their literary capacity through continuous exchanges with the Kim Sang-Hun family. Lee Eun-sang's position in the two-family exchange suggests that it played a role as a medium for the birth of the Baekaksidan, which contributed to creating a new face in the 18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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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月沙 李廷龜家系의 文學 傳承 硏究

        이명희(Lee Myoung hee) 어문연구학회 2016 어문연구 Vol.90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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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月沙 李廷龜(1564~1635)의 가계는 아들 白洲 李明漢(1595~1645) 손자 靑湖 李一相(1612~1666)까지 3대 대제학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증손자인 鳴巖 李海朝(1660~1711) 역시 문명을 떨쳤다. 월사에서 백주, 다시 청호 그리고 명암으로 이어지는 가계구도에서 이들의 문학은 그 전통이 충실히 전승되고 있으며, 아울러 유사한 경향성을 띠고 있다는 점은 주목을 요한다. 월사·백주·청호·명암이 지닌 천부적인 자질은 그들의 문학적 표출이나 경향에 있어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 그들은 세밀한 단련을 통한 시구의 선택보다 감성을 기반으로 한 자연스러운 표출에 중점을 두었으며 시에 구점과 구호가 많은 것은 그러한 일례이다. 따라서 월사가계의 문학은 당풍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월사는 豪放·飄逸 백주는 豪逸·豪放·淸切·淸爽, 청호는 橫逸·淸致·遒俊淸新, 명암은 雄邁絶塵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러한 평가들은 다소 표현의 차이가 있지만 유사하며, 이 유사성은 영향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월사 가계는 선대의 시상이나 느낌, 시구 등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자신의 시적 완성도를 높였다. 이러한 활용은 표절이라기보다 오마주(hommage)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그 의도는 선대와의 공감과 소통에 방점이 있다고 할 것이다. 당대 문단의 거두였던 농암과 삼연의 영향을 받았던 명암의 문학은 시적 표출에 심도의 차이는 있으나, 유사한 가계의 시풍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이 드러난다. 또한 이들의 문학은 그 뒤로 진암 이천보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져 가계의 문학 전승이 지닌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정구가계의 문학과 그 경향은 주로 시대적 동인이나 교유의 측면에서 문학적 영향관계를 구명하는기존 연구와 달리, 가계문학의 전승이라는 측면에서의 연구가 필요함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The family of Wolsa Lee, Jung-ku(1564~1635) obtained the fame of 3-generation daejehak from his son Baekju Lee, Myung-han(1595~164 5) to grandson Chungho Lee, Il-sang(1612~1666). His great-grandson Myungam Lee, Hye-ju( 1660~1711) was also famous. In the family org anization, Wolsa, Baekju, Chungho and Myungam, their literature trans mits literary tradition faithfully and it should be focused that they have similar tendency. The nature talents of Wolsa·Baekju·Chungho·Myungam is greatly related to their literary expression or tendency. They showed lots of natural expressions based on emotion rather than selection of poetic verses by delicate training and one of the examples is lots of verse points and verse chants. So, the literature of Wolsa family is evaluated as the party spirit in many cases. Wolsa is evaluated as hobang(豪放)·pyoil(飄逸), Baekju is evaluate d as Hoil (豪逸)·Hobang(豪放)·Chungjul(淸切)·Chungsang(淸爽), Chungho is evaluated as Hoengil(橫逸)·Chungchi(淸致)·Jusunchung sin(遒俊淸新) and Myungam is evaluated as Woongmaejuljin(雄邁絶塵). Those evaluations are similar in spite of the expressive differences and the similarities are surely from the effects. The family of Wolsa used poetic concept, feeling, poetic phrase, etc. of the previous generations properly and enhanced his own completion of poetry. The utilization has the characteristics of hommage rather than plagiarism and the intention has in sympathy or communication with the previous generations. The literature of Myungam effected by Nongam and Samyun who was a leader of the literary circles in the period showed similar poetic mood of the family ceaselessly although there were differences of depth in poetic expression. In addition, their literature was transmitted to Jinam Lee, Chun-bo continuously and shows the aspects of family literary transmission well. The literature and tendency of Lee, Jung-gu family is a good example that it s necessary to study from an angle of family literary transmission, unlike existing studies verifying literary effects and relations mainly from angles of periodical circles or associ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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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盤湖 尹光顏의 <朴烈婦傳> 연구 : 다른 입전 사례와 비교를 겸하여

        이명희(Lee Myoung-Hee) 어문연구학회 2021 어문연구 Vol.107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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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 image of women who conformed to the patriarchal ideology of Confucianism was defined as the ideal woman s image. In its characteristic female image, there is a woman who died after her husband s death or died in a critical situation, or uses the expression £, which means a woman who kept her incision. Many aristocratic intellectuals recorded the lives of women who practiced a chaste woman, and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number of young women who entered the war gradually increased, and their activities had a huge impact on Joseon society. At this time, there was a young priest, Ham Yang-bak, who practiced his passion and became the creative motif of many civilizations, drawing attention from the male ruling class. In addition to Yoon Kwang-an s <Bagyeolbujeon(朴烈婦傳)>, there were various entries based on HamYang-baksi, including Park Ji-won s <Yeolnyeohamyangbagssijeon(烈女咸陽朴氏傳)>, Monk Eung-yoon s <Bagyeolbujeon(朴烈婦傳)>, Jung Deok-je s <Yeolnyeo hagsaeng imsuljeungcheo milyangbagssijilyeo(烈女學生林述曾妻密陽朴氏之閭)>, Yoon Kwang-seok s <Yeolnyeobagssijeon (烈婦朴氏傳)>, Lee Myeon-je s <Bagyeolbujeon(朴烈婦傳)>, Sin Donhang s <Yeolnyeobagssihaenglog(烈婦朴氏行錄)> Yoon Kwang-an s <Bagyeolbujeon(朴烈婦傳)>, which was introduced in this paper, is significant in that it is an introduction of new data that has not been known about the research and existence of academia. In the late Joseon Dynasty, excessive Yeol-nyeo(烈女) discourse served as a suppression within members of Joseon society, and the perception that to become Yeol-nyeo(烈女), at least one should die with her husband spread, leading many women to death. Hamyang Park s attention was different from the existing heat wave. Park married for loyalty, which she could have avoided, and chose to die at the same time on the same day after her husband died, instead of dying immediately. Furthermore, he was not a woman from an internalized family, but from a Korean-American family, so everyone was moved by Park s passion. In particular, they emphasized that the humble woman of Yeohang practiced loyalty that was difficult for the four masters to do, emphasized her hard work according to the author, or praised both filial piety and enthusiasm. However, some people were concerned about the social problems that Park s hard work would bring. They were Yoon Kwang-an and Park Ji-won. Park Ji-won pointed out the social problem of Yeol-nyeo(烈女) and tried to criticize the excessive social atmosphere that caused Yeol-nyeo((烈女) s social discourse in the late Joseon Dynasty to encourage her to perform more enthusiastically than her widow s embroidery. Thus, while praising Yeol-bu s passionate performance, he raised the problem in Byeong-seo in his own unique narrative style, and the existing papers noted that. Yoon Kwang-an s <Bagyeolbujeon(朴烈婦傳)> differed from Park Ji-won in this regard, and he praised Park s hard work and hinted at his innermost thoughts that Park s extreme choice did not have to be essential, citing the adult s words. If the existing research pointed out only the problems of the late Joseon Dynasty discourse, Yoon Kwang-an s Park Yeol Bujeon is a good example of the self-purification that took place within it. 조선 시대는 유교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순응하는 여성상을 이상적인 여성의 典型으로 규정하였다. 그 특징적인 여성상에 남편 사후 수절하거나 위난 시 죽음으로 정절을 지킨 烈女가 있으며 烈婦, 또는 절개를 지킨 부인이라는 뜻의 節婦라는 표현을 쓴다. 다수의 양반 지식인들은 烈行을 실천한 여인들의 삶을 立傳하여 기록으로 남겼는데 조선 후기에는 열녀전에 입전된 열녀의 수가 점차 늘어났고, 그들의 행적은 조선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때 열행을 실천하여 남성 지배층의 주목을 받으며 많은 문사의 창작 모티브가 된 어린 과부 함양박씨가 있었다. 함양박씨를 소재로 다양한 입전 작품이 여러 편 있는데 윤광안의 <朴烈婦傳> 외에도 박지원의 <烈女咸陽朴氏傳)>, 승려 응윤의 <朴烈婦傳>, 정덕제의 <烈女學生林述曾妻密陽朴氏之閭>, 윤광석의 <烈婦朴氏傳>, 이면제의 <朴烈婦傳)>, 신돈항의 <烈婦朴氏行錄>, ≪閒汨董≫에 실린 <烈女朴氏傳>, 이학전의 <朴氏烈婦傳>, 9편이 존재하였다. 이번 논문에서 소개한 윤광안의 <朴烈婦傳>은 그동안 존재 여부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자료의 소개라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조선 후기 과도한 열녀 담론은 조선 사회 구성원 내면에 하나의 억압으로 작용하여 수절은 지극히 평범한 일이 되었으며 열녀가 되려면 최소한 남편을 따라 죽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많은 여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함양박씨가 주목을 받은 것은 기존의 열부와 다른 차별성이다. 박씨는 의리를 위하여 굳이 피할 수 있었던 혼인을 하였고, 또 남편이 죽은 후 바로 따라 죽지 않고 삼년상을 치룬 다음,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죽음을 선택하였다. 게다가 그는 유학이 내재화된 집안의 여자가 아닌 한미한 집안의 출신이었기 때문에 모두 박씨의 열행에 감동하였다. 특히 그들이 강조한 것은 여항의 비천한 여자가 사대부도 하기 어려운 의리를 실천한 점에 무게를 두었으며, 작자에 따라 열행을 강조했거나, 효와 열을 모두 칭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박씨의 열행이 가져올 사회적 문제를 우려한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윤광안과 박지원이었다. 박지원은 열녀에 대한 사회적 문제를 지적하며 조선후기 열녀의 사회적 담론이 과부의 수절보다 순절을 부추겨 지나친 열행을 강요하게 만든 과도한 사회 분위기를 비판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열부의 열행을 칭송하면서도 자기만의 독특한 서술 방식으로 병서에 그 문제점을 제기하였고 기존 논문들은 그 점에 주목하였다. 윤광안의 <朴烈婦傳>은 이 부분에 있어서 박지원과 차이를 두었는데, 그는 박씨의 열행을 칭찬하면서 논찬에서 성인의 말씀을 인용해 성인의 정신이 ‘不以死傷生'에 있음을 언급하여 박씨의 극단적 선택이 필수적일 필요가 없었다는 자신의 속마음을 넌지시 밝혀놓았다. 기존의 연구는 조선 후기 열부 담론의 문제점만을 지적하였지만, 윤광안의 <朴烈婦傳>은 그 안에서 이루어졌던 자정작용을 함께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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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토리텔링 기반의 온라인 마케팅에 관한 연구

        이명희(Lee, Myoung Hee), 이주민(Lee, Jumin) 성신여자대학교 경영연구소 2011 경영관리연구 Vol.4 No.2

        스토리텔링은‘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라는 의미로서, 사건과 사물에 대한 물리적 속성이나 사실에 대한 보도가 아닌 사물이나 인물이 가져다주는 개인적 의미로서의 이야기를 지어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스토리텔링은 제품 자체보다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감성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감성마케팅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스토리텔링이 인터넷이라는 미디어에 확대 적용 됨3)으로써 그 형태도 변화하고 있다. 특히, 고객의 참여, 공유, 개방의 특징을 가진 웹2.0 환경에서 온라인 스토리텔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기존 연구를 바탕으로 온라인 스토리텔링의 핵심요인을 도출하고 이를 중심으로 사례를 분석하였다. 사례 분석 결과, 온라인 기반의 스토리텔링은 이야기 자체로 고객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 뿐만 아니라 상호연결을 통한 재창조 되고 있고, 온라인 스토리텔링은 제품중심의 스토리텔링과 웹2.0중심의 온라인 스토리텔링 형태로 구분됨을 알 수 있었다. 사례분석을 바탕으로 온라인 스토리텔링의 운영상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본 연구에서는 온라인 스토리텔링 프레임워크를 개발하고 이를 이용한 제품홍보 마케팅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온라인 스토리텔링 프레임워크는 온라인마케터들에게 보다 효율적인 온라인 마케팅을 위한 가이드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Storytelling means telling a story of not physical attributes or factors of accidents/products but personal meaning which is redefined by other people or objects. Currently, storytelling is used as an emotional marketing tool to explain emotional story of the product. However, the storytelling has moved to Internet media and has different characteristics from traditional storytelling. This study found the key characteristics of online storytelling and analyzed various case studies. Some cases made the best use of web2.0 trend and achieve their goals while other cases did not use merits of web2.0 and remain in product-oriented storytelling. To overcome the limitation of product-oriented storytelling, we propose online storytelling framework and apply the framework to the marketing communication. This study will provide effective online marketing guides to online marketers using online storyte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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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盤湖 尹光顔의 시세계 연구

        이명희(Lee, Myoung-hee) 대동한문학회 2018 大東漢文學 Vol.57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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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론 2. 반호 윤광안의 시세계 1) 정관의 흥취와 존양 2) 초탈의 경지와 자적 3) 사회적 책무 3. 결론 반호 윤광안은 소론계의 한 축으로 노성에 세거하였던 파평윤씨 가문의 후예이자 정조의 초계문신으로 능력을 인정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관료생활은 소론이라는 입지로 인하여 고난의 연속이었다. 순탄치 못한 삶 속에서도 맑고 깨끗함을 유지하고자 하였으며, 이러한 내면이 그의 시세계에잘 구현되어 있다. 본고는 반호의 시세계를 대략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 았다. 첫 번째는 靜觀의 興趣와 存養이다. 반호는 시적 대상에 내재한 본질을 직관하여 심미적 흥취의 경험을 표현하고 그 정신적 상태를 작품 속에 투영시켰다. 그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겼으며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시로 표출하였다. 또한, 반호에게 자연은 <精衛>라는 시에서 보듯 탐미의 대상뿐만이 아니라 깨달음과 성취하고자 하는 造道의 대상이다. 사물 역시 성찰의 대상이 되었다. 두 번째는 초탈의 경지와 자적이다. 반호는 속세의 삶에 지쳐 있었다. 그래서 잠시 찾아간 맑고 깨끗한 자연의 모습에서 그는 단정하게 살고자 했던 본연의 모습을 깨우치며 청정함이 가져다주는 자연의 소중함에 감동한다. 더하여 반호는 世運이 쇠퇴하여 순박한 풍조가 점점 사라지는 세상을 보며은거를 꿈꾸었으며, 비록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그러한 갈망을 시에 표현하였다. 세 번째는 사회적 책무이다. 반호는 정조에게 학문적 성취를 인정받았고, 관직 생활을 하는 중에 영달을 누리기도 하였으나 소론 가문이라는 처지 때문에 정치적으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세속을 벗어나 자적하려는 의지를 늘 품고 있었지만, 사회적 책무에 대한 사명감을 잊지 않았다. 농가의 어려운 현실을 인식하고 그 문제해결의 책임이 위정자에게 있음을 토 로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곤욕이 자신의 문제만이 아니라 결국 위정자의 덕에 손상이 됨을 하소연하며 신하의 책무를 다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반호 윤광안의 시가 18세기 한시사의 새로운 흐름과 접목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시는 도문일치라는 유가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한 수작들이다. 아울러 소론계 문학의 탐구라는 측면에서 특히 소론의 다른 계열보다 상대적으로 연구가 미진한 노성지역의 파평윤씨 가문의 문학적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KCI등재후보

        Analysis of Some Heavy Metals in Selected BB Creams using ICP-MS and Mercury Analyzer

        Myoung Hee Lee(이명희) 융복합지식학회 2017 융복합지식학회논문지 Vol.5 No.2

        There has been an issue on the detection of heavy metals in several ingredients used for BB cream. Therefore, six brands of BB creams that were distributed in Korea were selected for measuring the content of heavy metals. The analysis was performed on As, Cd, Pb, Sb, Ni and Tl with ICP-MS, while analyzing Hg for three times by using mercury analyzer. Based on the experimental results, they were all turned out to have heavy metals in the level below the allowed limit. The content of Pb turned out to be higher as similar as the criterion in the BB cream of M brand compared to the products from other companies. The reason was assumed that the component named "talc" was applied making the content of Pb increase. There was a small amount of Tl in four products. However, there is a need to review the criteria for limited content of Tl.

      • 뇌졸중 환자에서 반복적인 양측성 운동학습 적용이 상지기능에 미치는 영향

        이명희,Lee,Myoung-Hee 대한물리치료학회 2003 대한물리치료학회지 Vol.15 No.3

        Chronic upper extremity hemiparesis is a leading cause of functional disability after stroke. The purpose of this study were to identify effects of a 6weeks repetitive bilateral arm training on upper motor function and the reorganization of motor network. Four chronic stroke patients participated in this study. They performed for 6 consecutive weeks, 3 days a week, 30 minutes a day. In the single group study, four 5-minute periods per session of bilateral arm training were performed with the use of a custom-designed arm training machine. The results of this study was as follows. 1. Following the 6weeks period of RBAT, patient exhibited a improvement in FMA and BBT. 2. Following the 6weeks period of RBAT, it showed improvement in reaching time, symbol digit substitution and finger tapping speed of KCNT. 3. fMRI activation after RBAT showed a focal map in lesional cortical area and perilesional motor areas. These fMRI data suggest that hemodynamics response to RBAT reflect sensorimotor reorganization in contralateral hemisphere. In conclusion, these date suggest that improved upper extremity function induced by repetitive bilateral arm training after stroke is associated with reorganization of motor network as a neural basis for the improvement of paratic upper extremity fun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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