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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論文) : 초기 노신의 종교관-과학과 미신

        이등호환 ( Ito Toramaru ),최문영역 고려대학교 중국학연구소 2008 中國學論叢 Vol.23 No.-

        在本評論中,伊藤虎丸開注魯迅 『破惡聲論』的`僞士當去,迷信可存`這一句。論者通過這一句話來考察魯迅宗敎觀和他思想的核心。伊藤虎丸主張所謂精神,個人,民主,法制,雖然都具有普遍性價値,但都是拿來主義。爲此,他認爲魯迅給我們提出了這樣的課題-즘樣來恢復戰士的`心聲`與`朴素`之民的`白心`的共鳴?有沒有一條從自身的士俗`神話`,`迷信`中,開創出新的産生現代科學的(東洋所沒有的)`精神`之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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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試論"對于小說與戱曲兩種文體槪念的認識過程"

        李騰淵(이등연) 중국어문논역학회 2005 中國語文論譯叢刊 Vol.16 No.-

        전통시기 소설이론 가운데 소설 장르의 본질적 특징에 대한 분석은 명ㆍ청 시기까지의 소설론에서는 주로 소설과 사서(史書)를 병렬ㆍ비교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는데, 만청 시기에 와서는 이른바 ‘신소설’과 이에 대응되는 구소설의 비교, 새롭게 번역 소개된 외국소설과 자국소설의 비교가 다양하게 제시되었고, 이런 과정에서 간혹 같은 서사문학에 속하는 고전희곡이 ‘언급’되기도 했다. 본고는 만청 시기와 이 시기 전후의 논자들이 특히 같은 서사 문학 갈래에 속하는 희곡과 소설의 범주 개념을 어떻게 혼용하거나 변별했는가에 중점을 두고 통시적 고찰을 진행해, 두서사 양식에 대한 변별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파악하고자 했다.<br/> 만청 소설이론에서 소설과 희곡의 관계에 대한 관점을 귀결해 볼 때, 일부 논자들은 양자를 구별해 다루면서, 그 이동(異同)에 주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논자들은 ‘소설’이란 용어로 소설과 희곡을 아예 함께 다루거나, 희곡을 소설의 한 ‘지류’로 여기고 있다. 이 경우, 그 이유를 제시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처럼 대부분 논자들이 소설과 희곡을 함께 다루었던 원인은, 우선 원명(元明 ) 이래 많은 희곡 작품들이 고사 줄거리를 소설에서 가져온 탓에 양자를 아예 동일한 장르로 간주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는 만청 시기에 유행한 ‘唱書’ 방식의 희곡 지류는 대부분 ‘공연’의 성격을 벗어난 채 ‘說書’에 가까웠기 때문에 소설에 포함시켜 다루려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볼 수 있다.<br/> 이와 같이 만청 시기에 희곡을 소설에 포함시켜 다루는 경향은 5ㆍ4 신문학 운동의 전개 과정과 그 이후의 논저에서 어떻게 계승되거나 극복되는가를 검토했을 때, 신문학 논의와 더불어 마련된 새로운 ‘문학’ 범주개념과 더불어 두 갈래를 혼용하는 시각은 대부분 극복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양자 혼용의 관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 《中?小?史大?》(1920), 范烟? 《中?小?史》(1927), 胡?琛 《中?小??究》(1929), ??工 《中?小?史十?》(1930年前後), ?祖怡 《小?纂要》(1948), 孟? 《中?小?史》(1965) 등 소설사에서는 정도의 차이는 다르지만 소설과 희곡의 장르적 특징을 변별하지 않고 함께 다루는 이전 시각이 드러나고 있음을 살필 수 있어, 양자혼효 현상의 자장(磁場)은 매우 길게 이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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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試論“孔子厄於陳蔡”故事的敍事轉變過程

        李騰淵 중국인문학회 2014 中國人文科學 Vol.0 No.56

        이 연구는 중국소설사의 전개 과정에서 본격적 소설의 선행 형태라 할 수 있는 우언‧제자산문‧역사산문 등 초기 서사가 후대 단편소설 및 장편소설에 과연 어떤 식으로 수용, 변화되면서 서사의 큰 흐름을 형성해나갔는가, 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를 위해 “孔子厄於陳蔡”라는 고사 모티프를 일례로 삼아 그 변화 과정을 분석했다. 이 모티프를 선택한 이유는 관련 내용이 『論語․衛靈公』편을 포함해 여러 선진‧양한 전적과 후대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변화되었기에 서사의 전개, 변화 문제를 탐색하는 데 매우 유용한 텍스트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공자의 가르침과 사적을 가장 충실히 담았다고 할 수 있는 『논어』에 보이는 “孔子厄於陳蔡” 내용은 30여자 밖에 되지 않은 매우 간략한 모습이지만, 『논어』 전후 선진‧양한시기의 다른 전적 속에서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출현한다. 『莊子』나 『墨子』 등 유가와 대립적인 다른 학파에서는 자신들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이 고사를 변형시켜 서술했고, 이런 서사 내용은 다시 후대 다른 전적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운용되었다. 이처럼 도가와 묵가 쪽에서 유가를 비판하거나, 유가의 인물을 이용해 거꾸로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면 『荀子』 등 유가 자체에서도 자신들의 사상과 이념을 고수하거나 다른 학파의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이 고사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한대 司馬遷의 『史記‧孔子世家』에서도 관련 내용을 기록했는데, 이전의 여러 諸子書나 문헌을 종합적으로 참고하면서도 독특한 서사 효과를 전달하는 방식을 취했기에 후대에 특히 자주 원용되었다. 한편, 이 “孔子厄於陳蔡” 고사는 ‘聖人의 극단적 곤궁’이라는 특별한 상황을 담은 흥미로운 모티프이기에 후대의 문언소설과 백화소설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주목할 점은 선진양한의 전적에서 “孔子厄於陳蔡”를 끌어올 때는 기본적으로 사상적 측면에서 이야기를 진행시켰다면, 초기소설 형태로서 『搜神記』와 같은 지괴소설에서는 이 소재를 더 이상 원래 상황을 반복 기술하거나 사상 논쟁 속에서 진행시키는 게 아니라 허구적 고사를 새롭게 가미, 부연하면서 인물의 선명한 대비를 통해 한층 흥미로운 이야기로 재창출했다는 것이다. 또한, 송대 이후 크게 흥성한 백화통속소설, 특히 역사소설에서 이 고사를 수용할 때는 대부분 『莊子』‧『孟子』‧『荀子』‧『韓詩外傳』‧『說苑』‧『史記』‧『說苑』‧『搜神記』 등 각종 諸子書와 史書, 소설 등 이전 전적에 실린 다양한 기록을 이리저리 원용하면서 작자가 자신의 문장을 첨가‧보충하는 식으로 재구성했다. 이 경우, 각 기록에 담긴 사상 경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모순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통속성과 재미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소설이기에 이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요컨대, 선진양한시기에 주로 사상 논쟁 과정에서 활용, 기록되었던 이 모티프는 전혀 다른 이야기 요소, 즉 허구로 재창조되거나 기존의 이질적 내용을 과감히 뒤섞는 방식으로 후대 소설에 수용되면서 새로운 서사 흐름의 자양분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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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试论冯梦龙小说评语中的小说观念 -以戏曲小说文类分合为中心-

        이등 중국인문학회 2014 中國人文科學 Vol.0 No.58

        전통시기 소설이론 전개 과정에서 소설 장르의 본질적 특징을 논할 때 선진에서 명․청 시기까지는 주로 소설과 사서(史書)를 병렬․비교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만청 시기에 와서는 당시 서구 소설의 유입 영향을 받은 이른바 ‘신소설’의 특징에 주목하게 되면서 이와 대응되는 구소설과의 비교, 새롭게 번역 소개된 외국소설과 자국소설의 비교가 다양하게 제시되었고, 이런 과정에서 간혹 같은 서사문학에 속하는 고전희곡조차 소설 범주에 포함시켜 다루기 일쑤였다. 본고는 만청 시기와 이 시기 전후의 논자들이 특히 같은 서사 문학 갈래에 속하는 희곡과 소설의 범주 개념을 혼용했던 상황과 그 원인을 규명했던 선행 논문 ≪试论对于小说与戏曲两种文体概念的认识过程----以晩淸小说批评中的视角为基点≫에서 파악했던 연구결과를 토대로, 이 문제를 만명(晩明)의 대표적 통속문학가 풍몽룡 소설관의 특징과 대조해 논의를 진일보 심화시키고자 했다. 그 결과, 풍몽룡이 “삼언”의 서문에 쓴 내용과 문언소설집 ≪정사≫에 쓴 평어 내용을 종합해볼 때 그는 ‘소설’과 ‘희곡’을 분명하게 구분해 제시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확인 작업을 통해 만청 시기 이전 풍몽룡을 포함한 대부분의 통속문학가들은 양자를 결코 혼용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혼용은 만청 시기 특수한 환경 속에서 새롭게 제기된 현상이었음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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