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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시대 송나라 해상 무역 상인의 활동 시기와 양상

        최영호 동의대학교 인문사회연구소 2010 인간과 문화 연구 Vol.16 No.-

        본 논문은 송나라 해상 무역 상인들이 고려사회에서 활동한 시기를 재검토하는 한편, 그들의 출신 지역과 활동 양상을 분석하였다. 기존 연구에서는 고려와 송나라의 해상 무역이 현종 3년(1012)부터 충렬왕 4년(1278)까지 전개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송나라의 해상 무역 상인들은 송나라의 건국 초기인 10세기 중기부터 고려사회를 드나들기 시작하여 송나라의 멸망 당해 연도인 충렬왕 5년까지 지속적으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고려와 송나라의 외교 관계나 자국의 해상 무역 금지 정책 및 정치적 위기 상황에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고려사회에서 해상무역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들 대부분은 송나라의 건국 전후에도 국제 해상 무역의 중심지로 발전한 泉州․台州․福州․明州․南楚․廣南․溫州․務州 지역의 출신이었다. 이로써 고려사회에는 10세기 중엽 이래 다양한 국제 교역 물품의 수입과 함께 이 지역의 유․불 지식인이나 전문 기술 인력과 선진 문화도 수용할 수 있었다. 이들 해상 무역 상인들은 무역물품의 교역이라는 경제적인 영역 이외, 정치․사회․문화적 교섭 등의 영역에서도 중요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들은 의약 및 무기․공예품의 재료와 함께 불교 경판․경전이나 백과사전류 등 다양한 문물을 유입시켰다. 이 경판이나 서적들은 고려사회의 불교 연구와 유학 진흥 및 출판 인쇄술을 발전시켰으며, 왕권과 통치 규범의 확립에도 활용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고려의 불교문화를 일본으로 전달하는 등 고려․송․일본을 연결하는 문화 교섭을 중개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들은 여․송 외교관계에 관여하였으며, 송나라와 고려의 문인․승려 지식인․전문 기술 인력과 사신 일행을 수송하기도 하였다. 한편 그들 가운데 일부는 고려의 관리로 임명되는 등 고려 국내 정치에도 참여하였다. 撰寫本文的目的在於一方面再探討宋朝海上貿易商人在高麗社會活動的具體時間, 一方面分析他們的籍貫和活動面貌. 旣往的硏究認爲高麗與宋朝的海上貿易從高麗顯宗3年(1012)開始進行到高麗忠烈王4年(1278)爲止. 其實海上貿易商人從10世紀中葉宋朝建國初期開始來往高麗, 而這種活動持續到高麗忠烈王5年宋朝滅亡爲止. 雖然高麗同宋朝之間的外交關係因時而變化, 有時候國家下令禁止海上貿易, 或是發生政治上的危機狀況, 但是他們不會收到打擊仍然與高麗進行海上貿易. 他們大部分出身於泉州․台州․福州․明州․南楚․廣南․溫州․務州地區, 這些地區在宋朝建國前後已經成爲國際海上貿易的中心地了. 這些海上貿易商人除了在經濟方面進行物品交易以外, 還有在政治․社會․文化交流等方面也發揮了重要功能. 他們將藥品, 武器․工藝品材料, 佛敎經板․經典, 百科全書等各種文物帶進來了. 這些經板和書籍, 一面促進高麗社會的佛敎硏究, 儒學振興以及出版印刷術的發展, 一面有助於王權和統治規範的樹立. 他們還有擔當國際文化交涉中間人之角色, 將高麗的佛敎文化傳給日本. 他們又過問高麗與宋朝之間的外交關係, 幇助宋朝和高麗之間文人․僧侶․知識分子․技術人員․使臣的來往. 甚至他們當中一部分人作爲官吏, 參與高麗內政.

      • 한반도 거주 일본인의 패전 직후 단체 활동

        최영호 동의대학교 인문사회연구소 2010 인간과 문화 연구 Vol.17 No.-

        본 논문은 식민지 시기 한반도에 거주하던 일본인의 단체활동으로서 패전 직후에 한반도에서 결성된 ‘세화회’와 그 후속으로 일본에서 결성된 ‘조선인양동포세화회’의 존재와 활동을 소개하는 것이다. 특히 세화회의 기관지《인양동포(引揚同胞)》의 내용에서,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귀환한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 살펴보았다. 이때 1946년 4월부터 10월까지의 기간에 한하여 기관지 내용을 조사했다. 이것은 그 시기가 귀환 직후 시기이기도 하고 귀환자의 다양한 관심사가 단체에 제기되는 시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는 다른 지역에서 귀환한 사람들의 단체와 연계하여 일반적인 권익 추구 활동에 전념해 나갔다. 1946년 11월 ‘귀환자 단체 전국연합회’가 출범하자 세화회는 그 단체의 산하에 들어갔고 세화회 회장 호즈미 신로쿠로(穂積真六郎)는 이 단체의 이사장으로 연합회 활동에 주력함으로써 되었다. ‘세화회’의 단체 활동으로 나타난 바와 같이 귀환자들이 일본에 귀환한 직후에 품고 있던 주요 관심사는 한반도에 남아있는 일본인의 조기 철수 문제와 한반도에 두고 온 재산의 보상 문제, 그리고 귀환자들의 일본 정착을 위한 권익 보호 문제 등이었다. 주요 관심사를 본 논문에서는 (1) 북한 지역에 남겨진 일본인과의 접촉 문제, (2) 귀농 문제, (3) 관공서 관리의 처우 문제, (4) 한반도 재산 문제, (5) 재정 문제, (6) 호적과 국적 문제, (7) 자격증 및 학력 인정 문제, (8) 치료와 요양의 문제로 나누어 기관지 내용에서 각각 실증해 냈다. 귀환 과정에서 세화회가 남긴 ‘회보’에서는 과거의 식민지 지배에 대하여, 조선 사람과 고락을 함께 해 왔다는 인식, 식민지의 시절과 자연을 그리워하는 인식, 식민지 지배와 결별의 현실을 받아들이려는 인식,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는 인식과 함께 일부 식민지 지배를 반성한다는 인식을 엿볼 수가 있다. 그러나 귀환을 마친 일본인을 대변하는 ‘귀환 동포’에서는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의 인식은 찾아볼 수 없다. 本論文は、敗戦直後における在朝日本人の団体活動として、朝鮮半島での世話会の続きとして、日本での'朝鮮引揚同胞世話会'の存在と活動を紹介するものである。特に、世話会の機関誌《引揚同胞》の内容から、朝鮮半島から日本へ引揚た人々の主な関心事が何であったかを探ってみた。ただ、1946年4月から10月までの期間に限って《引揚同胞》を調べた。これは、その時期は引揚直後の時期でもあり、引揚者から多様な関心事が団体に寄せられる時期であったからである。代わりにその後は、他の地域からの引揚者の団体と連携し、共通の権益追求活動に専念していくのである。1946年11月‘引揚者団体全国連合会’が発足するや、世話会はその団体の傘下に入り、世話会の会長穂積真六郎は、その団体の理事長として連合会の活動に注力することになった。 世話会の団体活動として表われた、引揚者が日本へ引揚た直後に抱いていた主な関心事は、朝鮮半島に残っている日本人の早期引揚問題や、朝鮮半島に置いてきた財産の補償問題、それから引揚者の日本定着のための権益保護問題などであった。主な関心事を、本論文では、(1)北朝鮮地域に残された日本人との連絡問題、(2)帰農の問題、(3)官吏・公吏の処遇問題、(4)朝鮮半島の財産問題、(5)金融問題、(6)戸籍や国籍問題、(7)資格証と学歴認定の問題、(8)治療と療養の問題に分け、機関誌の内容から各々実証した。 なお、機関誌の内容から、朝鮮半島の財産への強い執着に比べ、過去植民地支配に対する反省は全然表われなかったことが確認できる。引揚の過程で朝鮮半島の世話会が残した《會報》からは、過去の植民地支配に対して、朝鮮人とともに苦しみ楽しんできたという認識、植民地の時と自然を懐かしむという認識、植民地支配との決別の現実を受け入れようという認識、植民地支配を美化する認識とともに、一部植民地支配を反省するという認識が窺えるが、引揚た日本人を代弁する《引揚同胞》からは、植民地支配への反省の認識は一切見出すことができない。

      • OpenAPI 검색시스템을 위한 시맨틱 어노테이션 도구 개발

        최영호,차승준,이규철 한국전자거래학회 2011 한국전자거래학회 학술대회 발표집 Vol.2011 No.4

        본 논문에서는 OpenAPI 검색 시스템에 활용되는 시맨틱 어노테이션 도구를 개발하였다. OpenAPI검색 시스템에서의 시맨틱 어노테이션이란 온톨로지를 이용하여 웹페이지에 의미 정보를 추가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시맨틱 어노테이션 수행 시 웹페이지에 의미정보를 직접 입력해야 했기 때문에 웹 구조 및 내용에 대한 지식이 있는 전문가가 아닌 경우 입력이 어렵고, 일일이 수작업으로 입력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잘못 입력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본 논문에서는 우선 관련연구로 MicroWSMO modelReference 를 위한 시맨틱 어노테이션 도구인 SWEET 와 온톨로지를 활용한 시맨틱 어노테이션을 위한 OntospaceAnnotator 를 분석하여 어노테이션에 필요한 기능을 도출하였다. 이를 참조하여 어노테이션에 필요한 항목들을 추출하여 테이블화한 후 선택하는 기능과, 참조할 온톨로지 클래스의 선택을 위한 온톨로지 트리/그래프 뷰어를 개발했다. 도구는 OpenAPI검색 시스템과의 연동을 위해 자바 스윙 기반으로 작성하여 웹페이지에서 애플릿 형태로 동작하도록 개발하였다. 개발된 시맨틱 어노테이션 도구를 통한 손쉬운 입력으로 효과적인 OpenAPI 의미검색을 위한 기반이 마련되었다.

      • KCI등재

        海印寺大藏經板의 구성체계와 범위

        최영호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17 石堂論叢 Vol.0 No.68

        이 글은 국보 제32호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의 역사․문화적인 성격을 진단할 수 있는 해인사대장경판의 구성체계․범위를 분석하였다. 해인사대장경판의 구성체계와 범위는 현재 大藏과 補遺板에 편입된 개별경판의 역사․문화적인 실체와 성격을 차별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함께 묶어 분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이해방식은 해인사대장경판이 조성된 13세기 중엽 당시와 차이를 보이며, 조선 고종 2년(1865) 『補遺目錄』이 조성되면서 단초가 제공되었다. 해인사대장경판의 대장에 포함된 1,498종의 경전은 13세기 중엽 당시부터 보유판 16종의 경전과 별도의 구성체계로 분류․기획되었다. 이러한 구성체계의 인식적 틀은 14세기 말 우왕 때와 15세기 중엽 세조 때를 이어 18~19세기 중엽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조선 고종 2년 해인사대장경판 인출불사의 직후 『보유목록』이 조성되면서 보유판이 대장과 함께 착종되어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1914~5년 조선총독부의 인출불사 때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1915년 이후에는 우리나라 승려․불교지식인들과 함께 일제식민주의 연구자들의 대부분이 그 구성범위를 보유판까지 포함하여 이해하였으며, 1934년 조선총독부의 보물 지정과 1962년 국보 제32호로 지정될 때도 그대로 투영되었다. 그러면서 1990년대 이래 다양한 연구성과가 새롭게 도출되고 있으므로 객관적이고 다양한 분석지표를 근거로 재조정의 여지도 가진다. 대장 및 보유판의 구성체계와 범위는 간행기록(刊記)․각수를 비롯하여 형태서지학적 기본정보 및 경판의 외형적 형태 등과 같이 다양한 분석지표로 진단․분류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분석지표는 복합적이고 교차적으로 활용할 때 보다 객관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으면서 필요충분조건을 충족하는 개별지표로 제한적인 측면도 발견된다. 이에 비해 필요충분조건의 분석지표로는 13세기 중엽 당시나 그 이후 인출된 인경본의 구성범위와 함께 당대 高麗國大藏都監에서 조성된 『大藏目錄』과 『高麗國新雕大藏校正別錄』에 편입된 개별경전의 종류가 핵심적인 원천자료로 주목된다. 이들 분석지표를 근거로 해인사대장경판에 편입된 대장의 구성체계와 범위는 『대장목록』에 입장된 1,498종류 경전의 개별경판에 해당하는 『대반야바라밀다경』 권1(天함)부터 『일체경음의』 권100(洞함)까지 별도로 분류할 수 있다. 이러한 구성체계와 범위는 13세기 중엽 당시 이미 하나의 독립적인 구성체계로 기획․분류되었던 역사․문화적인 실체와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때문에 그 집합체의 명칭도 ‘대장(또는 대장경․장경)’, ‘고려국신조대장’으로 명명하는 것이 객관적일 것이다. This paper attempts to analyze into the composition system & bounds of the Haein-temple-Tripitaka Printing Blocks. the source material utilized a various analysis-indexes such as the publishing- records & sculpturers(刻手) of the Haein-temple- Tripitaka Printing Blocks, the outside form of an individual Printing-Blocks, a printing bounds of the printed Books, and the catalogue of the individual Buddhist-scriptures that have been included among the Koryo- Dynasty's Tripitaka-catalogue(大藏目錄) & the Koryokukshinjodae- changkyochongbyollock(高麗國新雕大藏挍正別録) etc. At present, the composition system & bounds of the Haein- temple-Tripitaka Printing Blocks is grouped together with the Daejang(大藏) & Boyu-woodblock(補遺板). therefore, we are not discriminately against the historical & cultural character of the individual Buddhist Printing-Blocks that have been included among the Daejang & Boyu-woodblock. this system of classification was provided by the 2nd year(1865) of Year 2 of the Joseon Dynasty's King Gojong, has been established since 1914~5 year when the Joseon Government-General(朝鮮總督府) has printed the Haein- temple-Tripitaka Printing Blocks. However, this system of classification differs from the mid-century of the 13th century when the Haein-temple-Tripitaka Printing Blocks has been made up. in particular, the Koryo- Dynasty's Tripitaka-catalogue is included among 1,498 kinds of the individual Buddhist-scriptures that have been listed from 1 volume of the Prajnaparamita-Sutra(大般若波羅蜜多經) to 100 volume of the Ilcheongeum-Sutra(一切經音義). the Koryo-Dynasty's Tripitaka -catalogue was created in the mid-13th century, is included among 1,498 kinds of the individual Buddhist-scriptures. soon, 1,498 kinds of the individual Buddhist-scriptures are included in the Daejang. therefore, the Daejang should be distinguished from the Boyu- woodblock, should be classified as a separate composition system. this composition system & bounds of the Haein-temple-Tripitaka Printing Blocks reflects the historical & cultural character of the mid-13th century. On the other hand, the title of the Daejang can also be called the Tripitaka(大藏經) & the Changkyung(藏經) & the Koryo-Dynasty‘s Shinjo-Daejang(高麗國新雕大藏).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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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말여초 김해지역의 對中國 해상교섭

        최영호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11 石堂論叢 Vol.0 No.50

        This case study aimed at analysis of the maritime contacts between the Gimhae-region and Chinese-Dynasties during the Silla-Dynasty-last period & Goryo-Dynasty-early period. the contents are pattern & base & leading figures & progressing form & changing process of a maritime contacts. The Gimhae-region is located in the Lower-Nakdong-River(洛東江下流) there can connect a seaway of the East-Sea(東海) & South-Sea(南海). these geographical environment was possible to evolve a maritime contacts between the Gimhae-region and After-Dang-Dynasty(後唐) during the Silla-Dynasty-last period & Goryo-Dynasty-early period. At this time, the leading figures of a maritime contacts were Gim-Ingwang(金仁匡) & the brothers of So-Chungja(蘇忠子)․So- Yulhui(蘇律熙). a maritime-progressing form of the Gimhae-region has on their own deployment, and has be linked with the Silla's government & Wang-Bonggyu(王逢規) of the Gangju(康州)-region. Since then, a maritime negotiations of the Gimhae-region has been weakened during the war's time of After-Three-Kingdoms(後三國). in particular, its position has been almost lost after the First-Emperor(太祖) Wang-Geon(王建) of Goryo-Dynasty(高麗) then the capital has been transferred into the Gaegyeong(開京) -region at the Gyeongju(慶州)-region. 본 논문은 나말여초 김해지역의 대중국 해상교섭에 대한 양상과 기반, 그 주도세력과 함께 전개형태 및 변동과정을 분석하였다. 김해지역은 동남연안의 해로로 직결되는 낙동강하류에 위치한 지리환경을 활용하여 나말여초에도 후당 등 중국지역과 해상교섭을 전개하였다. 이 시기에도 선박이나 항해 전문인력 및 항해술, 그리고 항로 등과 같이 다양한 내적 기반과 조건을 확보하여 후당 등 중국과 해상교섭을 전개하였다. 특히 경애왕 재위 4년 3월에는 金州司馬 李彦謨가 중국 登州로 파견되는 등 후당과 직접적인 해상교섭을 지속하고 있었다. 이 당시 해상교섭은 진성여왕 말~효공왕 초기부터 김해지역의 지방세력으로 등장한 金仁匡과 그를 이은 蘇(金)忠子․律熙 형제가 주도세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이 지낸 諸軍事職이나 明義將軍이 후당에서 임명 또는 추인되거나 중국의 영향으로 자칭한 관작이라는 점 등에서 알 수 있다. 나말여초 김해지역은 대중국 해상교섭을 독자적으로 전개하면서도 신라조정이나 康州의 王逢規세력과 연계하여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강주 및 신라조정과의 연계는 金州司馬 李彦謨가 權知康州事 왕봉규와 함께 나란히 후당으로부터 관작을 받고 신라의 登州知後官을 겸직한 사실, 해상교통로에서 강주와 김해지역의 입지적 조건, 소충자․율희 형제의 신라조정과의 우호적 관계 등에서 확인된다. 김해지역의 해상교섭은 후삼국의 쟁패과정에서 김해지역 내부의 정치적 동향과 함께 해상교통로의 안정적 확보 여부에 따라 변동과정을 겪었다. 경명왕 4년(920) 후백제 견훤의 進禮郡 공격 때 김해지역의 해상교섭도 일시적 타격을 입기도 하였으나, 곧 회복되었다. 그러나 견훤이 서․남해연안의 중요 거점지역들을 후백제의 영향권역으로 재편한 경순왕 2년(928) 5월경부터 같은 왕 9년까지 크게 위축되는 등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러다가 고려 태조가 재위 23년 김해를 臨海縣으로 군현의 위상을 강등하는 동시에 排岸使라는 임시 관리를 파견하면서 김해지역의 대중국 해상교섭도 크게 위축되었다. 김해지역의 대중국 해상교섭은 경순왕 때 중국 선진문화의 수요층과 그 물적 자원이 경주에서 개경으로 옮겨가면서 이미 상실하여 정치․문화적 주변부로 전락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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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동조합 교육에 대한 대구 지역 관계자의 인식 유형 분석

        최영호,정홍상,진상현 한국주관성연구학회 2022 주관성연구 Vol.- No.58

        본 연구의 목적은 협동조합기본법의 제정 이후에 설립된 조합의 발전을 위해 제공되는 협동조합 교육에 대한 관계자들의 인식을 유형화하는데 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협동조합 교육에 대한 관계자들의 인식은 4개 유형으로 나타났다. 제1유형은 ‘수요자 주도 교육 중시형’으로 수요자가 주도하는 교육으로의 방향 전환을 선호하였다. 제2유형은 ‘현실 순응적 발전 추구형’으로 현재의 시스템을 인정하면서도 콘텐츠의 개선을 추구하였다. 제3유형은 ‘현장밀착 교육 우선형’으로 다양한 현장 상황에 부합하는 교육의 필요성을 요구하였다. 제4유형은 ‘내부적 성장 기여형’으로 협동조합 교육은 조합의 결속 및 성장에 기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식하였다. 결론적으로 국내 협동조합 관련 교육이 조합 운영의 현실에 부합되도록 개선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수요자인 협동조합 관계자들의 자발적 노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정책적 제안이 이루어질 수 있다. This study examines the subjective perception of stakeholder’s group on the education of cooperative through the Q­methodology analysis. The result is that the participants have four kinds of perception types: consumer leading education type, advancing improvement of current education type, customized education type, and education contributing for cooperative development type. As a result of the analysis, these four types of the perception could draw a couple of policy implications; cooperative education has to be tuned with the reality of cooperatives, and the government authorities need to consider the education programs thoughtfully. In conclusion, this study suggests that establishing various programs according to the customer’s characteristics and reinforcing voluntary efforts of participants in the cooperatives are necess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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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격동 종양으로 오인된 결핵성 농포

        최영호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1987 Journal of Chest Surgery (J Chest Surg) Vol.20 No.3

        Tuberculosis is one of the most common chronic disease. While the disease process may involve anywhere of the body, tuberculosis of anterior mediastinum which forming tumor like mass was not recognized commonly. We experienced a surgical case of tuberculous empyema thoracis at anterior mediastinum in 16 year old boy. Preoperatively, he was diagnosed to anterior mediastinal tumor such as teratoma or dermoid cyst by routine study. Operation was performed by midline sternotomy extending over right 4th intercostal space. The mass was elongated football shaped [20x16x15] and markedly adhered to right side of pericardium, upper 8< lower lobe of the right lung. Opening the mass, enormous pus-like material was evacuated and excised segmentally with decortication. Postoperative pathologic diagnosis was tuberculous empyema thoracis and granul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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