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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규장각 일부 후사본 읍지와 이마니시문고의 관계

        이재두(Lee, Jae-Doo)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20 한국민족문화 Vol.74 No.-

        조선 후기 읍지 연구는 규장각 소장본을 중심으로 해제 작업과 연구 활동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규장각 읍지들의 소장 경위나 읍지 편찬 시기 등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는 부족하였다. 읍지는 각 고을의 역사 지리 인문 정보를 다양하게 수록하고 있어 식민 지배에 유용한 자료였다. 조선총독부 취조국과 참사관분실은 읍지의 수집과 전사에 힘을 기울여 1915년경에는 959종의 읍지를 보유하게 되었다. 현재 규장각의 도서번호 규17355번부터 규17539번까지 184종 188개 고을 189개의 읍지는 당시에 제작한 ‘후사본’이다. 이 읍지들은 취조국과 참사관분실이 비교적 이른 시기의 읍지를 바탕으로 제작한 후사본이다. 처음에는 몇몇 고을씩 합철하고 도서번호를 매기지 않았지만, 고을별로 분할하면서 도서번호를 부여하였다. 규장각의 후사본 읍지는 편찬 시기가 이른 경우들이 많아 조선후기 읍지편찬 사업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사료였다. 그러나 연속하는 번호 대에 있는 이들 읍지가 일제 강점 이후 동일한 시기에 일률적인 지침에 따라 원본을 베낀 후사본이라는 인식은 부족하였다. 후사본 읍지들은 숙종, 영조, 정조 시기 정부 주도 읍지 편찬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야기할 수 있다. 후사본 189개 읍지 가운데 69%인 130개 읍지의 원본은 일본 덴리대학 덴리도서관의 이마니시문고가 소장하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10%인 20개 읍지의 원본을 소장하고 있다. 따라서 후사본의 원본인 이마니시문고의 읍지는 장서각의 일부 읍지들처럼 대한제국 제실도서로 규장각이 관리해 오던 도서들이었다. 1910년 일제 강점 이후 규장각을 폐지하고 이왕직이 관리하던 제실도서가 1911년 6월 규장각도서와 장서각도서로 분리될 때, 장서각도서로 분류되어 이왕직이 관리하였다. 1910년대 구관제도 조사사업의 일환으로 조선총독부 취조국과 참사관실이 장서각의 원본을 베끼는 과정에서 장서각에는 일부만 남고 대부분은 이마니시가 소장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후사본은 원본에 있던 지도를 모두 생략하였으며, 원형을 무시하고, 장당 24행×24자로 통일시켰다. 경기도와 경상도의 원본은 인찰정간에 장당 24행×20자, 20행×20자로 정서한 선본이다. 이에 비해 다른 지역의 읍지들은 선본도 있지만, 원본 자체도 전사한 후사본인 경우가 있어, 읍지의 크기와 서체가 일정하지 않거나, 별지가 들어 있기도 하다. 원본은 처음에는 고을별로 성책한 상태였는데, 전사 작업 뒤 몇몇 고을씩 합철하기도 하였다. 조선후기 읍지 편찬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마니시문고 읍지 전체를 대상으로 편찬 시기와 읍지 유형 등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아울러 규장각을 비롯하여 국립고궁박물관, 장서각, 국사편찬위원회, 한국교회사연구소 등 주요 기관 및 개인 소장 읍지는 물론 고려대학교 해외한국학 자료센터 등에서 영인한 읍지들 전체에 대한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Kyujanggak"s 189 eupjis, from book number No. 17355 to Kyu 17539, are hand-copied eupjis. Imawanishi"s Collection of Tenry Library has 69 percent, or 130 original books. The eupjis, which were owned by Imawanish, were the royal books of the Korean Empire, the eupjis that were previously owned by the central government office, or the eupjis collected from The Consulate"s office, or by Imawanish while participating in the Joseon Historical Research Project since 1906. The Consulate"s office was combined several counties based on the ‘Imawanish eupjis’. At first, the book number was not assigned, but then the book number was assigned the county by division of each county. Compared to the Imawanish eupjis, the copied editions make it difficult to identify the original form of the eupjis at the time of the eupji"s compilation. Some of the critical years, the names of the previous year"s local authorities and contents were omitted in determining the timing of the compilation, or some other contents were included in the eupji. While copying the eupji, he corrected the clear error or incorporated the contents of the annex into the text. In order to fully understand the reality of the compilation of the eupjis in the late Joseon Dynasty, it is necessary to understand the copied editions properly through the original eupjis of Imawanishi"s Collection, but it is also necessary to study the whole eupjis of Imawanishi"s Collection in the future.

      • KCI등재

        규장각의 문서제도와 그 위상

        김건우 ( Kun Woo Kim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2 嶺南學 Vol.0 No.21

        본 논문은 규장각의 문서제도를 살펴봄으로써 규장각 운용방식의 실상, 그 위상을 밝히고자 하였다. 조선왕조의 통치 구조와 그 운영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규장각의 문서제도를 분석한 연구 성과는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정조는 즉위 직후 규장각 설치와 운영에 온갖 노력을 쏟았으며 그 위상에 걸맞게 문서제도를 확립시켜 나아갔다. 규장각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례가 바로 告身과 敎書의 형식을 섞어 만든 규장각 閣臣敎旨이다. 또한 규장각 箚子와 上疏 제출 과정 또한 의정부와 홍문관의 편이한 절차를 겸비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종2품아문 규장각이 의정부·종친부·돈령부·중추부 등과 같은 1품아문에 關文을 보낼 수 있었으며, 지방 감영을 경유하지 않고 곧바로 外邑에 공문서를 보낼 수도 있었다. 끝으로 세 가지 규장각 관련 璽寶를 새로이 제작하여 사용한 것은 그 위상과 운용방식을 상징처럼 대변해 주고 있다. This article intended to find out the real operation of Kyujanggak(奎章閣) and its status by examining the document system of Kyujanggak. Though it was an important topic in terms of Joseon dynasty`s ruling operation, the document system had hardly been studied. King Jeongjo(正祖) had exerted himself in on the setup and operation of Kyujanggak since his accession and had established its document system as befits its status. A representative example of the status is the Gyoji(敎旨, appointment certificate) of Kyujanggak officers, an unique document which combined the forms of appointment certificate and Goyseo(敎書). Besides, Kyujanggak`s other documents, which were submitted to king, were made to have also the convenience the documents of Uijeongbu(議政府) and Hongmungwan(弘文館) had. Kyujanggak also could exchange documents with other offices and send to local governments directly. It was the only institute that could use the Royal seal on its name, which clearly showed the status and operation system of Kyujanggak.

      • KCI등재후보

        『여유당전서』 "경집(經集)" 필사본에 관한 고찰 -규장각본과 아사미문고본의 비교를 중심으로

        장동우 ( Dong Woo Chang ) 다산학술문화재단 2009 다산학 Vol.- No.15

        본 연구는 기존의 연구를 기반으로 아사미문고The Asami Library 소장경집經集 관련 필사본筆寫本과 국내에 소장되어 있는 이본異本과의 대조對照를 통해 필사본들의 대체적인 계열을 확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상의 분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시경강의』의 경우, 아사미본이 규장각奎章閣본보다 선행先行본이며, 규장각본은 신조선사본보다 선행본이다. 신조선사본은 아사미본 또는 규장각본과는 달리 다산의 허가가 없으면 안 될 정도의 개정改正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규장각본과 신조선사본의 중간에 또 다른 필사본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매씨상서평』의 경우, 아사미본에서 규장각본 그리고 신조선사본으로 개정이 매끄럽게 진행되고 있다. 셋째, 『상서지원록』의 경우, 보유補遺본이 아사미본보다 선행본이다. 규장각본은 아사미본을 보완하여 보유본에 근접하고 있는 경향을 보여준다. 넷째, 『상례외편』 「단궁잠오」의 경우, 아사미본과 규장각본은 선후관계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내용상 차이가 없다. 여유당집본과 신조선사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규장각본과 여유당집본의 관계인데, 이 또한 『시경강의』의 경우에서처럼 또 다른 필사본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으면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다섯째, 『춘추고징』의 경우, 아사미본이 규장각본보다 선행본이다. 다만 규장각본과 신조선사본 사이에는 『시경강의』의 경우와 동일한 문제가 놓여 있다. 여섯째, 『악서고존』과 『상의절요』 그리고 『논어수차』의 경우, 아사미본이 규장각본보다 선행본이다. 『악서고존』과 『상의절요』는 신조선사본과 거의 동일한 것이므로 신조선사본의 저본底本으로 볼 수 있다. 최소한 『시경강의詩經講義』와『상례외편喪禮外編』(「檀箴誤弓」) 그리고 『춘추고징春秋考徵』의 경우는 아사미문고본을 반영하여 만들어진 규장 각본(사암경집)을 신조선사본의 저본으로 볼 수 없다. 즉 신조선사본과 규장각본(사암경집)을 연결시켜 줄 또 다른 판본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onfirm the general series of the transcribed texts through comparing between the transcribed text related to Gyeongjip(經集) possessed by the Asami Library and the Ibon(異本) possessed by a country, based on the existing research. Given summarizing the above analysis, those are as follows. First, in case of Sigyeonggangui, the Asami copy(本) is more prior to Gyujanggak(奎章閣) copy. The Gyujanggak copy is more prior to Shinjo-seonsa copy. The Shinjoseonsa copy is being revised enough to fail to be done without Dasan`s permission, unlike Asami copy or Gyujanggak copy. This is estimated to show that another transcribed text existed in the middle of Gyujanggak copy and Shinjoseonsa copy. Second, in case of Maessisangseopyeong, the revision is being smoothly made from Asami copy to Gyujanggak copy and Shinjoseonsa copy. Third, in case of Sangseojiwonrok, the Boyu(補遺) copy is more prior to Asami copy. The Gyujanggak copy supplements Asami copy, thereby showing tendency of coming close to Boyu copy. Fourth, in case of Sangryeoepyeon and Dangungjamo, the Asami copy and the Gyujanggak copy have no difference in light of contents enough to be unable to distinguish the front-and-rear relationship. It is same even in case of Yeoyudangjip copy and Shinjoseonsa copy. A problem is the relationship between Gyujanggak copy and Yeoyudangjip copy. This is also difficult to explain without supposing the existence of another transcribed text like a case of Sigyeonggangui. Fifth, in case of Chunchugojing, the Asami copy is more prior to the Gyujanggak copy. Still, There is the same problem as Sigyeonggangui between Gyujanggak copy and Shinjoseonsa copy. Sixthly, in case of Akseogojon, Sanguijeolyo and Noneosucha, the Asami copy is more prior to Gyujanggak copy. Akseogojon and Sanguijeolyo are almost same as Shinjoseonsa copy, thereby being able to be seen as the original text of Shinjoseonsa copy.

      • KCI등재

        조선 후기 閣臣敎旨와 春坊敎旨의 시행과 제도

        노인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21 규장각 Vol.58 No.-

        조선 후기 각신교지와 춘방교지는 정조와 고종 연간에 시행된 규장각과 세자시강원 관원의 임명문서이다. 정조는 규장각의 권한과 기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宋의 제도를 참고하여 각신교지를 시행하였다. 이후 고종은 세자시강원의 권한과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정조가 시행한 각신교지를 참고하여 춘방교지를 시행하였다. 각신교지와 춘방교지는 시행된 기간이 짧고 수취하는 관원도 제한적이며 규장각과 세자시강원에 처음 임명될 때에 발급되었기 때문에 현전하는 문서가 매우 적었다. 문서 양식은 국왕의 임명문서인 告身과 명령문서인 敎書를 함께 반영하였다. 문서의 1행에 ‘敎旨’를 기재하고 2행에 ‘王若曰’로 시작하였다. 본문은 규장각․세자시강원 관직과 업무의 중요성, 임명한 이유, 국왕이 당부하는 내용 등을 騈麗文으로 제술하여 수록하였다. 본문의 끝부분은 규장각과 세자시강원에 임명된 관직을 ‘以某階某職某爲某階某職者’로 끝맺고 있다. 본문의 다음 행에는 淸의 연호와 월일로 발급일자를 기재하였다. 각신교지는 濬哲之寶를, 춘방교지는 濬明之寶를 각각 安寶하였다. 각신교지와 춘방교지의 발급은 製述과 正書·安寶의 과정을 거치면서 국왕의 결재를 2차례 받았다. 춘방교지의 경우에는 제술된 敎旨草件을 왕세자가 먼저 결재하는 과정이 추가되었다. 각신교지와 춘방교지의 수취는 규장각과 세자시강원에 임명된 관원이 국왕에게 謝恩肅拜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각신교지와 춘방교지는 국왕이 규장각과 세자시강원의 권한과 기능을 강화하고 관원을 우대하기 위해 시행된 문서 제도로 볼 수 있다.

      • KCI등재

        규장각 소장 『註解水滸志語錄』과 小倉文庫 소장 『水滸誌語錄』의 영향관계에 대한 연구

        원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22 규장각 Vol.60 No.-

        이 연구는 규장각 소장 『註解水滸志語錄』과 小倉文庫 소장 『水滸誌語錄』의 영향관계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규장각 소장 『註解水滸志語錄』과 小倉文庫 소장 『水滸誌語錄』은 水滸誌語錄解, 西遊記語錄解, 西廂記語錄解를 篇目의 순서에 따라 모두 수록한 小說語錄解의 독자적인 이본이다. 서지적으로 볼 때 두 이본은 서지 형태와 수록 내용에서 공통점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규장각 소장 『註解水滸志語錄』과 小倉文庫 소장 『水滸誌語錄』은 같은 계열의 이본임을 추정하였다. 규장각 소장 『註解水滸志語錄』과 小倉文庫 소장 『水滸誌語錄』의 영향관계를 밝히기 위하여 小倉文庫 소장 『水滸誌語錄』의 추기 표제 항목과 수정 내용을 중심으로 규장각 소장 『註解水滸志語錄』과 비교하여 분석하였다. 小倉文庫 소장 『水滸誌語錄』에서 추기된 표제 항목이 대부분 규장각 소장 『註解水滸志語錄』에 수록된 것을 고려할 때 규장각 소장 『註解水滸志語錄』은 小倉文庫 소장 『水滸誌語錄』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또한 규장각 소장 『註解水滸志語錄』에서는 小倉文庫 소장 『水滸誌語錄』에 나타난 글자의 수정, 삽입, 삭제, 도치 관련 수정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때문에 규장각 소장 『註解水滸志語錄』은 小倉文庫 소장 『水滸誌語錄』을 직접적으로 참고하여 편찬하였다고 보았다.

      • KCI등재

        『奎章閣書目』을 통해 본 규장각 장서

        박현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5 한국문화 Vol.70 No.-

        Gyujanggak Seomok(奎章閣書目) is a full list of the books from Gyujanggak(奎章閣, Royal Library) written during the reign of Gojong and Sunjo. It is a compilation of the list of books from three places; Yeolgogwan(閱古觀) where books of China were collected, Seogo(西庫) where books of Joseon were collected, and Yimunwon(摛文院) which was an associated office of the Royal Library. Existing three kinds of Gyujanggak Seomok which were written with some time differences provide clues to restore the collections of the Royal Library. This article examines the situation and changes of the collections from the Royal Library during the reign of Gojong and Sunjo through the Gyujanggak Seomok. This article mainly focuses on two issues. First, it explores the current condition, written period, and characteristics of each book lists as a basic investigation of three kinds of the Gyujanggak Seomok. Second, it examines the transfer and changes that occurred to the collection through the Gyujanggak Seomok. From this, we can better understand the management of the books by the state with the Royal Library at the center, and the feature of the pre-modern culture of the book collections.

      • KCI등재

        규장각(奎章閣) 소장(所藏) 중국본(中國本) 고서(古書) 정리(整理) 및 연구(硏究)에 관한 규견(窺見)

        김호 ( Kim Ho ) 한국중국학회 2018 중국학보 Vol.83 No.-

        규장각은 국립중앙도서관, 한국학중앙연구원장서각과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고서 소장 기구이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중국본 고서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매우 가치가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다만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고서에 대한 정리와 연구는 대부분 한국본에 집중되어 있고 중국본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게다가 소장 중국본 고서의 문헌가치를 일차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규장각도서중국본종합목록』에도 적지 않은 오류가 발견되는데 이는 관련 연구 진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본문은 먼저 규장각 소장 중국본 고서에 대한 본격적인 정리와 연구 이전에 중국본이라는 개념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함을 설명하고, 뒤이어 『규장각도서중국본종합목록』에 나타나는 약간의 오류를 지적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규장각 소장 중국고서와 관련된 정리와 연구에 대해 몇 가지 의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The Kyujanggak (the royal library of the Joseon Dynasty) is Korea's representative organization owning ancient books, along with the National Central Library and the Jangseogak Archives at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The ancient books printed in China owned by the Kyujanggak are thought to be very valuable in both quality and quantity. But in reality, among the Kyujanggak-owned books, most of the books that are used for research and are arranged are the ones printed in Korea, while the ones printed in China are relatively few in number. In addition, the fact that not a few errors are found even in “the union catalog of the Kyujanggak books printed in China,” which helps primarily grasp the value of the ancient books printed in China as literature, is negatively affecting the progress of relevant studies. First, the body of this paper intends to explain that a change in perception of the concept of ancient books printed in China is necessary before arranging the Kyujanggak-owned ancient books printed in China and conducting studies of them in earnest, and then point out some errors found in the catalogue. Finally, several opinions on arrangement and studies of the Chinese ancient books will be voic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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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장각 소장 집부(集部) 도서에 대한 조사와 그 결과(2) - 장서인(藏書印) 조사를 중심으로 -

        김수진,김하라,오세현,유정열,유종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6 규장각 Vol.49 No.-

        본고는 2013년부터 현재까지 수행중인 ‘규장각 소장 집부(集部) 도서 조사 사업’의 연구결과 가운데 ‘장서인(藏書印) 항목의 조사’에 대한 내용을 발전적으로 정리해 소개한다. 집부 사업의 중심 목표는 규장각에 소장된 약 6,000여종의 문집 자료를 전수 조사해서 21세기형 목록집을 새롭게 발간하는 데 있다. 소장 자료의 체계적 정리, 즉 목록의 지속적 업데이트는 규장각이 완수해야 할 사회적 책무 가운데 가장 핵심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목록 사업은 막대한 양의 원전 자료에 대한 정밀한 실사를 요구하므로, 일개 연구자가 도모할 수 있는 학술 사업이 아닐뿐더러 대규모의 인력이 동원돼 속전속결로 완결하는 일회성 사업도 될 수 없다. 중장기적 시일이 소요되는 목록 사업의 이러한 제약은, 조사 대상 자료의 특성에 맞춘 연계 사업을 발굴해 병행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집부 사업은 2013년 출범부터 집부 목록 사업의 연계 사업으로 『규장각 도서 장서인 자료집』(가칭)과 『규장각 소장 선본문집총서』(가칭)의 발간을 염두에 두고 기획되었다. 집부 목록 사업과 장서인 사업의 연계는, 규장각 소장 자료 중 한국본 집부 고도서의 압인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특성을 감안한 것이자, 장서인 자료집이 한국학 연구자에게 필요한 대표적 공구서(工具書)라는 점이 고려된 것이다. 본고의 소개를 통해 집부 사업에서 장서인 조사가 갖는 중요성이 분명히 드러나기를 기대하며, 나아가 집부 사업의 결과로 장서인 자료집이 발간됨으로써 한국학의 견실한 기초가 수립되기를 희구한다.

      • KCI등재

        규장각 소장 집부(集部) 도서에 대한 조사와 그 결과(3): 선본문집총서(善本文集叢書)를 중심으로

        김수진,오세현,김하라,유정열,유종수,홍진옥,이승연,우나영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8 규장각 Vol.52 No.-

        본고는 2013년부터 현재까지 수행중인 ‘규장각 소장 집부(集部) 도서 조사 사업’의 연구 결과 가운데 ‘선본문집총서’(善本文集叢書)의 기획과 공개에 대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2013년 출범부터 집부 사업은 다음 세 가지 목표를 세우고 일관되게 연구 결과를 집적하였다. 그 첫 번째 목표는 『규장각집부목록』의 새로운 발간이요, 두 번째 목표는 『규장각도서 장서인 자료집』(가칭)의 출판이요, 세 번째 목표는 『규장각소장 선본문집총서』(가칭)의 공개이다. 이 세 가지 목표 중 선본문집총서의 기획은, 규장각 자료의 공공성에 부합하는 합리적 자료 공유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공공 자산인 규장각 자료를 보다 많은 연구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공정하게 개방하는 동시에, 기관 자산인 규장각 자료를 어떻게 관리 활용해 소장기관으로서의 권리도 지켜나갈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해 실현가능한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선본문집총서를 구상하게 된 것이다. 본고의 소개를 통해서 집부 사업 수행의 정당성과 필요성에 대한 객관적 재검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며, 나아가 집부 사업의 결과로 선본문집총서가 공개되어 한국학 연구에서 합리적 자료 공유와 협력의 선순환이 일어나기를 희망한다.

      • KCI등재

        『옥원중회연』 한글 필사본의 서지학 고찰과 서사기법

        이정자(李正子) 한국서예학회 2015 서예학연구 Vol.27 No.-

        韓文書法是昇華韓國文字成了文化遺産的. 考察這樣韓文書法話, 可能直到18世紀極發達國文小說. 在18世紀文學上一批出來的大變化是飜譯成韓文的小說. 這樣時代的變化形成國文小說的一些讀者, 而 出現了爲充足讀者的筆寫者. 到現在傳來當時筆寫國文本. 其中現在以韓文書法家爲範本小說是韓國學 中央硏究院藏書閣本的『玉鴛重會緣』. 因此對這小說要硏究幾個問題. 第一, 首先訪問首兒大學校奎章閣, 而考察了『玉鴛重會緣』的韓文筆寫本. 這筆寫本卷末有添記. 所以由這筆寫本能可知書名 · 書體 · 筆寫者 · 筆寫時期 · 分量 · 添記 · 連作有無 · 所藏處 · 圖書的大 小. 第二, 韓國學中央硏究院藏書閣本的『玉鴛重會緣』看不見添記和後人題跋. 因此參考所藏處的筆 寫本考察了書名 · 書體 · 分量 · 所藏處 · 圖書的大小. 第三, 在延世大學校所藏本『옥원재합』的標題同一首兒大學校奎章閣本『옥원재합긔연』的. 但 因相異內面題目, 而分別了首兒大學校奎章閣本是『옥원재합긔연』, 延世大學校所藏本是『옥원재 합』的. 『옥원재합』卷末有添記, 據添記內容可知筆寫時期, 而不知筆寫者. 還在添記中可知個紹自 身的內容, 而不知他的性別 · 職業 · 年齡. 因此對書誌學的側面來說, 只可知書名 · 書體 · 分量 · 所藏 處 · 圖書的大小而已. 第四, 梨花女子大學校所藏本的標題同一韓國學中央硏究院藏書閣本的『玉鴛重會緣』. 但兩本的 書體不一致, 卽韓國學中央硏究院藏書閣本是正書和行書, 而梨花女子大學校所藏本是混合正書和行書 的書體. 而且在梨花女子大學校所藏本『玉鴛重會緣』中看不見添記和後人題跋. 因此參考所藏處的韓 文筆寫本, 只可知書名 · 書體 · 分量 · 所藏處 · 圖書的大小而已. ?外判斷還沒發現的有異本下, 要搜輯在全國博物館 · 大學校 · 圖書館, 而到現在還沒發現的. 有 機會的話, 不斷要搜輯日本圖書館和俄國博物館等的韓文筆寫本. 若發現『玉鴛重會緣』的異本, 在韓 文書法史有意義. 第五, 韓國學中央硏究院藏書閣本的價値和影響. 在漸漸提高書法文化意識的當代, 現存朝鮮後期的韓文筆寫本是極感謝的事情. 特別直接能看到的事情是眞光榮. 雖然別時代而變文化, 當時筆寫者和現代韓文書法家皆通過韓文的筆?創造韓文美. 其中是韓文的好範本. 因 國文小說最高潮發達時筆寫本, 極端雅?勁, 分間布白勻麗. 但各異本有差, 而可能韓國學中央硏究院 藏書閣本是最好範本. 本硏究主題的主要目的是在分別書誌學的資料. 因爲首先執筆前一定有對範本正確理解, 才可能正 活用範本. 한글서예는 우리글을 예술로 승화하는 문화유산이다. 이러한 한글서예의 원류를 살펴보면 국문 소설이 가장 활발하였던 18세기를 만날 수 있다. 18세기 문학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한글로 된 소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국문 소설의 새로운 독자층을 형성시켰고, 독자층을 충족시켜야하는 필사자들이 많이 나타났다. 그리고 당시 필사한 한글 필사본들이 현전하고 있다. 본 연구는 이 가운데 현재 한글서예인들이 가장 범본으로 삼고 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 『옥원중회연(玉鴛重會緣)』을 포함한 5종류의 서지학과 서사기법의 특징 을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이 소설에 대하여 몇 가지 주제를 가지고 연구 한 결과로 삼고자 한다. 첫째, 먼저 서울대학교 규장각을 방문하여 서울대학교 규장각본 『옥원재합긔 연』,『옥원전해』의 한글 필사본을 살펴보았다. 이 도서에는 권말에 첨기가 있다. 이에 소장된 필사본을 참고로 서명 · 서체 · 필사자 · 필사시기 · 분량 · 첨기 · 연작의 유무 · 소장처 · 도서의 크기 등을 알 수 있었다. 둘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 『옥원중회연』은 본 내용 어디에도 첨기나 후 인들의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소장처의 필사본을 참고로 하여 서명 · 서체 · 분량 · 소장처 · 도서의 크기 등을 살펴보았다. 셋째, 연세대학교 소장본 『옥원재합』은 표제명이 서울대학교 규장각본 『옥원 재합긔연』과 동일하였다. 그러나 속 제목이 다르므로 서울대학교 규장각본은 『옥 원재합긔연』, 연세대학교 소장본 『옥원재합』으로 구분하도록 하였다. 이 소설의 권말에는 첨기가 쓰여 있었다. 첨기의 내용으로 보아 필사시기는 알 수 있었으나 필사자 자신이 누군지는 정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한 내용이 첨기에 보이기는 하지만 성별이나 직업 또는 나이 등을 알 수 없었다. 따라서 서지 적 측면은 서명 · 서체 · 분량 · 소장처 · 도서의 크기 정도만 알 수 있었다. 넷째, 이화여자대학교 소장본 『옥원중회연』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 『옥원중회연』과 표제명이 동일하다. 그러나 두 도서의 서체는 다르게 필사하였는데 한 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은 ‘정자’와 ‘흘림’이고, 이화여자대학교 소장본은 ‘정자’와 ‘흘림’을 섞어 쓴 ‘흘림’의 형태이다. 그리고 이화여자대학교 소장본 『옥원중회연』은 권두나 권말에 첨기나 후인들이 쓴 내용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따라서 소장처의 한글 필사본을 참고로 하여 서명 · 서체 · 분량 · 소장처 · 도서의 크기 정도만 알 수 있었다. 이외에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이본이 있을 거라는 추측 하에 전국의 박물관과 대학교 및 도서관 등을 대략적으로 살펴보았으나, 아쉽게도 같은 이름의 고서나 이본은 현재까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 지을 수 없기에 일본 도서관이나 러시아 박물관 등에도 한글 필사본이 존재하고 있는지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생각이다. 이유는 한글서예의 범본으로 삼고 있는 『옥원중회연』의 낙 질이나 새로운 이본이 발견된다면, 이는 한글서예학에 큰 의미가 있는 일이 될 것이 기 때문이다. 다섯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 권지십일을 선택하여 서사기 법의 특징을 몇 가지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이는 국문 소설이 가장 활발하던 시기의 정점에 필사되었기 때문에 가장 단아하 고 힘이 있으며 공간의 분배 비율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이본들의 글씨 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과 조금의 차이가 있으므로 아마도 오랫동안 서체의 모본으로써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을 범본으로 삼고 글씨를 쓸 것 같다. 다음은 『옥원중회연』의 가치와 영향이다. 서예의 문화의식이 점차 가치를 높여 가는 이 시대에서 조선후기의 한글 필사본이 현존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그 필사본을 직접 살펴 볼 수 있다는 것은 진실로 영광스러운 일이 었다. 비록 시대는 다르고 문화도 바뀌었지만 당시의 필사자들이나 현대의 한글서예 가들은 한글의 필획을 통하여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예술의 도구로 한글을 채용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 의 글씨는 본보기로 삼기에 훌륭한 범본이다. 이 글의 연구 목적은 서체의 모본으로 사용하기 전에 가장 기초가 되는 서지학 연구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필법을 기술하였다. 왜냐하면 이는 가장 기본적인 연 구로 초학자들이 붓을 잡기 전에 먼저 범본으로 삼아야 할 교재에 대한 정확한 분별력이 있어야 비로소 이를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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