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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곤(茅坤)의 당송(唐宋) 고문(古文) 평점(評點) 비평에 대한 고찰 - 《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를 중심으로

        당윤희 ( Dang Yunhui ) 한국중국어문학회 2016 中國文學 Vol.86 No.-

        모곤은 《당송팔대가문초》의 평점 비평을 통하여 당송 고문의 문장을 품평하고 감상하였으며 문장의 편장 구조와 창작의 기교 등을 주의하여 분석하였다. 모곤의 평점 비평은 字法, 句法, 章法과 풍격, 기교 등 당송 문장의 창작 방법과 이론에 대해 논평함으로써 고문 비평과 미학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모곤에 의해 이론적으로 체계화된 고문 비평 이론은 많은 독서인들이 당송 고문을 학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당송팔대가문초》의 평점 비평에 반영된 모곤의 고문 비평 이론은 대략 세 가지로 귀납할 수 있다. 첫째, 전통적인 “文統觀”을 계승하여 비평 이론에서 문학의 전통적인 載道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 둘째, 문장의 “법식”에 주의하여 당송 고문의 작문과 구성의 법칙과 문학성 등을 탐구하였으며 체계적인 비평 이론으로 정리하여 당송 고문의 문학 감상과 비평 이론을 정립시켰다. 셋째, 문장이 전달하는 정감을 중시하고 작가의 개성적인 풍격에 주의를 기울여 당송 고문의 문학성을 부각시켰으며 당송 팔대가 각 작가들의 문학적 개성을 보편성을 지닌 문학적 범주로 포괄해내었다. 바꿔 말하면, 당송팔대가 문장의 아름다운 정감과 문학적 개성은 모곤의 평점 비평을 통하여 널리 인식되었고 더불어 명대의 비평 이론으로 정리되었다. 그리하여 《당송팔대가문초》는 명대 문인들이 애독하는 중국 고문선집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Mao Kun(茅坤) commented and appreciated “the Prose Selections of Eight Masters in Tang and Song Dynasty(唐宋八大家文?)”, especially focusing on the structure and the writing skills of Guwen(古文). He established the literary theory through the criticism of commentaries(評點) about writing and appreciating the prose of Tang(唐) and Song(宋) Dynasty, which could help efficiently the literary men to learn and admire it, and futhermore to pass the imperial examination. The literary theory through the criticism of commentaries(評點) by Mao Kun(茅坤) could be explained in three ways. First, it expressed the one of the Confucian literary criticism, “Writings are for conveying truth(文以載道)”. Second, it focused on the model and the structure of the prose of Tang(唐) and Song(宋) Dynasty and constructed the literary theory which contained the method of criticism and appreciation by commentaries. Third, it also emphasized the sentiment of the prose and the personal character of the author, which could form the uniqueness of the p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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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茅坤의 唐宋 古文 評點 비평에 대한 고찰 – 《唐宋八大家文鈔》를 중심으로

        당윤희 한국중국어문학회 2016 中國文學 Vol.86 No.-

        Mao Kun(茅坤) commented and appreciated “the Prose Selections of Eight Masters in Tang and Song Dynasty(唐宋八大家文鈔)”, especially focusing on the structure and the writing skills of Guwen(古文). He established the literary theory through the criticism of commentaries(評點) about writing and appreciating the prose of Tang(唐) and Song(宋) Dynasty, which could help efficiently the literary men to learn and admire it, and futhermore to pass the imperial examination. The literary theory through the criticism of commentaries(評點) by Mao Kun(茅坤) could be explained in three ways. First, it expressed the one of the Confucian literary criticism, “Writings are for conveying truth(文以載道)”. Second, it focused on the model and the structure of the prose of Tang(唐) and Song(宋) Dynasty and constructed the literary theory which contained the method of criticism and appreciation by commentaries. Third, it also emphasized the sentiment of the prose and the personal character of the author, which could form the uniqueness of the prose. 모곤은 《당송팔대가문초》의 평점 비평을 통하여 당송 고문의 문장을 품평하고 감상하였으며 문장의 편장 구조와 창작의 기교 등을 주의하여 분석하였다. 모곤의 평점 비평은 字法, 句法, 章法과 풍격, 기교 등 당송 문장의 창작 방법과 이론에 대해 논평함으로써 고문 비평과 미학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모곤에 의해 이론적으로 체계화된 고문 비평 이론은 많은 독서인들이 당송 고문을 학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당송팔대가문초》의 평점 비평에 반영된 모곤의 고문 비평 이론은 대략 세 가지로 귀납할 수 있다. 첫째, 전통적인 “文統觀”을 계승하여 비평 이론에서 문학의 전통적인 載道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 둘째, 문장의 “법식”에 주의하여 당송 고문의 작문과 구성의 법칙과 문학성 등을 탐구하였으며 체계적인 비평 이론으로 정리하여 당송 고문의 문학 감상과 비평 이론을 정립시켰다. 셋째, 문장이 전달하는 정감을 중시하고 작가의 개성적인 풍격에 주의를 기울여 당송 고문의 문학성을 부각시켰으며 당송팔대가 각 작가들의 문학적 개성을 보편성을 지닌 문학적 범주로 포괄해내었다. 바꿔 말하면, 당송팔대가 문장의 아름다운 정감과 문학적 개성은 모곤의 평점 비평을 통하여 널리 인식되었고 더불어 명대의 비평 이론으로 정리되었다. 그리하여 《당송팔대가문초》는 명대 문인들이 애독하는 중국 고문선집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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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문선집(文選集)의 조선에서의 수용과 유통 ― 한국 소장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고문(古文) 선집(選集) 판본을 중심으로

        당윤희,오수형 한국중국어문학회 2011 中國文學 Vol.66 No.-

        據調査, 韓國所藏中國本唐宋八大家文選集如下10種: 《唐宋八大家文抄》, 《唐宋八大家文懸》, 《唐宋十大家全集錄》, 《唐宋八大家集選》, 《唐宋八家文讀本》, 《批點唐宋八家文抄》, 《唐宋八大家類選》, 《評註唐宋八家古文》, 《唐宋八家文約選》, 正誼堂刻本《唐宋八大家文?》. 其中《唐宋八大家文抄》與《唐宋八家文讀本》數量更多. 韓國所藏朝鮮本唐 宋八大家文選集如下2種: 《唐宋八大家文抄》, 《唐宋八子百選》. 《唐宋八大家文抄》還有 顯宗實錄字本, 戊申字本和戊申字覆刻本. 《唐宋八子百選》是朝鮮正祖親自編定的官本. 這些韓國所藏中國本唐宋八大家文選集顯示著唐宋八大家古文盛行在兩國的情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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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申維翰 산문의 擬古性과 『莊子』 패러디

        이현호(Lee Hyun-Ho)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2004 동양한문학연구 Vol.20 No.-

          This paper"s purpose lies in the study of Sin Yo-Han"s prose. The theory of literature in Sin Yo-Han attended in recent year, but the characters of his literature don"t studied yet. The study about theory and characters in the literature of Sin Yo-Han is necessary to establish the prose history of cho-sun dynasty in the latter period.   Sin Yo-Han likes JinHan-gomun(秦漢古文) better than DangSong-gomun(唐宋古文) from childhood. He perceives that JinHan-gomun is very different from DangSong-gomun, represented as gomumjinbo(?古文眞寶??)?munjangguebum(??文章軌範??). also he considers to the heresy of yukre(六藝). But he regards the difference of two prose style through a syllable. the characters of DangSong-gomun is refinement and construction of sentence, but the characters of JinHan-gomun is simplicity and vividness practiced from the ellipses of a postpositional word. The express, encouraged after read a Joagunyung(左丘明) and Samachun(司馬遷), say that he intersts about application of word and sentence. It appeared to pashtiche of ancient style and parody. The case of quote is various. Change only some word, change classical sentence, change the meaning, etc.   Also Sin Yo-Han evaluates Myung period(明代) eogomunpa(擬古文派). In this, he says that eogomunpa only imitated classic. Sin Yo-Han recognized that the defect of eogomunpa is imitation and piracy. Soon after, Sin Yo-Han criticizes eogomunpa and intended to classics himself.   In the inclination of JinHan-gomun, he likes works of Seohan(西漢) period more than anything else. But in the works of Seonjin(先秦) period, he only interested to Jangja. In this, we surely know that he regards Jangja as a classics of JinHan-gomun.   He thinks the point of Jangja as that emptiness exist in the practice and practice exist in the emptiness. This appoints the fantasy of Jangja. Sin Yo-Han parodies Jangja, and writes bechudanggi(比鰍堂記). This work parodies the logic and phrase in Jangja?Sagi(史記)? choachun(左傳), but the character of original works realized in he"s work more than other JinHan-gomun writers.   본고는 신유한의 산문을 고찰하고자 한다. 신유한의 연구에서 그의 문학론조차 최근에 들어서야 주목받기 시작했을 뿐, 그의 산문작품까지는 언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유한의 문학론과 그의 작품 검토는 조선 후기 진한고문가의 사적인 전개 맥락을 확보하기 위해서 반드시 검토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신유한은 어려서부터 당송고문보다 진한고문을 더 선호하고 지향하였다. 신유한은 자신이 선호해서 익혀온 진한고문이 ??고문진보?????문장궤범??으로 대표되는 당송고문의 문장과 크게 다름을 파악하고, 당송고문을 六藝(곧, 육경)의 이단으로까지 파악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신유한은 양자 사이의 차이를 音節을 매개로 하여 인식하고 있다. 진한고문은 당송고문에서 나타나는 허사의 사용을 통한 유려한 문장이나 단락의 구성과 같은 측면보다 허사를 배제한 간략한 字句의 운용을 통해 생동감과 문기 추구를 그 특징으로 한다. 신유한이 ‘좌구명, 사마천의 몇 행의 구법을 듣고 문득 고무되어 읽었다’고 한 것도 바로 이 자구의 운용에 특히 관심이 있었음을 말한다. 이러한 신유한의 의고성은 고투의 표현을 쓰거나 고전 에서 字句를 가져다 쓴 것으로 나타난다. 고전에서 字句를 가져다 쓸 경우 문장의 통사구조는 그대로 둔 채 몇 글자를 바꾸어 썼고, 다른 부분은 그대로 둔 채 특정한 句에서만 통사구조를 바꾸어 고전에서의 의미와는 다른 의미로의 변전을 꾀한 경우가 있다. 진한고문가의 산문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은 까닭은 이처럼 원문을 변개하거나 출처에 대한 아무런 단서도 없이 특정 부분만을 가져다 썼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신유한은 명대의 의고문파인 이몽양ㆍ이반룡ㆍ왕세정ㆍ왕도곤을 평가하면서 이들이 作氣가 고동하여 천고를 당겼지만 결국 당송의 궁실에 누운 채 진한의 의관을 빌린 격이 되어 그 眞에 이르지 못할까 두렵다고 하였다. 당송의 궁실에 누워 진한의 의관을 빌렸다는 말은 당송고문의 문투를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고 진한고문을 흉내냈다는 말이다. 의고문파 의 결함인 모의와 표절을 신유한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眞’이다. 신유한이 말하는 ‘眞’은 문맥상 ‘天機’라는 측면보다 ‘古’ 그 자체, 곧 眞古를 가리키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요컨대 신유한은 명대 의고문파의 글이 옛 글을 흉내만 냈을 뿐, 진정한 옛 글을 쓰지는 못했다고 평하였다. 곧 신유한은 명대 의고문파의 글조차 옛 글을 흉내만 낸 것이 라 비난하면서 자신은 진정한 고투의 글을 지향했던 것이다.   신유한이 진한고문을 지향한 면모를 짚어보면 신유한은 진한고문 중에서 西漢의 글들에 보다 더 관심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신유한은서한의 글이 아닌 선진의 글 중에서 제자백가의 글로는 유일하게 ??장자??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으니 ??장자??도 역시 진한고문의 전범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신유한은 ‘實 중에 虛가 있고, 虛 중에 實이 있다’는 말로써 장자의 문장을 높이 사고 있다. 이 實과 虛가 분명한 경계를 갖고 있지 않고 서로 넘나들며 소통하고 있기에 이는 다름 아닌 ??장자??의 虛幻性을 지적한 것이다. 이처럼 ??장자?의 문장을 높이 간주했던 신유한의 작품 중에 ??장자??를 패러디한 ?比鰍堂記?가 있어서 주목를 받고 있다. 신유한이 ??장자??라는 원텍스트를 패러디하여 창작한 패러申維翰 산문의 擬古性과 ??莊子?? 패러디 디텍스트인이 ?비추당기?는 비록 ??장자?????사기?????좌전??과 같은 여러 고전을 원텍스트로 삼아 논리와 문구를 패러디하였으나, 패러디텍스트가 지나치게 원텍스트에 매몰되어 결국에는 표절과 모의에 그치고 마는 결함을 일정 정도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패러디텍스트가 원텍스트의 특징인 虛實의 변전이라는 허환성을 잘 구현하였다는 점에서 신유한의 진한 고문 지향과 眞古의 추구가 비교적 효과적으로 발휘된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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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전·중기 한문산문의 창작 실제와 이제현의 고문창도

        서정화 ( Suh Junghwa ) 한국고전문학회 2021 古典文學硏究 Vol.60 No.-

        한문산문사에서 고려 중기는 형식적으로 騈體에서 散體로 완전하게 전환되고, 공용적 실용문을 탈피하여 개인성이 발현되는 산문이 창작되어 문학적 전환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하지만 이제현이 고문을 창도했다는 학계의 통설 때문에 고려 중기는 고문에 성취를 보지 못한 ‘적막한 시기’로 규정되고 있다. 본고는 이를 반박하기 위해 이제현이 고문을 창도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점을 검토하고, 고려 중기의 한문산문 창작 현장에서 당송고문이 실현된 사례를 살펴보았다. 먼저 고려 후기의 문학적 전환 또는 특징을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역사적 개념을 과도하게 적용한 ‘고문’이 아니라 사상과 문학 등에 합당하게 적용할 수 있는 키워드인 ‘성리학’이 적합함을 주장하였다. 또한 한유의 고문운동과 이제현의 고문창도를 무리하게 연결하면 500년이라는 간극이 발생하며, 중국 산문사의 흐름과 잣대를 그대로 한국 산문사에 적용할 경우 수용 주체의 자발성이나 창의적 능력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도 논했다. 다음으로 고려 전·중기는 당송고문이 유입되어 창작 현장에서 실제로 구현되었음을 밝혔다. 고려 전·중기 문인들은 당송팔대가의 존재를 분명하게 인식하였고, 당송고문의 형식적 특징인 騈體에서 散體로의 전환을 이루었으며, 당송고문을 대표하는 양식인 송서, 설, 논, 산수유기, 가전 등을 창작하였다. 또한 당송고문이 수용된 증거로 한유, 유종원, 소철, 왕안석의 표현기법이 박문, 임춘, 이규보의 편지, 묘지명, 산수유기에 실현되어 있었다. 고려 시대 한문산문사는 고려 전기에 당송고문이 수용되고, 고려 중기에 당송고문이 정착·확립되고, 고려 후기에 성리학적 이념이 투사된 산문이 창작되어 500년 간 이어질 성리학적 글쓰기의 시대를 열었다고 거칠게나마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이제현이 고문을 창도하게 되면 그 흐름이 이상해진다. ‘이제현의 고문창도’설을 폐기해야만 고려 시대 한문산문사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이제현의 고문창도는 성리학자들 ‘그들만의 리그’에서만 유효하다. The time of sino-Korean literature in mid-Goryeo period is when ‘byunchae(騈體)’ was completely transitioned to ‘sanchae(散體)’ in style. It is when literature transitioned from being practical statements for public use and started to be created as proses that reflect individual characteristics. However, due to the common academic view that sees Lee Je-hyun advocating for classical style prose, the mid-Goryeo period is defined as the “dreary period’ when the classical style prose did not flourish. This study reviews the issues that arise if Lee Je-hyun had advocated for writing classical style prose and studied the cases where the literary style of Tang and Song was practiced in sino-Korean literature. First, this study asserts that the keyword ‘Neo-Confucianism(性理學)’ is more appropriate for defining the transition of literature in the later Goryeo period or its characteristics because it is reasonably applied in philosophy, literature, and etc., not ‘prose’, which is overly applied with the historical concept. Grouping Han-yu’s Classic Chinese Prose Movement(古文運動) and Lee Je-hyun’s advocation for writing classical style prose creates the gap of five hundred years. Also, this study discusses that applying the flow and standards of Chinese prose to the history of Korean prose will result in ignoring the spontaneity or creative ability of the recipient. Secondly, this study reveals that the literary style of Tang and Song was actually seen in the creative writing in the early to mid-Goryeo period. The writers in the early to mid-Goryeo period clearly recognized the existence of the Eight masters in Tang and Song(唐宋八大家). The proses at the time transitioned from byunchae(騈體) to sanchae(散體), which shows the characteristic of the literary style of Tang and Song, and the writers wrote in styles that represent the literary style of Tong and Song , such as songso(送序), seol(說), non(論), sansuyugi(山水遊記), and gajeon(假傳). Also, the writing techniques of Han-yu(韓愈), Liu Zongyuan(柳宗元), Su Zhe(蘇轍), and Wang Anshi(王安石) were found in letters, memorial inscriptions(墓誌銘), and sansuyugi(山水遊記) of Park Moon(朴文), Lim Chun(林椿), and Lee Kyu-bo(李奎報) It can be summarized that the history of Chinese prose in Goryeo Dynasty accepted the literary style of Tang and Song in the early Goryeo period, and the literary style was settled and established in mid-Goryeo period, then in later Goryeo period, the proses with the Neo-Confucius philosophy were written, opening the door of the Neo-Confucius writing era, which continued on for about five hundred years. However, if it is viewed that Lee Je-hyun had advocated for writing classical style prose, it disrupts such flow. In order to find the right place of the history of Chines prose in Goryeo Dynasty, the theory of ‘Lee Je-hyun’s advocacy for writing classical prose’ must be discarded. In other words, Lee Je-hyun’s advocation for writing classical prose is only valid among the ‘league of Neo-Confucian schol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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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木齋 洪汝河의 散文批評 一考

        권진옥 고려대학교 한국언어문화학술확산연구소 2011 Journal of Korean Culture Vol.17 No.-

        This paper aims to study about Mokjae(木齋) Hong, yeo-ha(洪汝河, 1620-1674)'s prose theory and prose criticism. Pyeonjangbeop(篇章法), Jwajeon(左傳) and Saseojipju(四書集註) as formal paragon, perfect experience about Yukkyung(六經), differentiated accommodation method about Jinhangomun(秦漢古文), and so on is remarkable point in prose theory history. Furthermore, I investigate how he accommodates, and overcame The Ming Dynasty's Jeonhuchilja(前後七子). He criticizes about Jagu(字句)'s plagiarism although recognize text that Jeonhuchilja(前後七子) is thought as model. So, criticizing slogan that Jinhangomunga(秦漢古文家) plain gets from experience gugi(口氣) of Jinhangomun(秦漢古文), he advocated Pyeonjangbeop(篇章法) experience of Jinhangomun(秦漢古文). At this process, he criticizes to Pyeonjangbeop(篇章法) of Dangsonggomun(唐宋古文), especially bijiseosa(碑誌敍事) genre. The reason is expedient to wipe suspicion which is imitator of The Ming Dynasty's Jeonhuchilja(前後七子). Pyeonjangbeop(篇章法) study about Jinhangomun(秦漢古文) and Dangsonggomun(唐宋古文) is ended by study of Saseojipju(四書集註), and his logic that can understand perfectly Do(道) of Yukkyung(六經)·Saints(聖賢) by learning about Saseojipju(四書集註), removes imitation and plagiarism, and shows more specific state in superficial theory of literature such as "Jaedoron(載道論)" and "Gwandoron(貫道論)". Through history(史書) that he edits, remarkable characteristic is "Jeongtongron(正統論)" and "Gangmokche(綱目體)". His insistence is that the legitimacy(正統) of Choseon Dynasty persisted continuously to Samhan(三韓) and Three Kingdom Period(三國時代). Also, it shows his consciousness which emphasize obvious composition and veins at describing history(史書) by Gangmokche(綱目體). The legitimacy of Jinhangomun(秦漢古文) and Saseojipju(四書集註) can compare with his tendentious Sanggo(尙古) consciousness. Together, His consciousness about Pyeonjangbeop(篇章法) which is one of prose composition method can compare with Gangmokche(綱目體) description style. 본고는 목재(木齋) 홍여하(洪汝河, 1620-1674)의 산문 창작론 및 산문 비평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가 문장의 대가가 되는 필수요건을 오로지 편장법(篇章法)에 귀결시키는 태도, 그 전범의 텍스트로서 『좌전』과 『사서집주』를 거론하고 있는 점, 편장의 이해를 통한 육경의 온전한 체득, 근기 남인과는 차별되는 진한고문의 수용 양상 등은 산문 이론사에서 주목해 볼 만한 것이라 생각된다. 나아가, 홍여하가 당대 문학사조(文學思潮)로서 명대 전후칠자를 어떻게 수용하고 또 극복하려고 했는지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그는 명대 전후칠자가 전범으로 삼은 텍스트를 인정하되, 자구 모의에 대해선 비판하였다. 그래서 일각의 진한고문가들이 진한고문의 구기(口氣)를 체득하자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자구 모의를 극복하려는 시도와는 별도로, 그는 진한고문의 편장법 체득을 내세웠다. 이런 과정에서, 홍여하는 당송고문의 편장법, 그것도 비지서사에 중점을 두어 비평 작업을 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진한고문을 문장에서의 정법(正法)으로 여기는 문장가들이 항상 직면하게 되는 문제, 즉 명대 전후칠자의 아류라는 혐의를 씻어버리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보인다. 이렇게 진한고문, 당송고문을 막론한 편장법 연마가 결국은 사서집주의 그것으로 귀결되고, 『사서집주』의 노맥을 체득함으로써 육경·성현의 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그의 논리는 모의와 표절 같은 잗단 혐의를 방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재도론(載道論)”·“관도론(貫道論)” 같은 피상적인 문학론에서 한층 구체화된 면모를 보였다. 다음으로는 홍여하가 젊은 시절부터 말년까지 오랜 세월동안 심혈을 기울였던 역사 문제, 사서(史書) 편찬이 위에서 살펴본 산문 비평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지, 혹은 그 접점은 무엇인지를 대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가 편찬한 사서를 통해 명료하게 지적할 수 있는 특징은 정통론(正統論)과 강목체(綱目體)이다. 조선의 정통이 기자 이후 삼한과 삼국시대에 단절된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져 왔음을 주장한 것은 그의 극단적인 상고의식(尙古意識)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으며, 사서의 서술에 있어서 기전체(紀傳體)가 아니라 강목체를 사용한 것은 일목요연한 구성과 맥락을 강조하는 그의 사유를 엿볼 수 있다. 홍여하의 산문 창작론 및 산문 비평이 『좌전』과 『사기』 등의 사서에 집중되어 있는 점이 평생에 걸쳐 공력을 들인 역사문제와 맞닿아 있음은 물론이고, 구체적으로 표명한 진한고문, 『사서집주』의 정통성은 그의 극단적 상고주의 역사의식과, 그 정통성을 산문 작법의 하나인 편장법으로 귀결시키는 사유는 강목체 사서 서술 방식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KCI등재

        조선(朝鮮)의 중국본(中國本) 시문집(詩文集) 유입(流入), 간행(刊行) 및 수용(受容) 양상 약고(略考) ―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를 중심으로

        당윤희 한국중국어문학회 2011 中國文學 Vol.69 No.-

        現存韓的唐宋八大家的詩文集版本可以分爲如下三種: 第一, 從中國傳朝鮮的中國本; 第二, 朝鮮重刊的朝鮮本; 第三, 朝鮮人編定的朝鮮本. 其實唐宋八大家的詩文集版本傳入朝鮮之前, 早在高麗朝已經通行, 至于出現高麗刊唐宋八大家的詩文集, 比如《韓昌黎集》, 《東坡文集》等等. 朝鮮仍然關注中國文學作品, 力求輸入中國詩文集, 其中唐宋八大家的詩文集經常包括在內. 朝鮮重刊的朝鮮本唐宋八大家的詩文集版本數量不少, 其中有一些金屬活字本以中國宋元版本爲底本而成書, 例如《增刊校正王壯元集註分類東坡先生詩》, 《王荊文公詩集》等等, 保存着宋元版本的痕跡, 因而具有比較高的學術價値. 這些金屬活字本成爲後來朝鮮本的模范, 被地方官俯刊成木版本, 以便廣泛普及唐宋八大家的詩文集. 朝鮮人編定的朝鮮本唐宋八大家的詩文 集?有特點, 卽大多是文選集. 因爲朝鮮人愿意更容易學習唐宋八大家的文章精髓, 所以自然而然出現了更多的文選集. ?外, 朝鮮人愿望徹底學習唐宋八大家, 就問世了溶入幾種注釋書的朝鮮本, 例如《朱文公校昌黎先生集》, 《唐柳先生集》斟酌了幾種有關注釋書, 從而編成內容比較完整的朝鮮本唐宋八大家的詩文集. 我們根据上述情況, 可以歸納出這些存韓唐宋八大家的詩文集版本流通的特點如下: 第一, 朝鮮金屬活字本唐宋八大家的詩文集版本旣是一種善本, 因而被反復重刊, 成爲朝鮮本的主要版本. 因爲朝鮮出版文化由于中央機構, 中央機構刊行的朝鮮金屬活字本具有一些權威性, 甚至容易獨占學術, 文學方面的先導性位置. 例如, 朝鮮本蘇?的詩集大多是《增刊校正王壯元集註分類東坡先生詩》, 而其他的詩集僅有兩三種. 第二, 朝鮮本唐宋八大家的文選集主要收錄各家文章的特長, 比如韓愈的文選集偏重于碑志文, 蘇?的文選集偏向于詩歌等等, 從而可以看見朝鮮人喜歡?位作家的?種文體. 第三, 《唐宋八大家文抄》 對朝鮮的文學與學術思想影響巨大, 至于在朝鮮內形成了追求古文的寫作方法和文學思想 的唐宋派. 尤其是朝鮮正祖親自編撰《唐宋八子百選》 幷實行“文體反正”的文化政策以後, 朝鮮文人一律趨向于學習唐宋古文, 直到朝鮮末期. 第四, 現存韓國的唐宋八大家的詩文集中有許多的明淸版本, 顯示着朝鮮積極輸入明淸朝新出的唐宋八大家詩文集的情況. 隨着學習時文的需求, 明淸時期正好出現了?多的古文寫作敎材. 据調査, 現存韓國的中國本唐宋八大家的文選集也有十幾種. 這些韓國所藏中國本唐宋八大家文選集顯示着唐宋八大家古文盛行在兩國的情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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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의 기원(起源)에 관하여

        백광준 한국중국어문학회 2005 中國文學 Vol.43 No.-

        茅坤一生志乎古文, 而後人給他的評價幷不大, 他的選集≪文?≫却留下了?大影響。≪文?≫一刊行了, 初學者就將?奉爲入門的最佳工具書, 在他們思維上受到?大影響。因此, 我想考察≪文?≫登場的起源, 以便了解當時士人的心態。 首先, 茅坤對當時的文風持有反對的態度, 是因爲大多傾注于剽竊和模倣。依他看, 這是由于以李夢陽爲首的“復古派”而造成的。那?, 茅坤有何主張??他的主張可被分爲兩個, 一是“得其道而折衷于六藝”, 二是“萬物之情, 各有其至者”, 而這是附屬于第一個主張, 他的主張大槪爲在文章方面上得到對象的精髓, 根据聖賢的旨趣加以調整, 從而寫出文章。基本上, 他的見解符合歷來古文家的看法, 他的影響主要表現在有意構築“文統”的籌劃。他按照自己所定的理論整理出古文發展的系譜來, 卽始于六藝, 而經過史記, 繼續到八大家, 再截至茅坤當時“唐宋派”。尤其是, 他在唐宋時代恢復古文上强調韓愈和歐陽修的功勞, 顯示出恢復古文的欲望。這樣的思維當然說明≪文?≫的背景, 而還有一個起源, 這是一定要看到的, 是?八股文有關。 他對八股文堅持像主張古文那樣的態度。他認爲當時八股文旣頗爲講究新奇, 又失爲剽竊和模倣。那?, 他所想的佳文是?樣的??有趣的是, 他的看法幾乎有同于古文, 也得基于六經進行寫作, 我們由此可以推導出他將古文和八股文視混爲一談。換言之, 我們可以說他一面希望恢復古文, 一面不忽略古文?八股文的聯系, 要把八股文包容在古文書寫里。 ≪文?≫來自如上的兩個起源, 這可以從考察≪文?≫的編輯意圖和批評方式得以證明。在≪文?≫的評語上, 有關古文的還多一些, 而尙有一些針對八股文的言論, 特別是蘊含着古文理論容易轉化爲八股文的實際?外一個欲望。這多少使后來古文家注意古文和八股文的關系, 這是茅坤在文章發展上留下的較大影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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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세기 산문의 양상과 김종직의 古文倡導

        김윤조(Kim, Yun-jo) 대동한문학회 2011 大東漢文學 Vol.34 No.-

        본고는 조선 초기, 15세기 산문의 양상에 대한 연구이다. 15세기 산문의 흐름은 시기에 따라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15세기 전반은 고려말을 이어 변문과 당송고문이 혼재된 시기였다. 이색을 이어서 정도전ㆍ권근ㆍ변계량 등이 중심이 된 관각문학이었다. 15세기 후반에는 서거정과 성현에 의해 관각문학이 극성을 보이는 한편, 김종직과 김수온은 당송고문 회복의 기치를 들었다. 임란 이전 조선 전기 산문의 흐름은 초기의 변문이 혼재된 경향을 이어서, 관각파(사가ㆍ허백)-당송파(점필ㆍ괴애)-고문사파로 정리될 수 있겠다. 본고의 요지는 15세기 산문을 전-후반으로 나누어서 파악해야 할 필요를 제기한 점, 15세기 후반 문학사에서 당송고문이 새롭게 인식되었음을 밝힌 점이다. 그 과정에서 점필재는 당송고문의 창도자로 새롭게 주목되어야 할 작가다. This thesis is the study about the alteration of the prose in the early of the Fifteenth Century, the early Chosun Dynasty. The style of the prose in the fifteenth century is classified two forms. The early fifteenth century, it was the time to be mixed byeonryeomun(騈儷文) and Dang-SongGomun(唐宋古文) in succession to the end of Corea Dynasty. It was Gwan-gak Literature(館閣文學), which Lee Saek(李穡) and Jeong Dojeon(鄭道傳), Gwon gun(權近), Byeon Gyeliang(卞季良) became the cental place in. In the late fifteenth century, Gwan-gak Literature reached its peak by Seo geojeong(徐居正) and Seong hyun (成俔), meanwhile Kim jongjik(金宗直) and Kim suon(金守溫) asserted the usage of Dang-SongGomun. Before Imjin war, the current of the prose of the early Chosun Dynasty is calssified Gwan-gakpa(館閣派), Dang-Songpa(唐宋派), Gomunsapa(古文辭派). The first result of this thesis is to propound the necessity of classifying according to the first half and the latter half of the fifteenth century. The second result is to achieve refreshingly recognition about Dang-SongGomun in the history of the literature of the latter half of the fifteen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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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송팔가문독본(唐宋八家文讀本)》과 일본(日本)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수용

        당윤희 한국중국어문학회 2013 中國文學 Vol.77 No.-

        十七,十八世紀明淸兩代以唐宋八大家的文章爲主的以古文選集頗爲盛行, 幾乎達到30種. 明淸兩代刊行的唐宋古文選集大部分古文選本有闡揚儒家思想, 標擧儒家正統文風的目的. 不過作爲科擧考試的敎材成爲古文選本的主要目的, 因爲在科擧時代, 科擧致仕是讀書人的最終目標. 大多古文選本爲科擧考試服務, 從而極爲興盛. 十七世紀朝鮮在文學思想方面追崇中國前後七子, 盛行了傍照秦漢散文, 寫作擬古文的文學觀. 但是朝鮮文人逐漸關心明代唐宋派, 因爲唐宋派對峙着前後七子, 幷標榜着 “文以載道”的文學理念. 韓國目前所藏中國本唐宋八大家文選集有十種, 其中明代茅坤編撰的《唐宋八大家文抄》還有朝鮮顯宗實錄字本, 朝鮮戊申字本和戊申字覆刻本現在流轉. 此書對朝鮮的文學與學術思想影響巨大, 至于在朝鮮內形成了追求古文寫作和文道論的唐宋派。尤其是朝鮮正祖親自編撰《唐宋八子百選》, 幷實行“文體反正”的文化政策以後, 朝鮮文人一律趨向于學習唐宋古文, 直到朝鮮末期。 日本從來沒施行科擧制度, 從而有了多種多樣的學問及思想, 百家爭鳴. 但是江戶後期以朱子學爲幕府的官學, 于寬政二年(1790)宣布異學禁止令, 卽是根據朱子學要確立社會風俗與倫理槪念的文化政策. 異學禁止令后, 昌平坂學問所在朱子學的基礎上進行講; 幕府與諸藩士都積極學習朱子學. 文化十一年(1814)昌平坂學問所刊行官本《唐宋八家文讀本》可以說是以唐宋八家文爲範文的證據. 上述兩部韓國與日本各國刊行的不同唐宋八大家文選集顯示着唐宋八大家古文盛行在兩國的不同情況. 理學家都是重道輕文的, 但程度不一樣. 唐宋以來, 古文與道有密切的關系, 古文家標擧“文以明道”, 道學家則有“文從道出”的看法. 理學家尤多注意用理學的觀點來影響文風. 他們通過寫文章, 講學宣揚理學的文學觀外, 還編撰文章範本. 朱子學派往往以唐宋古文爲範文, 在韓中日各國不同時期出現以朱子學爲主的思想潮流, 例如中國明代崇禎年間與淸代康熙年間積極地崇儒, 乾隆帝編纂《御選唐宋文醇》; 朝鮮正祖施行文體反正政策, 編纂《唐宋八子百選》幷刊印《唐宋八大家文抄》; 日本幕府宣布異學禁止令, 刊印《唐宋八家文讀本》. 可見其主要目的在于鼓吹儒學思想幷確立儒學正統文論的主導地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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