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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규 안동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99 인문과학연구 Vol.2 No.-
이상으로 문학이 지닌 숭고한 경지와 그 묘미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여기에서 眞情癡情의 세계라든지 無我之境의 경지, 그리고 天衣無縫의 자연은 문학 내용상의 至高한 경지에 해당하고, 言外之意의 여운은 문학 형식상의 미묘한 경지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문학이 추구하는 지고한 경지는 내용과 형식을 두루 갖춘 균형적인 발전을 항상 그 방탕으로 하는 것이다.
안중은 안동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00 인문과학연구 Vol.3 No.-
모더니즘의 대표시인 T. S. 앨리엇의 『황무지』(The Waste Land)가 발표된 1922년 이래로 난해한 이 작품을 해석하기 위하여 전기적 비평, 정신분석학적 비평, 원형 비평, 해석학적 비평, 기호론, 독자 반응 비평, 페미니즘, 해체주의, 대화체 비평 등의 다양한 비평적 접근법으로 시도되어 왔다. 이 중에서 원형 비평적 접근법으로 『황무지』를 최초로 해석한 것은 모드 보드킨(Maud Bodkin)의 『시의 원형적 패턴』(Archetypal Patterns in Poetry)일 것이다. 보드킨은 『황무지』를 "죽음"과 그녀가 명명한 "재생"(Rebirth)의 원형 패턴으로 간단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308). 이러한 보드킨의 해석은 『황무지』를 엘리엇의 "박식을 과시하는, 단순한 단편들의 모음"이라고 규정한 알렉 브라운(Alec Brown)의 비판을 일축하고(331), 이 시 전반을 관류하고 있는 죽음과 재생의 패턴을 추적함으로써 원형 비평의 입장을 피력한 것이다. 이 원형 비평적 접근법은 제임스 프레이저(James Frazer)의 『황의 가지』(The Golden Bough)와 제시 웨스턴(Jessie Weston)의 『제시식에서 로맨스로』(From Ritual to Romance)에 나타난 신화 연구에서의 죽음-재생의 원형에 그 바탕을 둔 것이다. 또한 캐나다의 원형 비평가인 노쓰랍 프라이(Northrop Frye)의 『비평의 해부』(Anaromy of Criticism)에도 역시『황무지』해석의 원형 비평적 접근법이 소개되어 있다. 프라이 역시 죽음과 재생의 원형으로 엘리엇의 『황무지』와 더불어 수많은 작품을 분석하고 있다. 프라이(160)가 죽음과 재생의 원형으로 거론한 신화(mythos, 뮈토스)의 특성 중에서 특기할 것은 식물 신화와 물의 상징성이다. 실물계에서 남성신이나 여성신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식물 신화는 계절의 연차적 순환에서 가을 즉, 추수기에 죽임을 당하여 겨울이면 사라지고, 이듬해 봄에 재생하는 패턴은 곧 죽음과 재생의 원형의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비가 내려 샘으로, 샘에서 시내와 강으로, 강에서 바다나 겨울의 눈으로, 그후 다시 비로 회귀하는 순환 구조를 형성하는 물의 상징 역시 죽음과 재생의 원형의 한 예이다. 『황무지』에서 템즈 강물의 바다로의 유입과 봄비로 생성되는 "물에 의한 죽음"을 통하여 순환하는 물은 이 시의 내재적 형식이다(323). 또한 원형 비평의 한 요소로 일반적으로 거론되는 "운명의 여성"(femme fatale)은 엘리엇의 『황무지』에서는 "처지가 다양한 여인"(lady of situations)인 "벨라도나(Belladonna)보다는 남녀 양성인 테베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Tiresias)"라고 프라이(323)는 주장했으나, 필자는 여인들의 원형을 "벨라도나"로 주장한 시커(Sicker 420)의 견해를 따른다. 테이레시아스는 남자 서기와 여 타자수의 무분별한 정사를 간파하는 점에서, 여성의 입장보다는 신과 같은 존재로 작가의 전지적 시점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김승심 안동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99 인문과학연구 Vol.2 No.-
《詩經》한 권에는 풍부한 생활내용과 다양한 창작제재가 들어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고대 사회의 역사적·문학적 풍모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本稿는 《詩經》시대의 산업은 어떠했을까? 생활문화? 예속문화?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하여 이 방면의 문화를 찾아 본 것이다.
김장동 안동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99 인문과학연구 Vol.2 No.-
우리 시가에 있어 기원의 노래가 드문 것은 아니다. 정성이 어느 정도인가가 문제이다. 오죽 삶이 고달팠으면 천지신령에게 기웃거리고 부처님에게 귀의하려고 한 노래까지 생겨났겠는가. 인간은 극도의 궁지에 처하면 자기도 모르게 절대자에게 귀의하고 싶어진다. 그런 탓인지 모르겠으나 적극적인 쟁취는 물론 소극적인 체념도 소용이 없을 때도 기도를 통해 소원의 성취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