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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의적 책임 논리와 일본군‘위안부’ 문제 인식의 정치과정 ― 1990년대 일본의 제한적 국제규범 수용과 「고노 담화」

        이민정 ( Lee Min Jeong )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2018 세계정치 Vol.29 No.-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한일 간의 과거사 갈등 봉합은 한일 양국의 범위를 넘어서 관련 국가의 외교적 대응,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동학, 국제체제적 변화 등의 국제정치적 움직임과 밀접하게 연동하며 전개되었다. 본 논문에 서는 국제정치와 국내정치의 연계에 주목한 분석의 틀을 이용하여 1993년 8월 4일 「고노 담화」 형성과정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다. 이에 따라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인식과 해결의 논리를 구성하는 “도의적 책임” 논리 탄생의 정치과정을 규명하고, 1990년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일본정치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시도한다. 본 논문의 연구 질문은 ‘일본 정부는 왜 “도의적 책임”을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해결 논리로 선택하였는가’이며, 정치적 선택의 원인과 과정의 규명을 연구목적으로 한다. “도의적 책임” 논리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발현 이후 일본 정부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정과 인식의 정치과정을 통해 다수의 정치적 가능성 속에서 구성되고 선택되었으며, 결과적으로 1990년대 국제정치적 변화를 인지한 일본 정부의 제한적 국제인권규범 수용을 통한 국제공헌의 시도이자 일본의 정치대국화와 전후책임 문제의 완결을 위한 정치적 판단의 결과였음을 규명한다. Historical conflicts between Korea and Japan, including the Japanese military ‘comfort women’ issue, have been closely intertwined with international political changes that exist beyond the boundary of bilateral relationship. In this article, I attempt to propose a comprehensive analytical framework for understanding politics surrounding the ‘comfort women’ issue through critical examination of dynamic linkage between international and domestic politics within Japan’s political process to the formation of “Kono Statement” from May 1990 to August 1993, in which the Japanese government revealed its perception of ‘comfort women’ issue and “moral responsibility” as a logic for viable settlement. My research question is “Why had the Japanese government decided “moral responsibility” as a central logic for the settlement of Japanese military ‘comfort women’ issue?” The question intends to reveal international and domestic variables, which led the Japanese politicians to produce such political decision in 1993. I illustrate how the Japanese political elites had constructed and why they had chosen the logic of “moral responsibility” from a large set of possibilities by examining the political process of the Japanese government’s acknowledgment and recognition of ‘comfort women’ issue. In conclusion, I claim that the logic of “moral responsibility” was designed as a part of Japan’s post-Cold War UN diplomacy and appeasement policy for Asian neighbors for its grand strategy to newly emerge as a global political power and to finalize its postwar responsibilities through the government’s decision on regulated compliance of international norm.

      • 국제정치의 복합조직원리론으로 분석하는 남북 관계

        전재성 ( Chae Sung Chun )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2012 세계정치 Vol.16 No.-

        본 논문은 국제관계 이론을 동아시아 차원에서 새롭게 조망하면서 남북 관계를 설명하고자 한다. 남과 북의 관계를 국제관계 이론으로 조망하고 분석한다는 것은 서구 국제관계 이론을 염두에 둔다면 상당한 시각의 조정이 필요한 작업이다.본 논문은 이러한 조정작업을 국제관계의 복합조직원리론에 기반하여 수행한다.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조직원리는 하나의 근대적 조직원리, 즉 무정부 상태에 의해 규정되고 있지 않다. 긴 역사를 통해 다양한 조직원리가 중첩되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조직원리가 구체적인 관계와 현안을 지배하는 양식도 매우 다르다. 복합조직원리는 비단 남과 북의 관계를 규정할 뿐 아니라 동아시아 국제관계 전체를 규정하기 때문에 남과 북의 관계와 동아시아 국제관계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함께 살핀다. 남북 관계는 전통질서에서 근대이행기를 거쳐 이들을 담고 있는 상테에서 근대적 대결양상을 보인다. 남북군사 관계, 경제적 상호의존, 통일을 둘러싼 담론과 전략의 대결 모두 전형적인 근대 국가 간 관계가 아니며 그렇다고 하나의 민족 개념에 기반한 근대와는 구별되는 관계도 아니다. 현재 남북 간에 발생하는 다양한 이슈들, 즉, 북핵, 평화 체제, 한국의 대북관여, 북한과 주변국 간 외교관계 수립, 북한의 정상화 과정, 통일 등 많은 이슈들을 분석하고 해결해나가기 위해서는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조직원리들을 분석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 다양한 단위 의식과 조직원리가 복합된 가운데 전개되는 남북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서구 국제정치 이론을 그대로 적용하지 않고 진정한 의미의 지주적 국제정치 이론을 정립애햐만 남북 관계를 국제정치 이론의 차원에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articles puroprts to analyze the inter-Korean reations from the perspective of international relations theory. As international relations theory has developed on the basis of Western historical evlution of regional order. a certain level of rethinking and rebuilding of Westem hteories is necessary. This article suggests the complex theory of organizing principles of intemational relations. East Asia. even though it is basically derined by the organizing principle of "anarchy." can be defined by multiple organizing principles at the same time; that of traditional regional order, that of modern transition, modern principle, and that of post-modem transition. lnter-Korean relations. from this theoretical perspective, reflect not only modem international relations, but also many different relations at the same time. lssues such as North Korean nuclear problem. peace treaty, and engagement with North Korea, all revove around the question of huw to derine the nature of relations, the sovereign status of two Koreas, and norms that apply to inter-Korean relations. By developing the complex theory of East Asian regional order, theoretical analysis of inter-Korean relations will be more appropriate.

      • 남북한 관계의 국제정치학

        황지환 ( Ji Hwan Hwang )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2012 세계정치 Vol.16 No.-

        남북한 관계는 국제정치다라는 언명은 남북한 관계를 국제정치의 독립변수로서 보는 경우와 종속변수로서 보는 경우의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국제 정체에 대한 독립변수로서의 남북한 관계는 한반도의 두개의 한국이 국제정치적으로 중요한 변화요인이기 때문에, 남북한 관계의 변화를 통해 국제정치 환경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국제정치에 대한 종속변수로서의 남북한 관계는 국제정치 환경의 변화에 따라 남북한 관계가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글에서는 냉전의 종식 이후 한반도 문제에 대한 남북한 관계와 세계질서의 영향력과 상호관계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러한 두 가지 인과적 경로를 비교한다. 그 관정에서 남북한 관계가 독자적인 독립변수로서의 역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소위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의 노력이 세계 질서의 영향 하에서 어떠한 제약을 받게 되는지에 초점을 두고 분석한다. Inter-Korean relations is international politics. It regards inter-Korean relations not only as an independent variable but also as a dependent variable for international relations. The former means that inter-Korean relations can transform international politics because two Koreas are important actors in international arena. On the contrary, the latter means that inter-Korean relations can be strongly influenced by the changing international politics. This article seeks to compare these two causal paths and analyze the influences of inter-Koran relations and international politics on the Korean peninsula. It will examine how the internal efforts for the ‘Koreanization of the Korean issue’ had been constrained by the overwhelming influences of international relations.

      • 위기의 국제정치사상 ― 휴고 그로티우스의 정전론(正戰論)

        김준석 ( Kim Joon Suk )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2016 세계정치 Vol.25 No.-

        17세기 네덜란드 출신의 국제법학자이자 국제정치사상가인 휴고그로티우스(Hugo Grotius, 1583~1645)는 흔히 `베스트팔렌의 사상가`로 일컬어져 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로티우스의 주된 관심이 주권원칙에 기초한 국제관계의 수립에 있었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적으로 실재한 베스트팔렌 조약에 그러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역시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시각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 그로티우스에 대한 회의 주의의 영향력을 강조한 리처드 턱(Richard Tuck)의 혁신적인 해석은 그의 사상의 역사적 의의를 밝히려는 노력에 유용한 단서를 제공한다. 하지만 턱의 해석이 전적으로 만족스럽지는 않다. 특히 그로티우스에 대한 회의주의의 영향력이 거의 전적으로 자기이익 개념을 중심으로 나타났다는 그의 견해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로티우스가 지적, 정치적으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유럽 지성계 및 사상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 회의주의는 자기이익 개념을 통해 표출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세계관에 기초한 철학 사조였다. 우리는 이러한 철학의 그로티우스에 대한 영향력 역시 훨씬 더 포괄적이었으리라 충분히 합리적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몽테뉴를 비롯한 근세 초 회의주의 철학자들은 제한된 능력의 인간이 의연하게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으며, 그로티우스는 이러한 회의주의의 문제의식을 받아들였다. 그로티우스는 정의로운 전쟁에 관한 앞선 사상가들의 주장을 계승하여 체계화하면서 도 이를 그들과는 다른 시각에서 이해했다. 그로티우스는 회의주의자의 관점에서 전쟁이라는 위기를 이해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했다. 이는 그의 정전론에 이전의 정전론과는 다른 성격과 역사적 의의를 부여했다. Hugo Grotius, a seventeenth-century Dutch scholar of international law and international political thought, has long been associated with the Treaty of Westphalia. This belief, however, needs to be reconsidered in the light of the fact that Grotius`s main interest did not lie in exploring the questions of sovereignty and of international relations based on it. It is also to be reconsidered, because the Treaty of Westphalia that really existed was never geared to address such questions. Innovative interpretation of Grotius`s political thought by Richard Tuck helps us to rethink its historical significance. Yet Tuck`s interpretation is not entirely satisfactory. In particular, one can raise doubt on his claim that to Grotius, scepticism meant more than anything else the idea of self-interest. In the early seventeenth century when Grotius was intellectually most productive, scepticism was a philosophical thought based on a worldview far more comprehensive than what can be defined in terms of self-interest. It is, therefore, reasonable enough to suppose that its influence upon Grotius was also far more comprehensive. Michel Montaigne and other early modern sceptics tried to solve the question of how human beings, confronted with serious crises, could deal with them without losing their dignity. Grotius inherited and systematized the just war theory proposed by scholars of the previous generation, but he did it in his own way. Grotius as sceptic understood war as existential crisis and tried to tackle with it. This conferred on his just war theory a distinctive character and signific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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