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 좁혀본 항목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원문제공처
          • 등재정보
          • 학술지명
          • 주제분류
          • 발행연도
          • 작성언어
          • 저자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공주 홍길동 관련 전승자료의 성격과 의미

          이해준(Lee, Hae Jun) 역사문화학회 2018 지방사와 지방문화 Vol.21 No.2

          소설 『洪吉童傳』의 주인공인 홍길동은 『조선왕조실록』에 洪吉同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실존 인물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아직도 정확한 답이 없는 의문점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허균과 홍길동의 연고를 강조하는 지역으로 강원도 강릉과 전라남도 장성이 손꼽히며, 허균의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이 꿈꾸던 이상세계로 그려진 율도로는 전북 부안군 위도, 홍가와라의 설화와 성이 있는 일본 오끼나와 야에야마 제도의 이시가키 섬이 있다. 본고에서 필자가 다루는 공주지역과 홍길동, 홍길동전과의 연관성도 전승지역의 또 다른 사례로 추가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공주 지역에는 전해지는 홍길동 관련 자료들은 유형별로 보면 유적, 구전, 역사기록, 그리고 저자 허균과 관련되고 있다. 홍길동 관련 구전 설화와 지명 설화는 공주 무성산성 일대에 분화 전승되고 있으며, 유적으로는 홍길동의 근거지였다고 전해지는 홍길동성[무성산성]이 있다. 또한 역사상 실존 인물 洪吉同이 시대는 다르지만 기록상 충청도와 관련성이 많은 것이라든가, 홍길동전의 저자 許筠(1569~1618)이 공주목사로 부임해 왔던 점, 특히 그 시기에 그가 홍길동전의 모델이었다고 전해지기도 하는 논산 은진 출신 徐羊甲(?~1613)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점이 주목된다. 공주지역에 전승되는 홍길동 관련 자료와 일화들을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보면 먼저 지리적으로 차별성을 보인다. 장성이 한적한 시골 마을로 태생지이자 성장지임을 강조한다면, 강릉의 허균 생가는 아버지 허엽의 생애와 관력을 증거하고 그 형제, 누이의 문학적 성격을 강조하는 송림 속의 고택이었다. 부안의 우반동은 허균의 은거와 홍길동전 저술지라는 점이 특징이다. 이에 비하여 공주는 홍길동의 활동거점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유적과 구전설화, 지명이 전해지는 곳이다. 특히 공주지역은 홍길동전과 관련해서 저자 허균이 공주목사로써 소설의 주인공 홍길동의 실존 모델로 추정하는 서양갑과 서얼들과의 긴밀한 유대와 관련을 가졌던 점이 주목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충청도 거점설이나 근거설, 무성산성 축조기법과 오끼나와 미야코 섬의 성축기법의 유사성, 당시 동행했을 동행 집단의 문제 등등은 홍길동의 실존인물이냐 소설의 주인공이냐에 따라 매우 큰 이해 차이를 수반할 수가 있다. ‘홍길동이 실존인물'일 때는 활동의 근거 현장으로 역사이지만, ‘소설의 주인공'일 때는 작품의 무대로서 매우 폭넓은 장소 설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조선왕조실록에 보이는 홍길동 세력의 충청도 거점 운운, 공주목사 허균, 허균과 서양갑의 관계 등은 충청도와 공주의 연관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Hong Gil-dong(홍길동), the protagonist of the novel “The Tale of Hong Gil-dong(홍길동전),” appears as Hong Gil-dong in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but whether or not he is a historical figure remains an unanswered question. In this regard, Gangneung, Ganwon-do and Jangsung, Jellanam-do are considered as areas that emphasize the relationship with Heo Gyun(허균) and Hong Gil-dong. Yuldo, portrayed as an ideal world in the novel “The Tale of Hong Gil-dong” by Heo Gyun, is considered to be either the island Wido, Buan, Jellabuk-do or Ishigaki Island from Hongawara folktales, ruins and monuments in the center of the Yaeyama subprefecture of Okinawa in Japan. In line with these examples, Gongju, connected with Hong Gil-dong and the novel “The Tale of Hong Gil-dong,” is another example of a Hong Gil-dong traditional setting. Various Hong Gil-dong related sources passed down in Gongju are classified as relics, narrations, historical records, and works by the author, Heo Gyun. The relics include the Hong Gil-dong Castle [Museongsan Castle(무성산성)], which is believed to be the refuge of Hong Gil-dong, and various narrations related to Hong Gil-dong Castle (홍길동성). The narrations maintain that the factual person Hong Gil-dong had an intimate connection to Chungcheong-do and that Heo Gyun, the author of the novel “The Tale of Hong Gil-dong, became governor of Gongju. They also express that Heo Gyun had close ties with Seo Yang-gap(서양갑), said to be the real model for Hong Gil-dong in the novel” The Tale of Hong Gil-dong, and in other works. Compared to those in other areas, Hong Gil-dong related materials and narratives shared in Gongju sources can be geographically differentiated. Jangsung emerges as the birthplace and childhood home of Hong Gil-dong, and Heo Gyun's birthplace in Gangneung is an old family house in a pine forest which testifies to the life and public authority of Heo Yeop(허엽), Heo Gyun's father, and emphasizes his siblings' literary talents and temperament. Uban-dong, in Buan, represents Heo Gyun's seclusion and where the novel “The Tale of Hong Gil-dong” was written. Comparing these features, Gongju comprises Hong Gil-dong's area of operations, based on historical records, relics, narrations, and toponyms connected to Hong Gil-dong. Especially, in the case of Gongju, it is noteworthy that the author Heo Gyun had a close connection with sons of concubines and Seo Yang-gap, who may be themodel for Hong Gil-dong, the main character of the novel “The Tale of Hong Gil-dong” Admittedly, the issues such as the Chungcheong-do hub theory, similarities of construction techniques of Museongsan Castle and the retaining wall on Ryukyu Miyako Island, the accompanying group can be interpreted differently with significance depending on whether Hong Gil-dong is a historical or fictitious character. This is because when Hong Gil-dong appears as a historical character, Gongju, Chungcheong-do can be the location supported by historical evidence; but when he is a fictitious character, the location can be interpreted broadly. Yet, it can be suggested that Hong Gil-dong and his fellowship's.

        • KCI등재
        • KCI등재

          전통한옥의 활용과 기초자료정리 문제

          이해준(Lee Hae-Jun) 한국역사민속학회 2011 역사민속학 Vol.37 No.-

          The value of traditional hanok[傳統韓屋] is recognized so highly as to be chosen as 'Han[韓] Brand,' and recently, efforts have been made increasingly to utilize it as cultural tourism resources. On the other hand, there are many problems raised in the discussions of inheriting and utilizing such hanok culture. Examples of such problems include the discussions about utilization that are concentrated mainly in 'hanok as building', resulting in the cultural identity and distinction inherent to hanok culture relegated to a lower priority, and reduced scope of prototype contents related to the traditional hanok, and inadequate efforts to secure them. This paper is to establish the prototype contents of hanok culture synthetically and efficiently as alternatives to these problems and its concrete contents are to accurately grasp 1) timing and principal agent, construction background, 2) comparison and distinction by region, and 3) hanok cultural space and cultural relativity, and through this, to secure proper understanding of the applicable hanok culture, competitiveness and distinction of resources utilization. I expect that this paper can help to specialize, highlight distinction, and secure the scope of utilization, materials, objects, and ideas in utilizing hanok culture as cultural tourism resources. Without attaining this, hanok culture which 'puts the cart before the horse' or 'reverses the proper order' may emerge or half of the value of hanok culture that emphasizes 'practicality and aesthetics', structural superiority, environment-friendly would be lost. Like other traditional culture, architectural culture has factors for conflict in cultural value and meanings of traditional era in modern society. So failure to understand historical, regional, and cultural historical value is bound to result in distortion and refraction. In this context, the strict distinction between cultural historical symbolism and practicality is necessary, and for that reason, in order to inherit the proper function and value of hanok culture, the establishment and test of synthetic data (prototype contents) of hinok culture and understanding of meanings should precede. It is because, by doing so, the competitiveness and distinction of hanok culture that can be utilized or symbolized by Han Brand can be attained. 전통 한옥은 '韓 브랜드'의 하나로 선정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이를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는 노력들이 증대되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전통한옥문화의 계승과 활용에 관한 논의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도 적지 않다. 예를 들면 활용논의가 주로 '건축물로서의 한옥'에 집중됨으로서 전통한옥문화 고유의 문화적 정체성과 차별성이 후순위로 밀리는 문제, 전통한옥 관련 문화자료들의 범위 축소와 확보 노력 미흡 등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본고는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대안으로 한옥문화 기초자료를 종합적, 효율적으로 정리하기 위한 방향을 정리한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1) 시기와 주체, 건축배경 2) 지역별 비교와 차별성 3) 전통한옥문화의 공간과 문화상대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통해 해당 한옥문화의 올바른 이해와 자원 활용의 경쟁력, 차별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본고가 향후 전통한옥문화를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함에 있어 특화, 차별성 부각, 활용의 범위와 소재, 대상, 아이디어의 확보 등에 작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는 '본말'과 '주객'이 전도된 한옥문화가 새롭게 나타나거나, 혹은 '實用과 美學, 구조적 우수성, 친환경 등'을 강조하던 전통한옥문화의 가치가 반감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함이다. 다른 전통문화들과 마찬가지로 건축문화의 경우도, 전통시대의 문화가치와 의미가 현대사회에서는 갈등 요인이 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 때문에 전통문화에 대한 역사적, 지역적, 문화사적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면 왜곡과 굴절은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된다. 그런 점에서 문화적 상징성과 실용성의 엄밀한 구분은 물론 필요하다. 결국 전통한옥문화의 본령과 가치가 현대적으로 계승되려면, 종합적 전통한옥문화 기초자료의 정리와 검증, 의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거기에서 활용이 가능한, 또는 '韓 브랜드'로 상징되는 韓屋 문화의 경쟁력과 차별성도 챙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 KCI등재

          조선조 계룡산 중악단의 문화사적 의미

          이해준(Lee Hae Jun) 한국역사민속학회 2013 역사민속학 Vol.41 No.-

          계룡산이 갖는 문화사적 성격은 국가적 제사처로서의 계룡산, 불교문화 성지로서의 계룡산, 그리고 풍수도참 신앙과 관련한 계룡산 등의 세 가지로 크게 요약될 수 있다. 이중 계룡산이 역사상에서 크게 부각된 시기는 조선시대이며, 본고는 이를 대변하는 계룡산신사와 중악단의 문화사적 의미를 조명해 본 것이다. 본고에서 필자는 중악단과 관련하여 원래의 계룡단 위치, 그리고 현재의 신원사, 중악단 자리로 옮겨온 시기, 한말 중악단의 성격이 왕실과 관련되면서 성격이 변천되는 문제,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계룡산 산신제의례 복원의 역사성과 현재성 등을 살펴보았다. 계룡산신사의 성격은 삼국-고려시대의 산천신제의를 이어 조선시대에도 국가제사처로 선정되어 태조 2년에 智異山, 無等山, 錦城山, 鷄龍山, 紺嶽山, 三角山, 白嶽의 여러 산과 함께 「護國伯」으로 작호를 받았고, 세종대에 명산이라 하여 小祀로 정하여 매년 봄, 가을에 香과 祝文을 내려 제사하였다. 조선초기의 계룡산신사는 기록상 神祠가 있었던 것으로도 기록되고 壇으로도 기록되어 정확하지 않으며, 위치도 계룡산 남쪽으로만 표기하여 현재의 중악단 [신원사]이었다는 확증이 없다. 따라서 자료의 소개와 이를 통한 추정을 하였고, 한말 중악단의 성격변천과 재해석 문제(왕실관련 성격)은 그간 착종과 혼돈이 있는 부분을 재정리하여 밝혔다. 중악단의 건립시기와 명성황후로 상징되는 왕실의 지원 배경과 과정은 일반 산신제나 국가제사[소사]와는 다른 형태로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하여 건물의 격이나 건축 구조도 내외삼문을 갖춘 祠廟 형태이며, 건물의 잡상, 화담 등 궁실건축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1876년과 1891년의 계룡산에 대한 왕실의 관심으로 현재의 중악단이 중건되었으나, 1903년 대한제국의 5악제도가 다시 마련되면서 중악의 대상이 달라졌다. 이로써 중악단의 국가제의는 사실상 1903년 이후는 중단되었을 것이고, 이후 일시 지방관의 치제나 아니면 민간화가 진전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계룡산 산신제의는 역사와 전통의 계승, 복원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너무나도 박편화되고 굴절된 것이 많다. 그리하여 복원보다는 다소 굴절되었을지라도 현전하는, 복구가 가능한 자료들을 기록화 하는 작업이 더욱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Mt. Gyeryong has its features in the cultural history, and they can be summarized in three categories including Mt. Gyeryong as the place for national religious services, Mt. Gyeryong as the sacred ground of Buddhist culture, and Mt. Gyeryong as the place with connections to the faith of Feng-shui Docham. The mountain received plenty of limelight in history during Joseon. This study investigated the meanings of its Shinsa and Jungakdan representing the mountain in that period from the perspective of cultural history. In the study, the investigator delved into the original location of Gyeryongdan in relation to Jungakdan, the time when they were moved to the current locations of Shinwonsa and Jungakdan, the issue of the changing nature of Jungakdan with regard to the royal court at the end of Joseon, and the historicity and presentness of the restoration of the religious service for the god of Mt. Gyeryong currently in progress. The investigator examined the historical changes of Jungakdan at Mt. Gyeryong based on the various records of Shinwonsa and Jungakdan and looked into several questions raised by him in the process. Even though no clear answers were obtained due to data limitations, the investigator was able to trace the tradition and changing process of the Shinsa of Mt. Gyeryong, the predecessor of Jungakdan, and rediscuss the debate points that had not been figured out so far in the process. It was also found that there was too much fragmentation and refraction in the current religious service for the god of Mt. Gyeryong in terms of the succession and restoration of history and tradition. The findings highlight the need to fully record the nature, meanings, and processes of the current religious service for the god of Mt. Gyeryong that has been changed since the end of Joseon.

        • KCI등재

          申崇謙의 願刹과 朝鮮時代 墳庵

          이해준(Lee, Hae-Jun)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4 인문과학연구 Vol.0 No.42

          신숭겸(申\崇謙, ?~927)은 충절의 표상인물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통 털어 신숭겸만큼 다양한 추숭의 형태가 전하는 경우도 드물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신숭겸 추숭의 사례가 지닌 성격과 의미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이중 그의 묘역에 세워진 원찰(願刹) 지묘사(智妙寺)를 조선시대 분암(墳庵)의 시원 사례로 주목하였다. 신숭겸의 추숭 활동은 추숭 주체가 국왕의 당대의 포장은 물론 지역민에 의한 지역신(성황신)으로의 추숭, 사족 및 후손에 의한 서원 사우의 제향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하였다는 점, 고려 초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며, 형태도 원찰(願刹), 가면극, 성황신, 조선후기 서원과 사우 등등으로 아주 다양하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특히 본고에서 주목하는 원찰과 분암과 관련하여서는 순절지에 마련된 지묘사(智妙寺)가 조선시대 왕실의 원찰(願刹)?원당(願堂)?능암(陵庵)의 시원?선행사례로 조선조에 사족들의 묘역 수호시설인 분암(墳庵)으로 변화되었고, 이후 재실(齋室)로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본다. Sin Sung-gyeom (?~927) is one of the figures symbolizing loyalty. Both in Goryeo and Joseon Dynasty, there were few figures that went through chusung (crowning a person that has died as king) as in many ways as Sin Sung-gyeom did. This thesis briefly summarizes the characteristics and meanings of the cases of chusung for Sin Sung-gyeom, and among them, it focuses on wonchal Jimyosa built in his tomb as an example of the origin of bunam in Joseon Dynasty. The activities of chusung for Sin Sung-gyeom seem fairly unique in that the subjects of chusung were very diverse including the kings of the times doing the pojang, the residents' chusung for him as the regional deity (or the village deity), and even sajok or his descendants' jehyang at the seowon or sawoo, and the activities were continually done from early Goryeo till Joseon, and the forms were also fairly various including wonchal, mask plays, the village deity, or seowon and sawoo in Joseon. And particularly about wonchal and bunam this study has been focused on, the researcher sees that Jimyosa built on the sunjeolji (the spot that Sin Sung-gyeom died) is the origin or precedent of wonchal?wondang?neungam of the royal family in Joseon, and it was changed to bunam, the sajok's facility to protect the tomb in Joseon, and then developed to jaesil (a room for an ancestral rite) to be transmitted as the form up to now.

        • KCI등재
        • KCI등재
        • KCI등재

          조선후기 관아 기록 자료의 정리와 활용

          이해준(Lee, hae jun) 역사문화학회 2015 지방사와 지방문화 Vol.18 No.1

          본고는 조선시대 지역 행정?문화의 거점이었고, ‘지역문화와 지역사의 현장'이었던 역사유적 읍성과 관아를 대상으로 문화유산의 기록자료 정리와 활용을 검토해 본 글이다. 지역사나 지역문화의 입장에서 보면 읍성과 관아의 역사문화 자원은 해당지역의 역사를 이해하는 중요 ‘指標'이자 귀중한 자료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읍성과 관아유적은 건축물, 유구 중심의 발굴 작업과 정비 복원사업은 계속 추진되지만, 이들 읍성·관아 유적들이 지닌 역사문화적 자원 가치에 대한 연구와 점검은 미흡한 실정이다. 그리고 이는 활용의 측면에서도 특성과 경쟁력을 지니지 못하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현안과 과제를 염두에 두면서 연구 범위와 목표를 ‘문화유산의 인문학적 자료종합과 자원 활용방안 제시'로 설정하고, 구체적인 대상을 충청도 홍산현 관아로 선정하여 (1) 조선시대 읍성 관아의 역사 문화적 위상 (2) 읍성 관아 기록자료의 범위와 조사, (3) 효율적 자원 활용방안 등을 정리하여 현장 중심의 실용적 자료를 제공하고자 한다. This paper has looked into how records and documents of cultural heritage with focus on Eupseong, the central hub of administration and culture and historic site that perserves local culture and history in Joseon Dynasty period, and traditional Government Office are organized and utilized. From the standpoint of local history and culture, the historic and cultural resources of Eupseong and the Government Office play a key role in understanding the history of the region while serving as valuable historic and cultural heritage. Despite the effort to excavate and restore traditional buildings and remnants in and around Eupseong and Government Office historic site, however, there is much to be desired when it comes to study and inspection of cultural and historical value of Eupseong and the Government Office historic site, which causes little progress in utilizing them in a way to benefit descendants. With these pending issues and tasks in mind, this paper aims to present ways to organize and utilize liberal data and information of cultural heritage with focus on Hongsanhyeon Government Office in Chungcheong Province, which includes (1) historical and cultural status of Eupseong Government Office during the Joseon Dynasty period, (2) scope and investigation of Eupseong Government Office records and documents, and (3) presentation of onsite practical data based on study on efficient utilization of resources.

        • KCI등재

          조선시대 감영 문화사와 자원의 성격

          이해준(Lee Hae-jun) 역사문화학회 2008 지방사와 지방문화 Vol.11 No.2

          조선시대 각도의 최고 행정수부인 監營은 문화재(건축 및 史蹟)의 관점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래서 각 지역마다 주로 건축물 중심의 문화재 복원ㆍ정비, 의례 문화의 축제 이벤트 화, 관찰사의 생애사와 치적에 주목한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감영문화는 보다 넓은 시각과 종합적 관심을 지니고 바라 볼 경우, 문화내용이 훨씬 다양하고 주목할 자료들이 많다. 즉 감영에는 건축물이나 문화유적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감영과 연계되는 다양한‘監營文化'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지역문화자원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매우 유용한 활용가능성이 예견되기도 한다. 감영 도시들은 도 단위 광역지역의 오랜 역사와 전통, 생태와 경관, 고품격의 문화가 성장하고 교류했던 지역문화의 거점이었다. 그럼에도 이제까지는 이들 자원들을 방기하거나, 유용하게 활용하지 못한 면이 없지 않다. 감영문화는 다양한 가용성과 경쟁력이 있는 미래 자원으로 감영문화가 지닌 이러한 다양하고 상징적인 지역문화 정체성을 제대로 포착, 점검하여, 향후 올바로 계승하고 활용(자원화)하는 노력으로 1) 원형 소재의 착실한 조사와 수집, 정리 2) 다양한 문화콘텐츠 개발 3) 관광자원 활용의 노력을 예시 지적하고 있다. The focus of interest in a gamyeong, which was the top administrative office of a province in Chosun, has been on its cultural assets(architecture and history). Thus each region has been swept by the dominant trend of pursuing a gamyeong as a cultural asset with noteworthy buildings, creating a festival based on its ceremonies, and publicizing the life history and achievements of governors. From a broader and more comprehensive perspective, however, the gamyeong culture of Chosun does contain even more diverse and noteworthy materials. That is, a gamyeong is more than just about buildings and cultural relics; there is the diverse “gamyeong culture”associated with a gamyeong. When looking at it from the perspective of local cultural resources, it has considerably useful purposes. But it's been an unfortunate fact that those resources have been neglected and never put to good uses. The cities that hosted gamyeongs were the base of local culture where long history, traditions, ecology, landscape, and high-grade culture grew and connected with one another. Thus there is no question that the gamyeong culture provides future resources of diverse usability and competitive edge. In order to grasp and review the diverse and representative identity of local culture found in the gamyeong culture and further to help to inherit and utilize it right(as a resource), the following suggestions were made: 1) archetypical materials should be carefully investigated, gathered, and sorted out; 2) a variety of cultural contents should be developed; and 3) there should be efforts to use it as a tourist resource.

        • KCI등재
        맨 위로 스크롤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