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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친 것들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자연(自然) : 기형도 시 세계

        진영미 반교어문학회 2003 泮橋語文硏究 Vol.15 No.-

        우리 인간들은 자연의 운행 질서를 거역하는 것이야말로 자신들의 위대성을 실현하는 것인 양 착각하며 살아왔다. 기형도 역시 그의 <시작메모>에서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여기서 ‘만들었다’는 것은 인간의 힘이 작용한 위(爲)요 작(作)을 말한다. 무위(無爲)와 무작위(無作爲)인 자연의 상대개념이다. 기형도가 애써 거리에서 시를 만든 것은 참담한 삶에 비해 담담하기만 한 자연이 너무나 무책임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연에 반기라도 들고 싶은 심정으로 애써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고, 비록 그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지만 그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 앞에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그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입 속의 검은 잎>) 여름과 대지(大地)라는 대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과 그들의 작품이 전혀 맥못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무리 고통을 사랑하였던 그였건만 결국 온갖 출렁거림 속에서도 도도히 흘러가는 물줄기와 같은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해도 절로 그렇게 되는’[莫之然而然] 자연의 도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자연의 이법적 질서 안에서 보면 빛과 어둠, 그리고 그 언저리에 놓여 있는 모든 것들은 자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변화는 곧 생명력이다. 이 생명력은 희망이든, 절망이든, 아니면 희망과 절망이 뒤섞인 상태이든, 그 어떠한 것에도 깃들여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빛과 어둠, 희망과 절망, 삶과 죽음의 관계가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응집을 위한 구심력과 해체를 위한 원심력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와 같은 긴장관계일지라도 그것들은 공존할 수밖에 없다. 서로의 관계는 절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칠 수 없는, 그리하여 대립 충돌 속에서도 상보할 수밖에 없는 자연의 운행 질서이기 때문이다. 기형도가 인간의 잣대가 아닌 자연의 잣대로 인간의 삶을 진단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은, 아무리 대낮의 빛을 차단하고 어둠을 마음대로 지배함으로써 꽝꽝 빛나는 불빛으로 인해 스스로 황홀해하거나 곤두박질칠지라도 기본적으로 인간 역시 나뭇잎과 같은 존재이기에 끝내는 공중에 날리던 눈이 땅속에 스며들 듯 자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것은 그 동안 숱하게 저질러온 인간의 과오들이 자연의 품안에서는 어느 정도 화해의 가능성이 있음을 암유(暗喩)한 것이기도 하다. 기형도 시가 빛과 어둠의 부조화로 인한 비정상적이고 뒤틀린 세상을 조형해낸 것으로 그쳤다면, 그의 시는 암울하기만 했을 뿐 독자들에게 그다지 큰 감동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빛과 어둠의 세계를 예리하게 그리고 냉엄하게 진단함으로써 그것들의 내밀한 의미를 찾는 동시에 인간의 작위(作爲)로 인해 초래된 온전치 못한 세상을 치유하고자 하였다. 기형도는 인간을 자연물과 동일시함으로써 빛과 어둠, 절망과 희망, 삶과 죽음의 문제를 인간 중심적 차원이 아닌 우주론적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기형도가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다고 하였듯, 기형도 시의 생명력과 위대성 역시 자연 속에 있음을 알 수 있다. 人類一直把對自然秩序的違逆當作偉大的自我實現而生活至今. 奇亨度亦在其 小序 中說道:“爲了警척一段時間以來對自然不負責任的比喩, 我在路上作了這首詩.”這里‘作詩’的行爲是一種利用人類力量的‘作’和‘爲’. 而‘無爲’和‘無作爲’則是自然的相對槪念. 在大自然的二元對立秩序中, 光明和黑暗, 以及置于他們周圍的一切物體本身都在不斷的變化. 變化就是生命力. 不管這生命力是希望, 是絶望,還是希望和絶望錯綜的狀態, 他們都必然蘊涵于萬事萬物之中. 雖然光明和黑暗, 生和死之間一寸也不能互相讓步, 雖然這種指向凝聚的向心力和指向解體的離心力之間維持着如拔河一樣 緊的狀態, 但他們却又不得不共存一處. 因爲自然的秩序就是這樣, 兩者不肯向任何一方傾斜,同時却又在相互?突中互補. 奇亨度不以人類的判斷標準, 而以自然的判斷標準來診斷人生的原因正在于此. 不管人類是如何的遮斷白天的陽光, 如何隨心的支配黑暗, 如何因耀眼的火光獨自恍惚或眩暉, 他們從根本上說都只是如樹葉般的存在而已,最終都只能像飛向空中的雪花重新潛入大地一樣又回到自然. 這也是一種暗喩, 暗示着人類在其間所犯的錯誤終究有可能在大自然的懷抱中得 到某種程度的和解. 如果奇亨度的詩僅僅停留在對由于光明和黑暗的不和解而引起的非正常的뉴曲的世界的描寫的話, 他的詩便只會充滿陰暗, 而不會給讀者帶來深深地感動, 然而他對光明和黑暗進行了敏銳, 冷靜地分析, 再?到他們表現出來的意義的同時, 幷試圖治愈由于人的所作所爲而導致的不健全的世界. 奇亨度認爲人和自然萬物同時存在, 所以把光明和黑暗, 希望和絶望,生和死的問題題升到了宇宙觀論的層面, 而不是停留在人本主義的層次.奇亨度曾說最偉大的箴言就在自然之中, 而奇亨度詩作的生命力和偉大性亦蘊含在自然之中.

      • Network externality, 기술 확산과 소셜 네트워크

        진영미 한국통신학회 2012 정보와 통신 Vol.29 No.7

        새로운 정보나 기술 확산에 대한 연구가 소셜네트워크의 발전과 함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정보와 기술 확산에는정보/기술의 품질과 함께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정보/기술을 선택했는 지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동일한 정보/기술을 선택한 사람들 수를 network exteranlity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할때에는 본인의 가족,친구등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도 또한 network externality는 단순히 동일한 선택을 한 사람수가 아닌 사회적인 관계가 있은 사람들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선택을 하는지가 중요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는 그래프로 나타낼 수 있다. 사회적 관계에 의한 영향들은 사람과 사람들간의 local interaction에 의해 결정된다. 본 고에서는 network 상에서 정보/기술이 확산 연구의 전반적인 주제들을 network externality 관점에서 살펴보고, 현재 활발하게 진행중인 연구 주제들을 알아본다.

      • KCI등재
      • KCI등재

        통신사행로 표기 유형과 문제점 - 1763,4년 사행록을 중심으로 -

        진영미 열상고전연구회 2018 열상고전연구 Vol.61 No.-

        조선 후기에 12차례의 통신사행이 이루어졌고, 통신사 일행은 그때마다 정해진 사행로를 왕래하였다. 통신사 일행이 지나간 사행로 가운데 일본의 주요 지역만 보더라도 60여 곳이 넘고, 또한 사행로와 관련된 州가 20여 곳이나 된다. 그런데 사행록을 보면, 사행로 관련 주와 지명 가운데 동일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표기가 존재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명의 위치가 바뀌어 있는 경우도 있고, 지명과 그 지명이 속해 있는 주가 사행록마다 달리 기록되어 있는 경우도 있으며, 나아가 사행록에 나온 지명을 일본지도[고지도 포함]에서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1763,4년 통신사행과 관련된 사행록 곧 趙曮의 『海槎日記』와, 南玉의 『日觀記』, 成大中의 『日本錄』, 元重擧의 『乘槎錄』, 吳大齡의 『溟槎錄』, 閔惠洙의 『槎錄』, 卞琢의 『隨槎錄』등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사행로 관련 지명과 그 지명이 소속된 행정구역명을 알기 쉽게 표로 정리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먼저 일본지명의 표기 유형을 지명의 이칭 표기, 지명의 음차 표기, 행정구역명의 중국식 표기 등으로 세분하여 살펴보았다. 이어 일본지명에 대한 표기 방식의 문제점을 노정기 상의 위치 오류, 특정 지명에 대한 오기, 행정구역과 지명의 불일치 등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그 결과, 지명의 이칭에는 약칭ㆍ병칭ㆍ별칭 등 다양한 표기가 존재하였고, 또한 표기에 유래가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州名이나 지명의 음차는 대부분 일본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나, 간혹 음차와 일본음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는 표기도 있었다. 州는 일본의 지방 행정 구분 단위인 國의 이칭인데 州를 생략한 채 표기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오기가 적지 않게 나왔는데, 대부분 자형이 유사하거나 발음이 같아 잘못된 경우가 많았다. 『해사일기』 「노정기」에 일부 지명의 위치가 바뀌어 있음을 알고 바로잡아 두었다. 소속된 州가 사행록마다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지명이 있는가 하면 두세 곳으로 나뉘어 있는 지명도 있었다. 통신사행로 관련 지명과 행정구역명에 대해 고증학적으로 살펴본 본 연구는 통신사행로 관련 주나 지명과 연관된 후대의 연구와 번역에 있어서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In late Chosun dynasty, envoys were dispatched for 12 times, and they have come and gone to given route of envoy activities. Those Chosun envoys have passed Japan’s 60 major regions and 20 states. In envoys’ records, among the places and states where involved with envoys’ pathways, there are many different marks for those places and states even if it is the same place. On top of that, the location of some places were changed, and some states were recorded differently in respective envoys’ records. Moreover, some places in envoys’ records cannot be found from map of Japan. Therefore, we have examined those drawbacks by searching many different envoys’ records from 1763 and 1764 such as Um Cho’s Haesa-Ilgi(海槎日記), Ok Nam’s Ilgwan-Gi(日觀記), Dae Joong Sung’s Ilbon-Rok(日本錄), Jung Gur Won’s Seungsa-Rok(乘槎錄), Daeryung Oh’s Myungsa-Rok(溟槎錄), Hyesoo Min’s Sa-Rok(槎錄), and Tak Byun’s Soosa-Rok(隨槎錄). We organized the name of the envoys’ road and its administrative Firstly, we have examined the marking type of Japan’s places in detail by each places’ another name, Eumcha(音借), and chinese style marking of administrative district’s name. Subsequently, we have searched and divided some problems of the marking styles of Japan’s places by location error of an itinerary, incorrect marking of specific places, and the discordance between administrative district and places. Consequently, many different kinds of marking type were existed such as abbreviation, 2 words with same pronunciation but different characters, and epithet of another name of the place. Furthermore, those markings contain causes and reasons in many cases. Mostly, Eumcha(音借) of states(州) and plaes are closely related to Japanese pronunciation. However, occasionally, it is very difficult to find the link between Eumcha(音借) and Japanese pronunciation from several marks. State(州) is the another name of Kook(國); division unit of Japan’s administrative region. Nevertheless, many places did not mark the state(州). Lots of incorrect marks were found mainly due to similar character shape or same pronunciation. Corrections were made on mislocation of several places in Nojung-Ki inside Haesa-Ilgi. Some states were named as one state or divided into 2~3 different states in each individual envoys’ record. Ultimately, this research, name of places and administrative district associated with the pathway of envoy activities, may be helpful in some sort to future generation’s research and translation in relation to the name of the states(州) or places of envoy activities’ pathway.

      • KCI등재

        誠信交隣의 表象性과 淸見寺의 매화 - 使行錄을 중심으로 -

        진영미 열상고전연구회 2014 열상고전연구 Vol.40 No.-

        1607년에 시작된 통신사행은 1811년까지 총 12차례 이루어졌다. 12차례 통신사행 가운데 京都까지만 다녀온 1617년 사행과 對馬島로 사행 장소를 바꾼 1811년 易地通信을 제외한 나머지 사행은 사행 때마다 통신사가 반 드시 세이켄지를 들르거나 지나갔다. 특히 1607년, 1624년, 1643년, 1655년, 1711년, 1748년, 1764년 사행 때는 세이켄지에 머물거나 잠시라도 들러 이전 통신사들이 남긴 옛 자취와 함께 境內 물상들을 구경하고 그 느낌을 다시 시문으로 남겼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세이켄지와 관련하여 통신사들이 남긴 약 200여 년 동안의 사행록 에 나오는 ‘梅花’라는 경물에 초점을 맞추어, 세이켄지의 매화가 통신사들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 그리고 세 이켄지의 매화가 세이켄지의 경물 나아가 세이켄지에 남아 있는 통신사들의 옛 자취와는 어떤 관련성을 지니 고 있는지, 아울러 세이켄지의 매화가 갖는 상징적 의미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다. 결과, 세이켄지의 매화는 조선과 일본 양국의 誠信交隣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구체적 사물로 表象化된 것으로 상황에 따라 때로는 老梅나 老査香梅로 때로는 落梅나 蟠梅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곧, 세 이켄지 경내 매화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和好의 뜻이 담긴 老梅이면서, 동시에 세이켄지의 옛 자취[이전 통 신사들이 남긴 陳迹]에 대한 통신사들의 새로운 감회가 서린 老査香梅이기도 하고, 때로는 세이켄지를 방문 하지 못한 아쉬움을 드러낸 落梅이기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세이켄지의 매화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통 신사들이 그리워했던 蟠梅로도 형상화되었다. 역사적 사실이 경물과 함께 어우러져 문학이라는 장치와 결합 하게 되면, 그 사실은 자연과 인공의 힘에 의해 시공을 뛰어넘어 전해지면서, 미적 가치 또한 더욱 상승하게 됨을 알 수 있다.

      • KCI등재

        조선과 일본 문헌에서의 통신사행원 명단 비교 고찰 - 『통신사등록』과 『조선통신총록』을 중심으로 -

        진영미 열상고전연구회 2016 열상고전연구 Vol.49 No.-

        조선 후기 통신사행 때, 적게는 300여명, 많게는 500여명의 사행원이 일본에 다녀왔다. 그런데 조선 측 문헌과 일본 측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사행원의 명단을 비교 고찰해보면, 동일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성명이 각각 달리 소개되어 있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 점에 초점을 맞추어 조선 측 문헌 『통신사등록(通信使謄錄)』과 일본 측 문헌 『조선통신총록(朝鮮通信總錄)』을 기본 텍스트로 선정하여, 각각 어떤 문헌인지 서지적 검토를 한 뒤 이어 동일인물로 추정되는데 양국 문헌에 달리 소개되어 있는 통신사행원들을 중심으로 이들의 성명이 어떻게 달리 표기되어 있는지 그리고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등을 고구해보았다. 그 결과, 한편으로는 유사한 한자로 인한 오기(誤記), 동음(同音)으로 인한 오기, 탈자와 뒤바뀜으로 인한 오기 등이 발견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름 대신 자호(字號)와 관직명으로 기록한 경우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대부분 조선 측 문헌인 『통신사등록』에는 오기가 적은 반면, 일본 측 문헌인 『조선통신총록』의 기록에 오기가 많았다. 일본 측 문헌에 오기가 많은 이유는 조선에 비해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고, 또한 필사본을 보고 다시 필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고유명사란, 어느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을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고유의 기호를 붙인 이름인데, 이처럼 사행원 명단에 적지 않은 오기가 발견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어, 다양한 방증자료를 통해 명단의 오기를 바로잡는 데에도 역점을 두었다. In late Chosun dynasty, between 300~500 Korean correspondents went to Japan. By the way, based on a comparison study of Chosun literature and Japan literature, we can considerably discover that many correnspondents’ names were written differently in each literature, even if they are the same person. In this paper, Chosun’s literature (Tongshinsadeungrok) and Japan’s literature (Chosuntongshinchongrok) will be reviewed and studied bibliographically to find out why this phenomenon happened and how correspondents’ names were written differently. As a result, we have discovered some differences such as misspelling due to similar Chinese character, same pronunciation words, an omitted words, and a reversed words. On the other hand, person’s name was written in one’s literature where person’s job position or Nichname was written in other literature. There were much fewer errors found in Chosun’s literature (Tongshinsadeungrok) compared to Japan’s literature (Chosun- tongshinchongrok). The main reason why there are more errors in Japan’s literature is because it was not easy for Japan to collect accurate information of Chosun, and they often transcribe the manuscript which can lead to errors. Ultimately, the main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orrect the errors of one significant correspondent’s name which listed differently in two different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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