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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신발산업의 국제경쟁력과 과제에 대한 연구

        박흥주,빈봉식,송경수,Park Heung-Ju,Bin Bong-Sik,Song Kyung-Soo 대한경영정보학회 2001 경영과 정보연구 Vol.7 No.-

        The Busan shoe industry has been the accelerating overseas transfer of production facilities due to loss of competitiveness in the wake of drastic revaluation of the won, an increase in personnel expenses and the rise of backup developing countries since the late 1980s. On account of changes in the general system of supply and demand caused by a decrease in exports and production, the Industrial structure has been subjected to a transition from export to domestic demand. As a result, the Busan shoe industry, which used to rank second in the world in terms of its shoe export and to account for 16.5% in terms of its market share, started to be regarded as a fast-fading industry. As a domestic companies have a tendency to almost all the tasks on bloc, it is true that their competitiveness is on the rapid decline for they prefer self-reliance on the premise that all the production should be dealt with for themselves. It is outsourcing that is taken into account as a strategic vehicle for converting such self-reliance into the system of low expenditure and high efficiency.

      • KCI등재

        천제(天祭)로서의 호계마을 별신제 연구

        박흥주(Park Heung-Ju) 비교민속학회 2011 비교민속학 Vol.0 No.46

        주민들은 천제라는 믿음으로 거행되는 호계별신제는 제장의 구성과 제작방식에 투영된 도상과 수리체계로 볼 때, 북극성을 중심으로 한 28수 천문관이 투영된 천구(天球)를 구현해 놓았고, 그 북극성은 북극3성으로서 고구려와 고려의 천문관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별신축문의 내용으로나 여러 상징체계를 살펴본 결과 별신의 신격은 천지인 삼재관에 입각한 이법으로서의 삼신이었다. 그러나 국가 사전의례(祀典儀禮)에 준하는 유교식 제의방식(《국조오례의》의 〈길례〉)을 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5경돌기에 그 지역의 굿문화인 군고(풍물굿)를 수용함으로서 굿의 신격인 삼신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하였다. 결국 토착신앙으로서의 삼신을 경배하는 천제임을 확인할 수 있으며, 고구려와 고려의 북극3성에 대한 천문관과 정신을 이어받아 자존과 자긍심을 새로운 역사동력으로 이어가려는 의지를 다지는 기능과 효과를 갖도록 하였다. 이를 ‘별신제’라는 명칭으로 공식화하였다. ‘천제’라는 명칭을 쓰지 않고 ‘별신제’라는 명칭을 사용한 배경은 반역에 가까운 정치성을 위장한 결과로 보인다. 따라서 대외적으로는 ‘별신’이라는 명칭이 갖는 보호기능이 극대화되는 반면, 내부적으로는 천제를 지낸다는 자존의식이 강화되고 있다. 천제를 매년 거행하는 호계별신제의 정치적 상징성은 2가지로 주출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명나라에 짓눌려 있는 조선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이다. 고려의 정신과 사전제도를 회복함으로서 민족이 본래 갖고 있었던 자존과 자긍심을 회복하자는 뜻이 담기게 되며,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겠다는 의지가 표명되게 된다. 두 번째는 중화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분음후토에 걸맞은 사전체계를 선택함으로서 중국과 대등한 입장임을 선포하였다. 동시에 진한(秦漢)의 역사가 시작되던 그 초기의 기개와 자세로 새로운 역사를 스스로 펼쳐나가겠다는 의지마저 함께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Maeoul-Kut(Village ritual) is essentially a ritual for the worship of the heavenly gods, but people didn’t use the term ‘Cheon-Je(天祭, heavenly ritual)’ because the heaven symbolized Chinese Emperor during the Choseon-dynasty and it was prohibited to use the word ‘Cheon(天, Heaven)’ in the provincial countries such as Korea. In view of this, it is curious that the village ritual in Ho-Gye village has been called ‘Chon-Je’ instead of Dang-Je, Dodang-Je, San-Je, Do-Je, Byolsin-Je etc. Why the term has been used in the village and what is its own contents and procedure? Ho-Gye Byeolsin-Je is performed and believed as Cheon-Je and its structure and procedure symbolize the ancient Korean astronomical view of 3-polar-stars. The fact that the term ‘Byeolsin-Je’ instead of ‘Cheon-Je’ has been used connotes the political pretension of the national self-esteem.

      • KCI등재

        풍류로 본 여가와 여흥

        박흥주(Park, Heung Ju) 실천민속학회 2013 실천민속학연구 Vol.21 No.-

        본고는 여가와 여흥문화를 풍류란 관점에서 조망하였다. 향후 한국인의 여가생활과 여흥문화가 어떻게 ‘격’을 갖게 되고, 현대 한국인들의 ‘멋’진 삶에 여가생활과 여흥문화가 기여할 수 있겠는가?를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본고는 현대의 여가문화가 가져야 할 ‘격’으로서 ‘멋’을 제시하였다. 현대의 여가문화가 지향하는 ‘행복한 현대인들의 삶’과 ‘멋있는 삶’과는 긍정적인 상관관계를 갖기 때문이다. ‘멋진 삶’을 찾아가는 데 있어 적절한 문화로서 풍류를 제기하였다. ‘풍류가 바로 멋이다’는 정의에 공감대가 크기 때문이다. 또한 풍류는 그 자체로 여가문화로서의 성격을 이미 갖고 있다. 풍류의 면면과 그 가치를 파악하기 위해 풍류를 생활로서 향유하는 ‘풍류객’에 주목하였다. 풍류객 즉, 화랑, 한량, 위항인, 기생, 주모 등의 풍류를 이해하면서 현대여가문화와의 접점 찾기를 시도하였다. 그 결과, 풍류객들이 일상적으로 놀았던 풍류는 현대여가의 정체성을 제공해주는 3가지의 조건, 즉 ‘자유, 행복, 사회와의 조화’라는 3가지 요소를 이미 포함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 질적인 측면에서는 여가가 감당할 수 없는 영역까지 포괄하고 있음도 드러났다. 즉, 그것은 풍류가 ‘우주적 존재로서의 나를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자(우주인으로서)’로 위치지우는 우주관과 세계관을 기저로 하기 때문에 야기되는 결과였다. 이런 인식론에 바탕을 두고 자연에 인공미를 결합시켜 양자 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차원에서의 삶을 ‘멋진 삶’으로 여겼다. 이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내 자신 속에 있는 신명을 밝혀내 자연으로서의 생명성을 체감하게 하며, 이를 통해 우주와 삼라만상과 소통하도록 하였다. 이를 구현해나가는 효과적이면서도 구체적인 방안이 바로 가무를 중심으로 한 놀이와 예술이었다. 인공미의 발현인 것이다. 가무(예술)와 놀이가 풍류의 주요한 속성일 수밖에 없는 연유이기도 하다. 이런 풍류의 가치 지향은 “‘자유로우면서도 행복한 삶’을 사회와의 조화를 깨지 않는 한계 내에서 구가하려는” 여가의 삶과 차이를 보여준다. 멋진 삶은, 사회적 존재에 함몰되지 않고 우주적 존재로서의 자아를 ‘생명’ 차원에서 인식하고 위치 지우기 때문에, 생명이 본성대로 자유?자연스럽게 흘러가는데 장애가 되는 개인적?사회적?정치적인 요인들을 용납할 수 없었다. 따라서 생명에 대한 저해요인을 해소시키려는 행동도 불사하였다. 사회보다도 더 근원적인 생명 차원에서의 상호 조화를 추구하는 결과인 셈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창의성으로 발현되어지며, 이것이 가능한 놀이내용과 활용방식을 계발해 놓았다. 종합하면, 풍류로서의 여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성을 저해하는 요인들은 적극 해소하려 행동할 필요가 있으며, ‘창의성’도 발현될 필요가 있었다. 대중여가시대를 완성해야 하는 책무와 함께 ‘개인적인 여가 창조시대’를 열어가야 할 시점에서 ‘여가의 질적 고양을 위한’ 즉, 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풍류성을 적극 수용한 여가의 창출’ 이라는 개념과 방안모색이 요구됐다.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개미와 배짱이의 장점을 함께 아울러 성공한 사람”으로서의 또랑광대가 갖는 풍류성의 적극 수용과 “자기에게 주어진 여건을 최대한 즐기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것을 제기하였다. In this paper, we consider about leisure and culture of entertainment in the view of Pungryu. By following the way which Koreans have been making ‘Geouk’(formation) in their leisure and entertainment, we are going to find how leisure and entertainment realize ‘Meot’ in contemporary Koreans lives. ‘Meot’ is important formation of Koreans’ leisure in this time. Because happiness which is keypoint of modern life is very related to ‘Meot’. Pungryu is suitable culture in finding ‘Meot’ in lives these days. Also pungryu already has characters about culture of leisure. To recognize Pungryu’s value, we pay attention to Pungryugeak, such as Hwarang, Hanryang, Wey-hang-in, Geesang, Jumo, who enjoy Pungryu in part of thier lives. This attempt is finding commonplace of Pungryu and modern leisure. As a result, Pungryu which is everydaylife of Pungryugeak already has three contents of modern leisure-freedom, happiness, harmony with society. In the aspect of quality, Pungryu deals with blank places which modern leisure couldn’t cover. It is because of Pungryu’s concept about universe. Human being is the link of the ground and the sky in this view. Meot is, moreover, consonance of natural amd artificial beauty. To approach this stage, you enlighten shinmyung in yourself to feel vigor about nature so that communicate with universe and Samramansang(all of the things). Art and playing with singing and dancing is useful and specific method to realize shinmyung. It is also rising of artificial beauty. This is the reason that singing, dancing, playing is important features of Pungryu. This pungryu’s value is similar with leisure which makes freedom and happiness in harmony with society. Lives with Meot did not lean on social burden. It considers oneself just in natural way. It cannot allow political, social or personal aspects to interrupt human being’s nature. So it cannot help diminishing whatever is harmful to vitality of life. This is the result of activities to make valance with basic nature. If you archive this, creativity is naturally born. Afterall the way how can play and adapt meot is naturally developed. All the take together, we have to remove all the obstacles about realizing nature of lives and developing creativity. This is the time to making popular leisure culture and personal creative method. It is needed to make leisure that is full of Pungryu. One of the specific methods is just enjoying conditions in one’s l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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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마을굿의 유형과 계통

        박흥주(Park Heung-Ju) 한국무속학회 2006 한국무속학 Vol.0 No.12

        현재 서울에는 100여 곳에 이른 동네에서 토박이들 중심으로 마을굿이 전승되고 있다. 도시 마을굿의 성격을 어쩔 수 없이 띠면서 질긴 전승력을 이어가고 있는 서울의 마을굿은 구체적인 연원을 고려 후반기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한강유역을 토대로 한 서울 지역은 일찍이 선사시대부터 사람살이가 풍성하였으리라 보고 있으나 현재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마을굿과의 직접적인 연계성은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로 조선시대에 형성된 서울의 마을굿은 한양성중에 거주하는 양반ㆍ관료와‘서울내기’들을 위해 일하고 장사하는 상민이나 노비들의 문화였으며, 이들의 생활에 구심점을 잡아 주고, 자신들의 권익과 안위를 획득하기 위한 결속의 토양으로 기능했다. 해방 후에 서울은 경기도 일원까지 편입하며 팽창하였으나 마을굿 문화는 상대적으로 산업화와 근대화에 밀려 쇠락의 길에 접어든다. 현존하는 서울의 마을굿을 중심으로 생산토대와의 상관관계를 중시하며 분류해본 유형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첫째, 한강변을 중심으로 문화를 정착시켜나간 바닷가문화이다. 이는 나주금성의 해양세력이 기틀을 잡은 이후 경강상인들이 굳건하게 자리잡은 조선 말기까지 뱃사람들과 해상물류유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의해 향유되었다. 부군당굿을 통해 그들의 정체성과 문화를 구현해 나갔다. 그 중심에 금성당이 있다. 두번째, 조선 개국 이전부터 한강의 평야지대에 살고 있던 기존의 토착문화와의 자연스런 결합인데 도당굿이란 마을굿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수풀당이라는 상징적인 당을 구심적으로 해 자신들의 생업과 문화를 갈무리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 마을굿의 발현 양식이나 놀이방식은 굿놀이형을 기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으나 부군당굿은 굿놀이 형식으로만 치러내려는 의지가 강한 반면, 도당굿은 유교식제례방식과 적절하게 결합된 형태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군당굿과 도당굿의 기저를 이루는 굿놀이 양식은 한양굿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이 한양굿은 고려 개성에 뿌리를 둔 한양굿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하고 있다. 결국 고려시대의 문화와 토양이 한양의 마을굿을 형성시켜내는 근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세 번째로는 거기에 유교문화의 전형인 유교식 제례방식으로 치러지는 산신제형의 마을굿 또한 공존하고 있는데 주로 한양의 북쪽을 보호하고 있는 인왕산ㆍ삼각산ㆍ도봉산 줄기에 분포하고 있다. 이 세 축이 현재까지 전승력을 보이고 있는 서울마을굿의 실체이다. Maeul-kut, or village-based shamanic ritual, in Seoul has greater significance than rural Maeul-kut because farming and fishing communities have been fading out today. Seoul Maeul-kut has been formed mainly from three distinct bases and classes. One is sea-power from Naju, or Keumseung, who settled in around Han-river. They set up their identity and culture by means of Pukundang-kut. The other is the natives who lived on the plain area of Han-river since the predate of the foundation of Choseun dynasty. They set up their identity by means of Todang-kut such as Keumseung-dang and Soopool-dang. Both of these two patterns have the same play form. Even though Pugundang-kut has been somewhat combined with Confucian ritual form, both of these ritual forms, Pugundang-kut and Todang-kut, are equally rooted in Hanyang-kut, whose origin is the culture of Koryo. As an exception of above forms, purely confucian ritual form was found only in the range of Samgak-mountain and Tobong-mountain and this form was taken for the ritual for mountain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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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해안지방 별신제와 군고의 상관성 고찰

        박흥주 ( Heung Ju Park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2014 공연문화연구 Vol.0 No.29

        현재 전라남도에는 20여개의 별신제가 전승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 분포양상을 보면 별신제권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일정한 지역에 밀집해 있다. 바로 군고권이며, 그 중에서도 장흥군의 해안가와 북부고흥반도에 집중돼 있다. 이들은 군고권이지만 군고권의 여느 마을굿과 다른 변별력을 갖는다. 전승마을이 집성촌을 이룬 반촌이며, 전승주체들이 ‘공맹의 후예’를 자처하거나 그 후손들이라는 점이다. 아울러 바닷가이지만 뭍의 문화라는 성격이 분명하며, 농업을 그 생산기반으로 한다. 그들은 국조오례의의 길례에 준하는 유학의 제례의식을 채택한 다음 계급적으로나 내용상 이와는 대척점에 위치할 굿문화로서의 군고를 적극 수용하여 별신제의 구성과 제례를 창출시켰다. 구체적으로 5개 마을의 별신제 현장을 분석해본 결과, 유학의 제례와 군고의 제의방식이 조합하는 모습에서 서로간의 동질성 획득을 위한 접점 찾기가 발견됐다. 각각의 제례에 담긴 상반된 사상과 인식토대, 그리고 계급성의 한계를 극복시키려는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그 접점은 삼양과 삼신의 조우였으며, ‘호계마을-군고권-호남’을 국가의 중심으로 설정하는 호연지기 발휘와 잡귀잡신까지도 주신으로 모실 정도로 일꾼-상민·천민-군고꾼을 공동체성원으로 대등하게 대접하려는 인식전환이었다. 중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주체적이며 자존적으로 제기하고 해소하려는 노력은 고구려의 독자적인 천문관과 신앙관, 즉 북극3성에 입각한 28수천문관과 오신도에 함축된 오방신을 별신제의 주요 신격으로 좌정시킴으로서 드러났으며, 당대 사회의식과 실천학으로서의 유학에 대한 의식은 토지신과 잡귀잡신을 별신으로 지칭하고 받드는 적극성에서 드러났다. 이런 파격적인 제례양식을 창출시켜내기 위해서는 유학자들의 자기변화가 전제될 수밖에 없는데, 현재도 전승력을 이어가고 있는 방촌리 출신의 18세기 실학자 존재 위백규의 사상과 견해에서 그 실상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었다. At present, about 20 villages in Jeollanam-do Province have been performing Byeolsin-Je. These villages are concentrated on coast of Jangheung-gun and nothern Goheung Peninsula. That places, so called Byeolsin-Je cultural area, parallel Gun-go cultural area. Though these villages are within Gun-go area,they have some special characteristics. These villages are "Ban-Chon" where one family lives together for a long time so that they have formed a village. And subjects of transmission call themselves ``descendants of Confucius and Mencius.`` Although these villages locate on the coast, they are obviously conscious about the culture of the mainland of Korea and live on agriculture. They accepted rituals of Confucianism which correspond to a congratulatory ceremony of "Kukcho-Oryeoi". At the same time, they created construct and ritual of Byeolsin-Je by adapting Goon-Go which is the culture of Kut. Therefore Byeolsin-Je played in these villages has ambivalent characteristics about Confucianism and Kut. This thesis surveyed about rituals of Byeolsinje in 5 villages. In these villages, the rituals of Byeolsin-Je combine the rituals of Confucianism with ceremonies of Goon-Go to find cross point for creating homogeneity. They actively try to overcome differences in ideology, perception and subject’s social class of each rituals. The cross point is an encounter between Samyang and Samsin. They bravely establish ‘the Hogye village - Goon-Go area - Honam’ as the center of the nation. And they serve ‘Japgwi-Japsin’ as a central god to converse recognition about ‘worker - Sangmin·Chonmin - Goon-Go-Kkun’ to treat them equally in community. They independently endeavor to criticize Sinocentrism by adopting the concept of 28 constellations based on 3-polar-stars and positioning Obangsin at main divinity. 3-polar-stars and Obangsin are the original astronomical concept and religious belief of Goguryeo. Their consciousness about Confucianism and the society of Korea are manifested by respecting the god of land and ‘Japgwi-Japsin’ as Byeolsin. Therefore the rituals of Byeolsin-Je in these provinces are very unique and distinctive. Only self-alteration of Confucianist could make it. The thought and perspective of Silhak scholar Jonjae Wi Baekgyui from Bangchon-ri which have been passed down nowaday would provide some clues to investigate the reality of Byeolsin-Je.

      • KCI등재

        기획논문1- 주제: <주제: 한국무형문화재와 공연문화> : 풍물굿으로서의 기명기와 그 접변현상 -전라남북도를 중심으로

        박흥주 ( Heung Ju Park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2016 공연문화연구 Vol.0 No.32

        명칭과 그 잔영이 확인되는 ‘기명기’라는 풍물굿이 군고의 일종으로서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서해안을 따라 일정한 권역을 형성하며 존재해왔음을 규명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그 접변현상을 살펴보았다. 기명기의 분포권역과 접경을 이루는 풍물굿은 남쪽으로는 군고(군기)였으며, 동쪽으로는 호남우도농악의 웃녁농악과 아랫녁의 영무장농악이었다. 그 접변 현상은 크게 2가지 양상으로 나타났다. 하나는 해안을 따라 이뤄진 군고권의 군기나 군고와의 전번·접변 가능성이었다. 하나는 바로 인접한 호남우도농악과의 접변이었다. 후자는 다시 2가지 양상으로 나타났다. 첫째는 ‘호남우도농악’에 영향을 미친 양상이다. 검모포진의 기명기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김바우의 군법이 박남식을 거쳐 ‘호남우도농악’의 한 판제에 편제됐음을 확인할 수있었다. 이는 호남우도농악 걸립굿에서의 ‘은지잿재’가락과 군고의 ‘응마갱갱’가락과의 친연성, 군고의 너나리가락과 동일한 가락을 사용한 사례를 통해 실증할 수 있었다. 너나리가락의 경우, 군고에서 사용하는 너나리가락에서의 징이 담당하는 역할을 호남우도농악의 동일가락에서는 거세시키고 장구가 그 역할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는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장구의 성세와 위세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둘째는 호남우도농악이 기명기권에 영향을 미친 양상이다. 이는 전반적인 모습으로서 부안군, 옥구군 등 북쪽기명기권에서는 20세기 초부터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았다. 또한 호남우도농악과의 접변 상황에서 기명기권의 주체적인 수용양상이 우세했을 가능성도 엿볼 수 있었다. 이처럼 본고는 기명기의 실체와 그 흔적을 단편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여러 지방의 호남우도농악과 영무장농악을 군고와 비교하면서 그 접변현상을 파악하여 기명기의 실체를 규명하고 재구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아울러 연희농악의 군법 수용이 갖는 의미와 영향에 대해서도 관심을 제기하였다. We will study cultural sprauchling about Pungmul-Kut to find out the sphere of “Gui-myeong-gui” alongside Jeollanam-do, Jeollabuk-do western coast. In this area, there are some traits and terms about Gui-myeong-gui, a sort of Pungmul-Kut and Goon-go. Several Pungmul-Kuts which border the sphere of Gui-myeong-gui are Goon-gui in a southern direction, Unnyeongnongak of Honamudonongak in a eartern direction, and Yeongmujangnongak. The acculturation occurs in two ways. One is the possible acculturation with Goon-gi or Goon-go in coastal areas. The other is the acculturation with Honamudonongak. Especially, this phenomenan appears in double-way interaction. At first, there is the influence of Gui-myeong-gui in Honamudonongak. Kim Bau’s style, which might relate to Gui-myeong-gui in Geommopojin, incorporate one of Panje of Honamudonongak through Park Namsik. This phenomenon is porved by the affinity between Eunjijaetji Galag of Honamudonongak GeollibKut and Eungmagaenggaeng Galag of Goon-go, and by the similarity to Neonari-Galag. In case of Neonari-Galag, the role of Jing in Neonari-Galag is replaced by Janggu in Honamudonongak, because of the geatest popularity of Janggu in those days. Secondly, there is the influence of Honamudonongak in Gui-myeong-gui. Northern sphere of Gui-myeong-gui like Buan-gun, Okgu-gun has been influenced since early 20th century. In addition, the phenomenon which the sphere of Gui-myeong-gui accepts actively Honamudonongak could occur. So this thesis fragmentarilly checks the existence and traits of Gui-myeong-gui. Based on it, we would be able to reveal and reconstitute the nature of Gui-myeong-gui by understanding acculturation of Pungmul-Kut and by comparing Goon-go with Honamudonongak and Yeongmujangnongak in several regions. Also this thesis draws attention about meanings and effects of Yeonhuinongak’s acceptace of Goon-beop.

      • KCI등재

        ‘개인공동체’로서의 굿문화 엿보기

        박흥주(Park, Heung-Ju) 실천민속학회 2016 실천민속학연구 Vol.27 No.-

        한국민속 내에 잠재된 가능성에 대한 인식력 제고와 더불어, 이제까지 한국민속학이 이룬성과를 재창출의 토대와 가능성으로 적극 활용하려는 인식제고에 관심을 갖고, 그 한 방안으로서 한국민속문화가 갖고 있는 공동체의 실상과 그 특성에 주목하였다. 현대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공동체론과 그 실체 형성에 기여할 방안을 찾기 위해 굿문화를 대상으로 살펴본 결과, 개체와 집단과의 관계는 상보적이어야 하는 공동체였으며, 상생하기 위해서는 개체성을 최대화시키고 집단성을 최소화시키는 인식체계가 도출됐다. 이를 실제상황에서 매 순간마다 최대한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주체성(내 멋), 원초성, 즉흥성(시나위), 현장성을 얼마나 살려나가는 가가 관건이었다. 현대사회는 “자본주의 인간형으로서의 개인이 확산 심화되는 상황에서 개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이며, 공동체와의 관계가 계속 서로에게 유익할 것인가, 공동체와의 바람직한 현재적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진단으로 요약될 수 있었다. 현대인들은 자신 이외의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을 주체로 간주해주지 않는 상황에 직면해 있으며, 거대한 타자들의 대상화에 대항해 홀로만 스스로를 주체라고 주장하는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점점 구성원들 사이에서 주체적 존재로 인정받거나 상호협력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는 중이다. 그것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현상을 ‘익명성’에 자신을 숨기는 개인의 확산이라고 봤다. 그러면서도 관계에 대한 필요와 욕구는 상존해 있다. 익명성은 필요한 내용을 그 순간(한정된 시간)만 공유하기를 원한다는 특징을 보인다. 익명성이 자신을 보호할뿐더러 오히려 자신의 주체성을 적극 발현시킬 수 있는 장치와 통로로 전환시키는 방안이 되고, 익명성을 유지하면서도 상호 협력할 수 있는 적절한 접점을 찾는 공동체를 찾을 수 있다면, 익명성과 한정된 시간을 공유하려는 현대인들의 속성을 굳이 부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오히려 시대성을 획득한 적절한 현대의 공동체문화를 구축할 돌파구일 수 있다. 그 접점찾기에서 굿문화의 공동체성에 주목해봤다. 집단보다는 개체의 절대성과 주체성 발현을 최대한 보장하려는 굿문화의 인식목표는 현대인들이 개인의 주체성을 견지하려는 목표와 상통한다. 익명성 또한 굿문화는 이를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이 내재된 것으로 보았다. 그것은 즉흥성과 현장성에서 도출됐다. 즉흥성은 그 순간의 상황과 관계를 개체가 주체적으로 소화해서 적극 자신을 발현시켜내는 것으로서, 이를 그 현장에 있는 집단(다른 개체들)으로부터 ‘인정받음’을 획득하거나 집단이 그 개체의 즉흥성을 인정하게 될 때 서로 ‘하나’가 되는데 기여할 수 있었다. 익명성으로 실체를 가린 상태라 하더라도 이는 가능했다. 굿문화에서도 익명성이 필요로 할 때는 탈(가면)과 인형이라는 장치를 적극 활용하였다. 사회전체와 개인이라는 관계가 설정될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에게는 익명성이 자신의 주체성을 보호받을 수 있는 좋은 ‘탈’일 수 있으며, 한시적인 만남은 이를 안정적으로 발현시켜줄 수 있는 장치일 수 있다. 현대인 저마다의 주체성 발현이 ‘내 멋’이 되고, 내 멋에 원초성도 담보된 문화를 갖게 될 때, 그 만남의 순간만을 최대한 내 멋으로 즐기는 것이 시나위적으로 조화를 이룬다면 공동체형성에 긍정적일 것으로 봤다. 본고에서는 이를 찾아가는데 있어 ‘개체성(개인)을 최대한 존중하는 공동체상’을 ‘개인공동체’라는 용어와 개념으로 수렴시켜봤으며, 구체적인 개인공동체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 굿문화가 갖고 있는 공동체성의 기여 가능성을 문화력 차원에서 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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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한옥마을 살리기’ 전략으로서의 축제, 그리고 그 역할

        박흥주(Park Heung-ju) 한국민속학회 2011 韓國民俗學 Vol.54 No.-

        도시한옥밀집지역인 전주한옥마을에 대해 전주시와 전문음악축제인 전주산조예술제가 1999년 동시에 한옥마을의 미래를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다. 관과 민간주도라는 분명한 성격을 대변했던 두 활동을 비교한 결과 가치 인식엔 일치하였으나 그 접근법이나 미래상은 서로 차이가 있었다. 전주시는 표면적으로 개발을 내세우지 않았지만 하드웨어 중심의 도시개발이 이뤄졌다. 그 결과 한해 300~40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 한옥숙박체험지로서 정착, 공방중심의 특산품생산?판매거리조성, 전통술박물관 등 문화시설의 신축, 일반시민들의 문화욕구에 부응하는 공간조성, 국제슬로우시티 지정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한옥과 전통문화를 상품으로 개발하여 관광산업화 하려는 전주시의 의도가 맺은 결실이다. 그러나 개발은 원주민들을 배제하는 방향이었다. ‘밤의 공동화’현상이 이미 초래되고 있다. 한옥이 갖는 주거지로서의 본질을 무시하고 거주자를 배제한 상태에서 타자지향의 개발은 관광지로서의 성격만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편, 전주산조예술제는 산조라는 한국음악을 바탕으로 한 음악전문축제로서 민간주도를 견지한 작은 축제를 지향하였다. 전문음악예술제였지만 출발부터 한옥마을의 미래상을 고민하면서, 한옥마을이 갖는 무형의 가치를 발견하고, 주민과 인간중심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여 한옥마을에서 발현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이념적으로는 축제라는 놀이판을 기반으로 해서 전통적인 굿사상과 미학에서 추출한 ‘산조성’을 개념화함과 동시에, 산조성에 입각하여 장르개념마저도 파괴하며 새로운 문예사조를 열려는 시도를 하였다. 산조성과 전주한옥마을과의 만남은 ‘전주한옥마을을 더욱 전주답게, 전주한옥마을답게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얻어내기에 이르렀다. 이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라는 시점을 놓치지 않고 지켜냈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오늘의 산조’를 찾기 위해서 ‘한옥마을 원주민의 역사와 삶’을 중시하면서, 집(한옥)과 마을은 이를 실현해주는 목표이자 현장이라고 본 결과였다. 최근 일상적으로 문화?예술 행위가 산조적으로 펼쳐지고 한옥마을을 놀이판으로 활용하는 다양한 축제가 자리 잡은 것은 바로 산조가 뿌린 씨앗 덕택임이 검증되고 있다. 이는 재개발방식이 아니어도 가능하다는 새로운 도시개발의 전형 제시로 평가받을 만하다. 전주한옥마을은 하드웨어 구축이 어느 정도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전환돼야 할 시점이며, 관의 역할이 변해야 할 시점이라는 공감대가 확산중이다. 이는 주거공간으로서의 한옥을 회복하기 위한 자발적인 주민들의 움직임이 활성화돼야 하며, 전주한옥마을다운 문화공간이나 상업공간에 주목하면서 전주한옥마을 나름의 정체성 확립이 필요함을 뜻한다. 이런 이유로 전주산조예술제가 제시했던 ‘산조성의 발현과 강화’와 같은 이념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In 1999, Jeonju city government and Jeonju Sanjo art festival began projects to make future of Jeonju Hanok village, which is one of Hanok concentration areas in city, at the same time. In this article, we compare two projects that each project could be featured by governmental and non-governmental activity. After all, two activities had common recognition about value of Hanok village, but had different vision about future. So each way to approach about Hanok is very different. In the view of Jeonju city government, even though development was not prior purpose, they focused about hardware of city. As a result, there are visible successful results. Hanok village has settled down accommodation to experience Korean traditional house, Hanok; About 3~4 million tourists visit each year. However there are some criticisms that Hanok’s real nature is ignored and just structural building is remained during developing hardware of the city. It is because of Hanok’s originally features are ignored during developing. Hanok is traditional living space. But development focused to attract tourist from other cities or countries, not native people who want to live there. So Jeonju city government also feel same dilemma. On the other hand, Jeonju Sanjo festival that specialized music festival based on Korean music focused Hanok village’s future vision at the first time. It emphasized intangible value of Hanok village and inventing software for Hanok, furthermore for human being. Jeonju Sanjo festival purposed to revive and conceptualize soul of Sanjo-humanity, cross-over of cultural genre. The final playground that synthesized Sanjo’s soul is Jeonju Hanok village. In that festival, They believed that “past” relates to “present”. So when we connect to history and story of native people who have been living hanok, we can revive Sanjo in contemporary life. In this view, Hanok village is not only its playground but also its purpose. This attempt partly accompolished during Sanjo festival and suggested new possibility of culture and new way of developing city. In Jeonju Hanok village’s hardware is almost completed. So it is time to invent creative software for Jeonju Hanok village. For this change, many people start to think that the government view has to be changed first of all. Volunteer and concern of citizen and native people who love Hanok are also need to make new software for Jeonju Hanok village. And first of all, we have to reconsider about Jeonju Sanjo festival as suggestion about renewing soul of Sanjo and reconstruct origin of Han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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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서마을 당산제의 변화양상에 나타난 문화의 접변현상

        박흥주(Park, Heung-Ju) 한국민속학회 2015 韓國民俗學 Vol.61 No.-

        인위적인 환경조건의 변화와 그에 따른 문화의 접변현상을 파악하기 위해 변산반도에 위치한 부서마을을 대상으로 살펴보았다. 부서마을은 변산만 하구로 유입되는 동진강의 지류인 고부천변에 위치한다. 부서마을에서 여전히 전승력을 이어가고 있는 마을굿으로서의 당산제를 살펴본 결과 서로 이질적인 3가지 속성의 문화가 발견되었다. 하나는 바닷가 어로문화로서의 속성을 갖는 문화였다. 치성일, 뒷전의례에서 드러나는 헌식굿의 잔영, ‘기명기’라는 명칭의 풍물굿 존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농경을 기반으로 한 문화였다. 줄다리기를 통해 드러났다. 이 두 가지 속성의 문화가 접변하여 부서마을만의 독특한 의례문화를 창출시켜낸 결과도 보였다. 오곡밥을 잡귀잡신에게 뿌리며 마을을 도는 의례, 군기로서의 기명기굿이 두레풍장으로서의 성격을 적극 수용한 모습, 이제는 헌식굿이라 할 수 없는 뒷전의례였다.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은 감조하천으로서의 성격을 20세기초반까지 유지했던 고부천의 존재였다. 고부천의 감조구간이 상류까지 연장됨으로서 밀물을 이용하여 하천 깊숙이 배가 드나들 수 있어 부서마을이 포구였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를 방증할 수 있는 지명유래담이 부서마을에 존재한다. 감조하천으로서의 고부천은 농업과 어업을 공존?교차시켜주는 환경적 요인이었으며, 농경지확보를 위한 수리사업과 간척사업의 영향으로 현재는 완전한 농촌으로 변화한 상태다. 세 번째는 농업생산력의 저하로 생긴 이농과 주민들의 노령화가 가져온 현대적 요소의 급격한 수용이었다. 이를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전승주체는 노령에 접어든 여성들이었다. 이런 변화와 접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화하지 않고 있는 요소도 발견됐다. 바로 당산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당신앙이었으며, 이 신앙에 기저를 둔 생명에 대한 믿음이었다. 마을의 존폐와 문화의 전승을 기약할 수 없는 현시점에서 주목한 것은 인위적인 환경조건을 변화시키는 상황에서 이에 대응할 유용한 문화의 창출이 이뤄졌다는 사실과 그 창출을 이끌어낸 접변원리였다. 부서마을의 지속적인 존립과 문화의 전승에 기여할 바람직한 모습을 상정하면서, 접변과 불변 모두를 가능하게 했던 기저로서의 당신앙과 그 생명성을 가치적 차원에서 규명할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This thesis focuses on Bu-SeoMaeul in Byeonsan Peninsulato figure out changes of artificial condition and the phenomenon of cultural assimilation. Bu-SeoMaeul locates on a riverside of Dongjingang which flows into Byeonsan bay. Dangsanje which is still passed down in Bu-SeoMaeul contains 3 characteristic cultures. One of the cultures has characters of fishery culture in the seaside. It appear in the day of Chi-Seong, vestiges of HeonSin-Kut which is performed in the ritual of Dwijion, and existence of the word, ‘Gui-myeong-gui’. The other one is agricultural culture, which appears as Juldaligi. There are also the assimilation of these two cultures, so that Bu-SeoMaeul has specific ritual culture. This character is identified by the ritual that turns around town while people are scattering Ogockbob to SamGui-Samsin, the adoption of Kut as martial performance and Durea-Pungjang, the changes of in the ritual of Dwijion which no longer has HeonSin-Kut’s characters. These culture assimilation occurred by Koboocheon, which had characters of tidal river until the early 20’s century. As the tidal section of Koboocheon extends to upper region of river, Bu-Seo Maeul might be a port that boats could be passed by rising tide. The history about the name of Bu-Seo Maeul proves this presumption. Koboocheon as tidal river made environmental condition to coexist and across fishery and agriculture. Because of irrigation and reclamation, these days Bu-Seo Maeul changed to totally agricultural town. Also the exodus from country to city caused by decreasing of agricultural productivity and aging phenomenon make people in Bu-Seo Maeul rapidly adopt modern culture. The aged women lead this alteration. Though these alteration and assimilation of cultures, the belief in Dang for grandfather and grandmother of Dang-san and the belief in life based on the belief in Dang still exist. When it is difficult to maintain the town and transmit cultures, this thesis focused on the fact that they create a useful culture to be able to cope with changes and on the principle of cultural assimilation. While we suppose a desirable figure which could contribute toward maintenance of Bu-Seo Maeul and transmission of cultures, it is necessary that the investigation about the belief in Dang, which is basement of discontinuity and maintenance, and its belief fo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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