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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 해중릉 주변의 민속신앙과 문무대왕 문화제의 필요성

        강석근 ( Seog Keun Kang ) 온지학회 2013 溫知論叢 Vol.0 No.37

        이 논문은 신라 문무왕 해중릉 주변의 민속신앙과 문무대왕문화제의 필요성을 제시한 글이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은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자신의 유언에 따라, 동해 바다에 산골(散骨)된 이후, 그 무덤인 해중릉과 이견대 등은 우리나라의 대표 용왕신앙의 유적지가 되었다. 이로 인해 이곳들은 예로부터 무속행사가 1년 내내 끊어지지 않는 곳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들은 승리를 기원하는 용신제(龍神祭)를 이곳에서 지냈고, 경주 부윤도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는 등 많은 무속행사들이 다양하게 펼쳐졌다. 그리고 현대에도 해중릉, 이견대 등에서는 문무대왕 춘추계 향사(享祀), 문무대왕 추모예술제, 동해용왕 대제, 불교계의 방생법회 등등이 거행된다. 이런 행사들은 그 하나하나가 대단한 잠재력을 가진 문화자원이지만, 개별행사에 머물러 있어서 경주를 대표할 문화 자원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필자는 문무왕과 해중릉에 관계되는 모든 행사들을 함께 연구하고 이것을 토대로 문무대왕과 해중릉을 주제로 연결한 ‘문무대왕문화제’를 제안하였다. 생기 잃은 경주의술과떡축제와 신라문화제의 약점을 보완할 작지만 강한 양북면의 지역축제인 ‘문무대왕문화제’의 필요성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아울러 이 행사가 경주의 대표적 문화자원이 될 것이라는 점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This paper suggest the necessity of folk religion near the royal tomb in the sea and the necessity of the King Mun-moo culture festival. The King Mun-moo who joined the Korea peninsular in the one, left the will that he will be the patron dragon of East Sea whom he die. His ashes was scattered at East Sea. After that, his tomb and Yi-gyeon-dae became historic site of a dragon king religion. Therefore, occult practice have been held on this site all through the year.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loyal troops held Sea god festival which pray victory of war at this sites. Many governors of Gyeong-ju held a ritual for rain at this sites, too. In addition, memorial ceremony, art festival, Buddhist ceremony of the King Mun-moo are held at this sites in these days. Each events have a great cultural potential, however, each events are divided individually so that they can`t develop for a culture resources of Gyeong-ju. So I suggest ``The King Mun-moo festival which include all the ceremonies. There are Wine and rice cake festival` and ``Sil-la culture festival`` in Gyeong-ju. But they have lost their vitality. ``The King Mun-moo culture festival will complement the weakness of the festivals in Gyeong-ju. I suggest that this festival will be the representative festival of Gyeong-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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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천(堤川)의 의병(義兵) 한시(漢詩) -의암(毅庵)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강석근 ( Kang Seog-keun ) 세명대학교 지역문화연구소 2005 지역문화연구 Vol.4 No.-

        본고는 항일투쟁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던 의병장 의암 유인석의 의병 한시가 가진 문학적 특징을 해명하기 위해 집필되었다. 유인석은 구한말 위정척사(衛正斥邪) 운동을 주도했던 대표적인 유학자이자 의병장이었다. 그는 말년 20여년 동안 목숨 걸고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고, 중국·러시아에 망명하여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였다. 이런 투쟁 중에 그가 쓴 시에는 나라 잃은 시인의 절망·한숨·분노·탄식과 함께 조국의 독립에 대한 희망과 그의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그의 의병 한시는 시로 쓴 의병운동사이다. 본고는 그의 의병시가 가진 특징 가운데 두 가지 측면을 살펴보았다. 첫째, 망국의 슬픔과 함께 독립의 희망을 노래한 것이다. 이런 시가 가진 특징은 전반부에서는 망국과 유학적 도리가 망해버린 뼈아픈 현실적 상황을 슬퍼하지만 후반부에서는 독립에 대한 강력한 희망을 드러냈다. 이같은 해피엔딩의 결사 구조는 절망의 현실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오직 독립만을 바라는 의병장의 강한 신념을 보여주는 장치였다. 둘째,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철저하게 반성하면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의암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위한 학문적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 먼저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반성하는 솔선수범을 보여주었고, 이를 기반으로 후학들에게 큰 꿈을 갖게 하고 철저하게 항일투쟁에 임할것을 주장하였다. 이같은 의암의 문학적 특징은 그가 일생동안 추진했던 위정척사 정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본고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analyze the characteristic of Uiam Yu In-Seok(1842-1915)'s poetry in the last period of Cho-sun Dynasty. Yu In-Seok was the commander of loyal army and scholar who lead the Yui-jeong-chuk-sa(圍正斥邪) movement. He devoted himself to become independent of our country. He exiled himself to china and Russia and fought against Japanese to the last drop of his blood in his last twenty years. His poetry in these combative times show that the lost country poet's hope of his homeland's independence and his ideology with his despair·sigh·resentment·lamentation. So his Chinese poetry is also the written loyal army movement history. This paper searched two sides of his poetry's character. First side is the work that expressed the ruined country's sadness and the of independence. The character of his poetry in the first half show that the sorrow of doomed country and confucianism but powerful hope of country's independence exists in the later half. This kind of happy ending structure indicates powerful belief of independence without give up in hopeless actual. Second side is the work which expressed that reflected on his conduct and taught younger scholars. Uiam show set the pace for reflecting his fault to practice academic target for Uigi-jihak(爲己之學). He made younger scholar to have a big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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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도 동계학술대회 발표논문 : 불국사(佛國寺) 제영시(題詠詩) 연구(硏究)

        강석근 ( Seog Keun Kang ) 온지학회 2011 溫知論叢 Vol.0 No.28

        본고는 불국사를 노래한 한시 즉 불국사 제영시의 문학적 성격을 연구한 글이다. 불국사와 관련된 대표 기록은 최치원이 지은 <佛像讚> 3편과 『삼국유사』의 「大城孝二世父母 神文代」조이고, 또한 조선후기에 편집된 불국사 寺誌인 『華嚴佛國寺古今歷代諸賢繼創記』이다. 그리고 조선의 여러 문인들이 남긴 수십 편의 불국사 관련 시문들이다. 최치원의 글은 <大華嚴宗佛國寺阿彌陀佛像讚幷序> 외 2편이다, 최치원의 이 작품들은 불국사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문학적 기록들이다. <대화엄종불국사아미타불상찬 병서>와 그 <讚詩>는 불국사 창건자인 김대성, 화엄사상과 아미타사상으로 대표되는 불국사의 종파적 특성을 확인시켜 주었고, <大華嚴宗佛國寺毘盧遮那文殊普賢像讚幷序>와 그 <찬시>는 헌강왕의 왕비 脩媛 權氏가 죽은 夫王에 대한 지고한 貞烈을 드러낸 작품으로, 죽음을 초월한 헌강왕 부부의 아름다운 사랑을 담고 있다. 일연의 「대성효이세부모」조와 그 <찬시>는 석굴암과 불국사의 창건 과정과 김대성의 삶을 간명하게 정리한 내용이다. 김시습의 불국사 시는 과도한 불사로 민중들을 고달프게 한 사실을 비판하고, 이제는 그 자취마저 사라진 불국사에서 느낀 인생무상의 세계관을 보여주었다. 이만부는 불교에 비판적인 유학자였지만, 불국사의 석조유적이 가진 예술성을 높이 평가하였다. 또한 草衣 意恂의 <佛國寺懷古> 9수는 불국사를 노래한 시들 가운데 가장 다채로운 성격의 작품으로, 무영탑, 헌강왕 고사 등 불국사를 심층적으로 노래하였으며, 초의의 시를 보고 쓴 秋史 金正喜의 불국사 시는 禪的 특성이 강한 작품이고, 초의와 김정희는 이 시들을 통해 승려와 유자간의 시적 교류의 한 사례를 잘 보여준다. This study is for a literary traits of Chinese poetry about Bul-guk-sa temple. There are a few typical documents about Bul-guk-sa temple. They can be classfied into four groups. First. There are a record about Bul-guk-sa temple in a three poems to praise Budda of Choi Chi-won. Second record is in Sam-guk-you-sa. Third is in Go-geum-chang-gi which arranged the history of Bul-guk-sa temple in the late of Chosun dynasty. The last, many poets of Chosun recited about Bul-guk-sa temple. The poems of Choi Chi-won supply a valuable information about Bul-guk-sa tmeple. We can find the poems about praising Budda in Sam-guk-yu-sa, which arrange the establishment process of Bul-guk-sa temple and the life of Kim Dae-sung. Kim Si-seup and Lee Man-bu wrote poems about Bul-guk-sa temple with Confucian scholar`s perspective, they criticized excessive construction. There are many poems which recited Bul-guk-sa, However, Buddhist monk Cho-ui Ui-soon`s nine poems <Bul-guk-sa Hui-go> are most outstanding works. He dealt Bul-guk-sa temple with many aspects like the legend of Mu-young-tap and King Hun-gang. Chu-sa Kim Jung-hi respond for Ui-soon with poems, which show a literary exchange and friendship with Buddhist and Confuc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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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기림사(祗林寺)의 오종수(五種水) 연구

        강석근(Kang, seog-keun),이창식(Lee chang-sik) 역사문화학회 2013 지방사와 지방문화 Vol.16 No.1

        이 논문은 경주 기림사에 존재하는 5개의 우물인 ‘오종수(五種水)’의 연원과 그 변화 과정, 그 문화적인 의미를 추적한 글이다. 오종수는 ‘오색화(五色花)’와 더불어 기림사를 대표하는 문화적인 상징물이다. 기림사의 ‘오색작약’과 오종수 가운데 하나인 ‘감천(甘泉)’은 신라 때부터 전해오는 ‘동도의 7가지 괴이한 사실’인 동도칠괴(東都七怪)에 포함된다. 오종수 가운데 4개의 우물은 시대마다 이름과 위치는 달라졌지만, 감천의 이름은 계속 유지되어 왔고, 5개의 우물이 기림사의 동서남북과 중앙의 5방(五方)에 존재했던 점은 같다. 또한 오색화는 세속에서는 오색 작약(芍藥), 절에서는 오색 우담바라화, 무속에서는 오색 환생화로 나타나지만, 모두 죽은 사람을 살리는 신령스러운 꽃으로 알려져 왔다. 또한 오색화는 ‘만다라(曼陀羅, mandala)’의 형태로 기림사를 장식하였다고 한다. 이 오종수는 기림사를 장엄(莊嚴)했던 오색화를 키우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신화(神花)인 오색화를 키우던 성스러운 생명수였다. 곧 죽은 부모를 살려낸 <바리데기> 신화의 생명수와 같은 물이다. 아울러 감천은 찻물로서도 매우 유명했다. 또한 효종 5년(1654)에 삼창(三創)된 약사전의 헌다도(獻茶圖) 벽화와 차 이야기가 주요 모티프를 이루는 기림사 사지(寺誌)는 조선을 대표하는 다승(茶僧) 초의 의순(草衣 意恂) 스님에게까지 영향을 주었다. ‘생명수’와 ‘생명화’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간직한 기림사는 ‘생명과 생태와 힐링’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 될 수 있다. 특히 기림사 약사여래불의 위신력과 오색화와 오색수의 개념을 도입하고, 이것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스토리를 만든다면 기림사는 월성원자력발전소와 방사성폐기물저장소가 있는 반생명적, 반생태적 공간을 넘어서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생명과 힐링’의 생태 사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Kirim-sa(祗林寺) is not that popular temple compared to the near temple Bulguk-sa. This temple is, however, the historic temple with a outstanding relics. Kirim-sa has a potential contents so that very appropriate to the age of healing and ecology. Oh-sek-hwa(五色花)’and Oh-jong-su(五種水) are the main contents of Kirim-sa. Kirim-sa was a Oh-sek-hwas paradise. First, Oh-sek-hwa was decorated in the garden of Kirimsa. Second, Oh-sek-hwa was ‘the flower of rebirth’. Many shaman songs says that Kirim-sa was a producing district of Oh-sek-hwa. And then, Oh-sek-hwa was called as ‘Oh-sek-jak-yak(五色芍藥)’ Because of these reason, ‘Dong-do-chil-gue(東都七怪)’ contains Oh-sek-jak-yak of Kirim-sa. Kirim-sa was also a paradise of water. Oh-jong-su(五種水) including gam-cheon which is one of ‘Dong-do-chil-gue’ are located in Kirim-sa. Rebirthing flower, Oh-sek-hwa, was raised by holy water, Oh-jong-su. In ancient myty, <Bari-deki>, there was life-giving water which saved dead parents. Oh-jong-su is same like this life-giving water. Kirim-sa was the temple of tea. Called as the originator of Korean tea, monk ‘Cho-ui(草衣)’ stayed at Kirim-sa in 1817. It is supposed that ‘Cho-ui’ was affected by the tea culture of Kirim-sa. Oh-sek-su was very popular as tea-water. Gam-cheon(甘泉) is one of ‘Dong-dochil-gue’, because ‘Gam-cheon’ is not only life-giving water but outstanding tea-water. Kirim-sa is a special place for life and ecology with the life-giving flower and life giving water. Especially, if we can make new story about Oh-sek-hwa and a dignity of the temple, Kirim-sa will become new popular attr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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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 · 문화학] 한국 호랑이의 문화 상징적 가치와 의미

        강석근(Kang, Seog-Keun) 국제언어문학회 2019 國際言語文學 Vol.- No.42

        본고는 한국 호랑이가 가진 문화 상징적 가치와 의미를 탐색한 논문이다. 한국인에게 호랑이는 현실적인 삶과 심상에 깊이 자리 잡은 동물이다. 호랑이는 한국인과 한국문화의 최초 DNA를 가진 「단군신화」에서부터 나타난 후 계승되어 왔으며, 생태계의 먹이사슬 구조에서 최종 포식자였기 때문에 인간에게도 엄청난 공포와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호랑이는 산신이며, 또는 산신의 사자이다. 『후한서』에서는 “‘동예족’은 호랑이에게 제사를 지내며 신으로 섬긴다.”고 했고, 이런 신앙의 전통은 최근까지 삼척군 근남면에 있는 ‘백호 서낭당’에까지 이어졌고, 현대 강원도 ‘산멕이’의 전통과도 연결된다. 둘째, 호랑이는 벽사(辟邪)의 기능을 가진다. 호랑이는 동서남북 가운데, 서쪽을 지키는 상징적 동물이 되었다. 4~5세기의 고구려 고분벽화와 신라 왕릉 호석의 12지신상(十二支神像) 등에도 남아 있다. 셋째, 전통사회를 대표하는 죽음의 요인에는 ‘호환(虎患)과 마마(媽媽)’가 있다. 초선초기 호랑이를 잡던 착호군(捉虎軍)이 전국에 1만명이 있었고, 1900년경 함경도 원산에서 1년간 거래되던 호랑이 생가죽은 500여 개였다고 한다. 1980년 중반까지 태백산 산간에 남은 호식총의 흔적도 무려 220여 개나 되었다. 넷째, 우리나라에는 호랑이 설화가 넘쳐난다. 이를 분류하면, 보은형, 호식형, 우둔형, 변신형 이야기로 나누어진다. 호랑이 설화가 무척 다양한 양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호담국(虎談國)’라고 불리는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다섯째, 이제 한국에는 자연 상태의 호랑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호랑이의 가치가 사라졌는가? 경북 봉화군에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2018년 5월 4일 개장되면서, 방사한 3마리 호랑이의 인기로 인해 이 수목원은 명소가 되었다. 따라서 이곳에 호랑이 박물관을 개관하고, 호랑이 문화콘텐츠의 성지로 개발할 필요가 있음을 제안하였다. 본고는 한국 호랑이가 가진 문화 상징적 가치와 의미를 탐색한 논문이다. 한국인에게 호랑이는 현실적인 삶과 심상에 깊이 자리 잡은 동물이다. 호랑이는 한국인과 한국문화의 최초 DNA를 가진 「단군신화」에서부터 나타난 후 계승되어 왔으며, 생태계의 먹이사슬 구조에서 최종 포식자였기 때문에 인간에게도 엄청난 공포와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호랑이는 산신이며, 또는 산신의 사자이다. 『후한서』에서는 “‘동예족’은 호랑이에게 제사를 지내며 신으로 섬긴다.”고 했고, 이런 신앙의 전통은 최근까지 삼척군 근남면에 있는 ‘백호 서낭당’에까지 이어졌고, 현대 강원도 ‘산멕이’의 전통과도 연결된다. 둘째, 호랑이는 벽사(辟邪)의 기능을 가진다. 호랑이는 동서남북 가운데, 서쪽을 지키는 상징적 동물이 되었다. 4~5세기의 고구려 고분벽화와 신라 왕릉 호석의 12지신상(十二支神像) 등에도 남아 있다. 셋째, 전통사회를 대표하는 죽음의 요인에는 ‘호환(虎患)과 마마(媽媽)’가 있다. 초선초기 호랑이를 잡던 착호군(捉虎軍)이 전국에 1만명이 있었고, 1900년경 함경도 원산에서 1년간 거래되던 호랑이 생가죽은 500여 개였다고 한다. 1980년 중반까지 태백산 산간에 남은 호식총의 흔적도 무려 220여 개나 되었다. 넷째, 우리나라에는 호랑이 설화가 넘쳐난다. 이를 분류하면, 보은형, 호식형, 우둔형, 변신형 이야기로 나누어진다. 호랑이 설화가 무척 다양한 양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호담국(虎談國)’라고 불리는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다섯째, 이제 한국에는 자연 상태의 호랑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호랑이의 가치가 사라졌는가? 경북 봉화군에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2018년 5월 4일 개장되면서, 방사한 3마리 호랑이의 인기로 인해 이 수목원은 명소가 되었다. 따라서 이곳에 호랑이 박물관을 개관하고, 호랑이 문화콘텐츠의 성지로 개발할 필요가 있음을 제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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