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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역교육에 대한 학습자의 요구조사와 결과분석

        왕맹 중국한국(조선)어교육연구학회 2014 한국(조선)어교육연구 Vol.9 No.-

        本文從韓國語學寫者對口譯課的要求入手,針對學生之所以上口譯課的原因等六個方面的問題分別對天津兩所高校100名韓國語系在校學生進行了調査,幷利用spss統計軟件對本科生及硏究生數据結果差別的顯著性進行了分析,從而提出了針對學生要求改善口譯課堂敎學的四点建議。

      • 韩国海外派兵决策的影响因素分析 -以海湾战争派兵决策为对象

        王萌 천진사범대학교 한국문화연구중심 2020 중한언어문화연구 Vol.19 No.-

        1990년대 초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미국이 다국적군의 형식으로 이라크에 대한 걸프전을 치렀다. 노태우 정부는 미국의 파병 요청을 받고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의료지원대와 공군 수송부대의 다국적군 파견의 결정을 했다. 베트남 파병에 이어 두 번째 해외 파병이며 국제사회의 군사행동에 적극 동참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파병을 통해 한국의 외교 공간을 넓히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였으며, 객관적으로 유엔 가입을 추진함으로써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역할이 한층 강화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 설문조사를 통해 본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한 중국 차세대의 인식

        왕맹,진아이화 천진사범대학교 한국문화연구중심 2019 중한언어문화연구 Vol.16 No.-

        本文通过对中国天津,上海等地区大学韩国语专业在校生共100名进行访谈与调查问卷,分析了中国青年对朝鲜半岛统一问题及当下一些热点问题的态度和看法。文章认为中国青年学生对半岛统一问题的关注度有待于进一步提升,对半岛统一问题的有待于进一步加深理解。通过调查问卷可以看出为中国青年对朝鲜半岛统一问题的知识主要来源于中国政府的立场以及中国主流媒体报道的影响,同时也加入了青年们独特的思考,但总体上与中国政府的立场是一致的。

      • 尹東柱詩作中體現的基督敎意識

        왕맹 천진사범대학교 한국문화연구중심 2014 중한언어문화연구 Vol.8 No.-

        저항시인 윤동주는 어려서부터 받아온 가정과 학교에서의 기독교 교육의 결과기 독교 의식이 그의 시 정신에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본문은 그의 시에 나타나 있는 죄 의식, 속죄 의식 그리고 미래에 대한 종말 의식 등 기독교 의식을 분석했다. 그의 내향적 성품과 관련되어 그의 시에 나타나는 이러한 기독교적 의식 세계는 ‘부끄러움’으로 대변되는 죄 의식과 그것을 속죄하고자 하는 희생정신이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마지막의 심판을 기다리는 확신이 그의 기독교 정신을 한층 밝음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 韓國靑年戰地工作隊隊刊 ≪韓國靑年≫ 硏究 ――以北京大學圖書館館藏 ≪韓國靑年≫ 爲中心

        왕맹 천진사범대학교 한국문화연구중심 2017 중한언어문화연구 Vol.12 No.-

        한국청년전지공작대는 재중한인의 무정부주의 청년과 민족주의 청년이 연합하여 이루어진 항일대오이고, 서안, 화북지역에서 제일 최초 모집한 한국 항일무장역량이다. 1940년 7월15일, 작전대는 서안에서 <한국청년>창간호를 자신을 선전하는 간행물로 삼았고, 1942년 3월까지 총 4기를 출판하였으며, 본고의 연구대상은 베이징 도서관에 소장한 <한국청년>창간호이다. 이 <한국청년>창간호는 중문으로 출판하였고, 내용도 풍부하고 창간취지는 ‘위대한 중국항일전쟁에 참가하고, 중한 두 민족이 연합하여 항일하고 해방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干訓團과 섬서군정각계의 연설문, 세계정치경제형세, 일본군내부 반전병사의 편지, 한중양국혁명역사 및 투사들의 전투경력, 자유체 시가 및 한국청년 작전대의 활동정황들이 포함되어있다. 그 외에 뮤지클 <아리랑>에 대한 선전, 또 서안 여러 대표적인 신문가 뮤지클의 감상문을 전재하였다. 본 간행물은 한중양국이 연합하여 항일하는 역사를 연구하는데 1차적인 사료로서, 높은 사료적 가치와 연구적 의의를 갖는다. 이는 한국독립운동사, 한중관계사, 중국항일전쟁사 및 한중양국신문사에도 중요한 연구 가치를 갖는다.

      • KCI등재

        中日战争期间日本的华中宣抚工作 —以熊谷康的宣抚经历为考察对象—

        王萌(왕맹),李天成(이천성) 호서사학회 2022 역사와 담론 Vol.- No.101

        1937년 전면적인 중일전쟁을 일으킨 후 일본 군정 당국은 많은 선무반을 중국 점령구로 파견했다. 일본군의 침략으로 인해 무너졌던 지방사회의 질서는 선무반의 선무활동에 따라 회복되는 듯했다. “선무(宣撫)”는 원래 지방으로 파견된 관료가 민심을 안정시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일본 군정 당국에 의해 점령 지역 민중의 사상을 통제하고 침략자에 대한 저항 의지를 꺾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일본의 패전 후 “선무”와 “선무반(宣撫班)” 등의 용어는 일본어에서는 잊혀진 언어가 된다. 최근 중국과 세계의 학계는 선무반이 중국 점령구에 대한 식민통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던 점을 주목하고 있다. 중국 학자들은 전시 일본이 행한 구체적인 선무공작의 침략성을 밝혔다. 일본 학자들도 선무 작업의 다양한 방식을 살펴 보고 선무활동의 실질적인 효과를 분석했다. 한국에서도 선무공작의 탄생지이자 이 작업의 시험장이었던 위만주국(偽滿洲國)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나왔다. 전쟁 초기 강남에서 사회 질서가 복원되는 과정 속에서 선무반의 역할을 밝힌 캐나다 학자의 연구도 있다. 그러나 선무반 성원의 실제 활동과 심리적 측면에 관한 심화된 연구는 드물다. 일본 침략군과 점령구 민중 사이에 처했던 선무원들은 직업군인과 구별된 특수한 단체였다. 선무반의 일원으로서 熊谷康(구마가야 야스시)는 화중 점령구였던 쟈띵〔嘉定〕과 펑푸〔蚌埠〕에서 근무하면서 전쟁으로 인한 지역 사회의 충격과 민중의 반응을 지켜봤다. 구마가야의 전시일기와 전후 구술 기록을 살펴보면 선무원 개개인의 대중침략 정책에 관한 인식과 더불어 구체적인 공작의 내막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통치하 화중 점령지역 사회의 여러 실상들도 알 수 있다. 송호 항전의 말기에 일본 군정 당국은 대중국(對中國) “선무” 작업의 서막을 열었다. 화중은 남경(南京) 국민정부 통치의 핵심 지역이고 구미열강의 관심이 집중된 곳으로, 정치 경제 문화 등등 여러 측면에서 동북이나 화북의 상황과 큰 차이가 있었다. 1937년 11월 일본군의 화중 방면군은 상해에 선무반 본부를 설치했고 점령구 주요 도시로 선무반들을 파견해 화중의 선무 공작을 상시화시켰다. 구마가야 야스시는 화중 선무반의 일원이었다. 전쟁 중 선무에 종사하면서 생산‧유통‧무역에 관한 여러 연구보고서를 작성했고 중국 농업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만철(滿鐵)의 근무 경험이 있는 그는 다른 선무원들에 비해서 선무 공작에 대하여 더 깊은 이해가 있다. 일본의 대중작전(對中作戰)으로 쟈띵〔嘉定〕 등 강남 도시가 큰 피해를 입었다. 선무반의 급선무는 피난으로 떠난 민중을 위로하고 사회 질서를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쟈띵 선무반은 “자치위원회(自治委員會)”를 이용해서 현지의 사회 질서를 재건하고자 했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는 현지 경제를 회복시켜 일상의 이익을 확보하는 데 있으며, 셋째 단계는 시료(施療)‧선전‧교육 등의 수단으로 민심을 수습하는 데 있었다. 선무 작업의 또 다른 중요한 임무는 일본군이 필요로 하는 각종 일상용품과 노동력을 징발하고 현지에 주둔한 일본군에게 물자를 싼값으로 제공하는 것이었다. 회북(淮北)의 펑푸〔蚌埠〕에서 진행한 선무 업무는 구마가야의 두 번째 선무 경험이다. 쟈띵 선무 작업이 전면적이었던 것과 달리 펑푸 특무기관의 요구 하에 구마가야는 주로 경제와 정치의 선무를 주관하고 있었다. 그는 회북지역의 민간단체인 홍창회(紅槍會)를 설득하고 귀순시키는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밖에 또 일본의 “신동아건설” 이론을 선전해 일본어 교육 가운데 융합시키며 현지 중국인 청년들이 일위정권(日偽政權)을 옹호하도록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구마가야의 전시 일기를 볼 때 그는 전시 일본구의 강남과 회북 점령지에 대한 전방위적인 관찰과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쟈띵은 전쟁 전 국민정부 통치의 핵심 지역에 위치하고 민풍이 순박한 지역이다. 구마가야는 강남 민중의 반항 의식을 일기에서 않이 언급했는데 펑푸는 전쟁 전 국민정부 통치의 변두리에 위치해서 현지 민풍이 강하고, 많은 비밀결사(秘密結社) 및 신사군(新四軍) 유격대가 활약하고 있는 곳이다. 펑푸의 선무 과정 속에 구마가야는 전시 중국 민중들이 강인한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그는 홍창회의 사회 기반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중국 공산당이 이끄는 농촌 군중운동(群眾運動)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후 적극적으로 공산당과 신사군에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기에 노력했다. 구마가야의 일기에는 경제적 유격전에 대한 인식도 담겨 있다. 그리고 구체적인 대응책을 제시하여 일위정권이 중국 자체의 경제력을 활용해서 각종 금융정책을 만들고 중국 유격대(遊擊隊)가 먹고 살 경제적 기반을 소멸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앞으로 중국 정치의 길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일본인이 중국인을 평등하게 대우해야 하며 어떤 정치적이나 경제적인 사무에서도 중국인의 “진심”을 먼저 얻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구마가야의 “선무” 경력과 전지 체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일본군의 강남 지배와 회북 지배는 전체적으로 상당한 동질성을 지녔으면서도 인문‧풍토가 다르기 때문에 실제 선무의 구체적인 작업에서는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그 차이는 일본군이 화중 함락 지역에서 실시한 식민 지배의 한계와 그에 따른 긴장감을 반영하는 것이다. 구마가야로 대표된 상해만철(上海滿鐵) 선무원은 야기누마 타케오(八木沼丈夫)를 비롯한 초기의 동북만철(東北滿鐵) 선무원들과는 많이 다르다. 전자는 유연한 태도를 내세워 중국 민중에게 일위정권을 “자발적”으로 지지하고 옹호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후자는 “태도가 거칠고 교양이 부족하다”는 평판을 받고 중국 민중에 대한 횡포한 태도가 일본군이나 다름 없었다. “선무(宣撫)”는 일본 군정 당국에 있어서 원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대한다”(居高臨下)는 식민 책략으로서 중국 민중을 “낮은 국민성”으로 보는 인식을 토대로 만들어진 식민주의적 개념이다. 구마가야의 “평등”한 선무 인식은 야기누마 등 선무원과 확연히 구별된다. 일본군의 가렴주구(苛斂誅求)에 대해 반감을 표시하고 일본이 전쟁폭행에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신동아 건설” 이론을 선전해 일본인이 중국인을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 민중은 소박하고 원시적이므로 문명국인 일본이 중국인에게 은혜를 베풀면 인심을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구마가야는 일본군이 무고한 민중을 살육하고 민중의 재산을 강탈하는 등 만행을 자행한 것도 선무(宣撫) 작업의 장애물로 여기고 불평했을 뿐 이를 막지는 않았다. 그래서 구마가야의 “고매”한 이상과 참혹한 현실은 서로 모순된 양상으로 나타냈는데, 이것은 “선무” 작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결말을 보여 준다.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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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春香传》在五十年代中国的译介与传播

        金长善(Jin, Chang-Shan), 王萌(Wang, Meng) 조선대학교 국제문화연구원 2012 국제문화연구 Vol.5 No.2

        한반도 고전문학의 대표작 <춘향전>은 세계 속에 널리 알려진 지명도가 높은 작품의 하나이다. <춘향전>은 작품 그 자체의 독특한 특성과 1950년대 중국과 북한 간의 독특한 사회 역사적 환경으로 인하여 소설, 희곡 등 장르로 번역 개편 되여 광범위하게 수용 전파되면서 독특한 양상을 보여주었다. 1950년대 중국에서의 창극 <춘향전>과 소설 <춘향전>의 번역 전파는 당시 중국과 북한의 국민들간의 친선적 문화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일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한 문학교류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다.

      • 《春香传》在五十年代中国的译介与传播

        金长善,王萌 조선대학교 국제문화연구원 2012 국제문화연구 Vol.5 No.2

        No entry 한반도 고전문학의 대표작 <춘향전>은 세계 속에 널리 알려진 지명도가 높은 작품의 하나이다. <춘향전>은 작품 그 자체의 독특한 특성과 1950년대 중국과 북한 간의 독특한 사회 역사적 환경으로 인하여 소설, 희곡 등 장르로 번역 개편 되여 광범위하게 수용 전파되면서 독특한 양상을 보여주었다. 1950년대 중국에서의 창극 <춘향전>과 소설 <춘향전>의 번역 전파는 당시 중국과 북한의 국민들간의 친선적 문화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일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한 문학교류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다.

      • KCI등재

        20世纪初-30年代朝半岛对中国文学的译介

        金长,善(Jin, Chang-shan),王萌 (Wang, Meng) 조선대학교 국제문화연구원 2011 국제문화연구 Vol.4 No.1

        20세기 10~30년대 한국의 중국문학 번역 이입은 당시 특수한 사회 역사 정치 문화 및 서양문학의 충격 하에 자유롭고 활발한 모습을 보일 수없었다. 하지만 양백화, 정래동, 이육사, 박태원 등 유지인사들의 피 타는 노력으로 중국 문학 특히 중국현대문학의 대표적 작가와 작품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번역 소개되어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중한 문학교류의 맥락을 이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현대문학의 발전을 추진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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