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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수영 박사의 한국 범종 연구와 성과

        최응천 ( Eung Chon Choi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2014 강좌미술사 Vol.43 No.-

        황수영 선생이 평생에 걸쳐 집필한 한국 범종 관련된 자료소개나 논문은 대략 29 편 정도이다. 물론 여기에는 같은 종류의 범종을 중복해서 다른 곳에 소개하거나 여러 편을 묶어 고찰한 논고도 포함된다. 범종의 제작 년대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한국 범종의 기원과 형태 문제를 다룬 3 편의 글과 統一新羅鍾5 편, 高麗時代鍾18 편, 朝鮮時代鍾3 편과 연구 현황을 다룬 1 편이 확인된다. 그 가운데 高麗時代鍾연구가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統一新羅鍾의 경우 일찍부터 알려져 왔고 많은 연구 현황이 이루어지 반면에, 당시 새롭게 알려지기 시작한 개인 소장 高麗鍾이나 새로이 출토된 高麗鍾은 선생 외에는 잘 파악할 수 없었기에 우선적으로 소개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선생의 범종 연구사에서 더욱 돋보이는 성과는 우리나라 최고의 鍾인 上院寺鍾이 安東에서 옮겨 진 것을 밝혀 上院寺鍾의 원 소재지 문제를 다룬 논문과 3 년 만에 소실된 禪林院址鍾의 현황과 명문, 출토 상황 등을 자세히 밝혀놓음으로써 자칫 사라질 뻔 하였던 統一新羅鍾의 귀한 사례를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한 세 편의 논고, 實相寺鍾의 중요성을 고찰한 글들을 통해 統一新羅美術에서 新羅鍾이 지니는 의미와 가치를 부각시킨 일이다. 또한 일본에 소재한 한국 범종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하여 틈나는 대로 그들을 소개하고 명문을 실어 자료로 활용토록 하였다. 이러한 선생의 성과는 .韓國金石遺文.에 다시 정리되어 간행됨으로써 한국 범종 연구에 가장 중요한 기초 자료집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아울러 선생에 의해 설립되어 이후 한국 범종 연구의 중심이 된 韓國梵鍾硏究會(현 梵鐘學會)와 .梵鐘.지의 창간을 들 수 있다. 이를 통해 미술사에서 유독 한국 범종 연구를 독립된 분야로 연구될수 있도록 가치를 정립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여기에 미술사에서 범종 연구지나 범종연구회의 경우 일본보다 한국이 훨씬 앞설 수 있게 된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도 중요한 공로의 하나이다. 이처럼 한국 범종 연구에 있어 선생이 이룩한 한국 범종 관련의 업적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더욱 큰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Dr. Hwang Soo Young wrote 29 research papers including introduction of materials for Korean Buddhist bell throughout his lifetime. There are three articles which was dealing with the problem of the origin and form of Korean Buddhist bell, five articles related to Buddhist bells of Unified Silla dynasty, eighteens articles related to those of Goryeo dynasty, three articles related to those of Joseon dynasty, one article about the research status. Among the 29 research papers a study on Buddhist bells of Goryeo dynasty have accounted for most quantities. The outstanding achievements in his study about Korean Buddhist bell is to highlight the meaning and value of Buddhist bell of Unifed Silla dynasty through three articles related to the original location Buddhist bell of Sangwonsa temple, three articles about status, inscription, and excavated situation of Seonrimwon temple bell destroyed by fire, and one article dealing with the significance of Silsangsa temple bell. Also he appreciated the significance of Korean Buddhist bells located in Japan, and introduced them ever put to excellent advantage in resources. It is re-published from 『韓國金石文(Korean epigraphs left by a deceased)』 that played the most basic role for researching Korean Buddhist bells. Also the foundation of Research Group of Korean Buddhist Bell(now The Association of Korean Buddhist Bell) and journal Beomjong(Korean Buddhist bell) established by him played important role in boosting value as an independent field in Korean art history. In additionResearch Group of Korean Buddhist Bell and journal Beomjong became the important momentum to lead in studying Buddhist bells. Thus, his achievements of studying Korean Buddhist bell have the important significance and value than any other 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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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우 선생의 회화사 연구

        이원복 ( Lee Won Bok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2018 강좌미술사 Vol.51 No.-

        국립중앙박물관 4 대 관장을 역임한 崔淳雨(1916-1984)는 국립박물관에 40 년 넘게 봉직한 博物館人으로 문화예술 행정가이자, 큰 美術史學者이다. 그의 繪畵史 연구업적은 ‘한국미술 5 천년전’ 국외전시, 1972 년과 1977 년 개최한 ‘한국회화 5 백년전’과 ‘국립박물관소장비장회화특별전’ 등 수많은 전시기획, 資料發掘調査, 발표한 논고, 그 나름의 독자적으로 개척한 문화재관련 수필 등을 통해 확인된다. 회화사는 陶磁史와 함께 그의 연구에서 비중이 크다. 첫째, 현존하는 조선시대 그림 전체에 대한 聚合에 각별한 관심과 이에 대한 일련의 사업들을 들게 된다. 연구에서 가장 긴요한 기초 작업으로 개인소장 서화와 寺刹 내 佛畵照査 두 사업을 각기 5년씩 연차적으로 기획했다. 둘째, 조선시대 회화사적 비중이 큰 조선중기 화풍을 연 金禔(1524-1593)와 李慶胤(1545-1611)의 작품발굴이 주목된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인 보물 제 783 호 <童子牽驢圖>와 호림박물관 소장 20점으로 된 화첩 내 9 점에 화가와 동시대를 산 선배 崔笠(1539-1612)이 1598 과 1599 년에 직접 쓴 跋文과 讚詩가 있다. 화적이 드문 李楨(1578-1607)의 실경과 관념의 두 산수화첩,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문인화가 鄭遂榮(1743-1831)이 금강산을 그린『海山帖』등 한둘이 아니다. 조선 말 김수철과 洪世燮(1832-1884), 李喜秀(1836-1909)의 발굴은 새로운 감각으로 이異色畵風으로 지칭되는 전통회화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시사점이 큰 화가들이다. 이들 작가에 대해선 박물관 내 李泰浩, 李源福 등 후학에 의해 본격적인 논고로 발표되었다. 작품발굴은 국외까지 이어져 미국 필라델피아 박물관 소장 李巖(1507-1566) 계열의 <狗子圖>, 영국 대영박물관의 肖像畵 草本과 불화도 있다. 셋째, 그는 우리나라 회화 전반에 대해 통시대적으로 살피되 일반회화 외에 불화와 民畵, 현대회화 평론까지 참여했습니다. 한국동란으로 부산 피난 중에 ‘제 1 회 현대작가 초대전’(1953.5.1-5.31)과 ‘한국현대회화 특별전’(1954.1.1-1.31)을 열기도 했다. 이들 그림을 함께 살필 때 우리 옛 그림의 眞面目이 드러난다고 보았다. 고대 한국회화 발달의 요람이 초기 불교회화에 바탕을 두었고 고대회화인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조선초기부터 말기까지 화가를 망라해 시대별, 화가별 화풍의 특징을 추출했다. 넷째, 공예분야의 연구와 더불어 도자가 문양의 繪畵性을 일찍이 간파했다. 그림의 전래가 드문 고려와 조선 초기에 있어 이들을 工藝文樣을 회화사의 補完資料로 원용한 점을 들게 된다. 다섯째, 국립박물관을 비롯해 사립박물관과 수많은 개인 소장품 등, 매 작품마다 오랜 세월 장기간에 보고 또 본 후 주도면밀하고 철저한 분석과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과 작가를 간결하고 길지 아니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정리했다. 일견 짧은 에세이이나 그 안에 쉽고 아름다운 文體로 서술하여 읽는 이에게 美感의 본질에 도달케 한다. 우리 조형예술 전반에의 따듯하며 예리한 시선으로 찾은 공통분모는 같은 한자문화권의 동질성을 전제로 살펴 편협하지 않은 國際的 시각이 아니다. 風土와 미감의 차이에서 빚어진 미적 差別性까지 살폈다. 결국 우리 회화의 독자성과 특징 나아가 韓國美의 특징의 추출로 귀결된다. As a fourth Director of National Museum of Korea, Choi Sunu(崔淳雨,1916-1984) had been dedicated himself to the museum over 40 years and now known as a diligent Museum Man, Culture and Art Administrator and great Art Historian. His achievements on Art History are remarkable from international exhibition ‘Korean Arts in 5000 years’, domestic renowned exhibitions such as ‘Masterpieces of 500 Years of Korean Painting’, ‘Korean Paintings selected from collection of the National M useum - to be shown for the first time to the public-’ in 1972 and 1977. Apart from those results, his personal researches on art histories, documentations and research essays show his great interest on museum and its material cultures. Art History is one of his main research areas as much as history of Celadon. First of all, Director Choi did gather all exist paintings of Joseon and had been organised several works for these paintings. As a pivotal base works for his research, personal collections of Joseon Paintings and paintings that owned by temples were thoroughly studied in five years terms. Second, Choi focused on painters Kim Si(金禔,1524-1593) and Lee Kyeong Yoon(李慶胤,1545-1611) who both are crucial to understand intermediate term of Joseon Period. To a certain extent, Director Choi also uncovered Choi Rip(崔笠,1539-1612) who directly wrote poet on painting in Horim Museum and Leeum, Samsung Museum of Art and Lee Jeong(李楨,1578-1607) whose writings are rarely found and Jeong Soo Young(鄭遂榮,1743-1831) who draw Mount. Geumgang. Painters such as Kim Soo Chul, Hong Se Sup(洪世燮,1832-1884), and Lee Hee Su(李喜秀,1836-1909) whose works were mainly found in late Joseon are all famous for unique style which suggest the provision of traditional paintings. Those painters are all highlighted by younger researchers Lee Tae Ho, Lee Won Bok from National Museums. Third, Choi rigorously overviews not only traditional paintings of Korea but also Buddhist, Folk, and Modern paintings. ‘The First Invitation Exhibition of Korean Modern Paintings(1953.5.1-5.31)’ and ‘Special Exhibition of Korean Modern Arts(1954.1.1-1.31)’ had been organised in Busan even during the Korean War. Fourth, with the research on crafts, Choi comprehended the artistic perspectives of Celadon. As of its uniqueness of paintings in Goryeo and Joseon, it is hard to be descended for long time and so Choi tried to use the craft arts to understand the paintings. Finally, Choi’s summaries on paintings from national, private museums and even from personal collections are simply made based on thorough researches on them that helps readers comprehend real value of paintings. His researches on Korean paintings are well shown its traditionality and distinctiveness of original but unique Korean styles, not just like other Asian pain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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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문화재를 통한 조선시대미술의 도상해석학적 연구 특집 : 조선 전반기 불교미술의 조성사상 연구

        한지연 ( Jee Yeon Han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2011 강좌미술사 Vol.36 No.-

        성리학 중심의 유교국가를 지향하는 조선시대 불교는 억불시책으로 인해 교단사적으로 결국 산중불교라는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불교 전래 이후 국가 공인 하에 전개되었던 불교사상, 신앙의 전개는 조선시대 들어서면서 결국 그 체제가 무너진 것이다. 때문에 현존하는 문헌자료 상에서는 불교발전상을 찾기 힘들며, 더욱이 위정자들의 불교 폄하 태도가 기록에 묻어나 문헌자료만으로는 당시의 불교 발전상을 이해하기 힘들다. 따라서 문헌자료와 함께 불교미술 造成記를 통해 생동감 있게 접근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고려왕조에서는 사상의 전개, 여러 신앙의 공존 등을 통해 불교사상·문화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에 비해 조선시대 불교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진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중국과의 외교 문제, 건국과 함께 조성된 불안정한 사회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었던 것은 성리학이 아닌 불교였다. 오히려 천년에 이르는 시기동안 끊임없이 발전되어 왔던 불교사상을 ``선교양종 승려``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 하나로 통합해 나아가는 새로운 결과를 낳았다. 조선 초기에는 기존의 정토계 신앙이 그대로 흡수되어 민간신앙에까지 깊숙이 파고 들며, 동시에 왕실에서는 정토신앙을 바탕으로 『법화경』『원각경』『화엄경』사상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불화, 불상, 불탑조성에서 나타나고 있을뿐만 아니라 문헌자료에서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이에 반해 불교교단 내부에서는 승과제도를 통한 법계형성이 비교적 단순화되어지고 있다. 그리고 승과과목으로 지정된 경전 이외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대승경전 가운데 『법화경』『원각경』 『능엄경』 등을 이력과목으로 선택한다. 이리한 교단 내부의 변화는 곧 禪이나 敎,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것이 아닌 양쪽을 모두 섭렵하는 총체적인 교단의 모습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시대 불교에 관해 억불시책과 관련지음으로써 그 발전양상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합적인 불교로의 발전과 민간신앙으로 완전히 정착해 지금까지 그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는 긍정적 평가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Buddhism in the Joseon Dynasty had been suppressed by the confucian government. As the Neo-Confucianists established the new dynasty, they claimed Buddhism for the failure of the previous Dynasty, Goryeo. Consequently Buddhism had to get away from the open society avoiding the anti-Buddhism policies. The official documents recorded by governors had been so critical on Buddhism that it is hard to understand how Buddhism survived and developed during the Joseon Dynasty through official historical records. It is possible to find out how Buddhism developed in the Joseon Dynasty through the documents about the Buddhist artworks. Buddhism had made remarkable progress in both ideological and cultural ways until the Goryeo Dynasty collapsed. But under the Joseon Dynasty`s anti-Buddhism policies, Buddhism had had to endure and had few chance to develop itself for centuries. Even though the government had suppressed it so harshly, Buddhism stabilized the insecure society of the new Dynasty and the relationship with China. The sufferings rather became a chance to unite the sects of the religion and to develop the Zen and non-Zen sects together. In early years of the Joseon, the Pure Land school`s thought was absorbed into folk beliefs. Judging from the historical records and Buddhist arts such as paintings, statues and sutras at that time, the Royal family accepted the ideas from Lotus Sutra, Complete Enlightenment Sutra and Sutra of the Garland of Buddha based on the Pure Land school`s one. On the contrary, the Buddhist order had simplified the organization. The Buddhist education curriculum of the course was also expanded, so Lotus Sutra, Complete Enlightenment Sutra and Sutra of the Heroic Ones were included. It means the order managed to keep the balance between Zen and non-Zen and furthermore unified them to create unique Korean Buddhism. The anti-Buddhism policies of the Joseon Dynasty had caused disadvantage to Buddhism with no doubt. But they also gave it a foothold for settling down in the common people`s life and unifying the separated ide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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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우(崔淳雨) 선생의 공예 연구

        최응천 ( Choi Eung Chon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2018 강좌미술사 Vol.51 No.-

        최순우 선생의 공예 분야의 연구 성과는 비록 개설의 성격이지만 최초로 우리나라 공예 분야를 삼국시대부터 조선까지 시대별로 정리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특히 한국을 소개한 미술서적이 전무하였던 당시 상황에서 한국 공예에 관한 소개서를 일본에서 출간한 공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다. 여기에 일찍부터 한국 목공예품이나 민속공예품에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 주목받지 못했던 분야의 저술을 남겼고 『韓國의 木漆家具』라는 역저를 출간하여 조선시대 목공예품을 비롯한 나전칠기를 민예품의 차원을 떠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당당한 예술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선생에 의해 이루어진 한국미술사의 업적은 도자기와 회화 부분에서 단연 돋보이며 특히 국립박물관의 조사 성과를 토대로 초기 고려청자 요지를 밝힌 것도 주요한 업적이다. 白磁 大壺를 ‘달 항아리’, 玉璧底 굽을 ‘햇무리 굽’ 이라는 도자 관련 용어를 우리말로 고쳐 부른 것도 선생의 천부적인 어휘력과 탁월한 미감에서 창출된 것이다. 선생의 고려나 조선의 도자기 논고를 제외한 공예 관련의 단편 논문은 5 편 정도가 확인되며 주로 고려 범종에 관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일찌감치 선생 역시 한국 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틈틈이 조사하여 자료를 남기고자 했음이 파악된다. 나머지 글들은 대체로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된 비교적 짧은 글들이지만 여기에 선생이 지닌 평소의 미의식과 탁월한 식견, 나아가 일반 독자들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여 한국 공예의 우수성을 소개한 점은 공예사 분야의 숨은 성과로 판단된다. 지면상의 한계와 학술 논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글 중간 중간에 드러나는 전문가적 식견은 선생의 평소 여러 분야에 노력을 경주한 학문적 깊이가 느껴진다. 논문의 성격을 띤 글들이 주로 회화와 도자기에 집중되어 있는 것에 비하여 공예에 관한 글들은 수필이나 에세이 성격을 지닌 단편적인 글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러나 공예 분야의 글들에서 볼 수 있듯이 다른 미술사학자들이 추구하지 못했던 다양한 분야의 공예품을 고대부터 조선시대라는 통시대에 걸쳐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선생이 지닌 통찰력과 타고난 심미안을 통해서 가능했지만 평생을 국립박물관에서 근무하면서 한국 문화재에 대한 깊은 애정을 기울였기에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이처럼 선생은 그동안 외국인과 일본인이 지녔던 피상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보다 구체적이고 명쾌한 우리의 시각으로 한국미술을 설명하고 한국 공예의 특질과 아름다움을 도출해내는데 일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미를 일본과 미국 유럽에 알리고자 국립박물관 재직시절 기획하고 총괄하였던 <한국미술 오천년>전시는 가난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5000 년이라는 유구한 문화를 지녔음을 전 세계에 알린 훌륭한 계기가 되었다. 선생은 바로 이 전시의 중심에서 한국 문화재를 세계 속에 알린 가장 훌륭한 문화 외교관이셨다. Research accomplishment in the craft history field of Choi Sun-woo is introductory in nature, but it is the first time that the Korean arts fields were organized by period from Three Kingdoms Period to Joseon era. In a situation with the absence of an art book introducing Korea, he would publish introducing books about Korean crafts overseas in Japan. Early on, he focused on Korean woodwork and folk crafts, and left the books in a field that was not very noticeable to upgrade them to the representative artworks of our country beyond simple folk art crafts. Among his accomplishments related to craft history are conspicuous in ceramic history studies. It is also one of the major accomplishments that based on the survey results of the National Museum, he clarified the kiln site of the early Goryeo celadon, and revised the ceramics related terms 'Dalhangari' and 'Haetmurigup' in Korean. The short articles related to crafts, except for his papers on ceramics, are about five, and it is understood that the contents of Goryeo bells mainly recognized the importance of Korean bells early at the time. The rest of the articles related with crafts are relatively short essays published in newspapers and magazines, but the point that his aesthetic sense, excellent insight, and easy-to-understand explanations for everyone in general, introduced the excellence of Korean crafts is a hidden achievement in the field of craft history. Although it is not an academic paper, his works reveal the depth of the profession through the contents of the expert’s opinion. It is noteworthy that the arts of various fields, which were not pursued by other scholars of art history, have been interested from ancient times to the Joseon period. It was because of his insight and innate aesthetics that he spent his entire life at the National Museum, so that he could express his deep affection for Korean cultural assets. Away from Korean art, which was depicted by perspectives of foreigners, through our concrete and clear vision, he devoted his life to deriving the qualities and beauty of Korean crafts. The exhibition of “Five Thousand Years of Korean Arts”, which was planned and organized by him when he worked at the National Museum to inform the beauty of Korea to Japan, the United States, and Europe, is an excellent opportunity to show the world that Korea was a cultural nation with a 5000 year old culture. He was the greatest cultural diplomat who informed the world of Korean cultural assets in the very center of this exhib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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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불교문화 원형 연구 -실크로드와 경주를 중심으로-

        문무왕 ( Mu Wang Mun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2014 강좌미술사 Vol.43 No.-

        본고에서는 한국불교문화원형의 한축인 신라불교문화의 성립을 간다라로부터 중앙아시아 중국을 잇는 문화원형 형성에 관한 논의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부분은 여러 기관의 도움으로 실시해 온 불교문화 조사를 바탕으로 본 논문의 바탕으로 삼고자 한다. 실크로드의 불교에 관한 연구는 한국불교의 원류를 밝히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인도불교, 중국불교, 한국불교 등으로 분류된 개략적인 지역학적 불교연구방법을 원용하여 연구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분류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전파와 수용에 관한 문제가 실크로드지역에서 발생한다. 불교가 고대한국사회의 형성에 끼친 영향은 논란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므로 문화의 전파와 수용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실크로드라는 교류의 흔적을 살펴야 한다. 고대역사에 있어서 A.D 1 세기부터 A.D 8 세기에 이르는 시기 동안 세계는 활발한 교류의 흔적을 남기고 있으며 이러한 활발한 교류의 흔적에서 우리는 불교의 전파, 수용, 변용의 과정을 살필 수 있는 것이다. 불교를 한국에서 가장 깊이 받아들였던 신라는 불국토사상을 발전시키면서 신라가 곧 불국토임을 인식하면서 신라의 불교적 세계관을 내재화하는 과정을 겪었다. 중고기에 왕실인들이 석종임을 주장함으로써 신라 왕실은 불교 발상지인 인도의 세계관을 수용하고 공유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불교가 정착하게 되는 과정이며 문화원형으로 정립되어 지는 과정인 것이다. This paper seeks to discuss the Buddhist culture of Korea established the prototype of the Buddhist culture of the Silla culture circle formed to connect Central Asia China from Gandhara.The study of Buddhism on the Silk Road can be a crucial way to find the origin of Korea Buddhism.Buddhism has had influence on the formation of the ancient South Korea has received that rating, so there is a huge debate. Thus, when viewed in terms of propagation and reception of culture Observe for signs of exchanges of the Silk Road. World during the period ranging from AD 1 to AD 8 century century in ancient history has left a trail of lively exchanges. In this process, we will actively exchange that can watch the waves, acceptance, transformation of Buddhism. Buddhism in South Korea is one of the most deeply accepted ideology of the refining bulgukto 佛國土Silla Silla will soon recognize that the bulgukto 佛國土was used to establish the Buddhist values. Mid-old (中古) period of their royal Silla royal family``s descendants by claiming that the Buddha was acceptable to share the worldview of Buddhism originated in India. There is a royal As such, could be successful in the work of sanctification itself Silla Buddhism while accommodating the previous step, from the establishment of the royal authority, centralized identity enemy, can also be seen that due to economic footing has been accomplished. Through this process, Silla Buddhism came via the Silk Road in ancient societies can be seen as a celebration of the Korea Culture and Well bui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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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반기 제2,3기 불교미술의 조성사상

        한지연 ( Jee Yeon Han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2013 강좌미술사 Vol.40 No.-

        조선후기 산문중심의 불교에서 지향했던 정통성 수립과 왕실의 능침사찰화는 유교적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있던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과 동시에 신앙적 차원이 고양된 것이 내포되어 있다. 교단 내에서의 이와 같은 움직임은 사찰의 중건, 불상 및 불화의 새로운 제작 국면을 맞이하게 됨으로써 사상적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교단 내부의 정통성 수립에 치중하던 이러한 움직임과는 달리 민간이 주도적으로 불교를 이끌어가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민간 주도하의 불교는 주로 고려시대로부터 이어져온 結社의 맥이 이어지고 있었다. 또한 결사에 사용될 불교전적을 새롭게 편찬하는 작업도 이루어져 조선후기 불교발전의 또 다른 양상을 도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민간 주도의 불교발전에 따라 의례부분도 상당히 강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인도불교 역사 상 굽타시대와 비견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조선후기 불교와 불교미술이라 생각된다. 불교사상은 급격하게 쇠락하고 민간신앙과의 결합이 이루어지고, 이에 따라 민간의 적극적인 불교참여활동이라는 측면은 인도 굽타시대, 불교사상보다는 민간에서 종교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된다는 측면과 흡사한 부분이다. 표면적으로 불교교단이 쇠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미술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는 부분에 있어서도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조선후기 불교사와 불교미술 발전의 측면을 동시에 조명 하는데 주력했으나, 두 가지 측면을 함께 조명한 연구성과가 미비하기 때문에 시론적 입장에서 전개된 논문이다. This research is focused on the historical facts and the artistic development of Buddhism in the late Joseon Dynasty.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Buddhist order tried to establish the legitimacy and to find a way to survive by making Lingqinfocha(陵寢寺刹). The religion suppressed by the social order based on Confucianism needed to inspire the religious level. What the order did in the society at that time could not bring out ideological development. However the need of remodelling of the religious facilities consequently made outstanding progress on the religious art such as statues, paintings and temples. Buddhism among people had been gone on through the associations. As they had made progress with scriptures, the religious ritual formation became stronger. In this way, Buddhism in the late Joseon and that in the Gupta period are very much alike. Both in Gupta era and in the late Joseon, the religion connected with folk believes was flourishing among people when the doctrines were getting weakened. As a result, in both period, the changes of its statues became a turning point in Buddhist art history. However this research is introductory for its inadequate result of focusing on both the religious history and its artistic development in the lat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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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암각성(碧巖覺性)의 조형 활동과 설악산 신흥사 극락보전 아미타삼존불상과 그 복장품의 연구

        문명대 ( Myeong Dae Mun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2015 강좌미술사 Vol.45 No.-

        설악산 신흥사 극락보전에 봉안된 목조아미타여래삼존불좌상에 대해서 몇 가지 의의를 밝힐 수있다. 첫째, 1651년에 신흥사 극락전 아미타삼존불상과 지장시왕상들을 조성했는데 총책임자는 벽암 각성스님이고, 조각승은 무염스님이다. 무염스님은 벽암스님의 문도이고 극락전도 벽암스님의 문도들이 조성했다고 생각되므로 벽암스님은 당시 최고의 불교미술조성가로 많은 사찰의 불교미술들과 함께 신흥사의 중창에도 크게 활약했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다. 둘째, 신흥사 목아미타삼존불상은 복장축원문과 불상 밑면의 묵서명에 의해서 효종2년인 1651년에 당대의 저명한 무염(無染)이라는 전라도 조각승에 의하여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염은 1633년 선운사 대웅전 비로자나삼불상등과 1635년 불갑사 대웅전 삼세불상을 조성한 이후 1651년 신흥사 목아미타삼존불상과 목조지장보살삼존상, 1651년 비래사 비로자나불상, 1654년 불갑사 지장시왕상, 1656년 전주 송광사 나한전 석가삼존상과 16나한상 등을 조성한다. 1651년작 신흥사 불상들은 1647년 용흥사 목아미타삼존상 내지 특히 무염에 의해서 조성된 전주 송광사 나한전 석가삼존상과 흡사하며, 1652년 전주 정수사 목아미타불상 등과도 친연성이 강하다는 사실을 알수 있어서 이 당시 불상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특히 그의 작품경향은 그 이후 전라도 일대의 불상에 영향을 크게 미치고 있는 사실도 밝혀낼 수 있다. 셋째, 불상 복장축원문을 분석하여 이 불상을 조성한 무염(無染)은 전주 송광사 나한전의 석가삼존상 등 5종의 불상을 조성했던 작가 무염과 동일인임을 밝혔는데 강원도까지 진출한 전라도 조각승들에 대해서 앞으로 좀 더 철저히 분석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With regard to the Wooden Seated Amitabha Triad Statue enshrined in the main hall of the Sinheung-sa Temple in Mt. Seolak, this study found a number of meanings. First, the Amitabha Triad Statue and the Ksitigarbha Boddhisattva statues in the main hall of the Sinheung-sa Temple were created in 1651, and the general director for the project was Priest Byeokam Gakseong and the monk sculptor was Muyeom. Priest Muyeom was one of Byeokam’s disciples and the main hall is also believed to have been built by Byeokam’s disciples, and this suggests that Priest Byeokam was the greatest Buddhist artist in those days and involved also in the reconstruction of the Sinheung-sa Temple along with Buddhist artists from many other temples. Second, the written prayer found inside the body and the inked inscription on the bottom of the statue show that the Wooden Amitabha Triad Statue at the Sinheung-sa Temple was created in 1651 (2nd year of King Hyojong) by Muyeom (無染), the great renowned monk sculptor of the day from Jolla-do. Muyeom created the Vairocanna Triad Statue in the Dharma Hall of the Seonun -sa Temple in 1633 and the Triad Statue in the Dharma Hall of the Bulgap-sa Temple in 1635, and then the Wooden Amitabha Triad Statue and the Wooden Ksitigarbha Triad Statue at the Sinheung-sa Temple in 1651, the Vairocanna Buddha Statue at the Birae-sa Temple in 1651, the Ksitigarbha Boddhisattva Statue at the Bulgap-sa Temple in 1654, the Shakyamuni Buddha Triad Statue and 16-Arahat Statue in the Arahat Hall of the Songgwang-sa Temple in Jeonju in 1656, etc. The Buddha statues at the Sinheung-sa Temple created in 1651 are quite similar to the Wooden Amitabha Triad Statue at the Yongheung-sa Temple created in 1647 and particularly to the Shakyamuni Buddha Triad Statue in the Arahat Hall of the Songgwang-sa Temple in Jeonju created by Muyeom, and show a high affinity to the Wooden Amitabha Buddha Statue at the Jeongsu-sa Temple in Jeonju created in 1652. These suggest that the Amitabha Triad Statue was a representative Buddha statue in those days. What is more, it was found that Muyeom’s style exerted a significant influence on Buddha statues built around the Jolla-do area. Third, the written prayer found inside the body of the Buddha statue showed that Muyeom who created the Buddha statue was the same person as ‘Muyeom’ who created five different types of Buddha statues including the Shakyamuni Buddha Triad Statue in the Arahat Hall of Songgwang-sa Temple in Jeonju. Thus, it is considered necessary for future research to make more thorough analysis of Jolla-do monk sculptors who advanced up to Gangwo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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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수영박사(黃壽永博士)의 한국 불상 연구

        유근자 ( Geun Ja Yoo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2014 강좌미술사 Vol.43 No.-

        이 논문은 황수영 박사의 불상에 관한 연구를 크게 여섯 가지 주제로 압축하여 고찰한 것이다. 첫째, 서산마애불상과 태안마애삼존불상 등 백제의 마애불상에 관한 연구에서, 서산마애삼존상에 대한 황수영박사의 연구는 그의 불상 연구에 관한 첫 논문이라는 점에서 주목되며, 서산마애삼존상을 학계에 처음으로 소개한 것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또한 서산마애삼존상의 존명을 관음보살·석가여래·미륵보살로 해석했으며, 조성연대를 600 년대 초로 편년한 것이 주목된다. 둘째, 충남 연기군 비암사(碑巖寺) 불상군에 관한 황수영박사의 연구는, 금석문 연구에도 매진하였던 그의 연구 방법론과 미술사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낸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반가사유상에 관한 연구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은 반가사유 자세에 대한 해석인데, 크게싯닷타 태자사유상이라는 설과 미륵보살상이라는 설이 있다. 황수영박사는 미륵보살상이라는 후자설을 주장하였는데, 근거로 신라 화랑 김유신이 이끄는 화랑의 무리를 ‘용화향도(龍華香徒)’라고 한 점과, 삼국시대에 특히 미륵신앙이 유행하였다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넷째, 삼화령 미륵삼존상에 관한 황수영박사의 연구에서 가장 주목되는 바는, 경주 남산에서 옮겨온 이 삼존상을 .삼국유사.의 내용과 연결시켜 ‘삼화령 생의사 미륵세존’으로 해석한 점이다. 다섯째, 황수영박사는 신라 석굴사원과 석굴암에 관한 연구에서 문무대왕릉(文武王陵)과 석굴암이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고증하였으며, 석굴암 본존불의 명호(名號)가 일반적으로 석가불로 통칭되고 있는 것과 달리 아미타불로 주장하였다. 여섯째, 고려시대의 철불과 석불에 관한 황수영박사의 연구는, 하남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의 조성 연대를 고려 초로 편년한 것과, 관촉사 보살상의 명호를 관음보살로 해석한 점이 가장 주목되는 바이다. This study summarizes the research works on the Buddhist sculptures of Korea carried out by Dr. Hwang Soo-Young (former Professor of Dongkuk University, Korea). Firstly, Dr. Hwang’s first article, just on the research field of Buddha’s sculptures, was about the study on Rock-carved Buddha Triad in Seosan (located at Yonghyeon-ri, Unsan-myeon, Seosan, Chungcheongnam-do). It is known that he played a critical role in introducing the Rock-carved Buddha Triad in Seosan. He interpretated each of imaged as Avalokitesvara Bodhisattva, Sakyamuni and Maitreya. He estimated creation period of statues as around A.D. 600 (Baekje Kindom). Secondly, it is impressive that Dr. Hwang showed harmonised research approach methodologies of epigraphy and art history on the study of “Buddha Statues at Biamsa in Yeongi-gun”. Thirdly, on the study of “Statue of semi-seated meditating Bodhisattva (半跏思惟菩薩像)”, Dr. Hwang insisted that the image of statue is to be Maitreya rather than Siddhartha based in the historical context of the period it was created. His conclusion was based on the following reasons: (1) there was a trend of Maitreya Belief throughout the society, and (2) the members of Hwarang (花郞) under General Kim Yushin (595~673) were called as “Yonghwahyangdo (龍華香 徒)” which has meanning of Maitreya. Fourthly, the study on “Buddha Triad in Samhwaryoung (三花嶺三尊像)”, which were originally found in Namsan, Kyongju, is one of his major research works. He suggested that the image of principal statue of “Buddha Triad in Samhwaryoung” is to be “Maitreya Buddha in Samhwaryoung Saengeuisa Temple (三花嶺生義寺彌勒)”. It is noteworthy that he interpretated the image of principal statue as Maitreya and named in connection with the record of 『Samguk Yusa (三國遺事)』. Fifthly, through the research on Seokguram, he made it clear that Tomb of King Munmu (文武 大王, 626~681) is closely related to the Seokguram. It is widely believed that Buddha statue in Seokguram is the image of Sakyamuni. However, Dr. Hwang interpreted the image as Amitabha rather than Sakyamuni. Finally, Dr. Hwang revised the creation period of the Iron Buddha statue in Hanam (河南下司 倉洞鐵造釋迦如來坐像). It had been estimated that the statue was created around 8th century (Silla kingdom), however, he estimated that it was created in early Koryo kingdom (10th century). He interpreted the image of Standing Stone Bodhisattva statue in Gwanchoksa Temple (灌燭寺菩薩像) as Avalokitesvara Bodhisatt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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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안(西安) 출토 전불(塼佛)의 제작 배경과 의의

        히다로미 ( Hida Romi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2017 강좌미술사 Vol.48 No.-

        중국 서안 자은사의 대안탑을 중심으로 여러 사지에서 출토된 전불(塼佛)은 인도 불교미술 특히 불상의 수용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전불(塼佛)이라는 것은 점토를 거푸집(틀, 雌型)으로 모양을 떠서 만든 부조형태의 불상이다. 형태를 떠낸 후에 세부를 적당히 다듬은 다음, 햇볕에 말리고 나서 굽는 것이다. 그 중에는 금박(漆箔)이나 채색을 가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초벌구이 상태이며, 햇볕에 말리기만 해서 완성한 것도 있다. 틀은 일반적으로 점토를 가마에 넣은 후 낮은 온도에서 구워서 만들며, 구리나 돌로 만든 한 것도 있지만 기존의 전불을 모형으로 답습한 제작도 성행했다. 거푸집(?型)과 흙만 있다면 특별한 기술이나 설비도 필요 없으며, 간단하게 같은 형태의 불상을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점이 전불의 본질적인 특징이다. 중국 내외의 여러 곳에 소장되어 있는 중국 전불의 대부분은 19 세기 중엽부터 20 세기 전반에 걸쳐 서안과 그 주변, 그 중에서도 대자은사(大慈恩寺)의 대안탑(大雁塔) 부근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고, 또한 1980 년대부터 시작된 발굴 조사에 의해 서안 시내의 서명사(西明寺), 청룡사(靑龍寺), 실제사(實際寺:溫國寺), 예천사(禮泉寺) 등의 당대(唐代) 절터에서도 다수의 전불이 출토되고 있다. 이들 중에 많은 수가 가로세로 10 ㎝ 정도의 자그마한 크기이며, 저렴한 재료를 이용한 대량 생산품인 탓인지 종래 중국의 학계는 낮은 관심을 보여왔다. 그러나 그 대부분이 7 세기 중엽부터 8 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초당시대 장안의 불교미술을 알려 주는 희귀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작은 틀, 저렴한 가격, 다량, 동일한 형태라고 하는 전불 고유의 특성이 당시의 불교신앙이나 조상 활동의 한 국면을 해명하는데 유용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1985 년부터 관련 논문을 몇 편 발표한 바 있고, 최근 하기와라하지메(萩原哉)씨, 고토 무네토시(後藤宗俊)씨가 쓴 서안출토 전불의 의의를 둘러싼 논고도 암시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중국에서도 근래에 들어 황영천 등의 몇몇 논고가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이 논문은 장안에서 성행한 전불 중에 가장 주요한 두 그룹인 「인도불상(印度佛像)」명 전불과 「대당선업(大唐善業)」명 전불을 중심으로 제작 배경과 도상의 유래에 대해서 좀 더 심도 있게 논의 한 것이다. Moulding brick Buddha (塼佛) excavated in various temple sites around Dayanta(大雁塔) pagoda in Xian Ciensi(慈恩寺) temple in China is the most important data to understand the acceptance of Indian Buddhist art, especially Buddha Statue. Moulding brick Buddha is a relief-shaped Buddha Statue made by a mold (雌型) with clay. After shaping it, it is trimmed in detail accordingly, then dry it in the sun and then bake it. Some of them are painted with lacquer or paint, but most of them are unglazed and some are finished only by drying in the sun. The cast is generally made by putting clay in a kiln and baking it at a low temperature. Even sometimes it was made of copper or stone, it was more popular to remake a cast by the squeeze of former existing moulding results. It is an essential characteristic of the moulding brick Buddha that it does not require any special skill or equipment if there are only a mold and clay, and that the Buddha Statue can be mass-produced in a simple manner. Most of Chinese moulding Buddha, which are possessed in China and other countries are said to have been excavated from the middle of the 19th century to the early 20th century in the Xian and its surroundings, in particular Dayanta in Daciensi temple (大慈恩寺). In addition, excavations started in the 1980s, and a lot of moulding brick Buddha are excavated in temple sites such as Ximingsi temple(西明寺), Qinglongsi temple(靑龍寺), Shijisi temple(實際寺:溫國寺), Liquansi temple(禮泉寺) in Xian city. Many of them are small in size, about 10cm in width, and have been of low interest in academia in the past because they are mass-produced products using cheap materials. However, most of them are thought to have been made in the middle of the 7th century through the 8th century. And they are not only rare evidence that tell about the Buddhist art of early Tang Dynasty capital, but also unique features of moulding brick Buddha which are small frame, low price, large quantity, and same form, may be a useful means to explain one aspect of Buddhist beliefs and ancestral activities at that time. In 1985, this author published several papers related to this issue. Recently, the writings about the significance of moulding brick Buddha excavated by Xian written by Hakiwara Hajime and Kotou Munetoshi have a great meaning. In China, it is noted that there are some academic papers written by Hwang Yeong Cheon. This study focuses on the two major groups of moulding brick Buddha in the capital, named 「India Buddha Statue(印度佛像)」 and 「Tang Seoneup(大唐善業)」, and has a more in-depth discussion about production contexts and iconographic ori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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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수영박사(黃壽永博士)의 청동은입사향완(靑銅銀入絲香완) 연구(硏究)

        김창균 ( Chang Kyun Kim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2014 강좌미술사 Vol.43 No.-

        우리나라 미술사학계의 은입사향완에 대한 연구 역사를 살펴보면 1957 년과 1960 년에 발표된 .봉은사 향로와 범종.과 .고려은입사향완의 新例.라는 논고를 시작으로, 1961 년부터 1968 년에 이르기까지 .고고미술.을 통해 8 편의 단편적인 연구가 진행되어 왔을 뿐이다. 이에 이어 고려시대 청동은입사향완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1963 년 .불교학보. 제 1 집을 통해 발표된 황수영 박사의 .高麗靑銅銀入絲香.의 硏究.를 시작으로 본격화되었다고 하겠다. 그 동안의 단편적인 자료에 비해 국내.외 소재 고려시대 청동은입사향완을 총망라해 놓아 고려시대 고배형 청동은입사향완의 총론적인 연구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고려청동은입사 향완의 연구.는고려시대 청동은입사향완의 명칭을 ‘香.’ 으로 하고, 일본과 영국 소재의 금산사향완과 소재사향완은 받침대임을 분명히 밝힌 점, 명문분석을 통해 ‘銀入絲’에 대한 기법적인 면과 향완 조성에 관련된 功德主, 僧侶, 匠人들을 밝혀냄으로써 청동은입사향완의 체계적인 연구 발판을 마련하였다는데 의의가 지대하다고 할 것이다. 특히 고려시대 고배형청동은입향완의 선도적 연구라는 점과 불교공예에 있어서 향공양구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점, 이와 함께 여러 가지 불구가운데에서 향완이 차지하는 위치를 분명하게 밝힌 점, 향완의 형태 및 형식을 체계화 하고 은입사 기법 연구에 있어서의 방법론을 제시하였다는데 의의가 있으며 학계에 기여한바 또한 크다고 하겠다. In Korean art research, the history of research on silver-inlaid incense bowls began with dissertations “The Incense Burners and Buddhist Bell in the Bongeun-sa Temple(奉恩寺)” and “New Cases of Koryo Silver-inlaid Incense Bowls” published in 1957 and 1960, respectively, and there were eight fragmentary studies reported in Archaeology and Arts(考古美術) from 1961 to 1968. However, it is said that serious research on bronze silver-inlaid incense bowls in the Koryo Dynasty was initiated by Dr. Hwang Soo-yeong through his paper “A Study on Koryo Bronze Silver-inlaid Incense Bowls” published in the 1st volume of The Journal of the Korean Buddhist Research(佛敎學報). Compared to previous fragmentary materials, the paper, which is the outcome of general research on pedestalled bronze silver-inlaid incense bowls in the Koryo Dynasty, comprehending all Koryo bronze silver-inlaid incense bowls inside and outside Korea, is considered highly meaningful in that it named Koryo bronze silver-inlaid incense bowls ‘Hyangwan(香완)’, clarified that the Geumsan-sa Temple(金山寺) incense bowl and Sojae-sa Temple(消災寺) incense bowl in the U.K. were pedestals, and laid the foundation for systematic research on bronze silver-inlaid incense bowls by explaining the technical aspects of silver inlay (銀入絲) through analyzing inscriptions and finding donors(功德主), monks(僧侶), and artisans (匠人) involved in the creation of incense bowls. Moreover, his study is considered to have made great contributions to the academic circle in that it opened a new horizon of research on Koryo pedestalled bronze silver-inlaid incense bowls,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incense offering tools in Buddhist crafts, clarified the position of incense bowls in various types of Buddhist tools, systemized the shape and type of incense bowls, and suggested methodologies for research on silver-inlay techniq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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