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원문제공처
          펼치기
        • 등재정보
        • 학술지명
          펼치기
        • 주제분류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 저자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일본 소재 한국 문화재의 연구 현황과 성과

        최응천,Choi, Eung-chon 국립문화재연구소 2014 문화재 Vol.47 No.3

        일본에는 우리나라 문화재가 다수 소장되어 있으며, 이에 대한 연구도 시기별로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해방 이후인 1945년부터 1980년대까지 일본 소재 한국 문화재에 대한 연구는 일본과 국내 모두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개설서가 증대되면서 자료 보고서 형식의 논고가 지속적으로 발표되었다. 분야별로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불교회화에서 두드러진 성과가 나왔다. 조각은 일본 학자들에 의한 한국 불상 연구가 매우 활발히 이루어진 시기였으며 일반회화 분야에서 연구 논문 발표와 저술 활동이 국내와 일본 모두 증가하였다. 도자 분야는 다른 어느 분야 못지않게 관련 저서가 증가된 점이 주목된다. 1980년대 후반부터1990년대 말까지는 국내에서 소장학자의 연구가 활발히 개시되고 신 자료를 발굴하여 소개하는 개별 논고가 많아진 시기이다. 일본의 경우 소수 연구자들의 지속적 활동이 이어지며 국내의 경우 기존 학자에 이어 도일 유학생들에 의한 연구조사가 실시되었다. 나아가 조사 지역 및 연구 범위가 확대되어 연구자의 양적 증가가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일본 소재 한국 문화재의 대여 전시가 활발히 이루어진 결과, 새로운 관심이 더욱 집중되기도 하였고 국가기관(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의 미흡하지만 처음으로 조사와 보고서 간행이 시작되었다. 2000년 초부터 현재까지는 1990년대 후반부터 이루어진 심화된 연구를 바탕으로 개별 작품에 대한 미시적 접근이 점차 이루어진 시기이다. 미술사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 논문 주제로 일본 소재 한국 문화재를 다룬 논문이 증가되었고, 연구가 확장되어 여러 방면에 걸친 연구 인력이 배출되었다. 그러나 일반회화, 불교회화, 소수의 불교공예 정도를 제외하고 연구 분야 간 차별화 현상이 심화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도자 분야는 국립문화재 연구소에 의한 본격적인 한국 문화재 보고서가 간행되어 소장처별로 체계적인 보고서가 간행된 점은 괄목한만한 성과이다. After independence, more introductory books on Korean culture were published in both Korea and Japan, along with various papers briefly presenting relevant materials. There are differences depending on the research field, however, a considerable number of articles about Buddhist paintings were published. Research on Korean sculpture was quite active among Japanese scholars. And numerous articles and publications on Korean painting were also presented in both Korea and Japan. Publications on Korean ceramics were increased as much as in other fields. From the late 1980's through late 1990's, research on Korean cultural properties continued to increase, as many young scholars began to conduct research very actively in Korea, producing many articles to introduce new materials. A small number of Japanese scholars also continued to research Korean cultural properties. The overall number of Korean researchers also increased, as existing scholars were joined by students who went to Japan to study and conduct research, thereby helping to significantly expand the area and topics of research. In this period, the exchange exhibitions between Korea and Japan were increased. Also the substantial research reports was began to be published by the national institution. From the early 2000 thrugh present, in all fields, research has progressed and improved since the late 1990's, with many individuals pursuing a microscopic approach to their artifacts and works. More graduate students have been focusing on Korean cultural properties in Japan as the subject of their master's or doctorial thesis in art history, and overall number of researchers in various areas has increased. In the field of Buddhist painting, painting, and Buddhist crafts some important books and articles have been published. However, research achievements have been somewhat uneven. In the area of ceramics, several significant examples of substantial research reports were published by the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These publications are outstanding references that illustrate the future direction of research on Korean cultural properties in Japan.

      • KCI등재

        『三國遺事』에 보이는 미술사 자료의 분석과 검토

        최응천(Choi, Eung Chon)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21 美術史學 Vol.- No.42

        『三國遺事』에는 塔像編 뿐 아니라 다른 여러 편 속에서 다양하고 풍부한 분량의 미술사 관련 자료가 수록되어 있음이 확인된다.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미술사 관련 자료를 분석해 보면 탑상편에는 사지의 창건과 연혁이 10건, 폐사지의 위치 확인이 3건, 불교조각의 제작시기와 조성배경이 11건이었고 불탑의 제작시기와 조성배경 6건, 계단과 불사리 신앙 3건, 불교공예 5건, 불교회화 4건, 박물관의 기원 1건으로서 모두 43건 정도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중에서는 불교조각이 가장 많은 수효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타 편에 수록된 미술사 자료는 사지의 창건과 연혁이 17건, 불교 건축이 2건이며 탑상의 조성이 13건, 계단과 불사리 신앙 2건, 불교공예 4건, 불교회화 5건, 고대 박물관의 기원 2건으로서 45건이 확인되며 그 중에서 사지 창건과 연혁 부분이 가장 많은 17건이었다. 기타 편에 보이는 미술사 자료는 탑상 편에 실린 내용과 중복되거나 유사하지만 부언 설명이나 강조하는 내용을 보태기도 하였고 일부에서는 탑상 편에 누락된 미술사 관련 내용이 보이는 점에서 새로운 검토가 필요하다. 첫째, 『三國遺事』에 보이는 미술사 관련 자료는 탑상 편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탑상 편에서 제외되거나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새로운 자료의 게재가 꽤 많은 곳에서 등장된다. 둘째, 『三國遺事』에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 고대 사원의 창건시기와 조성 배경과 같은 연혁을 다룬 글이 도합 27편에 달한다. 여기에는 한 편에 몇 개의 사찰이 동시에 언급되기도 하지만 불교미술 뿐 아니라 불교사에서 사찰의 연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그 다음 가장 중요하게 평가할 수 있는 불교조각과 불탑의 자료는 도합 30편에 이르며 상대적으로 불교조각의 관련된 자료가 월등히 많았다. 또한 탑상 편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부분 중 하나가 戒壇과 舍利信仰에 관련된 부분이다. 이들은 황룡사 구층탑에 봉안된 사리를 포함하여 신라 및 통일신라 사리기 및 사리신앙 연구에 귀중한 일조를 한다. 한편 불교공예에서 가장 중요한 범종을 다룬 皇龍寺鍾· 芬皇寺藥師· 奉德寺鍾 조에서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경덕왕 754년에 황룡사 종이 주조되었으며 크기 1장 3촌, 49만 7천 5백 81근이란 중량을 파악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유추하면 현존하는 성덕대왕 신종의 12만근보다 3배 이상의 금속이 소요된 점에서 366㎝보다 최소 두 배 가까운 크기였다고 추정된다. 통일신라 범종의 명칭에서 지금 龍鈕라고 불리는 종을 거는 고리 부분이 고래를 무서워 한다는 葡牢로 불리었으며 지금은 사라진 撞木의 모양을 고래 형상으로 만들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신라 사리기의 구성과 형태를 볼 수 있는 자료로서 어금니를 넣은 사리기의 구성이 안쪽에 침향으로 합을 만들고 그 바깥은 순금합, 다시 백은함과 바깥에 유리로 함을 만들고 바깥 겹은 나전함으로 중첩 봉안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였다. 특히 함과 합을 구별한 것으로 보아 뚜껑의 유무에 따라 함과 합을 구분한 것으로 보이며 각 함의 폭이 크기를 줄여가며 중첩되도록 만든 것을 시사한다. 불교회화 자료는 비교적 적은 3편에 불과하지만 주로 千手千眼觀音, 普賢菩薩, 11面觀音과 같은 밀교와 관련있는 변화 관음상을 벽화 위주로 제작한 사실을 밝혀준다. 마지막으로 단편적이지만 신라 궁내에서 보물 창고의 역할을 한 天尊庫란 수장고 시설과 명칭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탑상 편 이외 편에서 보이는 미술사 자료를 분석해 본 결과 사찰과 창건과 연혁을 다룬것이 17편 정도로 가장 많았는데, 탑상 편에서 다루지 않은 중요한 사찰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어 보다 집중적인 분석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탑상 조성에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면 수효는 불교조각이 9편, 불탑이 4편으로서 탑상 편에 비해 적지만 良志使錫, 迎如師 布川山 五比丘, 大城孝二世父母 조는 『三國遺事』가 지닌 미술사적 가치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구체적인 자료이다. 불교조각의 경우 塑造像에 관련 기록이 많다는 것은 지금은 남아있지 않지만 당시에 소조상의 제작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진 점을 시사해준다. 또한 유가종의 개창주인 대덕 대현스님과 관련된 남산 茸長寺와 봉안된 미륵석조장육상은 『三國遺事』를 통해 그 실제가 입증된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戒壇과 舍利 信仰 관한 기록 가운데 금산사에 봉안되었던 사리를 나누어 金剛山 鉢淵寺에 나누어 줬다는 기록은 왜 지금 발연사에 금산사 계단과 동일한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지 잘 보여주는 주는 자료이다. 두 편의 불교건축 자료 중에서 感恩寺 관련 기록과 불국사 창건에 관련된 내용은 751년 김대성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최소 774년까지 이어지다가 이후 다시 국가에서 마쳤다는 점을 밝혀주어 최소 30여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음을 시사해 준다. 그러므로 불국사 석굴암 관련 제작 시기를 규명하는데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불교회화는 그리 많지 않지만 벽 위에 53불과 聖衆 및 天神, 五岳神君을 그렸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확인된다. 불교공예는 개별 설명이 없는 단편적인 六環杖, 水晶念珠, 철 솥, 石鐘에 관한 자료에 불과하여 아쉬움을 준다. 고대 수장고인 天尊庫에 관련된 기록 이전에 貴妃庫라는 국가의 보물을 보관하는 수장고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일연스님은 미술사 관련 내용이 중심을 이루는 탑상 편을 별도로 분류함으로써 그 중요성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미술사의 개념이나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이는 전문적인 지식 보다는 전부터 전해오는 고대의 자료를 섭렵하고 이를 보완하는 목적이 더 컸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다루고 있는 부분은 황룡사와 황룡사 9층목탑, 그리고 자장과 관련된 여러 창사의 연기, 또한 스님이라는 신분상 매우 귀중하게 다룰 수밖에 없었던 불사리 신앙과 관련된 부분으로 파악된다.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Samgukyusa, 1285), compiled by a Goryeo monk named Iryeon, is one of the oldest extant books on Korean history. The chapter titled ‘Pagodas and Images’ (Tapsangpyeon) contains a wealth of information about the history of Korean art. A close examination of the chapter revealed that it contains information about forty-three references to Korean art history, including ten references to the foundation and chronology of Buddhist temples, three on the locations of closed temples, eleven on the production dates and backgrounds of Buddhist sculptural works, six on the construction dates and backgrounds of pagodas, three on ordination platforms and sarira worship, five on Buddhist arts and crafts, four on Buddhist painting, and one on the origins of museums. Of these references, the largest number of cases concerns Buddhist sculpture. The book also contains forty-five references to Korean Buddhist art history in its other chapters, including seventeen on the foundation and chronology of Buddhist temples, two on Buddhist architecture, thirteen on the construction of pagodas and images, two on ordination platforms and sarira worship, four on Buddhist arts and crafts, five on Buddhist painting, and two on the origins of museums. The information contained in the chapters of the book requires a careful review for the purpose of classification, because some entries overlap with the information provided in the chapter on pagodas and images as they were intended to provide an additional explanation or to emphasize certain facts, while others contain information omitted from the aforementioned chapter. It seems that Iryeon wrote the chapter on pagodas and images in order to focus on information about the Buddhist art of his country, indicating that he was well aware of the importance of Buddhism’s artistic heritage. The intention behind the arrangement of the chapter seems to have been to bring together and supplement old materials rather than to introduce concepts related with art history or specialized knowledge. It is noteworthy that of the numerous Buddhist topics covered in the book, Iryeon was particularly interested in Hwangnyongsa Temple and its famous Nine-Story Wooden Pagoda, the Buddhist temples established by the eminent Silla monk Jajang, and the relics (sarira) of Shakyamuni Buddha, which must have been invaluable objects of worship for devout Buddhists like him.

      • 한국 범종 연구의 성과와 과제

        최응천(Choi Eung Chon) 동국대학교 박물관 2011 佛敎美術 Vol.22 No.-

        This study attempts to interpret new approach about problem of researching Korean Bell. First of all, I suggest new materials like yong zhong(甬鍾) and bo zhong(鎛鍾) as an origin of Korean Bell. In order to examine bell shape of Three Kingdoms period, I compared Chinese bell with inscription Taijian 7th with gilt bronze small bell excavated at Mireuksa temple site. I proposed that Korea accepted Chinese bell through another route which was different from Japanese bell systematically from the beginning on he basis of two types of the early Chinese bell style like southern Johyeong bell(祖形鍾) and nothern Hayeop Bell(荷葉鍾). Also I reviewed nationality and production period of Jogyesa temple bell that was obstacle on study of Three Kingdoms period bell. I studied unique aspect of Korean Bell divided into six elements such as dragon-shaped hook, sound pipe, lotus frame, lotus petal, heavenly maiden, and striking point focusing on Sangwonsa temple bell(上院寺鍾) that was typical style of Korean Bell. In addition I researched value and significance of Sangwonasa temple bell in Korean bell history. Also I analyzed stylistic characteristic and inscription of Yeonjisa temple bell(蓮池寺鍾) which showed new aspects within a century after Sangwonsa temple bell, and looked into position and meaning of Yeonjisa temple bell in Korean Bell history. Yeonjisa temple bell showed transitional style changed a pair of heavenly maiden into one change did not open to public in Japan. So I precisely described survey information to use research resource of studying Korean bell.

      • KCI등재

        조선 후기 범종의 부흥을 이끈 두 거장

        최응천(Choi, Eung Chon) 보조사상연구원 2018 보조사상 Vol.51 No.-

        조선 후기 17세기 범종 제작의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킨 대표적 장인이 僧匠 思印比丘와 私匠 金愛立이다. 이들은 17세기 중엽부터 18세기 초까지 반세기 동안 활발한 주조 활동을 펼친 조선 후기 가장 뛰어난 장인이었다. 사인비구는 앞서 활동했던 승려 장인들에 비해 경기도, 경상도, 강원도, 함경도 등의 넓은 지역에서 활발한 鑄鐘 작업을 하였지만 주로 경상도 지역을 거점으로 하였다. 思印은 太行과 함께 1674년 靑龍寺鐘까지는 공동으로 주종 활동을 하다가 1676년 이후로 제작하는 범종에 와서는 首匠으로 독자적인 활동을 이루어 나간 것으로 파악된다. 이후 만들어진 1683년에 제작된 喜方寺鐘부터 확실한 사인 특유의 범종 양식을 정립해 나간 것으로 보인다. 思印比丘가 만든 범종의 특징은 한국 전통형 범종을 따르면서 앞 시기의 범종보다 훨씬 섬세한 장식 문양을 사용하여 상대에는 1단 내지 2단의 梵字文을 두르고 蓮廓에는 별 모양으로 도식화된 花文座와 낮은 蓮 蕾, 연곽과 연곽 사이의 상단에 배치된 1구씩의 菩薩立像은 항상 左向으로 몸을 틀어 연꽃가지를 든 雲上 菩薩立像으로 낮게 부조하는 특징을 지닌다. 특히 보살상과 연곽, 당좌 등과 같은 세부 표현의 경우 동일한 文樣板을 반복 사용하여 변화 없이 계승하였다는 점은 僧侶 장인이라는 특성상 직업 장인인 私匠과 달리 보수적 경향을 고수한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와 거의 유사한 시기에 활동한 金愛立은 출신지가 진주라는 점이 확인된다. 그가 제작한 범종은 鐘腹이 부풀지 않은 세장한 종신, 쌍룡의 龍鈕가 높이 솟은 삼각형을 이루며 龍頭가 천판에 밀착되어 천판에는 연판을 두른 모습이 특징적이다. 여기에 상대에 圓圈 범자문을 두르고 연곽이 종신에서 중간으로 한참 내려온 곳에 위치하며 하대는 종구 쪽이나 약간 위로 올라와 연화당초문을 시문하였다. 이와 같은 범종의 모습은 17세기 전반에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한 私匠 金龍岩의 범종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보이지만 연곽 위치의 차별성과 楞伽寺鐘(1698)에 등장하는 帝釋 ㆍ梵天形 보살상이나 중국 종의 특징인 八卦文과 같은 새로운 양식도 적극적으로 수용한 점이 느껴진다. 특히 사인비구나 김용암과 같은 장인들의 경우와 달리 종마다 조금 씩 圖像의 변화를 주고 있는 점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전통을 중시하는 僧匠과 달리 주문에 따라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한 사장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 부역을 치르는 동안 국가의 佛狼機砲 제작에 참여한 작품이 남아있어 당시 鑄鐘匠 사회의 다채로운 일면을 알려준다. 한편 이들의 활동이 미약해지는 18세기에 들어오면 조선 후기 범종의 뚜렷한 특징이었던 전통형 종과 혼합형 종은 그 양식이 서로 혼용이 되어 뚜렷한 분류나 구별이 없이 뒤섞여 나가는 다양한 형태의 혼합형 종으로 바뀌어 감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새로운 혼용 양상은 당시 주조기술의 전반적인 쇠퇴와 활발한 범종 제작을 하였던 私匠들의 활동이 미약해지면서 수급과 제작이 축소되는 것과도 연맥을 같이한다. The representative craftsmen that brought about the revitalization of Buddhist bell production in the late 17th century is a monk craftsman, Sain and a private craftsman, Kim Ae-rip. These were the most outstanding craftsmen in the late Joseon Dynasty, which had been actively engaged in casting activities for half a century from the middle of the 17th century to the end. Monk Sain actively built bells in large areas such as Gyeonggi-do, Gyeongsang-do, Gangwon-do, and Hamgyeong-do, but mainly based in Gyeongsang-do. The Sain made a joint effort to make bells until 1674 when making the Cheongryongsa(靑龍寺) bell, and since the Buddhist bells made in 1676, he made his own activities as a head craftsman. It seems that he established his own Buddhist bell style which is distinctive from the Huibangsa(喜方寺) bell in 1683 which was made afterwards. As for the characteristics of Buddhist bells made by monk Sain, by following the traditional Korean Buddhist bell, and using a much more delicate decorative pattern than the Buddhist bell of the previous period, the upper range is characterized by a one-to-two Sanskrit design and a lower left-standing Bodhisattva on a cloud with a lotus branch always turning to the left. In the case of detailed expression, the fact that the same pattern was used repeatedly and succeeded without change is because he abided by the conservative tendency as a monk craftsman. The hometown of Kim Ae-rip who worked at almost the same time as monk Sain, is confirmed to be Jinju. The Buddhist bell he created is composed of a bell-shaped body, a triangle of towering ‘dragon hanger[龍鈕]’ of dual dragons, ‘dragon head[龍 頭]’ is closely attached to the top plate, and the top plate is characterized with a wrapped flat plate. Here, the upper range is wrapped with Sanskrit design, ‘lotus bud carton[蓮廓]’ is placed far lower place from the middle of the bell body, and the lower range rose to the bell mouth or slightly up with floral vines. He seems to actively accept Indra(帝釋天) Brahma(梵天) type of Bodhisattva appearing in Neunggasa(楞伽寺) bell(1698), or new styles such as the Eight Diagrams[八卦] pattern, which is characteristic of China bells. In particular, unlike monk Sain, it is seen that iconographies of each bell change a little, and this is not unrelated to the characteristics of professional craftsman (private craftsman) who, unlike monk craftsman, who emphasizes tradition, can express freely according to the order. On top of that, during the period of his compulsory labor, various activities of private craftsmen are identified at the time of participating in Bulanggipo gun (佛狼機砲) production of the nation.

      • KCI등재

        황수영 박사의 한국 범종 연구와 성과

        최응천 ( Eung Chon Choi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2014 강좌미술사 Vol.43 No.-

        황수영 선생이 평생에 걸쳐 집필한 한국 범종 관련된 자료소개나 논문은 대략 29 편 정도이다. 물론 여기에는 같은 종류의 범종을 중복해서 다른 곳에 소개하거나 여러 편을 묶어 고찰한 논고도 포함된다. 범종의 제작 년대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한국 범종의 기원과 형태 문제를 다룬 3 편의 글과 統一新羅鍾5 편, 高麗時代鍾18 편, 朝鮮時代鍾3 편과 연구 현황을 다룬 1 편이 확인된다. 그 가운데 高麗時代鍾연구가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統一新羅鍾의 경우 일찍부터 알려져 왔고 많은 연구 현황이 이루어지 반면에, 당시 새롭게 알려지기 시작한 개인 소장 高麗鍾이나 새로이 출토된 高麗鍾은 선생 외에는 잘 파악할 수 없었기에 우선적으로 소개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선생의 범종 연구사에서 더욱 돋보이는 성과는 우리나라 최고의 鍾인 上院寺鍾이 安東에서 옮겨 진 것을 밝혀 上院寺鍾의 원 소재지 문제를 다룬 논문과 3 년 만에 소실된 禪林院址鍾의 현황과 명문, 출토 상황 등을 자세히 밝혀놓음으로써 자칫 사라질 뻔 하였던 統一新羅鍾의 귀한 사례를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한 세 편의 논고, 實相寺鍾의 중요성을 고찰한 글들을 통해 統一新羅美術에서 新羅鍾이 지니는 의미와 가치를 부각시킨 일이다. 또한 일본에 소재한 한국 범종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하여 틈나는 대로 그들을 소개하고 명문을 실어 자료로 활용토록 하였다. 이러한 선생의 성과는 .韓國金石遺文.에 다시 정리되어 간행됨으로써 한국 범종 연구에 가장 중요한 기초 자료집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아울러 선생에 의해 설립되어 이후 한국 범종 연구의 중심이 된 韓國梵鍾硏究會(현 梵鐘學會)와 .梵鐘.지의 창간을 들 수 있다. 이를 통해 미술사에서 유독 한국 범종 연구를 독립된 분야로 연구될수 있도록 가치를 정립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여기에 미술사에서 범종 연구지나 범종연구회의 경우 일본보다 한국이 훨씬 앞설 수 있게 된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도 중요한 공로의 하나이다. 이처럼 한국 범종 연구에 있어 선생이 이룩한 한국 범종 관련의 업적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더욱 큰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Dr. Hwang Soo Young wrote 29 research papers including introduction of materials for Korean Buddhist bell throughout his lifetime. There are three articles which was dealing with the problem of the origin and form of Korean Buddhist bell, five articles related to Buddhist bells of Unified Silla dynasty, eighteens articles related to those of Goryeo dynasty, three articles related to those of Joseon dynasty, one article about the research status. Among the 29 research papers a study on Buddhist bells of Goryeo dynasty have accounted for most quantities. The outstanding achievements in his study about Korean Buddhist bell is to highlight the meaning and value of Buddhist bell of Unifed Silla dynasty through three articles related to the original location Buddhist bell of Sangwonsa temple, three articles about status, inscription, and excavated situation of Seonrimwon temple bell destroyed by fire, and one article dealing with the significance of Silsangsa temple bell. Also he appreciated the significance of Korean Buddhist bells located in Japan, and introduced them ever put to excellent advantage in resources. It is re-published from 『韓國金石文(Korean epigraphs left by a deceased)』 that played the most basic role for researching Korean Buddhist bells. Also the foundation of Research Group of Korean Buddhist Bell(now The Association of Korean Buddhist Bell) and journal Beomjong(Korean Buddhist bell) established by him played important role in boosting value as an independent field in Korean art history. In additionResearch Group of Korean Buddhist Bell and journal Beomjong became the important momentum to lead in studying Buddhist bells. Thus, his achievements of studying Korean Buddhist bell have the important significance and value than any other field.

      • KCI등재

        고려시대 金屬工藝의 匠人

        최응천(Choi Eung-chon) 한국미술사학회 2004 美術史學硏究 Vol.- No.241

        Metallic craft works from the Goryeo Dynasty generally are engraved with information related to the manufacturing such as date, prayer and weight as well as the social standing and name of the manufacturer. A fairly many craftsmen in metals have been identified until now. Among Goryeo craftsmen, Han Jung-seo (韓仲敍) who made temple bells and temple gongs is known to have been most active from the beginning to the middle of the 13th century. He started his career as a minor guard of Sunyeong Palace but was promoted high up to a senior official of the 7th rank called Byeoljang (別將) Dongjeong (同正) at Musangae (武散階). His life history provided a decisive clue to the study of the social standing of cast-metal craftsmen in his days. Except Han Jung-seo's, there is no work remained that shows the genealogy of the same manufacturer. However, craftsmen recorded in Goryeo metallic craft works are largely grouped into three classes. Private craftsmen are general professional metal-cast craftsmen, who were recorded simply as 'Craftsman (匠, 匠人)' or by name. Private craftsmen in the Goryeo Dynasty were professional grown from half-agricultural and half-industrial domestic business at farm villages, employed craftsmen who had been aristocratic craftsmen in the royal court, or independent craftsmen from naturalized. In addition, every year these private craftsmen paid tributes in the form of regular tributes and special tributes in addition to being on duty as provided by the government, Among them. some engaged in military service as members of so called 'Craftsmen Unit (工匠隊)'. Government craftsmen means those who had definite official title such as Daejang (大匠)' or Bujang (副匠)' in front of their names. Daejang and Bujang were definitely government craftsmen according to a record in Sikwhaji (食貨誌) of Goryeosa (高麗史). "武散皆 田十七結 大匠副匠雜匠人, 御前部樂伴樂人." As the record, Daejang or Bujang belonged to Musangae(武散階), receiving 17 gyeals (結) of field as payment from the government, Craftsmen were granted posts of Dongjeong such as Jungrangjang Dongjeong (中郞將同正, 5th rank). Rangjang Dongjeong (郞將同正, 6th rank). Byeoljang Dongjeong (別將同正, 7th rank) and Sanwon Dongjeong (散員同正, 8th rank) according to their rank in Musangye. That is, government craftsmen used the official title of Daejang as well as the honorary title of Dongjeong, and treatment for them was the same as that for regular officials although equivalent payment was not offered. There are not many records or evidence on Buddhist priest craftsmen. The most definite example of Buddhist priest craftsman is Metal-cast Dongryang (棟粱) Priest Gyeongjin (鏡珍)' who was recorded with 'Craftsman' on Seonak-sa temple bell (1066). He is considered to be a Buddhist priest craftsman who cooperated with private craftsmen for metal casting, Buddhist priest craftsmen who belonged to temples and engaged in various technical job in this way appears to have the same official title as government craftsmen, and it is assumed that a fairly large number of priest craftsmen might participated in manufacturing temple bells, temple gongs and incense vessels. Mongolian invasion and resistance for around 40 years from 1231 to 1270 at the beginning of the late Goryeo Dynasty was a disastrous accident that brought about comprehensive impoverishment to all areas including economy and society as well as arts of the Goryeo Dynasty. Although some areas steadily continued to inherit traditional techniques and create works, metallic craft works from the period between 1250 and the end of the 13th century are significantly rare compared to other periods. The rapid decrease of demand for metallic craft works and the degeneration of casting techruque during the period from the late 13th century to the early 14th century in the late Goryeo Dynasty hints the situation of the collapsing craftsmen society of the late Goryeo Dynasty resulting from wars. Such a situation is clearly evidenced by temple bells. There are only a s

      • 17世紀 金鼓의 造形과 特徵

        최응천(Choi Eung Chon) 동국대학교 박물관 2012 佛敎美術 Vol.23 No.-

        Of all Joseon metal drums the oldest work incised sanskrit characters is the metal drum of Fukouji(普光寺) in Tsushima island of Japan presumed between middle and late 15th century. Throughout this work, Geumgu type metal drum known to be disappeared at middle 14th century is turned out to be continued to early Joseon period. Except this work, there is no metal drum of early Joseon period. However, three metal drums of the 17th century shows the transitional process to Joseon metal drum and completion of typical style. The metal drum with inscription Shunzhi the 3rd of Eunhaesa temlple is the exceptional. Because the lotus shaped striking point and cloud and crane design is characteristics of Goryeo style. On the contray the metal drum with inscription Jangcheonsa(障川寺) of Gukcheongsa temple has the typical style of late Joseon period. This work shows simple surface structure, distinction of striking point, five sanskrit characters instead of complicated sanskrit characters in circle. Also simple arabesque style proves the transitional style placed between late Goryeo style and Joseon style. The metal drum of Cheonggoksa temple made in the 17th century by Kim Aerip shows the transition to simple metal drum style in that decorations on the surface was disappeared. That of the 18th century is characterized by the disappeared the distinction of striking point, the reduced sanskrit characters in circle, abbreviated decorations. So three metal drums of the 17th century is the transitional type of late Joseon underlain between Goryeo style and late Joseon style.

      • KCI등재

        軍威麟角寺출토 佛敎金屬工藝品의 性格과 意義

        최응천(Choi, Eung-Chon) 한국고대학회 2010 先史와 古代 Vol.32 No.-

        2008년 10월 군위 인각사(軍威麟角寺)에서 출토된 불교공예품은 우리나라 최초로 승탑지(僧塔址)에서 발견된 일괄 유물로서 청동 병향로(炳香爐)와 청동 향합(香盒), 청동 정병(淨甁), 청동원통형 이중합(二重盒), 청동 금고(金鼓) 등과 같이 다채로운 종류의 불교공예품이 완전한 상태로 발견된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특히 중국 신회선사(神會禪師)의 묘탑(廟塔)(756)에서 발견된공양품과 매우 유사한 의궤와 형식을 지니고 있어 당시로서 선구적인 금속공예품이 통일신라에 도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그 가운데 손잡이 향로는 손잡이 끝 부분에 사자상이 조각된 정교한 형태로서 안정된 기형과세련된 세부 표현 등에서 일본, 중국에 남아있는 작품보다 훨씬 뛰어난 조형성을 보인다. 볼록한 몸체에 세련되면서도 날렵한 기형을 보여주는 두 점의 정병은 지금까지 밝혀진 통일신라 정병가운데서도 가장 시대가 앞선 예로 평가된다. 그리고 탑뉴(塔鈕)의 모양이 더욱 정교해진 탑뉴계(塔鈕蓋) 합(盒)은 사리기(舍利器)가 아니고 향합(香盒)이라는 점을 확실히 입증할 수 있게 되었으며 원통형 이중합은 통일신라부터 이미 제작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적극적인 자료가 되고있다. 청동 발(鉢)은 그 외형에서 쇼쇼인(正倉院), 호류지(法隆寺) 소장의 사와리완(佐波理鋺)과 거의 동일한 형태와 기법을 지닌 점에서 이러한 통일신라 작품이 일본에 전래된 것임을 입증할수 있게 되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금고(金鼓)는 당좌(撞座)에 연화문이 처음으로 등장하고 당초문이 중구(中區)에 시문되기 시작하는 고려 금고(金鼓)로의 이행과정을 보여주는 가교적 역할을 지닌 중요한 자료이다. 끝으로 함께 발견된 중국산 햇무리굽 청자완은 9세기 월주요(越州窯) 가마에서 제작된 것으로서 잔편이 아닌 완벽한 상태로 발견되어 우리 청자의 기원과 발전, 무역 도자 등의 제반 사항을 해결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이처럼 다양한 성격을 지닌 인각사 출토 불교공예품은 그 제작시기가 대체로 8세기 후반에서9세기에 해당된다. 이 시기에 해당되는 금속공예 자료가 매우 부족한 실정에서 인각사 출토 유물은 통일신라 문화의 국제적인 면모와 교류 상황을 밝혀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과 자료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Buddhist craftworks excavated from Ingak-sa in Gunwi-gun in October 2008 are the first bundle of relics ever found at the site of a stupa. They are significant because their types are various including a bronze incense burner with handle, bronze incense case, bronze kundika, bronze cylinder-shape duel case with a lid and bronze buddhist gong and because they were excavated intact. They are quite similar to works offered to Budda which were excavated from a stupa(756) for the Chinese Master Shen-hui in terms of the method and form. This tells advanced metal craftworks at the time had a direct influence on Unified Silla. Among those craftworks, the incense burner with a handle is a sophisticated one with an image of a lion carved at the end of the handle. It is far better than Chinese or Japanese works in terms of shape and detailed expression. In addition, the two kundika whose bodies are round and sharp are considered as examples of the ones created earlier than any other ones found to have been produced in the Unified Silla era. Furthermore, the case with a pagoda-shaped lid which is more sophisticated than ones created earlier clearly proves that the case is not a sarira case but a incense case. Moreover, the cylinder-shaped duel case with a lid is a reliable material showing the case already began to be created in the Unified Silla. The bronze bowl whose outward shape and technique are almost same as those of Sawariwan at Shōsōin and Horyu Temple can prove that craftworks of Unified Silla were imported into Japan. The excavated temple gong of Unified Silla is an important material showing its transition into temple gongs of Goryeo on whose striking point lotus blossom patterns first appeared and on whose middle part arabesque patterns began to appear. Lastly, the Chinese celadon bowl with solar halo base excavated with other craftworks was found to have been created at Woljuyo kiln in the 9th century. It was excavated intact, playing a crucial role in presenting answers to lots of questions on Korean celadon including its origin and development and trading ceramics. A variety of Buddhist craftworks excavated from Ingak-sa were mostly created between the late 8th and the 9th century, when metal craftworks were rarely produced. Therefore, those relics are expected to provide a new view and material that can help to prove the international aspects and exchanges of Unified Silla.

      • KCI등재

        한국 범종의 기원과 변천을 통해 본 용문산 상원사 종의 특징과 의미

        최응천(Choi, Eung Chon)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22 美術史學 Vol.- No.43

        한국 범종 연구에 있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동아시아 범종의 기원과 전래를 포함한 삼국시대 범종의 모습과 한국 범종의 전형 양식으로의 정착과정이다. 이를 위해서 중국 태건7년명종과 백제시대 미륵사지(彌勒寺址) 금동 풍탁과 비교 고찰하여 추정해 보았다. 또한 중국 초기의 범종 양식이 양쯔강을 중심으로 남쪽의 조형종(祖形鐘)과 북쪽의 하엽종(荷葉鐘)으로 나누어진다는 점에 착안하여 처음부터 일본 종과 다른 루트의 중국 범종 양식이 한국에 전래된 점에 대한 가설을 제시해 보았다. 특히 그동안 국적과 제작시기에 관하여 많은 논란이 있어왔던 용문산 상원사 종의 양식적 특징을 살펴보면서 여러 선학들의 연구 결과와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새로운 견해를 도출해 보았다. 이를 통해 상원사 종이 지닌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종의 양식적 특징으로 미루어 결코 한국 종이 될 수 없는 일본 종이라는 점으로서 원래 절에 전래되어 왔던 상원사종과 바꿔치고자 새로이 만든 종은 위작 종은 결코 아니며 한국 범종에서 가장 오랜 종이란 것도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결론지어진다. 그 요인으로 용두의 모습, 주악상의 형태, 종구와 내부의 주조 흔적을 통해 이 상원사 종이 한국 고대 범종의 전통적인 공법인 밀납주조가 아니라 일본 종에 주로 사용되는 사형주물 공법으로 만들어진 것이란 점이다. 주조 방법의 차이는 이 종이 비록 일본 종에서 나타나지 않는 상·하대 문양과 주악상을 표현하였음에도 결코 한국 종이 아니며 모방작 내지 혼합형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제작 시기에 관해서는 일본에서의 공백기라 불리는 11세기 또는 12~13세기 설이 제기되어 왔지만 그보다 앞선 시기 범종의 영향도 볼 수 있어 보다 폭 넓은 시대관을 포함하고 있다고 추정된다. 다만 13세기에 들어와 종구 쪽이 바깥으로 벌어지며 대형의 종들이 만들어지는 경향으로 미루어 하한은 12세기 말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한편으로 주조된 범종의 성분 분석을 통한 연대 추정에도 아직까지 규명이 어려우며 오히려 일본 종과의 성분 분석이 이루어진다면 국적을 더 정확히 밝히는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지금까지 반세기 이상 한국 범종 연구에서 커다란 논란을 불러왔던 용문산 상원사 종의 실체는 완전히 풀리지 않았지만 이 종이 지닌 여러 가지 특징과 의미에 관해서는 나름대로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그것이 일본 종이라 할지라도 오래전 만들어진 문화재라면 보호할 가치가 충분하며 이 또한 동아시아 범종 연구에서 이루어졌던 문화의 교류이자 명백한 과거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이후 이 종이 지닌 행적에 대한 분명한 자료가 밝혀진다면 지금보다 훨씬 의미 있는 가치를 우리에게 제공해 주리라 기대된다. The main discussion of this study is focused on the characteristic features and style of the Bell of Sangwonsa Temple in Yongmunsan Mountain, which for quite some time was the subject of a controversy over its origin and date of production. The discussion concludes that, given the stylistic characteristics of the bell, it must have originated from Japan rather than Korea. It also concludes that the current bell at Sangwonsa Temple is neither the one produced to replace the original nor the oldest extant Korean bell. Such features as the “dragon’s head” and the flying celestial maidens, as well as the traces of casting around the mouth and the interior of the bell, indicate that it was made using the sand casting technique traditionally used in Japan, rather than the lost-wax casting technique used in the production of Korean temple bells. In view of the different techniques used to produce the bells, one can safely conclude that the bell of Sangwonsa Temple was made either by a Japanese bell maker or by Korean artisans who copied the Japanese technique, although it actually exhibits the typical style of Korean temple bells, particularly in the upper and lower bands and the flying celestial maidens. As for its date of production, many researchers have proposed the period spanning the eleventh to thirteenth centuries, which is often regarded as an “inactive period” where the production of temple bells in Japan is concerned; whereas others believe that it was made during an earlier period. Considering that the Japanese bells made in the thirteenth century tended to feature an outwardly flared mouth, it would be reasonable to conclude that the bell was created before the late twelfth century. The effort to date the Bell of Sangwonsa Temple by an analysis of its components alone failed to yield a significant result. It would be more helpful, therefore, to compare its components with those of a Japanese temple bell of the same period in order to identify its origin. While its origin remains a mystery despite the fierce arguments that have raged over the last few decades, the Bell of Sangwonsa Temple has unique value in terms of its aesthetic style and cultural significance. It goes without saying that the old bell is worth preserving for future generations, regardless of whether it is Japanese or Korean, because it is an important part of the bell-casting tradition that developed in East Asia, and because it could serve as a valuable conduit for cultural exchange in the region.

      • KCI등재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