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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논문] 정류(靜流) 이상근 박사의 그리스도론

          헤르만 리히텐베르거(Hermann Lichtenberger) 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2020 신약연구 Vol.19 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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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류 이상근박사는 신약성경과 구약성경 그리고 외경까지 주석함으로써 한국 신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Jae Woog Bae, Summary, 32, 46, 59, 66) 정류와 슐라터(Adolf Schlatter)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비슷하다. 두 사람 모두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경향으로 규정된다. 정류와 슐라터 사이의 중요한 공통점이 마태복음 주해에서 나타난다. 정류에게 마태복음이 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론 진술 외에도 교회론적인 진술이 마태복음에 발견되기 때문이다. 정류의 많은 작품은 한국의 끔찍한 시대에 만들어졌다. 그의 성경 주석은 세속화 시대(Zeitalter der Säkularisierung)에 오늘날 한국 교회를 위한 길이 될 수 있다.(Summary, 32) “한국교의 회복과 갱신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Summary, 37) 그래서 오늘날 한국 교회가 나아야할 길에서 그리스도론적인 진술이 가장 중요하다.(Summary, 35) 정류가 ‘대승 불교’(Mahayana-Buddhismus)와 토론하기 위하여 요한복음을 선택한 것은 이치에 맞다. 요한복음은 예수의 세례 그리고 수난과 부활에서 공관복음과 여러 면에서 일치하지만, 많은 세부 사항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그것은 요한복음에서 그리스도론적인 칭호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 것과 연관된다. 그 다양성은 특정한 전통적-역사적인 맥락에서 나타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은 다른 기능을 표현한다. 요한복음은 신학적인 발전의 정점(頂點)에 있고 정류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정류는 석사 학위 논문에서 ‘하나님 상’을 다루었고 박사 학위 논문에서 ‘요한복음의 예수와 대승 불교의 부다’를 비교했다. 정류는 대승 불교의 정교(精巧)한 교리와 대조하고자 요한복음을 선택하여 요한복음에 통일되게 나타나는 ‘고기독론’을 명확히 이해했다. 정류는 요한복음의 발전된 그리스도론을 대승 불교와 비교 연구하여 요한복음의 그리스도론을 명확하게 하고자 하였다. 요한의 그리스도론은 예수의 존엄성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인상적으로 배타적이다. 정류는 요한복음의 아버지의 개념과 관련하여 친자(親子)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친자(親子) 관계’의 근거는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에 있다. 예수의 아들되심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유일무이하고 아버지에 의하여 결정된다. 정류는 우리에게 신적인 영광으로 비교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를 보여주었다. 그것에 대하여 우리는 정류에게 매우 감사한다. 정류는 그의 모든 주석을 교회란 관점에서 연구하여 성경신학과 실천 신학적인 관점에서 예수를 선포했다는 점에서 교회를 위한 신학자였다. Jung-Ryu(靜流) Dr. Sang Kun Lee had a great influence on Korean theology through his commentaries on the New Testament, the Old Testament, and the Apocrypha. (Jae Woog Bae, Summary, 32, 46, 59, 66) Jung-Ryu and Adolf Schlatter are similar in various perspectives. They are basically defined as conservative tendencies. An important commonality between Jung-Ryu and Schlater appears in the com-mentary on Matthew. The Gospel of Matthew is particularly important to Jung-Ryu. Because in addition to the Christological statements, ecclesiological statements are found in Matthew’s Gospel. Many of Jung-Ryu’s works were made during the confusing times of Korea(1960’s). His biblical commentary could be the solution for the Korean church today in the era of secularization (Zeitalter der Skularisierung). (Summary, 32) The restoration and renewal of Korean Church lies in returning to the Bible (Summary, 37). The Christological statement is the most important in the path to be restored (Summary, 35) It makes sense that Jung-Ryu chose the Gospel of John to discuss with ‘Mahayana-Buddhismus’. The Gospel of John is in many ways consistent with the Synoptic Gospel in Jesus baptism and in Passion and Resurrection, but in many details it is out of harmony. It is associated with the diversity of Christological titles in the Gospel of John. Its diversity emerges in a specific traditional-historical context, and on the other hand it discloses a different function. The Gospel of John is at the peak of theological development and has a very important meaning for rectification. In his master s thesis, Jung-Ryu dealt with ‘The Statue of God’ and in his doctoral thesis, he compared ‘Jesus in John’s Gospel and the Buddha in the Great Buddhism’. Jung-Ryu chose the Gospel of John in order to contrast with the elaborate doctrine of Mahayana Buddhism, for clear understanding of high-christology that unified in the Gospel of John. In addition, Jung-Ryu tried to clarify the Christology of John’s Gospel by comparing and studying the developed Christology of John s Gospel with Mahayana Buddhism. John’s Christology is impressively exclusive in describing the dignity of Jesus. Jung-Ryu talks about paternity in relation to the concept of father in John s Gospel. God s Father is the basis for the paternity of Jesus Christ. Jesus’ sonship is unique and determined by the Father in his relationship with the Father. Jung-Ryu showed us Jesus according to the Gospel of John, with divine glory in an incomparable way. For that we are very grateful to Jung-Ryu who was a theologian for the church, also studied all his commentaries from the viewpoint of the church and also proclaimed Jesus from the viewpoint of biblical and practical theology.

        • 마태복음에 나타난 최후 형벌의 장소에 대한 연구

          강대훈 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2014 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학술대회 발표집 Vol.2014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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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의 주제적 인물묘사 방식에 관한 연구

          최병필 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2014 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학술대회 발표집 Vol.2014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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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후보

          Did David Have in Mind the Meaning That Hebrews Would Assign to It?

          이강택(Kangtaek Lee) 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2011 신약연구 Vol.10 N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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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의 구약인용은 많은 복음주의 학자들에게 난점을 야기 시켜 왔다. 히브리서 10:5-7은 해석학적으로 이러한 난점을 일으키는 신약성경 구절가운데 하나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시편 40:6-8을 인용하고 있는데, 시편저자의 강조점과 히브리서 저자의 강조점이 달라 보인다. 시편에서는 순종에 대한 강조가 있는데 반해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의 속죄제사와 비교하여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를 강조하고 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화자가 다윗에서 그리스도로 변화되었다. 다른 말로하면, 히브리서 저자는 마치 그리스도가 그곳에서 말하는 것처럼 시편 40편을 읽는다. 이러한 히브리서 기자의 구약성경 읽기는 복음주의자들이 강조해온 소위 문법적-역사적 성경읽기와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다.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그리고 왜 히브리서 저자는 이러한 해석학적 독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그가 영감 받은 저자이기 때문에 그의 이러한 해석학적 이해가 예외적이라고 말함으로써 난점을 피해갈 수 있는가? 오히려 이러한 신약성경 기자의 구약 읽기를 해석학적 관점에서 설명할 방법은 없는가? 그리고 이러한 신약성경기자의 구약성경 읽기는 우리의 구약성경 독법에 어떠한 빛을 던져줄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염두에 두고, 본 소고의 첫 번째 부분에서 우리는 히브리서의 본문을 칠십인역과 마소라 텍스트의 본문과 비교한다. 그리고 시편의 원래 본문에서 이 구절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소위 역사적-문법적 해석을 시도한다. 그 후에 히브리서 저자의 본문인용을 위에서 제기되었던 질문의 빛 아래서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히브리서 저자의 해석학적 작업을 제2성전기 유대교의 빛 아래에서 이해하려 시도한다. 본 논문이 살펴본 대로 히브리서 저자의 시편 인용은 동시대의 유대교 구약해석방법과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구약이 기대했던 바가 예수에게서 완성되었다는 새로운 해석학적 관점을 가지고 히브리서 저자는 마치 예수가 시편의 실제 주인공인 것처럼 구약을 읽는다는 것이다(그리스도 완결적 구약읽기[Christotelic rereading of the OT]). 이러한 해석학은 카이저가 주장하는 것처럼 구약 안에서 자체적으로 논증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종말, 즉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한 새로운 종류의 해석학인 것이다.

        • KCI등재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혼합주의와 한국 교회

          송영목(Young Mog Song) 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2009 신약연구 Vol.8 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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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article probes the syncretism(or compromising behavior) caused by the false teachers and the opponents in the book of Revelation. John clearly sees a serious problem with what Christians are doing in accommodating themselves to the Greco-Roman life. In order to investigate the syncretism which threatened John's audiences, firstly the writing date of Revelation and the historical setting of John and his audiences should be cleared. Then, the expressions and themes connected with syncretism(for example, the Nicolaitans, Balaam, Jezebel, the synagogue of Satan, hearing formula, parody) need to be analyzed. John's answers against the syncretism are shown in various ways. John tries to reject it by suggesting the true kinsman relationship with Jesus to his audiences(Rev. 19:7). And John also attempts to convince his audiences with the dualistic world views in which the seven churches are persuaded to make the right choices. In Revelation, several dualistic contrasts come to the fore as follows: the bride-the harlot(Rev. 17:1; 21:9), honor-shame, eternity-temporality, patron-client, and insider-outsider. The audiences might have overcome the syncretism by recognizing the essence of the parody by evil powers(for example, the harlot Babylon, beasts, dragon). Moreover, the churches must have rejected the false prosperity and temporal peace promised by the compromisers in spite of seduction and persecutions. The current situation of the Korean church is similar with that of the seven churches in Asia Minor. Then, what is the way for the Korean church to overcome the modern syncretism? What can the Korean church learn from John's prescription? How can the Korean church as a nonaccommodating Christians establish her boundaries the secular and compromised society?

        • KCI등재

          현대 한국 사회 속에서 목회자와 신학자의 사명(마 5:13-16; 빌 1:9-11)

          김형국 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2008 신약연구 Vol.7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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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의 복음과 다문화적 상황

          권연경 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2018 신약연구 Vol.17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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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is an investigation of the universalistic and inclusive nature of Paul’s gospel in light of the rapid multi-cultural changes Korean society currently faces. After a brief discussion of the multi-cultural situation of the first-century Judaism, and of the early Christianity which grew out of it, it goes on to describe Paul’s about-face from a Jewish nationalistic enthusiast to an ardent advocate of Christian Gentile mission. Then follows a brief review of the two interpretive trends in Pauline scholarship, the traditional and the so-called ‘New Perspective,’ with an emphasis on the importance of the social context of Paul’s apostolic mission. The next major section explicates how Paul’s presentation of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by faith is guided by the social and pastoral needs of the day. It highlights in particular how Paul, by way of contextual expositions of the truth of justification by faith, brings out the equality of Jews and Gentiles in Christ. The next section argues that Paul’s policy of inclusiveness is not just a pastoral exigency but necessary consequence of his gospel itself; the grace-ful nature of the gospel necessitates that it has to be open to everyone who comes to Christ in faith. This is followed by the final section which shows how the inclusive logic of Paul’s gospel is borne out of the conviction that the gospel of crucifixion and resurrection is the only genuine manifestation of God’s creative power of life which, for that very reason, overrides and nullifies all human, worldly, conditions and values which lack such power. The study concludes with a brief reflection on the practical implications of its major thesis in the context of Korean society and church. 이 연구는 한국 사회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급격한 다문화적 변화를 염두에 두고, 바울의 복음이 가진 보편적이고 포용적인 성격을 살펴보려는 시도다. 우선 일세기 유대교 및 거기서 자라나온 초대교회의 다문화적 상황을 간략하게 묘사한 후, 열광적 민족주의자에서 기독교적 이방인 선교의 열렬한 옹호자로 변화한 바울의 모습을 살펴본다. 그리고 바울의 선교에 있어 사회적 맥락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바울 연구의 두 큰 흐름인 전통적 관점과 새 관점을 간략히 개관한다. 다음 단락에서는 바울의 이신칭의 교리가 어떻게 당시의 사회적, 목회적 필요에 이끌리는지 살펴본다. 여기서는 특별히 바울이 어떻게 이신칭의 교리를 상황적으로 풀이하면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평등이라는 결론을 도출해 내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다음 단락에서는 바울의 포용 정책이 단지 목회적 필요의 산물이 아니라 그가 선포한 복음 자체의 필연적 결론이었다는 주장이 제시된다. 은혜에 기초한 복음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나아오는 모든 이에게 개방된 것일 수밖에 없다. 마지막 단락에서는 바울 복음의 포용적 논리가 그의 복음적 신념, 곧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만이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에 대한 진정한 표현이라는 신념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논증한다.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이라는 점에서 복음은 생명의 능력을 갖지 못한 일체의 인간적 조건과 가치를 넘어서며 이를 무효화한다. 연구의 결론에서는 본 연구의 핵심 논지가 한국의 사회와 교회에서 어떤 함의를 갖는지 생각해 본다.

        • 마가복음의 신학과 공간

          박노식 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2014 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학술대회 발표집 Vol.2014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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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복음 6장 35절의 목마름 언어에 대한 의미 재고

          송승인 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2019 신약연구 Vol.18 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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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is a study of the meaning of the phrase “he who believes in me will never be thirsty” in John 6:35c. So far, various interpretations of this passage have been suggested, and I argue that this expression is deeply related to John 4:10-14 and 7:37-39 and that it is most persuasive to see it as the promise of Jesus to quench people’s spiritual thirst through the Holy Spirit. As a basis for supporting this interpretation, I present the following five points. (1) The thirsty language of John 6:35c is closely related to the living water in John 4:10-14 and 7:37-39. (2) Isaiah 55:1-2 provides a better background for John 6:35 than Sirach 24:21 or Proverbs 9:5, and the water in Isaiah 55:1 refers to the Holy Spirit. (3) The words of Jesus in John 6:35c (“he who believes in me will never be thirsty”) presupposes that Jesus will give water, and this water is given by Jesus. It not only fits well with Jesus’ giving the living water in John 4:10-14 and 7:37-39, but also coheres well with the theology of the Fourth Gospel (Jesus is introduced as the giver of the Holy Spirit in 15:26, 16:7, and 20:22). (4) References to the Holy Spirit appear in the near context of John 6:35(6:63). (5) The thirsty language of John 6:35c can be seen as a symbolic expression because it does not make sense literally and this partially supports that this thirsty language refers to the Holy Spirit. These five points make a convincing suggestion to read this thirsty language in connection with the living water in John 4:10-14 and 7:37-39, and lead the readers to interpret it as Jesus’ promise to those who believe in him to satisfy their spiritual thirst forever through the Holy Spirit whom he will send in the future. 본 논문은 요한복음 6:35c에 등장하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 마르지 아니하리라”라는 구절의 의미에 대한 연구이다. 이제까지 이 구절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제안되었는데, 필자는 이 표현이 요한 복음 4:10-14, 7:37-39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따라서 이 표현을 장차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주실 성령을 통한 영적 목마름 해소에 대한 예수님의 약속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제안하는 바이다. 이 해석을 뒷받침하는 근거로서 필자는 다음의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1) 요한복음 6:35c의 목마름 언어는 요한복음 4:10-14과 7:37-39에 등장하는 생수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2) 이사야 55:1-2이 집회서 24:21 혹은 잠언 9:5보다 요한복음 6:35에 대한 더 나은 배경을 제공하며, 이사야 55:1의 물은 성령을 가리킨다. (3) 요 한복음 6:35c의 예수님의 말씀(“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은 예수께서 물을 주심을 전제하며 이 물은 예수님에 의 해 주어짐으로, 요한복음 4:10-14과 7:37-39에서 예수께서 생수를 주 심과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성령을 주시는 분으로 소개된 요한복음의 신학과도 잘 어울린다(15:26; 16:7; 20:22). (4) “성령”에 대한 언급이 요한복음 6:35의 인접 문맥인 6:63에 등장한다. (5) 요한 복음 6:35c의 목마름 언어는 문자적으로 의미가 통하지 않음으로 상 징적 표현임을 알 수 있고, 이 사실은 부분적으로 이 목마름 언어가 성령을 가리킴을 지지한다. 이 다섯 가지 포인트는 요한복음 6:35c의 목마름 언어를 요한복음 4:10-14, 7:37-39에 등장하는 생수와 연결하 여 읽도록 설득력 있게 제안하며, 이 목마름 언어를 장차 믿는 자들 에게 주실 생수이신 성령을 통해 사람들의 영적 목마름을 영원토록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예수님의 약속으로 해석하도록 인도한다.

        • KCI등재

          마가복음 바알세불 논쟁의 크레이아(χρεία)에 관한 수사학적 연구

          조대훈(Dae Hun Cho) 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2015 신약연구 Vol.14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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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investigates a rhetorical argumentation in the controversy of Beelzeboul(Mk 3:20-35). For this aim, this article avoids traditional approaches but studies Jesus chreia in the light of ancient rhetoric. The writer shows the use of rhetorical technics by the scribes and Jesus. The accusation of opponents reflects OT and Jewish arguments, but Jesus refutation extends Christology through chreia, which emphasizes on his identity and salvation. In the Beelzeboul controversy, various ways of rhetorical technic are used, and Christological meaning is implied by a demonstrative chre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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