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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 제도에 있어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복음주의 신학적 고찰

        박선의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6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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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학자들은 21세기는 3F의 시대가 될 것이라 예측한다. 앞으로의 사회는 여성(Female)과 감성(Feeling)과 상상력(Fiction)이 중요시 되는 시대가 되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남성적인 특성보다 여성의 특성들로 앞으로의 시대를 이끌어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사회를 ‘핑크칼라 시대’라 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대적인 예측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종속적인 존재로 냉대를 받으며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살아온 여성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는 것 같다. 이러한 미래학자의 예측처럼 사회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여성들의 활동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세계적으로 여권운동(feminist movement)이 확산되어 일어났으며,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여권운동과 더불어 신학적으로 해방신학의 한 유형으로 여성신학이 뿌리를 내렸다. 여성신학은 성(性)이라는 인간의 본질적인 범주를 다루고 있으며, 이 성에 대한 사고의 전향은 새로운 역사관, 인간관, 문화관, 세계관을 발전시키고 있다. 여권주의 여성신학자들은 종래의 모든 학문 영역이 남성 중심적으로 이루어왔다는 전제 아래, 신학을 여성 중심에서 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1980년대 한국여신학자협회가 결성되도록 하였다. 여성신학의 첫 세대 안상님, 손승희, 이우정, 이화여자대학교를 중심으로 장상, 박순경, 정현경 등에 의해 활발히 여성신학 책들이 기술, 번역되어 오고 있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여권주의 여성신학자들은 가부장제가 남성의 사회적 지배와 여성들의 열등성과 예속성을 가르쳤으며, 성서가 2천 여년의 역사 속에서 교회 안에서 여성들에게 남성에게의 복종을 강조하고 성차별주위를 강화하며, 남성중심 주의를 정당화하고 그 지속을 보장하는 신념으로 작용하여 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가부장제가 남성과 여성의 갈등과 문제를 일으키는 궁극적인 근원이며, 이것을 전복시키는 것만이 여성이 해방되어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이라 주장한다. 여성해방주의자, 여권주의자들 및 여성신학자들의 주장과 이론이 사회적 문화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여 여성의 참정권, 교육권,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제들을 마련하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여성의 영향력이 더 증대될수록, 또한 남녀평등이 더 잘 이루어지는 사회로 발전해갈수록 여성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에 의문을 갖게 된다. 여성에 대해 중요시 하며, 새로운 인식이 확산되어지는 이 시대에 교회는 여성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여권주의적 여성신학자들의 주장처럼 가부장제의 전복을 위해 투쟁하여야 하는가? 성경적 여권주의자처럼 여성안수를 주장하여야 하는가? 이들의 관점과 신학은 여성을 중심으로, 그 존재의 존귀성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家庭)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단위 안에서 여성은 어떤 역할을 하여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자녀의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파는 엄마들, 해마다 증가하는 이혼율, 경제적인 어려움, 갈등과 불신 속에서 살아가는 이 시대 속에서 교회는 여성들에게 무엇을 전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땅에 여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제시와 여성으로서의 사명감을 갖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겨진다.

      • 폴 틸리히의 신학 사상

        김은정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8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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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틸리히 신학은 거대한 종합 즉, 실존론적 사고와 역사적 사고, 철학적, 종교학적 사고와 신학적 사고, 자연신학적 요소와 계시신학적 요소, 초월적 요소와 내재적 요소등이 교묘하고 치밀하게 결합되어 있고 조정신학적 특징 때문에 신(Neo)실재론적 형이상학, 실존주의적 신학 또는 역사주의 신학의 어느 한 학풍에 속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김균진, 「20세기 신학 사상?」(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2003), 319-320. 엄밀히 말하면 틸리히의 신학의 입장은 변증법적 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의 중간이다. 전자는 신과 세계의 분리를 주장하고 신의 초월성을 강조한다면, 후자는 신과 세계의 종합을 주장하고 신의 내재성을 강조한다. 틸리히는 양자의 충돌을 극복하는 중재와 종합이라는 제 3의 길을 도모하였다. 목창균, 「현대신학논쟁」, 192. 1. 틸리히 신학의 긍정적 평가 먼저 틸리히가 20세기 신학에서 공헌한 점을 기술해 본다면 다음의 몇 가지로 축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 틸리히의 신학은 교회의 좁은 영역에 머물지 않고, 세속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기독교 진리의 의미와 타당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래서 틸리히는 자신의 신학을 가리켜 “대답하는 신학”, “변증신학”이라고 정의한다. 하나님의 진리가 교회와 온 세계에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김균진, 「20세기 신학 사상?」, 320. 2) 틸리히의 신학은 “영원한 진리”를 일방적으로 던지고자 하지 않는다. 그의 신학은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개념과 표상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도록 기독교의 진리를 기술하고자 한다.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신적 본성”(=신성)과 “인간적 본성”(=인성)이라는 개념의 틀로 설명하지 않고, “새 존재”의 개념으로 설명함으로써, 그는 그리스도의 존재를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기독교의 전통적 개념들을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또한 오늘의 세계에 대해 타당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석하고자 하는 것이다. Ibid., 320-321. 3) 틸리히의 신학은 기독교의 진리를 교회 전통의 범위를 넘어, 일반 종교사적 지평 속에서 파악한다. 그는 기독교가 종교사의 배경 속에서 등장하였음을 인정하기 때문에, 틸리히는 기독교에 충실하고자 하며, 진리의 중심적 나타남이 기독교에 있다고 생각지만, 타 종교들에 대한 기독교의 배타적 태도와 고립을 극복하고, 타 종교들과 기독교의 연관성을 추구하며 양자의 만남과 대화를 시도한다. Ibid., 321. 4) 현대의 문화가 세속화됨에 따라 기독교 신앙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세속의 문화에서 분리된 하나의 종교로 끝나서는 안되며, 오히려 기독교는 문화와 연결되어야 하고, 문화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틸리히는 그의 신학을 통해 현대의 문화를 신율적 문화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Ibid., 321. 5) 틸리히의 신학은 실존주의 철학은 그의 도구로 삼아 인간의 실존을 분석한다. 기독교 진리의 역사적 비평과 메시야적 지평을 그의 신학에 과감히 도입하여 인간실존의 문제, 역사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분석하고 이 문제에 대해 기독교의 대답을 제시한다. 그는 역사의 목적이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역사 안에서 지닌 부정의 기능, 정치적, 사회변혁적 기능을 용감하게 드러낸다. Ibid., 321-322. 2. 틸리히 신학의 비판적 평가 그러나, 틸리히 신학이 가진 타당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우리는 그의 신학이 가진 문제점 가운데 몇 가지를 아래와 같이 기술할 수 있다. 1) 먼저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방법은 기독교 메시지를 주어진 상황에 상관시켜 재해석하려는 시도에 누구보다도 많은 관심과 정열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조정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상관관계의 방법’을 도입하였고 대립된 모든 요소들의 종합을 시도하였다. 그런데 이 상관의 방법에 가장 신랄한 비판을 가한 것은 칼 바르트였다. 상관의 방법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상관 방법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닌 인간의 상황에 대한 질문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바르트는 상관의 방법을 인간 중심적인 자유주의 신학에로의 복귀로 간주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인간에게 의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둘째 계시가 인간의 실존적 질문에 대해 대답하지 않는다. 상관 방법은 인간의 상황으로부터 나온 질문의 대답을 계시에서 제시한다. 그러나 바르트는 대다수 질문에서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전자의 비판에 대해 틸리히는 상관의 방법이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을 인간에게 의존하게 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은 본질에서는 인간에게 의존될 수 없지만, 자신을 나타내는 계시에서는 불가피하게 인간이 응답하는 방식에 의존한다고 주장했다. 후자의 비판에 대해서는 기독교 신앙이 기초하고 있으며 인간의 실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계시 사건에서 인간의 실존적 질문에 대한 대답이 제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목창균, 「현대 신학 논쟁」, 204. 2) 틸리히 사상 중 논쟁이 되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성서를 상징으로 보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틸리히는 신과 인간을

      • 열린 예배를 통한 채플의 가능성과 전망 : 목원대학교를 중심으로

        호대선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3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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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의무적인 채플에 대해 학생들은 불만을 제기한다. 한번도 교회에 가본 적이 없고 또는 종교가 불교나 천주교인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기 위해 채플을 신청하게 된다. 조사 결과 10명중 7명의 학생이 이 경우에 해당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목원 대학교의 채플은 이 7명의 학생을 위한 채플 준비되어지지 않았고, 나머지 3명의 기독학생을 위한 예배만이 준비되어 있다. 이 논문에서는 전통적인 예배를 통해서 비기독학생들이 변화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효과적이고 영향력이 있는 방법으로의 채플을 제시하려고 하였다. 남서울대학교와 전주대학교의 채플 프로그램을 살펴보고 목원 대학교의 프로그램과 학생들의 반응을 조사해 본 결과 채플에 대한 이미지와 만족도가 남서울대학교와 전주대학교의 학생들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본 논문에서는 이 이유를 전통적인 예배를 드리는 목원 대학교와 열린 예배를 드리는 남서울대학교, 전주대학교 와의 차이라고 인식하였다. 분명 남서울대학교와 전주대학교의 무교, 불교, 천주교 학생들도 채플에 대한 이미지와 만족도, 예배의 내용을 전부 만족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10%에서 많게는 20%의 차이의 만족도는 "채플이 누구를 대상자로 삼고 있는가?"에서 찾을 수 있었다. 기독학생들은 전통적인 예배이든 열린 예배이든 채플에 대해서 대체로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지만, 비 기독학생들은 열린 예배에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었다. 이 결과는 채플자체가 무조건적으로 학생들이 피하고 싶은 시간이 아니라 어떻게 다가가느냐에 따라서 채플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배 설문조사에서 알게 된 사실은 무교학생들과 천주교 학생들의 응답 수치는 거의 같게 나왔다. 반면에 불교학생들은 목원 대학교, 남서울대학교, 전주대학교에서 공통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특징이 나타났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방안으로 기독학생들을 위한 '부흥 채플'과 비 기독학생들을 위한'열린 채플'을 제시하여 대상에 맞는 프로그램을 제시하였다.'부흥 채플'과'열린 채플'은'열린 예배'를 바탕으로 예배디자인을 하였다.'열린 예배'가 구도자를 위한 · 구도자를 배려하는 예배로, 예배의 대상이 대학 채플의 학생들과 여러 부분에서 같다고 할 수 있다. 열린 예배가 구도자(seeker)를 위한 예배라면 '열린 채플'은 비기독학생들을 위한 예배로 그들의 기호와 눈높이에 맞는 메시지와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말하였다. 이 '열린 채플'을 통해 학생들이 지니고 있는 삶의 고민을 어루어 만져 주고, 해결의 열쇠를 제시해주어야 한다. '부흥 채플'은 기독학생들을 대상으로 디자인된 예배이다. 이러한 학생 신앙 공동체의 형성은 학교를 위한 기도와 열린 채플을 듣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 중보기도 할 수 있는 능동적인 채플임을 말하였다.

      • 존 웨슬리의 복음주의 신학에 대한 조직신학적 고찰

        길준덕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3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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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복음주의의 신학적 의미와 역사적 의미, 웨슬리 신학의 형성 배경과 과정, 웨슬리 신학을 신론, 기독론, 성령론, 성경론, 인간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으로 나누어 조직신학적(기독교의 진리를 전체적으로, 체계적으로 서술하는 것을 의미)으로 살펴보았다. 웨슬리는 18세기 암울했던 영국을 하나님의 복음의 빛으로 변화시킨 설교자였고 신학자였다. 웨슬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이신칭의 교리와 ‘칭의와 동시에 중생하여, 이로부터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에 의하여 성화된다’는 성화론의 교리를 그의 신학 전체에서 놓쳐본 적이 없다. 웨슬리의 신학 전반에는 복음주의의 특징이 전재가 되어 있고 잘 나타나 있다. 웨슬리의 신학 어느 부분도 이신칭의 교리와 성화론의 교리가 전제되거나 연결되지 않은 부분이 없다. 이러한 그의 신학은 종교개혁전통의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성경"(sola Scriptura)과 맥을 같이한다. 웨슬리는 설교만 하고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의 가르침은 하나의 운동이 되었다. 영국국교회가 채워주지 못한 영적 필요들을 채워주었고, 부패한 성직자들을 일깨웠고, 성도들의 방탕한 생활과 허울뿐인 신앙에 변화를 주었으며 가난한 노동자들, 굶주린 이웃들을 돕는 사회봉사의 모습들도 보였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일들이 하나님이 주신 믿음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믿음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웨슬리는 하나님을 떠나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가는 불쌍한 영혼들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칭의 받고 성화되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섬기고 기도했다. 그로 인해서 구원받은 자가 날마다 더해져 갔고, 그래서 이 사람들이 모여서 '이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으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성경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라고 말씀하신 일들을 믿음으로 행하자'고 가르쳤던 웨슬리의 가르침을 따라 움직였더니 그 결과로 나라가 변화되고 민족이 바뀌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던 것이다. 한국 감리교회는 웨슬리의 복음주의 신학전통을 이어받은 교단이다. 그러나 1885년 미 북감리교의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1858-1902)를 통해 들어온 감리교 신학은 여러 가지 원인들로 인해 웨슬리의 복음주의 신학전통을 상실하게 되었고, 특히 웨슬리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의 신학 전체의 기초가 되고 있는 이신칭의 교리와 성화론의 교리마저 상실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이제는 오늘날 한국 감리교회의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나서 웨슬리의 신학 전체를 뒷받침하고 있는 이신칭의 교리와 성화론의 교리, 그리고 성경에 대한 그의 신뢰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로 인해 성립되어진 그의 신학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18세기 영국에서 죄 가운데 살고 있던 많은 영혼들과 부패한 영국 사회 전체를 복음으로 치유했던 것처럼 이제 한국 감리교회도 우리 민족 한 영혼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물론이요 이 나라 전체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 : 대각성 운동과 부흥론

        박지훈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9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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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으로 인해 일어나는 특별한 사건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일어나는 것으로 인간의 의지나 노력 등의 인위적인 힘으로 일어날 수 없음을 살펴보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부어주심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부흥이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에 달려있다고 하더라도 가만히 앉아서 기다린다고 임하는 것은 아니다. 에드워즈는 자신이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은 ‘대단한 열심’을 가지고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에드워즈의 가장 큰 공헌 중에 하나로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대각성 운동이 일어나고 그 사건을 성경적으로 정립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바로 성령론 내지는 부흥론의 정립이다. 이때 적립한 부흥론이 19세기, 20세기에 일어난 부흥의 모델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거짓된 성령의 역사와 참된 성령의 역사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신학적으로 자라나는 것이다. 신학자, 목회자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자라가야 한다. 한국교회뿐 아니라 많은 나라와 교회들이 시대의 흐름을 쫓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것이 전적으로 잘못이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따르지 말아야 할 것들도 따라가고 있음이 문제이다. 숫적 성장과 물질만능주의는 교회라고 예외가 아니다. 모든 교회가 좋은 프로그램을 찾기에 급급하고, 눈에 보이는 현상들에 집중하면서 신학은 점차 도외시 되고 있다. 성경 구절은 알고 있지만 우리 삶의 모습을 성경을 모르고 있는 듯이 살고 있다. 교회의 직분자들이 교회와 일상의 삶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면 그들의 자녀도 이중적으로 기르고 있다. 에드워즈는 구원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시키기를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일에 열중하십시오. 여러분이 그처럼 열중하게 되면 그 일에 모든 다른 것을 복종시키게 될 것입니다. 그 정도로 열심을 내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여러분의 결심 앞에 그 어느 것도 서지 못하게 하십시오. 어떤 이유에서든지 여러분이 늘상 편리하고 바람직한 일로 여겨왔던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그 큰 일을 가로막는 것이라면, 주저 말고 밀쳐 놓으십시오. 그것이 그 일에 방해가 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면 아주 관계를 끊어 버리십시오.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어떤 것을 얻으리라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 어느 것도 구원을 추구하는 일과 경쟁을 벌이지 못하게 하시고, 오히려 구원의 문제 앞에 모든 것을 부복하게 만드십시오. 육신의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십시오. 아끼지 말고 십자가에 못 박으십시오.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도 마십시오. 우리는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초대교회처럼, 18세기 조나단 에드워즈처럼 기독교의 근본인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에드워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신학의 지식에서 자라나는 일에 진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가장 먼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자라가야 하는데 그 원천은 절대적으로 성경이다. 우리에게 기독교 신학을 가르려 주는 것은 오로지 구약과 신약을 다 포함한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그의 설교 “그리스도인의 지식”은 그리스도인의 지식을 얻기 위해 몇 가지 방침을 가르쳐 주고 있다. 첫째, 지식의 원천은 성경이다. 열심을 내어서 성경을 읽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신학의 지식을 얻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둘째, 단순한 호기심으로 성경을 읽어서는 안된다. 의미를 파악하지 않고 그저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성경을 읽는 방법 중 아주 나쁜 방식이다. 평생을 읽는 것인데 잘못된 습관으로 일관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는 그 읽는 바를 관찰해야 한다. 내용이 어떻게 된 것인지, 교훈은 무엇인지, 이 구절과 저 구절을 비교해보아야 한다. 셋째, 경건 서적을 보조로 읽어라. 성경을 아는 지식을 자라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 다른 책들을 확보하고 부지런히 사용해야 한다. 경건 서적 중에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가지게 하는데 크게 진보케 하여 주는 놀라운 책들이 많이 있다. 그런 책들은 여가 시간에 매우 유익하고 즐거운 유희를 제공하기도 한다. 넷째, 지식을 서로 전하라.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이런 목적을 위해 사용한다면 서로 간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촉진시켜 줄 것이다. 자신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무지함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다른 이에게 배울 마음을 가진다면, 또한 지식을 갖고 있는 자는 교만함이나 오만한 자세없이 지식을 전달해준다면 서로간에 세워 주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는 데 큰 자극을 줄 것이다. 다섯째, 지식을 교만의 도구로 쓰지 말아야 한다. 갈채를 받거나 다른 이들과의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목적으로 지식의 증가를 원해서는 안된다. 오직 자신과 다른 이의 영혼의 유익만을 위하고, 실제적인 삶의 위해 지식을 추구해야 한다. 자신들의 지식을 자랑하는 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오류에 빠져서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여섯째, 지식을 얻기 위해 기도해야

      • 신명기사가의 왕국 이해

        오수철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3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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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명기 역사서 전체를 살펴보면, 우리는 야웨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행동하신 일정한 규칙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이스라엘민의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하나님의 진노와 심판-그들의 부르짖음과 회개-하나님의 구원 및 축복의 도식이다. 이러한 도식에 근거해서 살펴본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의 멸망을 경헝하지 않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야웨에 대한 지속적인 그들의 불순종과 율법에 대한 불순종에서도 그들을 회복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명기 역사서를 편집한 역사가들 중 DtrN은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의 멸망과 회복의주된 원인을 다시 찾아야만 했다. 즉 도식에 근거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과 멸망의 그 원인이 "불순종"이라면 그럼 가장 큰 불순종은 무엇이었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DtrN은 이러한 역사관을 넘어선 또 다른 원인을 찾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왕국 자체에 대한 부정이었던 것이다. 야웨의 왕권에 도전한 범죄가 아니라면 어떻게 야웨에 의해 세워진 왕국이 완전이 멸망할 수 있겠는가? 야웨의 통치를 거절하고 인간왕을 요구한 이스라엘의 태도는 더 이상 야웨의 백성이 아니었다. DtrN은 이스라엘의 멸망 원인을 인간 왕이 다스리는 왕국의 출현에 있다고 보고 야웨의 통치 시대로 돌아가는 것만이 이스라엘이 사는 길이라는 점을 피력하기 위하여 신명기 사가의 친 왕권적 전승들을 편집하여 반 왕권적 문서로 기록하였다. 지금까지 이 논문은 바로 이러한 점을 검증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왕국에 대한 신명기사가의 상반된 두 입장을 살펴보면서 신명기사가의 DtrN은 반 왕권적 경향과 야웨 정치의 회복이라는 두 가지 기둥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인한 백성들의 야웨 신앙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했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필자는 본 논문을 기술하면서 왜 신명기사가의 왕국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서로 다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견해가 어떠하든 시대에 따라 이스라엘의 왕국시대와 왕국의 멸망이라는 큰 위기 속에서 야웨 신앙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신학자들의 새로운 역사이해의 결과로 돌리고 싶다. 즉, 왕국이 존재하고 있을 때는 어찌했든 왕국자체를 부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왕의 부덕한 모습을 지적하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왕국은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는 고백을 했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왕국이 존재하고 있는 한 당연한 고백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반역으로 인한 죽음을 모면키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국이 멸망한 때는 상황이 다르다. 야웨 신앙의 붕괴와 민족의 멸망에 직면한 DtrN의 신학은 오직 야웨의 영원한 통치만이 이스라엘의 미래라는 신념하에 친왕권적 전승들을 편집 수정하여반 왕권적 전승으로 재해석했지만 이렇게 해서 우리에게 남겨진 신앙의 전승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까지 신앙의 표본이 될 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어떠한 시련과 환란에 처한다고 해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담대히 설 수 있도록 하는 역활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DtrN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왕국에 대한 긍정적인 본문을 수정하는 작업을 통해 왕국 자체를 부정하고 이스라엘 멸망 원인을 찾으려한 것이다. 즉, 하나님이 원치 않는 왕국을 이스라엘의 출발로 보고, 그 결과 이스라엘이 멸망했으며, 이제라도 야웨의 율법을 지킴으로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서 꺼져가는 야웨 신앙을 회복하고 이스라엘의 미래를 희망의 나라로 열어놓은 것이 아닐까?

      • 한국기독교의 단군신화 이해연구

        이상국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3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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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독교 선교 초기부터 현재까지 '단군신화'는 끊임없는 기독교의 논쟁의 대상이다. 선교초기에는'하□님' 표현을 기독교가 받아들이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할 정도로 기독교 선교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단군신화'는 1960년대 토착화 논쟁을 거치면서 선교사들 뿐 아니라, 한국의 신학자와 교회들과 연관을 맺어왔다. 선교사들의 선교적 측면과 토착화를 위한 신학적 측면이 커다란 한 축이 된다면 이 축은 '단군신화'를 기독교와 연관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반면, 교회적으로 단군전(상) 건립과 관계 된 사건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한국의 기독교와 단군종교간의 갈등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있다. 단군종교와의 갈등은'단군신화'를'거짓'이나'우상숭배','저속한 무당' 정도로 취급하면서 배타적으로 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분명한 사실은 한국의 기독교 초기 역사는 '단군신화'가 있었기에 선교에 큰 힘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이며, 선교사들은 여타의 종교들과는 달리 단군신화를 친숙하게 이해할 정도로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기독교인들은 대다수 '단군신화'에 대한 이해를 배타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서로 다른 반응으로 '단군신화'를 평가하지만, 여전히 '단군을 신격화'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초기 선교사들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다. 초기의 선교사들은 '단군신화'가 기독교 선교에 유익하다고 보았지만, 작금의 기독교는 '단군신화'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단체를 중심으로 행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기독교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기독교 선교의 부정적 결과를 미리 의식하여 극단적 행위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폭력적, 배타적 방식은 오히려 기독교 선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인지하는 바이다. '단군신화'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최대의 관심사는 '선교적 측면'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초기 선교사가 긍정적인 평가를 작금의 교회가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기준은 '선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교회가 초기 선교사들이 '단군신앙'이나 '단군신화'를 통하여 선교의 긍정적인 면들을 개척했듯, 작금의 한국기독교와 신학도 '단군신화'에 대한 기독교와의 긍정적 접근을 시도할 때이다. 결론적으로 '단군신화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정리하면서 기독교가 단군신화와 단군상을 대함에 있어서의 몇 가지의 방향을 갖게 되었다. 첫째, 일반사학의 객관적 학문의 도움을 받아야한다. '단군신화를 통해 들어나는 역사적 사실의 신화화'에 대한 연구를 보다 철저히하여 '비신화화'작업을 수행하는 일반학문의 도움을 받아야한다. 일반사학의 연구 중에서도 다분히 과학적이고 객관적 입장을 취하는 내용을 선별하여 기독교의 인식과 결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면에서는 KNCC의 입장이 온당하다고 사려 된다. 보수적 기독교 신학과 다수의 교단, 교인들을 동원한 집회를 통해 이루워지는 입장은 '단군신화'를 단지 '거짓, 진실'의 이분법적 나눔으로서 일제의 친일적 역사관과 같은 모양새를 지니는 것은 가장 바람직 하지 않은 태도이다. 극단적 근본주의 신학을 제외하고는 성서신학에서도 '설화적 요소'를 부인하지 않는다. 이미 신학적 사고가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인식화 되어지는 시대에 근본주의적 입장에서 '단군신화는 곧 지어낸 이야기이며 지어낸 이야기는 곧 거짓'이라는 식의 논리를 가지고 폭력적으로 물리적으로 대중 선동적으로 적용한다면 기독교 또한 똑같은 비판으로 공격을 당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단군신화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역사를 바르게 밝혀내려는 노력에 한국의 신학계는 공히 함께 노력해야하며, 교회 또한 극단적인 감정주의를 떠나서 학계의 연구와 성과를 기반으로 한 '단군신화'의 이해가 필요하다. 둘째, 이념적인 단군신화 이해에 대한 분명한 기독교의 입장이 정리되어야한다. 한국사회의 가장 큰 화두는'통일'이다. 홍익문화연합은 자신의 종교를 포교하기 위해, 북한에서는 자신들의 체제를 곤고히하고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단군신화를 굳이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억지로 짜맞춘 역사'로 왜곡하고 있다. 그렇지만 일반과 젊은이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그들의 명분이'통일'이라는 대중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반대하는 것은 '단군의 신격화'이지 '단군의 통일에 대한 기여'를 거부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런데'단군상훼손'과 연계되는 보수적 기독교단체들은 반통일세력으로 매도당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가 부당하다는 것을 기독교는 능동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기독교가 그 어떤 세력 보다도 한국의 민주화, 통일운동의 선두에 있었음을 밝히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셋째, 교회 중심적 대응보다는 학회 중심적, 신학교 중심적 논쟁들이 보다 활성화 되어야한다. 교회는 선교의 장에서 타 종교와 대치국면에 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게 되면 극단적인 감정주의가 발생하여, 단기적으로는 교회의 구성원을 결합하는데는 일조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교회의 선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넷째, 타종교와 평화 공존적 종교관을 가지고 만나야한다. 한국의 사회는 다종교사회이다. 또한 헌법에 보장 된 대로 종교의 자유가 있다. 이는 어떤 특정 종교를 국교로 삼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독교는 한국의 국교가 아닌 이상, 한국사회의 종교적 상이점을 인정하는 선에서 선교의 전략과 방법을 모색해야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폭력적 방법으로 성공한 선교 사례는 없다. 폭력은 마침내 기독교의 부정적인 요인으로 드러나 기독교 자체를 병들게 만드는 요인이다.

      • 현대 목회를 위한 통전적 영성 연구

        김경훈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4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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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인들의 삶이 무의미하고 방황하는 근본원인은 그들의 영적인 갈등이 해결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질문명, 과학, 정보, 지식의 발달도 그들의 영적 갈증을 채워줄 수는 없다. 그 근본 원인은 '하나님의 상실'이다. 그러므로 현대목회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 중 하나는 그들의 영적, 정신적 갈등을 해결해줄 수 있는 '하나님 형상'(Imago Dei)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대목회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 형상(Imago Dei)'의 회복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영적인 갈증을 해갈할 수 있다는 것은 곧 하나님과의 만남의 접촉점이 영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곧 영성(spirituality)에 대한 이해로의 출발이다. 영성은 자기초월의 능력을 지닌 인간이 하나님, 인간, 자연과의 제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영적 심성으로서 인간의 삶의 전체 지향성과 관계된 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단지 선한 인간성의 함양, 즉 자아실현이 아니라 하나님을 체험하는 초월성인 것이다. 영성은 이웃과 피조물(자연)과의 관계 속에 이해되는 수평적 영성과 하나님과의 관계의 지향성을 가진 수직적 영성으로 조화이다. 즉 우리 속에 이루어지는 어떤 성품이라기보다는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과 교제하는 삶의 과정 전반이요,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고쳐 나아가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이뤄나가는 과정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들 속에 들어가 삶의 과정에 참여하는 관계성인 것이다. 영성이란 인간 속에 하나님을 섬기는 생명의 특질로서, 참 영성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가는 삶이다. 구체적이면서 공동체 속에서 실천되어지는 삶 전반을 가리켜 말한다. 즉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해가는 인간의 정신일체를 포괄한 삶 전체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성경적으로 나타나는 영성에 대한 개념으로 구약에서는 영, 육의 합일체로서 인간이 하나님과 갖는 교제(Communion), 즉 관계성 속에서 이해되고 있으며,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한 체험 속에서 일그러진 하나님의 형상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생명의 본질로서 오신 '새창조의 영성'(spirituality of new creation)이라 말할 수 있다. 성경 속에 나타난 영성 역시 하나님과의 관계체험 속에 이뤄지는 삶의 전반적인 변화의 과정임을 제시해 주고 있다. 초대교회의 영성은 관조적이면서도 동적인 영성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의 이원론적 사상의 배경은 기독교영성의 흐름에 영향을 주어, 결국 수도원 운동으로 대표되는 내세 지향적이고 상상적, 정적인 영성으로 발전하게 된다. 수도원 운동은 전통적인 영성신학의 자료와 영성생활의 진수를 영성가들과 수도공동체를 통해 기독교에 제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중세는 영성이 다양화되고 영성이론이 조직적인 단계로 발전하면서 교리이해와 신학적 기초를 닦아놓는 계기가 되었다. 수도원운동에 이어 새로운 영적 각성 운동이 종교개혁을 통하여 이룩되었다. 종교 개혁기의 영성은 말씀중심의 영성으로 대표되며 기존의 영성적 흐름을 새롭게 바뀌어 놓았다. 그러나 근대이후 중세의 영적인 관점이 점차로 정적이고 상상적인 것에서 동적이고 실천적인 것으로, 초자연적인 성향에서 자연적인 것으로, 신 중심에 서 인간중심으로 교체되면서 교회와 세속, 종교와 과학, 정신적 가치와 물질적 가치 간에 팽팽한 긴장과 대립의 관계가 조성되었으며 이것들 간의 조화와 재해석의 문제에 대한 각성으로 영성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게 되었다. 즉 현대의 다양성속에서 인간의 영성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로부터 그 훈련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인 요구와 갱신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러한 다양화된 사회 속에서 목회적 영성의 필요성은 더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목회는 하나님의 살을 실현하기 위한 봉사라고 볼 수 있다. 영성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본질을 삶의 현장에 실현시키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목회와 영성은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이해되어지는 '봉사와 사귐'으 로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여기에 영성과 목회의 접촉점이 있다. 왜냐 하면 사람의 영이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삶을 이 세상에서 실현하는 교역(목회)에 참여하려면 반드시 영성훈련을 통하여 영성의 깊이에 서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목회적 관점에서 본 영성의 특수성으로 영성이란 '신비적 합일'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또한 자아실현성을 가진다. 그러나 합일로써 자의식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인격화(人格化)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의 특성으로 우주자연 회복으로의 영성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주적 그리스도가 되시며 만물을 회복시키시는 분이시다. 이러한 특수성은 하나님, 이웃, 자연과의 관계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 접촉점을 제공한다. 목회적 영성의 필요성은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목회란 하나님, 인간, 자연과의 관계 성숙을 이끄는 사역이다. 그렇다면 중재자로서의 영성개발은 필수적이자 절대적이다. 한국교회가 물량화, 외형화, 집단화되면서 보다 내적이고 영적인 관계 회복 측면에서 영적인 개혁의 필요성으로 영성은 현대 목회의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였다. 이에 대한 해결과제로서 현대적 목회에서 지향하여야 할 기독교 영성과 영성개발에 대하여 몇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본다. 첫째, 인간의 영성이 지니는 특수성은 현대 목회가 영성적 목회가 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즉 하나님과의 신비적 합일, 자아 실현성, 영성의 우주성은 하나님의 형상 회복으로서의 인간의 수직적 관계 회복의 요구와 공동체를 통한 대인적, 대물적(對物的) 관계 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 목회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영혼의 요구인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회복을 지향하는 '영성적 목회' (Spiritual Ministry)가 되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한국 교회의 외향적, 물량적, 말씀 중심적, 권위적 목회에서 인간의 전인적 차원의 관계성과 내적, 영적인 목회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둘째, 영성은 훈련에 의해 생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영성생활에 대한 지속적인 개발과 양육과정을 필요로 한다. 현대교회에서 영성훈련에 관한 방법이 다각적으로 제시되고 훈련되고 있다. 반면 신학적 정립이나 구체적인 영성 훈련방법에 관한 연구가 미비한 실정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영성목회'를 위한 신학적 기초로서 영성신학의 정립과 실천적인 영성훈련법이 계속적으로 연구 되어져야 한다고 본다. 셋째, 영성훈련의 방법으로 목회의 장에서 특히 교회의 공동체 영성에 힘써야 할 것이다. 한국인의 심성 상 개인적, 내면적 성향에 비교하여 볼 때, 공동체를 통한 영성의 개발은 교회 공동체의식의 회복과 관계성을 증진시킬 수 있다. 존 메쿼리는 공동체로서의 영성개발의 현장으로서 교회에 의미를 부여한다. 교회는 성령의 건축하는 사역이 가장 강력하게 발현되는 성장점(growing point)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참된 영성이 모든 것을 헤치고 나와서 참으로 영적인 인간성의 새로운 성품들을 내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성령의 공동체로서 완전한 인간성의 발달을 위한 환경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넷째, 현대적 영성목회는 인간의 영에 중심을 둔 전인성(全人性)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치유목회와 목회 상담측면에서 살펴본 전인교역모델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인간의 영성을 중심으로 한 영성목회는 앞으로 더욱 영성신학과 심리학 등과의 폭넓은 대화를 통하여 그 기반을 확장시켜 나가도록 하여야 하겠다. '전인성'에 중심을 둔 인간의 '영'에 대한 이해로서의 영성목회는 신적, 사회적, 우주적인 새로운 관계성을 모색하는 인간관과 세계관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본다.

      • 폴 틸리히의 신론에 관한 연구

        양승민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8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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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틸리히의 신론을 공정하게 이해하고, 평가하는데 주된 목적 이 있다. 이에 본 저자는 폴 틸리히의 「조직신학」Ⅰ,Ⅱ(유장환 역)을 중 심으로 연구하도록 하며, 필요에 따라 다른 저서와 논문도 참고하였다. 본 논문은 틸리히의 신관을 알아보기에 앞서 Ⅱ장에서는 틸리히의 생 애를 살펴보겠다. 그의 생애와 사상의 형성과정을 살펴봄으로써 그의 상 관방법 이해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Ⅲ장에서는 신론 이해를 위해서 필요 로 하는 그의 상관방법을 고찰하도록 하겠다. 틸리히의 신학방법은 상관 방법이라 말 할 수 있다. 그는 철학과 신학, 종교와 문화 가운데 하나만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양편을 조정하고 중재한다. 참 신학은 “중재의 신 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방법은 인간의 실존적 상황 속에 내포되어 있는 “문제들” 내지 “질문들”을 찾아 내고, 기독교의 영원한 메시지에서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제시하는 방법을 말한다. 그런데 질문과 대답은 상관관계 속에 있다. 여기서 상관 관계란 “의존성과 독립성의 통일성”을 말한다. 다시 말해 질문과 대답은 분명히 서로 다르다. 그러므로 대답에서 질문을, 질문에서 대답을 이끌어 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양자는 상대방에 대해 독립적이다. 이와 동시에 질문과 대답은 서로 의존하며 상관관계 속에 있다. 인간의 유한한 존재와 그것의 근거가 되는 하나님의 존재 자체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에, 인간이 그의 유한한 존재로부터 제기하는 “질문”은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주어지는 “대답”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6) 이와 같이 틸리히는 상관의 방법, 즉 실존적 질문과 신학적 대답의 상호 의존의 관계를 통해 서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말한다. 이같이 신학의 과제를 상황에 대해 대 답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틸리히의 신학을 상황신학(situation theology)이라고 부른다. 틸리히는 이와같은 상관관계의 방법에 따라 그 의 신론을 전개한다. 이에 본 연구자는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방법을 연구 하고자 한다. Ⅳ장에서는 ‘하나님’이란 말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그가 시도한 종교 현상학적 신 이해와 그의 기본적 신 관념인 ‘존재자체로서의 하나님 이해를 고찰하고 틸리히의 신론과 그에 대한 비판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끝으로 Ⅴ장 결론 부분에서는 연구 내용을 요약하고 틸리히의 신론 이 지니는 의의를 살펴보면서 연구자의 생각을 정리함으로써 본 논문을 마치고자 한다.

      •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에 대한 비교 연구

        장해성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9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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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의 예언자는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거나 점치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철저히 하나님의 대변자로서, 사사로서 이스라엘의 왕을 포함한 모든 대중에게 야웨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다. 그러나 그들의 선포에는 개성이나 인격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스스로 부르신 예언자들의 성품, 경험, 개성, 교육, 지성, 사상, 신학 등 그들의 전인격을 통하여 그의 메시지를 전하신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전통 신앙 전승의 계승자며, 신앙 전승을 발전시킨 사람인 것이다. 예언자들은 기존의 계약 사상 특히 시내산에서 야웨 하나님과 맺은 모세 계약 신학에 충실하였다. 순종과 신실한 계약 이행에는 축복을, 불순종과 계약 위반에는 심판을 주시는 야웨 하나님의 사자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측면만을 강조하는 다윗 계약 신학의 맹목적 추종자들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끝없는 은총에 매달려 안일한 생활에 온 몸을 담그고 있었다. 포로기 이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옛날 야웨 하나님이 선조를 통해 보여주셨던 놀라운 은총과 구원의 역사를 잊어버려갔다. 단지 그들은 그 구원 신학의 껍데기만을 가지고 안일한 생활에 안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 예언자의 심판은 모세 계약에 근거하여 선포된다. 그러나 거짓 예언자는 반대의 양상을 띠고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 예언자를 식별하는 기준은 단편적인 것만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동일한 야웨 하나님의 이름으로, 동일한 형식을 취하여 예언되는 거짓 예언은 그 표현의 근간이 되는 신학의 차이를 통해, 계약 전승 아래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미가야와 아모스, 예레미야 등 참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예언자였다. 이들은 자신이 가고 싶었던 길이 아니라 반드시 가야만 했던 길을 간 예언자였다. 그리고 이들은 거시적인 안목에서 민족적인 한계를 넘어서서 하나님의 세계사적인 구원사를 보았던 예언자들이었다. 이들의 삶은 정치와 종교적 기득권, 심지어는 국가의 이익보다 야웨 하나님의 뜻이 우선적이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우선될 때, 이 땅의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이며, 정확한 역사 해석이 가능함을 참 예언자들은 보여주었다. 하나님의 뜻과는 부합되지 않는 목회자들의 모습이 오늘 한국교회에는 얼마나 많은가? 교회의 성장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온갖 부정과 비리를 감수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 부귀와 안정을 위해서 그릇된 약속과 축복을 선포하는 강단의 현실은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 간의 대결에서 나타나는 상황과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살펴 본 참 예언자들의 모습은 오늘의 목회자에게도 야웨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고 체험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함을 요청하고 있다. 거룩한 그 분과의 만남을 통하지 않고는 세상의 부정과 거짓에 대하여 외칠 수도 없으며,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없이는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을 외치는데 있어서 온갖 협박과 위협을 감당할 수도 없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의 목회자에게 요구되는 신학은 전승에 대한 평면적인 이해가 아니라 시대와 상황 안에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있는 입체적인 통찰이 요구된다. 올바른 신학적 이해가 뒷받침 되지 않는 신앙은 그릇된 신앙의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것이다. 경전 가운데 정립되어 있는 전통적 신학에 굳게 뿌리 내리고 역사적 통찰력을 지닐 때 비로소 참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서 헐벗고 굶주리며 고통 받는 자리에서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선포하며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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