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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환 범한철학회 2002 汎韓哲學 Vol.27 No.-
Komparativ - philosophische Begruendung der Umweltethik 문】이 논문은 영지주의 이후로 제기된 인간과 자연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극복하고자 한다. 오늘날 환경윤리학자 들은 데카르트 철학에서 연유한 정신활동과 연장(延長)된 자연의 이분(二分)을 생태적 위기의 이념적 배경으로 지적한다. 불교의 종교철학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개념적 구분자체를 근원적 무지로 본다.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가는 자연스런 삶은 인간으로 하여금 정토(淨土)에 이르게 한다. 우리자신이 자연의 일부로서 타인과 자연을 속일 수 있는 것은 단지 자신의 본성을 속일 때에만 가능하다. 모든 존재자는 인간이 다 헤아릴 수 없는 미묘한 상관관계에서만 생성되고 지속하고 소멸되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지내는 방법으로는 자연의 기(氣)를 따르는 길이 아세아 권에서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인간이 모든 체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이해의 한계를 넘게 된다는 지적이 있다. 키에르케고아에 의하면 인간은 스스로 평정과 평안에 이를 수 없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선택은 자기독립이 아니라 불안의 표현이다. 그는 인간의 윤리성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기독립적 윤리의 가능성을 비판했다. 키에르케고아에 의하면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타나베의 자기부정이나 자기확신에 근거한 진보신앙이 아니라 신과의 실존적 관계에서만 가능하다.
황종환 한국국민윤리학회 2000 윤리연구 Vol.45 No.1
인류는 자연이 그 자체의 자정능력을 상실하는 생태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새로운 기술적 대책을 세우지만 생태계의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하다. 이 연구는 생태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인간의 자연에 대한 의식전환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생태체계의 파괴는 특히 지구상의 종의 멸종으로 현실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생태적 과학주의'나 '윤리적 인간중심주의' 등은 생태체계에 대한 부분적 모색일 수밖에 없다. 환경윤리학자들은 생태적 위기의 이념적 배경으로 지적되어 온 인간과 자연의 이분법적 의식구조의 연원을 데카르트에게서 찾는다. 그러나 요나스(H. Jonas)는 인간이 신비적 직관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영지주의에서 이분법적 사유방식이 출발되었다고 한다. 이런 의식구조는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삶의 고통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하는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낙관적 신뢰가 있다. 이런 낙관적 의식은 근대 이후에는 진보신앙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자연사상으로 이해되고 있는 풍수사상에 의하면 인간은 자연의 지력을 따라 살아가야 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인간과 자연의 근원적 결합은 캇시러(E. Cassirer)의 설명에 의하면 인간의 문화에서 종교형식은 논리적 분석 이전에 정감적 통일이라고 한다. 이런 문화철학에 의하면 한국인이 자연의 형세에 따라 살려고 했던 생활양식과 자연관을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의 교토학파에 속하는 니쉬타니(K. Nishitani)에 의하면 근대 이후 데카르트식의 의식에 매여 있는 한 인간은 참된 실제인 무에 도달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런 입장에 서게 되면 인간과 자연을 구별하는 분별은 근원적 무지에 연원하는 것이다. 화란의 기독교철학자 도이에베르트(H. Dooyeweerd)에 의하면 인간의 의식과 사유는 종교적 배경을 지닌다. 인간이 자신의 사유의 자율성에 대한 신뢰를 갖는 한 올바른 사유를 할 수 없게 된다. 키에르케고아(S. Kierkegaard)의 강화집 '들의 백합 공중의 새'에 따르면 백합과 새는 자신들이 하느님 앞에서 새와 백합인 것으로 만족하며 백합의 자태를 드러내며 새의 노래를 부르며 살아가게 된다. 이들에서 비교를 통한 우열의 갈등이 있을 수 없다. 소위 우생학적 이상향주의와는 전혀 다른 입장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미묘한 상호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인간이 자연에 대해 심은 것은 거둔다는 점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도 생태적 정의를 생각할 수 있으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지신이 자신과 관계하는 관계이며 키에르케고아에게는 하느님 앞에 설 때 이웃과 자연과 관계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