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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논문 : 노서윤선거(魯西尹宣擧)의 무실사상(務實思想)

        황의동 ( Eui Dong Hwang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08 儒學硏究 Vol.18 No.-

        魯西尹宣擧(1610~1669)는‘湖西5賢’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17세기의 대표적인 性理學者요 禮學者다. 그는 牛溪成渾의 외손자이며 明齋尹拯의 부친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학문적 연원은 家學으로 멀리 趙光祖, 成守琛의 道學과 연계되고 외조부 成渾, 부친 尹煌으로부터 배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金長生, 金集의 문인이며 宋時烈, 宋浚吉, 李惟泰등 율곡학파와 친밀한 교유를 하였고, 남인계열의 權媤, 尹虧와도 친밀한 관계였다. 尹宣擧는 성리학과 예학, 역학에 밝았는데, 성리의 이론적 탐구보다는 도학적 실천을 중시하였다. 그에 관한 연구는 매우 미흡한 편인데, 본고는 그의 務實사상을 탐구하는데 목적이 있다. 務實이란‘實의 추구’를 의미하는데, 麗末鮮初先儒들에 의해 간헐적으로 사용되어 왔으나, 栗谷과 牛溪에 의해 深化되었다. 尹宣擧의 務實학풍은 외조부 成渾의 家學的영향과 함께 栗谷의 영향을 함께 받았다고 할 수 있다. 尹宣擧는 17세기 조선조의 無實현상을 비판하고 개인과 가정 그리고 사회와 국가가 모두 實을 지녀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먼저 實心의 확립을 주장한다. 이는 인간 주체의 성실성확보를 말하는데 實心은 만사의 근본이라고 보았다. 또 尹宣擧는 實德의 함양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진실한 인격의 함양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그는 謙讓, 謹嚴, 操存, 省察, 收斂, 謹飭등 敬의 생활화를 제시하였다. 아울러 自守, 守約의 小學的律身을 강조하였고, 실천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禮學이 중시되었다. 尹宣擧의 務實사상은 實心, 實德을 통해 實功의 추구로 나타났다. 實功이란 진실한 노력이라는 실천적 의미가 있고, 또 하나는 진실한 功效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는 實心이 實德으로, 그리고 實功을 통해 實效로 나타나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그의 務實학풍은 尹宣擧의 특징적 학풍인 동시에 成渾, 趙憲, 尹煌, 安邦俊, 尹拯, 梁得中등 牛溪學派의 학풍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務實학풍은 性理學, 禮學, 實學, 陽明學과도 연계된다는 점에서 보다 정밀한 연구가 요청된다. Yunseongeo (1610~1669) is a representative Confucius scholar of Joseon Dynasty in 17th century. He is a grandson of Ugye, Seonghon and father of Myungje, Yunjeung as a central figure of Ugye school. His intellectual origin is traced back to Dohak school of Joseon Dynasty in 15th century and he learns from Kim Jangsaeng and Kim Jip who are members of Yulgok school. He is a speciality in Sung Confucianism and Yehak philosophy. Specifically, idea of Musil is his representative philosophical characteristic. Musil means “striving for the truth,” which focuses on veracity, practice and practicality. Later, his Musil idea influences school of Wang Yangming and practical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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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우(鳳宇) 권태훈(權泰勳)의 삶과 지향(志向), 그리고 그 의미

        황의동(Hwang Ui-dong)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2019 충청문화연구 Vol.22 No.-

        이 논문은 한말 20세기 민족사의 격랑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면서 민족주의의 기백과 혼을 유감없이 발휘한 봉우 권태훈의 삶과 그의 사상 편력을 검토한 것이다. 그는 1984년 널리 읽힌 소설 『단』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나철, 정만조, 곽종석, 박창화, 최남선, 한용운, 이광수, 홍명희와 교유하였고, 정치인 김영선, 김선태, 장이석, 조경한, 조완구, 조병옥, 윤치영, 조봉암 등과 교유했으며, 불교계의 경허, 만공, 한암, 용성, 용운 등 큰 스님들과도 교유하였다. 그는 한편 수도인이요 종교인이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가로, 독립운동가로, 한의사로, 사업가로, 협객으로, 시인으로, 명리학자로, 유학자로 살았다. 그는 체계적인 사상가는 아니지만, 신채호, 최남선, 정인보 등 국학자들의 전통을 이어받았고, 조선 단학의 전통을 계승한 20세기 선도인이자 사상가이며 민족 운동가였다. 그는 민족을 신앙처럼 아끼고 사랑했으며, 우리 민족의 우월성을 말과 글로써 현창하는데 평생을 바쳤다. 그 하나가 전통적인 조식법을 통한 연정수련으로 이를 실천하고 대중화하는데 평생 노력하였다. 봉우 권태훈은 합리적 지성의 관점에서 보면 많은 허점이 드러난다. 그보다는 탈지성적 시선에서 볼 때 봉우는 20세기 마지막 민족주의자요 고집스런 전통주의자로 특징될 것이다. 그의 기인에 가까운 삶과 운동의 발자취는 박물관의 유물처럼 새롭게 조명될 것이다. This thesis is to examine Bongwoo Kwon Tae-hoon"s life and his thought pilgrimage, who lived various lives and showed the spirit and soul of nationalism to his fullness in the 21st century of the latter era of the Joseon Dynasty. He was widely known by the popular novel Dan (丹, 1984). Born in a good environment, he made friends with Na Chul, Jung Man-jo, Kwak Jong-suk, Park Chang-hwa, Choi Nam-sun, Han Yong-woon, Lee Kwang-soo, and Hong Myong-hee, with politicians like Kim Young-sun, Kim Sun-tae, Jang Yi-suk, Cho Kyung-han, Cho Wan-koo, Cho Byung-ok, Yun Chi-young, Cho Bong-am, etc., and with Buddhist great monks like Gyeongheo, Hanam, Yongun, etc. He lived as a practician and religious man on the one hand, and as a politician, a fighter for independence, a oriental doctor, a businessman, a chivalrous fighter, a poet, and a Confucian scholar on the other hand. Although he was not a systematic thinker, he inherited a tradition of national scholars like Shin Chae-ho, Choi Nam-sun, Jeong In-bo, etc. and was the 20th century practician of Sundo (仙道), a thinker, and a national activist. He cherished and loved the nation as faith, and devoted his life to revealing the national superiority with words and writings. Furthermore, he devoted his life to practice and popularize the regulating method of breath. From the viewpoint of intelligence, there are a lot of weak points in Bongwoo Kwon Tae-hun. From the viewpoint of de-intelligence, Bongwoo will be characterized as the 20th century last naturalist and stubborn traditionalist. His eccentric life and movement footprints will be newly studied like relics of a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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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와 율곡의 철학정신

        황의동(Hwang Eui-Dong) 대한철학회 2008 哲學硏究 Vol.107 No.-

        퇴계와 율곡은 조선조 유학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고, 그들의 성리학은 한국유학사에서 많은 영향을 미쳤다. 퇴계와 율곡의 성리학적 연구는 이미 괄목할만하다. 양자의 학설은 비교적 대비된다. 그것은 무엇보다 양자의 철학적 입장과 관점이 다른데서 기인한다. 퇴계는 理氣互發을 말하고, 율곡은 氣發理乘을 말한다. 퇴계는 사단과 칠정을 상대적으로 비교하여 ‘七對四’의 감정론을 말하고, 율곡은 칠정 속에서 사단을 보아 ‘七包四’의 감정론을 말한다. 그리고 퇴계는 氣는 물론 理의 發을 말하고, 율곡은 理의 發을 극력 부정한다. 이 문제는 退. 票의 후학들로부터 오늘날 현대 학자들에 이르기 까지 많은 논란을 야기해 왔지만, 논자가 볼 때 아직도 끝나지 않은 논쟁이다. 문제는 퇴계가 말한 理發의 發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은 퇴계 자신의 몫이기도 하다. 또한 수양론에서는 퇴계가 敬을 중시하는데 대해 율곡은 誠을 통해 務實로 확충해간다. 논자는 이 논문을 통해 양자의 학설상의 차이가 주는 철학정신을 찾고자 했다. 퇴계의 철학적 입장은 가치와 윤리를 중시한데 있었다면, 율곡은 존재의 정합성 내지 理氣之妙의 涵義를 體認함에 있었다. 퇴계는 理氣互發論을 통해 사단과 칠정을 구별하고, 도덕적 특수감정과 일반적 감정의 가치적 구별에 주목하였다. 여기에서 퇴계는 사단의 근원처를 理에, 칠정의 근원처를 氣에 두어 理의 능동적 자발성을 강조하였다. 이에 대해 율곡은 氣發理乘을 인간과 자연 모두에 적용하고, 오직 發하는 것은 氣요 理는 그 스스로 發하지 아니하고 發하는 氣의 근본이 되고 주재가 된다 하였다. 따라서 율곡은 사단이나 칠정을 모두 氣發理乘의 구조로 이해하고, 칠정 가운데에서 사단을 이해하고자 했다. 퇴계가 理의 發을 주장하는 본래적 의도가 가치론적 시각에 있지만, 율곡이 理의 發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 것은 존재론적 시각에서 形而上者의 발용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퇴계는 主理的 입장에서 氣를 상대적으로 경시하고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理의 체인, 理의 실현이 그의 철학적 목표이자 이상이다. 퇴계에게 있어 理는 神이며 절대적 가치이며 善이다. 理는 절대시되고 만물의 창조적 活物로 간주된다. 여기에 理에 대한 자발성과 능동성이 인정된다. 도덕적 본성의 자발성을 인정할 때 인간의 도덕적 행위가 가능하다는 논리다. 따라서 氣는 상대적으로 부정적으로 인식된다. 이에 대해 율곡은 理氣之妙의 관점을 견지한다. 일체 존재란 理 없는 氣가 없고 氣 없는 理가 없다. 氣도 理만큼 중요한 존재적 의미를 갖는다. 율곡의 입장에서는 氣 없는 理는 불완전하고 부족하다. 퇴계에게서 경시된 氣의 가치와 역할이 인정되는데 특징이 있다. 퇴계는 天理로서의 理를 存養하기 위해 氣와의 협잡을 경계하지만, 율곡의 경우는 氣의 변화를 통해 理의 善을 지켜가고자 한다. 퇴계는 敬을 개인의 修己나 聖學의 요체로 중시하였다. 율곡도 敬을 말하고 있지만, 誠이 修己論의 중핵을 이룬다. 율곡은 宋學에 의해 誠이 實로 구체화 된 바탕위에서 務實로 발전시켰다. Toegye and Yulgok are Korea's representative philosophers for Confucianism. Their Sung Confucianism influenced history of Korean Confucianism. Philosophical doctrine of Toegye and Yulgok are compared. Toegye’s idea was developed in axiological and ethical viewpoint, Yulgok, in ontological viewpoints. Toegye was interested in reason, recognition and realization of reason. Meanwhile, Yulgok is interested in harmony and balance of reason and life force. While Toegye distinguished Sadan from Chiljung, Yulgok understood Sadan within Chiljung. Toegye emphasized the difference between reason and life force, regrading reason as higher value. Yulgok pursued harmony of vulues of reason and life force. Specifically, Toegye contended activeness of reason, which is "Igihobalsul", but Yulgok advocated "Ibakisungildosul" denying activeness of reason. In terms of Suyang theory, Toegye favors respect but Yulgok, sincerity, developing it to true subst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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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농영농조합 생산자 조합원 의식에 대한 분석적 연구

        황의동(Eui-Dong Hwang) 한국지역사회학회 2018 지역사회연구 Vol.26 No.3

        30년 역사를 가진 남농영농조합은 역사성이나 사업의 규모, 사업의 내용에 있어 다른 농업법인과 구별되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창립 시기가 90년대 초반으로 비교적 역사가 길다는 점, 농민회 주력 멤버들이 설립한 점, 직거래 중심의 새로운 판로를 개척한 점, 정부 지원사업을 적극 수용하여 자산 형성에 활용한 점, 친환경농업을 조직화하여 지역사회와의 결합력을 높인 점, 가공 분야를 도입한 경영전략을 구사한 점 등이 타 조직과 구별되는 차이점이다. 남농 생산자들과 남농이라는 조직체간에 설정된 관계는 몇 가지 점에서 다른 생산자 조직의 구성원들과는 차이를 보였는데, 이는 지난 세월 남농이 추진했던 사업 방향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본 연구에 적용한 132개 표본의 속성은 친환경인증을 받은 남농의 조합원이다. 연구자는 이들이 작성한 5개 항목, 22개 세부항목의 설문을 분석하면서 나타나는 특징들을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3가지 영역으로 구분하여 해석하였다. 경제적 측면에서 남농 조합원들은 소득 수준이나 친환경농업의 전문성과 관련해서는 유사한 타 집단에 비해 매우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고령화에 대한 대비, 농지의 승계와 관리, 생산물의 안전성 확보 및 세대간 역할 분담에 대한 사항이 과제로 부각되었다. 문화적으로 남농 조합원들은 상징성을 중시하며 친환경농업에 대한 자부심, 사회현상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실천력, 소비자와 교류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The Namnong Agricultural Cooperatives which has been in operation for 30 years has several factors that distinguish it from other agricultural cooperatives in its history, business scale, and business contents. The Namnong activities have specific characteristics, and this specificity can be understood through the direction pursued by Nannong. The subjects of this study are the 132 members of Namnong who have environment-friendly certificates. In analyzing the questionnaires of the 5 items and the 22 sub-items, I attempt to interprete-the characteristics of the result classified into three categories: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espectively. From the economic point of view, the Namnong farmers were found to be very vulnerable to income levels and expertise in environmentally friendly agriculture compared to similar groups. On the social side, issues such as preparation for aging, inheritance and management of farmland, securing of product safety, and division of roles among households have been highlighted. Culturally, the Namnong farmers have a high level of symbolism, high self-esteem for environmentally friendly farming, high understanding and practice of social phenomena, and high preference for consumers and exchan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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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곡철학에 있어서 ‘도덕’과 ‘경제’의 상함성(相涵性)

        황의동 ( Hwang Eui-dong ) 동양사회사상학회 2014 사회사상과 문화 Vol.29 No.-

        ‘도덕’과 ‘경제’는 유학의 지대한 관심사였다. 유학의 여러 경전들 속에서 도덕과 경제는 항상 병칭되어 왔다. 물론 유학이 궁극적으로는 경제보다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지만, 기본적으로 도덕과 경제는 상보적으로 인식되어 왔다. 율곡은 이러한 유학의 전통을 계승하여 도덕과 경제의 상함성에 주목하였다. 율곡의 義利相涵論은 그의 성리학에 기반 한다. 즉 율곡은 존재론적으로 理와 氣의 相涵을 전제한다. 理 없는 氣도 없고 기 없는 리도 없다. 리와 기는 그 홀로서는 불완전하다. 리는 기를 통해 온전해지고 기는 리를 통해 온전해진다. 이는 ‘理氣之妙’라는 율곡의 철학적 입장에서 연유한다. 이기지묘는 가치적으로 도덕과 경제의 상함과 조화를 의미한다. 또한 율곡은 전인적 인간관을 기본으로 하는데, 그의 이러한 심성정에 대한 이해는 도덕과 경제를 상보적으로 인식하는 가치관의 토대가 된다. 율곡은 인간을 지성, 덕성, 감성, 욕망을 아울러 지닌 전인적 인격체로 보았다. 즉 理氣가 조화된 인간이 율곡의 인간관이요 그의 이상이다. 율곡은 이러한 이기관과 심성관을 기초로 하여 「時弊七條策」에서 是非와 利害의 갈등을 時中之道의 논리로 그 해법을 제시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得中合宜論’이다. 우리는 시비 문제에 집착하다 이해관계를 망각하기 쉽고, 또 이해에 매달리다 시비를 잊기 쉽다. 시비에서 옳음을 구하고 이해에서 이로움을 구하고자 하는데, 율곡은 中을 얻고 마땅함에 맞으면 그 가운데 옳음과 이로움이 갖추어진다 하였다. 율곡은 이러한 得中合宜論을 현실적인 개혁론이나 정책론에 반영하고자 했다. 또한 율곡은 정치에 있어서도 養民과 敎民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양민은 백성을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하는 것이라면, 교민은 백성을 교화시켜 지적, 도덕적 수준을 제고하는 것이다. 율곡은 맹자의 왕도정치에 입각해 양민과 교민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양민 없는 교민이나 교민 없는 양민은 부족한 것이다. 이 양자의 조화와 균형이 왕도정치의 이상이다. 이러한 율곡의 도덕과 경제의 상함성은 현대적으로도 그 의의가 크다. 현대사회는 경제를 매우 중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윤리도덕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 경제와 윤리의 조화 이것이 이 시대의 지향점이고 이상이라고 한다면, 그 해법을 유학 내지 율곡에서 찾아도 좋을 것이다. Confucianism puts much emphasis on moral and economic values. Inheriting the tradition, Yulgok(栗谷) recognized that morality and economy supplement each other. He thought morality without economy as well as economy without morality is incomplete. This idea is from his I-Gi-Ji-Myo(理氣之妙) philosophy and the whole-person theory. Yulgok suggested “Deuk-Joong-Hap-Ui(得中合宜) theory” in his < Shi-Pye-Chil-Jo-Chek(時弊七條策) >. His understanding was that right and wrong, and useful and harmful should be balanced. If you are obsessed with right and wrong, you may forget what is actually useful and harmful, while if you try to judge useful and harmful too much, you may forget what is right and wrong. Everyone pursues what is useful and right. Yulgok tried to address the issue by using circumstantial logic. He explained, in other words, if anything is moderate and reasonable, there exist usefulness and rightness in it. And as for politics, he acknowledged that feeding the people and enlightening them should be harmonized. His idea was that true politics should balance economic abundance and moral justice. Such ideas have significant values even in the moder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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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哲學) : 우암(尤庵)의 성리학(性理學)과 학문적(學問的) 위상(位相)

        황의동 ( Eui Dong Hwang ) 한국사상문화학회 2008 韓國思想과 文化 Vol.42 No.-

        尤庵 宋時烈(1607~1689)은 17세기 조선조의 대표적인 유학자로서 ``東國18賢``의 한 사람이며, 栗谷-沙溪를 잇는 기호학파의 嫡傳이었다. 그는 병자호란을 맞아 효종과 함께 북벌의리를 주도했으며, 평생 의리의 실천에 앞장섰다. 본 논문은 율곡의 성리학과 그의 성리학적 위상을 검토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율곡 성리학의 기반위에서 그의 성리학을 시작하였다. 理氣二元의 세계관, 理와 氣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理氣의 개념적, 가치적 구별을 하는 점, 理의 발용을 부정하고 오로지 氣發만을 인정하는 氣發理乘一途의 입장 등이 그렇다. 또 심성론에 있어서도 心性情에 대한 논의, 四端七情, 人心道心에 대한 입장에 있어 율곡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가 「朱子言論同異攷」에서 『周易』 「繫辭傳」의 ``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에 대한 退溪, 沙溪의 해석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고, 形道器三件物事說을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율곡을 계승하여 ``心是氣``를 말하여, 우암을 主氣論者로 보는 논거가 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性을 理로 본데 대해 心을 氣로 본 표현이며, 心이 곧 氣라는 존재론적 설명이 아니라 心의 작용성과 性을 담는 의착적 기능을 氣에 비하여 사용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우암의 성리학적 위상은 첫째로 영남 主理學派의 도전에 대한 율곡학파의 정체성 확립에 앞장 섰다. 그가 시작한 「朱子言論同異攷」의 저술은 바로 이러한 작업의 하나였다. 둘째로 異學의 배척과 朱子學風의 振作에 앞장 섰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는 주자와 주자학에 대해 거의 종교적이리만큼 尊信하였다. 그리하여 『朱子大全箚疑』 등 많은 주자학 관련 저술을 하였고, 朴世堂, 尹휴 등의 경전해석에 대해 斯文亂賊으로 斷罪한 것도 그의 闢異端의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셋째는 율곡의 ``心是氣``를 계승하여 영남 主理學派들이 율곡학파를 ``主氣學派``로 부르는데 영향을 미쳤다. 넷째로는 한국유학사에서 율곡학파의 정체성과 위상이 정립된 것은 우암에 의해서라고 볼 수 있다. Uam Songsiyol(1607~1689) is a representative Confucius scholar in Joson Dynasty in the seventeenth century. His Sung Confucianism is based on Yulgok school, which as "weltanschauung" of Li and Ki, denies action of Li and admits only that of Ki, Uam has the same ideas as Sung Confucianism in terms of interpretation of human nature, mind, and feeling. However, it is meaningful that he criticizes Toege`s and Sage`s ideas on "To" (reason), "Ki" (life force) and "Hyung" (image). They distinguish "Do" from "Ki" but consider "Hyung" and "Ki" as the same concept, which Uam does not agree on. Uam`s academic achievements are summarized as followed. First, he establishes scholarships identity of Yulgok school against the challenge of Yongman school. Second, he defends Jusa Confucianism excluding heresy schools. Third, succeeding to Yulgok`s idea that mind is Ki, he helps Yongnam Juri School to define Yulgok school as Juki School. Fourth, he contributes to clarify Yulgok school`s ideas in the history of Korean Confucianism and to establish it as a outstanding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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