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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날 중국의 ‘國學熱’의 몇 가지 사고에 대해

        형려국 한국공자학회 2009 孔子學 Vol.16 No.-

        중국은 2004년부터 공자를 자신들의 문화브랜드로 삼기 시작했다. 2004년 11월 중국의 첫 번째 해외 “공자학원”이 서울에서 간판을 걸었으며, 제2차 세계 공자학원 대회가 열릴 때에는 전 세계에 이미 260곳의 공자학원(공자 학습실을 포괄)이 64개국에 분포되었으며 그 가운데 125곳이 개강하여 수업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지속적으로 61개국의 200여 곳의 기관에서 개설을 신청하고 있다. “공자열”의 흥기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공자의 인정은 중국인이 전통문화의 회귀로 향하는 것을 대표한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공자의 정치사상에 있어서 중국이 전통사회에 처하여 현대사회의 전화기의 중요한 시기에 시의적절하지 않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의 공자는 단지 하나의 브랜드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면서 그 문화의 내포는 이미 망각된 것이라고 한다. 국학은 구체적으로 유학의 입장에 이르러서 보자면 이상적 사회와 이상적 인생의 사유이다. 사회의 필요에서 보자면, 당대 중국의 물질과 정신, 전통과 현대, 중국과 세계(세계화) 세 가지 사이에 존재하여 하여 정착한 내재의 장력이다. 이로 인해서, 지금의 국학열은 사람들의 전통문화적 열정에 대한 것이 반영되며, 그 실은 당대 중국인이 직면한 여러 가지 현실문제와 정신의 혼란과 밀접한 상관이 있다. 국학열의 흥기는 국가와 사회가 전통문화에 대한 중시를 나타냈으며, 전통문화의 새로운 “문예부흥”을 초래할 것이라고 믿는다. 학자로서, 우리는 국학열을 정시하고 정확히 인도해야 하며 전통문화를 깊이 널리 선양하며, 21세기 다원문화의 구조 가운데서 응당한 작용을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들이 국학을 선양하는 최종목적은 사회발전을 촉진하고 전세계의 평화와 화합을 위하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의 사회와 세계의 최대의 요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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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교와 동아시아 문화공동체

        형려국 한국공자학회 2010 공자학 Vol.18 No.-

        동아시아공동체는 동아시아의 제 나라가 어떠한 공동 조건과 공동 이익 하에 결성되는 단체적 조직이며, 역사적 문화전통을 바탕으로, 각 나라 내부의 다양성과 차이성을 전제로 이루어진 창조적, 통합적 체제라고 한다. 문화는 인간이 환경에 적응되는 산물이니, 각 지역공동체가 나름대로의 환경 하에 자기의 문화를 창출하고, 문화의 지역적 차이를 형성하였다. 동아시아의 주요 나라인 한중일 삼국은 地緣관계로 옛날부터 밀접한 무역왕래와 문화교류를 유지해왔으며, 그들 간의 문화가 서로 수용, 침투하여 이 땅에서 특색 있는 문화전통을 형성하였다. 유교문화가 동아시아문화의 바탕이다. 廣義적 유교문화는 중국 본토에서 자라나 일본과 한반도 등 동아시아 나라에 유입되어 수용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동아시아문화는 유교문화의 복제가 아니다. 유교문화는 동아시아 각국의 주도적 문화로 발전되는 시기가 많이 차이난다. 중국의 경우, 기원전 2세기 漢武帝가 “파출백가, 독존유술”의 施行을 기점으로 하였다. 한국의 경우, 14세기에 조선왕조가 주자학을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만들 때부터이고, 일본은 17세기에 도쿠가와 막부가 주자학을 관학을 높일 때부터이다. 이러한 유교문화공동체는 14-15세기부터 점차 형성되어 19세기까지 존재하였다. 동아시아유교문화공동체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유교윤리를 일상생활의 윤리로 삼는다. 둘째, 가정의 가치를 중시한다. 셋째, 단체정신을 강조한다. 넷째, 사회질서를 강구하여 사회의 和合을 추구한다. 동아시아문화공동체의 구축에 있어 유교의 和諧사상은 철학적 기반을 제공해 주고 있다. 和諧는 中和와 適度의 상태이며, 和而不同과 求同存異를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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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자 四端說에 대한 조선 유학자들의 해석

        邢麗菊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10 한국민족문화 Vol.37 No.-

        맹자의 사단설은 성선설의 이론적 근거로서 중국의 유학자들은 대부분이 심성과 도덕의 측면에서 논술하였으며 사단과 칠정을 동시에 대거하여 설명한 것이 거의 없었다. 이와 달리 조선시대의 성리학자들은 한결같이 사단과 칠정을 대거하여 이기로 설명하였다. 지면 관계로 본문에서는 성리학자퇴계, 율곡과 실학자 다산의 사단설만 고찰했다. 퇴계는 이기를 二分化시켜 이기의 不雜性을 강조함으로써 사단을 理發而氣隨之, 칠정을 氣發而理乘之라고 규정하여 理氣互發說을 내세운다. 여기서 사단과 칠정은 異質적인 정이다. 그러나 율곡은 이기 不相離와 不相雜의 균형을 추구하는 측면에서 ‘理氣之妙’를 주장하여 사단과 칠정은 모두 氣發而理乘之를 규정한다. 율곡에 있어서의 사단과 칠정은 同質적인 정이다. 단지 사단은 善情의 다른 이름이고 사단과 칠정의 관계는 七包四이다. 퇴계와 율곡은 전통 주자학의 입장을 어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더욱 더 내면화, 구체화의 측면으로 전개하였다. 퇴율사상의 차이점이라면 퇴계가 도덕적 이상주의자라고 할 수 있고, 율곡이 도덕적 현실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실학자 다산의 사단론은 퇴계와 율곡처럼 사칠논쟁으로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맹자에 대한 주석을 통하여 전개되었다. 그는 趙岐와 주자의 해석을 비교, 분석하면서 자기 독창적인 견해를 제기한다. 즉 주자 성리학을 반대하며 인의예지는 인성에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行事 후에 나타난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의 사단론은 실천을 기초로 하는 학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들의 주장의 이면에는 당시 정치적 상황이 제기하는 문제들이 내재해 있다. 이와 같이 조선시기의 유학은 실천과 이론, 현실과 이상의 통일체로서 한국의 전통사상으로 정립되어 나갔다.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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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關於朝鮮儒者巍巖與南塘的未發論辨之考察

        邢麗菊 한국유교학회 2011 유교사상문화연구 Vol.45 No.-

        본 논문은 조선유학자 외암과 남당의 미발논변에 대해 살펴보았다. 已發과 未發 논의의 경전적 근거는 『중용』에 나온다. 이 中和論은 이후 마음을 연구하는 心論의 기초로서 유학의 기본 사유구조를 결정하는 선험적인 사유패턴이 된다. 특히 인성론의 핵심 테제로서 중화론은 중국유학과 한국유학의 본질을 잘 드러내준다. 송대 이학의 집대성자인 주희의 중화론은 이 논의를 본격적으로 유학내의 문제로 편입시켰다. 주희의 입장은 40세를 기점으로 “중화신설”과 “중화구설”로 구분된다. 주희는 미발이발에 관한 중화론을 전개하면서 “심통성정” 론으로 이 문제를 수렴하고 “미발함양”과 “이발성찰”공부를 주장한다. 이후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南塘 韓元震(1682-1751)과 巍巖 李柬(1677-1727)은 주희의 미발설을 근거로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외암은 미발의 심체는 순선하다는 입장인 반면에 남당은 마음은 선악이 있다고 주장한다. 양현은 주희의 이론에 대한 각자의 해석을 바탕으로 논쟁을 전개한다. 양현의 논쟁은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미발의 개념 문제: 남당은 “思慮未萌,知覺不昧”, “寂然不動”한 상태의 미발에 주목하여 시간적으로 선재하는 미발을 설명한다. 반면에 외암은 “不偏不倚之中”, “湛然虛明”한 상태의 미발에 주목하여 일체의 선의 근원으로서 미발에 주목한다. 둘째, 미발심체의 선악문제: 외암은 진정한 미발상태에서는 기가 용사하지 않고 湛然清虛한 本然之氣가 작동한다고 한다. 이때의 기는 순선하고, 순선한 심체는 기의 가림이 없이 성의 본선한 “본연지심”이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남당은 미발한 기에는 湛然清虛한 기도 있지만 마음은 萬端不齊한 기가 품부된 것이다. 따라서 미발심체는 여실하게 드러날 수 없다고 말한다. 양현이 비록 기를 말하고는 있지만 각자 기에 대한 정의는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셋째, 마음은 하나인가의 문제: 외암은 “本然之心”과 “氣質之心”을 “本然之性”과 “氣質之性”에 대응한다. 이를 남당은 “二心二性論”이라고 비판한다. 남당은 “一心一性論”을 제기하면서 未發의 마음은 단지 湛然虛明한 “心之本體”와 기품이 不齊한 “心之氣稟”으로 구분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외암은 “本然之心”과 “氣質之心”이라는 개념을 즐겨 사용하고 남당은 “心之本體”와 “心之氣稟”을 즐겨 사용하는데 이를 통해서도 양현의 입장 차이를 알 수 있다. 未發與已發問題最初見於《中庸》, 這一問題可以通過中和論來考察。朱熹對中和論的認識經過了多次變化, 通過“中和舊說”以及“中和新說”可以很明顯的看出來。朝鮮後期代表儒者南塘韓元震(1682-1751)和巍巖李柬(1677-1727)二人各自以朱熹的未發論為依據, 圍繞未發問題產生了激烈的論爭, 在朝鮮儒學史上影響深遠。他們的主要爭論點如下:1)未發的概念問題。未發是心的理想狀態, 南塘強調它是不接外物的“思慮未萌, 知覺不昧”、“寂然不動”的含義, 而巍巖則註重它所具有的“不偏不倚之中”、“湛然虛明”的含義。2)未發心體的善惡問題。巍巖認為, 真正未發狀態下清濁粹駁的血氣是不發揮任何作用的, 只有湛然清虛的本然之氣, 故氣是純善的, 所以性的本善也能如實具現。而南塘則指出, 清濁粹駁的多樣性是氣的本色, 只有闡明氣的多樣性才能解釋心發以後性的善惡之來源。所以未發之氣中既有湛然虛明的心之本體, 又有萬端不齊的心之氣稟。所以未發心體具有善惡的可能性。3)心是否為一的問題。巍巖在論爭的過程中提出了本然之心與氣質之心, 並將其分別對應於本然之性與氣質之性。而南塘則堅持“一心一性論”, 認為未發之心可以分為湛然虛明的“心之本體”和稟氣不齊的“心之氣稟”兩個方面, 而且只有這樣才可以闡明心的善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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