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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張家山漢簡 「算數書」의 편찬과 형성과정

        최진묵 숭실사학회 2011 숭실사학 Vol.0 No.26

        張家山漢簡 「算數書」의 편찬과 형성과정 崔 振 黙張家山漢簡 「算數書」는 1983년 湖北省 江陵縣 장가산에서 출토된 漢簡중의 일부로 190매의 죽간이 69개의 산수문제로 이루어진 문제집이다. 「산수서」의 형식은 “① 문제의 제목, ② 문제, ③ 정답, ④ 術이라는 용어로 시작하는 풀이법”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이는 「구장산술」과 매우 유사한 형태이기도 하였다. 동시에 「산수서」에는 「구장산술」과 일부 동일한 표제가 있고, 몇몇 산제들은 아주 유사하거나 완전히 일치하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산수서」를 「구장산술」의 근원적 자료로 판단하기도 하였지만, 이 문제는 「산수서」의 내용 분석을 통해 보다 깊이 검토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본고는 「산수서」가 중국 고대의 수학사상 어떠한 위상을 갖고 있는가의 문제를 푸는 일이 결코 쉽지 만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산수서」의 산제를 분석해보면 산제속에서 수학 표현방식상의 차이가 확인되고, 校讎者로 추정되는 楊과 王이라는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하며, 동일 표제어의 산제도 적지 않게 존재한다는 점에서 「산수서」가 산제들을 계통적으로 모은 통일적인 저술로 보기 어렵다는 인상이 강하게 든다. 이 점에 착안하여 본고는 「산수서」의 내용분석으로 부터 접근하여 산제들을 계통적으로 분류함으로써 이 산수문제집의 편찬과 형성과정을 집중적으로 검토하고자 하였다. 일반적으로 부호나 기호를 활용하는 서구 代數學과는 달리 竹簡이라는 서사자료의 한계를 갖는 중국 代數學은 세로쓰기의 형식으로 말미암아 수학기호나 부호를 활용하는 형식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선 분수의 표현형식을 검토해보면 ① “N分m” ② “N分之m”의 두 가지 표현으로 나타난다. ①과 ②의 차이는 “之”자가 들어가는가의 여부인데, 전체적인 비중은 ①이 크다. 「구장산술」에서 기본적인 분수표기방식도 주로 ②의 형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산수서」의 다양성이 부각된다. 나눗셈의 형식은 더욱 뚜렷하다. 제수와 피제수가 등장하지 않는 경우에서 고정적인 격식으로 자리잡은 “實如法而一” 까지 7가지의 서로 다른 표현방식이 나타난다. 산수서 에서 이들 표현방식은 일정 시점에서는 병존하기도 했겠지만, 대체적으로 산제 성립의 시간적 순서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일부 簡에서는 문제와 상관없이 “楊”, “王”, “楊已讎”, “王已讎”라는 단어가 등장하여 이 계산문제들이 楊氏 혹은 王氏라는 어떤 전문가들에 의해 校讎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楊이 교수한 부분의 분수형식은 주로 “N分之m”으로 표시되고, 王이 교수한 부분은 “N分m”으로 되어 있어 형식상 구분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점을 고려하면 楊과 王은 수학용어와 표현방식상의 차이를 갖는 서로 다른 계통의 교수자인 것 같다. 그렇다면 「산수서」는 이 두 계통의 수학문제를 베껴 만든 문제집인 것이 분명하다. 한편 산수서 에는 “羽矢”와 “粟求米” 같이 똑같은 표제어가 중복되는 사례가 존재하고, “여직”과 “부직”의 산제처럼 표제어가 비슷한 경우도 있다. 내용은 다르면서 같은 제목의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합리적이지 않다. 이것은 결국 산수서 가 다른 계통의 여러 산제들이 혼재된 형태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마도 다양한 여러 다른 계통상의 학파의 문제들로 혼합 편집하는 과정에서 동일 표제어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산수서 는 단순히 수학 이론교육을 위한 수학교과서라기 보다는 다년간 심지어는 몇 세기 간의 긴 기간 동안 실제 현실에서의 경험이 축적된 것이며, 이 과정에서 여러 계통의 수학책을 참고하고 채록하여 성립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산수서」의 계통상의 다양성은 秦漢帝國의 성립으로 모든 분야에서 표준과 기준이 정립되어가는 상황에서 여전히 통일이전 전통의 흔적을 보여주는 한 사례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The Compilation and formation process of Chinese mathematical text Zhangjiashan Hanjian(張家山漢簡) <Suan shu shu 算數書> Choi, Jin Mook Chinese mathematical writings Zhangjiashan Hanjian<Suan shu shu> is a part of Dynasty Han(漢) books which were excavated in Zhangjiashan of Jiangling(江陵) County, Hubei(湖北) Province in 1983 and consists of 69 arithmetical questions written on 190 bamboo strips. This writings has very similar pattern like Nine Chapters on Mathematical procedures(九章算術; Jiuzhangsuanshu) and consists of subject, question, answer and general rule for its solution starting with terminology ‘術’(technique). Furthermore, some questions of the text are the same as Nine Chapters on Mathematical procedures and some are quite similar or identical. Although Suan shu shu is considered as original text for Nine Chapters on Mathematical procedures, it would be necessary to study more carefully through analysis of content. It is not so easy to find out what position Suan shu shu has in history of ancient chinese mathematics. Suan shu shu may not be systematically classified and unified literary work because of the followings; some inconsistencies in the arithmetic expression that exist among questions of Suan shu shu, two people named Yang(楊) and Wang(王) who are assumed as instructors appeared in the text, and many questions having identical name. From this point of view, this article is focused on the compilation and formation process of Suan shu shu by analyzing content and classifying the questions systematically. Unlike the western algebra generally uses mathematical symbolic code or sign, chinese algebra couldn’t had developed because of the limitation of vertical writing on bamboo slips. Under this circumstances, the fraction have two ways of expression as (1)N分m or (2)N分之m. The difference between the expression (1) and (2) is whether the character ‘之’(zhi) exits or not, and mostly the expression (1)is used. The diversity of Suan shu shu is highlighted from the fact that main expression of fraction is (2)N分之m in Nine Chapters on Mathematical procedures. In case of division, seven kinds of different expressions are found from omission of a divisor and a dividend to 實如法而一(count 1 for each time the dividend accommodates the divisor) which has the fixed form of a divisor and a dividend. Although these expressions might coexist in certain point of time, generally it infers the formation chronicle of questions in Suan shu shu. There also appears ‘楊’(Yang), ‘王’(Wang), ‘楊已讎’(Checked by Yang), ‘王楊讎’(Checked by Wang) in text regardless of the arithmetical questions. This implies that the arithmetical questions were instructed by certain experts family named ‘Yang’ or ‘Wang’. It is so interesting that the expression of fraction is classified according to instructors such as N分之m by Yang and N分m by Wang. They are instructors having the different ways of expression and terminologies of mathematics. Considering this point, Suan shu shu is apparently the text which is recorded from arithmetical questions of these two lines. Meanwhile, there are overlaps in the subject such the same names as 羽矢(Feathering arrows) and 粟求米(Seeking hulled from unhulled grain), and the similar name like 女織(The women weaving) and 婦織(Women weaving)in Suan shu shu. It would be unsuitable that some questions in Suan shu shu have the identical names with the different content. Therefore, it can be inferred that the text is the combined work of many kinds of categories. This would be resulted from the unclassified subjects in the process of editing questions made by different study groups. In conclusion, Suan shu shu would rather not be a simply mathematical text for teaching arithmetic theories, but be an accumulating work referred and recorded from many kinds of arithmetic texts which was written by experiences of the actual life for several years or even centuries. The diversity of category in Suan shu shu would be a meaningful example which shows a mark of tradition in pre-unified Dynasty while most of the field was setting up standard after establishing Qin(秦) and Han Dynasty.

      • KCI등재

        중국 고대사회의 시간활용

        최진묵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3 人文論叢 Vol.70 No.-

        本文主要推定在中國古代,雖然貫徹了統壹的十二時制或十六時制,但在多元的生活領域却有不同的時間觀念和分割時間的方式,可以考證此種推定的領域有文書行政、農業活動、祭祀與儀禮,以及醫療活動等,竝且針對這些領域中具體的時間活用和事例進行比較分析. 古代中國的文書行政中,構建了將壹天分爲半日、或是三分爲1/3日,竝且記錄時刻和分單位等詳細時間的高效率計時行政. 由于重視行政處理的速度,所以不得不關注時間的精密度和准確性. 령外,上計文書的編寫等過程中還包含整理完成壹年的業務這壹意義,以此表示歲終,重視年單位的終點. 反面,雖然在行政上竝不是沒有隨著季節變化而産生的勞動力變化,但其竝不占흔大比重. 除農業活動、祭祀儀禮、醫療活動等文書行政以外的領域中,四季是最爲重要的標准. 因爲,季節變化就是意味著會導致某種行爲的發生. 對于試圖與自然規律相壹致,順應時間順序的古代人來說,四季便是絶對的標准. 農業活動中,除季節以外,月令、節氣也占據不小的比重;醫療活動中主要活用根據五行、八卦區分開來的五分法或是八分法的時間分割法,以及隨著疾病的次等進行時間分割的方法. 在這兩個領域是比較符合時間的循環和反複,卽周期性這壹特征的領域. 但是,祭祀和儀禮中,元會儀或是告朔會强調如同朔日等時間單位的初始點,又或是重視晝夜的初始點等陰陽交替的特定時間點,如同像上辛日,在特定的時間點賦予齋戒、自新等意義. 像這種與帝國內部統壹的時制無關的古代社會的各個活動領域的實際生活中,會反映出各自不同的時間觀念和時間的活用. 령外,有關時間活用的差異比較顯著的其他領域,卽除上述四個領域以外,還有占蔔這壹領域. 由于占蔔是基于時間和空間的選擇法而進行的,占術家們的時間觀念和活用也極爲重要. 這也是本文日後需要補充的部分.

      • KCI등재후보
      • KCI등재후보

        중국 고대 方士醫學의 養生術과 그 사회적 영향 ― 導引術과 吐納法을 중심으로 ―

        최진묵 중국고중세사학회 2007 중국고중세사연구 Vol.18 No.-

        방사의학과 역사의 연관에 관한 문제는 지금까지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주제이고, 導引術과 吐故納新의 호흡이라는 논제는 고대 중국의 의학의 방향이 어떻게 역사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의 성격을 규정해갔는지의 문제를 해명하는데 매우 의미가 있다. 본고를 통해 方士醫學의 養生術이 어떠한 특징을 갖고 있었으며 실제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어떠한 기능을 했는지의 문제가 해명됨으로 수술학적 신념으로 유지되던 고대사회의 면모를 일정정도 살필 수 있었다. 본고가 의학사적인 서술방법론을 벗어나 신체와 심리의 상관문제, 영혼과 육체에 관한 종교적 신념,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인식, 개개인의 길흉화복과 국가나 사회의 명운에 관한 논리 등등 다양한 각도에서 인간의 신체를 조명하여 단지 의료대상으로서의 신체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모색을 시도했고, 기존에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연구방법론으로써 접근하고자 함으로써, 天 ․ 地 ․ 人․ 神 ․ 鬼의 세계와 교감하고 통신하는 매개자로서의 方士 곧 주술사로서의 醫師와 경험과 선례에 의한 실험을 강조하는 자연과학자로서의 醫師로서의 양면적 성격을 가진 고대 방사의학의 면모를 어느 정도 부각시킨 것도 사실이다. 유학의 외피속에서 송대 의학은 ‘儒醫’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기까지 하였다. 유교적 이념이 지배하는 사회속에서 저변에는 광범위하게 方伎를 포함하는 광의개념의 수술류의 논리가 유행 지배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유학의 불철저하기는 하지만 일정한 합리성속에 신비적이고 황당한 요소가 여전히 포함되어 있었음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방사의학은 이러한 양면성이 적확하게 표현되어 있는 주제이기도 했다. 임상실험과 경험에 의한 실용적 과학과 기술적 요소와 천인상응신앙에 의한 논리가 여전히 기능하기도 하는 분야였던 것이다. 이런 古代 中國醫學에 대해 現象論的 인식에 기초하여 전체적인 구도는 현대의 分析科學보다도 우위에 있다고 여기거나 ‘또 다른 科學’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한편 분석과 종합을 주로 하는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모순투성이인 고대의학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方士들의 인식의 해명과 그에 따른 의학의 사회적 영향을 고려한 본 연구의 서술범위를 벗어나는 문제이다. 그러나 여하튼 본 연구를 통해 동아시아 고대사회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면모를 상당정도 갖춘 점을 인정하면서도 신비적이고 미신적인 俗文化의 종교적 전통이 여전히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는 점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본고의 의미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 KCI등재

        『漢書』 「禮樂志」의 세계

        崔振默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2010 역사문화연구 Vol.37 No.-

        禮樂文化로 칭해지는 중국 고전문명속에서 『漢書』「禮樂志」는 바로 이러한 고전문화의 틀이 완성되었음을 처음으로 當代에 정리 보고한 역사적 가치가 있다. 『한서』「예악지」이해를 위해서는 司馬遷 「史記」의 『禮書』 및 「樂書」와의 비교검토가 선행되어야 할 작업 중의 하나이다. 『한서』가 기본적으로 『사기』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악지」는 「예서」와 「악서」의 체제가 합해져 새로운 형식으로 등장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顔師古注가 붙어있는 『한서』의 특성상 안사고 전후시기의 각종 주석에 대한 검토도 요구된다. 본고는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한서』「예악지」를 분석 정리한 글이다. 「예악지」는 형식적 구성은 22%의 “예”부분과 78%정도의 “악”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어 禮志라기 보다는 오히려 樂志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예와 악을 각기 분리서술하고 있는데, 禮부분은 시대의 흐름에 따른 禮制 개혁의 시도를 주로 서술한 반면, 樂부분은 시간순서를 고려하고 있기는 하지만, 安世房中歌와 郊祀歌의 가사를 서술하는데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에 樂制에 관한 현실적 상황과 개혁 등에 대한 서술은 비중이 작아진 편이라는 것이 큰 특징이다. 따라서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것 같은 明堂 郊祀 및 封禪 같은 皇帝儀禮와 관혼상제 등의 사대부와 민간의례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고 있지 않다. 「예악지」는 『사기』의 書체계를 돌파하고 새로운 창조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와 가치가 있다. 그러나 「예악지」는 「예서」,「악서」의 단순한 합전만은 아니고 서술내용상에서 현격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것은 아마도 반고 당시에 「예서」,「악서」가 亡失되어 반고는 이들을 참고하지 못하고 「예악지」를 작성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顔師古注를 검토해보면 이 注釋은 이전의 여러 주석을 참고하고 비교 검토하여 완성했음이 틀림없다. 唐以前의 주석가들은 23家 이상이 확인되는데, 「예악지」에서는 孟康, 李奇, 應?, 如淳, 服虔, 晉灼, 臣瓚 등을 포함한 11家의 주석가들이 확인된다. 안사고주는 이들을 참고하면서 주로 한자의 音義나 補遺를 통한 訓?的 注釋에 관심을 가진 것 같다. 또한 청대 『한서』주의 집대성으로 등장한 王先謙의 『漢書補注』는 오늘날 中華書局 標點本의 저본으로 활용될 정도로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여기에서는 ‘補注’및‘先謙曰’이라는 형식을 통해 衆說을 열거하고 자신의 독창적인 견해를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창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적극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한편 『한서』는 후한 光武帝나 明帝에 대한 언급도 있어 『사기』가 갖는 當代史로서의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被稱之爲“禮樂文化”的中國古典文明中,《漢書 · 禮樂志》就標誌了這種古典文化?架的完成。爲了理解《漢書 · 禮樂志》,就有必要將其與司馬遷《史記 · 禮書》以及《樂書》進行比較硏究。因爲《漢書》基本上是受到了《史記》的影響,但是《禮樂志》是將《禮書》與《樂書》的體系進行了結合之後以新的形式重新登場的。還有,附有顔師古注的《漢書》的特徵上,就需要顔師古對其前或是帶的各種註釋進行比較探討。本文就是以這樣的側面出發,分析整理了《漢書 · 禮樂志》。 《禮樂志》從形式上來講,是由22%的“禮”部?和78%的“樂”部?構成的,與其說?是禮志,其作爲樂志的性質更强。在本志中,禮與樂是被分開來記述的:禮部?是隨著時間的推移記述了禮制的改革;樂部?因其考慮到時間順序,雖然記述了安世房中歌與郊祀歌的歌詞,因此對於樂制的眞實情況和改革情況就相對地記述的?少,這也是《禮樂志》的特徵之一。因此,理應被記錄的內容一一明堂、郊祀、封禪等皇帝儀禮與冠婚喪祭等士大夫與民間儀禮一類的內容幾乎沒有被記述下來。 《禮樂志》突破了《史記》的編寫體系,試圖進行了新的創造,從這一點來講具有其意義的。但是,《禮樂志》?不僅僅是《禮書》《樂書》的合訂本,在內容上也是有顯著差異的。這也許就是因爲當時《禮書》、《樂書》被遺失,班固就在無法對其進行參考下進行編撰的原因。?一方面,在分析顔師古注的時候,此注釋一定是參考了以前的幾個註釋之後完成的。已知的唐以前的註釋家大?有23之多,在《禮樂志》中就包括了孟康、李奇、應?、如淳、服虔、晉灼、臣瓚等註釋家。顔師古注似乎在參考這些註釋同時,主要關注了漢字的音義,或是通過補遺進行的訓?注釋。以及,?代將《漢書》注集大成的王先謙的《漢書補注》由中華書局出版了標點本之後,各界人士廣爲活用。在這裡,通過“補注”,以及“先謙曰”的形式,在例?衆說的同時也詳細說明了自身的見解,尤其獨創之處,凸顯其積極意義。 ?一方面,《漢書》中也言及了後漢光武帝、明帝等內容,由此可以來確認其具有《史記》具有的當代史的意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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