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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 정치문화의 전파와 동양의 수용 : ‘공화’제도의 수용과 ‘공화적인 것’ 인식 사이의 괴리

        신동규(Shin Dongkyu)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 2021 東亞文化 Vol.59 No.-

        ‘공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Res publica에 뿌리를 두고 있는 Republic의 번역어 ‘공화’는 왕이 없는 정치 체제라는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이는 국가는 공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리를 담아내지 못한 것이었다. 이러한 불일치는 서구의 역사적 경험과 동아시아의 유교 문화권의 경험이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이는 혁명을 통한 주권의 소재 변화를 경험한 유럽과 그렇지 못했던 동아시아 국가 사이의 차이였다. 19세기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은 공화제를 왕이 없는 정치 체제로 이해했기 때문에 단순하게 군주제를 위협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공익 추구를 실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법에의한 통치를 강조하면서 공화적인 것을 인식하는 것과는 중대한 차이가 있었다. 프랑스 혁명의 경험은 공화적인 것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주권의 소재와 왕의 부재의 관계가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지만 왕이 존재하는 입헌군주제,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왕이 없는 공화제, 황제가 군림 하지만 공화국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었던 제정 초기 상황은 왕의 부재 여부가 공화적인 것의 핵심 준거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에서 Republic은 어떻게, 그리고 왜 왕이 없는 정치 체제로 인식되고 그렇게 수용되었는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What does the Republic mean? ‘Gongwha’, a translated word of the Republic derived from a latin expression ‘Res publica’, involves strongly a political system governed without a monarch, but it doesn’t include a fundamental principal concerning a Public interest which a State must assure. This Divergence comes up because of the difference between the historical experiences of the Europe and those of the Confucian cultural area. The former undergoes the changes of whereabouts of sovereignty through Revolutions, whereas the latter get no this social transformation. In the 19th Century, it was a general tendency for the intellectuals of the East Asia to understand simply the Republic as a new regime threating a monarchy. This perception shows a major distinction with the way Rousseau understood the republic in the Social Contract in which he points out a government by law to guarantee the public interest. The French Revolution reveals the complexity of relation between the whereabouts of sovereignty and the absence of the King; The Constitutional monarchy, ruled by the King under the control of the Nation exercising the sovereignty, the Republic under the popular sovereign power without King, the early situation of the Empire reigned by Emperor with the propaganda showing that Napoleonic rule still remains under republic culture. All these situations show that the absence of King is not the most important criteria of the Republic. It is thus necessary to understand how and why the East asian intellectuals perceive and receive the Republic as a government without King.

      • 「무위(武威)」의 군사 국가에서 학문이 가지는 적극적 의의

        마에다 쓰토무(前田勉),김민(번역자)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 2019 東亞文化 Vol.57 No.-

        본고는 동아시아 3국 안에서 일본이 지닌 특이성과 공통성에 관한 3가지 문제를 검토했다. 첫번째 문제는 근세 일본의 국가가 무사가 지배하는 ‘무위’의 군사국가였다고 하는 특이성에 관한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근세 일본의 국가가 전국시대의 군사조직의 통치원리와 방법을 모델로 하는 가직(家職)국가이고 근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과정은 가직국가가 갖고 있던 능력주의와 신분(‘筋目’)주의의 균형이 무너져 가는 과정이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두번째는 유학이 위험사상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던 군사국가에서 동아시아 3국 공통의 학문인 유학이 수행한 적극적 역할이다. 군사국가에서는 유학자가 정치에 간여하지 않는 대신에, 학문의 내용이 간섭 받는 일도 없어, ‘자유로운’ 학문활동의 여지가 있었다는 역설을 지적했고 ‘초목과 함께 썩어’가고 싶지 않다고 하는, 평범한 일생을 거부하는 자들이 유학을 배웠다는 점, 또 학문이 능력주의를 발휘하는 도구가 되었다는 점을 논했고, 나아가 하나의 서물을 복수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함께 읽는 ‘회독(會讀)’이라는 근세 일본에 독특한 독서방법이 탄생한 것을 소개했다. 세번째로는 ‘존왕양이’와 ‘공의여론’이라는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두가지 정치적 이념과 학문의 관련이다. ‘존왕양이’에 대해서는, 가직국가 하에서 가업을 성실히 수행하는 서민이 상품경제·화폐경제의 발달에 의해 상하의 계층질서가 유동화하고 능력주의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재지(才智)’가 없는 것을, ‘신대’ 이래의 ‘계도(系圖)’, 즉 혈통의 고귀성을 통해 심리적으로 보상받으려고 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모토오리 노리나가가 대성시킨 국학은, 능력주의를 중국적인 사고방식, 즉 ‘한의(漢意)’로 부정하여 우리들 일본인은 천황을 중심으로 계보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라는 환상의 공동체를 수립했다는 점을 검토했다. 또 ‘공의여론’에 대해서는 대등하게 경서, 사서를 서로 토론하고 공동으로 독서하는 ‘회독’의 장이, 19세기 내우외환의 위기 하에서 정치적 토론의 장으로 전환하여, 막말기 지사의 ‘처사횡의’의 모태가 되었고, ‘공의여론’의 정치이념을 낳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 環渤海地域의 新石器文化

        宮本一夫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 1995 東亞文化 Vol.33 No.-

        環渤海地域의 新石器時代에 있어서 地域區分을 기술한다. 그리고 이 地域區分을 기초로 각 지역의 土器樣式을 비교했을 경우 현재의 각 지역에서 가장 오래 된 土器樣式의 土器製作技術상에는 系統關係가 존재하고, 이 系統은 광범위한 情報帶로 볼 수 있다. 한편 이러한 거시적인 系統關係와는 달리, 인접한 地域文化 간의 보다 직접적인 文化接觸에 관해 膠東半島(山東半島)와 遼東半島, 遼東과 韓半島 西部와의 비교를 행한다. 그리고 이러한 두개의 文化接觸의 내용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 다음 生業으로써 地域區分을 검토한다. 여기서는 石器를 중심으로 生業을 검토하고, 특히 遼東과 韓半島 西部와의 生業상의 聯關性을 검토하며, 동시에 石器에 보이는 文化接觸의 실체를 밝힌다. 마지막으로 新石器時代로 부터 靑銅器時代로의 이행 과정에 관해 環渤海地域 地域文化(地域區分)의 變容을 크게 三段階로 나누어 모델화해서 제시한다.

      •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와 오리엔탈리즘

        元智姸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 2002 東亞文化 Vol.40 No.-

        근대 이후 일본은 식민지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을 생산함과 동시에 자기 인식에 있어서도 스스로를 대상화하여 왔다. 서양의 눈을 통해서본 자신과 뒤떨어진 동양의 타국들 사이의 차별성을 만들어내기 위한 고투가 그들의 인식을 더욱 기괴한 왜곡을 낳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니토베 이나조(1862∼1933)는 메이지유신 이전에 출생한 일본인으로는 드물게 다수의 영어권에서 출판된 저작을 통해 일본문화의 소개자로 많은 독자를 서양에 보유하였다. 초창기 국제연맹 사무국 차장을 역임하였으며 유네스코의 전신인 '知的交流協議會'를 주도하였기에 일본의 국내에서는 서구적 교양의 대표자이자 자유주의자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일본의 침략적 아시아 정책에 대한 옹호적 자세로 인해 니토베의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아직 국가에 의한 교육정책이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도쿠가와 시대의 전통적 모습을 떨어버리고 서구학문의 조속한 수용을 최선의 목표로 삼던시기, 니토베가 받은 학교교육은 모든 수업이 외국어로 이루어졌고 일본의 문화나 역사와 관련된 수업은 최소한으로 제한되었다. 때문에 이들은 비교적 자유스러운 영어구사능력을 보유하면서도 일본의 전통에 대한 지식은 부족하였다. 유학을 위해 건너간 미국에서 목격한 근대는 전세계가 도달해야할 보편적 목표로 각인되었다. 영어로 출판된 니토베의 저작들은 서양에 있는 철학, 사상등이 일본에도 존재함을 설명하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이미 서양인에게 형성되어 있는 '동양' 이미지의 역수출의 결과를 가져왔다. 국제사회는 철저한 위계서열의 세계였다. 문명화의 정도로 국제사회의 위계서열을 파악하는 니토베에게 일본은 '유사이전의 생활'을 하는 아시아를 지도할 사명을 가지고 있으며 식민지 정책은 유럽의 근대계몽군주의 사업에 비견되었다. 이러한 논리는 일본의 국내에도 적용되었다. 데모크라시가 세계의 대세이며 역사적 필연이지만 그 전제는 민중의 수준 높은 사상과 품성이었고 당시 일본 민중의 지적 윤리적 수준으로 데모크라시란 시기상조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니토베는 일본의 민중에 대한 정부의 우위와 계몽의 정당성을 진보성에서 찾았다. 국가와 정부는 '진보의 길'을 추진하는 주체이고 민중은 그 지시를 성실하게 따라야 하는 객체였다. 민중이란 철저하게 愚民 '사회의 열등자' '스스로의 힘이 없는 자', '하층사회에서 교육도 견식도 없는 자', '하층사회의 분별없는 계급'이었으며 민중이 정치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매우 염려스러운 일이었다. 때문에 니토베는 초기 타이완과 조선에 대한 총독부의 식민정책에 관여한 이래 일본의 국내에서는 국제사회에 통용되는 교양을 지닌 엘리트의 양성과 도덕적 품성을 갖춘 서민의 교육이라는 두 가지 과제에 주력하였다. 도쿠가와 막부의 권위가 무너지고 대체된 전혀 새로운 가치체계인 '서양' 문화를 몸에 붙인 최초의 세대인 니토베에게 국제사회는 이미 완성된 세계였다. 그에게는 일본이 국제사회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이 필생의 목표였으며 그 방법을 일본의 엘리트와 하층사회, 그리고 식민지에 알리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하여도 '국제사회'는 룰을 바꾸어 입장을 제한하였다. 니토베를 결정적으로 좌절·파탄시킨 것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자격이 인정된 일본을 다시 황인종으로 구분하여 국제사회에서 배제한 '배일이민법'이었다. 학습을 통한 일본의 국제화라는 니토베의 평생의 과제가 근저에서 흔들리는 것이며 이 점에서 그의 좌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 좌절은 현실의 권력관계를 부정하고 문명의 문제로만 접근한 그의 출발점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 The Analyses of Plain and Red-painted Polished Korean Pottery Sherds Excavated at Yangp'yong-ni chewon-gun county, Ch'ungch'ong Pukto Province" : A Study of the Nam-Han River Valley Culture(2) 南漢江流域의 先史文化硏究(2)

        Choi, Mong-Lyong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 1983 東亞文化 Vol.21 No.-

        1981년 필자는 영산강유역에서 발굴된 무문토기관들의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당시의 문화를 복원하고자 시도한 바 있다. 금번 충청북도 제원군 양평리 주거지에서 발굴된 무문토기와 홍도편을 다시 하버드대학내 관계연구소에서 과학적인 분석을 해 본결과, 1) 주거지의 연대는 적어도 서기전 7세기경 이전이며, 2) 무문토기와 홍도 모두 573℃ 이하에서 구워졌으며, 3) 무문토기의 경우 석영과 정석이 균형이 있게 섞어진 반면 홍도의 경우 석영이 장석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이 섞여졌으며, 4) 분석된 영산강유역의 무문토기와 남한강유역의 무문토기는 시기적으로 약간 다르게 구워졌다고하나 태토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는 무문토기시대에 토기를 제작하는데 있어 전반적으로 공통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으며, 5) 이상의 결과로 일상용기로서 무문토기 대신 가죽이나 나무로 만들어진 용기의 사용이 강력히 시사됨을 알 수 있다(1983)

      • Confucius' Spirituality in the Analects : A Zen, Psychoanalytic, and Postmodern Hermeneutics 선, 심리분석, 포스트모던적 해석 禪, 心理分析, 和後現代的銓釋

        Lu, Martin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 2004 東亞文化 Vol.42 No.-

        『논어』는 공자의 제자와 그 제자의 제자들이 기록한 책이다. 따라서 공자의 가르침에 대한 내용은 그 추종자들에 의해 그 해석이 좌우되었을 것이다. 동서양의 고전(『논어』와 그리스도교의 『성경』을 포함한)들이 모든 시대에 같은 방식으로 해석되었다면 그것은 고전으로 남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의 죽음"을 설파하는 포스트모던식 해석학은 어떤 텍스트의 뜻이 항상 그 텍스트가 속해 있는 언어세계의 규정에 따라 문화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보는데 그 특징이 있다. 따라서 저자의 본래 의도에 지나치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 일단 텍스트가 쓰여진 후 텍스트는 그 자체로서 생명력을 지니며 텍스트의 뜻은 독자와 텍스트 간의 상호 작용에 의한 결과물로 보아야 한다. 공자의 사후 공지를 따르던 무리들은 8학파로 나누어진다. 따라서 공자의 "진정한 가르침"을 빙자한 정통해석의 존재를 너무 고집할 필요는 없다. 이 글에서는 『논어』를 시론적으로나마 포스트모던식으로 해석하고자 하며 그 과정에서 선불교와 칼 융의 정신분석학의 방법을 적용시키고자 한다. 또한 『논어』의 몇몇 구절을 인용해서 주장을 뒷받침할 것이다. 이는 분명히 새로운 접근방식이기 때문에 이 글의 여러 전제가 임시적인 가설에 불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동서고금의 모든 텍스트들이 역사 이래 다양하게 해석되어질 여지가 있었으며, 또 실제로 그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어져 왔다는 사실이다. 각 텍스트에 단 한 가지 의미와 실체만 있는 것이 아니며, 단 한 가지 해석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유교를 포함한 인류의 다른 문화전통이 발전하거나 전진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논어』에서는 무의식적으로 하늘(天)을 언급하는데, 이는 종교적인, 그리고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을 때 침묵을 지켜야만 하는 초월적인 경험의 영역과 관련된다. 이 때문에 공자는 인간의 본성(잠재의식)과 하늘의 법칙(초월적 경험)에 관한 내용을 대했을 때 제자들에게 삼가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 글에서는 『논어』를 해체하고 재해석함으로써 고전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열고자 한다. 이 글에서 이루어지는 내재성과 초월성에 대한 분석은 포스트모던식 해석학이 넓게는 중국철학연구에, 좁게는 『논어』 연구에 얼마나 공헌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가 될 것이다. 『논어』를 짜임새 있고 창의적으로 읽으려는 다양한 모든 시도들은 중국 역사상 유학자들이 이론화하고 개념화하고자 했던 공자의 정신세계와 선불교 체험에 대한 연구에 빛을 밝혀줄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은 공자의 정신세계에 활기를 주어 과거의 다양한 도전에 대응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또한 미래에 있을 공자의 정신세계에 대한 새로운 요구에도 반드시 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 나타난 이론적이고 정신적인 노력은 단지 초보적이고 임시적인 가설일 뿐이다. 더 정교하고 잘 짜여진 작업을 위해서는 『논어』에 대한 포스트모던식 해체(문화적으로 조건 지워진 의미를 배제하기 위해)와 탈권위적인 읽기(새로운 의도되지 않은 의미를 찾기 위해) 작업을 진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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