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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興胤 한양대학교 민족학연구소 2000 民族과文化 Vol.9 No.-
대표적인 한국신화 넷을 통해 여성문화를 살펴본 바 한국여성은 버림과 죽음과 재생의 내림굿을 겪고 첫 무당으로 태어난다. 그 버림은, 원앙부인이 잘 보여주듯 스스로 몸을 종의 신분에까지 낮추어 죽음을 맞는 것이다. 이들은 지모이다. 지모로서 저승 상상계 꽃밭 본향을 알고 있다. 그들의 부모와 남편ㆍ자식이 꽃에 의해 재생되어 본향 꽃밭으로 회귀하도록 한국 여성은 그들은 안내한다. 한마디로 그들은 본향을 지키는 이들이다. 그리하여 한국여성은 시련과 봉사, 기도와 정성을 생리로 삼는 문화를 일구어 온다. 그것은 한국인의 심성과 한국문화 및 종교의 성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한국문화의 심오한 성격과 한국종교의 왕성한 기도와 체험 등은 모두 거기서 유래한다. 한국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러한 여성문화는 그러나 크게 발양ㆍ전개되지 못한다. 조선조에 들어와 한국巫는 천대ㆍ억압되고 무당은 천민으로 규정되어 사회로부터 격리된다. 巫 억압ㆍ천대의 상황은 일제시대를 거쳐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 체제신화가 강화되고 영웅신화가 부각되면서 샤머니즘은 사라져버리고 지모의 신격이 왜곡되어온 지구촌 샤머니즘의 보편적 역사를 헤아리자면 한국巫의 그런 역사와 상황은 피치 못할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사회문화적 지형으로 보건대 한국巫는 조선조 이래 사회의 변두리 내지 밑바닥에서 명맥을 유지해 온다. 조선조 이래 여성문화가 제대로 일어서지 못한 채 그늘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던 것을 유교의 가부장제적 체제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그것은 신화적으로 한국巫의 위상 변화와 결부하여 보다 근원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오랜 역사동안 사회적 천대와 억압을 받아오면서 한국巫에 적잖은 변화가 일었다. 많은 무당들이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는가 하면 체제에 접근하여 이름을 떨치려 하면서 꽃밭 본향에 대한 기도와 정성이 심히 약화되어 온다. 한국 여성의 기도와 정성도 크게 떨어졌다. 본향 꽃밭 상상계는 그에 따라 점차 메말라 간다. 그 위기상황에 나는 결코 실망하지 않는다. 巫가 우리 사회의 변두리에 굳건히 자리하여 있기 때문이다. 상상계란 그렇게 쉽게 죽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의 이름을 불러줄 때 그것은 내게로 와 꽃이 된다는 김춘수 시인의 노래처럼, 우리의 기도와 정성, 특히 한국여성의 그것이 되살아날 때 본향의 꽃밭은 다시 활활히 살아날 것이다. 얼마 전 나는 전거(典據)를 알 수 없는 희한한 불교설화 하나를 들었다. 본향을 지키는 한국 여성의 이야기가 불교의 윤색을 입은 채 변두리에서 전해 내려온데 대하여 나는 표현할 길 없는 감사를 느낀다. 이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글을 마무리 짓는다. 강원도 어느 산골에 한 가족이 살았다. 금강산 어느 절에 가면 며칠 뒤 일어날 세계종말을 피하여 극락왕생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절로 향한다. 절을 저만큼 두고 갑자기 비가 내리자 어머니는 집을 나설 때 뚜껑을 열어놓은 장독이 걱정되었다. 극락정토행을 목전에 두고 장이 문제냐고 나무라는 남편과 자식들의 비난과 눈총을 뒤로 한 채 어머니는 장독뚜껑을 닫으러 집으로 향한다. 극락정토에 간 남편과 자식들은 뒤에 불보살의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거기서 만났다 한다.
조흥윤 단국대학교 중앙박물관 1986 博物館紀要 Vol.- No.2
중공에서의 샤머니즘 연구는 두 가지 면에서 우리의 관심을 끌며 우리네 무연구와 깊은 연관을 잦는다. 첫째는 비교종교학적 관심에서 그러하다. 두 나라는 서로 이웃하여 오랜 역사를 지나면서 많은 문화를 나누어 가져온다. 넓게 보아서 하나의 큰 문화권, 즉 중국문화권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밀접한 관계를 가져 온 중국의 무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무연구에 필수적이다. 무가 한국의 기층종교이며 고대국가의 종교였다는 주장은 몇 조각 사료에 의존하고 있을 뿐, 그 구체적 모습의 이해는 물론, 그 사실의 확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것을 위해서 고고학, 언어학, 비교민속학 등의 폭넓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지만, 또한 비교종교학의 관점에서 중국과 우리의 무를 비교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