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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왜 양명의 제자가 되었는가 - 동운과 한정의 예 -

        전병술(田炳述) 한국양명학회 2020 陽明學 Vol.0 No.56

        동운(董澐, 1457-1533)은 왕양명(1472-1529)의 제자고, 한정(韓貞, 1509-1585)은 왕양명의 제자인 왕간(王艮, 1483-1541), 왕벽(王襞, 1511-1587)의 제자다. 양명은 30여 년간의 강학을 통해 수천 명의 제자를 두었는데, 가장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며 사제의 연을 이은 사람은 동운과 왕간이라 할 수 있고, 양명 못지않게 많은 제자를 거둔 왕간의 제자 가운데 가장 극적인 장면이 연출된 것은 한정과의 만남이다. 시인 출신의 동운은 57세 때 열다섯살 아래인 양명을 만난 후 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도부(陶夫) 출신 한정은 24세 때 왕간을 만난 후 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동운은 개인의 취향과 늦은 시작으로 인해 체계적인 저작을 남기지 않았고, 한정은 실천궁행에 매진하며 300여 편의 시를 지었을 뿐 이론체계를 세우지 않았다. 동운과 한정 둘의 학문에 체계성이나 독창성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론이 체계적이지 않음이 오히려 생생하게 다가올 수 있고, 학문적 성취보다는 생애 편력이 더 심금을 울릴 수 있는데, 동운과 한정이 이에 해당한다. 동운과 한정 두 사람 다 측은지심이 남달랐으며 부귀공명이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내면에서 나오는 자신의 소리를 온몸으로 실천했다. 다만 시인으로서의 자유로운 정신을 지닌 동운은 공자의 ‘종오소호(從吾所好)’의 정신을 구현하면서 유ㆍ불의 경계도 넘어섰고, 한정은 초지일관 유학의 테두리 안에서 송명 유학자들이 추구한 ‘공안락처(孔顔樂處)’ 정신을 구현했다. Dong-yun(董澐, 1457-153314, 1457-1533) is a disciple of Wang-yangming(王陽明, 1472-1529), and Han-zhen(韓貞, 1509-1585) is a disciple of Wang-gen(王艮, 1483-1541) who is a disciple of Wang-yangming. Wang-yangming had thousands of disciples after more than three decades of lectures. Among the disciples, Dong-yun and Wang-gen became Wang-yangming’s disciple most dramatically. In addition, Hang-zen became the disciple of Wang-gen, who had as many disciples as Wang-yangming, most dramatically. After meeting Wang-yangming, Dong-yun at the age of 57 turned from poet to confucian scholar and Han-zhen at the age of 24 turned from potter to confucian scholar after meeting Wang-gen. Dong-yun did not leave a systematic work due to his personal tastes and late start, and Han-zhen only wrote about 300 poems while concentrating on the practice and not to set up a theoretical system. There is a lack of structure or originality in the studies of Dong-yun and Han-zhen. However, the fact that the theory is unsystematic may seem rather vivid, and that life-long devolution may strike a chord more than academic achievement, which is equivalent to Dong-yun and Han-zhen. They were both very compassionate. Dong-yun not only repeatedly distributed his wealth to his siblings, but also tore up his debt certificate so that the rest of the debtor’s family wouldn’t get involved with the debt when the debtor died without paying off his debts. Instead of turning to the plight of ordinary people, Han-zhen did his best to help them through his whole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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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교의 종교성 연구

        전병술(田炳述) 한국양명학회 2006 陽明學 Vol.0 No.16

        이 논문은 유교만이 갖는 특수한 형태, 즉 종교와 학문 그리고 문화적 특징을 모두 담보하는 유교의 특수성을 종교와 철학의 구분을 통하여 명확히 설명해보고자 노력한 글이다. 현대 유학을 전공하거나 혹은 유학에 관심을 가진 학자들은 근대 이후 서구 과학문명으로부터의 개인주의 문화를 받아들인 점을 비판하면서, 유교가 갖는 고유한 人文精神을 부각시킴으로서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극복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유교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주장일 수도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가족중심주의나 연고주의 혹은 지역주의에서 출발하는 유교문화가 비민주적인 정의 실현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유교문화라는 단어 안에서도 종교적 의미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점을 감안하여 볼 때, 유교의 종교성과 철학적 특징들을 구분하기란 좀처럼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이에 유교의 종교성과 초월성을 양명학적 관점에서 비교 구분하고자 논지를 전개하였으며, 전통 유가에서 말하는 ‘聖人’의 정의에 따라 인간의 종교적 존재 의미로서 매듭지었다. 즉 유교에서 말하는 聖人은 도덕적으로 또는 인격적으로 완성자라 할 수 있으며, 세계의 질서를 세우는 창조주이고 나아가 세계 전체에 대한 궁극적 관심의 실천자로 표현된다. 그리고 인간이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점으로 살펴 볼 때, 유교에서의 인간이라는 존재 의미는 모두 종교적 인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KCI등재

        한국에서 생사학 건립을 위한 유가적 단초

        전병술(田炳述) 한국양명학회 2008 陽明學 Vol.0 No.20

        전통적으로 우리 농경사회에서는 자신이 평생을 거처하던 방에서 가족들이 둘러앉아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이함으로써 생을 마감하였고, 장례 의식은 마을의 축제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그러나 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자본주의 체제가 지배하는 현대사회는 죽음을 생명의 자연스런 과정이라고 여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현대 의료 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죽음을 많이 늦추었으나 그에 따른 고통 또한 증가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계로 가득 찬 중환자실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다. 따라서 죽음은 더욱더 우리의 일상생활로부터 벌어지고 터부시되고 말았다. 만일 우리가 죽음을 계속해서 피하려고만 하거나 죽음을 적으로만 간주한다면, 우리는 두려움과 불안이 한층 고양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죽음의 문제는 육체적 연명만의 문제가 아니다. 죽음은 본디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삶을 끝맺는 방식은 곧바로 그가 삶을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그러므로 죽어가는 사람이 마지막 단계를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보낼 수 있는지, 자기 자신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보다 폭넓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 生死學이다. 의학계에서는 이미 80년대부터 질병에서 삶으로의 복귀 못지않게 죽음에 대한 적응을 중요하게 여기고 도와주는 호스피스 운동이 일어났다. 장기 이식이나 신약개발의 기술이 증대되고 생명공학이 발달할수록 죽음에 대한 관심과 연구도 높아졌다. 안락사가 여러 나라에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고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이제 삶의 권리뿐 아니라 죽을 권리도 인권의 한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최근 우리 사회에 안락사라든가 연명 치료의 중단에 대한 관심과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의학적으로 치료하기 어려운 말기 환자를 단지 육체적으로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문제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또한 몇몇 전문가 집단에 의해 연구되고 있다. 따라서 사회전체로의 토론의 확장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생사학’은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의 생사학이 관심을 기울이는 문제는 개별실존이 부딪치는 개인의 죽음의 문제에 대한 가치관이나 결단 등을 초월하는 전반적인 것이다. 좁은 의미의 생사학을 삶과 죽음의 지혜에 대한 지침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현대인이 마땅히 지녀야 할 생활의 지혜, 즉 일상생활에 있어서 생사학의 실제적인 응용이라 할 수 있다. 삶의 문제와 죽음의 문제는 나누어 볼 수 없기 때문에 개별적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이론적 지침은 우리 삶과 죽음의 지혜를 심화시키고 풍성하게 하는데 커다란 도움을 준다. 죽음에 대한 물음은 결국 삶에 대한 물음과 연결된다. 삶의 의미는 태어나면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로부터 명확히 드러난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늘어가는 자살, 존속살해 등 반유가적, 혹은 반인륜적인 행동은 삶에 대한 의미의 상실에 기인한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준비와 삶에 대한 가치의 재정립이 함께 진행되어야 생사학의 본래 목적에 부합된다. 삶의 문제와 죽음의 문제는 나누어 볼 수 없기 때문에 개별적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이론적 지침은 우리 삶과 죽음의 지혜를 심화시키고 풍성하게 하는데 커다란 도움을 준다. 한 개인이 직면하는 삶과 죽음에 대해 토론하고 이론적인 길잡이를 제공하여 각 개인이 삶과 죽음에 대한 건전한 지혜를 배양하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지니도록 하고 성장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서도 밝은 죽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는 것이 生死學의 목적이라고 할 때 이는 이성적인 의의와 종교적인 의의를 포괄 할 수 있어서 하는데, 이 점에 서 유가의 體認의 학문은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도덕적 주체임을 자각하고 삶에 대한 견고한 신념이 서게 되면 궁극적인 인생의 목표를 갖출 수 있고 자신의 삶에서 겪게 되는 어떤 고난과 사명도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죽음을 직시하고 타자의 죽음도 보다듬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생사학은 철학을 포함하여 심리학ㆍ의학ㆍ간호학ㆍ교육학ㆍ문화인류학ㆍ사회학ㆍ신학 등 각 분야의 학제적 연구로 이루어져야 하고 죽음의 이해를 통하여 삶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해야 한다. 본 논문은 이러한 학제적 연구를 통한 사회전체로의 확장을 위하여 동양철학, 특히 유학에서의 삶과 죽음을 조망하여 한국에서의 생사학 건립에 하나의 단초를 제공함을 목적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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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령과 치유의 관점에서 본 나여방의 사상

        전병술(田炳述) 한국양명학회 2008 陽明學 Vol.0 No.21

        주자학과 다른 양명학의 특정 가운데 하나는 대중과의 호흡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본다면 몇몇 선각자의 권위나 경전, 혹은 외부 사물에서 진리를 찾지 않고 각 개인의 내면에서 찾을 것을 주장하였고, 진리의 내용 또한 저 위에 있는 (우주에 관한)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현실 생활에 관한 것이었다. 계로의 죽음에 대한 물음의 답인 “삶도 아직 모르는데 어떻게 죽음을 알겠는가?”라는 공자의 말은 이후 유가를 죽음에 대한 해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 유가가 오직 삶의 문제에만 천착하게 만들었고, 따라서 지극히 현실주의적이라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키게 되었으며 이 점이 죽음 앞에서 나약해질 수 밖에 없는 대중들과의 거리감을 더욱 넓혔다고 할 수 있다. 유가의 근본적인 목표는 누구나 실천을 통하여 성인의 길에 들어서는 데에 있다고 할 때, “길거리에 넘쳐나는 사람들 모두가 성인이다[滿街都是聖人]”라는 양명학자들의 구호는 당시 대중들에게 신분이나 처한 환경을 떠나 누구나 聖人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는데, 융의 표현을 빌자면 ‘모든 인격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임(selfhood)과 자기실현의 상태를 달성하는 것’이고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을 통하여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화함으로써 인간은 자기 자신의 본성과 보다 조화된 생활을 할 수 있다.’ 라는 가르침을 전파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이루기 위한 방법을 먼 곳에서 찾지 말고 일생생활의 경험, 특히 갓난아기[赤子]때의 모습에서 찾을 것을 주문하였다. 성장한다는 것은 천진난만함에서 벗어나 욕망의 굴레에 들어섬을 의미하고, 전통적으로 유가에서는 욕망의 억제를 통한 인격의 완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욕망의 제거는 결국 윤리적 영역에 머물 수 밖에 없고, 윤리적 영역에서 천진난만한 즐거움을 얻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아, 사는 것이 정말 재미없네!”라고 한탄할 때가 있다. 개인의 삶을 이끌어가는 궁극적인 힘이 ‘의미’라는 전제에 동의한다면, 그것이 어느 시점이든 이 한탄은 자신의 삶에서 의미의 부재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왜 재미없지?”, “어떻게 하면 재미를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물음으로 이어지는데 이것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고 자각의 문제이다. 자각된 내용은 실천을 수반해야만 한다. 그리고 실천은 반드시 내면적 확신을 통한 기쁨으로 이어져야 한다. 유가에서의 삶의 의미는 자신의 본성을 자각하고 관계 속에서 가정에서 작은 동아리로 사회 전체로 실천하면서 확충하다 보면 최후에는 우주와의 일체감을 느끼게 되고 이 일체감에서 존재 의의와 희열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희열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본래 가지고 태어난 것이고 이 점에서 본래 모습을 회복하면 된다는 것이 나여방의 생각이었다.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良知’를 실천하기만 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양명학의 선언은 물론 내면의 도덕적 자각과 사회적 실천이라는 교화의 영역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이를 통하여 聖과 凡, 貴와 賤의 울타리를 넘어서 서로가 평등한 입장에서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명대 학문의 또 다른 특징 가운데 하나는 죽음을 직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李贄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자신을 학문의 세계로 이끌었다고 술회하며 학문의 궁극적인 목적은 生死大事의 해결에 있다고 하였듯 명대에 이르러 죽음을 다시 불러내었다. 그리고 학문의 최후의 경지를 ‘즐거움’이라고 한 태주학파의 전통 속에서 ‘즐거움’은 모든 불안이 사라진 상태를 포함한다고 할 때, 궁극적으로는 죽음의 불안이 사라진 상태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 KCI등재후보

        유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

        전병술(田炳述)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 2011 생명연구 Vol.22 No.-

        동양철학의 특질을 ‘생명의 학문’이라 규정하는 견해가 있다. ‘생명의 학문’이란 각 개인의 삶의 역정에서 절실한 체험을 바탕으로 특정한 원칙을 세우고 삶의 지표로 삼은 다음 그에 의거하여 평생 실천한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주체성’과 ‘내재적 도덕성’으로 규정한다. 유가에서는 삶의 지표를 초월적인 신의 영역에 의탁하지 않고 인간 내면에서 주체적으로 우러나오는 힘에 의지하는데, 이는 ‘인의’(仁義)로 대표되는 주체적 덕성이 보증한다.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따라서 유교에서는 먹고 마시고 입는 자연적인 생명보다는 사회적 가치를 더욱 근본적으로 여긴다. 그러나 ‘죽음학’의 관점에서 볼 때 생명에 대한 유가적 태도는 삶에의 집착과 죽음의 회피라는 부정적 태도를 띠기도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생사학’ 개념 하에 ‘생명의 학문’을 ‘우리 실존 주체성의 생명에 대한 체험과 탐구 및 이론적 심화’라는 의미로 확대하여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학문을 건립할 수 있다. 包括儒ㆍ彿ㆍ道, 東方哲學的特質可以稱爲‘生命的學問’. 做爲儒ㆍ彿ㆍ道三敎, 其所以爲‘敎’, 也正在其以提供生命的根本方向, 以安頓吾人生命而爲‘敎’. 此中, 無論是儒家以聖人爲人類生命的最高價値典範, 抑或是道家的眞人ㆍ至人ㆍ神人, 佛敎的佛, 都是以生命最圓滿的完成爲其標的. 這世界對東方哲學而言, 首先乃是一生命活動與自我實現時所經歷的場所. 當代新儒學者牟宗三對中國哲學的特質, 用一句最具槪括性的話來說, 特重‘主體性’(Subjectivity)與‘內在道德性’(Inner-morality). 儒ㆍ彿ㆍ道三大主流學問當中, 儒家把主體性復可以特殊的規定, 而成爲內在道德性, 卽成爲道德的主體性. 儒家把生命的指標不依歸超越這世界而主宰人的神, 依據以‘仁義’代表的內在的道德主體性. 以‘禮樂’爲象徵的人文制度, 也依據道德主體的實踐才會妥當的作動. 不然整個文化墮落於疲弊, 奪取個人安身立命的場所. 人是活着共同體裏, 實現價値的存在. 所以儒家比其自然生命, 把實現社會的價値視爲更根源的生命. 在這視野, 一生最恐懼的不是個體的死亡, 而是實現不了眞正的價値. 所以自然生命與價値觀相衝時, 毫不遲疑不舍一條命的. 子路問事鬼與死的問題時, 孔子回答說“未能事人, 焉能事鬼”, “未知生, 焉知死”, 就是闡明儒家的價値取向何在. 以後整個儒家生死觀, 從‘義命對揚’的格局, ‘捨生取義’與‘招魂再生’兩條路進行的. 儒家的生死觀, 從‘死亡學’(Thanatology)的 觀點看, 可以說帶着執着於生而回避死的負面的方向進行的. 爲了克復這點, 傅偉勳在‘生死學’的理念之下, 對‘生命的學問’這個詞彙重新解釋, 把生命的學問解釋爲我們實存主體性對生命的體認與探究, 來提唱了脫生死的智慧, 並以此來探討現代人的死亡問題及其精神超克, 以及生死的終極意義.

      • KCI등재

        ‘오여점야(吾與點也)’와 선비들의 여가

        전병술(田炳述) 새한철학회 2013 哲學論叢 Vol.71 No.1

        네덜란드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1872-1945)가 1938년『호모 루덴스』를 출간하면서 ‘놀이’가 문화의 한 축, 혹은 문화의 근원으로 등장했다. 그의 목적은 역사적인 접근 방법을 통한 놀이 개념과 문화 개념의 통합에 있었다. 정보시대에 접어들면서 ‘여가학’ 개념이 등장하였는데, 이는 평생 노동의 가치에 매몰되어 살아가던 인간이 기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고 방황하게 되었다는 판단 하에 잘 놀기 위한 장과 방법을 마련해 주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현대 ‘놀이’, 혹은‘여가’ 개념은 노동과 상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나아가 ‘노동과 경제활동의 부산물’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피터 드러커는 21세기를 ‘지식 사회’로 규정하여 산업사회의 노동자와 구별하여 ‘지식 노동자’ 시대로 부른다. 새로운 지식 노동자 시대는 산업시대의 도구적 인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스티븐 코비는 ‘전인적 패러다임(Whole-Person Paradigm)’이라고 부르기를 제안하였는데, 그 내용은 ‘전인적 패러다임’은 동양사유에서 ‘심신일여(心身一如)’에 바탕을 둔 공부의 경지와 유사하다. 어느 날 공자가 제자들의 포부를 물었고, 몇몇 제자들이 각각 정치적 경륜을 펼치겠다는 답을 한데 반해 음악에 심취해 있던 증점이 거문고 연주를 멈추고는 늦봄, 젊은이 몇 명 데리고 봄바람을 쏘이며 시 읊고 유유자적하게 살고 싶다고 하였고, 공자도 증점의 뜻에 동의한다[吾與點也]는 내용이 『논어』에 나온다. 이후 유가전통에서 ‘오여점아(吾與點也)’라는 말은 현실참여의 상대개념으로서 지식인 계층의 여가활동을 상징하는 대표적 어구가 되었다. 유가전통에서 학문활동은 이론적 탐구에만 그치지 않고, 공부실천을 포함하는데, 그 안에 증점의 정신도 들어 있다. 따라서 공부와 놀이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의 선비들도 유산, 완상, 시작 활동 등을 통하여 여가를 즐겼는데, 선비들의 여가활동은 여유와 치유, 나아가 인격연마의 방편 가운데 하나였다. 과거 산업사회 육체노동자에 있어서 ‘여가’가 ‘노동’과 대척점에 서 있었다면, ‘지식노동자’로 명명되는 현재, ‘여가’개념을 ‘노동’과 상대되는 개념이 아닌, 함께 어우러지는 개념으로 보아야 ‘여가’의 함의를 풍성하게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과거 ‘지식노동자’라고 할 수 있는 우리 선비들의 여가활동은 단순한 휴식 개념에 치우쳐 있는 현대인들의 여가생활을 자아실현의 길로 인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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