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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문학 : 근대 척독자료집 『척독완편(尺牘完編)』의 출판 현황과 배경

        박해남 ( Hae Nam Park ) 반교어문학회 2012 泮橋語文硏究 Vol.0 No.32

        근대 척독자료집의 근대적인 출판 현황과 배경을 살피기 위해, 『척독완편』과 그 후속작인 『신찬척독완편』과 『증보자전척독완편』을 대상으로 하여 논의를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존재 여부에 대해 설이 분분했던 1899년 판 필사본 『척독완편』의 실물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1905년 판 『척독완편』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출판된 최초의 근대 척독자료집이라는 것을 검증한 것도 또 하나의 성과라 하겠다. 그리고 2종의 1909년 판 『신찬척독완편』이 존재한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된 사항이다. ``척독완편``류는 필사본 『척독완편』(1899년)이 1905년에 근대 인쇄기술을 활용하여 『척독완편』으로 간행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이어서 1908년에는 『신찬척독완편』이, 1912년에는 『증보자전척독완편』이 출간되었다. 이렇게 지속적인 출판이 가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편지를 주고받는 기회가 늘어난 사회변화 속에서 척독자료집을 필요로 하는 독자층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한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척독완편』이 시대의 추세에 따라 한글로 토를 단다든지 자전을 부기한다든지 하는 변화를 시도하지만, 기본 골격에서 한문 투를 계속 유지하였다는것은 이 책의 출간 의도가 한자에 기반을 둔 전통 지식의 전달에 비중을 두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이 책의 지속적인 출판을 통해 당시 한글 사용자가 증대한것은 사실이나, 발신자나 수신자 어느 한 쪽이 여전히 한자에 기반을 둔 척독문화에 익숙한 부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척독완편``류의 책은 구문물과 신문물이 혼재하던 전환기의 척독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This thesis intended to know the publication background of Cheo-dokwan-pyeon, the collection of short letters, printed from the beginning of 20th century. In the process of study, finding the original version of Cheo-dok -wan-pyeon which had edited by Choi, Sung-hak in 1899 was most notable result. And it proved that Cheo-dok-wan-pyeon(1905) was the first commercial version using typography. Additionally, two types of new Cheo-dok-wan-pyeon printing in 1909 were discovered. On changing the trend of times, the increase of readers were primary factor in sustainable publication of Cheo-dok-wan-pyeon. The successive publication of this book was a symbolic representation which tried to fill the gap between old generation and new one on communicating with 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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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별(李鼈) "육가(六歌)"의 연원재고(淵源再考)

        박해남 ( Hae Nam Park ) 한국시가학회 2011 韓國 詩歌硏究 Vol.31 No.-

        지금까지 李鼈의 ``六歌``에 대한 연원을 논의하는 경우 대부분 이 작품이 ``육가``계 漢詩의 영향을 받아 성립되었다는 전제를 내세우고 있다. 이별의 ``육가``가 金時習의 <東峯六歌>의 영향을 받았고, <동봉육가>는 南宋代文天祥의 <六歌>, 나아가 杜甫의 <同谷七歌>와 연관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작품을 놓고 본다면 이들 사이의 일관된 연관성을 제시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이 논문의 결론이다. 두보의 <同谷七歌>와 문천상의 <六歌>, 김시습의 <東峯六歌>는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七歌``나 ``六歌``계의 한시가 7언을 기본으로 하면서 몇 글자의 드나듦이 있고 전체가 8구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별의 ``육가``는 정형화된 5언 6구로 정형적으로 번역되어 있어 형식에서의 영향을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 <동봉육가>가 화자의 처연한 심정을 노래하면서도 "부질없이 수염만 쓰다듬는" 소극적 태도를 보임에 반해, 이별의 <육가>는 이황이 "세상을 희롱하고 不恭한 뜻이 있다"는 평가를 내린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신의 은거에 대해 강한 自負를 나타내는 등 내용에 있어서도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김시습의 <동봉육가>와 이별의 ``육가`` 사이의 직접적인 영향 관계를 논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나아가 이별의 ``육가``에 대한 연원으로서 김시습의 <동봉육가>←문천상의 <육가>←두보의 <동곡칠가>를 설정하는 것은 폐기하거나 새로운 관점에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Most treatises on the origins of Yi Byul`s six stanzaic poems proceeded from the wrong premises that his works had been affected by the influences from the six stanzanic types of Chinese poetry. Especially, these treatises made a point of the effect of Kim Si-sup`s <Tongbong Six Stanza>. In this research came to a conclusion that it is difficult to show the strict correlation between Korean six stanzanic poems and Chinese ones. It was because they were quite different from form and substance. As a example of Chinese six stanzanic poetry, <Tongbong Six Stanza> was basically made of seven characters to a line and eight verses. However, Yi Byul`s six stanzaic poems consisted of five characters to a line and six verses. In substance, the former song passively the sad story of storyteller while the other spoke for the author`s self-conce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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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북아시아의 사회적 연대와 인식공동체

        박해남(Park, Hae Nam) 비판사회학회 2020 경제와 사회 Vol.- No.125

        이 글은 동북아시아 담론, 특히 대안적 동북아시아론이 현실 변화 가운데 노정한 한계를 검토하고 지역주의의 목표와 실천에 관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1990년대 동북아시아의 경제성장과 협력의 증진, 사회주의권의 개방, 포스트담론의 유행 속에서 등장한 대안적 동북아시아론은 2010년을 넘어서며 쇠퇴기를 맞는다. 한반도의 분단 문제 해결을 목표로 삼고 사상가 연대를 실천으로 조직했던 이들의 논의는 역내 갈등의 대두와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방 중단, 경제성장의 둔화와 국가의 역할 강화 등의 현실 변화 속에서 한계를 노정했다. 국민국가 중심성, 대안의 비구체성과 실천의 모호성 등이 그것이다. 이 글은 삶의 유동화와 격차의 확대, 사회적 배제 등 새로운 사회문제가 가시화되며, 내셔널리즘이 강화되고 국가의 역할이 강조되는 현실 속에서 이러한 사회문제들의 해결과 대안적 동북아시아론을 접속시키기 위해 ‘사회적 연대’를 새로운 지역주의의 목표로 제시했다. 그리고 국민국가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강대국 지식의 일방적 전파가 아닌 수평적 소통을 추구하는 실천의 플랫폼으로 ‘인식공동체’를 제안한다. This article aims to review the alternative regionalism discourse about Northest Asia and to propose alternatives goals and action plan for promoting new alternative regionalism taking account of the change of the situation around 2010. The alternative regionalism discourse, which emerged in the mid-1990s based on the changes in regional situation, such as growth of economy and cooperation in Northeast Asia, the opening of the socialist bloc, and growing influence of the post modernity theories, had a lot of influence on the academics and the civic groups during the 1990s and 2000s. However, the situation in Northeast Asia changed as nationalism returned after the financial crisis in 2008 and opening of socialist countries in the region suspended. This situational change revealed the limitations of the discourse like nation-state centrism, ambiguous goals and action plans. Because the theorists, most of them Changbi, was based on the positive outlook for the opening and cooperation of Northeast Asian states. Taking into account the new social problems such as the instability of life, the widening of gaps and social exclusion, and the return of nationalism, the article argues that the resolution of new social problems and the alternative regionalism should be connected. This study suggests ‘social solidarity’ as the goal of new alternative regionalism and ‘epistemic community’ as a platform for action plan in which the knowledge is relatively free from the nation-state and horizontal communication is probable.

      • KCI등재후보

        근대 대학에서의 국학 전통 양상과 의미

        박해남 ( Hae Nam Park ) 성균관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4 人文科學 Vol.0 No.53

        일제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해방된, 특히 대학이라는 연구 중심의 공간에서는 한동안 억눌렸던 우리 것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활발하였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여러 자료를 검토한 결과 실상은 그 기대에 부합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좌우의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한 연구자들의 분산도 한 이유가 되겠지만, 근대 대학의 설립과 운영이 서양 학문의 수용에 초점을 맞춘 미 군정청의 교육 정책을 따라야만 했던 현실 정치적 상황이 더욱 결정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도남 조윤제를 비롯한 개별 연구자들의 노력과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과 같은 대학 소속 연구기관의 활동 등을 통해 국학에 대한 관심과 연구의 흐름이 면면히 이어졌고, 이런 전통이 197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증대하는 우리 것에 대한 관심과 연구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In ordinary, it is natural that the Korean studies have taken more active interests and research activity in space of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Contrary to public expectations, there were not much notable research results from traditional Korean studies in modern universities. This involved in the scattered scholars because of an ideology confrontation in some ways. But it was more critical that modern universities must complied with education policy of the U.S Military Government in Korea(USAMGIK) which based on Western studies. However, the stream of interests and research has continued on without ceasing until now due to a lot of effort of individual researcher and university research institutes. These activities were assessed as a foundation of an explosion of interests and researches in the Korean studies starting in the 1970s.

      • KCI등재

        척독 교본을 통해 본 근대적 글쓰기의 성격 재고

        박해남 ( Hae Nam Park ) 반교어문학회 2014 泮橋語文硏究 Vol.0 No.36

        지금까지 많은 연구들이 척독 교본을 ‘근대적 글쓰기’의 한 예로 삼아 설명하였다. 하지만 근대 척독 교본의 경우 대부분은 ‘언문일치’ 등으로 대표되는 근대적 글쓰기와는 상관성이 약하고 오히려 전근대적인 한자(또는 한문)에 기댄 경우가 더 많았다. 겉으로 봐서는 편지의 유통을 촉진하는 등의 근대적인 성격을 가졌을 것 같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내용이나 표기 수단에 있어서 상당 부분을 전근대성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척독 교본을 근대적 글쓰기의 증좌라고 단선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 이 논문의 일차 결론이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신찬국문가뎡간독』이나 『신찬국문간독』의 경우로 보자면 다른 한편에서는 분명 한글로 된 편지의 보급을 강조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척독 교본의 맥이 계속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으로 보건대 상업적인 측면에서도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후의 출판 상황으로 보자면 한문에 기반을 둔 척독 교본이 대세였다. 또한 중세적 산물이라는 척독 교본의 경우 근대 시기에도 방각본으로 출판이 된 것으로 보아 척독 교본만으로 중세와 근대를 구분하기는 어렵다. 물론 출판의 형태나 내용에 있어서 일정 정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고는 있지만 중세의 대체품 또는 극복의 결과로 근대 척독 교본이 등장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것이 또 하나의 결론이다. The modern letter textbook has been considered as a example of modern writing in many researches. However, modern letter textbooks not necessarily related with modern writing represented the identity of the written and spoken language. It was written by chinese letters not Hangeul. Active commercial publication of modern letter textbook mostly depended on premodern charac teristics in respects of content and means of writing. So, it is difficult that the modern letter textbook regards as a example of modern writing. Around the same time, many Hangeul letter textbooks were published also. It was so complicated situation in the course of transition from premodern to modern. In a word, the publication of modern letter textbooks represented the change of letter culture. It was not replacement of medieval letter textbook but result of transfer to modern times.

      • KCI등재
      • KCI등재

        고전문학 : <악장가사본(樂章歌詞本) 어부가(漁父歌)> 재고(再考)

        박해남 ( Hae Nam Park ) 반교어문학회 2010 泮橋語文硏究 Vol.0 No.28

        `어부가`는 사대부들의 가치관-특히 출처(出處)의 태도와 관련하여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다수의 작품 창작이 이루어졌다. 이는 복잡다단한 현실에서 벗어나 초월적 공간에서의 분방한 생활을 꿈꾸는 인간의 보편적인 이상을 어부의 삶에 기대어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그 중에서 『악장가사』에 실려 있는 `어부가`를 주 대상으로 다루었다. 지금까지의 <악장가사본 어부가>를 다룬 연구를 보면 어부가의 전반적인 흐름 속에서 부분적으로 언급한 경우가 대다수이고, 이 작품을 독자적으로 분석하고 다룬 경우는 많지 않다. <악장가사본 어부가>에 대한 여러 오해를 불식 시키기 위해서도 논의의 중심이 작품 자체에 대한 분석에 놓여질 필요가 있다. 이런 문제인식에 따라 이 논문에서는 <악장가사본 어부가>의 형성 시기와 배경, 작자, 구성 방식 등에 대해 차례로 다시 살폈다. So many types of <Erbu-ga> which means the songs of fisherman, had been written in China and Korea for a long time. Because the intellectuals, specially bureaucrats, yearned for living freed from realistic restraint, they wrote the life of fishermen to express their long-cherished desires. An subject of this study is to make clear the author and background, internal structure of <Erbu-ga> contained in Akjang-gasa. The work was collected one or two phrase from existing chinese poetry not newly written by specific author. And this <Erbu-ga> was shaped and sung at the later of Koryo dynasty. It was used well-known chinese poems and added Hangul postpositional words and phases which exciting hearer`s mind. So it is not only different from original poem but also create new nuance in poetic expression.

      •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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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적 근대성과 개신교

        박해남(Park, Hae-nam) 한국종교사회학회 2010 종교와사회 Vol.2 No.1

        이 연구는 식민주의를 정치적 지배가 아닌 문화적이고 지적인 담론의 형태로 이해하는 가운데, 서구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된 대한제국시기 개신교 선교 과정과 그 결과 형성된 한국에서의 개신교 윤리 속에서 이러한 식민주의가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한 선교사들의 절대 다수는 미국 출신이다. 이들의 출신 배경인 미국의 개신교는 경제적 우/열을 도덕적 선/악과 종교적 성/속의 차원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미국 개신교의 윤리관은 조선에 온 선교사들에게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이들은 조선이라는 국가가 종교적, 도덕적 차원에서 타락한 상태에 있다고 진단하고 이러한 타락의 결과 서구와 같은 문명 또는 문화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선교활동을 통해 개개인들의 도덕성과 종교성이 고양될 때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진단하였다. 하지만 조선의 개신교인들은 선교사들과 달리 개신교를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심 그 자체를 높이는 것이 개신교의 윤리라고 받아들였다. 또한, 개신교회를 국가의 정책에 개입하는 활동을 하는 도구로 활용하려 하였다. 조선인 개신교인들의 윤리 이해와 교회 활동에 대하여 비판적이었던 선교사들은 1900년대 초반부터 부흥운동을 통하여 조선의 개신교인들이 자신이 바라는 윤리관을 갖고, ‘정치적 활동’으로부터 멀어지도록 만들려 시도 하였고, 이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뒤, 조선의 개신교인들은 모든 사회적 문제들에 대하여 개인적 차원의 도덕성과 종교성의 문제로 환원하여 해석하는 경향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경제적 우/열을 도덕적이고 종교적 차원의 우/열로 해석하는 식민주의적 의식을 스스로 재생산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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