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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 11년(1874) 『濯纓先生年譜』간행의 의미

        김영두(Kim Youngdoo) 한국사학회 2017 史學硏究 Vol.0 No.127

        이 논문은 고종 11년(1874) 탁영 김일손의 생애를 기록한 연보가 간행된 경위의 검토, 연보의 내용 검토를 통한 진위 판별, 연보의 간행이 가지는 사회적·사상적 의미의 탐구를 목적으로 한다. 성종 때 사관으로 활동하였던 김일손은 세조 때의 일을 자신의 사초에 기록하였고, 연산군 때 그의 기록으로 무오사화가 촉발되었다. 김일손은 처형되었고 그가 남긴 수많은 시와 문장들은 흩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중종반정 이후 복권되었고 조선 후기에 충신으로서 추숭되었다. 그런데 고종 11년(1874)에 김일손의 조카인 김대유가 편집하였다는 『탁영선생연보』의 원고가 발견되었다. 연보는 김일손에 대한 귀중한 기록으로 평가받으며 여러 지역 후손들의 협력 아래 그해 서울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청도에서 다른 판본의 연보가 간행되었는데, 청도판 연보는 서울판 연보에서 연보를 보존해 온 가계에 대한 설명이 삭제된 채 간행되었다. 한편, 연보의 내용을 실록과 대조하여 보면 김일손의 관직 이력이나 교유 관계에 대한 설명에서 차이나는 부분이 적지 않다. 특히 『연산군일기』에 실린 김일손 심문 기록과 연보에서 설명하는 그의 교유 인물사이에는 차이가 뚜렷하다. 연보의 기록에는 김일손과 생육신의 교유가 강조되어 있는데, 생육신 개념이 18세기에 형성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연보는 그 내용에 서술되어 있는 것처럼 16세기에 편찬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연보의 편찬 시기는 18세기 이전으로 소급될 수 없다고 보인다. 연보의 간행 경위와 내용에 대한 검토 위에서 판단해 보면, 연보는 조선 후기 김일손의 후손으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종계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한 근거로 만든 자료라고 생각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연보를 전해 받은 김대유의 동생 김대장의 장남 김갱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고종 39년(1902) 장례원은 연보를 근거로 당시까지 김일손의 종손으로 알려진 청도의 가계 대신 이 가계를 김일손의 종통으로 인정하였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 부계 중심의 가문 의식이 확립되었고, 아울러 사회경제적 변동으로 말미암아 실력과 부를 갖춘 신흥 세력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사회적 제약을 벗어나기 위해 갖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신분 상승을 도모하였다. 이를 위해 직접적인 가계 기록인 족보 외에도 다양한 자료를 조작하거나 창출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자료에 대한 사료비판은 이 시기 역사 연구를 위한 가장 기초적인 작업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조선후기 자료에 대한 사료 비판의 필요와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불철저한 면이 있다. 이 논문이 이러한 문제를 환기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This paper studies the chronology of Tagyeong Kim Il-son’s life to examine the details of its publication in 1874, the authenticity of the chronology through a content analysis, and the social and ideological significance of its publication. Kim Il-son was a “Sagwan (historical compiler)” during King Seongjog’s reign who recorded the events that occurred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 His records provided a reason for Muosahwa (the Literati Purge in 1498), during which he was executed. However, he was reinstated after the Jungjong Banjeong (King Jungjong’s restoration) and posthumously honored as a loyal subject in the late Joseon period. A manuscript of Tagkyeong Seonsaeng Yeonbo (the Chronology of Master Tagyeong’s Life), compiled by his nephew Kim Dae-yu, was discovered in 1874. Regarded as a valuable record of Kim Il-son, it was published that same year in Seoul under the collaboration of Kim’s descendents in various regions. Soon afterwards, another version of the chronology was published in Cheongdo. The Cheongdo version eliminated the explanation of the family line which preserved the chronology. Kim Il-son’s career history and friendship relations recorded in the chronology are quite different from the records of the Annals of Joseon Dynasty. Especially, there are notable differences between Yeonsangun Ilgi(Life of Yeonsangun) and the chronology regarding Kim’s friendship relations. His companionship with saengyuksin (six loyal subjects) is emphasized in the chronology. However, the term saengyuksin was created in the 18th century. Therefore, the chronology cannot have been compiled in the 16th century as claimed. It is highly likely that the chronology was created in the late Joseon period by the people who claimed to be the descendents of Kim Il-son to assert their legitimacy as the main line of descent. They claimed that they were the descendents of Kim Gaeng, the first son of Kim Dae-jang, the adpoted son of Kim Il-son. In reality, Jangryewon (Bureau of Ceremony) acknowledged them as the main descendent of Kim Il-son based on the hronology in 1902. Before the publication, the family in Cheongdo was known as Kim Il-son’s main descendent. In the late Joseon period, a family consciousness based on the paternal line was established. Besides, a new group of emerging powers appeared due to the socio-economic changes. They attempted to raise their social status by all means in order to be rid of their social constraints. It is assumed that they fabricated various documents including their genealogies. Critical assessment of the authenticity of historical documents would be the most basic task for the historical research of that period. However, the awareness of the necessity and importance of source criticism regarding the historical records of the late Joseon period is still quite low. The paper will serve as a momentum to call attention to this problem.

      • KCI등재

        明宗代乙巳士禍와 『續武定寶鑑』의 편찬

        김영두(Kim Youngdoo) 한국사학회 2014 史學硏究 Vol.- No.116

        이 논문은 명종 3년 간행된『속무정보감』의 편찬 경위와 내용을 검토하고, 그것을 통해 조선시대 관찬 역사서 편찬 전통의 특징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속무정보감』은 예종 때 간행되었던『무정보감』의 전례를 이어, 성종대 이후 국가의 군사 활동이나 반란 사건에 대한 역사를 편찬한 역사서이다. 하지만 사실상 그것은 명종대 집권 세력이 자신의 권력 기반을 굳히기 위해 벌였던 을사사화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간행한 역사서였다. 현재 남아있는 『속무정보감』은 3종인데, 5권 2책 체제로 되어 있는 조선사편수회본 및 규장각본 『속무정보감』은 명종 때 처음 간행되었던 것을 광해군 때 다시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려대도서관본『속무정보감』은 전체 8권 중 제8권만 남은 영본이지만 명종 때 간행된 초간본『속무정보감』인 것으로 생각된다. 『속무정보감』 8권은 명종대 을사사화 및 그와 관련된 여러 사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애당초『속무정보감』의 편찬 목적이 을사사화 이후 집권 세력이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었음을 생각한다면, 고려대도서관본이야말로 편찬의 목적에 부합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하겠다. 『속무정보감』8권의 내용을『명종실록』의 그것과 비교해 보면, 두 역사서는 모두 춘추관에서 작성된 기록을 주요 자료로 삼아 편찬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속무정보감』은 을사사화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편찬되었던 것인 만큼, 편찬 과정을 거치면서 집권 세력의 정치적 편향성이 그대로 내용에 반영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을사사화에 대해서 사대부 사회의 비판 여론이 넓게 형성되어 있었다. 따라서『속무정보감』은 간행 당시부터 여러 비판에 직면하였다. 결국 사림 세력이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한 이후 이 책은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았고 점차 역사에서 사라지는 운명을 맞았다. The study aims to explore the compilation process and the contents of Sokmujungbogam(續武定寶鑑) and examine the characteristics of compilation practice of court-ordered history books in Choson dynasty. Sokmujugbogam is the book which was written about military activity or rebellion occurred against government after King Sungjong, The book, which was followed by Mujungbogam of Yejong reign, was published in order to assert the legitimacy of Eulsa sahwa which was occurred to reinforce Soyun(小尹)’s political power. Currently there are three different versions of Sokmujungbogam. One, known as Chosonsa pyonsuhoe or Gyujanggak version which is composed of five volumes and two books, is presumed to be re-published during Kwangheagun’s reign. Another book is, which is called Korea University Library(KU library) version which was left only volume 8 in the original eight volumes, is thought to be firstly-published version which had been once compiled in King Myungjong reign. Sokmujungbogam volume 8 dealt with Eulsa sahwa of King Myungjong and other associated political events. Considered the original purpose of Sokmujungbogam to assert the legitimacy of the ruling force, KU library version is the most closed version to its original purpose. If compared to Myungjong sillok, both books are based on the records written by Chunchugwan(春秋館). However, the political bias were deeply involved in the content of the Sokmujungbogam because it was published to fortify the legitimacy of the ruling power. At the time, as the criticism of Eulsa sahwa were widely spread in world, Sokmujungbogam was faced with a number of criticism when it was published. As a result, the book was ignored by Sarim and finally disappeared from history after they became a ruling power.

      • KCI우수등재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와 영업보상 및 임대차기간보장의 관계

        김영두 ( Youngdoo Kim ) 법조협회 2017 法曹 Vol.66 No.5

        2002년부터 시행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점포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의미있는 역할을 해 왔다. 그리고 상임법의 시대적 요구에 따라 점차적으로 보호의 범위를 넓혀 왔다. 특히 2015년 상임법 개정안은 5년의 기간이 경과하여 임대인이 새로운 임차인으로부터 권리금을 수령하거나 높은 차임을 받기 위해서 갱신거절을 하는 경우에 임차인이 권리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임대인의 갱신을 유도하거나 갱신을 거절하는 경우에도 영업가치를 회수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그런데 권리금 회수기회를 보호하는 규정이 상임법에 신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5년의 보장되는 기간을 연장해야 하고 재건축의 경우에 영업보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더 나아가서 권리금 회수기회는 5년의 임대차기간 범위내에서만 보호된다는 하급심 판결도 등장하고 있다. 이 모든 주장들은 상임법의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방안이 정착하지 못하였거나 보완되어야 할 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점포임차인을 보호하는 방안에는 일정기간 동안 임대차기간을 보장하는 방법, 영업이 존속하는 동안에는 임차권이 존속되도록 하는 방법, 임대인이 갱신을 거절하는 경우에는 임차인이 영업가치를 회수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우리나라 상임법은 일정한 임대차기간을 보장하면서 그 이후에는 권리금 회수기회를 보호하는 방법을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상임법의 보호방안은 프랑스상법의 규정과 취지가 동일하다. 따라서 5년의 보장기간 내에서만 권리금 회수기회가 보호된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그리고 상임법은 기간보장과 보장된 기간 이후에는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방안을 모두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5년의 보장기간을 연장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 만약 보장기간의 연장을 통하여 점포임차인을 더욱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면 우선적으로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방안이 제대로 작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통해서 점포임차인 보호를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임대인의 갱신거절을 억제하고 갱신을 거절하는 경우에도 임차인이 영업가치를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방안은 프랑스의 영업보상 방안과 그 취지가 동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업보상제도의 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방안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작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며, 영업보상방안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향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재건축의 경우에 영업보상제도의 도입을 주장하기보다는 현행 상임법의 규정을 보완하는 방법이 점포임차인의 보호에 더 적합하고 효율적이다. In Korea, the Commercial Building Lease Protection Act(“CBLPA”), which was enacted 2002, protected the commercial tenancy by allowing the tenant to request a renewal for 5 years from the entering the contract at the termination of the tenancy, which the landlord had no right to refuse. However this Act had failed to protect the business tenants from the unscrupulous landlords at the end of a tenancy. CBLPA, which was amended 2015 for the reinforcement of the protection of commercial tenancy, protected tenant’s opportunity to recoup business investment when the landlord refused the renewal of tenancy at the termination of the tenancy. The new option of CBLPA is similar to that of french commercial code Art. L145-14, which orders the landlord to pay compensation for the loss of the business of tenant in case of refusal of a renewal. Both options are inducing the landlord to renew a tenancy rather than to refuse. Even thought the landlord has a right to refuse to renew, the tenant has a chance to recover the value of goodwill when the landlord refuses to renew. Since the new option was adopted, there still are widespread arguments for the improvement of the defect in CBLPA. For example, some argue that the minimum length of 5 years should be extended to 7 or 10 years. Before the new option was adopted, the extension of minimum length of tenancy was the effective way to protect the commercial tenant, but for now the tenant has a chance to recover the value of the business if the landlord refuses to renew after 5 years of tenancy, the minimum length of tenancy becomes less important as a way of protection of tenancy. Also some argue that the rule for the compensation for the eviction of the premises in the case of reconstruction should be adopted in CBLPA. These arguments are based on the misunderstanding that the option of protection of the opportunity to recoup the business investment and the option of indemnity for goodwill are based on the same mechanisms for the protection of the goodwill of commercial tenant.

      • SCOPUSKCI등재

        Optimal Design of Cellular Structures with Void-Induced Anisotropy

        김영두(Youngdoo Kim),응웬콩홍퐁(Cong Hong Phong Nguyen),최영(Young Choi) Korean Society for Precision Engineering 2021 한국정밀공학회지 Vol.38 No.1

        Additive manufacturing (AM) had a significant influence on the geometry design of products. It became possible to replace the full solid material with cellular structures for the optimal design of AM parts. Various types of cellular structures have been developed and studied for different purposes. However, many studies have focused on an optimal design using cellular structures having near-isotropic properties, such as cube or honeycomb structures. This paper presents the effect of the anisotropic material property on the optimal design by generating cellular structure with anisotropic material property induced by internal void geometry. Kriging metamodel-based material property model is proposed for modeling anisotropy induced by the rotation of internal void. This material model is then applied to the optimal design process. Three types of void geometry, circular, non-rotating, and rotating elliptical void, are considered to demonstrate the effect of anisotropic cellular structure on the optimal design. Due to the anisotropy induced by complex internal void geometry, Kriging metamodel-based material property models are utilized as the material property model. The effect of the anisotropic property and the material property model on the optimized structures is confirmed through two numerical examples in the perspectives of structure performance and density distribution.

      • KCI등재

        실록 편찬에 나타난 세조 정권의 정당성 추구

        김영두(Youngdoo Kim) 한국사학사학회 2013 韓國史學史學報 Vol.0 No.27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9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이 논문은 비상한 방법으로 성립된 세조 정권이 자신들의 행동에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추진하였던 역사서 편찬과 그렇게 편찬된 역사서의 서술 방향을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단종·세조대 당시의 정치 투쟁은 세조 정권의 승리로 끝나고 왕조가 안정되었지만, 조선 사회의 지배층인 사대부 집단은 세조 정권의 역사적 정통성에 대해 도전을 계속하였다. 성종 때부터 숙종 때까지 이백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시기의 역사 인식에 대한 도전과 응전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러한 기억 투쟁의 양상을 검토하고 그것이 역사 서술의 태도와 내용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진행하는 일련의 연구의 시작으로서, 먼저 단종 세조시기 정치사에 대한 집권 세력의 역사 편찬 노력을 개관하고, 『노산군일기』와 『세조실록』에 나타난 집권 세력의 역사 서술을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예종 원년부터 시작된 『무정보감』 및 『노산군일기』와 『세조실록』의 편찬은 당시 정국을 주도하였던 세조대 훈신들의 영향력 아래에서 세조 정권의 집권 과정에 대한 승리자의 역사 인식을 반영하여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무정보감』은 이후 길게 이어진 역사 투쟁의 과정에서 세조 정권의 입장을 보존, 전승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무정보감』은 대체로 광해군 때부터는 존재가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조선후기에 와서 세조 집권 과정에 대한 당대의 자료로서 남은 것은 『노산군일기』와 『세조실록』이 유일하다. 『노산군일기』와 『세조실록』의 서술을 검토하면, 세조 정권은 당시 계속적인 반란으로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스스로를 규정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반대파에 비해 도덕적으로 우위에 서 있으며, 가족과 친구를 처벌해야 하는 것을 망설이는 인간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스스로를 묘사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당시의 역사서 편찬 과정에서 일관되게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세조 정권의 정당화 논리는 이후 세조 정권의 입장에 반대하는 역사 인식이 대두되는 과정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세조 정권의 정당화 논리는 스스로의 입장을 옹호하는 관점에서 구성된 것이지만, 이후 세조 정권의 입장에 반대하는 논리가 형성되는 데에도 전제적인 개념으로서 작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 때문에라도 세조 정권의 정당화 논리는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편, 이러한 연구를 통해 우리는 조선왕조실록의 자료적 성격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실록은 국가에서 편찬한 공식 연대기로서 수많은 자료를 담고 있지만, 당시 정치 사건에 대해서는 집권 세력의 역사 인식이 그대로 반영된 자료이기도 있다. 따라서 실록 또한 의도를 가지고 편찬된 기록물이며, 비판적 시각으로 검토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The article aims to analyze the historical texts of the King Sejo’s reign and illustrate its unique nature of the historiography at the time when were urgently needed to justify their governance of new nation gained nefariously. The political chaos followed by Sejo’s usurpation(1455-1468) of the throne seemed to be gradually settled down, but Neo-Confucian scholars of Joseon dynasty continued challenging to political authority of Sejo for more than two hundred years from Seongjong to Sukjong. Yet, there is no in-depth studies to elucidate how the political memories remains and how they impacts to historical writings and the people’s attitude to history at the time. This study, as a first step of the series of research to examine the process, will overview the political attempts of Danjong and Sejo reigns in the historical writings and examine in detail historigraphic practice of Danjong sillok and Sejo Sillok. The compilations of historical texts, Mujeongbogam, Dairy of Nosangun and Sejo Sillok dates back to the first year of King Yejong. These texts was influenced strongly by the political perspectives of the ruler and the meritorious elites(Hunsin). Mujeongbogam played the most critical role to uphold the political cause of Sejo and pass it down to the next generation, but unfortunately it has been known that the original copy of the book was completely lost during Gwanghaegun’s reign. Danjong Sillok and Sejo Sillok are only copies which report the political turmoil of the time. These Silloks describe Sejo’s usurpation of the throne as an inevitable consequence for the nation's political stability. Sejo and his followers described themselves to position a morally- higher ground than that of their oppositions, and even highlighted their humanistic aspects which hesitate ruthless bloodshed caused by the forced removal of his nephew from the throne. This view was reflected in the a whole process of the compilation of the books. This political justifications of new government significantly impacted the compilation process and the emergence of political argument which legitimizes Sejo’s seize of the power. This view also influenced on forming opinions against it. So it is important to examine the philosophical and political ground of the two Silloks because it reveals the hidden intent of politics to compile Sillok and leads to re-consider the nature of Joseonwangjo-sillok. It is no-doubt that Sillok is a work with high historical values and consists of the various political events and materials of the official dynastic histories, but we should understand that Sillok is also a records which was adopted political perspectives of the ruler, so it requires a critical review to understand what they actually mean.

      • KCI등재

        채무불이행과 지출비용배상에 관한 민법개정안 검토

        김영두(Kim, Youngdoo) 강원대학교 비교법학연구소 2014 江原法學 Vol.43 No.-

        채무불이행의 경우에 신뢰이익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우리 나라에서는 견해가 나뉘고 있다. 이를 긍정하는 견해도 있고 부정하는 견해도 있다. 대법원은 1992. 4. 28. 선고 91다29972 판결에서 채무불이행으로 인해서 채권자가 지출한 비용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였다. 2013년 민법개정안에서는 제392조의2에서 신뢰이익의 손해배상이라고 볼 수 있는 지출비용의 배상에 관한 규정을 신설하고 있다. 비용배상청구권에 관한 개정시안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첫째, 판례는 채무불이행의 경우에 신뢰이익의 손해배상을 허용하고 있다. 이 경우에 근거규정은 민법 제390조이다. 그러나 비용배상청구권에 관한 규정을 신설한다면 민법 제390조의 손해배상은 이행이익의 손해배상만을 의미하게 되고, 신뢰이익의 손해배상청구권의 근거규정은 민법 제392조의2가 된다. 청구권의 근거규정의 변경으로 인해서 배상의 범위 등에 관한 혼란이 발생하겠지만 이로 인한 실익은 찾기 어렵다. 둘째, 개정시안 제392조의2은 비용배상청구권의 발생요건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다. 귀책사유가 배상청구권의 요건인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 지출한 비용이 채무불이행에 의해서 의미가 없게 된 경우에만 배상청구가 인정되어야 하지만 이에 대한 규정도 없다. 모든 비용에 대한 배상이 인정되지 않고 상당한 비용만이 배상된다는 표현도 없다. 셋째, 개정시안 제392조의2는 신뢰이익의 손해배상청구권을 규정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청구권의 근거규정인지가 불명확하다. 만약 개정시안 제392조의 2가 새로운 배상청구권을 인정하는 규정이라는 입장을 취한다면 손해배상 예정액을 넘는 비용에 대한 배상청구가 허용될 것인지, 손해배상의 범위나 과실상계, 손익상계에 관한 민법의 규정들이 적용될 것인지 하는 문제가 개정시안에 명확히 나타나야 한다. 만약 기존에 인정되던 신뢰이익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입법한 것이라는 입장을 취한다면 규정의 신설로 인한 실익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실익을 찾기 어렵다. 따라서 어느 입장을 취하든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넷째, 개정시안 제392조의2에 따르면 이행이익의 범위 내에서 지출비용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신뢰이익의 손해배상은 이행이익의 입증이 곤란하거나 별도의 이행이익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 의미가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행이익을 한도로 비용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둘 필요는 없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비용배상청구권에 관한 개정시안 제392조의2를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개정시안 제392조의2를 신설해야 한다면 이 규정에 관한 법적 성격과 요건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It has been controversial whether the aggrieved party in contract can claim damages for the reliance loss instead of the expectation interest. The generally accepted opinion allows the creditor to claim reliance interest whose loss the creditor has suffered as a consequence of relying on the debtor"s promise, when the contract is void or cancelled. Thus the creditor can claim the expectation interest rather than the reliance interest on the basis of non-performance. However, many recent opinions allow the creditor to claim damages for reliance interest on the basis of non-performance. The decisions of court allow the creditor to claim the reliance interest instead of the expectation interest. Art. 392-2 of the Draft for the Amendment of Korean Civil Act(DAKCA) 2013 concerns the damages for reliance interest caused by the breach of the contract. However this draft uses the term of the compensation for the useless expense rather than damages for reliance interest. There are some criticisms about this draft. First, the basis for damage for reliance interest allowed by decisions of court is Art. 390 Korean Civil Act(KCA). However Art. 392-2 DAKCA will be the new basis for the damages for reliance interest, which may cause the confusion about the scope of the compensation and so on. Second, the requirements of the Art. 392-2 DAKCA are not complete. The adequateness of expense which turns out to be useless, the causation between the breach of contract and the uselessness of expense are not stipulated in this draft. Third, it is unclear whether the right of the Art. 392-2 DAKCA is a kind of right of Art. 390 KCA. This problem concerns whether the rules of the scope of compensation for damages, contributory negligence, liquidated damages are applicable to the right of the Art. 392-2 DAKCA. Fourth, Art. 392-2 DAKCA restricts the amount of the compensation to the expectation interest. However considering that the damage for reliance interest is useful when there is no expectation interest or it is hard to prove it, it is unreasonable to restrict the amount of compensation to the expectation interest. There is no special need to set up the rule for reliance damages. If there is, Art. 392-2 DAKCA should clarify the requirements of the right to the compensation and the character of this right.

      • 유동층 반응기에서 액상의 저급 연료 가스화 특성 실험 및 프로듀서 가스 생산을 위한 연구

        김영두(Youngdoo Kim),정수화(Soohwa Jeong),정재용(Jaeyong Jung),양원(Won Yang),이은도(Uendo Lee) 한국연소학회 2014 KOSCOSYMPOSIUM논문집 Vol.2014 No.11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환경오염 물질 배출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화석 연료의 사용 감소와 이를 대체 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원 개발에 대한 연구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화석 연료를 대체하는 재생 에너지원으로 선택되는 연료는 1차적 목적에 사용된 후 발생되는 공정 부산물 또는 사용 후 버려지는 폐자원들이다. 이러한 자원으로 폐 바이오매스 자원을 비롯하여 폐플라스틱, 하수 슬러지, 가축 분뇨, 저 등급 오일 등 종류가 다양하다. 이들 자원은 성상이 다양하고 발열량이 제각각 이며 생산량이 불특정한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 중 저 등급 오일류는 고체상의 폐자원에 비하여 에너지 밀도가 높고 수송과 보관에 유리한 점이 있어 재생에너지원으로서 활용도가 높다. 저 등급 오일의 종류에는 대표적으로 펄프 공정의 부산물로 생산되는 흑액 (Black liquor), 목질계 바이오매스의 열분해를 통해 생산되는 바이오매스 열분해 오일, 운송용 기관에 사용된 후 버려지는 폐엔진오일, 음식의 조리에 사용되고 발생되는 폐식용유 등이 있다. 이러한 저 등급 오일의 생산량은 세계적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이러한 자원을 효과적으로 재활용하기 위한 방법과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저급 오일을 재생에너지 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연구는 다양하게 수행된 바 있다. Sakaguchi 등은 바이오 오일 및 바이오 오일/바이오 촤 슬러리 등을 가스화하여 프로듀서 가스를 생산하는 연구를 수행하였다. Qingli와 Wu는 수소 생산을 위하여 급속 열분해 오일을 개질하는 연구를 수행하였다. Rossum 등은 촉매 적용 여부에 따른 바이오매스 열분해 오일의 가스화 특성을 시험하였다. 또한 Carlsson은 운전 조건에 따라 흑액의 가스화 특성과 생성되는 프로듀서 가스의 조성을 연구하였다. Xue는 waste edible oil (WEO) 유래 바이오 디젤의 디젤 엔진 연소 특성과 배기가스 특성을 시험하고 상용 디젤의 엔진 연소 결과와 비교하였다 [1-6]. 이처럼 저 등급 오일의 열화학적 전환을 통해 생성된 프로듀서 가스는 발전을 위한 연소용 가스 연료로서 터빈, 보일러 연소에 직접 적용 가능하며 수소 생산을 극대화 하여 연료 전지 연료로 사용하거나 수송 연료 또는 고부가 가치 물질합성을 위한 플랫폼 물질로 활용이 가능하다. 발전을 위한 연소에 직접적으로 사용되는 경우 프로듀서 가스는 연료 공급, 운전 안정 그리고 원활한 연소를 위해 발열량이나 가스 상 내 불순물의 함량치가 안정적으로 연소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을 시켜야 한다. 본 연구는 국내에서 구하기 쉬운 waste cooking oil (WCO)를 연료로 하여 오일 가스화 특성을 살펴보았다. 가스화를 위한 반응기로 bubbling fluidized bed (BFB) 타입의 반응기를 선택하였다. BFB 반응기는 저급 연료의 열화학적 전환 시 연소에 비하여 운전 온도가 낮고 높은 열전달율을 가지며 운전이 용이하여 저급 성상의 연료를 가스화 하는데 적합한 반응기이다. 또한 유동화를 위하여 사용되는 층물질에 촉매를 첨가하거나 층물질 전체를 촉매로 대체함으로서 반응성을 향상시키고 타르와 같은 고분자 화합물을 추가적으로 분해 할 수 있어 후단 정제 설비의 부하를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실험의 조건으로 유동층 반응기에 공급되는 가스화제로 공기를 사용하였으며 가스화제의 양을 일정하게 하고 투입되는 연료의 양을 변화 시키며 equivalence ratio (ER)을 변화시켰다. ER 변화에 따라 생성된 프로듀서 가스는 연속 가스 분석 장치를 사용하여 생성 가스의 조성을 파악하고 GCs (-TCD 그리고 -FID)를 이용하여 발열량과 가스 상 내 타르 함량을 분석하였다. In this study, waste cooking oil was gasified in a fluidized bed reactor. The main objective of this study was to produce clean producer gas for power generation engine. As a result, heating value of producer gas is suitable for engine operation and tar content in producer gas was satisfied after use of activated carbon filter. Results from a lab scale experiment and a preliminary results from a pilot scale experiment will be presented.

      • 가정용 연료전지 시스템 내부 수소 누출 시 센서 응답 특성에 관한 연구

        김영두(Youngdoo Kim),신동훈(Donghoon Shin),정태용(Tae-Yong Chung),남진현(Jin Hyun Nam),김영규(Young-Gyu Kim) 대한기계학회 2007 대한기계학회 춘추학술대회 Vol.2007 No.5

        Hydrogen is a fuel of fuel cell system, which has powerful explosion possibility. Hence, the fuel cell system needs safety evaluation to prevent risk of hydrogen leakage. We use a actual size chamber of a common fuel cell module to analyze hydrogen. Hydrogen injection holes are located in lower part of the chamber in order to simulated hydrogen leakage. The hydrogen sensor can detect range of 0~4%. Since the hydrogen gas, of which leaked amount is controled by MFC, are injected at the bottom holes, the transient sensor signals are measured. At a condition of 10㏄/s of hydrogen leakage, the sensor detects hydrogen leakage after 22sec and there is also several seconds of time delay depending on the position of the sensor. This experimental data can be applied for the design of the hydrogen detection system and ventilation system of a residential fuel cell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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