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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內蒙古 동남부 시라무렌하 유역에서 발견된 새로운 유목문화에 대한 이해

        姜仁旭 한국청동기학회 2011 한국청동기학보 Vol.9 No.-

        본 서평에서는 2010년에 王立新·塔拉·朱永剛이 주편으로 간행한『林西井溝子_晩期靑銅時代墓 地的發掘綜合硏究』의 내용을 살펴보고, 그 의의를 서술했다. 이 보고서는 吉林大學邊疆考古硏究 中心과 內蒙古文物考古硏究所가 공동으로 2002~2003년에 조사한 林西井溝子의 서쪽구역의 발굴 에 기초한 것이다. 발굴한 총 면적은 1870㎡이고 발굴자에 의해‘井溝子類型’으로 명명된 기원전 6~4세기의 58개의 무덤과 2개의 灰坑(저장움)과 夏家店上層文化및 신석기시대에 해당하는 저장움 7기와 주거지 1기도 같이 조사되었다. 무덤은 북서-남동쪽으로 두향이 일정하며 서로 중복이 되는 현상이 없이 비교적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되어 있다. 유물 상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없어서 한 집 단이 지속적으로 비교적 짧은 기간(기원전 6~4세기)에 이 지역에 무덤을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보고서의 발간을 통해서 內蒙古동남부의 문화변천에서 그동안 시공적으로 공백이었던 임서지역 기원전 6~4세기대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때는 유라시아 고고학의 편년에 따르면 스키토-시베 리아문화의 중기에 해당하는 시기에 오르도스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북방 일대는 다양한 문화유형이 발견되며, 井溝子는 그러한 유목경제의 가장 동쪽 끝이 된다. 유목경제가 이 지역으로 유입된 배경 을 분석하고 초원의 다른 문화와 비교하는 작업은 동북아고고학뿐 아니라 유라시아 고고학적인 의 미가 크다. 또한 하편에서는 다양한 자연과학 분야와 학제간 융합연구를 통하여 정구자 유적을 영위 한 집단이 역사상에 기록된 東胡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렇듯 정구자보고서는 학문적인 문제의식 하 에 연구비 지원을 받아서 대학기관과 성단위의 고고학연구소가 공동발굴을 하고 그 성과에 다양한 분석을 더하여 출판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중국 보고서에서 진일보한 체제를 보여주며, 그 자료적 가 치도 크다.

      • KCI등재

        기원전 9~3세기 요서지역의 고고학문화와 山戎·東胡

        강인욱 백산학회 2016 白山學報 Vol.- No.106

        In this study, we tried to identify cultural identities of Nomadic cultures in Western Liaoning and south-eastern part of Inner Mongolia in 9th~3rd century BCE in comparison with chinese record during Pre-han dynasty period(先秦時代). Author classifies the context of historical record about barbarians during Pre-han dynasty into 4 case. And suggests that the most reliable case of barbarian is about martial campaign. In case of martial action, chinese could gather direct information of enemies in periphery and as a result of the military expedition, weapons and harnesses are passed on to the other country. And these artefacts could easily be seen in archaeological investigation. As a case study, author compares historical records about Duke Huan of state Qi(齊桓公)’s martial expedition on Shanrong(山戎) with Upper Xiajiadian culture(夏家店上層文化). There were found chinese ritual vessel Ding(鼎) with inscription of state Xu(許國) from Xiaoheoshigou(小黑石溝) 8501 tomb. regarded one of most signifiant tomb of Upper Xiajiadian culture. This bronze vessel from State Xu shows that Upper Xiajiadianculture could be identified with Shanrong, and furthermore this could play a good case for identification of chinese historical text with archaeological culture about barbarians in pre-han dynasty period. In 4th century BCE, Chikai(秦開), General of Yan dynasty conquered Donghu(東胡) and Old Chosun. This case could be proved by Saka style gold ornaments and animal style, found form Xinzhuantou(辛庄頭) 30 tomb in Yanxiatu(燕下都). Donghu was associated with the inflow of early xiongnu culture onto Northern zone of China. So, we can assume that Saka elements, remained in Xinzhunagtou tomb of the Yan Dynasty, resulted from Yan’ marital action with Donghu in the 4th century BCE. Like this, we can assume that archaeological find from Western Liaonging and South- eastern part of Inner Mongolia in 9th~3rd century BCE could be compared with historical record. 본 연구에서는 기원전 1천년기 요서지역 비파형동검문화와 이웃한 내몽골 동남부/발해만 이북지역의 유목계통 문화를 중국 사서의 기록과 비교하여 그 실체를 규명하고자 했다. 먼저 선진 사서에 반영된 다양한 주민집단의 기록이 다양한 맥락에서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단편적인 증거로 무리하게 고고학적 문화에 대입함을 비판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일관되게 전쟁을 일으키는 집단의 경우 상당히 구체적인 정황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실체적인 접근이 가능한 예로 보았다. 전쟁을 통해서 얻어진 이방민족에 대한 자료가 제일 체계적이며, 전쟁을 통하여 상대방의 무기 및 마구가 유입되는 경우 고고학적 유물에도 잘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에 본 고에서는 구체적인 예로 하가점상층문화의 소흑석구 유적에서 발견된 허국산 청동기를 분석하였고, 이를 선진사서에 구체적이며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이방민족과의 충돌과 비교하였다. 그 결과 하가점상층문화에서 소흑석구/남산근 유적이 만들어진 기원전 8~7세기대는 산융에 비정됨을 밝혔다. 그 이후 동호의 등장과 소멸에 대해서는 동주시기 장성일대의 유목문화, 사카문화의 유입으로 전개되는 초기 흉노와 동호계통의 문화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동호는 기존 중국학계에서 제시한 정구자유형 보다는 연나라 북방지역에서 기원전 4세기를 중심으로 널리 확산된 사카문화 계통의 유목집단의 확산과 연결시켰다. 사서에 기록된 모든 주민집단을 무리하게 고고학적 문화로 대입하는 것은 오히려 고대 문화상의 구현에 혼란을 줄 수 있다. 오히려 고고학자료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지나치게 다양한 민족을 비정하는 것은 오히려 연구에 혼란이 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 고고학 자료가 제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민족 집단의 대입보다는 좀 더 광의의 문화권으로 설정을 하고, 축적되는 고고학적 자료에 따라 지역과 시간을 세분해서 비교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민족집단의 비정은 유동적이며 고고학적 자료에 기인하는 바, 가변성이 강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한다. 본 고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근거하여 요서지역 하가점상층문화에서 사카문화의 유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문화변천을 사서와 비교함으로써 본고에서 고고학에서 민족비정은 결코 최종의 목적이 아니라 고고학자료를 해석하기 위한 수단임을 밝혔다.

      • KCI등재

        기원전 13~9세기 카라숙 청동기의 東進과 요동ㆍ한반도의 초기 청동기문화

        강인욱 호서고고학회 2009 호서고고학 Vol.0 No.21

        In this paper, author analyses the spread of Karasuk style bronze to Eastern part of Eurasia and its correlation with the early bronze age culture of Korean peninsula. The karasuk style bronze(KSB as belows) originated from Seima-Trubino metallurgical tradition. Around the 13th century BCE, KSB have been found the Far eastern area of Russia, the eastern part of Liaoning(liaodong), and North Kore karasuk. The areal is ranged about N 40'~45'. Although the spread of KSB were occurred almost simultaneously, the assemblage and type of KSB are different in each regions. So, author suggests that there are no evidence of great migration of steppe peoples to Eastern Eurasia, but the autonomous archaeological culture took the karasuk mettalurgy. Another reason for the intrusion of KSB to Eastern Eurasia is that because of the climatic change(more arid and cold), there could not exist complexed broze age society in Manchuria. With this significant movement of KSB with the climatic change, the imitations of KSB dagger and knives are frequently found in the Far Eastern part of Russia, Heilongjiang province of China. Since the stone dagger culture were flourished in the Far East(included Korea and Japan), the intrusion of KSB was comparatively tiny. If we compare KSB period to the Scythian period(8~3th BCE), With the increase agricultural economy in the lute-shaped dagger culture dominated in the Manchuria and Korean peninsula, and the steppe relation discontinue thoroughly. 본고에서는 기존에 초기 북방계 청동기라고도 불리웠던 카라숙 청동기로 대표되는 기원전 13~9세기 초원계 청동기의 한반도 및 동아시아의 유입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 주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카라숙 청동기는 유라시아 청동기 중기(기원전 17~13세기) 서부 시베리아에서 형성된 세이마-투르비노 청동기의 확산과정에서 기원해서 기원전 13세기경 동부시베리아 및 중국 북방, 만주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카라숙 청동기 연해주, 요동동부, 내몽고 등 대체로 북위 40~45도에 해당하는 동아시아의 각 지역에 동시적으로 내려왔는데, 각 지역마다 강한 지역색을 띈다. 즉, 카라숙 청동기는 대량의 주민집단이 내려와서 기존의 세력을 교체한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의 토착문화에 청동기 제작기술만 전파되는 양상을 띈다. 그래서 카라숙 청동기 자체는 광범위한 지역들이 서로 유사하나, 공반하는 청동기들은 지역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두 번째로 이러한 카라숙 청동기의 남진 현상은 한랭건조화 현상과 관련된 기원전 13세기에 전 동아시아적으로 보이는 문화의 변환이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중국 북방 여러 지역은 기존의 정착경제가 해체되어서 유적의 수가 급감하게 되며, 이동성에 기반한 주민집단이 등장한다. 이러한 기후환경은 카라숙 청동기가 남하하는 요건을 제공했다. 세 번째로, 대부분의 카라숙 청동기는 지표채집이나 문화층 출토가 많으며 유독 유구에서 출토되는 경우는 매우 적다. 극히 일부 무덤 출토의 경우도 소형의 토광묘에 한정된다. 이는 곧 정착에서 유목으로 경제가 재편되며 청동기를 제작하는 장인집단이 주변지역으로 확산되어 지역화되는 과정의 일부로 생각된다. 네 번째로 요동 지역으로의 확산역시 기후 한랭화에 따른 카라숙 청동기의 전반적 남하 과정과 연계시켜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이 시기는 요서 지역에서는 중원청동기의 매납유구 등장, 각 지역의 청동기 유형 성립 등 요령지역 전반적으로 커다란 문화권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과도 관련된다. 반면에 기원전 9세기경부터 비파형동검문화권으로 재편되면서 더 이상 초원지역의 청동기가 유입될 여지는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다섯 번째로 연해주와 한국 북부의 카라숙 청동기의 모방품이 많은 것은 일차적으로 카라숙계의 동진과 관련되지만, 마제석기 제작의 전통이 강한 재지사회의 변용에 따른 결과이다. 카라숙 청동기는 동․남진 할수록 그 조합이 갈수록 적어진다. 한반도, 연해주, 일본에서는 위신재의 성격이 상대적으로 덜한 동도와 석모만이 발견된다. 이는 곧 석검 위주의 사회로 도입되면서 변용이 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연해주와 일본 등에서 카라숙 모방 석검이 주로 출토되는 이유는 각 지역이 석검 제작이 활발했으며 요동~한반도 서북한 지역과 같은 정착농경에 기반한 문화권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KCI등재
      • KCI등재

        遼寧地方 太子河上流 지역 신발견 彩文土器에 대하여

        姜仁旭 중부고고학회 2003 고고학 Vol.2 No.2

        본고에서는 최근 공개된 요녕지방 太子河 유역에서 채문토기가 나온 東升유적을 소개하고 그 유적의 요녕지방 청동기문화에서의 맥락과 한반도 채문토기와의 초보적인 비교를 해보았다. 도면과 보고자의 서술로 비추어 볼 때 東升유적의 채문토기는 한반도 남부지방의 채문토기와 일맥상통한다. 물론, 세부적인 속성에서 차이가 보이긴 하지만, 소성과정의 黑斑을 이용한 점과 기벽이 얇고 정련된 진흙계의 태도를 사용한 점에서 향후 비교연구가 필요하다. 東升유적은 洞穴유적이지만 주변지역의 석관묘에서도 비슷한 토기상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채문토기가 요동지역 太子河유역의 석관묘에서도 발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東升유적의 토기조합상은 기존에 알려졌던 초기 청동기문화⇒미송리형 토기로의 발전이 지역별로 다양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향후 요동지역 청동기시대 토기문화의 연구에도 시사를 준다. 동승유적의 연대는 마성자유적의 말기에서도 좀 늦은 시기로 기원전 10세기 전후로 편년된다. In this paper, author analyzes newly found pottery with eggplant design found in the Dongsheng cave site on the valley of r. Taizi, Liaodong province. China, in the context of the early bronze age of Liaodong, and compare the newly found materials with same type materials from Korean Peninsula. The similar ceramic assemblage of Dongsheng cave site are found in the stone cist tombs of the Liaobei region(mostly in the valley of r. Taizi). So, It is assumed that the manufacture of pottery with eggplant design may have occurred in the transitional period of the early bronze age to the stone cist culture with Misongni type vessels. Based on this, author suggest that Dongsheng site could be dated to 10th c. B.C. regarded as the early stage of stone cist culture of Liaodong. It is important that this type of potteries are found except the southern part of Korea for the first time. Although detail attributes of pottery from Dongsheng site are different from the korean ones, it is worth to mention that the unique technique of manufacturing the pottery with eggplant design were existed not only in southern part of Korea, but in the Liaodong region, which deeply related with korean bronze age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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