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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園幸乙卯整理儀軌』 圖式, 그림으로 전하는 효과와 전략

        유재빈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8 규장각 Vol.52 No.-

        『원행을묘정리의궤』는 정조대 유일하게 御定書로 편찬된 의궤이다. 이는 『정리의궤』가 기존 의궤의 제작 관행을 따르지 않고 특별한 체제와 기능을 가졌음을 의미한다. 특히 이전과 구분되는 『정리의궤』의 특징은 의궤가 관리자를 위한 실무적 기능 뿐 아니라 참석자에게 행사의 의의를 전파하는 홍보적인 기능을 지녔다는 점이다. 이는 『정리의궤』의 편집과 출간방식- 행사의 전모를 종합하고 재구성하였으며, 활자로 대량 인쇄되어 배포되었다는 점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정리의궤』의 圖說은 이러한 의궤의 새로운 기능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의궤의 문자 기록은 국왕의 전교에서 시작하여, 연설, 계사, 이문, 내관 등 문서 작성자의 위계나 담당 분과를 기준으로 한 기존의 편집 체계를 상당 부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도설은 卷首에 독립되어 본편과는 구별되는 자체적인 편집 원리를 가지고 있다. 의궤 도설의 가장 중심 되는 편집 원리는 도설을 행사와 행차로 나누고, 행사가 ‘계획된’ 순서대로 배열하는 것이었다. 행사와 관계된 물건과 복식, 공연에 대한 도설은 행사 장면 바로 뒤에 이어서 편집하여, 하나의 행사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게 해주었다. 기존의 의궤들이 행사에 소용된 물건들을 각각의 담당 부서별로 나누어 편집한 것과는 달리 내용상으로 구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정리의궤』는 관리자보다는 독자의 시각으로, 행사를 재수행하기보다는 행사가 기억되기를 바라는 방식으로 편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정리의궤』가 사용한 표현 방식은 행사의 기억에 시각적 사실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였다. 『정리의궤』에는 평행사선구도, 투시도법, 기술도법 등 새로운 도법이 시도되었다. 이들 새로운 도법은 행사 장면을 현장감 있게 전달할 뿐 아니라, 사용된 물건과 시설에 대해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설명을 가능하게 하였다. 기존의 의궤의 도설이 의물을 상징적으로 제시하는데 그쳤다면 『정리의궤』 도설은 실제 사용된 물건과 정확히 부합하고자 하였다. 도설은 정확하고 체계적인 시각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독자들이 구체적인 이미지로 행사를 재구성하는데 기여하였다고 할 수 있다. 『정리의궤』 도설은 이후 을묘년 원행에 대한 기억을 구성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의궤와는 별도로 채색을 입힌 도설이 『정리의궤도』라는 책자로 제작되었다거나, 『정리의궤』를 하사받은 참가자가 도설에 대한 記文으로 원행을 정리하고 있는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도설에 대한 참가자의 반응과 의궤 도설의 감상화로의 확장에 대해서는 추후의 과제로 삼겠다.

      • KCI등재후보

        의궤 정재도 가인전목단의 도상학적 연구

        손선숙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2008 동방학 Vol.15 No.-

        본 연구는『진작의궤』(進爵儀軌),『진찬의궤』(進饌儀軌),『진연의궤』(進宴儀軌)에 수록된 가인전목단(佳人剪牧丹)의 정재도(呈才圖)의 내용 이해와 정리를 목적으로 무도내용을 살펴보았을 때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가인전목단의 정재도는『진작의궤』에 1편,『진찬의궤』에 4편,『진연의궤』에 4편이 수록되었다. 무동정재는 4편, 여령정재는 5편으로, 모두 9편이다.『진작의궤』에는 무동정재만 수록되었고,『진찬의궤』와『진연의궤』에는 여령정재와 무동정재가 함께 수록되었다. 동일한 무도(舞圖) 내용이 의궤에 중복되어 제시되었는데, 고종 신축과 고종 임인『진연의궤』의 무동정재 내용이 같고, 고종 신축『진찬의궤』과『진연의궤』의 여령정재의 무도내용이 같다. 가인전목단 무도에 나타난 공통된 내용은 무대 가운데의 화준(花樽)을 중심으로 춤을 추는 것이다. 반면 의궤마다 나타난 차이점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무원은 좌우협무(左右挾舞)로 구성되었지만 무도마다 4명·8명·10명·12명·18명 등으로 차이가 있고, 순조 기축『진찬의궤』에 악사(樂師)로 보이는 무원 2명이 함께 제시되어 다른 무도와는 차이를 보인다. 둘째, 무도에 제시된 전체내용으로 볼 때 무 대열이 화준을 중심으로 한 원(圓)의 구조이지만, 순조 무자『진작의궤』는 사우대형으로, 좌우대(左右隊) 혹은 전후대(前後隊)의 상대(相對)·상배(相背)로 보여지는데 이는 무원 수에 의해서이다. 셋째, 춤동작은 전체적으로 양 팔을 옆으로 펼쳐 든 동작이 주를 이루며, 오른팔·왼팔이 위 또는 아래로 내려드는 것으로 제시되었고, 무도에 제시된 동작은 8가지로 ‘양수반하거(兩手半下擧)’, ‘양수평거(兩手平擧)’, ‘우수반하거 좌수평거(右手半下擧 左手平擧)’, ‘우수상거 좌수반하거(右手上擧 左手半下擧)’, ‘우수상거 좌수평거(右手上擧 左手平擧)’, ‘우수평거 좌수반하거(右手平擧 左手半下擧)’, ‘우수평거 좌수상거(右手平擧 左手上擧)’, ‘우수하거 좌수상거(右手下擧 左手上擧)’이다. 넷째, 위치 및 방향은 북대(北隊)의 일열(一列)의 무원은 주로 남향(南向)한 것이 공통이며, 반면 남대(南隊)의 마지막 대열의 무원은 남향과 북향 2가지로 제시되었고, 무도마다 공통적으로 제시된 방향은 동향·서향·남향·북향·북서향이다. 그리고 무구(舞具)를 잡은 손의 위치도 순조 무자『진작의궤』와 헌종 무신『진찬의궤』에는 꽃을 모두 오른손에 잡았고,『진찬의궤』,『진연의궤』에는 오른손과 왼손에 각각 잡았다. 꽃도 각 열(列)로 구분하여 잡은 것과 무원 전체가 꽃을 잡은 것, 그리고 무원 일부만 잡은 것으로 차이가 있고, 집화(執花) 위치도 우수와 좌수로 제시되었고, 무구를 잡는 방법도 꽃을 한삼(汗衫) 위로 잡은 것과 한삼 아래로 잡는 등 차이가 있다. 이상 가인전목단에서 살필 수 있는 내용은 무원 전체가 화준을 중심으로 한 춤의 구조로 공통이며, 오른쪽으로 도는 회무(回舞)와 동서상대·남북상대·남북상배 등으로 진행된 것을 알 수 있다. 홀기에는 ‘우수집화(右手執花)’로 기록되어 꽃을 오른손에 잡고 추는 것으로 알 수 있으나 의궤의 정재도를 통해 꽃을 잡는 손의 위치가 오른손·왼손으로 다양한 점과 무구를 순차적으로 차례로 잡는 것을 알 수 있다. This study is to understand and arrange the contents of "Gainjeonmokdan" (佳人剪牧丹) represented in jeongjaedos(呈才圖) in uigwes 儀軌, like Jinjaguigwe(『進爵儀軌』), Jinchanuigwe(『進饌儀軌』), and Jinyeonuigwe(『進宴儀軌』). Nine jeongjaedos of "Gainjeonmokdan" can be found from the above documents, one in Jinjaguigwe, four in Jinchanuigwe, and another four in Jinyeonuigwe. Four of the nine jeongjaedos are about mudong(舞童) jeongjae and five of them about yeoryeong(女伶) jeongjae. The one in Jinjaguigwe represents mudong jeongjae and the others in Jinchanuigwe and Jinyeonuigwe represent mudong or yeoryeong jeongjae. The same mudos(舞圖) are recorded in different uigwes: the mudong jeongjae in Jinyeonuigwe of Gojong(高宗, 1852~1919. 1. 21) sinchug (辛丑) and that of Gojong imin(壬寅), and yeoryeong jeongjae in Jinchanuigwe and Jinyeonuigwe of Gojong sinchug are identified the same. According to mudos of "Gainjeonmokdan" it is common to dance around a hwajun(花樽) in the center of the stage, while there are some differences among them: First, the number of muwon(舞員) who forms jwauhyeommu(左右挾舞) can be four, eight, ten, twelve, or eighteen. Especially the mudo of Jinchanuigwe of Sunjo(純組, 1790~1834) gichuk(己丑) appears to be different from other mudos with two members of muwon who seem to be aksas(樂師). Second, the dance formation of the mudo in Jinjaguigwe of Sunjo muja(戊子) is sawodaehyeong(四隅隊形) composed of sangdae(相對) and sangbae(相背) in jwaudae(左右隊) or jeonhudae(前後隊), owing to the number of muwon, while the usual formation of mudos is circle centering around a hwajun. Third, the main motion of the dance is to outstretch the arms up and down. The eight motions that are shown in the mudos are yangsubanhageo(兩手半下擧), yangsupyeonggeo(兩手平擧), usubanhageo jwasupyeonggeo(右手半下擧 左手平擧), ususanggeo jwasubanhageo(右手上擧 左手半下擧), ususanggeo jwasupyeonggeo(右手上擧 左手平擧), usupyeonggeo jwasubanhageo(右手平擧 左手半下擧), usupyeonggeo jwasusanggeo(右手平擧 左手上擧), and usuhageo jwasusanggeo(右手下擧 左手上擧). Fourth, concerning the position and the direction of muwon, those in the first row of bukdae(北隊) usually takes the course of namhyang(南向), which is common in most mudos, while those in the last row of namdae(南隊) takes the course of either namhyang or bukhyang(北向). The directions suggested in the mudos in common are donghyang(東向), seohyang(西向), namhyang, bukhyang, and bukseohyang(北西向). Lastly, about mugus(舞具), mugus are all kept in the right hand according to the mudos of Jinjaguigwe of Sunjo muja and Jinchanuigwe of Heonjong(憲宗, 1827~1849) musin(戊申), while they are kept each in both hands according to Jinchanuigwe and Jinyeonuigwe. Flowers can be held by the whole muwon or only by some of the muwon. Or the muwon with flowers can be divided into rows. Jibhwa(執花) can be done either in right or left hand. There are also differences in the ways to hold mugus. For example flowers are held above or under hansam(汗衫). It can be concluded that "Gainjeonmokdan" has a common circular formation of the whole muwon centering around a hwajun and taking the course of clockwise hoemu(回舞), dongseosangdae(東西相對), nambuksangdae(南北相對), and nambuksangbae(南北相背). Holgi(笏記) has the record of usujibhwa(右手執花), which means that flowers should be held in the right hand but in jeongjaedos of uigwes flowers can be held either in the right or left hand and mugus are taken in turn.

      • KCI등재후보

        「儀軌事目」에 나타나는 의궤의 제작 과정

        김문식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0 규장각 Vol.37 No.-

        이 논문은 「儀軌事目」을 통해 儀軌의 구체적인 제작 과정을 밝히기위해 작성되었다. 의궤의 작성을 담당하는 儀軌廳은 작업하기 편리한 장소에 설치되었는데,활자본 의궤를 작성할 때에는 주로 의궤를 인쇄하는 鑄字所에 설치되었다. 의궤청은 행사를 주관했던 都監과 같은 장소에 설치된 경우가 많은데, 이는업무를 연속적으로 처리하는데 편리했기 때문이다. 의궤청의 관리는 도감에서 활동했던 관리가 계속 담당하는 경우가 많으며, 관리들은 소속 관청에서의 근무를 제외하면 다른 국가적 행사에 동원되지 않는 특혜를 받았다. 의궤를 작성할 때 필요한 물품은 국가 기관들이 분담하여 제공했다. 의궤청에서 필요한 물품을 직접 구입해 사용하기도 했는데, 근대식 예산제도가도입된 1890년대 이후로는 구입이 일반화되었다. 의궤청이 설치되면 제일먼저 관리들이 등불을 켜거나 난방에 필요한 물품들이 제공되었고, 의궤의작성에 필요한 紙·筆·墨이 제공되었다. 의궤의 제작에 필요한 도구들은빌려서 사용하다가 작업이 끝나면 원 기관으로 되돌려 주었다. 의궤의 班次圖나 圖說을 그릴 때에는 다양한 물감과 阿膠가 필요했고, 의궤를 粧繢할 때에는 다양한 색깔의 비단, 褙接에 사용하는 종이, 책을 묶는 邊鐵 朴鐵 圓環이 필요했다. 어람용 의궤의 표지는 초록색만 있었는데, 大韓帝國이 건설된이후 황색, 홍색, 초록으로 분화되었다. 황색은 황제를 상징하는 색깔이었다. 어람용 의궤의 건수는 조선시대에는 1건이던 것이 대한제국 이후 3~4건이제작되는 경우도 있었다. 분상용 의궤는 주로 議政府, 禮曹, 春秋館, 4대 史庫에 배포되었지만, 대한제국 이후에는 掌禮院, 圜丘壇, 秘書院이 추가되었다. 활자본 의궤는 배포처가 수십 곳으로 늘어났는데, 인쇄 부수가 가장 많았던『園幸乙卯整理儀軌』는 101곳에 배포되었다.

      • KCI등재

        조선시대사 연구와 의궤

        김문식 조선시대사학회 2016 朝鮮時代史學報 Vol.79 No.-

        This paper examines the present status of Uigwe of the Joseon Dynasty and the study on Uigwe. Uigwes compiled from 1395 to 1928 and remain made from 1601 to 1928. Many Uigwes had been drawn up in the reign of King Sukjong, King Gojong and king Sunjo. And particularly many Uigwes made in the Korean Empire period. Seeing the contents of the Uigwe, 35% is associated with the king and queen’s funeral and 17% is for the amendment and the compilation of the book, 10% is for giving a glorious name to royal family, 9% is for architecture and repair of the building. Now the places storing many Uigwes are the Seoul National University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Jangseogak Archives, the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the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and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and so on. In total, this 5 institutes have 2,183 cases 3,489 volumes Uigwes. Another places have 57 cases. Uigwes designated as the cultural heritage in 2016 are 1,757 cases 2,751 volumes. There are not included the Uigwes compiled after 1910 and the printed Uigwes which don’t show a storing place. The study using Uigwe can be divided into a basic research, a research by major and an historical research of royal rites. On a basic research, the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and the Jangseogak Archives published the list and the commentary of Uigwes. And many institutes translated Uigwes. A research by major has sharply increased since 2001. The researchers on the history of Korea have published the papers and the professional books studying the individual royal rites. In addition to the history of Korea, the researchers on history of clothing, architecture, music, art and bibliography are actively studying Uigwes. An historical research of royal rites means to restore the original forms of royal rites and the researchers in various fields participate in this works now. In the future, a study of Deongnok similar to Uigwe is required. A study on the artifacts used in the royal rites and the national events is required too. Finally a study of understanding comprehensively the operating system of the Joseon Dynasty is required. 본고는 조선시대 의궤의 현황과 의궤를 사료로 활용한 연구 현황을 살펴보기 위해 작성되었다. 조선시대 의궤는 1395년부터 1928년까지 제작되었으며, 현재는 1601년부터 1928년까지 제작된 의궤가 남아있다. 의궤는 숙종, 고종, 순조 대에 많이 작성되었고, 대한제국 시기에 특별히 많은 의궤가 작성되었다. 의궤의 내용을 보면 국장과 관련된 것이 35%, 서적의 편찬과 수정에 관한 것이 17%, 왕실 가족에게 존호를 올리는 것이 10%, 건물의 건축과 수리에 관한 것이 9%를 차지한다. 현재 의궤를 많이 소장한 곳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국립문화재연구소, 국립고궁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등 5대 기관이다. 여기에는 총 2,183건 3,849책의 의궤가 있으며, 다른 기관에도 57건의 의궤가 남아 있다. 2016년에 문화재로 지정된 의궤는 1,757건 2,751책이며, 1910년 이후에 제작된 의궤와 소장처가 표시되지 않은 활자본 의궤는 포함되지 않았다. 의궤를 활용한 연구는 기초 연구, 분야별 연구, 왕실 의례의 고증으로 구분할 수 있다. 기초 연구에서 의궤의 목록과 해제를 작성하는 것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과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주도하며, 의궤의 번역에는 여러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의궤의 분야별 연구는 2001년 이후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한국사에서 의궤를 연구하는 것은 개별 행사를 연구하는 논문과 이를 발전시켜 단행본을 낸 것이 있으며, 행사 내용이 비슷한 의궤들을 묶어서 종합적으로 연구한 것이 있다. 의궤는 한국사 이외에 복식사, 건축사, 음악사, 미술사, 서지학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다. 왕실 의례의 고증은 의례의 원형을 복원하는 것으로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 앞으로는 의궤와 유사한 성격을 가진 등록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며, 왕실 의례 및 행사에 사용된 유물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최종적으로는 조선시대의 국가 운영 시스템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 KCI등재

        의궤 번역의 현황과 번역 방안 연구

        서한석(Seo, Han-seok) 한국고전번역원 2013 民族文化 Vol.42 No.-

        조선왕조 의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최근 프랑스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과 일본 궁내청 소장 도서의 반환을 계기로 더욱 높아졌다. 이러한 시점에 문화재청은 국민적 관심과 여러 학계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고자, 의궤를 필두로 한 ‘중요기록유산 국역 사업’을 시작하였다. 본고는 이 중요기록유산 국역사업의 대상 중 하나인 조선왕조 의궤에 한정하여, 현재까지의 번역 현황과 번역을 통한 기대효과, 그리고 의궤를 번역의 문제점과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해보려는 의도에서 작성되었다. 현재까지 이루어진 의궤 번역과 관련 연구의 추이를 살펴볼 때, 국민적 관심을 충족시키고 각종 연구의 기본 자료로써 의궤의 활용성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개별 기관이나 연구자가 각각의 필요에 의해 번역이 진행되었다. 물론 다양한 내용의 의궤가 번역되는 것도 학계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의궤 번역이 시작된 현 시점에서는 학계 및 여러 관련기관의 의견을 수렴하여 번역할 가치가 높은 의궤를 선별하여 이를 먼저 번역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한편 실제 번역에 있어서도 효율적인 번역을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본고의 마지막 장에서는 의궤 번역의 문제점과 이에 대한 방안을 살펴보았다. The public interests in Uigwe(Royal Protocols of the Joseon Dynasty儀軌) have been higher after the return of the Oegyujanggak(外奎章閣) Uigwe from France and large volumes of ancient Korean books stored in Japan.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CHA文化財廳) started the translation important documentary Heritage such as Uigwe. This paper examines present stratus of Uigwe translation and the problems, and seeks way to improve that. The best way to utilize Uigwe is accurate translation to modern Korean. Because Uigwe was written in old Chinese character, a few people who understand old Chinese character could use Uigwe for their studies. However it is impossible to translate all Uigwe, we have to select some Uigwe which are more valuable and more necessary. A broad variety of ideas have to be taken into consideration in order to select that. And there are some problems to solve for producing professional translation. This paper, finally, try to suggest the alternatives.

      • KCI등재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의궤 도식 목판

        김정임(Kim Jung im) 국립고궁박물관 2008 古宮文化 Vol.- No.2

        An uigwe would be compiled and published immediately after each official palace banquet after King Jeongjo period. An uigwe is a collection of texts and a variety of illustrations and schemas. Images of important moments of events, implements needed, and dances performed at the banquet were carved into woodblocks and printed. Today, nineteen types of palace banquet uigwe remain. Of these, fourteen contain schemas. Various schemas are illustrated depending on the nature of each event. Four woodblocks for schemas contained in uigwe are still extant: one in the collection of Woodblock Prints Museum in Wonju, and three in the collection of Cheongju National Museum. These woodblocks are extremely valuable for the study of royal print and uigwe as they provide details of the wood engraving techniques and printing technology of the Joseon Dynasty. This paper introduces four woodblocks for schemas of uigwe in the collection of the National Palace Museum that were newly discovered in addition to the above mentioned woodblocks for uigwe. Noteworthy is that the schema part of these woodblocks remains as a separate form. It is not in the form of a woodblock with pansim(center folded outer edge) and handles. On the face and back of the woodblocks are engraved six schemas: illustrations of the four court dances of hakmu(crane dance), yeonhwadaemu(lotus blossom dance), abak(ivory clappers dance), and chunaengjeon(dance of the spring nightingale), and two colored illustrations of artificial flowers of icheungsuparyeon and sagwonhwa. However, the pansim, which show the dates of production of these woodblocks, are lost, rendering any effort to determine the exact year of production of the woodblocks very difficult. This paper ascertained the years of production of the schema woodblocks in the collection of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through comparison with woodblock printed illustrations of other extant uigwe. It was confirmed that out of the six schemas, four(hakmu, yeonhwadaemu, abak, and icheungsuparyeon) are exactly the same schemas used for Jeongchuk jinchan uigwe, which recorded the ceremony to celebrate the seventieth birthday of Queen Sinjeong in 1877, or Jeonghae jinchan uigwe, which recorded the ceremony to celebrate the eightieth birthday of Queen Sinjeong in 1887. Of the remaining two schemas, the one for sagwonhwa matches the schema on the left of the two sagwonhwa schemas contained in the Heonjong musin jinchan uigwe, which recorded the banquet thrown by King Heonjong to celebrate the sixtieth birthday of the queen dowager in 1848. However, I could not find a schema in chunaengjeon identical to any in other uigwe available. Palace banquet uigwe recorded the whole process and list the goods and implements needed in such detail that the event at the time can be faithfully reproduced today in its entirety, which makes uigwe extremely useful in research on palace banquets. The schemas in uigwe are especially valuable for studying the court dances and implements used for the event and understanding the print culture of the Joseon royal family. Sadly, only a few woodblocks for schemas to print uigwe remain today. I hope that the woodblocks for schemas in the collection of the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introduced in this paper will be used for the study of court print culture, and I expect that more schema woodblocks will be discovered in the future. 궁중 연향과 관련된 의궤는 행사가 끝난 이후 활자로 만들어 여러 부수를 찍어 간행하였다. 이때 행사의 주요장면, 소요 물품, 잔치 때 행해지던 춤 등을 간략한 그림으로 기록한 의궤(儀軌) 도식(圖式)은 목판에 새겨 찍었다. 현재 남아있는 19종의 연향 관련 의궤 중 도식이 그려져 있는 것은 14종이며 각각의 행사에 따라 다양한 도식들이 수록되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의궤 도식 목판은 원주 고판화박물관에 1점, 국립청주박물관에 3점이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이 목판들은 조선 왕실의 판각 기술이나 인쇄술 등 왕실 판화와 의궤 연구에 있어 아주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현재 알려진 의궤 목판 외에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의궤도식목판(4점)을 새롭게 소재하였다. 이 도식 목판들은 판심과 손잡이가 있는 목판의 형태가 아니라 도식 부분만 따로 분리된 형태로 남아 었다. 앞ㆍ뒷면에 모두 6개의 도식을 살펴볼 수 있으며 정재도의 학무(鶴舞), 연화대무(蓮花臺舞), 아박(牙拍), 춘앵전(春鶯囀)이, 채화의 이층수파련(二層水波蓮), 사권화(絲圈花)가 새겨져 있다. 그러나 연대를 알 수 있는 판심이 결실되어 있어 정확한 제작 연대를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현재 전하고 있는 다른 의궤도식 판본과의 비교 고찰을 통해 국립고궁박물관소장도식 목판의 제작시기를 파악해보았다. 이를 통해 6재의 도식 중에 4재의 도식[학무(鶴舞), 연화대무(蓮花臺舞), 아박(牙拍), 이층수파련(二層水波蓮)]은 1877년에 거행된 신정왕후(神貞王后) 칠순(七旬) 경축연(慶祝宴)을 기록한 『정해진찬의궤(丁亥進饌儀軌』, 또는 1887년에 거행된 신정왕후(神貞王后) 팔순(八旬) 경축연(慶祝宴)을 기록한 『정해친찬의궤(丁亥進饌儀軌)』에 수록된 도식과 동일한 것임을 확인하였다. 사권화(絲圈花)는 1848년 『헌종무신진찬의궤(憲宗戊申進饌儀軌)』에 그려진 2개의 사권화 중 왼쪽도식과 동일하였다. 그러나 춘앵전 도식은 현재 확인할 수 있는 활자본 의궤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연향 의궤는 당시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을 만큼 모든 절차와 소요물품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궁중 연향의 전모를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특히 의궤에 삽입되어 있는 도식은 당시에 행해진 궁중무용이나 행사용품 등 당시 궁중문화 연구와 왕실 인쇄문화의 이해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왕실판화의 대표작인 의궤를 간행하는데 사용했던 도식 목판이 많이 현존하고 있지 않아 아쉬움을 주고 있다. 이번에 소개한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도식 목판이 새로운 자료로 활용되기를 희망하여 앞으로도 또 다른 의궤 도식 목판이 발굴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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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초기 儀軌編纂의 배경과 의의

        신명호 조선시대사학회 2011 朝鮮時代史學報 Vol.59 No.-

        The word of "Eui gwe(Ritual Protocol Manuals)" is combined word of "Eui" and "Gwe". in chinese confucianism, The word of "Eui" means solemn manners which are attached to ceremony. and The word of "Gwe" means precedent cases which could be standards or models. so The word of "Eui gwe(Ritual Protocol Manuals)" basically means solemn manners which could be standard ceremony. the other hand, in chinese buddhism, The word of "Eui gwe(Ritual Protocol Manuals)" means basic regulations which monks should obey in buddhist temple. but later in chinese buddhism, The word of "Eui gwe(Ritual Protocol Manuals)" was used as title for buddhist ceremony books. at the latest in koryo dynasty, chinese buddhist ceremony books, "Eui gwe(Ritual Protocol Manuals)", were introduced to korea. at that time, korea was buddhist society. so chinese buddhist ceremony books, "Eui gwe(Ritual Protocol Manuals)" were popular in korea society. in the late 14th century, korean confucian literati, sinjinsadaebe, tried to reform korean society in the base of neo confucianism. after Joseon Founding, korean confucian literati modified a lot of confucian ceremonies in order to substitute buddhist ceremonies. at first, they titled confucian ceremonies as "gyu sik(regulation manuals)", "Eui mun(ceremonial manuals)", and "Eui je(ceremonial manuals)". but in the end, they titled confucian ceremonies as "Eui gwe(Ritual Protocol Manuals)". they also titled the reports on national occasions as "Eui gwe(Ritual Protocol Manuals)". by titling confucian ceremonies and the reports on national occasions as "Eui gwe(Ritual Protocol Manuals)", korean confucian literati tried to obtain following effects at least. first, they tried to stand out that not buddhist ceremony but confucian ceremony is only official in Joseon. second, they tried to stand out that joseon is a confucian state which should follow confucian principle in everything. 이 논문은 朝鮮王朝 儀軌의 편찬 배경과 의의를 고찰하였다. 儀軌는 儀와 軌가 합쳐진 용어로서, 중국의 원시 유교에서 의궤는 ‘예법의 실천에 부수되는 威儀의 모범이 될 만한 기왕의 사례’라는 용어로 이용되곤 했다. 의궤는 중국 불교에서 선승들이 지켜야 할 법도로서의 淸規를 지칭하기도 하였다. 이런 의미가 확장되어 불교에서는 儀軌가 책명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중국의 불교 특히 선불교 계통에서 불교 의례와 관련된 儀文, 儀軌 등이 남북조 시대에 책으로 출현하였고 이것이 늦어도 고려시대에 한국으로 전래되었다. 조선건국 후, 정도전으로 대표되는 건국주체 세력들은 고려시대의 불교적 국가의례를 유교 예제에 입각해 대대적으로 개편해나가는 과정에서 유교예제를 시행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威儀 또는 절차들을 정비했다. 새로 정비된 유교식 威儀 또는 절차는 책으로 작성되었고 ‘規式’, ‘儀文’ ‘儀制’ 등으로 표현되었지만, 태조 당대에 이미 의궤로도 표현되었다. 뿐만 아니라 국가행사의 보고서도 의궤라고 하였다. 이렇게 국가적 유교 의례서뿐만 아니라 국가행사의 보고서까지도 의궤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정도전으로 대표되는 조선건국주체세력들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효과를 기대하였다. 첫째, 의궤라는 용어는 불교에 앞서 유교경전에서 이미 사용되었다. 조선건국주체세력들은 새로 정비된 국가적 유교의례의 책명을 의궤로 함으로써 유교의례의 회복 또는 유교의례의 확립을 부각시킬 수 있었다. 둘째, 조선건국주체 세력들이 극복하고자 했던 불교 또는 도교에서도 의례집의 명칭이 의궤였기에 고려시대의 의례집은 불교 의궤로 대표되었다. 그러나 조선건국 직후부터 국가적 유교의례는 물론 국가행사의 보고서까지도 의궤로 함으로써 조선시대의 의례는 점차 유교의례로 대표되었고 의례집 역시 유교 의궤로 대표되었다. 결국 조선건국 직후의 의궤 편찬은 불교적 국가의례를 대체하는 유교적 국가의례의 등장 및 명실상부한 유교국가의 출현을 상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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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전기 儀軌 편찬 관련 기록 검토

        정영미(Jeong, Young-mi) 동국역사문화연구소 2021 동국사학 Vol.70 No.-

        儀軌는 조선 전기부터 편찬되었지만, 편찬이 확인되는 몇 종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의궤가 편찬되었는지 분명히 알려져 있지 않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전기 의궤에 대한 가장 많은 정보를 수록하고 있는 자료이므로, 실록에 수록된 의궤 관련 기록을 검토하여 편찬된 의궤의 목록을 추출하였다. 이를 통해 조선 전기에 편찬된 의궤 23종의 명칭을 확인하고 편찬 시기를 추정할 수 있었다. 23종의 의궤를 주제별로 喪葬, 祔廟, 冊封, 嘉禮, 營建의 5가지 범주로 구분하면 상장 15종, 부묘 2종, 책봉 2종, 가례 3종, 영건 1종으로, 상장 관련 의궤가 가장 많았다. 그리고 영건에 관한 『景福宮造成儀軌』를 제외한 22종이 모두 국왕을 비롯한 왕실 구성원과 관련된 국가 의례에 대한 의궤이다. 의궤의 내용을 주제별로 모아 살펴보면 상장 의궤에는 상장례의 기한, 襲과 小斂, 大斂에 사용한 의복의 수효, 祭奠의 종류, 제물의 종류와 수효, 百官의 服制, 국왕의 전교 등이 수록되어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 후기의 의궤 대부분이 ‘~도감의궤’라는 명칭을 가진 데 비해 조선 전기의 의궤 23종 가운데 ‘도감의궤’라는 명칭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편찬된 의궤와 특정 국가 의례 등을 수행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도감과의 연관성을 살펴본 결과 3종을 제외한 20종의 의궤가 도감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祭享의 祭文과 祝文을 모아 놓은 香室儀軌의 존재와 『忌晨齋儀軌』, 『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 등의 불교 의궤의 존재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의궤는 필사본으로 3부를 제작하여 영구 보존을 위해 史庫에, 실무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예조 등에 나누어 보관하였으며, 의궤의 주제와 동일한 유형의 의례를 행할 때 前例를 확인하기 위한 참고 자료로 활용하였다. 따라서 의궤의 편찬 목적이 국가의 중요한 행사를 사실대로 기록하여 참고로 삼기 위한 것임도 확인할 수 있었다. The Uigwe was complied from the early Joseon Dynasty, but it is not clear which Uigwe was compiled except for a few confirmed ones. The Veritable Records of Joseon Dynasty contains the most information about the Uigwe, the complied list of Uigwe was extracted by reviewing the records relataed to Uigwe in The Veritable Records of Joseon Dynasty. Through this, it was possible to confirm the names of the 23 types of Uigwe compiled in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estimate the period of compilation. If 23 types of Uigwe are divided into five categories: funeral, enshrinement, installation, garye(royal weddings), and yeonggeon (construction of royal buildings). There are 15 cases of funeral, 2 cases of enshrinement, 2 cases of installation, 3 cases of garye, 1 cases of yeonggeon, funeral related Uigwe was most. And all 22 types, except for Gyeongbokgung Palcae josung Uigwe(『景福宮造成儀軌』) on yeonggeon, are Uigwe for national rites related to the king and other members of the royal family. If we look a the contents of Uigwe by subject, we can see that the funeral Uigwe included funeral period, the numbers of shroud, the types of a sacrificial rite, the kinds and numbers of sacrifice, mourn ing of all the government officials, the order of king. While most of Uigwe in the late Joseon period was named Dogam (都監) Uigwe, among the 23 types of Uigwe in early Joseon period, there is no name as Dogam Uigwe. However as a result of examining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omplied Uigwe and Dogam, temporarily installed for rites of specific country, it was confirmed that 20 types of Uigwe expect for 3 types are related to the Dogam. In addition to this, the existence of the Hyangsil(香室) Uigwe, a collection of the funeral oration and ritual prayer in ancestor worship and Buddhist Uigwe, Gishin-jae Uigwe(『忌晨齋儀軌』) and Beopgye Seongbeom Suryuk Seunghwe Sujae Uigwe(『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 could also be identified. The Uigwe was compiled 3 copies of handwritten and kept separate in History Archives for permanent preservation and Yejo(Ministry of Rites) for practical use. To perform the same type of ritual as the subject of Uigwe, used as a reference to confirm the precedent. Therefore, it was confirmed that the purpose of compliment of Uigwe was to record of important national events and refer to the f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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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궤 소재 악기도(樂器圖) 연구

        이정희 ( Jung Hee Lee ) 한국음악사학회 2012 한국음악사학보 Vol.49 No.-

        의궤는 궁중에서 행했던 다양한 행사를 기록한 보고서이다. 조선시대 궁중 행사에는 의례히 음악이 수반되곤 했기 때문에 의궤에는 음악에 관한 정보가 많이 수록되어 있고, 그 중에는 악기도가 포함되어 있다. 바로 이 악기 도에 주목하여 의궤 소재 악기 그림의 분포 상황, 기록방식, 악기 종류 등을 정리해 보았다. 악기 도는 당시 궁중음악 연주에 동원되었던 악기를 그리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러나 각 의궤가 제작된 목적에 따라 도상화 된 종류에 약간의 출입과 시차가 있었다. 『종묘의 궤』와 『사직서의 궤』는 이전 시기에 종묘제례악과 사직제례악을 연주했던 악기의 그림도 폭넓게 소개되었다. 반면 새로 만들어진 경모궁제례를 기록한 『경모궁의궤』의 경우 당시 경모궁제례을 연주했던 악기만 그림으로 남겼다. 또한 상 장례(喪 葬禮)를 기록한 『국장도감의 궤』의 경우 부장용 명기 악기로 제작된 아악기 11종을 가감 없이 그림으로 그렸다. 궁중연향 관련 의 궤에는 연 향 악 연주에 동원된 악기그림이 있었다. 궁중에 새롭게 유입된 양 금, 선유락정재 반주 악대로 등장한 내취 악기 등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악학궤범』의 악기 도에 견주해 보면 그 정보력과 정밀함이 부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악학궤범』 복간이 조선후기에도 지속적으로 이행되었기 때문에 의 궤의 악기 도에서 표현되지 않은 보다 상세한 정보는 아마도 음악 전문 서적인『악학궤범』을 참고했으리라 생각된다. 즉 의 궤 속의 악 기도는 실제 악대에 쓰이는 악기 종류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시차가 나기도 했다. 의 궤 제작의 일차적인 목적이 행사 전반을 기록하는 것이었고, 그 중에서 악기 도는 일부분을 형성하는 정도였기 때문에 약간 소홀해 진 것으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 궤의 악기 도는 현재의 사진과 유사하게 기능하므로, 궁중의 악기와 궁중음악문화를 연구하는 기초자료라는 측면에서 일정한 가치가 있다. Uigue 義軌 (official record of court events) is a report in which various ceremonies in the Court of Korea were recorded. Since the court ceremonies in Choson 朝鮮 era were often accompanied by music, there are numbers of records about music in uigue, and instrument figures were included in uigue as well. This study looks into the distribution status of instrument figures in uigue, recording method and kind of instrument focusing on instrument book.As; for instrument figures, it is normal to draw instruments played in court music. However, each Uigue had an access to several kinds of instruments depending on purpose of making Uigue. Chongmyo uigue 『宗廟義軌』 and Sajikso uigue 『社稷署義軌』 include wide range of the figures of instruments used for playing Chongmyo 宗廟 (Royal Ancestral Shrine) ritual music and Sajik 社稷 (Land and Grain Rite) ritual music in that era. On the other hand, in case of the Kyongmogung uigue 『景慕宮義軌』in which Kyongmogung 景慕宮 ritual formalities was recorded, it only has the figures of the instruments played Kyongmogung ritual formalities ar that time. Also, in the Kukchang togam uigue『國葬都監義軌』 in which funeral was recorded, eleven kinds of court music instruments specially designed for burial ceremony were drawn without adding or deducting. The court party related uigueincludes figures of instruments played for court music. Yanggum 洋琴 (Western dulcimer) and naechwi 內吹(royal military band) instrument to accompany Sonyurak chongjae newly introduced to court are boasting graceful and beautiful figures in there. The paintings in instrument figure and the actual instruments forming band did not match often and somertimes showed time differences. The primary object of uigue was to record overall ceremony. Since the instrument figures were merely part of uigue, possible it could be treated with less care. In the big frame of uigue, instrument figures are just several pieces of puzzle. Nevertheless, uigue is one of the cultural heritages displaying vivid record of the old time, several hundred years ago, based on fact and accuracy. Therefore, the musical instrument figures in uigue have sufficient value as a data for study of court music. Also, there should be a continuous effort to reach and view the figures of instruments from the viewpoint of the painters who made uigwe at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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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장각 소장 의궤(儀軌)의 현황과 특징

        강문식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0 규장각 Vol.37 No.-

        본고는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하 규장각)에 소장된 의궤(儀軌)의 현황과 주요 특징을 정리한 것이다. 규장각에는 총 1,567건, 2,897책의 의궤가소장되어 있다. 이중 유일본 의궤는 모두 117종으로, 『선원보략수정의궤(璿源譜略修正儀軌)』류가 54종이고, 그 밖의 유일본 의궤가 63종이다. 본 연구를 통해 확인한 규장각 소장 의궤들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의궤의 목차 구성이나 기록 방식 등이 정형화된 체재를 갖추게 되는 것은 대략 17세기 후반 이후이다. 둘째, 규장각 소장 의궤에 찍혀 있는 관인(官印)으로는 ‘봉사지인(奉使之印)’과 ‘일품봉사지인(一品奉使之印)’이 가장 많으며, 그 밖에 의궤 편찬 기관이나 소장처의 관인이 찍힌 경우도 있다. 셋째, 의궤의 분상처는 제작 건수에 따라 차이가 나타나며, 또 의궤의 주제․내용에 따라 특정 기관에 분상되는 경우도 있었다. 넷째, 고종 친정(親政)이시작된 1873년(고종 10) 이후에는 세자시강원에 올려지는 예람용(禮覽用) 의궤가 별도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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