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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日基 中韓人文科學硏究會 2000 한중인문학연구 Vol.5 No.-
『恩重經』以佛敎經典的'孝經'爲人所知, 該書在重視對父母進孝的中國, 撰述而成竝且流傳到韓國. 但是, 現在, 在中國和日本, 却不以在韓國發見多種板本傳存. 與此相反, 在韓國, 高麗初期開始廣汎流通以來, 到麗末鮮初顯現了急劇發行的現狀. 韓國該時期是從元朝傳受的性理學, 以知識階層爲中心, 出現了一代思想的變化過程的時期. 象這樣以性理學爲根本理念的新進士類的登場, 與佛敎界漸趨沒落的微妙時期, 『恩重經』却展現了飛躍性的出版活動的現狀. 諸如此類的現狀, 可以解釋; 在高麗武臣政權登場以後, 自敎學中心變爲禪學中心的佛敎, 而不能確立可以對應性理學的新理論體系, 因此使儒敎作爲國家根本理念, 强調對父母眞孝的朝鮮社會對佛敎進行適應的一個方便. 一方面, 朝鮮建國基盤, 在某種程度上安定的世宗朝, 開始以治者爲中心的孝道敎育爲目的, 推進爲大規模國家性出版業的一個環, 出版『行實圖』. 別一方面 在佛敎界出現民間和寺刹爲中心, 竝行出版的『恩重經』的傾向, 成爲了强調孝行的韓國社會的一個特殊的狀況. 『恩重經』不是以特定的地域爲中心, 不是偏重某個寺刹, 而是在整個韓國整個朝鮮朝出現了持續刊行的狀況. 据考證, 在全國的寺刹和民間共有77種以上的多種板本. 該書的刊行沒有集中單純在一種類型里, 有漢文本·諺解本·韓語本等多種. 在特定的板本中, 又有多種形態的系統和板本的樣式, 尤其是, 爲幇助民衆便于理解, 采取在正文與正文之間的適當位置, 配置揷畵的獨特的編纂方式. 在韓國, 伴隨看흔早就有的對『恩重經』板本學的硏究, 又有試圖對中世國語變化過程的考察. 一方面是其內容爲中心, 與儒敎的 『孝經』相比較的宗敎學的接近, 近來又出現了對正文之揷圖的美術史的考證傾向. 筆者在硏究中, 僅僅對韓國板 『恩重經』77種中的漢語板本爲硏究內容, 根據其形態的特徵和板本的樣式, 進行細部系統的區分, 關試圖把타與中國刊行的原刻本和在韓國的覆刻本進行比較. 對『父母恩重經』的成立和對韓國流傳的事實的考證, 對韓國的漢文本41種分析結果, 可以得出以下幾個事實結論 1.『恩重經』以本來在中國撰述的爲人所知, 但在印度撰述成的多種佛敎經典中, 已有對父母的報恩思想, 其成立是在印度孕育而成的. 2. 該書在隋末唐初, 在英國的大英博物館所藏的3種不同文獻撰述而成, 可以推定其后把3卷本合竝成爲"佛說父母恩重經"的題目. 3. 在韓國, 9世紀初傳入以來, 到新羅末麗初, 以一般意上流傳的以'佛敎的孝敬'爲人所知. 4. 其結果, 在韓國高麗中期已徑以『金字寫經』造成, 現在日本京都的寶積寺所藏, 韓國的慶州祇林寺所藏的是現存最古老的大德4(1300)年板本刻成的. 5. 此後, 高麗末年(1378)從羅末麗初開始廣氾流傳的3卷本的寫本和現存最古的板本爲根基, 以'單券本'再編而成的"佛說大報父母恩重經"所開板, 在該板本中才收錄了正文的揷圖, 全新的編纂是韓國獨立再編的成果. 6. 從高麗末年以來被接受的性理學採擇爲建國理念的朝鮮朝, 相反却顯現了『恩重經』急速發行的現狀, 對此進行各種『文獻目錄』和現場考證尋訪調査, 到現在爲止有77種板本已成爲事實. 7. 象此類的調査板本中, 純粹的漢文板本有41種, 對其收錄的揷圖和樣式的特徵進行分析, 可以歸納爲高麗戊午本·鳩摩羅什譯本·三經合部本·花岩寺本·龍珠寺本·其他板本等6個系統. 8. 其中鳩摩羅什譯本系統的板本和其他板本的雙溪寺板中, 可以發現稱爲'鳩摩羅什奉詔譯'的譯者, 可以認爲是覆刻中國傳來的原刻本. 最後, 在本考察中把着眼点放在『恩重經』板本的全體系統的把握中, 此後, 進行對各系統形態的特徵和樣式的比較硏究, 還有, 對『恩重經』的成立和是否僞經的見解, 是與中國的'敦煌出土本'·韓國的慶州'祇林寺藏本'·日本的京都'寶積寺藏本'等有關的, 韓·中·日三國的共同硏究的推進, 竝提出了對此進行體系性考察的必要性.
일제강점기 은세공상회를 통해 본 종로의 공간성과 형성배경
정지희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2019 서울학연구 Vol.- No.74
There was Baekmokjeon that handled cotton cloths and silver in Joseon Dynasty and over 50 stores as Hwashin store in Japanese colonial era in Jongno. Currently many wholesale stores and jewelry manufacturers are run. Therefore Jongno have the spatial continuity that the production and sales of silver art crafts was be accomplished from the Joseon Dynasty to today. Nevertheless, the Study on silver craft specialty store almost did not proceed. Therefore, I tried to discuss what is historical interrelationship between silver craft store of Joseon Dynasty and that of Japanese colonial era and the background influenced on the formation of spatiality of Jongno. I found the location and distribution of silver craft stores of Japanese colonial era in Jongno, through the analysis about literature resources and newspaper articles, land registration maps. As a result the spatial continuity of silver craft stores that Baekmokjeon was in Jongno keeps lasting until at present. Such as continuity comes from the spatiality based on Baekmokjeon in Joseon Dynasty. The background that Jongno silver craft specialty store could flourished in Japanese colonial era are skilled technology and human resources resulting from historic sites of baengmokjeon, stable industrial ecosystem that production and consumption took place at the same time, and increasement of popularity and consumers of silver craft. In other words, the history of baengmokjjeon, which deals with silver crafts, was the fundamental driving force for the development of Jongno silver craft specialty store in Japanese colonial era Now, fabric store that more prospered than silver craft specialty store in Japanese colonial era disappeared in Jongno after the 1990s. However the silver craft specialty stores still remain and inherit historicity and spatiality of Baekmokjeon. Thus they have a very important position in the historical context of Jongno. 조선시대 종로에는 면포와 은을 취급하던 綿布廛, 白木廛이 있었고, 일제강점기에는 信行商會, 和信商會 등 약 50개소 이상의 은세공상회가 번성하였다. 현재도 종로는 귀금속도매상가와 귀금속제조업체가 밀집되어 있어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은공예품의 제작과 판매가 이루어지는 상공업공간이라는 공간적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종로 은세공상회에 대한 연구는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조선시대 시전에서 시작된 종로 은세공상회와 일제강점기 은세공상회의 역사적 관계를 밝히고, 그 배경이 종로의장소성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논의하였다. 일제강점기 상공자료와 신문기사를 통해 종로라고 인식되는 인지적 범위의 은세공상회를 찾아내고, 지적도와 지적목록과 비교분석을 통해 위치와 분포를 추적하였다. 그 결과 조선시대 은을 취급하였던 백목전과 은방이 밀집해 있던 종로2정목과 남대문통1정목 주변에 약 50여 개소의 은세공상회가 집중분포 했으며, 조선시대 시전을 기반으로 한 장소성이 일제강점기까지 지속되고 있음을 규명하였다. 이러한 장소의 연속성이 현재 종로2가의 귀금속전문도매상가와 제조업체의 분포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것은 조선시대 장소적 입지성과 역사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연속성은 은세공업이라는 특화된 산업생태계에서 종로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었다. 일제강점기에 종로 은세공업이 절정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은 시전과 은방이라는 역사적 장소 기반에서 비롯된 기술력과 인적 자원, 제작과 판매가 동시에 일어나는 안정적 산업생태계, 일제강점기 증가한 대중적 인기와 구매층의 등장으로 파악하였다. 즉 경공장에 속해 있던 은장의 내력과 은을 다루었던 은방도가의 존재는 종로의 은세공업이 발달할 수 있는 근원적 원동력이 되었고, 은공예품을 직접 생산하고 판매하는 산업형태와 직접 생산하지는 않지만 은공예품을 취급하는 종로 일대의 포목상과 시계상 등이 1차 소비자로 생성되어 안정적인 발달을 가져왔다. 또 종로에서 제작된 은공예품은 부국강병을 위한 근대적 실천과제로 받아들여진 공예품에 대한 사회적 인식 아래 문화적 욕망으로 소비되었고, 철도관광 발달에 따른 관광기념품의 수요와 함께 경성의 특산품이 되었다. 그러므로 종로의 은세공업은 본정과 견주어도 우위를 점한 종로와 조선 산업생태계의대표성을 획득하였다. 이로써 일제강점기 종로의 은세공업은 산업현장에 기여하는 미술문화로 정착되었고, 은공예품의 유행은 국가적 통제에서 벗어나 예술성과 대중성이 체화되기 시작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현재 종로에는 일제강점기에 은세공업보다 번성했던 포목상은 1990년대를 전후로 사라졌다. 그러나 은세공상회와 판매상가는 여전히 종로에 남아 전국 생산과 유통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생산과 제작이라는 산업적 특징과 명맥을 계승하고 있는 은세공상회는 종로의 역사적 맥락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차지한다.
한국어 역번역문에 나타난 ‘이/가, 은/는’의 번역 양상과 그에 따른 인식 연구
허용(Heo, Yong),박은정(Park, Eun-jung) 한국언어문학회 2016 한국언어문학 Vol.99 No.-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look at how foreigners with advanced Korean skills translate 이/가 and 은/는 in original Korean text in the back-translation of B(Korean) → A(mother tongue) → B(Korean) and examine their perceptions in two surveys based on it. A look at the use and recognition patterns of top-notch Korean learners in translation majors shown showed the type of translation into 이/가 and 은/는 and the type of translation into 이/가 → 은/는 ‘은/는 → 이/가 and there were examples of translations that were unusually omitted. First, the type translation into 이/가 → 은/는 showed that learners would recognize the meaning function of contrast by relying on a word with the opposite meaning and would unconditionally translated it as 은/는 without recognizing the relationship between subject and descriptive language. The second type of ‘은/는 → 이/가 translation, 은/는 is a translation of old information into 이/가 . Becourse simply recognizing the meaning function of the old information as a simple subject. and because of a weak perception of the subject of the sentence, the main word of the sentence was translated as 이/가 rather than 은/는. Finally, the type of omission that does not translate to 은/는 or 이/가 is a 은/는 , which is not replaced by 이/가’. Through the analysis of the reverse translation, the learners could see that they were interpreting and translating with an emphasis on meaning. Korean learners were able to check the semantic functions of ‘은/는’ they had not been exposed to in the course of learning Korean. This study may be meaningful in that it was conducted on top-notch learners of Korean language using a learning translation method called back-translation. Furthermore, the fact that the researchers analyzed the text of the Korean-More speaker in reverse translation, rather than using arbitrary sentences as an analysis target, is different from the discussions of ‘은/는’ and ‘이/g가’ so far.
한국어 역번역문에 나타난 ‘이/가, 은/는’의 번역 양상과 그에 따른 인식 연구
허용(Heo, Yong),박은정(Park, Eun-jung) 한국언어문학회 2019 한국언어문학 Vol.109 No.-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look at how foreigners with advanced Korean skills translate 이/가 and 은/는 in original Korean text in the back-translation of B(Korean) → A(mother tongue) → B(Korean) and examine their perceptions in two surveys based on it. A look at the use and recognition patterns of top-notch Korean learners in translation majors shown showed the type of translation into 이/가 and 은/는 and the type of translation into 이/가 → 은/는 ‘은/는 → 이/가 and there were examples of translations that were unusually omitted. First, the type translation into 이/가 → 은/는 showed that learners would recognize the meaning function of contrast by relying on a word with the opposite meaning and would unconditionally translated it as 은/는 without recognizing the relationship between subject and descriptive language. The second type of ‘은/는 → 이/가 translation, 은/는 is a translation of old information into 이/가 . Becourse simply recognizing the meaning function of the old information as a simple subject. and because of a weak perception of the subject of the sentence, the main word of the sentence was translated as 이/가 rather than 은/는. Finally, the type of omission that does not translate to 은/는 or 이/가 is a 은/는 , which is not replaced by 이/가’. Through the analysis of the reverse translation, the learners could see that they were interpreting and translating with an emphasis on meaning. Korean learners were able to check the semantic functions of ‘은/는’ they had not been exposed to in the course of learning Korean. This study may be meaningful in that it was conducted on top-notch learners of Korean language using a learning translation method called back-translation. Furthermore, the fact that the researchers analyzed the text of the Korean-More speaker in reverse translation, rather than using arbitrary sentences as an analysis target, is different from the discussions of ‘은/는’ and ‘이/g가’ so far.
기후변화와 질소가 외래 목본식물인 은단풍(Acer sacchatinum L.)과 낙엽성 관목인 족제비싸리(Amorpha fruticosa L.)의 생장의 미치는 영향a
이재근,이승연,정영호,유영한 한국환경생태학회 2017 한국환경생태학회 학술대회지 Vol.2017 No.1
기후변화가 심화되면 이에 따라 침입종의 반응이 어떻게 될지를 알아보고자, 온난화와 토양의 질소처리를 하여 우리나라에 넓게 분포하는 외래 목본식물 은단풍과 족제비싸리의 생장을 측정하고 비교하였다. 대기조건은 야외환경 조건인 대조구(ACAT)와 온도를 상승시킨 온도처리구(ACET), 그리고 CO₂ 농도와 온도를 함께 상승시킨 기후변화 처리구(ECET)로 나누었다. 각 대기조건 내에서 질소비료를 처리하지 않은 비처리구(Control; C)화분을 만들었다. 그리고 은단풍은 질소비료를 2g(N1), 20g(N2) 처리하였고, 족제비싸리는 1g(N1), 5g(N2) 처리하였다. 은단풍과 족제비싸리를 2014년 3월에 파종한 후 2015년 5월에 각 환경에 맞게 이식하였다. 2016년 10월까지 각 환경조건에 적응 후, 은단풍은 지상부의 길이, 직경의 크기, 지상부의 무게, 지하부의 무게, 개체의 무게 그리고 잎의 무게를 측정하였고, 족제비싸리는 지상부의 길이, 직경의 크기, 지상부의 무게, 지하부의 무게, 개체의 무게, 잎의 무게, 맹아의 수, 맹아의 길이 그리고 맹아 직경의 크기를 측정하였다. 그 결과, 은단풍의 지상부 길이는 N2일 때, EC-ET가 177.73±35.40로 가장 컸고, AC-AT가 129.89±13.73로 가장 작았다. N1일 때, AC-ET가 180.43±17.86로 가장 컸고, AC-AT가 109.16±13.21로 가장 작았다. 그리고 C일 때, EC-ET가 121.58±24.13로 가장 컸고, AC-AT가 92.5±16.86로 가장 작았다. 은단풍의 직경의 크기는 C와 N2일 때, 대기조건 간의 차이는 없었다. N1일 때, EC-ET가 1.37±0.25로 가장 컸고, AC-AT가 0.98±0.09로 가장 작았다. 은단풍의 잎의 무게는 C와 N2일 때, 대기조건 간의 차이는 없었다. N1일 때, AC-ET가 15.9±3.66로 가장 컸고, AC-ET가 7.61±1.96로 가장 적었다. 은단풍의 지상부 무게는 N2일 때, 대기조건 간의 차이는 없었다. N1일 때, AC-ET가 50±15.55로 가장 컸고, AC-AT가 24±9.93로 가장 적었다. 그리고 C일 때, EC-ET가 21±5.09로 가장 컸고, AC-AT가 18±2.58로 가장 적었다. 은단풍의 지하부 무게는 C와 N2일 때, 대기조건 간의 차이는 없었다. N1일 때, AC-AT가 58±9.50로 가장 컸고, EC-ET가 38±14.68로 가장 적었다. 은단풍의 개체의 무게는 모든 질소구배에서 대기조건 간의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족제비싸리의 지상부 길이는 C일 때, 대기조건 간의 차이는 없었다. N2일 때, EC-ET가 165.88±29.65로 컸고, AC-AT는 106.33±29.49로 작았다. N1일 때, EC-ET가 179.45±24.47로 컸고, AC-AT가 116.83±35.37로 작았다. 족제비싸리의 직경의 길이는 C와 N1일 때, 대기조건 간의 차이는 없었다. N2일 때, EC-ET가 1.12±0.13로 컸고, AC-AT가 0.8±0.16로 작았다. 족제비싸리의 잎의 무게는 N1과 N2일 때, 대기조건 간의 차이는 없었다. C일 때, AC-AT가 21.64±7.66로 컸고, EC-ET가 9.75±3.34로 작았다. 족제비싸리의 지상부 무게는 N1과 N2일 때, 대기조건 간의 차이는 없었다. C일 때, AC-AT가 66±44.41로 컸고, EC-ET가 16±8.49로 작았다. 족제비싸리의 지하부 무게는 N1과 N2일 때, 대기조건 간의 차이는 없었다. C일 때, AC-AT가 284±139.65로 컸고, EC-ET가 42±37.05로 작았다. 족제비싸리의 개체 무게는 N1일 때, 대기조건 간의 차이는 없었다. N2일 때, AC-AT가 134±22.00로 컸고, EC-ET가 77±26.46로 작았다. C일 때, AC-AT가 351±155.18로 컸고, EC-ET가 50±43.52로 작았다. 족제비싸리의 맹아의 수는 C와 N1일 때, 대기조건 간의 차이는 없었다. N2일 때, AC-AT가 2.5±1.69로 많았고, EC-ET가 0.17±0.40로 적었다. 족제비싸리의 맹아의 길이는 C와 N1일 때, 대기조건 간의 차이는 없었다. N2일 때, AC-AT가 75.84±15.34로 컸고, EC-ET가 17.17±42.05로 적었다. 족제비싸리의 맹아의 직경의 크기는 C와 N1일 때, 대기조건 간의 차이는 없었다. N2일 때, AC-AT가 0.72±0.14로 컸고, EC-ET가 0.08±0.20로 적었다. 위 결과는 은단풍의 경우 온도가 증가하거나 온도와 CO₂ 농도가 함께 증가한 조건에서 토양 질소농도가 증가하면, 지상부의 길이, 직경의 크기 그리고 잎의 무게는 증가하지만, 지하부 무게, 개체 무게는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족제비싸리의 경우 온도가 증가하거나 온도와 CO₂ 농도가 함께 증가한 조건에서 토양 질소농도가 증가하면, 지상부의 길이와 직경의 크기는 증가하지만, 지하부 무게, 개체 무게 그리고 무성생식은 감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디아코니아 관점에서 본 한국의 오순절/은사주의 운동: 순복음, 온누리, 광림교회를 중심으로
이성곤(Song Kon Lee) 장로회신학대학교 세계선교연구원 2021 선교와 신학 Vol.54 No.-
이 연구의 목적은 오순절/은사주의 운동에서 디아코니아의 이해와 실천을 살펴보고 이 운동의 특성과 사회적 변혁의 잠재력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 아래 국내에서 오순절/은사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이 디아코니아를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했는지 살펴본다. 오순절 운동을 주도했던 조용기 목사 그리고 오순절 교단이 아닌 타교단에서 은사주의 운동을 주도했던 하용조, 김선도 목사의 목회에서 디아코니아를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했는지를 연구한다. 그리고 그들의 디아코니아 이해와 실천을 바탕으로 오순절/은사주의 운동을 교회적, 통전적, 예언적 디아코니아로 분류해서 분석한 후 이 운동의 디아코니아적 특성과 잠재력에 대해서 논한다. 연구 결과 오순절/은사주의 운동을 교회성장만을 추구하는 비사회적이고 배타적인 운동으로 평가하는 것은 이 운동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오순절/은사주의 운동은 교회차원의 디아코니아 실천에서는 활발했지만 그들의 봉사는 교회 성장의 도구로 오해되었다. 이 운동은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을 구분하지 않는 통전적 관점과 실제적 접근을 더욱 강조할 필요가 있다. 오순절/은사주의 운동은 또한 디아코니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예언자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오순절/은사주의 운동이 교회적, 통전적, 예언적 세 가지 측면의 균형을 맞출 때 교회의 본질인 디아코니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갈 수 있을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understanding and practice of Diakonia in the Pentecostal/Charismatic movements and to discover the characteristics of these movements and its potential for social transformation. Under this purpose, I looked at how the leaders of Pentecostal/Charismatic movements in Korea understood and practised Diakonia. I studied how Pastor Yong-Gi Cho, who led the Pentecostal movements, and Pastor Yong-Jo Ha and Sun-Do Kim, who led the Charismatic movements in other denominations, understood and practised Diakonia in their ministry. Based on their understanding and practice of Diakonia, I analyzed the Pentecostal/Charismatic movements as ecclesial, holistic, and prophetic Diakonia. I then discussed the nature and potential of Diakonia in these movements. As a result of the study, it can be said that it is a superficial understanding of these movements to evaluate the Pentecostal/Charismatic Movements as non-social and exclusive movements pursuing only church growth. The Pentecostal/Charismatic movements in Korea were active in Diakonia practice at the church service dimension, but their service was misunderstood as a tool for church growth. These movements need to put more emphasis on a holistic perspective and a practical approach that does not distinguish between individual and social salvation. Pentecostal/Charismatic movements should also be able to play a prophetic role in building the kingdom of God through the Diakonia. When the Pentecostal/Charismatic movements balance these three aspects, they will be able to build the kingdom of God through the Diakonia, the essence of the church.
선은미,장정원,김별아,정재민,손성원,임형탁 한국식물분류학회 2014 식물 분류학회지 Vol.44 No.2
Saussurea pseudogracilis Kitam. is characterized by its slender leaves, small involucre and small number of involucral bracts compared to Saussurea gracilis Maxim. But some taxonomists insist that it is hard distinguih S. pseudogracilis from S. pseudogracilis. We tried to discern taxonomic identification of S. pseudogracilis by measuring and analyzing 45 qualitative characters and 42 quantitative characters on 165 specimen. S. pseudograilis was not distinguished from S. gracilis not only by qualitative characters but also by quantitative characters even on statistical analysis(PCA). Therefore, S. pseudogracilis is not independent taxonomic species and it is proper to consider S. pseudogracilis as a synonym of S. gracilis. 가야산은분취(Saussurea pseudogracilis Kitam.)는 길고 좁은 잎, 작은 총포, 적은 총포편 열수에 의해 유사종인 은분취(S. gracilis Maxim.)로부터 구별되고 있다. 그러나 가야산은분취와 은분취를 구별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가야산은분취의 분류학적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45개의 정성형질과 42개의 정량형질을 측정 및 분석하였다. 정성형질은 물론 정량형질에 대한 다변량분석(PCA)에서도 가야산은분취와 은분취를 구별할 수 없었다. 가야산은분취는 분류학적으로 독립된 종이 아니며 은분취의 이명으로 처리함이 타당하다.
김인호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24 한국민족운동사연구 Vol.0 No.119
본 연구는 경기도가 주도한 은사수산경기도잠종제조소와 은사수산잠종(업)강습소를 주된 연구대상으로 하여, 본 사업의 전개과정과 사업 실상, 재정운영 상황 등을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상 연구결과를정리하면, 먼저, 조선총독부는 1912년 3월 12일 조선 현실에 맞는 우량한누에고치 품종을 개량 보급하라며 각 도에다 훈령을 내렸다. 그리고 7월18일부터 서울 한강 잠실 인근에다 대규모 원잠종제조소를 건설하였다. 기존 권업모범장 용산지장에서는 1912년부터 권업모범장 용산지장 그리고 1913년부터는 수원본장에서 일본 잠종(春蠶又昔, 春蠶小石丸 春蠶靑 熟, 夏蠶新屋, 秋蠶白龍) 등을 개량하였다. 또한 수원본장에서는 제조한잠종을 각 도와 군에 배부하였고, 군에서는 다시 각 양잠가에 배부하였다. 그런데 수입된 일본산 잠종은 “품질이 아주 나빴다.” 그 원인은 일본에서 사용하지 않는 불량한 잠종을 조선에 보냈기 때문이었다. 일본종을개량한 잠종개발과 배부는 1930년대까지도 오히려 확대되었다. 원잠종제조소는 1914년부터 1917년까지 서울 잠실 인근에 있었으며, 1917년부터 동대문 인근 용두동으로 옮겼고, 1936년에는 경성부 부역의확장으로 시외 이전이 추진되어 경기도 소사역 인근으로 옮겼다. 1927년에는 명칭이 은사수산경기도원잠종제조소로 변경되었다. 이는 1925년 이래 ‘産繭100萬石15個年增産計劃’의 추진과 은사수산의 의미를 강조하려한 결과였다. 누에고치 증산이 곧 천황의 은혜라는 것이다. 한편, 1911년 용인 내사리에는 송병준강습소가 설립되었다. 이것을 모태로 경기도에서는 1917년 은사수산잠종강습소를 설립하였다. 이후1927년에는 경기도 연천에도 잠업강습소를 설치하였고, 1930년부터는용인잠업강습소를 폐지하여 연천잠업강습소가 모두 맡도록 했다. 1938 년에는 은사수산경기도원잠종제조소에 합병되었다. 합병 후 은사수산경기도원잠종제조소도 1940년부터 경기도원잠종제조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상황이 어려워진 것이다. 그리하여 제조소는 피마자나 가죽나무 잎을활용한 代用蠶을 실험하는 등 활로 개척에 힘썼다. 그러나 1942년 잠사령이 공포되면서 새로 설립된 잠사통제주식회사에게 대부분의 기능을 빼앗겼다. 요컨대, 일제강점기 내내 은사수산경기도원잠종제조소에는 2만원 정도의 예산이 계속 투하되었고, 다양한 원잠종을 개발하여 누에고치 증산에 기여했다. 그러나 일본종의 개량만 고집하여 농민으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또한 임시은사금도 총독부의 산견증산계획 소요자금이나 일본인중심의 은사수산산업장려자금대부금으로 轉用되었다. 또한 담당 기수임명이나 명칭에서도 조선인 차별이 지속되었다. This study aimed to focus on the Royal Silkworm Breeding Institute of Gyeonggi Province and the Sericulture Seedling (Business) Training Center, both led by Gyeonggi Province, to analyze the development process, actual implementation, financial operation, and other aspects of this initiative. "In summarizing the research results, firstly, on March 12, 1912, the Government-General of Korea issued orders to each province to improve and distribute superior silkworm breeds suitable for the reality of Korea. Then, starting from July 18, a large-scale royal silkworm breeding institute was constructed near the Han River in Jamsil, Seoul. From 1912, the exemplary sericulture supervisors' office in Yongsan, and from 1913, the Suwon headquarters, improved Japanese silkworm breeds such as 'Haru-kaiko,' 'Haru-Kaisho-gan,' 'Haru-Kaishu,' 'Natsu-Atarashi-ya,' and 'Aki-Hakuryu.' Furthermore, the Suwon headquarters distributed the produced silkworm seedlings to each province and county, which were then redistributed to each silk farm by the counties. However, the imported Japanese silkworms were of very poor quality. The cause was the disposal of defective silkworms unused in Japan, sent to Korea. Nevertheless, the development and distribution of silkworms based on Japanese-breeds continued to expand until the 1930s. The royal silkworm breeding institute was located near Jamsil, Seoul from 1914 to 1917. Then, from 1917, it was relocated to Yongdu-dong near Dongdaemun. In 1936, as part of the expansion of the Gyeongseong (Seoul) area, it was relocated to near Sosa Station in Gyeonggi Province. In 1927, its name was changed to the Royal Silkworm Breeding Institute of Gyeonggi Province. This change was a result of emphasizing the significance of sericulture and Program of ‘One Million-rice bag silkworm promoting for 15 years' since 1925. Increasing silk production was considered a grace from the Emperor. On another note, in 1911, the Song Byeong-joon Training Center was established in Naesa-ri, Yongin. Based on this, Gyeonggi Province established the Gyeonggi Province Sericulture Seedling Training Center in 1917. Then, in 1927, a sericulture training center was set up in Yeoncheon County, Gyeonggi Province, and from 1930 onwards, the Yongin Sericulture Training Center was closed, and all responsibilities were transferred to the Yeoncheon Sericulture Training Center. In 1938, it was merged into the Gyeonggi Province Royal Silkworm Breeding Institute. After the merger, the Gyeonggi Province Royal Silkworm Breeding Institute also changed its name to the Gyeonggi Province Silkworm Breeding Institute in 1940. The situation became challenging. Therefore, efforts were made to explore alternative activities, such as experimenting with ‘substitute silkworms’ using Paulownia tree or leather tree leaves. However, with the enactment of the Sericulture Control Act in 1942, most of the functions were transferred to the newly established Sericulture Control Corporation. In summary, throughout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round 20,000 won was continuously allocated to the Gyeonggi Province Silkworm Breeding Institute, contributing to the increase in silkworm production by developing various silkworm breeds. However, insistence on improving only Japanese-breeds led to alienation from the farmers. Moreover, the allocated temporary silkworm funds were redirected towards the Governor-General's Silkworm Production Plan or the Japanese-centered silkworm industry promotion loan system. Discrimination against Koreans also persisted in appointments and designations.
신승규(Seung Kyu Shin),강정희(Jeong Hee Kang),송지현(Ji Hyeon Song) 大韓環境工學會 2010 대한환경공학회지 Vol.32 No.10
본 연구에서는 나노 사이즈의 은입자가 첨착된 입상활성탄을 적용하여 기체상 포름알데히드의 흡착특성을 확인하고 실험결과를 수치해석 결과와 비교 평가하였다. 나노 은입자 첨착활성탄에 대해 BET분석 결과, 나노 은입자가 활성탄 표면의 미세기공을 막아 활성탄의 비표면적이 다소 감소하였으며, 특히 20Å 이하 micropore의 총 부피가 크게 감소한 것을 확인하였다. 포름알데히드에 대한 등온흡착실험 결과, 최대 겉보기 흡착능은 나노 은입자 첨착활성탄의 값이 일반활성탄에 비해 높았다. BET 표면적이나 미세기공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나노 은입자 첨착활성탄이 향상된 포름알데히드 제거능을 나타낸 것은 은입자 첨착활성탄에서 흡착 외에 추가적인 포름알데히드의 촉매산화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흡착강도를 의미하는 1/n은 두 가지 활성탄에 대해 모두 비슷한 기울기를 보여 활성탄의 표면 개질에 의해 활성탄 고유의 물리 화학적 흡착 성능은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연속유입 실험 결과에서도 나노 은입자 첨착활성탄이 일반활성탄보다 높은 포름알데히드 제거능을 나타내어 포름알데히드 산화효과를 확인하였다. 활성탄의 연속유입 실험결과를 수치해석 결과와 비교했을 때 나노 은입자 첨착활성탄에 대해서는 나노 은입자에 의한 산화효과를 반영하지 않고 있지 않아 실험결과와 거의 일치하지 않았다. 따라서 금속물질로 표면 개질된 활성탄 컬럼 설계에 수치해석 모델을 활용하고자 한다면 흡착뿐만이 아니라 촉매산화 효과가 반영된 새로운 수치모델의 개발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This study was conducted to investigate formaldehyde removals by silver nano-particles attached on the surface of granular activated carbon (Ag-AC) and to compare the results to those obtained with ordinary activated carbon (AC). The BET analysis showed that the overall surface area and the fraction of micropores (less than 20Å diameter) of the Ag-AC were significantly decreased because the silver particles blocked the small pores on the surface of the Ag-AC. The formaldehyde removal capacity of the Ag-AC determined using the Freundlich isotherm was higher than that of AC. Despite the decreased BET surface area and micropore volume, the Ag-AC had the increased removal capacity for formaldehyde, presumably due to catalytic oxidation by silver nano-particles. In contrast, the adsorption intensity of the Ag-AC, estimated by 1/n in the Freundlich isotherm equation, was similar to that of the ordinary AC, indicating that the surface modification using silver nano-particles did not affect the adsorption characteristics of AC. In a column experiment, the Ag-AC also showed a longer breakthrough time than that of the AC. Simulation results using the homogeneous surface diffusion model (HSDM) were well fitted to the breakthrough curve of formaldehyde for the ordinary AC, but the predictions showed substantial deviations from the experimental data for the Ag-AC. The discrepancy was due to the catalytic oxidation of silver nano-particles that was not incorporated in the HSDM. Consequently, a new numerical model that takes the catalytic oxidation into accounts needs to be developed to predict the combined oxidation and adsorption process more accurately.
김형석 ( Hyung Seok Kim ),채수천 ( Soo Chun Chae ),김정윤 ( Jeong Yun Kim ),손정수 ( Jeong Soo Sohn ),김상배 ( Sang Bae Kim ) 한국광물학회 2008 광물과 암석 (J.Miner.Soc.Korea) Vol.21 No.4
필리핀 만카얀 지역의 빅토리아 광산에서 입수한 금·은 광석으로부터 금·은 성분의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지질 및 광물학적 특성, 금과 은의 수반상태, 파·분쇄에 따른 단체 분리도, 체 분리에 의한 분립 특성과 요동테이블에 의한 비중 선별 특성을 연구하였다. 필리핀산 금·은 광석은 황철석, 섬아연석, 방연석 등의 황화광물과 석영 및 점토 등의 맥석 광물로 구성되었다. 금·은 성분은 황철석, 섬아연석, 방연석 등의 황화광물에 주로 수반되어 있었다. 황화광물 결정의 크기는 100㎛에서 1㎛ 이하까지 광범위한 입도분포를 갖기 때문에 금·은이 수반된 황화광물의 단체분리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금·은 광석을 최소한 100㎛ 이하로 매우 작게 분쇄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은 광석을 Jaw crusher→cone crusher→rod mill 등으로 단계적으로 파·분쇄하여 입도(d90)를 100㎛ 이하로 조절하면 단체분리도가 92% 정도까지 높아졌다. 금·은 성분이 함유된 황화광물의 결정이 100㎛ 이하의 입단에서 고르게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체질에 의한 분립 방법으로는 금·은을 수반한 황화광물을 선택적으로 분리하여 회수할 수 없었다. 파·분쇄한 금·은 광석을 체로 분립한 후 요동테이블로 비중 선별한 결과, 정광에는 황화광물이 주로 농축되어 금과 은의 품위가 각각 40ppm 및 140ppm까지 높아졌다. 이때 정광의 금 실수율은 거의 100%에 이르지만, 은 실수율은 50% 수준에 불과하였다. To enhance the grade and recovery rate of the gold/silver ores which yield at Philippine Mankayan mine, we studied the characteristics which are the geologic and mineralogical features of gold and silver ore, the liberation by crushing and grinding, the separation by sieving and shaking table. Gold/silver ore is composed of the sulfide minerals like pyrite, sphalerite, galena; and the gangue minerals which is quartz, clay. Gold/silver element are mainly contained in a sulfide minerals like pyrite, sphalerite and galena. To increase the liberation rate of sulfide minerals containing gold/silver element, the gold/silver ore has to be grounded under 100㎛ very finely because the crystal size of sulfide minerals is distributed from 1㎛ to 100㎛. The liberation rate of gold/silver ore increases to 92% when the particle size (d90) of ore is grounded below 100㎛ by jaw crusher→cone crusher→rod mill by steps. The grade and recovery of sulfide minerals could not be enhanced by sieving separation because those crystal size is distributed homogeneously below 100㎛. But, when we separated the sieved ore using shaking table, the gold and silver grade increased to 40ppm and 140ppm, respectively. Then the recovery rate of gold reach almost 100% but that of silver is no more that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