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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정 말 러시아의 소수민족 교육정책과 조선인-이주민의 교육 활동 : 프리모리예 지역을 중심으로

        양승조 숭실사학회 2021 숭실사학 Vol.- No.46

        제정 말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조선인-이주민에 대한 국가와 정교회의 교육정책은 1880년대를 기점으로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860-1870년대의 이주 초기는 조선인-이주민 공동체 내에 교육기관 자체가 부족한 시기였다. 이러한 이유로 이때에는 러시아 정부와 정교회에서 설립한 국립학교와 교회학교이든, 아니면 조선 인이 스스로 설립한 서당과 같은 민족학교이든, 조선인-이주민은 교육기관을 적극적으로 수립하 고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1888년 이래로 조선인-거주민이 러시아 공민이 될 수 있는 조건이 확립되면서 조선인-이 주민 공동체는 러시아 공민인 원호인과 러시아 비공민인 여호인으로 분화되었다. 러시아 국가와 이 해관계를 공유하게 된 원호인은 러시아식 근대교육체계를 수립하고 발전시키려 했다. 반면, 한반 도에 대한 일본의 침탈이 강화되면서 이 지역으로 유입된 항일운동 계열 인사들의 영향을 받아, 여 호인은 근대적 교육과정을 갖춘 새로운 형태의 민족학교를 확립해 나갔다. The educational policy of the Russian state and the Russian Orthodox Church for the Korean immigrants in the Russian Far East can be divided into two periods, starting from the 1880s. In the 1860-1870s, there was a lack of educational institutions within the Korean immigrant community. For this reason, at this time, whether it was a public school established by the Russian government and the Orthodox Church, or an ethnic school such as a Seodang(서당) established by Koreans themselves, Korean immigrants actively tried to es tablish and maintain it. However, since 1888, when Korean residents were allowed to become Russian citizens, the Korean immigrant community was divided into ‘Wonhoin(원호인)’, a Russian citizen, and ‘Yeohoin(여호인)’, a non-Russian citizen. ‘Wonhoin(원호인)’, who shared interests with the Russian state, tried to establish and spread the Russianstyle education system. On the other hand, ‘Yeohoin(여호인)’ established a new type of ethnic school with a modern curriculum under the influence of the anti-Japanese movement figures who came to this region as the Japanese invasion of the Korean Peninsula intensified.

      • KCI등재

        러시아성의 안과 밖: 세계문학론과 러시아문학

        변현태 서울대학교 러시아연구소 2019 러시아연구 Vol.29 No.1

        이 논문은 러시아성(русскость)의 문제를 그 ‘안과 밖’에서 고찰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19세기 서구주의자 vs. 슬라브주의자 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러시아성의 문제는 ‘옥시덴탈리즘적으로’ 재구성되는 서구라는 타자, 오리엔탈리즘의 주체이자 객체로 설정되는 이중적 지위, 이 모든 정황과 관련되는 러시아적 주체라는 복잡한 문제를 제출한다. 이 논문은 이러한 러시아성의 문제를 세계문학론과 러시아문학의 관계를 통해 다루고 있다. 이 논문은 세계문학론에서 러시아문학이 어떻게 포함되고 배제되는지를 살핀다. 세계문학론자 모레티(F. Moretti)의 러시아문학과 관련된 논의를 구체적으로 검토하면서, 이 논문은 러시아성이 민족주의적 혹은 오리엔탈리즘적으로 소비되어 온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세계문학이라는 관념이 궁극적으로는 근대성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판단 하에서 이 논문은 러시아의 근대성의 문제가 근대의 왜곡된 형태가 아니라 실은 근대 그 자체가 가진 전도의 폭발이라는 관점을 제출한다. 따라서 이 논문은 세계문학과 러시아문학의 바람직한 관계의 모색을 통해 세계문학을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 KCI등재

        러시아의 공공외교: 특수성과 보편성

        우준모 ( June Mo Woo ) 한국세계지역학회 2010 世界地域硏究論叢 Vol.28 No.3

        러시아는 지난 20년 간 일정한 수준의 민주화와 근대화의 진전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러시아에는 소연방 시기에 냉전적 대결을 펼쳤던 서구가 덧씌워놓은 적대적 고정관념과 부정적 이미지가 여전히 덧씌워져 있다. 그 결과 러시아는 에너지 산업과 국가안보, 소수민족 및 접경한 약소국과의 관계 설정 문제 등에 있어서 국제사회로부터 러시아의 핵심적인 국익을 지켜내는데 상당한 견제를 받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러시아는 국제사회로부터 받고 있는 부정적인 시선을 극복해내고 긍정적인 국가이미지를 창출하고자 공공외교의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이 연구는 러시아가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공공외교의 노력을 고찰한 것이다. 연구의 내용은 러시아 공공외교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고찰하고 그 사례로 러시아-폴란드 관계의 진전과정을 분석하였다.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공공외교 노력이 부분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여전히 국제사회의 부정적 이미지를 털어내는데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퇴행, 부패와 마피야 범죄, 경제적 침체, 에너지 자원의 국가 통제, 나토확장에 대한 반발, 그루지야 전쟁과 체첸문제 등이 러시아의 부정적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원인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러시아는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우선적인 진전을 실행한 다음에야 비로소 이미지 개선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The goal of this paper is to review and analyze Russia`s public diplomacy focusing on the aspects of peculiarity and universality including a case of the progressive relation between Russia and Poland. Despite its progression towards democratization and modernization, Russia has yet to get out of negative image that is rooted in the Soviet-era stereotypes. Since 2004, Mr. Putin has allocated millions of dollars to various public diplomacy initiatives in an effort to project a more positive image of Russia 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But Russia still faces a number of challenges to overcoming its unfavorable reputation. Some of the key issues adversely affecting Russia`s pubic diplomacy efforts are a controversial crackdown on the media, involvement in Chechnya and Kosovo, opposition to NATO expansion, an increasing control on energy, and an allegedly authoritarian regime. In concluding, Russia ultimately should seeks to practice democracy and maintain economic ties, foster good relations with international community first. After then, the public diplomacy efforts will bear fruit in time.

      • KCI등재

        ‘푸틴’執權 二期의 러시아 國防安保政策과 東北亞地域에서의 러시아 戰略的 對應

        김태웅(Kim Tae-Woong) 한국법학회 2006 법학연구 Vol.24 No.-

        2006년 5월 러시아연방 제3대 대통령에 취임한 푸틴대통령은 '강력한 국가 건설'을 국정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회복해나가기 위한 총체적인 노력을 경주해 왔다. 특히, 2004년 5월 제4대 대통령 취임과 함께 시작된 집권 2기를 맞이하여, 푸틴대통령은 국가안보 정책 기조를 '강한 러시아의 구현', '실리 위주의 대외정책 추진', 그리고 전략적 중요지역이면서 경제적 낙후지역인 극동지역과 시베리아 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개발을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다. 우선 푸틴대통령은 '강한 러시아 구현'을 위해 대내적 정국 안정과 더불어 국가경제의 안정 성장 기반을 구축하려는 확고한 의지와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푸틴대통령은 정치부문에서도 '강한 러시아 건설'이라는 기치를 내세워 경직된 관료조직에서 창의성과 능률성을 최우선시 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보인 바 있다. '강한 러시아 구현'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강력한 러시아연방군 건설'을 위해 러시아연방군 지휘부를 재편하여 군부를 장악할 수 있는 가시적 조치를 취하였다. 한편, 대외정책에서도 미국과의 관계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면서, 중앙아시아 및 중동지역으로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해 나가고 나토가 동유럽과 구소련권내 독립국가 연합국가(CIS)들에게까지 그 영향력을 확대해 나감으로써 이들 국가들에 대한 러시아의 기존 동맹관계나 영향력이 손상 또는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강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푸틴 정부 들어 러시아의 대외정책이 지정학적 실용노선으로 변화하면서, 향후 한반도 정책과 관련된 러시아의 태도는 더욱 적극적으로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입장에서 대북한 관계에 있어서나, 대외관계에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적절히 고려 및 활용할 필요가 있을 것인 바, 특히 향후 군사 외교적 측면에서 대러외교정책 및 군사협력 추진과제를 보다 체계적으로 추론하여, 이를 효율적으로 시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In May of 2004 Bladimir Putin became 4th president of Russian Federation. It is estimated that in the duration of 2nd Period of his Government he will also execute the national policy continuously and firmly including the defense security policy continuously under the slogan 'The Construction of the Great State' and 'Restoration of the State Status to the Super Power in the international society.' Especially president 'Putin' would like to have a more cooperative relation with countries in the northeast asia. But in this region there are many serious and critical changes in the political, military aspects. North Korea continuously evoked conflicts from the development of nuclear weapon and missile system, In the confrontation of various crises in this region including the development of missile system and nuclear weapon of North Korea, U.S.A. has executed the firm measures, maintaining a powerful military alliance with Japan in the consideration of preemptive attack into North Korea. Russia also relatively begin to take a reaction with serious attitude against such a military measures in the cooperation with China. Here we, Republic of Korea have to execute the national security policy including military policy so carefully in accordance with these political-military situ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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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 전반 러시아 국가의 수도 페테르부르크의 근대성

        박지배(Park, Ji-bae)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2013 역사문화연구 Vol.46 No.-

        본 논문의 목적은 근대 러시아 국가의 중요한 특성들 즉 중앙집권적 절대국가의 형성, 서유럽 근대문화의 수용, 근대세계체제로의 편입이 18세기 전반 페테르부르크의 건설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페테르부르크는 18세기 초에 중앙집권적인 절대국가로 부상한 러시아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이후 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황제의 궁정이 있는 왕도였고, 또한 원로원, 콜레기야 같은 중앙집권적인 행정기관들이 들어선 행정 중심지였다. 또한 페테르부르크는 크렘린을 중심으로 자연발생적으로 확산되는 러시아 중세의 도시들과 달리 설계안에 따라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건설된 도시였다. 그리고 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근대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중세를 대표하는 모스크바의 교회-스콜라 풍의 교육이 아니라 근대 학문의 특징인 경험적 실용 학문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더욱이 페테르부르크는 더 이상 고립된 모스크바 국가의 도시가 아니었다. 러시아는 페테르부르크를 통해 유럽세계경제와 확고히 연결되었고 결과적으로 근대세계체제의 한 영역이 되었다. 이렇게 전반적인 모습을 보면은 페테르부르크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여러 측면에서 서유럽의 근대적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페테르부르크의 근대성은 몇 가지 점에서 서유럽의 근대 도시들과는 달랐다. 먼저 페테르부르크의 성장은 자생적 측면보다는 국가 주도적 측면이 지나치게 강했다. 특히 페테르부르크의 건설과 급속한 발전은 표트르 대제라는 강력한 지도자의 강제적인 정책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페테르부르크의 근대성은 시민적 성격보다는 국가적인 성격이 강했고, 이는 결국 러시아 국가의 지배계급인 봉직귀족들이 주도하는 근대성이 되었다. 표트르 사후 페테르부르크의 교육이나 사교에서 볼 수 있듯이 귀족들은 중류층을 밀어내고 러시아의 근대 문화를 주도했다. 한편 페테르부르크의 교역은 근대세계체제 내에서 전형적인 주변부의 모습을 보였다. 페테르부르크 항구는 러시아 내부의 귀족 영지에서 생산된 농산물 또는 반제품 등을 수출하고 서유럽의 사치품과 아메리카 작물 등을 수입했다. 페테르부르크 항구를 통해 유럽의 상인들은 러시아로 들어와서 러시아 무역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다. 이렇게 보면 페테르부르크의 근대성은 대단히 이중적이었다. 근대국가, 근대 학문, 근대교역의 발전은 과도한 국가주의, 주변부적 교역과 중첩되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페테르부르크의 근대성은 부르주아가 아닌 특권 귀족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그것은 근대 러시아 국가의 주역이 부르주아가 아니라 드보랴닌이라고 불리는 봉직귀족이었기 때문이었다. This article aims to investigate the modern characters of Saint-Petersburg, the capital of modern Russian state, in the first half of the eighteenth century. Early in the eighteenth century, Saint-Petersburg became the capital of the Russian Empire, which was emerging as a centralized absolutist state. Petersburg was the administrative center of modern Russian state, in which were located the imperial court and administrative organs. And Petersburg gradually became the cultural center of Russian Empire. Throughout Petersburg port, Russia was connected with European World-Economy and as a result became a part of Modern World-System. But the modern elements of Petersburg were different from those of modern cities of Western Europe. Above all, Petersburg was constructed not by civil initiative, but by a series of forceful policies, which was dominated by the state. Therefore the modernity of Petersburg was characterized by aristocracy, who was the ruling class of modern Russian state. And the trade of Peterburg port showed a peripheral character of modern world-system. Russia exported through Peterburg port the agricultural raw materials, that were produced in the aristocratic estates by serf labor, and imported the industrial and luxury goods that was made in western European states. The modernity of Saint-Petersburg in the first half of eighteenth century was ambivalent. The development of modern state, studies, and trade overlapped with excessive statism, peripheral charac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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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 소비에트 시대 러시아 민족주의 블록버스터와 ‘강한 러시아’ 담론

        김영준(Kim, Young Jun),이현진(Lee, Hyun Jin) 동국대학교 영상미디어센터 2014 씨네포럼 Vol.0 No.19

        1990년대 소비에트 연방 붕괴 후 오랜 침체기를 겪었던 러시아 영화산업은 2000년대 러시아 블록버스터라 불리는 일련의 영화들을 앞세워 부활하였다. 러시아 블록버스터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비견될 만큼 화려한 볼거리와 웅장한 스케일로 관객에게 어필했다. 그리고 그 중심서사는 공통적으로 강한 남성 주인공을 내세우며 강대했던 러시아와 소련의 과거를 다루거나 러시아의 신화적 세계를 다루는 등 민족주의적 색채가 두드러져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포스트 소비에트시대 러시아 민족주의 블록버스터라 불리는 이 영화들은 ‘강한 러시아’ 담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강한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표방한 러시아의 지향점이지만 90년대 소련 붕괴 후 심한 혼란을 겪으면서 러시아 국민들에게 잠재된 열망이기도 하다. 그 열망은 니키타 미할코프의 <위선의 태양>(1994)과 <러브 오브 시베리아>(1998)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미할코프의 영화에서 러시아적 가치와 정체성의 확립은 강한 남성상으로 구현되었다. 그리고 미할코프의 영화를 이어받은 2000년대 러시아 민족주의 블록버스터는 ‘강한 러시아’ 담론을 구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 영화가 역사를 왜곡하는가 하면 전체주의의 논리를 내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전쟁블록버스터는 필연적으로 외부의 적을 상정하고 내부의 단결을 촉구하는 특성을 보인다. 이 과정에서 강한 남성은 국가 정체성을 대변하게 되고 전쟁은 미화되고 군사문화는 추앙된다. 러시아 민족주의 블록버스터는 러시아의 실추된 자존심을 왜곡된 역사인식을 토대로 한 민족주의를 통해 해결함으로써 러시아 사회의 우경화를 부추기고 있으며 충실하게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고 있는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plain a corelation of Russian nationalism blockbuster films in the Post-Soviet period with the “Strong Russia” Discourse, especially war blockbuster that has been produced with the assistance of the country. The point at issue is for these movies to distort history and internalize the fascist logic. In particular, war Blockbusters necessarily exhibit the property of promoting the internal unity by assuming the external enemy. In the process, strong men represent the national identity, military culture is worshiped and War is idealized. After the collapse of the Soviet Union, the Russian film industry which has been in a long recession in the 1990s was resurrected through a series of movies called the 2000s the Russian blockbuster. These Russian Blockbusters was appealing to the audience in a splendid visuality and spectacular scale enough to compare with a Hollywood blockbusters. And we can find nationalistic color out of these movies’ narrative through a symbol of strong men hero, such as dealing with mighty Russia or past of the Soviet Union and mythical world of Russia in common. In the Post-Soviet era, these movies which are referred to as the Russian nationalism block Busters were closely connected with the “strong Russia” discourse. However the “Strong Russia” discourse that Russian President Vladimir Putin had advocated has been already latent aspirations in the Russian people in the 1990s. The aspirations can be confirmed via the Burnt by the Sun(1994) and The Barber Of Siberia(1998) of Nikita Mikhalkov. Mikhalkov embodied the Russian value and identity as strong male figure in his movies. Also 2000s Russian nationalism blockbusters inherited from the movies of Miharlkov were implementing the discourse of “strong Rus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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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의 북한인권에 대한 인식과 동향

        우평균 ( Pyung Kyun Woo ) 한국세계지역학회 2011 世界地域硏究論叢 Vol.29 No.3

        본 논문은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입장이 무관심 혹은 불개입으로 일관해온 이유를 제시하고, 러시아를 통해 북한인권 문제에 접근하는 방도를 제시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러시아에서의 인권 관념 및 인권운동의 전개과정을 살펴보고, 러시아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표명하고 있는 인식과 태도를 러시아 정부 및 시민사회 차원에서 파악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 차원에서는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의 러시아의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태도 표명을 위주로 볼 수 있으며, 더불어 러시아 지역에 유입되거나 러시아로 탈출한 북한 노동자에 대한 처리 문제를 통해서도 러시아의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시각을 도출할 수 있다. 러시아는 한반도에 대한 자신의 국가이익, 미국의 러시아 인권 비판에 대한 반발 심리, 북한에 대한 무관심, 아직까지 남아있는 소련 시절의 관행 등의 이유로 북한인권 문제에 불개입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데, 단순히 러시아 내 인권상황에 대한 서구의 비판을 모면하기 위해 북한인권 문제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 내 탈북자 문제에 있어 러시아는 원칙상 난민대우를 해주어야 하지만, 실행에 있어 모순되는 행태를 보임으로서 불명확한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정부는 러시아와의 협상 시 러시아에 이익이 되는 다른 사안과 연계해 러시아 내 탈북자 문제에 러시아가 전향적으로 한국의 입장을 수용하도록 협상력을 강화해야 한다. 러시아 시민사회에서의 북한인권과 관련한 움직임은 정부 측 입장보다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북한인권 상황을 비판하고 인권개선을 위해 북한에 압력을 넣어야한다는 주장은 실제로 정부의 정책에 반영되고 있지 않으며, 개인적인 주장으로 남아있다. 결국 다자적 구조 형성 과정에 러시아를 포함시켜 북한인권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구조를 만드는 것은 그 실현 가능성이 낮으며, 한국과 러시아가 협의 가능한 사안위주로 양자협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This paper has a purpose to suggest the reasons why Russia has been consistently managed attitude of indifference or non-involvement on human rights in North Korea and to offer the devices for the approach to the issues of Human rights in North Korea through Russia. For it, it is needed that the perception and behavior in the level of the state and civil society on North Korean Human Rights in Russia should be analysed. In the level of the Russian state, the main aspects can be seen through the acts of Russia in international organization, UN, and dealings with the North Korean refugees in Russia. Russia has been stubbornly keeping her attitude of indifference in North Korean human rights, due to Russia`s national interests toward Korean Peninsula, counter active expressions from American critics to Russian human rights problems, and the existing customs from the days of Soviet Union. Russia has some uncertain attitude to the North Korean refugees in Russia, though she has a right to protect every refugees in Russia according to her entry into international treaty. Finally, Korean government has to strengthen the power for negotiation with the connection of Russia`s interests in order to accept Korea`s demand to Russia on the refugee problem in the process of negotiation with Rus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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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러시아어에 나타난 언어변화

        유승만(Syeng Mann Yoo) 한국노어노문학회 2010 노어노문학 Vol.22 No.3

        소비에트의 해체 이후 러시아는 전면적인 사회변화를 겪고 있다. 그 와중에 눈에 띄는 현상 중의 하나가 언어의 변화이다. 언어변화는 음성, 음운, 형태, 통사, 의미론의 전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소비에트 해체 이후 현재까지 근 20여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본 연구는 다방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언어 변화 중 차용어의 의미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측면에서 고찰하고 있다. 첫째, 외래어 차용의 원인과 영역에 대한 통시적 고찰, 둘째, 기존 차용어의 의미변화 양상, 셋째, 영어 선호현상과 이차 차용 현상, 넷째, 컴퓨터 용어를 통해 본 차용어의 러시아어로의 동화 기제가 그것이다. 첫째, 본 연구는 외래어 차용의 원인과 영역에 대한 통시적 고찰을 통해 러시아어 발달사에서 외래어 차용의 원인과 영역이 시대별로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살펴봄으로써 21세기 러시아에서의 외래어 차용을 거시적인 역사적 문맥 속에서 고찰하고자 하였다. 둘째, 러시아를 비롯한 자연언어에서 외래어 차용현상은 자연적인 현상으로, 이미 러시아어에는 많은 외래어들이 들어와 러시아어로 동화된 바 있다. 이러한 기존의 외래어들이 소비에트 해체라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다양한 의미 변화 과정을 거치고 있는 바, 본 연구에서는 사회변화로 인한 기존 차용어휘의 의미변화 양상을 포착해 보고자 하였다. 셋째, 소비에트 해체 이후 자본주의의 유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변화 속에서 포스트 소비에트 시기의 러시아인들은 고유한 슬라브어 어휘보다는 영어 어휘를 선호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외래어와 의미 면에서 유사한 영어 어휘가 공존할 경우 영어 어휘를 선호하는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차차용 현상에 대한 고찰을 통해 러시아인들의 영어 선호현상을 변별적으로 드러내 보이고자 하였다. 넷째,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컴퓨터 및 IT 분야 외래어의 차용 및 이 분야 어휘들의 러시아어 동화 기제를 통해 러시아인들이 외래어 차용에 대해 가지고 있는 다면적 태도들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20세기 말 21세기 초에 러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외래어 차용과 그 외래어들이 러시아어로 동화되는 기제들에 대한 고찰을 통해 언어변화에 담겨 있는 러시아 문화의 변화양상을 드러내 보이고, 그 변화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다면적인 태도들을 포착하고자 한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trace cultural changes happening in post-Soviet era Russia through the changes of lexical meaning of borrowed words as well as such phenomena as second borrowing, Americanization, and Russification of already borrowed words in pre-Soviet era. The author over-viewed language change in the present day Russia from the following perspectives. First, the author traced back the history of borrowed words in chronological order. Second, the author examined how the traditional meanings of already borrowed words have changed since 1990s. Third, the author examined Americanization through second borrowing. Fourth, the author tried to convey various attitudes of Russians toward massive influx of foreign words into Russian vocabulary. In conclusion, the author claimed that Russians need to try balance out their position in cooperating foreign words into their native language system.

      • KCI등재

        Korea and the Koreans in the Russian press of 1904-1905

        Igor Ermachenko(이고르 예르마첸코)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2005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Vol.8 No.-

        러일전쟁이 러시아 사회에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인상을 부각시키는데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한국 관련 연구서들과 학술탐사보고서를 포함한 주목할만한 개설서들이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동아시아에서 서구열강의 세력권 확보를 위한 각축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1900년 러시아 재무성은 1,250페이지 분량의 3부로 구성된 방대한 기초 연구서인 “韓國誌(Описание Кореи)”를 출간하였는데, 이는 당대의 여타국가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규모였다. 그러나 일반 독자들에게 거의 눈에 띄지 않았던 극동의 구석진 곳에 위치한 “이 이상한 나라” 한국이 일반 대중의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바로 이 전쟁 덕분이었다. 러일전쟁(1904-1905)시기 러시아의 언론에 비친 한국은 교전 상대국 일본과 주요 전장이었던 만주를 묘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언급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이나 저널에 남아있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기록은 한국의 독특함에 대한 러시아 사회의 폭넓은 관심을 보여준다. 이 같은 독특함은 일본과 중국에 대한 묘사와 비교를 통해서만이 완전하게 평가될 수 있는 바, 그 차이점은 양면성이라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초기에는 교활하고 남의 흉내를 잘 내는 동양인의 모습과 의협심이 강한 일본의 적대자라는 양면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그 다음 단계에서는 무고하게 고통당하고 있는 평화로운 주민의 모습과 혐오스러운 마적떼, 잠재적인 적국, 황화를 초래할 수 있는 가상의 적국 가운데 하나라는 모습 사이에서 진자운동을 하였다. 따라서 러일전쟁 직전과 개전초기의 상황을 통해 나타난 러시아의 한국인식에 대한 전통을 고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전쟁초반 러시아 언론에서는 한국을 당연한 중립국가로 묘사하기 시작했고, 한국의 중립에 관한 국제적 협약(시모노세끼 조약, 영일동맹 및 러불선언의 조문들 1902년)을 위반한 일본이 불법적으로 한국을 무력간섭함으로써 고통받고 있는 국가로 그리고 있었다. 이와 유사한 논조들은 육군성과 외무성의 공고문 및 훈령들을 게재한 공식적인 신문들이나 저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경우 중국과 마찬가지로 대한제국 정부의 입장과 민중들의 성향간의 차이는 제대로 언급되지 않고 대체로 이 둘을 피해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정기간행물에 소개된 1904년 2월 6일자 만주군 임시사령관 린네비치 장군의 전문에는 일본이 한국인들에게 적대적으로 대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우리에게 각별한 신뢰와 호의를 보이고 있고, 러시아가 일본보다 강하다고 말하곤 한다고 보고하였다. 또한 한반도에 대규모 일본군이 상륙한 직후, 한국인 가운데 일부가 러시아 국경으로 달려와 러시아 육군지휘관들에게 일본군의 동정을 알려주었다는 언론 보도 역시 이 같은 평가에 기여하였다. 이후 한국인들의 정보제공에 대한 기사들은 지속적으로 게재되었다. 그러나 1904년 2월 9일자 외무성 회람문에서도 강조되었던 바와 같이, 러시아정부는 일본이 한국을 불법적으로 점령한 상황에서 한국정부의 명의로 생산되는 모든 훈령과 공고를 무효로 인정하기로 하였다. 유력한 신문의 주필들 역시 유럽열강의 전함들이 제물포로 파견된 명분이 되었던 무질서를 떠올리며 이미 러일개전 직전부터 한국 정치상황의 총체적인 불안정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더욱이 여러 차례 일본인 첩자들이나 유격대원들이 한국인의 전통복장으로 갈아입고 그들의 임무를 수행해왔던 사실은 한국인들을 보다 조심스럽게 대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개별적으로 수집된 군사정보 속에도 일본을 위해 간첩활동을 한 한국인에 대한 소식도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러일전쟁 초기 러시아 언론에 나타난 한국인식은 양면성이라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한국인들은 그들과 커다란 상관이 없는 외국의 분쟁에 휘말린 사례였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러시아 여론의 동정과 공감을 얻고 있었다. 이 같은 여론은 예술문화 관련 저널에 실린 기사들을 통해 보다 확산되어 갔는데, 그 주인공들은 전쟁의 잔혹함에 몸으로 부딪힌 평화로운 한국인들이었다. 특히 눈에 보일 듯이 전쟁의 일화를 묘사한 울프슨의 작품 속에서 한국인의 모습은 일본과 중국인과들과는 달리 나름대로 양면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국인들의 억울한 감정은그들을 흘러넘칠 정도로 과도하게 평화 애호적으로 만든 점과 일본에 대해 효과적으로 저항하지 못하는 그들의 무능함과 수동적 애국주의를 대비시키면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아울러 그의 저작에서는 한국인의 무능함과 수동성의 기원을 종교적 전통인 숙명론에서 찾고 있었다. 특히 한국인 주인공이 일본인들에게 보인 도덕적인 저항과 이에 대한 강조는 하나의 상징처럼 여겨질 정도로 당연시되었다. 한국과 관련된 주제들을 예술적으로 묘사한 대부분의 경우들은 惡에 대해 폭력으로 저항하면 안 된다는 톨스토이의 원칙과 논쟁해야할 잠재적인 여지를 남겨두고 있었다. 이울러 한국인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반전론을 얘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러시아 언론에서 한국의 역사과 문화에 대해 언급한 것은 멀리 떨어진 이상한 나라에 대한 소개에 그치지 않고 러시아 사회로 하여금 자신의 문화 전통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 KCI등재

        러시아어 학습자의 토르플 인식 및 학습전략 연구

        최윤희 한국슬라브어학회 2017 슬라브어연구 Vol.22 No.2

        The aim of this study is to explore Russian learners' perceptions about TOEIC and to analyze their learning strategies, and to identify the differences in their perceptions based on their study areas and TORFL scores. For this study, one hundred twenty six Russian learners were selected, i.e. sixty eight students in the high school and fifty eight students in the university. The results identified five factors in the students' perceptions about TORFL: Practicality of TORFL, TORFL and improving Russian skills, ways to study TORFL, basic Russian proficiency for TORFL skills and ways to improve TORFL scores. The results showed that Russian proficiency for TORFL skills was statistically significant. Russian learners' effective strategies and cognitive strategies were very low. In order to use more effective strategies, they should try to decrease their anxiety about Russian and feel confident with Russian. To use more cognitive strategies, it's important for them to practice Russian and use Russian. They should practice new expressions and pronunciations. They should try to speak in Russian with people, watch Russian media and movies, and write simple writings as well. Learning strategies are the keys to successful language learning and learners can improve their communication abilities by using them effectively. TORFL-oriented Russian learners should find out what kind of strategies they don't use and use various learning strategies when learning Russian. 본 연구는 고등학교, 대학교의 러시아어 학습자들을 대상으로 토르플에 대한 인식과 학습전략을 조사하여 실질적으로 러시아어 실력 함양뿐 아니라 토르플 준비에 효과적인 교수-학습 방안을 모색하기 위하여 진행된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토르플은 학습자들에게 대입 및 취업을 위해 사회에서 요구되고 있는 대표적인 러시아어 실력 평가 시험이다.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에게 설문 조사를 통해 각각의집단에서 토르플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바에 대해 크게 5가지 요인으로, 그 학습자들이 평소 러시아어실력 함양을 위해 활용하는 학습전략을 6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 연구의 결과는 각 요인들에 대한 고등학생과 대학생의 단순 비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러시아어를 전공하는 학습자들을 대표하여 고등학교와 대학교 러시아어 학습자들이 지니는 토르플에 대한 인식 및 학습 전략을 살펴보고자 실시한 내용과분석이다. 토르플에 대한 인식에서는 전반적으로 대학생들의 긍정적인 답변률이 높았던 반면, 학습전략에대한 문항들에서는 고등학생들의 응답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토르플에 대한 결과는 졸업 후 토르플인증서에 대한 필요성과 실용성이 대학생들에게 더 많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며, 학습전략의 결과는 외국어 고등학생들의 높은 학업 성취도에서 보여주는 전반적인 학습유형이 반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토르플이 국내 대표적인 러시아어 검증 시험으로 자리매김을 해감으로써 토르플과 관련하여 보다 질적인 다양한 교수-학습 방법에 관한 연구들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토르플에 응시하는 러시아어 학습자들의 관점에서 토르플에 대한 논의와 토르플과 관련된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자 혹은 토르플 수업에참여하고 있는 학습자의 입장에서 효율적인 토르플 학습 환경을 개발하고 긍정적인 결과를 성취하기 위한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본 연구는 러시아어 학습자들의 관점에서 학습자들의 토르플에 대한 인식과 필요, 학습유형을 살펴 좀 더 효율적인 교수-학습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 점에서는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표집 된 연구 대상이 제한적인 점에서 연구의 한계점을 지닌다. 즉, 고등학교와 대학교 모두 일정 지역 학교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것으로 연구결과를 전국 러시아어학습자에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보다 대표성 있는 표본을 대상으로 향후 연구를 실시함으로써, 연구의 외적 타당도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학습자들의 학습전략 검사는 토르플 교수-학습시 필요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하여 학습자들의 학습 유형을 파악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한 것으로 러시아어 학습에 대한 보다 질적인 학습전략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각 문항 및 전략들에 대한 세부적인 분석 및 다른 외국어 학습자들과의 비교 분석 등 추가적인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더 좋을 것으로 본다. 향후 러시아어 학습자들의 토르플에 대한 인식을 좀 더 체계적으로 조사 분석할 필요가 있다. 학습자들의 인식에 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자들의 토르플에 대한 인식은 어떤 구인들로 이루어져 있고, 토르플에 대한 인식 차이, 토르플 성적과 러시아어 학습의 동기부여와 연관성이 있는지 등을 함께 조사한다면, 러시아어 학습자들의 토르플에 대한 인식을 이해하는데 더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또한 지역별, 학년별로 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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