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송희준,황호식,정윤양,권지원 대한안과학회 2018 대한안과학회지 Vol.59 No.12
Purpose: To evaluate the clinical features of conjunctival dermolipoma. Methods: We reviewed the ocular records of 18 consecutive patients diagnosed with dermolipoma in our hospital between March 2016 and March 2018. Results: The study population consisted of eight females and 10 males with a mean age of 61 months (range 3 months to 45 years old), with a pinkish conjunctival mass located at a mean of 4.7 mm (range 2-8 mm) from the temporal limbus and anterior to the lateral orbital rim. The mean visual acuity of eight patients in whom it was possible to measure visual acuity was 0.9 (range 0.6-1.0). Surgery was performed in two eyes. Pathological examination revealed conjunctival dermolipoma. Postoperatively, there was no evidence of visual changes or specific complications. Conclusions: Conjunctival dermolipoma may be suspected in cases with a congenital subconjunctival non-movable mass, which can be confirmed by computed tomography and pathological examination. 목적: 결막 유피지방종의 임상 양상에 관해 알아보고자 하였다. 대상과 방법: 2016년 3월부터 2018년 3월까지 본원 안과에 방문하여 결막 유피지방종으로 진단받은 18명의 임상 소견을 후향적으로 분석하였다. 결과: 내원 당시 평균 연령은 61개월(3개월-45세)이었으며, 남자가 10명, 여자가 8명이었고, 각막윤부에서 평균 4.7 mm (2-8 mm) 거리의 이측, 안와연 앞쪽 눈알결막에 분홍색의 종괴가 관찰되었다. 시력 측정이 가능했던 8명의 종괴가 있는 눈의 평균 시력은 0.9 (0.6-1.0)였다. 2안에서 제거 수술을 시행하였으며, 제거한 조직의 병리검사상 결막 유피지방종으로 진단되었고, 수술 후 시력 변화는 없었으며, 특별한 합병증도 관찰되지 않았다. 결론: 선천적으로 안구의 이측 결막하에 볼록한 종괴가 관찰되고 움직임이 없으면, 결막 유피지방종을 의심해 볼 수 있으며, 전산화단층촬영과 병리조직학적 검사를 통해 확진할 수 있겠다.
宋熹準 영남퇴계학연구원 2014 퇴계학논집 Vol.- No.15
조선 중기 이후 학풍은 朱子를 극도로 존숭하면서 朱子學이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였다. 주자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학자는 李滉이며, 국왕 으로 주자학에 몰두한 분은 正祖이다. 이들은 각각 朱子書節要와 朱 書百選을 편찬하였는데, 이 두 책은 서로에 밀접한 상관 관계가 있다. 주자서절요는 李滉(1501∼1570)이 朱子大全 중에서 서찰 가운데 중요한 것을 뽑은 것으로, 1558년에 편찬한 20권 10책이다. 이황은 성리학에 관심을 두고 주자대전을 가지고 정독하면서 거기에 담긴 맛과 의리의 무궁함을 깨닫게 되었으며, 특히 그 중에서도 서찰에서 감동되는 바가 많았으니 이것이 주자서절요를 편찬하게 되는 직접적 동기가 된 다. 주자의 서찰이 59권 2,365편인데 주자서절요에는 20권 1,234편의 서찰이 실려있으니, 편수에서는 1,100편 정도 줄었지만 분량에 있어서는 2/3가 줄어들었다. 이황은 사람이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동기를 유발하 고 흥기하는 데서 출발하여야 학문에 진척이 있게 된다고 하면서, 거기 에 가장 적합한 것이 주자의 서찰이라고 하였다. 주자서절요는 1561 년에 처음 간행된 이후 약 40년 사이에 7차례나 간행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또한 그것에 대한 주석서로 많이 쏟아졌다. 주서백선은 正祖(1752∼1800)가 1794년에 편찬하였는데, 이미 이 황이 편찬해놓은 주자서절요를 기준으로 하여 주자의 편지 100편만을 뽑은 것이다. 정조는 이 책을 편찬하기 전부터 “주자는 내가 존경하여 스승으로 삼는 분이다.”라고 하여 조선조 국왕 중 가장 주자학에 몰두한 왕이었다. 정조는 주서백선을 간행한 이후 중앙의 규장각과 지방의 감 영과 관청에서 대대적으로 간행하여 보급하게 하였으니, 그 주된 목적은 당시 明淸小品과 패관소설 등으로 무너진 文體를 바로잡는 正經을 제시 함으로 조선을 주자학의 나라로 만들고자 하는데 있다. 이황과 정조의 이와 같은 노력은 실제로 조선조 중기이후 구한말까지는 주자학의 전성 기를 만들었다. 두 책을 비교해본 결과 주서백선의 99편이 주자서절요에서 그대 로 끌어왔으며 단 1편만 새로 뽑은 것이었으며, 정조는 이황의 편집 태 도와 의도를 대체로 잘 계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송희준 한국정책학회 1995 韓國政策學會報 Vol.4 No.2
냉전 종식으로 세계의 관심이 군사대결에서 경제대결로 전환되자 각국은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경쟁에 나서고 있다. 지난 개발연대 동안 우리 나라는 남북한간의 군사적 대결과 미국의 동북아시아 동맹정책 및 이에 따른 주한미군 철수 문제, 그리고 국내의 정치경제적 요인 등이 상호작용하면서 국방정책과 경제정책의 기조와 내용을 결정하여 왔다. 70년대부터 고조된 남북긴장으로 인하여 자주국방을 위한 방위산업과 그 토대로서 중화학공업을 병행추진하여 단기간 내에 국방 및 산업발전을 성취하였다. 그 과정에서 전자, 항공, 조선 등 미국의 많은 국방 및 민수 기술이 우리 나라에 이전되고, 역공학 등 방법으로 산업발전을 위한 자체 기반 기술이 구축되었으며, 기술을 개발 및 관리하는 인력의 교육훈련 효과도 있었다. 그러나 한정된 자원이 국방과 중화학공업에 집중투자됨으로써 경제적 비효율성과 산업구조적, 지역적 이중구조와 불평등을 유발하였다. 이제 남북간 긴장완화 및 통일 추세, 그리고 동북아시아의 정치경제적 환경변화 등을 고려하면서 적정한 국방투자 규모의 책정과 방위산업의 경제적 조정, 겸용기술의 연구개발 및 산·학·연 협동체제 구축, 군인력 구조의 개편과 교육훈련, 세계화시대의 군수조달과 표준규격 등의 문제를 해결할 과제를 안고 있다. 국방기술 개발이 경제발전에 공헌하는 방향으로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