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원문제공처
        • 등재정보
        • 학술지명
        • 주제분류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펼치기
        • 저자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退溪 漢詩 硏究의 現況과 課題

        김영숙 영남퇴계학연구원 2007 퇴계학논집 Vol.1 No.-

        Toegye(退溪) Lee Hwang(李滉: 1501~1570) left 2,230 Sino-Korean poetries. These are relatively a lot in Sino-Korean literature history. Therefore, there are 130 works of researches on Toegye's Sino-Korean poetries. Basic research including original copies work, unearthing work, index work, assorting works by date were also conducted. Studies for poetry of maehwa, general Sino-Korean poetry, poetics, relations to literature have been conducted in relation to natural beauty. However, existing researches should be reviewed, and new and various research method should be used to totally reinterpret Toegye's Sino-Korean poetries. Toegye's poetry should be translated and 'Dictionary for Toegye's poetry words' should be published for younger students to read and study Toegye's poetry easily. 'Hwadap(Responding) Poetry' and 'Seol-ri (Intelligential) Poetry' should be researched a lot. Academy journal should be more published and other studies related to Toegye poetry should be adopted to extend literature. Especially, study to find philosophy shown in poetries should be conducted. Until now, it has been too much emphasized that Toegye is oriental philosopher and it is relatively neglected that Toegye is poet. From now on, study on poetry will find that Toegye is a poet and philosopher. Literature and philosophy should be complementary each other through the study on Toegye's poetry. 퇴계 이황(1501~1570)가 남긴 한시는 2230여 수이다. 한문학사상 매우 많은 작품을 남긴 편이다. 퇴계의 한시 연구도 130여편으로 많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원본 작업, 작품발굴 작업, 색인 작업, 연월일별 작품재정리 등 기초연구도 이루어졌다. 작품연구에서도 자연미와의 관련, 매화시, 한시일반, 시학, 문학론과의 관련 등 분야별 연구도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연구방법과 다양한 연구로 퇴계한시를 총체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아직까지 번역되지 않은 퇴계시 번역을 계속해야 하고, 『퇴계시어사전』을 발간해서 후학들이 쉽게 퇴계시를 읽고 연구할 수 있게 해야한다. 앞으로는 ‘화답시’와 ‘설리시’를 많이 연구하여야 한다. 연구학술지도 많이 발간해야 하고, 퇴계시와 관련된 다른 연구도 수용하여 문학적인 모습이 더 확산되게 해야 한다. 특히 시에 나타난 철학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연구도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연구에서 작가 퇴계가 철학자라는 점이 너무 강조되고 시인이라는 점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앞으로는 시연구를 통해 퇴계는 시인이면서 철학자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퇴계의 시연구를 통하여 문학과 철학의 상보적이고 발전적인 연구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 KCI등재

        퇴계의 人心道心 理解

        김성실 영남퇴계학연구원 2021 퇴계학논집 Vol.- No.29

        This paper aims to investigate the concept of human-mind(人心) and moral-mind(道心) that Toegye(退溪) defines. Toegye(退溪)'s way of understanding about human-mind(人心) and moral-mind(道心) is similar to that of four moral origin(四端) and seven passions(七情), and this paper investigates them focusing on ‘Principle(理)’, ‘Emotion(情)’, ‘Desire(欲)’. The concept of human-mind(人心) and moral-mind(道心) has very long history on Confucianism. The concept of human-mind(人心) and moral-mind(道心) which started from 「Daewoomo(大禹謨)」『Book of History(書經)』 has developed as a key argument of Joseon- Dynasty's Neo-confucianism from Song-dynasty's Neo-confucianism. The reason why it is important to understand the human-mind(人心) and moral-mind(道心) lies in reviewing the teleological attitude which intends moral-mind(道心) is good and human-mind(人心) bad thing with dichotomous thinking Toegye is the representative Confucian who stressed to reason properly the teleological thinking and dichotomous thinking that have transmitted until these days. Toegye(退溪)'s way of understanding about inevitable nature and emotion in four-seven debate provides a clue to understanding the human-mind(人心) and moral-mind(道心). Through Toegye(退溪)'s way of understanding about human- mind(人心) and moral-mind(道心), I suggest that we think about how to learn and how to live based on this paper. 본 논문은 退溪가 이해하는 人心道心 개념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하는데 있다. 퇴계의 인심도심 이해방식은 四七論辯에서 情을 이해하는 방식과 맞닿아 있는데, 본 논문에서는 퇴계가 생각하는 ‘理’, ‘情’, ‘欲’ 등의 개념을 중심으로 퇴계가 이해하는 人心道心 개념을 살펴보고자 한다. 인심도심 개념은 유학 전통에 있어 오래된 개념이다. 『書經』「大禹謨」편에서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다’는 구절에서 시작된 인심도심의 개념은 宋代 유학을 거쳐 조선성리학의 핵심 논변으로 발전해왔다. 인심도심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이유는 도심은 좋은 것, 인심은 나쁜 것으로 보는 이분법적인 사고와 함께 도심을 우리와는 상관없는 어떤 초월성을 지향하는 목적론적인 태도에 대한 재검토를 위해서이다. 퇴계는 오늘날까지 이어져오는 만연한 목적론적인 사고, 이분법적인 사고 등에 대해 올바로 생각하기를 강조한 대표적 유학자이다. 사단칠정논변에서 순선할 수밖에 없는 性과 情에 대한 퇴계의 이해방식은 퇴계의 人心道心 이해방식에 실마리를 가져다주고 있으며, 이러한 퇴계의 인심도심 이해를 바탕으로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태도로 학문을 하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본고를 통해 다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 KCI등재

        退溪 書札의 意義와 現況

        문석윤 영남퇴계학연구원 2019 퇴계학논집 Vol.- No.25

        현재 전하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서찰(書札)은 3,118통에 달한다. 퇴계의 서찰은 퇴계의 철학과 삶의 정수를 보전하고 있는 것으로서 조선유학사에서 퇴계가 차지하는 위상을 감안할 때 그 중요성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퇴계는 서찰을 통해 자신의 도학적(道學的) 삶과 철학을 표현하였고, 시현(時賢), 지구(知舊), 문인(門人), 가인(家人)에 걸치는 동시대인들과 소통하였으며, 그 소통 행위를 통해 조선성리학(朝鮮性理學) 혹은 도학(道學)의 학문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우리는 그것들을 통해 퇴계를 중심으로 한 16세기 조선성리학의 형성 과정을 밀도 있게 재구성할 수 있으며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좀 더 체계적이고 생생하게 접근할 수 있다. 퇴계의 서찰은 또한 당대의 생생한 생활상을 담고 있다. 특히 그간의 문집 편찬에서 산절(刪節) 및 산거(刪去)된 부분들에는 그러한 생활사적 기록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정본 퇴계전서(定本 退溪全書)』 편성 사업을 통해 그러한 부분들이 거의 모두 복원됨으로써 관련 연구를 위한 유용한 자료를 확보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Currently, the total number of the letters of Toegye(退溪) Yi Hwang(李滉) amounts to 3,118. They preserve the philosophy and the life of Toegye. Considering the status of Toegye in Korean Neo-Confucian History, their importance is indisputable. Toegye expressed his life and philosophy through them which are communicated with his contemporaries including government officials, friends, rival scholars, disciples, and family members. And through this act of communication, he was able to form a scholarly or academic community. Through the study of them, we can densely reconstruct the formation of the 16th-century Korean Neo-Confucianism focusing on Toegye and provide a more systematic and vivid approach to it. Toegye’s letters are also of value as a living and life-historical record of the time. In particular, the discarded or erased parts of them include many such life-historical records. Almost all of these parts have been restored through Jeongbon Toegye Jeonseo(定本 退溪全書, Completed Works of Toegye) project, which provides useful data for related research.

      • KCI등재

        퇴계의 인성교육론(2)

        이동기 영남퇴계학연구원 2016 퇴계학논집 Vol.- No.19

        이 연구는 『인성교육진흥법』의 제정과정과 주요내용을 살펴보고, 퇴계 의 인성교육을 『인성교육진흥법』의 핵심 가치·덕목으로 범주화하여 그 의미를 탐색한다. 그리고 퇴계의 인성교육론에 대한 현대적 시사점을 논 의한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퇴계의 예와 효는 형식보다는 실천을 강조하였다. 퇴계에게 있 어 예(禮)의 의미는 형식이나 격식을 갖추는 자리에서만 예를 지키는 것 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작은 일에도 준수해야 할 도덕윤리였으며, 효(孝) 는 부모에 대한 은혜와 감사이며 조상에 대한 공경과 존숭(尊崇)의 실천 윤리였다. 둘째, 퇴계는 정직을 곧음과 의로움이라 규정했다. 퇴계에게 있어 곧 음과 의로움은 내적인 성찰을 통해 거리낌이 없는 명백한 마음의 상태였 고, 곡학아세(曲學阿世)하지 않고 극기복례(克己復禮)하는 정의의 제재규 범(制裁規範)이었다. 또한 퇴계는 관직에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강조하였 는데, 책임윤리를 개인윤리라기보다는 사회윤리 혹은 국가윤리로 확대하 였다. 셋째, 퇴계의 존중과 배려는 타인에 대한 겸손과 공경의 실천이었고, 인간적인 애민정신의 발현(發顯)이었다. 이는 개인적 가치와 이익을 중요 시하지 않고 사회구성원으로 마땅히 실천해야 공동선(共同善)을 강조한 결과였다. 넷째, 퇴계의 소통과 협동은 자리(自利)를 강조하기보다 이타(利他)와 공리(公利)를 최우선시하였다. 퇴계의 소통과 협동을 현대적 관점에서 해 석하면, 바로 경청(敬聽)과 상생(相生)의 원리였다.

      • KCI등재후보

        퇴계의 『성학십도(聖學十圖)』와 일본과의 관계

        성해준 영남퇴계학연구원 2012 퇴계학논집 Vol.- No.10

        The Toegye who is master of Neo-Confucianism lose his father at an early age. And he failed a Gwageo(the highest-level state examination to recruit ranking officials during the Goryeo and Joseon Dynasty) three times. But, he overcame all the frustrations and finally he passed the exam. At the age of 27 he entered government service and leaved from it at 49 for training younger students and brushing up his study.  After the retirement, he went back to Dosan Seowon and concentrated on research of Chu-tzu’s condense edition and train disciples. As a result the Youngnam School was formed. Many outstanding individuals were produced such as Yuseongryong, KimSeongil, Junggu and Jomok. The proper mental attitude of great scholar Toegye is regarded as not only cultivated scholar but also ordinary person that who keep the scholar’s duty. Also disciples regard him as only person that distributed the study of Confucius and Mencius in the east. The philosophy of Toegye was highly evaluated at Edo period of Japan as well as Joseon. And it is researched by each fields as representative scholar of Korea.  This report consider the background of making and propagation of「the ten diagrams on sage learning」by focusing on the composition and relationship with Japan. 조선 정통 성리학의 완성자로 불리는 퇴계 이황은 생후 7개월 만에 부친을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장성한 후, 23세에 성균관에 들어가 학습하며 과거를 세 번 보고 세 번 다 낙방하는 쓰라린 경험을 하였다. 그러나 당면한 정신적 충격과 고통에도 좌절하지 않고 각고의 노력을 거듭한 결과, 27세부터 과거에 합격하기 시작하였다. 34세에 승문원 부정자라는 관직을 시작으로 49세에 풍기군수를 마지막으로 후학양성과 학문연마에 뜻을 두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은퇴 후 그의 소원대로 귀향하여 도산서원에서 『주자서절요』 등의 학문연구와 본격적인 제자 양성에 주력한 결과, 중앙 관계를 주름잡는 영남학파를 형성한다. 향리의 학문풍토를 조성한 서애 유성룡(西厓 柳成龍)을 비롯하여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 한강 정구(寒岡 鄭逑), 월천 조목(月川 趙穆) 등의 유명한 인재가 배출되었다. 대학자인 퇴계의 일관된 근면 성실의 소박한 학문 자세는 덕과 교양을 겸비한 후덕한 학자의 명성 외에도 한사람의 평범한 인간으로서 현실생활과 학문생활을 엄격히 구분하여 최후까지 학자의 본분을 지킨 ‘성학자(聖學者)’로서의 평가가 주를 이룬다. 제자들은 스승 퇴계 학문의 깊이를 공자․맹자의 도를 동양에 밝힌 유일한 사람으로 공자 맹자이후에는 퇴계선생 한 분뿐이라고 평가하였다. 또 관학의 유생들은 퇴계를 두고 「신명(神明)』, 즉 신처럼 존경하고 받들었을 정도로 최고 존숭의 대상이 되었다. 퇴계의 철저한 수양과 인격적인 태도의 품격 높은 생활상이 담긴 고원한 철학의 평가는 당시 조선사회 뿐만 아니라 바다건너 일본 에도시대 유학자들에게도 높이 존경되어 조선에 대한 문화적․학문적인 친근감을 가지게 한 계기가 되어 현재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도학자로 널리 각계 각 층의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퇴계 만년인 68세 때에 17세의 어린 선조에게 성군이 되라는 바람에서 헌상한 퇴계 학문의 결정체인 『성학십도』의 구성과 사상 및 일본과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성학십도』의 작성 배경과 내용 및 전파에 관하여 고찰하였다.

      • KCI등재후보

        書簡 중심의 문집 출현과 『退溪集』 ― 『退溪集』 諸 異本에 대한 한 고찰 ―

        鄭錫胎 영남퇴계학연구원 2015 퇴계학논집 Vol.- No.17

        이 글에서는 書簡 중심의 문집으로서의 『退溪集』의 성격에 대해서 살 펴보았다. 『퇴계집』에서 서간은 서간만으로 외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서간을 매개로 교류한 인물들은, 다시 말하면 서간 對方人物들은 바로 詩를 주고받는 대상이기도 하였고, 祭文과 墓道文字, 그리고 序記跋 등 의 글을 지어서 보내준 인물들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측면에 주목해 서 『퇴계집』 편집자들은 서간 대방인물들을 동일 부류의 人物群으로 분 류해서 편집하고, 그것들과 다른 詩와 散文 작품들이 서로 연계될 수 있 도록 해서, 退溪 李滉을 중심으로 그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돌아가 는 당시 조선의 정계 및 지성계의 움직임, 그리고 그 중심에 선 퇴계 이 황의 모습, 대학자 퇴계 이황의 모습을 돋보이게 그려낸 것이다. 산문의 빈약함을 극복하고, 서간을 중심으로 『퇴계집』을 대학자의 문집으로 만 들어낸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 시대 독자층의 수요에 적절하게 대응해 간 것이다. 『퇴계집』 補遺編의 편찬도 변화한 시대의 요구에 적절하게 대응해간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퇴계집』 보유편인 續集과 遺集 편 집자들, 퇴계 이황의 후손들인 속집과 유집의 편집자들은 자신들의 家門 을 중심으로, 서간 대방인물들의 가문들이 자신들의 가문과 밀접한 관계 를 맺도록 의도하면서 서간을 수집해 들이고, 다시 말하면 새로운 서간 대방인물들을 발굴해내고, 또 그 서간 대방인물들과 연계된 다른 시와 산문 작품들을 수집 정리해서 『퇴계집』 보유편을 엮어낸 것이다.

      • 퇴계 산수유기 연구의 현황과 과제

        심경호 영남퇴계학연구원 2007 퇴계학논집 Vol.1 No.-

        Before do dwelling in the Dosan(陶山), Toegye(退溪) dreamed retirement through lying down sightseeing(臥遊) and sought Jisooinsan(智水仁山) condition. Toegye(退溪) did not think of the landscape as playing place. Toegye(退溪) did not use figure of speech as pretending someone's meeting right time-no meeting who has talent and virtue. A landscape symbolized ultimate truth to Toegye(退溪). Discovery of genuine landscape had put out of daily interest meant apprehension of Tao's form(道體). Toegye(退溪) symbolizes whole process of landscape sightseeing by exhaustive investigation process of truth and pretends seeking after truth(求道)'s mind. Toegye(退溪) did not expose argument, and unused shallow figure of speech in the record of landscape journey. In terms of implied intention of composition and experience by way of symbol, his writing can speak that is wearing high character of literature. Here, examine Toegye(退溪)'s the record of landscape journey and related poetry-prose(詩文)'s present condition and previous research subject, and argue about assignment that must study forward. Subject should be deepened with research so far is same as following. ① Research about relation with Toegye(退溪)'s the record of landscape journey and previous record of landscape journey ② Mode of Toegye(退溪)'s landscape sightseeing and detection of esthetic sense through comparison with Juhui(朱熹)'s the record of landscape journey and Namakchangsujip(南嶽唱酬集) . ③ Comparison with contemporary writers-Nammyung(南冥) Joesik(曹植) etc.-'s the record of landscape journey and natural beauty appreciation attitude ④ Research about attitude of the repairing name(正名) that become known in Toegye(退溪)'s landscape sightseeing In the meantime, assignment must progress more forward is same as following. ① Synthesizing poetry-prose(詩文) at that time, reconstruction interest of the landscape sightseeing and aesthetic shape's way ② Research about future generations' succession aspect for Toegye(退溪)'s the record of landscape sightseeing ③ Whole view about Toegye(退溪)'s aesthetics of landscape Also, Toegye(退溪)'s the record of landscape sightseeing includes various thought(思想) and feeling(感情). Forward, must illuminate the wide and deep inside world that Toegye(退溪)'s the record of landscape sightseeing contains in new sight. 퇴계(退溪)는 도산(陶山)에 완전히 거처하기 이전에는 와유(臥遊)를 통하여 은일을 꿈꾸고 지수인산(智水仁山)의 경지를 추구하였다. 퇴계는 산수를 놀이 공간으로 보지 않았다. 재덕자의 우불우(遇不遇)를 가탁하는 비유물로 이용하지도 않았다. 퇴계에게 산수(山水)는 궁극의 진리체를 상징하였다. 일상적 관심 밖에 놓여있는 참 경치의 발견은 곧 도체(道體)의 자득을 의미하였다. 퇴계는 산수유람의 전 과정을 진리체의 궁구 과정으로 상징하고 구도 정신을 가탁하였다. 의론을 노출하지도 않았고, 옅은 비유를 사용하지 않았다. 상징의 방식으로 구도의 지향과 체험을 함축하였다는 점에서 그의 글은 고도한 문학성을 띠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는 퇴계의 산수유기 및 유관 시문의 현황과 기왕의 연구 주제를 살펴보고, 앞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에 대하여 논하기로 한다. 종래의 연구를 바탕으로 심화시켜야 할 논제는 다음과 같다. ① 퇴계 산수유기와 선행 유기와의 관계에 대한 조명② 주희의 산수유기 및 남악창수집 과의 비교를 통한 퇴계 산수유람의 방식과 심미안의 검출③ 남명 조식 등 동시대의 유산 기록 및 자연미 감상태도와의 비교④ 퇴계 산수유람에 나타난 정명(正名)의 태도에 대한 고찰 한편 앞으로 더 진행하여야 할 과제는 다음과 같다. ① 유산 당시의 시와 문을 교직하여 산수유람의 흥취와 미적 형상화 방식을 재구성② 퇴계 산수유기에 대한 후대인의 계승 양상에 대한 연구③ 퇴계의 산수미학의 전체적 조망 또한 퇴계의 산수유기는 다양한 사상감정을 포괄한다. 앞으로도 퇴계의 산수유기가 담고 있는 넓고 깊은 내면세계를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하여야 할 것이다.

      • KCI등재

        理와 心의 문제로 본 李退溪思想의 특징과 사상사적 의의

        이퇴계,,마음심,퇴계심학,양명심학 영남퇴계학연구원 2010 퇴계학논집 Vol.6 No.-

        본고에서는 이 理와 心의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이퇴계가 중국과 조 선의 선배학자나 동료들을 상대로 그것의 이해를 둘러싸고 씨름하면서 자신의 사상을 구축해가는 모습을 추적하는 것으로, 이퇴계 사상의 특징 과 그것의 사상사적 의의를 다시 한 번 살펴보고자 하였다. 논의의 진행 은 먼저 이퇴계가 明代의 羅整菴과 조선의 徐花潭을 비판하는 모습을 살피고, 그것의 이유로서 四端七情論을 고찰하였다. 다음으로 본격적으 로 리와 심의 관계를 본래성과 현실성의 문제를 통하여 논하였고, 마지 막으로 퇴계심학의 사상사적 의의를 양명심학과의 관계에서 고찰하였다. 결론적으로 이퇴계가 리와 기를 준별하여 나정암과 서화담을 비난하 고, 또 사단칠정논쟁에서 기고봉을 詰難한 이유는 기 혹은 그것이 작용 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었음을 지적하였다. 그렇지만 한편에서 이퇴계 는 추구하여야할 이상으로서의 리가 기․현실과 유리되어 있다고도 생 각하지 않았는데, 이퇴계는 일견 모순처럼 보이는 이 문제를 사람의 마 음을 매개로 하여 그것과 같은 내용이 되는 리와 성에 능동성을 불어넣 는 방법으로 돌파하고 있었음을 말하였다. 그리고 朱子의 리와 심의 관 계가 하나이면서 둘이라는 양면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양명심학은 주자 의 심과 리의 ‘둘’의 측면에 기초하여 주자를 부정적 매개로서, 이퇴계는 ‘하나’의 측면에 기초하여 주자를 긍정적 매개로 하여 각각 자신의 사상 을 재구축해 간 것이었음을 지적하였다.

      • KCI등재

        조선 후기 陶山九曲의 설정과 경영의 한 국면

        姜正瑞 영남퇴계학연구원 2009 퇴계학논집 Vol.4 No.-

        조선 후기 영남의 士林은 퇴계가 지은 <武夷櫂歌> 차운시를 전 범으로 朱子가 은거했던 武夷九曲을 읊은 구곡시를 창작하였다. 이러한 詩作활동은 자신이 은거하는 공간에 九曲園林을 설정하고 경영하며 이 원림을 대상으로 구곡시를 짓는 데에 이르렀다. 퇴계 이황의 家學을 계승한 후손들이 퇴계가 은거했던 도산과 주자의 무이산을 비교하며 陶山九曲을 설정하여 경영하였는데 이러한 흐 름은 18세기 후반에 왕성하게 나타났다. 도산구곡을 대상으로 구 곡시를 지어서 퇴계 선생을 기리려는 의미가 있었지만 단순히 이 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도산구곡을 설정하고 경영하면서 도산 을 성리학적 세계가 구현된 청정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깊은 뜻이 있었다. 後溪李&#38948;淳은 선조 퇴계 이황의 학문을 계승하려는 의지를 가 지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였는데, 그 중에 퇴계의 자취가 남아 있 는 도산에 도산구곡을 설정하고 경영하여 도산을 주자의 무이구곡 과 대등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는 <陶山九曲詩> 서문에 서 무이구곡과 도산구곡의 유사점을 차례로 언급하며 무이구곡과 도산구곡은 그 지형에서 매우 닮은 점이 많으며 무이구곡과 도산 구곡에 살았던 주자와 퇴계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여러 가지 논거를 들어서 진술하였다. 그 중에서 무이구곡이 무이정사 를 중심으로 아홉 굽이를 설정한 것과 도산구곡이 도산서당을 중 심으로 아홉 굽이를 설정한 것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오묘함이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주자의 학문을 정 통으로 계승한 이는 퇴계이며 퇴계의 학문이 완성된 이 공간은 주 자의 학문이 완성된 공간처럼 신성한 공간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 다. 이렇게 설정한 도산구곡은 제1곡이 雲巖, 제2곡이 鼻巖, 제3곡 이 月川, 제4곡이 汾川, 제5곡이 濯纓潭, 제6곡이 川砂, 제7곡이 丹 砂, 제8곡이 孤山, 제9곡이 淸凉이다. 도산구곡은 조선 후기 영남의 士林에게 단순히 아름다운 경관이 전개되는 공간이 아니었다. 퇴계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공간이며 퇴 계의 학문이 완성된 공간이다. 따라서 도산구곡은 영남 사림에게 무속적 불교적 세계가 제거되고 성리학적 세계가 구현된 청정하고 신성한 공간이었다.

      • KCI등재

        퇴계의 人心道心說 -「人心道心精一執中圖」수정을 중심으로-

        정도희 영남퇴계학연구원 2021 퇴계학논집 Vol.- No.29

        This article aims to explore again the Toegye's Human Mind and Moral Mind through Diagram of the Human Mind and the Moral Mind in Collected Works of Wolcheon. Wolcheon, a student of Toegye, questioned his teacher Toegye about the criticism and questions of Wang bai's "Diagram of the Human Mind and the Moral Mind". And Furthermore, he denied Wang bai's "Diagram of the Human Mind and the Moral Mind" and produced his own new "Diagram of the Human Mind and the Moral Mind" to show Toegye. Togye saw the Diagram of Wolcheon and modified it twice. In the process, Wolcheon's "Diagram of the Human Mind the Moral Mind, and Holding On to the Mean with Only one Aim" And two Toegye's "Modified Diagram", Which modified it, were created. As previous prior research suggests, Toegye accepted Hsu ch'ine's theory and the Zuh xi's theory and interpreted the Human Mind(人心) the Moral Mind(道心) as li(理), ki(氣) like four moral sprouts(四端) and seven sentiments(七情). And he interpreted the Human Mind(人心) the Moral Mind(道心) as li(理), ki(氣) and saw that controlling ' the Human Mind(人心)= ki(氣)' with 'the Moral Mind(道心)=li(理)' was the most important point. These ideas of Toegye appear in both the 'Diagram of the Human Mind the Moral Mind, and Holding On to the Mean with Only one Aim' painted by Wolcheon and the 'Modified Diagram' modified by Toegye. All paintings of Wolcheon and Toegye were divided into Human Mind and Moral Mind through typefaces and locations, expressing Zhu xi's theory that Moral mind lead Human mind, which follows the order by means of 'Fine(精) and Singleness(一)'. After which expressing the ideal state of mind through the last equilibrium(中). 본고에서는 『月川集』에 있는 퇴계 이황과 월천 조목의 「人心道心圖」를 해석하여 퇴계의 人心道心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퇴계의 제자 월천은 『心經附註』 안에 있는 왕백의 「人心道心圖」에 대한 의문을 스승 퇴계에게 질문했으며 더 나아가 왕백의 「人心道心圖」를 부정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人心道心圖」를 제작하여 퇴계에게 보여주었다. 퇴계는 월천의 그림을 보고 두 차례나 수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월천의 「인심도심정일집중도」와 이를 수정한 두 개의 퇴계 「수정도」가 탄생하였다. 기존의 선행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퇴계는 허겸의 설과 주자의 설을 받아들여, 四端·七情과 마찬가지로 人心·道心을 理와 氣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그는 인심과 도심을 理氣로 해석하면서 道心=理이니 주로 삼고 人心=氣이기에 제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퇴계의 사상은 월천이 그린 「人心道心精一執中圖」 및 퇴계가 수정한 두 개의 「수정도」에 모두 나타난다. 퇴계와 월천의 모든 그림은 서체 및 위치를 통해 인심과 도심을 나누었으며, 精과 一을 통해 道心이 주가 되고 人心이 그 명령을 따른다는 주희의 설을 표현했으며, 마지막 中으로 이상적인 마음의 상태를 표현했다.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