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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 11년(1874) 『濯纓先生年譜』간행의 의미

        김영두(Kim Youngdoo) 한국사학회 2017 史學硏究 Vol.0 No.127

        이 논문은 고종 11년(1874) 탁영 김일손의 생애를 기록한 연보가 간행된 경위의 검토, 연보의 내용 검토를 통한 진위 판별, 연보의 간행이 가지는 사회적·사상적 의미의 탐구를 목적으로 한다. 성종 때 사관으로 활동하였던 김일손은 세조 때의 일을 자신의 사초에 기록하였고, 연산군 때 그의 기록으로 무오사화가 촉발되었다. 김일손은 처형되었고 그가 남긴 수많은 시와 문장들은 흩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중종반정 이후 복권되었고 조선 후기에 충신으로서 추숭되었다. 그런데 고종 11년(1874)에 김일손의 조카인 김대유가 편집하였다는 『탁영선생연보』의 원고가 발견되었다. 연보는 김일손에 대한 귀중한 기록으로 평가받으며 여러 지역 후손들의 협력 아래 그해 서울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청도에서 다른 판본의 연보가 간행되었는데, 청도판 연보는 서울판 연보에서 연보를 보존해 온 가계에 대한 설명이 삭제된 채 간행되었다. 한편, 연보의 내용을 실록과 대조하여 보면 김일손의 관직 이력이나 교유 관계에 대한 설명에서 차이나는 부분이 적지 않다. 특히 『연산군일기』에 실린 김일손 심문 기록과 연보에서 설명하는 그의 교유 인물사이에는 차이가 뚜렷하다. 연보의 기록에는 김일손과 생육신의 교유가 강조되어 있는데, 생육신 개념이 18세기에 형성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연보는 그 내용에 서술되어 있는 것처럼 16세기에 편찬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연보의 편찬 시기는 18세기 이전으로 소급될 수 없다고 보인다. 연보의 간행 경위와 내용에 대한 검토 위에서 판단해 보면, 연보는 조선 후기 김일손의 후손으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종계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한 근거로 만든 자료라고 생각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연보를 전해 받은 김대유의 동생 김대장의 장남 김갱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고종 39년(1902) 장례원은 연보를 근거로 당시까지 김일손의 종손으로 알려진 청도의 가계 대신 이 가계를 김일손의 종통으로 인정하였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 부계 중심의 가문 의식이 확립되었고, 아울러 사회경제적 변동으로 말미암아 실력과 부를 갖춘 신흥 세력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사회적 제약을 벗어나기 위해 갖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신분 상승을 도모하였다. 이를 위해 직접적인 가계 기록인 족보 외에도 다양한 자료를 조작하거나 창출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자료에 대한 사료비판은 이 시기 역사 연구를 위한 가장 기초적인 작업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조선후기 자료에 대한 사료 비판의 필요와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불철저한 면이 있다. 이 논문이 이러한 문제를 환기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This paper studies the chronology of Tagyeong Kim Il-son’s life to examine the details of its publication in 1874, the authenticity of the chronology through a content analysis, and the social and ideological significance of its publication. Kim Il-son was a “Sagwan (historical compiler)” during King Seongjog’s reign who recorded the events that occurred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 His records provided a reason for Muosahwa (the Literati Purge in 1498), during which he was executed. However, he was reinstated after the Jungjong Banjeong (King Jungjong’s restoration) and posthumously honored as a loyal subject in the late Joseon period. A manuscript of Tagkyeong Seonsaeng Yeonbo (the Chronology of Master Tagyeong’s Life), compiled by his nephew Kim Dae-yu, was discovered in 1874. Regarded as a valuable record of Kim Il-son, it was published that same year in Seoul under the collaboration of Kim’s descendents in various regions. Soon afterwards, another version of the chronology was published in Cheongdo. The Cheongdo version eliminated the explanation of the family line which preserved the chronology. Kim Il-son’s career history and friendship relations recorded in the chronology are quite different from the records of the Annals of Joseon Dynasty. Especially, there are notable differences between Yeonsangun Ilgi(Life of Yeonsangun) and the chronology regarding Kim’s friendship relations. His companionship with saengyuksin (six loyal subjects) is emphasized in the chronology. However, the term saengyuksin was created in the 18th century. Therefore, the chronology cannot have been compiled in the 16th century as claimed. It is highly likely that the chronology was created in the late Joseon period by the people who claimed to be the descendents of Kim Il-son to assert their legitimacy as the main line of descent. They claimed that they were the descendents of Kim Gaeng, the first son of Kim Dae-jang, the adpoted son of Kim Il-son. In reality, Jangryewon (Bureau of Ceremony) acknowledged them as the main descendent of Kim Il-son based on the hronology in 1902. Before the publication, the family in Cheongdo was known as Kim Il-son’s main descendent. In the late Joseon period, a family consciousness based on the paternal line was established. Besides, a new group of emerging powers appeared due to the socio-economic changes. They attempted to raise their social status by all means in order to be rid of their social constraints. It is assumed that they fabricated various documents including their genealogies. Critical assessment of the authenticity of historical documents would be the most basic task for the historical research of that period. However, the awareness of the necessity and importance of source criticism regarding the historical records of the late Joseon period is still quite low. The paper will serve as a momentum to call attention to this problem.

      • KCI등재

        세조 정권 비판의 상징적 인물로서 김시습의 역사적 위상에 대한 연구

        김영두(Kim Youngdoo) 한국사학회 2022 史學硏究 Vol.- No.148

        이 글은 조선 후기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된 김시습의 모습이 가진 역사적 맥락을 검토하는 글이다. 김시습은 조선 전기의 독특한 문장가이자 사상가로서, 오늘날 문학과 철학 분야에서 다양한 각도로 그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어 왔다. 하지만 생육신의 한 사람이라는 김시습의 정체성은 근대 학문이 성립된 이후 외면되어 왔다. 그것은 조선 후기에 ‘생육신 김시습’이라는 표상이 정치적으로 남용된 것을 비판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 후기 절의지사에 대한 추숭은 당시 사회의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선 후기에 세조 정권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김시습은 그가 가진 문학적 명성으로 인해 활용도가 아주 높은 대상이었다. 그에 따라 그가 등장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졌다. 한편, 김시습이 가진 역사적 의미는 성종대 신진 사림과의 교유라는 측면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최근 신진 사림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연구들이 계속 출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세조 정권에 대한 비판적 역사 인식이 사림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 요소였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당대 세조 정권에 대한 저항의 표상과도 같은 김시습의 존재가 성종대 신진 사림에게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김시습은 성종대 신진 사림이 갈망하는 이상적인 정치로 가는 과정에서, 불의한 세조 정권을 어떤 식으로 비판할 수 있는지 실제로 보여주는 전범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그러한 위상 때문에 조선 후기 생육신의 대표 인물이자 수많은 전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This article examines the historical context of Kim Si-seup(金時習), who was established as one of the Saengyuksin(生六臣) in the late Joseon Dynasty. Kim Si-seup is a unique writer and thinker of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research about him has been accumulated from various angles in the field of literature and philosophy. However, the aspect of being a member of the Saengyuksin has been shunned in the study of Kim Si-seup since modern studies were established. This is because it was critically viewed as politically abused in the late Joseon Dynasty as the representation of Saengyuksin. However, the worship of the royalists in the late Joseon Dynasty needs to be understood in the historical context of society at the time. As the historical re-evaluation of King Sejo’s reign in the late Joseon Dynasty progressed, Kim Si-seup was a very useful object due to his literary reputation. Accordingly, many of the stories in which he appeared. On the other hand, the historical meaning of Kim Si-seup needs to be discussed in terms of socializing with young scholar-official, Sarim(士林) in King Sungjong’s reign. Recently, new studies on how to define Sarim continue to emerge. In the process, it is emphasized that critical historical perception of the King Sejo’s regime was an important factor in forming the identity of Sarim. In that context, it can be thought that Kim Si-seup’s presence, such as a representation of resistance to the King Sejo’s regime of the time, would have had a great influence on young scholar-official, Sarim in King Sungjong’s reign. Kim Si-seup was one of the actual models that demonstrated how he could criticize the unjust Sejo regime in the process of going to the ideal politics that young scholar-official, Sarim in King Sungjong’s reign yearns for. And because of that status, it is believed that he was able to become a representative figure of the late Joseon Dynasty and the protagonist of numerous legends.

      • KCI등재

        삼각 메시로 구성된 플랜트 캐드 데이터로부터의 프리미티브 인식

        김영두(Youngdoo Kim),응웬콩홍퐁(Cong Hong Phong Ngyuen),최영(Young Choi) (사)한국CDE학회 2020 한국CDE학회 논문집 Vol.25 No.1

        As plant construction grows on a large scale, plant-specific software products are developed, with large scale design, efficient compression, and visualization capabilities. Since such visualization products are expensive, in most construction sites, inexpensive visualization software is utilized with data converted to a neutral format. Many studies have proposed a method of extracting primitive shapes from plant design data to reduce data weight. Although primitive recognition methods for various shapes such as cylinders, cubes, planes, spheres, etc. have been proposed, there is a lack of research on the classification of torus, which serves as an elbow connecting pipes. In this paper, we propose a primitive recognition method which recognizes cylinders, tori, planes, cubes, spheres from unorganized triangular mesh data of plant CAD data. Convolutional neural network, the Gaussian sphere, and oriented bounding box are utilized to classify each primitive. Recognized primitive shapes and unrecognized mesh are exported in a lightweight format. Experiments showed high primitive recognition rates and data compression rates.

      • KCI등재

        채무불이행과 지출비용배상에 관한 민법개정안 검토

        김영두(Kim, Youngdoo) 강원대학교 비교법학연구소 2014 江原法學 Vol.43 No.-

        채무불이행의 경우에 신뢰이익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우리 나라에서는 견해가 나뉘고 있다. 이를 긍정하는 견해도 있고 부정하는 견해도 있다. 대법원은 1992. 4. 28. 선고 91다29972 판결에서 채무불이행으로 인해서 채권자가 지출한 비용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였다. 2013년 민법개정안에서는 제392조의2에서 신뢰이익의 손해배상이라고 볼 수 있는 지출비용의 배상에 관한 규정을 신설하고 있다. 비용배상청구권에 관한 개정시안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첫째, 판례는 채무불이행의 경우에 신뢰이익의 손해배상을 허용하고 있다. 이 경우에 근거규정은 민법 제390조이다. 그러나 비용배상청구권에 관한 규정을 신설한다면 민법 제390조의 손해배상은 이행이익의 손해배상만을 의미하게 되고, 신뢰이익의 손해배상청구권의 근거규정은 민법 제392조의2가 된다. 청구권의 근거규정의 변경으로 인해서 배상의 범위 등에 관한 혼란이 발생하겠지만 이로 인한 실익은 찾기 어렵다. 둘째, 개정시안 제392조의2은 비용배상청구권의 발생요건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다. 귀책사유가 배상청구권의 요건인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 지출한 비용이 채무불이행에 의해서 의미가 없게 된 경우에만 배상청구가 인정되어야 하지만 이에 대한 규정도 없다. 모든 비용에 대한 배상이 인정되지 않고 상당한 비용만이 배상된다는 표현도 없다. 셋째, 개정시안 제392조의2는 신뢰이익의 손해배상청구권을 규정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청구권의 근거규정인지가 불명확하다. 만약 개정시안 제392조의 2가 새로운 배상청구권을 인정하는 규정이라는 입장을 취한다면 손해배상 예정액을 넘는 비용에 대한 배상청구가 허용될 것인지, 손해배상의 범위나 과실상계, 손익상계에 관한 민법의 규정들이 적용될 것인지 하는 문제가 개정시안에 명확히 나타나야 한다. 만약 기존에 인정되던 신뢰이익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입법한 것이라는 입장을 취한다면 규정의 신설로 인한 실익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실익을 찾기 어렵다. 따라서 어느 입장을 취하든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넷째, 개정시안 제392조의2에 따르면 이행이익의 범위 내에서 지출비용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신뢰이익의 손해배상은 이행이익의 입증이 곤란하거나 별도의 이행이익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 의미가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행이익을 한도로 비용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둘 필요는 없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비용배상청구권에 관한 개정시안 제392조의2를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개정시안 제392조의2를 신설해야 한다면 이 규정에 관한 법적 성격과 요건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It has been controversial whether the aggrieved party in contract can claim damages for the reliance loss instead of the expectation interest. The generally accepted opinion allows the creditor to claim reliance interest whose loss the creditor has suffered as a consequence of relying on the debtor"s promise, when the contract is void or cancelled. Thus the creditor can claim the expectation interest rather than the reliance interest on the basis of non-performance. However, many recent opinions allow the creditor to claim damages for reliance interest on the basis of non-performance. The decisions of court allow the creditor to claim the reliance interest instead of the expectation interest. Art. 392-2 of the Draft for the Amendment of Korean Civil Act(DAKCA) 2013 concerns the damages for reliance interest caused by the breach of the contract. However this draft uses the term of the compensation for the useless expense rather than damages for reliance interest. There are some criticisms about this draft. First, the basis for damage for reliance interest allowed by decisions of court is Art. 390 Korean Civil Act(KCA). However Art. 392-2 DAKCA will be the new basis for the damages for reliance interest, which may cause the confusion about the scope of the compensation and so on. Second, the requirements of the Art. 392-2 DAKCA are not complete. The adequateness of expense which turns out to be useless, the causation between the breach of contract and the uselessness of expense are not stipulated in this draft. Third, it is unclear whether the right of the Art. 392-2 DAKCA is a kind of right of Art. 390 KCA. This problem concerns whether the rules of the scope of compensation for damages, contributory negligence, liquidated damages are applicable to the right of the Art. 392-2 DAKCA. Fourth, Art. 392-2 DAKCA restricts the amount of the compensation to the expectation interest. However considering that the damage for reliance interest is useful when there is no expectation interest or it is hard to prove it, it is unreasonable to restrict the amount of compensation to the expectation interest. There is no special need to set up the rule for reliance damages. If there is, Art. 392-2 DAKCA should clarify the requirements of the right to the compensation and the character of this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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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硏究論文(연구논문):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에 관한 고찰

        김영두 ( Youngdoo Kim ) 법조협회 2015 法曹 Vol.64 No.8

        2015년 5월 13일부터 시행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하 "상임법")은 임대차계약이 종료하는 경우에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기회를 보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상임법이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기회를 보호하는 이유는 임차인이 형성한 영업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즉 임대인이 갱신을 거절하는 경우에 임대인에게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고 방해하는 경우에는 손해배상책임을 부담시킴으로써 임대인의 임대차계약 갱신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대인이 갱신을 거절하는 경우에는 임차인이 권리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하여 자신이 형성한 영업가치를 금전적으로 보유함으로써 영업의 가치를 보호하고 있다.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는 또 한편으로 임차인의 영업처분기회를 보호하는 의미도 갖는다. 상임법 개정 이전에는 임차인이 영업을 처분하려고 하여도 임대인이 협력하지 않으면 영업을 처분할 수 없었는데, 권리금 회수기회의 보호에 의해서 임차인은 임대차계약이 종료할 때를 기다려 영업을 처분할 수 있게 되었다. 임대인이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를 방해하는 가장 전형적인 경우는 권리금 계약의 상대방인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임차인과 새로운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거절하거나 차임이나 보증금은 현저하게 인상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방해행위는 상임법 제10조의4 제1항 제1호에서 제4호가 규정하고 있다. 임대인이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를 방해하게 되면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그로 인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에 손해배상액은 임차인이 형성한 영업가치를 기준으로 한다. 따라서 임대인의 방해행위에 의해서 임차인이 영업가치를 회수할 수 없게 되더라도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영업가치를 금전으로 보유할 수 있다. 손해배상청구권의 법적 성격에 대한 논의는 아직 찾아 볼 수 없지만 계약책임설, 불법행위책임설, 법정책임설이 제기될 수 있다. 불법행위책임설은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에 협력하지 않은 임대인의 행위를 고의적으로 임차인의 영업을 침해하거나 사회상규에 반하는 위법한 행위로 평가한다는 점에서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계약책임이나 법정책임으로 보아야 하는데, 점포임차인 보호의 문제는 임대차계약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으며 방해행위나 손해배상책임의 내용도 계약내용과 분리해서 결정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계약책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상임법이 권리금 회수기회를 보호하는 것과 관련하여 재건축의 경우에 임차인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상임법은 임대인이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면서 임차인에게 재건축을 위한 공사시기 및 소요기간 등을 포함한 철거 또는 재건축 계획을 고지한 경우 또는 안전상의 문제로 재건축을 하거나 다른 법령에 근거하여 재건축을 하는 경우에만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기회를 보호하지 않는다. 그 밖의 사유로 재건축을 하는 경우에는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기회를 보호하고 있다. 따라서 상임법은 재건축과 관련하여 임차인을 합리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Since early 2000``s there have been growing complaints of business tenants about the exploitation of landlords in Korea. Especially when the economy of the certain commercial zone is boosted, most of the landlords refuse the renewal of a tenancy and the tenants should quit the premises. Although the Commercial Building Lease Protection Act("CBLPA"), which was enacted 2002, is protecting the commercial tenant, it has failed to protect the business tenants from the unscrupulous landlords at the end of a tenancy. 2014. 9. Korean government reported the final amendment of CBLPA, which is aiming at the security of tenure of a tenancy indirectly. In 2015. 6. the amendment passed the Parliament. The contents of this amendment are as follows. First, the landlord has no obligation to renew at the end of a tenancy. However if he/she refuses to renew, the tenant shall have the chance to dispose of his/her business and recoup the investment into the premises and the business. Second, if the landlord refuses to renew, he/she has to cooperate with the tenant for the assignment of the business by way of entering into a new tenancy with the one who would be an assignee of the present tenant``s business. Third, if the landlord refuses to renew and to allow a new tenancy to the one who would be an assignee of the tenant``s business, he should compensate the tenant``s loss for quitting the premises.

      • 실시간 GNSS 수신기 전리층 지연 보정 모델의 한반도 특성 분석

        김영두(Youngdoo Kim),한덕화(Deokhwa Han),윤호(Ho Yun),김동욱(Donguk Kim),기창돈(Changdon Kee),소형민(Hyoungmin So),이기훈(Kihoon Lee),장재규(Jaegyu Jang) 한국항공우주학회 2014 한국항공우주학회 학술발표회 논문집 Vol.2014 No.11

        단일 주파수 GNSS 수신기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오차요소는 전리층 지연이고 이를 보정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전리층 지연 보정 모델의 사용이 필수적이다 전리층 지연 보정 모델로는 대표적으로 GPS의 Klobuchar 모델과 Galileo 의 NeQuick 모델이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 두 가지 모델에 대하여 계절별로 비교 시뮬레이션 하였다 그 결과 일부 시간과 위도를 제외하고 대체적으로 NeQuick의 정확도가 Klobuchar보다 더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The most significant error for using single frequency GNSS receiver is ionospheric delay and it is necessary to use of suitable ionospheric delay correction model for correcting ionospheric delay. There are two typical ionospheric delay correction model : Klobuchar model of GPS and NeQuick model of Galileo. In this study, two model were compared by simulation and seasonal variation was considered. In conclusion, NeQuick was more accurate than Klobuchar in most case except some latitudes and times.

      • KCI등재

        실록 편찬에 나타난 세조 정권의 정당성 추구

        김영두(Youngdoo Kim) 한국사학사학회 2013 韓國史學史學報 Vol.0 No.27

        이 논문은 비상한 방법으로 성립된 세조 정권이 자신들의 행동에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추진하였던 역사서 편찬과 그렇게 편찬된 역사서의 서술 방향을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단종·세조대 당시의 정치 투쟁은 세조 정권의 승리로 끝나고 왕조가 안정되었지만, 조선 사회의 지배층인 사대부 집단은 세조 정권의 역사적 정통성에 대해 도전을 계속하였다. 성종 때부터 숙종 때까지 이백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시기의 역사 인식에 대한 도전과 응전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러한 기억 투쟁의 양상을 검토하고 그것이 역사 서술의 태도와 내용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진행하는 일련의 연구의 시작으로서, 먼저 단종 세조시기 정치사에 대한 집권 세력의 역사 편찬 노력을 개관하고, 『노산군일기』와 『세조실록』에 나타난 집권 세력의 역사 서술을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예종 원년부터 시작된 『무정보감』 및 『노산군일기』와 『세조실록』의 편찬은 당시 정국을 주도하였던 세조대 훈신들의 영향력 아래에서 세조 정권의 집권 과정에 대한 승리자의 역사 인식을 반영하여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무정보감』은 이후 길게 이어진 역사 투쟁의 과정에서 세조 정권의 입장을 보존, 전승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무정보감』은 대체로 광해군 때부터는 존재가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조선후기에 와서 세조 집권 과정에 대한 당대의 자료로서 남은 것은 『노산군일기』와 『세조실록』이 유일하다. 『노산군일기』와 『세조실록』의 서술을 검토하면, 세조 정권은 당시 계속적인 반란으로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스스로를 규정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반대파에 비해 도덕적으로 우위에 서 있으며, 가족과 친구를 처벌해야 하는 것을 망설이는 인간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스스로를 묘사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당시의 역사서 편찬 과정에서 일관되게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세조 정권의 정당화 논리는 이후 세조 정권의 입장에 반대하는 역사 인식이 대두되는 과정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세조 정권의 정당화 논리는 스스로의 입장을 옹호하는 관점에서 구성된 것이지만, 이후 세조 정권의 입장에 반대하는 논리가 형성되는 데에도 전제적인 개념으로서 작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 때문에라도 세조 정권의 정당화 논리는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편, 이러한 연구를 통해 우리는 조선왕조실록의 자료적 성격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실록은 국가에서 편찬한 공식 연대기로서 수많은 자료를 담고 있지만, 당시 정치 사건에 대해서는 집권 세력의 역사 인식이 그대로 반영된 자료이기도 있다. 따라서 실록 또한 의도를 가지고 편찬된 기록물이며, 비판적 시각으로 검토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The article aims to analyze the historical texts of the King Sejo’s reign and illustrate its unique nature of the historiography at the time when were urgently needed to justify their governance of new nation gained nefariously. The political chaos followed by Sejo’s usurpation(1455-1468) of the throne seemed to be gradually settled down, but Neo-Confucian scholars of Joseon dynasty continued challenging to political authority of Sejo for more than two hundred years from Seongjong to Sukjong. Yet, there is no in-depth studies to elucidate how the political memories remains and how they impacts to historical writings and the people’s attitude to history at the time. This study, as a first step of the series of research to examine the process, will overview the political attempts of Danjong and Sejo reigns in the historical writings and examine in detail historigraphic practice of Danjong sillok and Sejo Sillok. The compilations of historical texts, Mujeongbogam, Dairy of Nosangun and Sejo Sillok dates back to the first year of King Yejong. These texts was influenced strongly by the political perspectives of the ruler and the meritorious elites(Hunsin). Mujeongbogam played the most critical role to uphold the political cause of Sejo and pass it down to the next generation, but unfortunately it has been known that the original copy of the book was completely lost during Gwanghaegun’s reign. Danjong Sillok and Sejo Sillok are only copies which report the political turmoil of the time. These Silloks describe Sejo’s usurpation of the throne as an inevitable consequence for the nation's political stability. Sejo and his followers described themselves to position a morally- higher ground than that of their oppositions, and even highlighted their humanistic aspects which hesitate ruthless bloodshed caused by the forced removal of his nephew from the throne. This view was reflected in the a whole process of the compilation of the books. This political justifications of new government significantly impacted the compilation process and the emergence of political argument which legitimizes Sejo’s seize of the power. This view also influenced on forming opinions against it. So it is important to examine the philosophical and political ground of the two Silloks because it reveals the hidden intent of politics to compile Sillok and leads to re-consider the nature of Joseonwangjo-sillok. It is no-doubt that Sillok is a work with high historical values and consists of the various political events and materials of the official dynastic histories, but we should understand that Sillok is also a records which was adopted political perspectives of the ruler, so it requires a critical review to understand what they actually 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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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明宗代乙巳士禍와 『續武定寶鑑』의 편찬

        김영두(Kim Youngdoo) 한국사학회 2014 史學硏究 Vol.- No.116

        이 논문은 명종 3년 간행된『속무정보감』의 편찬 경위와 내용을 검토하고, 그것을 통해 조선시대 관찬 역사서 편찬 전통의 특징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속무정보감』은 예종 때 간행되었던『무정보감』의 전례를 이어, 성종대 이후 국가의 군사 활동이나 반란 사건에 대한 역사를 편찬한 역사서이다. 하지만 사실상 그것은 명종대 집권 세력이 자신의 권력 기반을 굳히기 위해 벌였던 을사사화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간행한 역사서였다. 현재 남아있는 『속무정보감』은 3종인데, 5권 2책 체제로 되어 있는 조선사편수회본 및 규장각본 『속무정보감』은 명종 때 처음 간행되었던 것을 광해군 때 다시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려대도서관본『속무정보감』은 전체 8권 중 제8권만 남은 영본이지만 명종 때 간행된 초간본『속무정보감』인 것으로 생각된다. 『속무정보감』 8권은 명종대 을사사화 및 그와 관련된 여러 사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애당초『속무정보감』의 편찬 목적이 을사사화 이후 집권 세력이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었음을 생각한다면, 고려대도서관본이야말로 편찬의 목적에 부합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하겠다. 『속무정보감』8권의 내용을『명종실록』의 그것과 비교해 보면, 두 역사서는 모두 춘추관에서 작성된 기록을 주요 자료로 삼아 편찬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속무정보감』은 을사사화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편찬되었던 것인 만큼, 편찬 과정을 거치면서 집권 세력의 정치적 편향성이 그대로 내용에 반영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을사사화에 대해서 사대부 사회의 비판 여론이 넓게 형성되어 있었다. 따라서『속무정보감』은 간행 당시부터 여러 비판에 직면하였다. 결국 사림 세력이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한 이후 이 책은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았고 점차 역사에서 사라지는 운명을 맞았다. The study aims to explore the compilation process and the contents of Sokmujungbogam(續武定寶鑑) and examine the characteristics of compilation practice of court-ordered history books in Choson dynasty. Sokmujugbogam is the book which was written about military activity or rebellion occurred against government after King Sungjong, The book, which was followed by Mujungbogam of Yejong reign, was published in order to assert the legitimacy of Eulsa sahwa which was occurred to reinforce Soyun(小尹)’s political power. Currently there are three different versions of Sokmujungbogam. One, known as Chosonsa pyonsuhoe or Gyujanggak version which is composed of five volumes and two books, is presumed to be re-published during Kwangheagun’s reign. Another book is, which is called Korea University Library(KU library) version which was left only volume 8 in the original eight volumes, is thought to be firstly-published version which had been once compiled in King Myungjong reign. Sokmujungbogam volume 8 dealt with Eulsa sahwa of King Myungjong and other associated political events. Considered the original purpose of Sokmujungbogam to assert the legitimacy of the ruling force, KU library version is the most closed version to its original purpose. If compared to Myungjong sillok, both books are based on the records written by Chunchugwan(春秋館). However, the political bias were deeply involved in the content of the Sokmujungbogam because it was published to fortify the legitimacy of the ruling power. At the time, as the criticism of Eulsa sahwa were widely spread in world, Sokmujungbogam was faced with a number of criticism when it was published. As a result, the book was ignored by Sarim and finally disappeared from history after they became a ruling power.

      • KCI등재

        코로나19는 개인의 여행활동에 동일하게 영향을 미치는가? : 코로나19에 대한 심리적 거리, 감정, 여행활동의 관계 연구

        김영두(Kim, Youngdoo) 대한관광경영학회 2021 觀光硏究 Vol.36 No.7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의 출현으로 인하여 여행활동은 급격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코로나19 기간 중에도 여행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코로나19가 개인의 여행활동에 동일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본 연구의 목적은 코로나19에 대한 심리적 거리, 감정변화, 여행활동의 관계를 규명하는데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람들이 코로나19에 대해 지각하는 심리적 거리는 코로나19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반응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사람들의 감정반응은 여행활동 변화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으므로 본 연구에서는 이들 간의 관계를 규명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본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회귀분석과 Hayes의 매개분석 방법을 활용하여 코로나19에 대한 심리적 거리, 감정반응 그리고 여행활동 변화에 대한 관계를 검증해 보았다. 본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코로나19에 대한 심리적 거리는 부정적 감정반응에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에 대해 심리적 거리가 먼 경우보다 가까운 경우 코로나19로 인한 부정적 감정이 더 크게 변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코로나19로 인한 부정적 감정 반응 변화는 여행활동의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로 인해 감정이 부정적으로 크게 변화할수록 여행활동 감소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코로나19에 대한 심리적 거리가 여행활동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부정적 감정반응이 완전 매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에서 발견된 사항이 관광산업에 시사하는 바를 기술해 놓았다. Due to the emergence of COVID-19, travel activities have shown a sharp decline. The fact, however, that there are still individuals traveling abroad and that local tourism destinations remain active during the COVID-19 period suggests that it is highly likely that COVID-19 does not affect all individuals’ travel activities equally.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relationship between psychological distance due to COVID-19, emotional responses, and travel activities. More specifically, the psychological distance that individuals perceive regarding COVID-19 will affect an individual’s emotional responses derived from COVID-19, and individuals’ emotional responses are likely to affect changes in travel activities. In order to achieve the purpose of this study, a regression analysis and Hayes’ mediation analysis were used to verify the relationship between psychological distance due to COVID-19, emotional responses, and changes in travel activities. The result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First, psychological distance from COVID-19 affected individuals’ negative emotional responses. It was found that negative emotions caused by COVID-19 changed more significantly when the psychological distance was close than when the psychological distance was distant. Second, the change in negative emotional responses due to COVID-19 affected changes in travel activities. It was found that the more negative emotions changed due to COVID-19, the greater the decrease in travel activities. Third, it was found that negative emotional responses completely mediate the effect of psychological distance on changes in travel activities caused by COVID-19. The findings above describe the implications for the tourism indu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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